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갈등은 오-링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가에 집중하 고 밀폐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에 관한 검사로 관심이 전환됨에 따라 갈등은 해결되 었다. 양측의 엔지니어 공동체는 연결부위가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만, 그 정도면 충분히 잘 작동하며 이는 수용할 만한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두 그룹은 이제 첫 번째 오-링이 밀폐를 유지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연결부위에 여분을 두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두 그룹은 여분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의 지점을 갖고 있었다. NASA는 씨어콜의 예 상치보다 틈새의 크기가 더 크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씨어콜과 마샬에서 연결부위를 ‘수용 할 만한 위험’으로 지정한 것은 NASA의 공식 승인을 얻었고 셔틀은 최초의 비행 준비를 했 다. 최초로 발사된 스페이스 셔틀의 연결부위에서는 아무런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마샬과 씨어콜의 엔지니어들이 예측했던 그대로 작동했다
<글의 내용>‘과학기술의 일상화’의 추세를 따라 일반인과 과학기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관심을 집중시키는 저술이 늘어나고 있으며, 1980년대 말부터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대중의 과학이해(PUS)'라는 학문분야가 제도화 되었다.이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전제로 하여, 글을 4개의 절로 나누어 PUS 분야의 성립 과정과 그것의 주요 연구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정책적으로 어떠한 의의를 갖고 있는지를 서술한다. 첫 번째 절은 PUS 분야의 성립에 영향을 준 두 가지 배경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다. 20c 들어 사회 내 과학기술의 위치가 점점 커짐에 따라 과학기술학 분야들은 급성장 했다. 그러나 이 분야 내에서 대중의 역할은 아예 미포함 되거나 수동적, 주변적인 존재로만 고려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PUS 프로그램은 주류 과학기술학의 외부에서 출현하였다. 첫 번째 배경으로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들이 1960년대 이후 대중적 관심영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경제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 실 현시키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권리를 실현시키려고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면 ‘경제 살리기’의 명분 아래 서 노동운동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노동자들의 소규모 집단행동부터 대규모 파업행동까지 모 두) 노동운동은 지탄받아 마땅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어느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파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공공질서 유지’의 명목으로 이들의 파업이 해산당한 일도 적지 않 았다. 부조리에 맞서 촛불이 타올랐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를 방 향성으로 잡았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부당노동행위 근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 직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등등이 방향성에 맞춰 정책으로 파생되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땐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문 대통령이 밝히기도 했다. 역대 정권에서 ‘이상적’ 또는 ‘원칙적’ 목표로 제시되었을지언정 현실화되진 못했던 정책들이 실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금껏 가장 앞자리에서 싸워온 이른바 ‘노동 계’, 특히 민주노총은 이 정책의 수혜자가 되지 못하고 고립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촛불을 함께 들었지만 대선이 끝난 뒤, 민주노총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은 강도를 더했다. “지 난 정권에서는 아무 말 못하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냐”, “민주노총은 귀족노조”, “민주 노총도 적폐”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은 올해 10월 24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 인사들의 대통령 간담회 자리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 때 노동계 중 민주노총이 불참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보 도한 언론 중 자칭 보수 언론계와 야당 정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노총을 공격했다.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은 “산하 노련 함께 부른다고 청와대 못 간다는 민노총! 노동 성골이 어떻게 진골들과 한 자리에 있냐고 땡깡이네요.
오랜 세월 동안 성차별은 사적이고 사소한 문제였다. 가부장제는 옛날부터 시작되었지만, 사 회적인 문제로 부각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남성이 선점하는 현상에 대해 문제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현대 사회에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공/사 영역분리는 여성차별의 핵심적 논리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사 람의 활동이 공(일터)과 사(집)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봉건제사회는 일터‧집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생활, 프라이버시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사분리 ‘이데올로 기’에서 두 영역은 상호배타적‧위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17c 로크의 ‘모든 권위는 개인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은 근대 국민국가 성립에 있어 핵심적 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인권개념은 성차별을 옹호하는 가부장제와 양립 불가능 한 것이었다. 공사 영역분리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개인, 인간의 위치로 승격시키는 것과 가부 장제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전략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는 믿음에서 인권의 보편성이 도출된다고 가정할 때, 모든 노동자에게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근로자는 그들의 시간을 판매함으로써 생활 유지에 필요한 임금을 벌게 되고, 사용자는 노동자의 밥줄을 좌우할 수 있는 “채용”의 역할을 하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고용주는 노동자의 생활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며, 그가 고용한 근로자는 사용자에 의해 권리를 침해받을 위험성을 항상 안고 가게 된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통제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보장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인권침해의 원천이 국가인가 혹은 사용자인가에 관계없이 인권은 수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의 권리, 즉 노동권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고용관계에 관련된 영역으로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