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과 버드맨 속 자살모티프<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자살의 동기 ? 사회로부터의 소외2. 자살의 동기 ? 이상과 현실의 괴리3. 자살의 의미 ? 추락과 비상Ⅲ. 결론Ⅰ. 서론하나의 문학 및 예술 작품의 중심에는 다양한 모티프들이 존재한다. 작가들은 여러 모티프를 이용해 서사를 진행하고 그 속에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그중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모티프 중 하나는 ‘죽음’ 모티프이다. 작품이 끝나도 등장인물들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수용자의 무한한 상상은 죽음이 가진 유한성에 의해 끝나버린다. 이를 통해 작가는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자신이 드러내고자 했던 주제의식을 다른 모티프를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살아있는 한 경험할 수 없는 모티프라는 점은 수용자에게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작품을 탐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세상에는 자살, 타살 등의 다양한 죽음이 존재한다. 따라서 죽음 모티프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서사를 진행하기도, 수용자에게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추리소설에서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나타나면서 서사가 시작된다. 히어로영화에서는 악당의 무자비한 살인을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서사가 진행된다. 때로는 사후세계를 다루며 생과 사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이 중 자살 모티프는 고대 이래로 비극 문학의 장르에서 중요한 소재로 부각되면서 전통적인 모티프로 등장해왔다. 특히 주인공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요소는 비극미를 극대화시키는 서사의 상징적인 장치의 하나로 문학 속 주제구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1930년대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외당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주인공 윌리가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의 비극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필자는 작품 속 주인공 윌리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점,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는 점, 자아분열로 인해 계속해서 ‘벤’의 환청을 본다는 점, 극이 중가장 큰 공통점은 두 작품 속 주인공에게서 나타나는 자살모티프이다. 그러나 유사한 서사구조를 가진 두 작품이지만 자살모티프가 주는 의미는 다르다. 이 글에서는 유사한 두 작품 속 주인공 윌리와 리건을 통해 나타나는 자살의 동기를 사회와 개인적 원인으로 나눠 비교·분석할 것이다. 이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 사회적이라는 이분법적 원인으로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살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영향을 받고, 이러한 영향이 복합적으로 발현되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자살이 작품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알아볼 것이다. 더 나아가 문학과 예술 작품의 대표적 장르로 표현되는 희곡과 영화 속 자살모티프 분석을 통해 문학과 예술 속에서 자살모티프가 주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자살의 동기 ? 사회로부터의 소외세일즈맨의 죽음 속 윌리와 버드맨 속 리건은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한 상태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윌리는 대공황 이전에 나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의 거대한 불황으로 인해 사회는 더는 세일즈맨을 찾지 않게 되었다. 특히나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인간은 실적으로 판단되었고, 불황 속에서 실적이 낮아진 윌리는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 리건은 과거 슈퍼히어로영화 ‘버드맨’을 통해 사회적 명성을 쌓은 대중적인 배우였다. 그러나 작품성보다 더 자극적이고 시각적인 요소만을 쫓는 대중들과는 달리, 작품성 있는 영화를 찍고자 했던 그는 버드맨 속편을 거절한다. 그 결과는 대중들의 외면이었고 그는 사회로부터 소외당한다.두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나름의 노력을 통해 이 소외를 극복하고자 한다. 세일즈맨의 죽음 속 윌리는 사장 하워드를 찾아가 인정을 받고자 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는 주급으로 평가됨을 인정하고 하염없이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세일즈맨이 되고자 했던 이유, 잘 나가던 세일즈맨이었던 과거를 회상하기도, 답답한 현실에 화를 내보비평가 타비사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 또한 타비사에게 자신이 연극배우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 자신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호소하듯이 말한다. 그러나 사회가 그를 인정해주지 않듯이 타비사는 ‘당신은 배우가 아니라 연예인일 뿐이고, 나는 내일 공연에 무조건 혹평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결과적으로 두 주인공의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는 실패로 귀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커다란 구조 속에서 윌리가 보여준 개인적인 시도와 노력은 매우 작은 것이었다.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윌리와 같은 소시민들의 소외는 필연적이다. 리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품성으로 평가되어야 할 연극은 나오는 배우의 유명세에 따라, 얼마나 자극적인지에 따라 평가된다. SNS 등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거대해진 사회 속에서 ‘블로그도, 트위터도 싫어하고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 리건은 더는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두 주인공의 실패는 자살시도로 이어진다. 윌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채 자신이 십 수 년간 몰던 차를 이끌고 현실 밖의 세계로 도피하듯 자살을 시도한다. 리건은 정체성을 잃은 채 자신이 끊임없이 성공을 바라왔던 연극무대에서 연기의 일부분인 듯 자살을 시도한다. 결과적으로 윌리의 자살은 성공하지만, 리건의 1차 자살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리건은 자살을 시도했으나 코를 잃은 대신 목숨을 건졌다. 그는 병실에서 본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실감한다. 샘은 ‘트위터에 계정을 만들었더니 벌써 팔로워가 8만 명’이라고 하며, 신문에서는 타비사가 ‘무지로부터 오는 미덕이 만들어낸 초현실주의’라며 극찬한다. 결국 그는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동안 본인이 했던 연극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주연배우의 관객 앞 자살시도, 관객들의 추모’라는 자극적인 소재 하나로 인해 사회에 속해지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결국 그는 창문을 열고 자살한다.2. 자살의 동기 ?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그로 인한 자아분열두 작품 속에서의 또꿈꿨지만, 현실은 빌딩 숲에서 매월 내야 할 할부금들에 구속된 채 살아간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를 견디지 못한 그의 자아는 분열되고 이는 ‘벤’으로 대변되는 환영과 환청으로 나타난다.버드맨 속 리건의 이상은 본인의 성공적인 재기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는 한물간 ‘퇴물’배우로 불릴 뿐이다. 성공적인 재기를 위해 완벽해야할 프리뷰에서는 끊임없이 사건이 발생해 중단되고, 혹평을 듣는다. 마찬가지로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견디지 못한 그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아가 분열된 상태가 된다. 자신이 과거에 연기했던 버드맨처럼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한 환영과 함께 버드맨 복장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끊임없이 속삭인다.작품 속 두 주인공들은 이러한 자아분열과 정체성 상실에 있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윌리는 끊임없이 벤과 대화하고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그가 말하는 도전적이고 목가적인 삶을 동경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살시도를 하기 직전까지도 벤과 이야기하며 벤이 ‘최선의 방법! 어둡지만 다이아몬드로 가득 차 있지.’라고 하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자살을 택한다. 그러나 리건은 버드맨의 말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그의 의견이 자기 의견이 아님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비평가 타비사에게 무시당한 다음 날 리건에게 버드맨이 ‘할리우드로 돌아가 버드맨 속편을 찍어보자’라고 말하자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지고 리건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치 리건이 버드맨의 의견에 동조한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하지만 환상이 끝나자 리건은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가고 그는 관객 앞에서 머리에 총을 쏘며 자살을 시도한다.자아가 분열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윌리는 그의 자살을 통해 보험금을 타내는 것이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상만을 좇았던 그는 죽은 후에 무덤 앞에 많은 사람,이 올 것이고, 보험금으로 아들들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이상이었던 ‘벤’의 환상을 뿌리치지 못한 채 자살을 택한다. 반대로 로건고 결국에는 사랑을 온전히 충족했다는 점에 있다. 사랑을 충족한 후에 그들이 느낀 감정과 그들이 받은 사회적인 영향은 달랐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생이 자살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세일즈맨의 죽음 속 윌리는 겉으로는 온전한 가정을 가진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린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자식들이 그에게 주는 사랑, 특히 비프가 그에게 보여주는 사랑이다. 또한 그의 직업인 세일즈맨으로서 고객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이다. 즉, 타인이 그에게 주는 인정(人情)을 갈구했다. 이는 그가 보스턴에 있을 때 저지른 외도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보스턴에 있을 때 세일즈맨으로 활동하면서 출장이 있을 때 가족과 잠시 떨어져 지낸다. 그 사이에 고객에게 받은 외면들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윌리에게 치명적이었고, 이는 외도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그를 이끈다. 결국, 그가 저지른 외도는 되려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아들이 주는 사랑을 차단하게 된다. 비프는 어릴 적 윌리의 외도를 목격한 이후로 윌리에 대한 존경심을 모두 저버렸다. 비프는 윌리가 자신에게 바랐던 모습들을 거부한 채 엇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윌리에게 진실을 말하면서 비프는 눈물을 흘리고, 윌리는 그토록 원했던 자식의 사랑을 이미 그가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윌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기만 했을 뿐, 어떻게 사랑을 주는지 몰랐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미 종속되어버린 윌리는 사랑을 완전히 얻자 사랑을 주는 방식이 보험금이라고 생각하고 자살을 택하게 된다.버드맨 속 리건은 아내와의 이혼을 겪은 상태이다. 그 또한 윌리처럼 외도를 했고 이는 이혼에 있어 결정적인 사유가 된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딸 샘은 잘못된 교육방식으로 인해 마약을 하고 재활원에 갔다 오며, 출연 배우와 거리낌 없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목격한 리건은 충격을 받는다. 그는 샘과 아내의 사랑을 갈망함과 동시에 대중들의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샘과의 대화택한다.
불교와 인간 ? 영화 Little Buddha 감상문이 수업을 듣기 전에는 리틀 붓다라는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 수업을 듣고서야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의외로 불교와 관련된 영화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면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영화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라마 도제의 환생으로 추정되는 3명의 아이들을 그의 제자인 라마 노부가 찾아가면서 그와 동시에 싯다르타가 어떻게 부처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시애틀의 9살 소년이 환생한 부처로 여겨져 승려들이 그를 시험해보았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다.영화 외적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이 영화에 감독은 꽤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촬영은 주로 네팔의 저지대인 카트만두에서 이루어졌는데, 이곳은 관광객 숫자 조차 1년에 2000명으로 제한하는 까다로운 지역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배경이 시애틀이기 때문에 현대의 미국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위해서는 시애틀에 세트를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영화를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의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수십 명으로 구성한 의상팀을 배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왕과 왕비들의 의상과 화장들이 매우 신기했고 인상깊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완벽한 고증을 위한 감독의 정성이 느껴졌다. 이런 감독의 정성스럽고 사실적인 고증에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티벳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직접 감독 베르톨루치와 제작자 제레미 토마스를 초청해 이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영화속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키아누 리브스가 이 영화에 나오는지 모르고 봤는데 알고보니 성인이 된 싯다르타 역할을 맡아서 더 재미있고, 관심있게 보았던 것 같다.키아누 리브스나 다른 여타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영화에 더욱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옛날 영화(1994년도)라 그런지 CG 같은 디테일이 몰입을 방해해서 조금 아쉬웠다. 특히 싯다르타가 완전한 고행을 위해 마귀와 싸울때의 CG는 정말로 아쉬웠다.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면,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저번에 수업시간에 보았던 BBC 다큐멘터리 보다는 아무래도 스토리가 있다보니 전반적으로 더 부처의 생애와 불교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제일 큰 개념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윤회’ 사상 이었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제일 큰 축이기도 한 윤회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인상깊게 나온다. 한 부처가 새끼 염소를 죽이려고 하자 염소가 웃으면서 자신은 499번 죽었고, 이제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환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큰 깨달음을 얻은 그 부처가 염소에게 용서를 빌며 염소들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한다. 영화의 첫 부분을 보자마자 이 영화가 대략적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고 매우 인상깊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웠었던 윤회라는 사상이 좀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염소가 환생을 499번이나 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항상 윤회라는 사상을 생각할때는 그저 한번 환생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저렇게 많이 죽었다 다시 환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살짝 무섭기도 했다. 영화에서 보면, 라마 노부가 자기들의 나라 티벳에서는 육신과 영혼을 그릇과 내용물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잔에다가 홍차를 따른다. 그 후 라마 노부가 잔을 깨고 잔은 더 이상 잔이 아니지만, 홍차는 여전히 홍차라고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윤회 사상에 대한 나의 개념이 뭔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홍차를 담는 그릇은 수십, 수백, 수천가지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그 내용물인 홍차는 오직 하나다. 물론 홍차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온도, 진함에 있어서도 천차만별이지만 그릇에 담길 그 온전한 내용물은 단 하나이다. 아까 염소 장면에 빗대어보면 홍차는 그 염소의 정신이고, 잔은 염소가 환생해서 들어갈 수십, 수백 가지의 육체들이다.영화에서는 이러한 윤회에 있어서 반드시 한 육체속에 한 정신, 영혼만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라마 도제의 환생 후보인 제시 등 3명의 아이들이 모두 라마 도제의 환생이라고 밝혀지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라마 도제의 환생 후보들을 찾아다닌 라마 노부는 결국 신탁의 힘을 빌어 이 셋 중 누가 라마 도제의 진짜 후보인지 밝히고자 한다. 결국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라마 도제가 아이들 세명의 몸으로 정신이 나뉘어 들어가 모두 환생했다는 것이다. 윤회에 대한 나의 개념이 더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영화에서의 다른 큰 줄거리 중 하나인 부처, 싯다르타의 생애로 넘어가보면, 영화에서는 싯다르타의 생애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싯다르타가 어떻게 해서 고행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큰 깨달음에 가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해서 보여준다.싯다르타의 생애는 우리가 알던 싯다르타의 생애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보았던 BBC 다큐멘터리 보다는 더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잘 이용해서 보여줘서 그런 것 같다. 처음에 싯다르타의 어머니가 출산을 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나뭇가지가 출산을 돕게 편하게 내려오는 장면이나, 출산을 할 때 나뭇가지를 기둥 삼아 천을 두르고 그 안에서 서서 진통 없이 노래를 부르며 출산을 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영화 속에서는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걸어 다녔으며, 그가 걸어 다닐 때 마다 바닥에 연꽃이 피어났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실제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싯다르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후 싯다르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궁궐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고행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때 사람들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거대한 건물 속 안쪽의 풍경을 영화 속에서 사실적으로 담아내서 싯다르타가 느꼈던 감정들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에 싯다르타가 고행을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의 감정이나 느낌도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떠난 뒤에 소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 강물에서 ‘중용’이라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깨닫게 된다. 싯다르타가 지나친 고행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밥과 물로 달래자, 제자들은 그가 고행을 포기했다며 그를 떠나간다. 그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릇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며 그릇을 강물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데, 실제로 그릇이 정말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결국 중용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에서,현대의 프롤레타리아 비정규직이 받는 차별은 없어질 수 있을까?-공산당 선언, 웹툰 송곳 그리고 나의 경험을 참고해서-[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ⅰ 현대사회의 프롤레타리아, 비정규직ⅱ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룬 웹툰 ‘송곳’과 영화 ‘카트’ⅲ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느낀 비정규직의 실태ⅳ 과거부터 현재까지 투쟁해온 비정규직Ⅲ. 결 론 ? 차별대우, 없어질 수 있을까?※ 참 고 문 헌Ⅰ. 서 론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지금보다 약 200년 전인 1848년에 출판되었지만,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현대사회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공산당 선언의 1장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제목과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공산당 선언이 쓰인 시대와 지금의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첫 문장은 주체만 바뀌었을 뿐, 현대사회에도 충분히 적용된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자본가가 되었고, 프롤레타리아는 비정규직이 되었다.최근 상업 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을 다룬 영화 ‘카트’가 개봉했을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가 큰 이슈이다.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나타내준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 후 차별 대우 등의 여러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전국 학교비정규직 노조 파업 등 현재진행중이다. 공산당 선언의 4장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 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러한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현 실태가 떠올랐고, 한편으론 지금 현대의 프롤레타리아인 내 모습도 떠올랐다. 또한 내가 미처 몰랐던 비정규직의 현실을 더 알고 싶어서 책과 주제를 고르게 되었다.본론에서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계약 종료가 진행된다. 또 다른 차이점인 급여나 복리 후생은 최근에 비정규직 노조들이 파업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인데,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에 비해 같은 시간을 일해도 급여가 더 적다. 또한 휴식 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휴식 시간을 받지 못한 채 일을 하고, 휴식 공간이 마땅치 않아 막상 쉬려면 쉴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여기서 비정규직의 가장 큰 문제점이 나타나는데, 바로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중이 약 10% 정도로 극히 낮다는 것과 차별 대우를 받는 다는 점이다.…프롤레타리아 계급, 즉 현대의 노동자가 발전하는데, 그들은 일을 찾을 수 있을 때에만 살아갈 수 있을 뿐이요, 자신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시켜야만 일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을 조각내어 팔아야만 하는 이 노동자는 다른 모든 판매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그에 따라 다른 상품과 똑같이 모든 경쟁의 부침과 시장의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칼 마르크스, 2008[1848]:18)앞에서 비정규직이 현대사회의 프롤레타리아―정확히는 모든 노동자를 지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한 종류―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위에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과 연결된다. 그들은 현대의 부르주아, 즉 자본가 계급에게는 그저 소모품일 뿐이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그들은 그 기간이 끝나면 다 쓰고 버려질 뿐이다. 비정규직의 수는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가들의 수에 비해 넘치도록 많다. 그들은 자본가들이 원할 때 비로소 일을 할 수 있으며, 원하지 않으면 내쳐진다. 자본가들은 언제든지 그들을 대체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선택할 권리도, 거부할 권리도 없다.ⅱ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룬 웹툰 ‘송곳’과 영화 ‘카트’현재 네이버에 화요일마다 연재중인 웹툰 ‘송곳’과 서론에서 말한 최근에 개봉한 영화 ‘카트’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다룬 매체이다.‘송곳’은 날카롭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워나가는 과정에 어두운 현실과 맞서 싸운다.웹툰 속에서 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한 부당해고부터 그런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동조합이 생기고, 그들이 어떻게 싸워나가는지에 대한 과정이 꽤나 자세하게 그려져서 전체적인 비정규직 노동 시장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잘 됐다. 또한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이라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얼마나 치졸하게 다루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웹툰을 보면서 이런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치졸한 지 예를 들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할 때 자신들이 일했던 곳 앞에서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를 하기 마련이다. 업계는 당연히 이 집회를 막기 위해 집회 신고를 자신들이 하고자 한다. 결국 집회 신고를 두고 노동자들과 업계의 100m달리기라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업계는 심지어 이 달리기를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나타난 이런 모습들이 웹툰이라고 해서 전혀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노무사 구고신의 말을 여실히 보여주는 ‘푸르미’의 프랑스 점장의 행동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프랑스는 노조의 중요성과 권리에 대해 어릴 때부터 직접 체험해보고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프랑스에서 자라 그 중요성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점장이 한국에 와 실적이 나오지 않자 그들을 자르기에 바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이렇듯 비정규직 노조와 업계와의 갈등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송곳’과는 다르게 ‘카트’는 그들이 받는 차별대우와 누리지 못하는 당연한 권리에 대해 더 자세하게 다룬다. 초과근무를 하면서도 초과 수당을 받지 못하고, 보일러실 옆 칸막이에 마련된 여자 탈의실에는 추운 날 히터 하나 없다. 정규직 남자 대리는 여자 탈의실 임에도 불구하고 노크도 없이 아무렇게나 들어온다. 기본적인 복지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그들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들은 한 달 뒤 정리해고 된다는 이 받아야 할 원래의 권리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고,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무사가 꼭 필요함을 느꼈다.ⅲ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느낀 비정규직의 실태ⅲ.1 홈플러스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했던 경험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이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창 쌍용자동차 노조 총파업이 큰 이슈였는데,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며 다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20살이 되어 대학에 들어오니 쓰는 돈의 단위가 만에서 십만이 되어 달라지니 자연스레 알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일명 ‘꿀알바’를 찾다가 우연히 홈플러스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홈플러스에 입점한 협력업체가 운영하는 서적코너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보험에도 가입한 후에 이름이 적힌 명찰을 받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기 전엔 바코드를 찍고 책 정리만 조금 하는 그런 업무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너무나도 고되었다. 홈플러스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상자를 열고 물건을 매대에 까는 일명 ‘까대기’를 하게 된다. 서적 코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넓은 매장을 관리하는 일반 직원보다야 양은 적었지만 하루에 1박스, 많게는 4박스씩 오는 책이 든 무거운 상자를 옮기니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업무에도 불구하고, 쉴 곳은 그리 마땅치 않았다. 휴게실은 선풍기 밖에 없어서 여름엔 작은 에어컨이라도 있는 탈의실보다도 더 더웠다. 그마저도 좁아 사람이라도 더 모이면 찜통에 들어간 듯 더 더웠다. 휴게실에서 쉬면서 가끔 2층 식품코너에서 일하거나, 청소부로 근무하는 아주머니들이 조끼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땐 스쳐지나갔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조끼였다. 생각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가까이 있었다.홈플러스에서 방학동안 근무를 하다가 9월에 개학을 하니 통학시간이 왕복 3시간인 나에게는불구하고 3개월이라는 수습기간이 지나야만 시급을 올려준다. 그마저도 최저에 못 미치긴 마찬가지다.주변에 내 시급을 얘기했을 때, 최저시급에 못 미치니 부당대우나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고발을 해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하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 빈번히 면접을 본 후 떨어진 적이 많은데, 기껏 힘들게 구한 이 자리를 놓칠까봐 두려웠다. 또한 보복도 약간 무서웠다. ‘카트’에서 보면 파업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다시는 이쪽 업계에서 근무 할 수 없을 거라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나도 혹시나 다른 편의점에서 근무를 못하게 될까 무섭기도 했다.실제로 대통령 직속 청년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당대우를 신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안이 경미해서’ 라는 응답이 제일 많았으며, 그 다음이 ‘고용주와의 관계-2차 피해에 대한 우려 등’이 두 번째로 많았다. 또한 ‘불법인지 몰라서’라는 응답이 세 번째로 많았는데, 이를 보면 최저시급 등의 당연한 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이렇듯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최저시급을 받지 못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또한 4대보험에도 가입되어있지 않고, 일하다 다쳐도 산재를 받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부당대우에도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특히 청년―들이 이에 대해 노동청에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ⅳ 과거부터 현재까지 투쟁해온 비정규직이제는 예전과는 달리 임금을 못 받았을 시 노동청에 즉각 임금체불 신고만 하면 쉽게 무료로 떼인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대우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바로 그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싸워왔기 때문이다. IMF 이후로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했다. 비정규직은 그 수가 급증했으나, 구조조정을 당하는 것도 비정규직이었다. 2000년에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이러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다. 2003년에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분신했다. 이러한 투쟁으로 그들은 2004년 ‘공다.
지속가능한 개발이 침묵의 봄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지구의 보호와 개발이란 상충하는 두 요소 속대안으로 떠오른 지속가능한 개발을 중심으로 -[ 목 차 ]1. 서 론2. 본 론(1) 보호와 개발의 대안, 지속가능한 개발1) 점점 악화되어가는 지구의 상태2) 보호와 개발의 대안으로 나오게 된 지속가능한 개발(2) 지속가능한 개발의 현재1) 개발을 우선시 한 사례2) 환경을 우선시 한 사례(3) 지속가능한 개발이 주는 의의와 시사점3. 결 론 ? 지속가능한 개발이 최선책인가?※ 참 고 문 헌1. 서 론살충제 사용의 실태와 그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를 독특한 형식으로 표현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20세기 환경학 분야에서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집필할 당시, 미국 사회는 살충제가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어 살충제를 만든 화학 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살충제가 주는 위험성과 그 영향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쓰고 있었다. 또한 이렇다 할 환경 운동조차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던 상태였다.하지만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미국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환경과 관련된 여러 운동이 촉발되고, 이와 관련된 단체들도 조직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살충제가 주는 악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고, 무조건적인 살충제의 사용을 지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당시의 대표적인 살충제인 DDT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으며 환경에 관련된 각종 만들기 시작했다.글로벌화로 인해 이러한 미국의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0년 지구의 날(4월 22일)이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회의(이하 리우회의)가 결성되고, 리우선언과 함께 기후변화협약 등 여러 협약과 의제21(Agenda21)이 지구를 보전하기 위한 실천 계획으로 맺어졌다. 이렇듯 침묵의 봄은 환경 말 대로 우리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50년 동안 우리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개념을 말하며 이제는 갈림길에서 벗어났고, 이제 다른 길 즉,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이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이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최선책인 것일까.본론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과 여러 사례들을 알아보고, 결론에서는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이 현재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2. 본 론(1) 보호와 개발의 대안, 지속가능한 개발1) 점점 악화되어가는 지구의 상태낯선 정적이 감돌았다...(이하 중략)...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50년 전 출간된 침묵의 봄에서 레이첼 카슨은 그 당시의 미국을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앞서 침묵의 봄이 출간되면서 환경이라는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현재 지구의 상태는 어떨까? 책이 쓰여진 배경인 미국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환경운동이 촉발되었으니 더 나아졌을까, 아니면 환경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더 악화되었을까.답은 후자이다. 현재 지구의 상태는 한계를 초과할 정도로 악화되어있다. 이렇게 악화되어가는 원인은 성장, 가속, 급격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세기 동안 인구와 식량 생산, 산업 생산, 자원의 소비, 오염 등이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환경을 파괴하는 속도는 지구의 자정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다.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지구는 오염되었고, 지금도 파괴되어가는 중이다.그 예로는 대표적으로 지구 온난화가 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는 아직도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수 만년의 주기로 반복되는 ‘빙하기-해빙기-간빙기’의.2) 보호와 개발의 대안으로 나오게 된 지속가능한 개발지속가능한 개발은 악화되어가는 지구의 상태라는 환경적 상황과 끊임없이 개발을 추구하는 경제적 상황 모두를 충족시켜줄 대안으로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정확히는 1980년대에 산업화로 얻은 이익과 피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단위의 국제기구들이 생겨났고, 1987년에 WCED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미래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 현세대가 물려줄 환경자원의 여건 속에서 미래세대 또한 현세대만큼 잘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범위 내로 현세대가 환경자원을 이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 발전을 위한 개발과 현재 지구의 환경 보전이라는 두 상충되는 요소의 조화에 초점을 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2) 지속가능한 개발의 현재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이 출현한 이후 개발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사라는 직업도 생겨났고, 개발이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환경 보호를 위한 규제와 협약도 많이 생겨났다. 협약에 대한 예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유해폐기물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협약,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우 3대 협약 중 하나인 생물다양성 협약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예전보다는 개발을 할 때 환경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여전히 개발은 이루어지고 있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고 주장하며 환경보다는 개발을 우선시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이 가진 양면성―환경이냐 개발이냐―을 보여주는 사례를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의 현재는 어떤지 알아보겠다.1) 개발을 우선시 한 사례개발을 우선시 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첫 번째로 우리나라의 ‘새만금간척사업’이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은 1991년부터 시작되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간척 사업이다.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새만금간척사업을 찬성하는 하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2) 환경을 우선시 한 사례하지만 환경을 우선시 한 사례도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우리나라 및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에너지 자립 마을’이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발은 필수적이고 이에 따른 화석연료의 사용 또한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의 개발이 아직까지는 화석연료의 사용 모두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연료의 가채연수는 급속히 줄고 있다. 현세대들이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써버린다면, 미래 세대는 사용할 연료가 없을 지도 모른다. 에너지 자립마을은 이런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 환경오염을 줄임과 동시에 에너지의 공급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면서 지역을 진정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다.정확하게는 에너지 자립마을은 마을 단위 지역에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생산한 에너지 총량의 한도 내에서 에너지를 소비해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하면서,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같은 장소에 이뤄지게 해 에너지의 이용에 따른 환경적 영향도 최소화 할 수 있다. 경제와 환경이라는 두 요소를 만족시키면서도 환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자립마을은 현재 서울 강동구 십자성 마을 등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올해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직접 가본 결과 태양광 발전기로 전기 사용량 0W를 실천하는 등 가정 경제 절약 및 환경 보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두 번째 사례로는 ‘아시아-태평양 이동성 물새 보존전략’이 있다. 이는 이동성 물새와 습지를 보존하기 위한 국제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새들의 이동 경로가 전 지구적으로 많은 국가들의 습지를 아우르기 때문에 나왔는데, 정부와 지역주민, NGO 등이 함께 환경의 보호를 위해 습지의 개발을 막는 환경을 우선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위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환경의 보전과 인간을 위한 개발이라는 두 양면성을 어우를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 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지속가능한 개발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3) 지속가능한 개발이 주는 의의와 시사점지속가능한 개발이 주는 의의는 크다. 처음으로 환경이라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었고, 과다진행 되어가는 개발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 것이 그 의의이다. 만약에 이런 개념이 나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환경이 주는 경고를 무시한 채 늘 그랬듯 개발에만 열중했을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환경은 계속 파괴되어갔을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이 출현함으로써 우리는 환경에 대해 더 깊이 생각 할 수 있다.하지만 지속가능한 개발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기도 한다.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은 경제 개발과 환경 보전, 둘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일까? 이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존재한다. 위의 사례와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이름으로 개발을 하려는 사람들과 여러 환경 단체들이 부딪히는 걸 보며 알 수 있다. 아직 경제 개발과 환경 보전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 기하급수적 성장과 과다진행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환경을 생각할 여유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3. 결 론지속가능한 개발이 최선책인가?지속가능한 개발은 아직까지도 경제 개발과 환경 보전이라는 두 상호 충돌하는 요소를 아우르는 최선책으로 꼽히고 있다.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은 다가오는 침묵의 봄을 막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현재로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우리 현세대에게는 최선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침묵의 봄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환경을 괴롭히지 않고 그대로 놔두며 우리가 누리는 현재 상황에 만족해가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매해 매순간마다 우리는 발전을 거듭한다.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은 우리가 끊임없이 개발을 하도록 만든다. 더 만족할만한, 더 편리한 기술을 위해 우리는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까지의 발달한 기술을 누리기 위해서도 개발은 필요하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