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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무열왕릉 답사 평가A좋아요
    철도전기시스템 201110531 고인혁 무 열 왕 릉 대 릉 원 한국역사 속 이야기선정이유 가는 길 무열왕릉 대 릉 원 ( 미추왕릉 ) 답사 후 소감 및 감상 목 차 한국역사 속 이야기한국역사 속 이야기 선정이유 나는 이번에 한국사 중급 과정을 공부하며 , 신라시대에 대해 큰 흥미를 가졌다 . 신라시대 위주로 답사 할 곳을 인터넷에 검색 하던 중 , 경주 ‘ 세계 문화 유산 관광 코스 ’ 를 찾게 되었다 . 아버지 회사에서 복지 시스템인 직계가족 열차 무료 통학권이 있었기에 거리는 어디든 상관 없었고 , 세계문화유산 이라는 타이틀이 끌렸다 . 또한 , 대전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왕릉을 실제로 보고 배우고 싶었다 . 그래서 나는 태종 무열왕릉과 , 대릉원 ( 미추왕릉 , 천마총 ) 을 답사지로 정하였다 . 세계문화유산코스 선정 이유Date. 2015-09-01 한국역사 속 이야기 동 대구 : 09 월 27 일 , 대전에서 16 : 27 동 대구행 무궁화 열차를 타고 동 대구로 출발 하였다 . 명절이라 열차가 6 분 정도 지연되었다 . 동 대구에 도착하니 18 : 34 이었다 . 경 주 : 동 대구에서 19 :05 무궁화를 타고 20 : 22 분에 경주 역에 도착 하였다 . 배가 고파서 시장에서 순대와 수제비를 사먹었는데 경주 시장은 인심이 좋다 . 또한 , 순대에 쌈장을 찍어 먹는다 . 정말 맛있다 . 이후 , 인근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 스쿠터 대여 : 09 월 28 일 , 블로그 에서 경주에서는 스쿠터를 대여 해준다는 정보를입수하여 , 점심 식사 후에 터미널로 갔다 . 6 시간에 4 만원에 대여 하였다 . 가는 길한국역사 속 이야기 1. 무열왕릉 소요 시간 : 약 10 분 입장료 : 어른 1,000 원 관람 시간 : 40 분 2. 대릉원 소요 시간 : 약 20 분 입장료 : 어른 2,000 원 관람 시간 : 1 시간 3. 맷돌 순두부 소요 시간 : 약 25 분 식사 비용 : 9,000 원 4. 안압지 소요 시간 : 약 15 분 입장료 : 어른 2,0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용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 ,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 비각안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위로 머릿돌만이 얹혀져 있다 .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 ( 碑座 : 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 주위로 연꽃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 머릿돌 좌우에는 6 마리의 용이 3 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 앞면 중앙에 ‘ 태종무열대왕지비 ( 太宗武烈大王之碑 )’ 라고 새겨 놓아 비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 통일신라 문무왕 원년 (661) 에 건립되었으며 ,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로 비문을 새겨 놓았다 .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며 ,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느낄 수 있다 .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 능숙하게 빚어낸 기법에서 당시 석조 조각의 발달상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역사 속 이야기 태종무열왕릉 ( 정보 ) 신라 제 29 대 무열왕 ( 재위 654∼661) 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 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 .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 삼국사기 』 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 년만인 661 년 6 월에 죽어 , 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 ( 永敬寺 ))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굴식돌방무덤 ( 횡혈식 석실분 ) 으로 추정된다 .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 무덤 앞 동북쪽에는 무열왕릉비 ( 국보 입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우측에 우리나라 국보 제 25 인 태종 무열왕릉비가 있었다 . 설명 판의 설명과 미리 조사해간 자료를 참고하여 살펴 보았다 .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비석은 글자가 적혀진 몸들은 없어지고 거북이의 모양의 받침돌과 용이 새겨진 머릿돌만 남은 상태였다 . 이에 대해 의문점이 생겼다 . 도대체 다른 비석들은 어디로 갔을지 .. 답사 후 집에서 인터넷을 찾아 봤지만 ,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의문 이다 . 자세히 보니 굉장히 섬세한 조각술이 돋보이는 비석 이었다 . 특히나 머릿돌에 새겨진 용문양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 용의 비늘 하나하나를 표현한 그 정성이 굉장히 돋보이는 작품인 것 같았다 . 또한 받침돌의 거북이는 인터넷 자료사진과 달리 실제로 보니 상태가 너무 좋아서 천년 이상 흐른 돌 같지는 않게 보였다 . 관리가 정말 잘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한국역사 속 이야기 태종무열왕릉 ( 답사 ) 무열왕릉비를 관람 후 무열왕릉으로 향했다 . 무열왕릉을 처음 보았을 때 , EBS 한국사 중급강의에서 ‘ 최태성 ’ 선생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 우리나라 무덤이 타원을 반을 자른 형태로 많이 되어 있는데 이는 어머니 뱃속을 형상화 한 것 이라고 했다 . 무열왕릉의 전체적인 느낌은 고요한 느낌과 웅장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 아마도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문중에서 옛 왕릉을 꾸밀 때 조선왕릉의 양식을 적용한 것으로 생각 되었다 . 또한 무열왕릉 앞에 놓여진 혼유석은 조선왕릉과 양식이 다른 것으로 볼 때 무열왕릉을 조성할 때 놓여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 무열왕릉에서 인증 사진과 함께 주변 사진을 찍은 후 무열왕릉 뒷 편에 있는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4 기의 고분으로 갔다 . 4 기의 고분은 행과 열이 잘 갖춰 져 있었고 무덤의 크기를 보아 높은 귀족의 무덤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 무열 왕릉은 관리가 참 잘된. 종 목 사적 제 512 호 명 칭 경주 대릉원 일원 ( 慶州 大陵園 一圓 )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수량 / 면적 709,150.8㎡ 지정 ( 등록 ) 일 2011.07.28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노동동 261 등 시 대 소유자 ( 소유단체 ) 관리자 ( 관리단체 )한국역사 속 이야기 미추왕 릉 ( 정 보 )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 대 왕인 미추이사금 ( 재위 262∼284) 의 무덤이다 . 『 삼국사기 』 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신라 유례왕 14 년 (297) 이서고국 ( 伊西古國 )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 ( 竹長陵 ), 죽현릉 ( 竹現陵 ) 이라 부른다고 한다 . 경주 황남동 무덤들 중 가장 잘 정비된 대릉원 내에 높이 12.4m, 지름 56.7m 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이 있고 , 담장을 돌려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 무덤 앞쪽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794 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 내부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 종 목 사적 제 175 호 명 칭 경주 미추왕릉 ( 慶州 味鄒王陵 ))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수량 / 면적 60,159㎡ 지정 ( 등록 ) 일 1969.08.27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황남동 89-2 번지 시 대 신라 소유자 ( 소유단체 ) 관리자 ( 관리단체 ) 경주시한국역사 속 이야기 대릉원 ( 답 사 ) 무열왕릉 관람을 마친 후 미추왕릉과 천마총을 보기 위해 대릉원으로 향했다 . 대릉원이란 이름은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 는 삼국사 기 의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 대릉원에대하는 마음으로 미추왕릉으로 향했다 . 미추왕릉에 들어가서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미추왕릉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 무슨 이유인지 몰라서 주위의 안내요원을 찾았지만 , 주위에 안내요원은 없었다 . 정말 아쉬웠다 . 아쉬운 마음에 담장 넘어 미추왕릉의 희미한 모습만 사진을 찍었다 . 왜 잠궈 놓았는지 궁금하여 답사 후 집에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문화재청 사이트에 대릉원 왕릉에 소변행위를 하는 것을 목격 하였다는 민원이 있었다 . 참 안타까웠다 .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잠궈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역사 속 이야기 천마총 ( 답 사 ) 미추왕릉이 개방하지 않은 관계로 아쉬운 마음으로 천마총으로 향했다 . 천마총에 대한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 천마총 내부에 보물들만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 이 천마총은 대릉원에서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고 있었다 . ‘ 능 ( 릉 )’ 은 주인이 확실한 무덤을 말한다 . ‘ 총 ’ 은 그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을 말한다 . 때 문에 ‘ 총 ’ 은 그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 중 가장 유명하거나 중요한 유물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 천마총은 무덤 속에서 발굴된 유물 중 천마도가 가장 유명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천마총 내부의 보물들을 사진 찍으려고 입구에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다는 표지판을 발견 할 수 있었다 . 그래서 나는 촬영을 하지 않고 눈으로만 관람을 하였다 . 답사를 마치고 인터넷 검색 중 천마총의 보물 사진들이 가끔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 천마총 내부의 안내요원을 배치하여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소홀해진 문화재를 좀 더 신경 써서 관리 하였으면 좋겠다 .경주의 맛 집 한국역사 속 이야기 “ 맷돌순두부 ” 내가 가려고 했던 무열왕릉과 대릉원 ( 미추왕릉 ) 답사를 마친 후에 경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맷돌 순두부 맛 집을 찾았다 . 도착 했을 때 기다리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한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 맛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신라의 야경 한국역사 속 이야기 “ 안압지 첨how}
    인문/어학| 2017.10.23| 18페이지| 1,000원| 조회(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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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의 모든것
    그와 동네 포장마차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대충입고 나오란 말에 그의 옷차림은 마치 자다 일어난 직 후 같았다. 또한 그가 신은 슬리퍼는 정말 슬퍼 보였다. 검정색이었던 슬리퍼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 했다. 마치 가장의 삶 같았다. 궂은일을 한 듯 색은 누렇게 바래있었고, 밑창은 닳을 데로 닳아있었다 그의 발을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처럼 옆면의 몇 가닥의 실이 버티고 있었다. 그의 생존력 같았다. 내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슬리퍼를 왠 쇳조각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쇳조각이 둘러싼 슬리퍼를 자세히 보았을 때, 그의 슬리퍼는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주위의 쇳조각들은 스테이플러 심으로 대충 고정시켜 놓은 것 이었다. 그 때 나는 그가 취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명사 ? 슬리퍼, 진술방식 - 묘사)그와 처음 인연이 시작된 것은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었다. 이후 우리는 동네 포장마차에서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는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래서 항상 취해있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 우리는 평소처럼 동네 포장마차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마치 어디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그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꺼냈다. 군대에 간다고 했다. 그 한마디를 하고 그는 나에게 술잔을 건네주더니 술을 가득 부어줬다. 자신의 술잔에도 술을 가득 부었다. 그의 행동을 보고 나는 멍하니 술잔만 바라보았다. 그러고 아무 말 없이 우리는 술 만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취해갔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올랐을 때, 그는 가족들을 위해 일찍 군대에 간다고 했다. 장남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모습이 대견했다. 어른 같아 보였고 친구로서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렇게 그는 군대 얘기를 안주삼아 평소보다 많이 술을 먹었다. 나는 점점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혀도 꼬여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우리는 술집을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한 몸이 된 듯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던 중 그는 슈퍼 앞 아주 포근해 보이는 정자를 발견했다. 그러고 그는 그 곳에 누웠다. 포근해보였다. 그리고 그는 희미하게 “아..어지러워”라고 말했다. 나도 덩달아 옆에 누웠다. 그렇게 우리는 어지러움을 뒤로 한 채 잠이 들고 말았다.(형용사 ? 어지럽다, 진술방식 ? 서사)그와 나는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같이 생활했다. 그는 어느 날 그는 굉장히 취해서 집에 들어왔다. 그는 혀 꼬인 말로 내게 말했다. “나 사실, 호주로 떠난다. 학교는 휴학처리 했어. 워킹홀리데이비자 신청도 끝났고, 농장에서 한 달에 800불 준다는 곳에 얘기해 놨어. 방은 멜버른으로 잡아놨고, 우리 누나랑 같이 갈 거야. 동생들 학비랑 부모님 생활비 드려야 돼서 이 방법 밖에 없어.” 이렇게 완벽한 계획으로 말하니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가깝고도 먼 사람 이였다. 그는 그렇게 나에게서 두 번째로 떠나갔다.
    독후감/창작| 2017.10.23| 1페이지| 1,000원| 조회(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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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항제어차
    저항제어차, 쵸퍼제어전동차, VVVF전동차의 비교-차종별 중요기기, 속도제어 방법, 제동장치형식, 기타저항, 쵸퍼, VVVF는 견인전동기(모터)의 속도와 토크를 제어/변환하는 방법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터 속도 제어를 위해 '쵸퍼'라는 전력소자(주전력변환장치)를 사용하는 차량을 '쵸퍼제어 전동차' 라고 이야기합니다.자동차의 경우 단지 엑셀레이터 페달을 부드럽게 밟거나 강하게 밟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출력을 부드럽게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전기 회로에는 특성상 ON-상태, OFF-상태만이 존재하며 어중간한 중간값은 없습니다. 최대출력이냐 정지이냐만이 있을 뿐입니다.예를 들어, 모터와 가속스위치만 있는 전동차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런 전동차는 기관사가 가속 조작을 하는 즉시 무조건 최대출력으로 튀어나가 무한질주를 하게 되겠지요. 이런 차량을 가지고 천천히 출발한다던가 정속을 유지한다던가 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그래서 전력변환소자를 사용합니다. 모터에 입력되는 전원의 성질 - 전압, 전류, 주파수 등 - 자체를 변환/조절하여 최종적으로 출력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사실 주전력변환장치 자체는 전동차 속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된 부품일 뿐이고, 그것만으로 전동차 차종을 구별하는 것은 곤란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력소자 기술의 세대 변화와 전동차의 세대 변화가 대체로 비슷한 속도 - 약 10~20년 주기 - 로 발전해 온 덕택에 이러한 구별방법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우리나라 전동차에 채용된 전력제어소자의 세대 변화는 저항제어(1970년대) -> 쵸퍼제어(1980년대) -> VVVF제어(1990년대) 순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효율이 높고 안정적인 VVVF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1. 저항제어차저항제어 전동차는 1974년대 및 1980년대 도입된 전동차(단, 1호선은 96년까지)이며,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저항제어 전기 동차는 전동기가 직류 직권 전동기입니다. 우선 선로가 교류선로이면 정류기로 직류를 변환한 다음 저항을 가변시켜 전동기의 속도를 조절 합니다.직류 선로는 정류기 필요 없이 그대로 가변저항기로 보내줄 수 있습니다. (직류, 교류선로 운행가능) 저항제어는 전동기에 흘러들어오는 전류에 대해 저항을 걸어 전동기로 들어가는 전류의 양을 조절하여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중2~중3때 대충 옴의 법칙 등을 배웁니다. 즉 이 원리를 이용하는데, 먼저 일정한 저항 값 을 접속하면 거기에 알맞은 전류가 투입되고 그 전류가 전동기에 전해지면서 차량이 움직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큰 저항을 삽입하다 나중에는 작은 저항 값을 삽입합니다. 저항을 적게 걸면 속도가 올라가고, 저항을 많이 걸면 속도가 느려집니다. 이론적으로 간단하고 안정적이지만 단점이 있습니다. 큰 단점이 에너지 효율입니다. 사용하지도 않을 에너지까지 받아들여 남는 에너지는 전부 저항기에서 소각해 버립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에너지 효율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저항기에서 발생하는 열 자체도 또 다른 문제 거리가 되는데, 덕택에 차내는 여름철에도 마치 난방을 하는 듯 후끈후끈해지게 됩니다. 저항제어차라고 불리는 낡은 차들이 여름철에 더 덥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에어컨 출력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계적인 동작이 많아 유지보수에 손이 많이 가는 것도 단점입니다.따라서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전동차분야에서는 1950년대 ~ 70년대 정도에나 널리 사용되었던 방식입니다.2. 초퍼제어 방식저항제어는 제일 큰 문제가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항이 투입 될 때 마다 산처럼 삐죽 삐죽 나오는 톱니처럼 생겨서 승차감이 썩 좋지 않은데다. 열도 많이 나오고 구형차량인 경우충격이 엄청 심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1년에 일본은 201계라는 초퍼제어식 차량을 투입하였습니다.쵸퍼제어 에서는 '사이리스터' 라고 하는 반도체 전력소자를 사용하는데, 이 반도체를 사용해 스위치를 만들면 초당 수 회 ~ 수백 회 정도로 빠르게 ON/OFF를 반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도까지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이를 초핑 또는 스위칭이라 합니다. 스위칭의 속도가 빠를수록 최초 입력과 가까운 수준의 전압이 출력되며, 반대로 속도가 느릴수록 출력되는 평균 전압은 감소합니다. 전류의 흐름과 끊김을 반복하여 전압에서 임의로 전류 또는 전압을 만들며, 받은 전기를 잘게 쪼개어서 필요한 만큼 모터에 공급하는 제어방식입니다. 가, 감속이 저항제어방식 전동차보다 나아졌지만 잔고장이 심하다고 하죠. 구동음은 저항제어와 비슷하지만 살짝 다릅니다. 전동차의 경우 전기 제동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력선으로 돌려보내는 회생 제동의 사용이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초퍼는 직류의 전압을 직접 높히고 낮추는 기능을 가진 전력기기 입니다. 그래서 초퍼는 직류용 전력기기 이지요. 하지만 교류선로로 달려도 정류기로 쉽게 직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초퍼제어 차량도 교류 선로를 달릴 수가 있습니다.즉, 전류를 어떠한 소자(사이리스터, GTO)를 이용하여 고속스위칭을 하여, 적정한 전류를 얻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훨씬 저항제어보다 연속적으로 전류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차량은 뚜~~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점이 그때당시 가격이 비쌌으며 고장이 좀 잦다. (일본은 그래서 1985년 다시 저항제어로 환원했다.)3. VVVF방식 (1세대 VVVF-트렌지스터)VVVF 제어방식 전동차는 전동기가 3상농형유도전동기 입니다. 교류용 이지요.하지만 직류선로로 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인버터라는 전력변환기기로직류를 교류로 변환할수 있습니다.
    공학/기술| 2017.10.23| 4페이지| 1,000원| 조회(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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