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고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고1쉽게 읽히리라 생각했는데 도서관 대출을 2번이나 하고, 그것도 대출기일을 한참을 넘겨서야 반납했다. 두 달여 이 책을 부여잡고 있다 보니 대통령 탄핵심판의 지리한 여정이 끝났다. 대한민국은 지난 몇 달간 탄핵에 대한 찬반 여론, 일부 집단의 국가기관을 향한 비난과 폭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제 아프지 않았으면.책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현 미국 시카고대학교 법학, 윤리학 교수다. 작가는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시위 등을 예로 들면서 두려움과 시기의 마음이 분노로 표출될 때 사회가 분열되고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작가는 타인, 상대편에 대한 분노 표출은 주로 당연한 나의 것(일자리, 고등교육의 기회 등)을 상대방(흑인, 여성, 성소수자 등)이 가로챌 수 있다는 두려움 또는 이미 가로챘다는 시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두려움과 시기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작가가 제안하는 해결 방안은, 연민(Compassion)으로,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상력의 행위이다.”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연민은 종종 편파적이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하여는 쉽게 배제된다고 역설한다. 특정한 개인이 아닌, 타인 일반에 대한 공적 연민을 키워야 한다며, 문학, 예술, 도덕 등을 통해 도덕적 상상력을 길러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작가가 인용한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의 발언과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연설 “I have a dream”이 인상깊어 짚어본다.오바마는 평소 공식적인 연설에서 민주주의 발전의 방해가 되는 국민 개개인의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 고단한 과정을 통해서야만 비로소 민주주의가 유지 강화될 수 있다고 국민을 설득했다.“우리가 두려움에 굴복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민주주의는 복잡하고 어렵다. 타협이 필요하다.”“민주주의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I have a dream”연설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에서 25만명의 청중 앞에서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연설은 시민권법 제정(1964년), 투표권법 제정(1965년)에 영향을 준 기능적인 부분은 물론, 전 세계 인권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준 역사적으로 영향력 있는 연설로 손꼽힌다. 그럴 수 있던 까닭은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비폭력적으로 지적하면서도, “I have a dream”의 표현으로 청중의 공감과 상상력을 자극하였기 때문이다.“나에게는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였던 자의 후손과 노예 주인이었던 자의 후손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그가 단순히 인종차별행위자를 지적하고 적대하기 앞서, 희망과 상상력을 동원해 그들을 한 식탁에 불러 앉힐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곧 사회통합의 에너지, “연민”인 것이다. 작가는 연민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우리를 북돋운다.“희망과 믿음은 가까운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완벽한 세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의 가능성을 믿으라.”이 책은 읽는 것도,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싶지 않은, 그야말로 윤리교과서다. 관념 가치 지향적인 내용이라 실생활에 밀접하게 와 닿지 않아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공감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작은 희망과 상상력이 사는 데 큰 여유와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1이 책을 읽느라 2025년도 1월이 지나고, 설 연휴가 지났다. 한 번은 문자만 읽어내리고, 그 다음 두 번은 나름 괜찮다 싶은 문장을 베껴놓으면서 읽었다. 그래도 나의 과학적 지식이 미치지 못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러려니 덮어놓고 완독을 자축한다.책의 저자 블라이언 그린은 미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서의 이 책의 저술 목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엔트로피와 무질서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우주에서 질서가 창조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그는 이 책에서 우주의 시작과 인간의 출현, 사고와 마음이 시작되는 시점을 추적한 후에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와 앞으로 예측되는 모습을 우선은 물리학적 법칙으로,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경험과 통찰력으로 기술한다. 그가 다루는 범주는 과학에만 그치지 않고, 문학, 종교, 미술, 음악, 철학 등 다방면이기에 경계 없이 폭넓은 그의 지식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그가 애써 알려주는 부분을 최대한 많이 기억해서 담고 싶은 마음에 목차별로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영원함의 매력시간의 언어기원과엔트로피정보와 생명입자와 의식언어와 이야기두뇌와 믿음본눙과 창조력지속과 무상함시간과 황홀존재의 고귀함⇒⇒⇒⇒⇒⇒⇒⇒⇒⇒시작과 끝, 그리고 너머과거와 미래, 그리고 변화창조와 구조체로구조체에서 생명으로생명에서 마음으로마음에서 상상으로상상에서 신성함으로신성함에서 숭고함으로숭고함에서최후의 생각으로양자개연성그리고영원마음물질그리고의미1. 영원함의 매력 : 시작과 끝 그리고 너머이 책의 목적은 지금 여기의 특별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학이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의 시작에서 끝에 이르는 긴 여행을 떠날 참이다. 태양이라는 가호 아래 잠시동안 존재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의무다.2. 시간의 언어 : 과거와 미래, 그리고 변화현대우주론에 의하면 관측 가능한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약140억년 전에 초고온, 초고밀도의 작은 덩어리 안에 응축되어 있다가 커다란 폭발을 겪으면서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 후 뜨거웠던 공간이 서서히 식으면서 입자의 속도는 느려졌고, 이들이 하나로 뭉쳐 별과 행성 등 다양한 천체가 형성되었으며 태양계의 지구라는 행성은 생명체가 등장하여 근 40억년만에 인간으로 진화했다.3. 기원과 엔트로피 : 창조와 구조체로별이 형성과정에서 단연코 중요한 역할을 한 것는 중력이다. 핵력은 밖으로 향하는 외압을 행성하여 자체 중력으로 붕괴되는 것을 막아준다. 중력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구조체의 근원이며, 핵력은 중력의 도움을 받아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실행했다.※ 엔트로피 2단계 과정 : 엔트로피의 총량은 항상 증가하지만, 엔트로피가 주변 환경으로 방출됨으로써 국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4. 정보와 생명 : 구조체에서 생명으로별의 내부에서 복잡한 원소가 합성되고 원자들은 자기 복제가 가능한 분자로 진화하여 주변 환경에서 추출한 에너지로 질서정연한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여러 세대를 걸쳐 생존전략이 지속 반복된 끝에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다.5. 입자와 의식 : 생명에서 마음으로나를 구성하는 입자의 행동이 곧, 나의 행동이다. 그 저변에서 물리법칙이 나의 입자를 제어한다. 나의 행동은 특별한 입자배열(유전자, 단백질, 세포, 뉴런, 연접부 네트워크 등의 고유한 배열 상태)에 따라 나만의 독특한 방식, 마음에 지배를 받아 반응한다.6. 언어와 이야기 : 마음에서 상상으로인간은 주변의 모든 대상에 마음을 부여하는 습성이 있다. 더 나아가, 사회성이 높은 인간은 집단 생활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도구로 언어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생존과 우위를 유지한다. 이는 곧, 종교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7. 두뇌와 믿음 : 상상에서 신성(神聖)으로작가는 신에 관해서는 정확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뢰하지 않지만 소원을 빌고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선친의 장례식 때 거행한 종교단체의 추모 행위로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경험 등을 통해 과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 행위가 인간에게 주는 위로와 기쁨을 인정한다. 과학은 객관적 현실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마음이라는 주관적 과정을 통해 현실을 접하기에 객관적 현실이란 주관적 마음의 산물이다.8. 본능과 창조력 : 신성함에서 숭고함으로단명한 삶을 인지한 우리 조상들은 상징적이면서도 오래 지속되는 자신만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을 표현하는 가장 획기적인 방법이 예술이다.9. 지속과 무상함 : 숭고함에서 최후의 생각으로모든 만물은 입자로 이루어져있고, 이들이 캐스팅한 ‘진화’와 ‘엔트로피’라는 두 캐릭터가 서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진화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이 생겨난다면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이고 엔트로피는 미래에도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요소로 남을 것이다. 제2법칙은 기존의 물리법칙(보존)에 통계적 논리를 적용하여 얻은 일반적인 결과다.우주의 역사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비교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1층이 10이고 n층 올라갈 때마다 10의 n제곱만큼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했을 때, 빅뱅이 138억년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10층을 지나 계단 몇 개를 더 올라간 셈이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태양이 생명을 다할 것(50억년 후)이고, 우주가 흩어져 황무지가 되는 상태, 생명체가 모두 사라지는 그런 단계에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사고와 마음이 탄생할 수 있을는지.10. 시간과 황혼 : 양자, 개연성, 그리고 영원우리 우주에서 우주를 생각해 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는다. 우리의 우주를 넘어 무한한 공간 저편 어딘가에 영원한 사고가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을 상상할 수 있고 영원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 만질 수는 없다.11. 존재의 고귀함 : 마음, 물질, 그리고 의미생명과 마음은 우주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결과물일 뿐이지만,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비슷한 확률을 놓고 수많은 입자 배열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특별한 배열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저에서 기적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과학적으로 감탄함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할 일을 결정함으로써 개별의 영혼을 자극해 나아갈 것이다.각 단원별로 주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의 문구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과학적 이론(볼츠만두뇌, 힉스입자, 우주배경복사 등)이 더욱 많았는데 요약 서술할 수 있는 지적 수준이 미치지 못해 아쉽다.저자의 글이 순수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독자를 설득하기보다는, ‘이 값을 이 공식에 대입하면 이 값이 나온다. ’고 보여주는 식의 설명이 좋았다. 수학자, 물리학자의 비판적이면서도 유연한 자세를 되짚는 시간이었다. 철저하게 검증된 절차와 공식의 결과값만을 받아들이는 과학자로서의 모습은 부족한 논거의 이야기를 대뜸 사실로 받아들이는 나의 얼버무리기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돌아보게 했다. 한편, 고전물리학이 어느 하나의 조건이 고정 불변상태에서의 다른 요인의 변화값을 산술하는 것이라면, 현대물리학은 어느 여건도 실측 불가인 상태에서 확률값을 구한다. 엔트로피, 양자역학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의 가능성이 높은 값에 대한 잠정적인 믿음이기에 언제나 열린 자세로 새로운 가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과학자의 유연한 자세가 일반인으로서도 수용할 부분이 많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원제:foster)”를 읽고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고1 아일랜드 출신 여성 작가 클레어 키건의 이 소설은 독서 동아리를 통해 알았다. 작가는 5개 정도의 작품을 내고 문단에서 호평을 받고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이 처음 읽은 그녀의 소설인데, 책의 분량을 보고 놀랐다. 잠자기 전 엎드린 자세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자세 한번 바꾸지 않은 채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자칫 읽다 만듯한 느낌을 주기 충분한 단편 소설이다. 그녀가 쓴 다른 소설도 이처럼 단편 소설이라는데, 이렇게 적게 글을 쓰고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법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린 4남매의 자녀를 둔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부부가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또 태어날 아이가 있다. 부부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4남매 중 하나인, 7살 내외 나이의 소녀를 먼친척뻘 되는 킨셀라 부부 집에 잠시 맡긴다. 소녀의 아버지 댄은 소녀와 짐을 차에 싣고 부부의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부부네 집에 당도해 아이를 반겨 맞이하는 부부를 향해‘아이들은 식량이나 축내는 성가신 존재’라는 대강의 인사치레를 하고, 딸에게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말썽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빈정거리는 작별의 인사를 하고 훅 떠난다. 싣고 온 아이의 짐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킨셀라 부인은 소녀를 소녀가 전에 접하지 못했던 온도의 따뜻한 물에 씻기고, 소녀의 여벌 옷이 없자 하는 수 없이 옷장에서 맞을 만한 옷을 골라 소녀의 몸에 맞춰 입힌다. 소녀는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에서 설잠을 자고 축축히 젖은 침대 시트에서 일어난다. 젖은 침대시트를 본 부인은 실수를 한 소녀를 나무라기는커녕, 습한 곳에서 자게 한 게 제 잘못이라며 거듭 사과한다. 그리고 부인은 소녀를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젖은 시트를 빤다. 소녀가 부인의 질문에 대하여 긍정의 뜻으로“에...”하고 얼버무리듯 대답하자, “네”명확한 발음으로 의사를 표현하도록 가르친다. 또한, 부엌 일을 하는 부인 곁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소녀에게 부인은 밭에 있는 파를 뽑아오라는 등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집안일에 동참하게 한다. 부인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소녀를 데리고 우물을 길러 간다. 부인을 따라 우물가로 가는 소녀가 그리는 여정의 풍경 묘사가 한적하고 고요하다. 한편, 킨셀라 아저씨는 매일 소녀에게 우편함까지 뛰어가 그날 온 우편이 있는지 찾아오게 하고, 달리기 기록을 재며 기록이 좋은 날은 칭찬해 준다. 그리고 어느 날 소녀는 아저씨가 다정하게 내민 손을 잡고 집 근처 언덕을 넘어 해변을 거닌다. 아빠 손도 잡아본 적 없는 소녀는 아저씨의 손을 잡은 촉감이 낯설면서도 따뜻하다. 함께 걷던 아저씨는 어느 그리움에 젖어 소녀를 두 팔 벌려 크게 안아준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다정하면서도 정돈된 집안 분위기가 어색해 떠들썩한 자신의 옛집이 그리울 때도 있다. 소녀가 차츰 부부와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어느 날, 부부는 큰 마음 먹고 소녀를 데리고 읍내에 나간다. 읍내에서 만난 이웃들은 부부를 따라온 소녀가 누구인지 궁금해 서로 수군대지만 부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에게 옷과 책을 사주고, 용돈을 쥐어주며 먹고 싶은 사탕과 간식거리를 직접 고르게 한다. 부부는 읍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웃 지인의 부고를 접하고, 하는 수 없이 소녀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찾아간다. 장례식장에서 지루해 하는 소녀의 모습을 본 이웃 부인이, 아이를 근처 자신의 집에 데려가 쉬게 하겠으니 아이를 데리고 귀가하라고 부부에게 제안한다. 부부는 수락하고 그 부인이 소녀를 데리고 자기네 집에 간다. 부인은 아이와 둘만 있게 된 순간부터 소녀를 향해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부부네 집에서 주로 무엇을 먹으며, 냉장고 안에 물건은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 그리고 소녀가 알 수 없는 질문, 집안에 아이의 물건이 아직도 그대로 있냐는 둥. 그리고 한다는 말이, 부부에게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키우고 있는 개를 따라갔다가 거름 구덩이에 빠져 죽었다고. 그래서 아저씨가 그 개를 총으로 쏴 죽이려고 하다 그만두었으며, 하룻밤 사이 부부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버렸다는. 소녀는 잠자코 떠올린다. 첫날 부인이 자기에게 입혀준 아이의 옷, 자신의 방 벽지에 그려진 어느 소년 그림, 부부로부터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어보지 못한 그 집 개. 부부는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부인이 소녀와 나누었을 법한 이야기를 짐작하고 소녀에게 묻는다. 소녀는 부인이 했던 질문과 이야기를 들은 대로 솔직하게 말해주고 조용히 이를 듣고 있던 킨셀라 아저씨가 말한다. “입 다물고 있어야 할 순간을 지키지 못해 상황을 망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어린 소녀지만 킨셀라 아저씨의 말을 곱씹으며 침묵과 절제된 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속사정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추억을 조심스레 마음에 담는다. 시간이 흘러, 소녀가 집에 돌아가기로 약속된 날을 며칠 앞두고 소녀는 부부가 바삐 밭일을 하는 동안, 부인의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을 줄여줄 요량으로 우물을 길러 혼자 우물가에 간다. 소녀는 실수로 우물에 빠졌다가 젖은 몸으로 집에 오면서 감기에 걸린다. 며칠 뒤,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차를 타고 소녀의 집으로 돌아온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의 집에 방문한 킨셀라 부부에게 간신히 어수선한 집기를 치우며 앉을 곳을 청한다. 감기 가 낫지 않아 재채기를 하는 소녀를 보고 소녀의 아버지는 부부를 향해 대뜸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시는군요.”하고 핀잔을 주어 부인을 난처하게 하고, 갓난 아이를 안고 있던 소녀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감기를 옮기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한술을 더 뜬다. 킨셀라 부부는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나선다. 집 밖 대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부부를 보고 소녀는 달려나간다. 소녀는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아빠”하고 안는다. 그리고 뒤따라 나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빠”하고 부른다. 그렇게 소설은 끝난다. 작품의 주제는 단연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녀를 낳기만 하고 방임하는 부모의 가혹성이다. 소녀의 아버지 댄은, 노름으로 가축을 팔아먹고, 농사일도 빈둥거려 생계 유지도 못하면서 자식만 줄줄이 낳는 책임감 없는 건달이다. 두어 시간 독서토론 내내 엄마들끼리 소녀 부모의 무정함과 무능력에 대하여 열을 올리며 비난했다. 그리고 소녀가 잠시나마 킨셀라 부부의, 제 부모와는 다른 삶의 모습과 소녀를 대하는 태도를 경험하고 제 집으로 돌아온 것이 소녀에게는 득이 될지 실이 될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할 줄 아는 절제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이다. 킨셀라 아저씨의 “입 다물어야 할 순간을 참지 못해 많은 걸 잃어버린다”하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소설 속에서 굳이 입 다물어야 할 순간을 해치는 주인공들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먼저, 소녀의 아버지가 아이를 남의 집에 맡기면서 아이가 듣는 앞에서, ‘아이는 식량이나 축낸다’, 오랜만에 돌아온 딸이 재채기를 하자, 제 자식을 살펴준 은인, 킨셀라 부부에게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비아냥대는 대목이다. 이어서, 킨셀라 부부가 장례식장에 있는 동안 소녀를 제 집으로 데리고 가서 부부의 말 못할 비밀을 소녀에게 말해주고, 소녀에게 킨셀라 부부의 집안 상황을 캐묻는 이웃 부인의 대목 또한 마찬가지다. 어른이 될수록 가정과 사회생활 속에서 끼어야 할 순간,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나의 말이 ‘관심’과 ‘참견’사이 어디쯤인지를 살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다면 과감히 침묵을 선택하는 진중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자신만의 정제된 문장에 담아 툭 던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과연 그렇다. 소녀가 킨셀라 아저씨에게 달려가 작별의 포옹을 하면서 뒤에 멀거니 서 있는 아빠를 향해 “아빠”하고 부르는 장면은 핏줄만 아빠인 제 아버지에 대한 환멸, 이와 대조적으로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알려 준 킨셀라 아저씨에 대한 애정과 감사가 절묘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어른들이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소양을 갖추고,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함으로써 따뜻한 가족이자 이웃이 되어야겠다.
은소홀의 “5번 레인”을 읽고[부제: 푸른 물결을 넘어 “나”에게 간다.]은소흘의 “5번레인”을 읽고15학년 둘째 아들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놀러 온 아이가 선물로 들고 온 책이다. 9월의 때늦은 더위에 지쳐가고 있는 어느 날, 파란 표지의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그저 시원했다. 그리고 수영장 안에서의 이야기가 왠지 더 싱그러울 것만 같다.여주인공 소녀 강나루는 한강초등학교 수영부 6학년 여자 선수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수영을 시작한 그녀는 나가는 수영대회마다 우승을 거두는 엘리트 수영 꿈나무다. 승승장구하는 그녀를 주춤하게 하는 경쟁자가 갑자기 등장한다. 동갑내기 푸른초등학교 6학년 김초희다. 처음으로 김초희에게 우승 메달을 빼앗긴 강나루는 멘붕이다. 실력으로 뒤처진 것을 인정하기 힘든 강나루는 김초희의 반짝거리는 수영복을 유심히 바라본다.한편, 나루는 전학생 태양과 한 짝이 되는데, 태양은 나루가 수영부 선수라는 사실을 알고 관심을 기울인다. 태양은 수영을 좋아하고 수영선수로의 꿈을 줄곧 품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수영을 해보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수영부가 있는 한강초등학교에 전학온 것이다. 나루는 태양의 수영부에 대한 관심을 일시적인 호기심이라 여기지만, 태양은 정식으로 수영부 훈련장을 찾아가 수영부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한다. 감독 선생님은 곧 개최될 교내 수영대회에서 입상여부와 기록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고, 태양은 접영으로 우수한 기록으로 입상하여 수영부 입단에 성공한다. 태양은 수영부에서의 고된 훈련을 진지한 태도로 묵묵히 견뎌낸다. 그리고 그는 수영선수로서의 나루를 대단하게 여기며 다정하게 응원한다. 나루는 그런 태양의 모습에 조금씩 설렌다.나루에게는 중학생 언니가 하나 있다. 나루는 언니 버들을 따라 수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언니는 돌연 수영선수에서 다이빙 선수로 종목을 바꾼다. 나루는 언니의 갑작스러운 종목 변경에 배신감과 동시에 자신의 동기부여 원천인 언니가 더 이상 수영을 하지 않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끼고 언니를 원망한다. 우연히 엄마와 함께 언니가 출전하는 다이빙 대회 관람석에 앉아 언니의 경기를 지켜본다. 언니가 다이빙 보드 위에 오롯이 서있다가 물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 입수 자세에서 실수를 해서 낮은 점수를 받고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 이제는 자신과 다른 길을 혼자 헤쳐가는 모습을 보며 나루 자신도 어떤 마음으로 수영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그나마 나루에게 힘에 되는 건, 유치원 때부터 쭉 수영을 해왔던 같은 수영부 친구들과 전학생 태양이다. 태양은 전학 온 이후부터 같은 반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나루는 언제부터인가 태양을 의식하게 되었고, 수영장 내에서 둘 만의 시그널을 주고받으며 커플이 된다. 그렇게 수영부 학생들은 각자의 주종목으로 곧 있을 수영 대회를 준비한다. 또한 태양이 수영부에 입단하고 접영에 두각을 나타내자, 한강초 수영부는 그동안 참가하지 못했던 남자 수영 계영에 출전 참가 신청을 하고, 소속 선수들은 담당 종목별로 집합 훈련에 여념이 없다.한강초 수영부는 공교롭게 방학 때 희망초 수영부와 함께 같은 수영장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강나루와 김초희는 다시 만난다. 우연히 탈의실에서 혼자 남게된 나루는 초희 가방에 담긴, 초희가 평소 부적처럼 여긴다는 행운의 수영복을 보고 만지작거리다가 탈의실에 들어오는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초희 수영복을 자기 락커룸에 넣고 문을 잠근다.뜻하지 않게 남의 물건을 훔치게 된 나루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또 다른 시합을 앞둔 어느 날, 그녀는 용기를 내어 초희 수영복을 가지고 초희를 찾아간다. 속도 모르는 초희는 나루가 반가워 아이스크림를 사준다. 나루는 초희 수영복이 들어있는 종이가방을 내밀고, 초희는 나루가 몰래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크게 당황하여 자리를 떠난다.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지만 초희의 물건을 돌려줬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나루와 초희는 경기에서 다시 만난다. 예상과 다르게 초희는 나루가 돌려준 수영복을 입지 않고 출전한다. 나루와 초희가 모두 예선에서 통과하고 결선을 준비하는 중에 나루가 기권하고 싶다고 하고, 그 소식을 듣은 초희는 나루를 찾아와 나루를 당당하게 이기고 싶다며 나루에게 경기 출전을 강력히 권한다. 나루는 초희에게 진정한 용서를 받겠다는 마음과 함께,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 기량을 펼치겠다는 마음을 먹고 결승에 나선다. 경기 결과 초희가 우승, 나루가 준우승을 차지하지만, 나루는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시상대에 오른다. 한편, 태양이 출전한 남자 계영은 한강초가 우승을 거둔다.
최태성의 “일생일문”을 읽고최태성의 “일생일문”을 읽고1『KBS 역사 저널 그날』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재미있게 썰을 풀어주는 선생이 있다. 최태성 쌤이다. “역사의 쓸모”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그의 책이다. 책 제목은 거창한데, 읽게 된 동기는 저자가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믿고 보는 편안함이 있어 덥석 들어 읽었다.거론된 인물 중 인상 깊은 인물에 대한 정보와 개인 소감을 정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그 가운데 을사5적과 거상 김만덕의 생애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을사5적-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의 체결을 찬성한 5인이다.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매국노의 대명사로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지탄을 한 몸에 받는 인물들이다.저자는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칠 당시 학생들에게 이들의 이름에 대하여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이처럼 죽어서조차 후손들에게 능멸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유념하라고 가르쳤단다.이 대목을 읽으면서 을사5적의 후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궁금해서 네이버 백과사전을 마구 뒤적였다. 100여 년 전에 이미 4,50대였던 이들이기에 지금은 그들의 현손자들이나 생존할 터였다. 가족관계를 찾아봐도 손자, 증손자 밑으로까지는 알기 어려웠고, 일본으로 출국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거나, 6.25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다는 등등의 이유로 추적에 한계가 있었다.을사5적이 아니라도 한일합방 전후에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적극 협력한 이들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인물이 민영휘다. 그의 후손은 주로 교육계 종사자로 신분 세탁을 해서 휘문고, 풍문여고 등을 설립하였고, 이승만 정부 때 그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까지 받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누구나 민영휘라는 인물 검색을 충분히 해보길 권한다. 그의 만행이 아주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다. 여지껏 내가 봐온 인물 백과사전 중에 이처럼 치졸하게 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돈독에 올라 물불을 안가렸다는 식의 평가다. 그렇게 1920년대까지 그가 축재한 재산이 2023년도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6,000억에 이른다고.검색포털에서 친일 인물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들의 행적이 졸렬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사람은 무릇 자기보다 출중한 인물에 대한 존경과 찬탄보다는 자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을 보면서 느끼는 경멸감에 더욱 미묘한 흥미를 느낀다. 특정인에 대한 뒷담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존경까지 바라는 것을 욕심이라고 여긴다. 다만, 욕이라도 안 먹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산다. 국사책에 저명한, 귀감이 될만한 인물들 소개는 물론이고, 부디 이렇게는 살지 말자! 인물 리스트를 정리해서 각 단원별 쉬어가는 코너에 넣어보면 어떨까. 학생들 잣대로 뒷담화를 까며 맘껏 비난하게 한 다음에, 한발 물러나서 그렇게 욕했던 대상이 막상 내가 될 수 있다는 따끔한 경종을 울려준다면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참된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 거상 김만덕학창시절에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다. 이 사람을 알게 된 계기는 5만원 권 지폐가 첫 출범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조폐공사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분위기를 타고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역사적으로 위대한 여성 인물을 고르고 있었고, 거론된 인물 중에 이 여성도 있었다. 물론 지폐를 장식하게 된 주인공은 신사임당이었지만, 후보군에 오른 김만덕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그녀는 조선 후기 제주도 출신 여성 객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불우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사업 수완과 재치로 제주에서 여러 여각을 운영하며 물자를 조달 융통하며 많은 재산을 축적한, 지금으로 치면 자수성가형 여성 상공인이다. 어느 해 제주에 기근이 들어 곡식이 딸리고, 설상가상 조정에서 보낸 곡식을 실은 배는 악천후로 제주로 가던 중 침몰하고 만다. 이에 김만덕은 전 재산을 털어 육지로부터 쌀을 사들여 어마어마한 양의 구휼미를 기부한다. 제주도 전체 주민이 7일을 먹을 분량의 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