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몬드-기쁨도. 슬픔도. 화도. 때로는 서운함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그게 성숙한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오히려 반대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감정을 표현하기를 강요받는다. ‘아몬드’라 불리는 뇌의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엄마로부터 인간의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을 배우게 된다.가깝게는 엄마로부터, 크게는 이 사회로부터 학습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강요받는 ‘윤재’는 엄마와 할멈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지만,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이수’와 ‘도라’를 만나 우정과 사랑을 알게 되는 성장소설이다. 문체가 간결하여 진행이 빨라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긴장감이 넘치기도 한다.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남는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그렇다치고’ 전략을 사용할 때가 있다. 소설의 가장 큰 허구적 설정에 대하여 ‘그렇다치고’라고 하며 넘어가곤 한다. 예컨대 타임슬립 소설에서 시간여행이라는 전제를 부정한다면 내용전개가 되지 않듯, 독자는 소설 속 허구적 상활설정에 대해 현실적 잣대를 대지 않는다. 그러나 「아몬드」에서 주인공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정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서술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이 중학생에게 린치를 당해 죽게 되는 상황 그리고 한 여자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황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그러나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먼저 ‘윤재’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이수’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표현하는데 어려운 ‘윤재’와 달리 ‘이수’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들어낸다. 교실에서건, 장례식장에서건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데 거침없다. 그러한 점에서 ‘윤재’와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수’는 또다른 ‘윤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느끼지만 못하는 ‘윤재’처럼 ‘이수’는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든지, 때린다든지, 욕을 하는 행동들은 당하는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 생각된다. ‘윤재’와 ‘이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지만 동시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 수 있다.또, 이 소설에서 ‘웃음’이라는 소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주인공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이 웃음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웃지 않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이상을 깨닫는다. ‘윤재’가 웃기를 바랐던 엄마는 역설적이게도 그 웃음 때문에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엄마와 할멈은 단지 웃었다는 이유로 희생된다. 그러나 ‘윤재’는 ‘이수’를 통해 우정을 알게 되고, ‘도라’를 통해 사랑을 느끼며 변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소설은 ‘윤재’의 웃음으로 마치게 된다는 점에서 ‘웃음’이라는 소재가 이 소설을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부모를 잃은 사람을 ‘고아’, 아내를 잃은 사람을 ‘홀아비’, 남편을 잃은 사람을 ‘과부’라고 한다. 이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을 일컫는 단어들이 각각 있다. 그러나 유독 자녀를 잃은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는 없다. 아마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서, 아니면 한 단어로 그 아픔을 표현할 수 없어 존재하지 않는 거라 생각한다.한국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교수는 딸을 잃은 아픔을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 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담았다. 그래서 이 ‘책’보다는 ‘편지’를 보는 듯해서 문학보다는 삶으로 다가온다.제목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래전 어린 딸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아빠의 서재 방문을 열었지만, 아빠는 글을 쓰느라 바빠 쳐다보지 않고 딸의 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한다. 작가는 시간을 그때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펜을 그 자리에 놓고 딸에게 달려갔을 거라는 후회를 한다. 마땅히 해야 했어야 하는 행동을 하지 않음. 즉, 부작위로 인한 후회가 작가가 글을 쓴 동기이다.이 책의 특징은 반복에 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비슷한 사건을 병렬적으로 배치해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일을 통해 극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작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간 서울여행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린 사건과 작가가 딸을 데리고 바다여행을 갔다가 딸을 혼자 남겨둔 사건. 딸의 병이 완치 된 사건과 손자의 자폐가 완치된 사건. 그리고 딸의 죽음과 손자의 죽음을 병렬적으로 배치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 중 가장 극적인 것이 있다. 딸의 죽음. 즉 永眠(영면)에 빠지게 되는 딸에게 자신이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표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다. 이 모습은 오래 전 어린 딸이 자신에게 저녁 인사를 위해 방문을 열었을 때, 인사를 해주지 못한 모습과 오버랩 된다.그러나 작가는 반대로 딸의 대해 어떤 부분은 배제하기도 했다. 바로 딸의 투병생활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딸의 투병생활을 책에서 배제하고, 딸과 함께 보낸 시간과 딸을 잃고 난 뒤에 아픔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아버지로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좋은 기억만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이 책은 좋은 책이다. 글의 전개에 있어 논리적으로 비약이 느껴지지 않고, 문장력 또한 뛰어나다. 그러나 그럴수록 안타까운 점은 작가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딸에 대한 슬픔이 깊은 글일수록, 그리움이 사무치는 글일수록 딸의 답장이 올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나를 처연하게 만들었다.
‘먼저 분명히 해야겠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빤한 인생과 꿈을 이야기하는 책은 정말 질색이다.’라는 말로 이 책은 시작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어쩌면 더 나아가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계발서들이 내놓는 답들이 제게는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아니 어쩌면 자기계발서에서 제시하는 답이 인생의 답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지만 읽으려 하지 이유도 그 때문일 거에요. 아마 독서모임이 아니었으면 평생 안 읽었을지도 몰라요.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딱딱하게 혹은 일방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이 아닌 철학자와 청년이라는 가상의 두 화자가 대화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가독성이 높았어요. 그렇지만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했던 점도 있어요.그 이유는 철학자라는 화자 자체가 이미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철학자는 책 속에서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미 철학자와 청년 사이는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느껴져요.철학자는 인생의 심오한 세계를 깨달은 사람으로 보여요. 청년이 가진 궁금증을 이미 모두 겪었으며, 문제제기하는 청년의 모습을 마치 치기어린 어린아이로 대하는 모습으로 느껴졌어요.그런데 저는 사실 철학자보다 청년의 말에 공감이 됐어요. 청년의 말은 자세한 설명이나 예시가 없어도 쉽게 이해가 되고, 청년이 하는 문제제기와 반론이 곧 제 마음이기도 했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청년은 철학자보다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직 넌 몰라’하는 철학자의 모습은 청년에게 동일시 된 제게 하는 말인 것 같아 불편했어요.그래서 저는 끝까지 보고싶지 않은 모습이 있었어요. 그건 책이 끝날 때 철학자의 말을 들은 청년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철학자의 가르침대로 살겠노라 다짐하는 모습이요. 그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어요. 청년의 또 다른 모습인 저는 그럴 마음이 없었거든요.철학자의 말대로 하기만 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인생에 정답이란 것이 존재할까요?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요. 인생의 정답이라고 내리는 순간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정답이 아니에요.저는 인생의 답은 각자가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각자가 내린 수많은 결론은 정답인 동시에 오답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내가 살며 스스로 내린 결론은 그 자체로 내 인생에 있어 정답이지만 내가 내린 결론이 다른 사람에게도 정답일 순 없잖아요.그런 생각이 퍼져가다보니 철학자의 말에서 논리적 비약이나 모순을 찾는 노력을 했었지만 그 또한 철학자가 인생을 사며 내린 그만의 답이겠구나 스스로 결론을 냈어요.
따뜻한 말은 식지 않는다책 를 읽고지금은 없어졌지만, ‘문선공’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지금이야 타이핑을 해서 신문을 만들지만, 예전에는 판화 찍듯이 신문을 만들었다. 그래서 문선공들은 기자들이 원고지에 쓴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씩 찾았다. 1만자가 넘는 활자 앞에서 그들은 원고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원하는 글자들을 손이 보이지 않는 빠르기로 찾아냈다. 그들이 찾은 활자는 단어가 되고, 단어는 모여 문장이 되고, 글이 되었다.누구나 머릿속에 문선공이 있다. 그들은 순식간에 원하는 단어, 문장을 만들어 입 밖으로 내 보낸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언어의 온도는 달라진다. 따뜻한 말은 힘이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차가운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식지도, 반대로 차가움은 따뜻해지지도 않기에 조심스럽다. 우리가 하는 말. 언어는 그런 것이 아닐까?‘당신의 언어는 몇 도쯤 될까요?’라는 가슴을 뜨끔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 는 누구도 말에 있어 자신할 수 없기에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말들이 담긴 이 책은 지극히 사적임에도, 공감이 된다. 마치 남을 보여주기 위한 일기 같은 글. 작가 한 개인이 겪은 일이지만, 누구라도 겪어봤을 이야기인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진다.그럼에도 호기로운 시작과 달리 아쉬움을 느낀다. 보통 이런 책은 읽을 때, 가장 인상 깊은 글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88개의 글 중 가장 좋았던 글을 꼽을 수 없었다. 모든 글이 좋았던 것도, 그 반대도 아니었다. 모두에게 공감이 된다는 것은, 반대로 특별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멋진 문장력, 눈물 나는 감동, 무릎을 치는 통찰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무 특색이 없는 것이 특색인 어느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책은 그 싱거움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독서는 결과적으로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 그것은 정보일 수도, 재미일 수도, 또는 깨달음을 통한 행동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험.으로만 남는 책이 있기도 하다. 그 책을 읽어 봤다는 경험만 남는 책. 는 그런 경험으로 남는 책이었다. 그래서 88개의 일화에 부담없이 나의 일화를 하나 추가 하고 싶다.어느 11월 가을.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옆에는 한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한 소년이 내게 와 말을 걸었다. 소년은 내게 전화 한 통만 쓰게 해달라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어디 있냐는 나의 물음에 소년은 서울이라 답했다. 어린아이가 모르는 내게 전화를 빌리는 모습에 속으로 용기있다 생각해 전화를 내 주었다.그런데 가만히 보니 전화하는 소년이 울고 있었다. 조용히 통화를 엿들으니 소년은 가정사정상 엄마와 떨어져 살고 있고, 그래서 차마 집에서는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언제 볼 수 있다는 엄마의 약속을 듣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소년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눈물을 훔치며 뛰어갔다.
호머의 독후감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의 책이 출판되고, 다시 사장되는 이 세상에서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읽어지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얼마나 대단한 책일까. 그런 책들을 명작이라 부르고 그 명작을 쓴 작가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지 싶다. 물론 과제 때문에 읽은 호머의 지만 현대에서도 사랑받고 꾸준히 읽혀질 만큼 흥미진진하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에서는 트로이전쟁이 왜 이러났는지 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바로 전쟁현장에서 책이 시작된다. 그러나 를 쉽게 이해하고 더 흥미롭게 보기위해서는 트로이 전쟁이 왜 이러났는지를 알고 봐야한다.트로이전쟁이 왜 이러났는지를 보려면,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테티스와 펠레우스가 결혼하는 시점까지 올라가야한다. 테티스는 바다의 여신으로 , 바다의 노인 네레우스와 도리스의 딸이다. 그는 50여명이나 되는 네레우스의 딸 중 가장 아름다워서 일찍부터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제우스의 두 번째 아내인 법의 여신 테미스가, 테티스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고 하자 둘 다 마음을 접었다. 제우스는 테티스에게 신이 아닌 인간을 짝 지워 주기로 결심했다. 테티스가 너무 강한 상대와 맺어지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테티스의 신랑감을 물색하던 제우스의 눈에 띈 사람이 과거 프티아의 국왕이던 펠레우스였다. 테티스는 완강히 거부하였지만, 결국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혼례식은 펠리온 산에서 거행되었는데, 이 자리엔 거의 모든 신들이 초대받았다. 그러나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러자 에리스는 여신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켜 복수하기 위해 결혼식 연회장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세 명의 여신이 황금사과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고 급기야 제우스에게 판결을 부탁한다. 그러나 제우스는 셋 중 한 명을 택해 나머지 두 여신의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아 인간들 중 가장 잘생긴 목동 파리스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세 명의 여신은 파리스의 선택을 받기위해 각자 자신을 선택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헤라는 부귀영화와 권세를, 아테네 여신은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예를,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파리스는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말한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황금사과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파리스와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바로 헬레네가 있는 스파르타로 떠났다. 그러나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다. 파리스는 메넬라오스 왕이 없는 틈을 타 헬레네를 유혹하고 트로이로 도망 왔다. 그러자 화가 난 메넬라오스 왕은 그리스군 을 연합하여 트로이를 공격하러 간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다. 이 배경설명은 에 나오지 않지만, 왜 그리스 군이 트로이를 침략하는지 또 메넬라오스가 자신의 부인인 헬레네를 빼앗겼는지 알면 책 내용을 더 쉽게 파악 할 수 있고,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나는 를 읽고 의 중심인물은 파리스, 헥토르, 아킬레우스 그리고 그리스 신들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먼저 첫 번째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 그로인해 만들어진 고아와 과부들 또,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바로 파리스. 파리스는 책에서 훌륭한 장수도 아니고 용감하지도 않다. 24권을 한권으로 만든 중 3권에서 현재 헬레네의 남자인 파리스와 과거 헬레네의 남자인 메넬라오스가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이 결투에서 파리스는 메넬라오스를 당해내지 못하고 트로이 성안으로 도망까지 온다. 또 6권에서는 자신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지금 트로이의 남자들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파리스는 침대에서 헬레네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헬레네가 오히려 파리스에게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고 권유한다. 파리스의 모습에서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재앙에 무책임하며 용기도 없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임감 없고, 철도 아직 안 들었으며,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모습이 어쩌면 전형적인 막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반면 파리스의 형이자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는 전형적인 맏형. 장남의 모습이다. 비록 동생이 여자로 인해 벌어진 전쟁이지만 자신의 고국인 트로이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는 트로이의 영웅모습을 보여준다. 또, 호전적이고 남성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오자 헥토르는 분노하며 동생에게 겁쟁이라고 꾸짖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22권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일대일 대결에서 헥토르는 자신이 아킬레우스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트로이 영웅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를 아킬레우스와 대결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헥토르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멋진 남자이기도 했다. 전쟁 중에 마지막으로 만난 아내와 아들에게는 가정적인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의 만류에 전쟁터에 다시 가지 않고 싶지만, 그런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트로이의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떠난다.그 다음은 헥토르의 라이벌 아킬레우스이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와 트로이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전사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의 총 사령관인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킬레우스는 그의 도움을 뿌리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던 중 자신과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자 이성을 잃은 아킬레우스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죽은 친구에게 약속한 대로 헥토르를 죽여 복수를 하게 된다. 에서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보다 더 높은 상관에게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성을 잃고 트로이군을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강의 신의 말을 무시하고 신에게 까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헥토르를 개의 밥으로 주겠다고 했지만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직접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시신을 달라고 부탁하자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복수의 마음을 푸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