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Contraception)을 읽고피임 기술이 개발되어,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부부는 합리적으로 가족 수를 제한하며, 조정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임신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피임에 대해 로마 카톨릭과 개신 교회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먼저 로마 카톨릭은 피임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성의 근본적인 목적은 출산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출산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성행위는 죄라고 보았다. 그리고 부부행위의 또 다른 목적이 부부 연합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 두 가지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결혼을 의도하신 목적이며, 이 둘은 분리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생리주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적인 질서를 깨뜨리지 않기에 허용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일반 피임과 다르지 않으며, 앞서 말한 두 가지의 목적이 분리되는 모순적 논리를 안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해 로마 교회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기에 비도덕적이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한다.이에 반해 개신교회는 성의 목적이 출산과 부부 연합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출산의 개연성을 차단한 채 서로의 하나 됨과 즐거움을 도모하기 위해 부부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허용된 권리라는 입장을 취한다. 종교개혁가들은 성생활이 반려자 의식을 굳게 하고, 부부에 즐거움을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폭넓게 이해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에 근거하여 피임 기구와 약을 사용하여 부부 행위를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피임을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은 오난의 죄를 말하며, 오난이 피임(질외사정) 행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피임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입장을 취하곤 한다. 하지만, 이 본문은 친족 돌보기의 규례에 대한 언약 백성의 순종에 본문이지 피임에 관해 말하고 있는 본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틀렸다. 또,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피임과 산아제한에 반대하는 입장가진 사람들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며, 타락된 방향들을 재조정하는 청지기적 책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생명을 낳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인데, 피임을 통해 인간이 간섭하는 것은 신학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신원하는 하나님은 새 생명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마음을 주셔 부부 행위라는 동역 작업을 동반하게 하셨다. 생명의 출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동역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또, 저자는 경구피임약 복용에 대해는 일반은총적 의료행위로 가능하다고 보지만, 사후피임약에 대해서는 신학적·윤리적 문제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역사에서 기독교교회는 많은 경우에 인간의 개념에 대한 이원론적 입장을 수용하여, 인간을 몸과 이성을 구분하여 이해하였다. 이는 그리스철학,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영향을 받아, 중세기동안 유지되어 오다가 스콜라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영혼은 더 높고 영광스러운 부분이지만, 몸은 더 낮은 부분으로서 경멸의 대상으로 이해되었다. 몸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여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육체는 성적 쾌락과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영혼을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사제독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서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육적인 쾌락을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거세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개념은 성경적으로 볼 때 철저히 잘못된 접근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서 있는 전인으로써 육과 영은 반립적이지 않고 보완적이고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원론적 인간이해가 로마 카톨릭에 이어져 내려와 부부관계에 대한 좁은 시각을 가지게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좁은 시각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부부행위를 이렇게 제한 된 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그들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그리고 로마 카톨릭에서는 자연법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특정한 본성을 부여받아 이것을 따르는 본성적인 존재라고 이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출산과 부부의 연합이라는 본성을 부여하셨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피임약을 먹고 물리적인 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자연법에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죄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생리주기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자연적인 질서를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허용한다는 것이 굉장한 모순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모순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로마 교회의 입장에서는 생리주기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특정한 본성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여본다.
토마스 아퀴나스 사도신경 강해설교토마스 아퀴나스, 손은실 역 (새물결플러스, 2016)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인물로서, 인류의 지성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퀴나스를 수도원원장으로 만들어, 높은 지위를 가지게 하는 세속적 야망을 가졌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14세 때 아리스토텔레스연구를 선도하던 나폴리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수용하여 기독교 신학과 조화를 이루는 데 힘썼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반대로, 탁발수도회인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하여 그곳에서 신부로의 역할도 감당했고, 파리 대학 신학부 교수의 사역을 3년 동안 감당했다. 그리고 아퀴나스는 『신학대전』『대이교도대전』『사도신경 강해설교』등 훌륭한 저작들도 다수 남겼다.『사도신경 강해설교』의 원제목은 Santi Thomae de Quino Expositio in Symbolum Apostolorum이다. 이는 아퀴나스가 작고하기 1년전인 1273년 사순절 기간에 나폴리의 도미니크 수도회 성당에서 행한 설교를 기록한 것이다. 이 때의 설교의 대상이 모든 신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모국어인 그 지역 토착어로 설교했다. 그래서 그의 비서였던 피페르노의 레기날두스가 아퀴나스의 설교를 듣고 필기하고,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생각할 때에 스콜라신학자로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만을 생각하는데, 그는 파리 대학 신학부 교수이자 도미니크 수도회의 신부로서 설교자의 역할에도 매우 충실하였다. 그의 저작인 『사도신경 강해설교』의 구조는 크게 신성과 인성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Ⅰ. 사도신경 강해설교 원문-번역저자는 서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믿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도신경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이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음을 설명하고, 사도신경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은 뜻을 가지고 이 모든 만물과 인간사 가운데 섭리하시는 분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이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심을 믿어야 한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는 본성상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영원하신 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니케아 신경에서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성자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요10;30에 나타나듯이,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계시지만, 위격은 다르시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에 속하며 하나님 자신과 동일하다고 말한다.오리게네스, 포티누스, 마니교, 에비온, 발렌티누스 등은 예수님의 참되신 성육신을 부인하는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퀴나스는 이들의 사상에 대해 변증하며,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수난당하셨고, 죽음을 당하심을 믿어야 하는데, 이는 지성의 영역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치유하고, 행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함이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실 때 신성은 죽지 않으시고 인성이 죽으셨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의 분리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육체는 무덤 속에 계셨고, 영혼은 음부에 내려가셨다. 음부강하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에 있다. 예수님은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의로운 생명, 영적으로 부활하기에 애쓰고, 빨리 부활하고,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하고, 새로운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부활하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는 부활로 인해 신자들은 새롭고 영광스러운 생명을 얻었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아퀴나스의 주장은 죄를 짓지 않는 행위를 통해서, 부활에 이른다고 해석하고 있다.예수님은 승천은 모든 영적인 본질이 위로 올라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 아퀴나스는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종류를 4가지 분류로 나눈다. 첫째, 불신자들은 단죄를 받지만, 심판은 받지 않는다. 둘째, 치명적인 죄를 가지고 죽은 신자들은 단죄도 받고, 심판도 받는다. 셋째,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심판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 의로운 상태에서 죽은 것과 같은 사람들도 심판을 받지만,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뒤에 심판의 두려움을 피하는 방법으로 선한행위와 죄를 참회하고, 자선, 사랑을 베푸는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부분도 기독교와는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아 구원을 얻는 것이지만, 아퀴나스의 견해는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인간의 선한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다르다.교부들은 성령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몇 가지 말을 추가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령은 주님이시다. 둘째,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기 때문에, 성령은 살리시는 분입니다. 셋째,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온다. 넷째, 성령은 예배에 관해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다. 다섯째, 성령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일한다.거룩한 교회는 신자들의 회중과 같은 곳으로 사도성과 거룩성, 보편성, 견고성을 가진 곳이다. 필자는 이 챕터를 읽으면서, 교회의 견고성을 의미하기 위해 베드로를 우두머리로 세웠다는 부분을 여러번 읽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특징적인 것이 교회로부터 거부되거나 쫓겨나게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카톨릭의 구원론이 교회론과 일치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당시 교회는 구원을 좌지우지 할 만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교제는 교회의 성사(사람을 성화시키는 거룩한 것의 표지로서 성례를 의미)를 통해 실현된다. 교회의 성사는 일곱가지로 세례,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종유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가 있다. 이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는 것이 사도들에게 주어졌다. 이는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물려지게 되었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성사에서도 교회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성령은 교회와 영혼을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 몸도 부활시키신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몸과 동일하게 부활하지만, 영원히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한다. 또, 부활하는 몸은 온전하게 되며, 완전한 나이인 서른 세 살, 세른 두 살의 나이로 부활할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완전한 아이가 33살, 32살이라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청장년기를 서른 살 가량으로 보아, 이를 완전한 나이로 정의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마지막으로 영생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된다는 것으로 완전한 안전, 행복한 사람들과 즐거운 사귐을 성도의 본향에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아퀴나스는 이러한 영생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한행위가 주요한 요소라고 언급한다.Ⅱ. 부록사도신경은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적 전승』의 질문이 선언문 형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 사도신경에는 로 표기된 고대로마 신경과 의 공인본이 있었다. 이 둘의 두드러진 차이는 에는 “음부에 내려가셨다가”가 첨가된 것이다. 샤를마뉴의 예배 예전문 통일화 정책으로 가 라틴 교회 전체에 사용되어지게 된다. 하지만 한국교회에는 음부강하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다. 그 이유는 이 구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혼돈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하여 이를 삭제 하게 된 것이다. 역자는 성서에서 음부강하와 관련한 근거가 있고, 초대교부로부터 종교개혁자들이 이를 인정하고, 세계교회가 이를 신앙의 유산으로 고백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음부강하가 복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후기필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이 책은 스콜라 철학에 대한 패러다임을 넓혀주었다.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스콜라철학을 떠올리면, 기독교 신앙을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접근하여, 철학으로 신학을 풀어내려고 하는 굉장히 학문적이고 사변적인 공동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들은 실재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아퀴나스의 설교의 면면히 구체적인 적용이 끊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 교리를 잘못이해하고 있는 이단들과 학자들의 견해를 언급하고 이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구체적으로 변증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들이 사도신경 교리의 지평을 넓힐 뿐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이해를 돕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깨닫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둘째, 이 책은 복잡한 신학의 내용을 단순한 언어로 풀어 기록하였다. 문체가 매우 간결하고 쉽기 때문에, 그 당시 설교를 들었던 청중들과 독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권위에 우선성을 부여하여,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한 것이 독자들과 청중들이 사도신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와 로마사회이상규(SFC, 2016)이 책의 저자는 고신대학교 신학과(BTh)와 신학대학원(MDiv), 그리고 대학원(ThM)을 거쳐 호주장로교신학대학원(PTC)에서 교회사를 연구하고, 호주신학대학(ACT)에서 신학박사(Thm)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Calvin College와 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y 방문교수였고, 호주 Macqarie University 초기 기독교연구소 연구교수(2002-2003)였다. 그리고 고신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교회개혁사』(성광문화사,1997), 『교회개혁과 부흥운동』(SFC, 2004), 『헬라로마적 상황에서의 기독교』(한들출판사, 2006) 등을 저서하는 등을 저작하였다.이 책은 저자가 2002-2003년에 호주 시드니의 맥콰리대학교 고대사학부와 초기기독교연구소에서 연구하며, 쓴 글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초기 기독교를 사회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책으로 넓은 사관과 시야를 제공한다. 그리고 「헤르메네이아 투데이」에 2002년부터 2010년 봄까지 23회에 걸쳐 연재한 논문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책의 목차는 기독교의 형성, 기독교의 확산과 복음의 변증, 로마 제국의 종교정책과 기독교,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기 기독교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통찰과 발전을 알려준다. 이 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Ⅰ. 기독교의 형성아돌프 다이스만은 파피루스 문서와 신약성경의 언어가 하층민을 위한 평이한 언어로 쓰여졌고, 예수님의 사역이 약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 근거해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의 절대다수는 하층계급의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에드윈 저지는 파피루스문서와 신약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표준 그리스어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바울 공동체의 사회적 다양성을 지적하며,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혼합된 공동체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견해를 종합하여 볼 때, 계층적다. 하지만, 기독교 복음 운동은 하층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었고, 혼합된 집단의 공동체로 발전되었다.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자들의 가정집(~A.D150)에서 시작하여, 개인주택을 개조하여 집회소로 사용(150~250)데까지 발전하였고, 큰 건물이나 홀을 집회소로 사용(250~313)하였고, 313년 기독교 공인이후에 바실리카 형태의 교회당이 세워졌다. 이러한 발전은 교회의 의식화 및 시대의 필요에 따른 자연적 현상인 것이다. 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간호나 치유 행위를 목회의 주요과제로 삼았다. 여집사와 과부들이 간호사로서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당시 비문을 통해 볼 때, 감독중에는 의사도 상당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는 에비온파, 영지주의, 마르시온파, 몬타니우스파 등의 많은 이단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이단들은 유대주의, 이교철학의 배경에서 등장했으며, 또한 이들은 문화적 상황, 현실성을 강조했다. 초기 교회는 이단들에 대처하여 정경확립에 박차를 가했고, 사도성을 중시하여, 신앙고백을 제정하는 일에 힘썼다. 이에 발맞추어, 사도교부들은 이단들의 공격과 로마의 핍박을 받는 기독교인을 위한 변증적인 글을 썼다. 물론, 초기 사도교부들의 가르침은 신학적, 교리적 통일성이 부족하여, 명확한 교리적 기초를 확립하지는 못했지만, 신학적인 개념화 과정에 공헌한 바가 매우 컸다. 이러한 사도교부들은 학파마다 특색이 있었다. 소아시아 학파는 신앙의 정통을 주장하며, 구원교리를 강조하며, 이단척결에 주력하였다. 알렉산드리아학파는 철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입증하려고 하였다. 라틴학파는 알렉산드리아학파는 달리, 기독교를 철학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에 반대하며, 기독교의 역사성과 성경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특히 라틴학파의 키프리아누스는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리고 기독교가 발흥되는 1세기는 노예제도가 최고조에 위치해 있을 때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는 노예제도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 노예사회 안에 보편적인 사랑과 실의 확산과 복음의 변증초기 기독교가 확산될 때에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신인동형적)하여 섬기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 이외에도 로마가 식민지를 구축하며 군인들에 의해 수입되어 온 신비주의적 종교들을 풍요의 신으로 모셨다. 이 당시 로마는 종교다원사회이고,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교적인 특징이 있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배타성과 다른 종교와는 달리 외형적인 신상이 없는 점, 로마가 행하는 황제숭배를 비롯한 국가의식을 거부하고, 희생 제사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불법의 종교로 취급되었다. 즉, 기독교의 반로마적인 성격 때문에,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네로는 64년에 일어난 로마의 화재를 그리스도인에게 전가했고, 기독교인의 핍박은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테르툴리아누스를 비롯한 변증가들은 기독교를 정당하게 취급하도록 호소하였다. 이들은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효과적으로 변증하려 하였다. 또, 이방종교와 이단들의 의식과 종교생활을 비판하며,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적극적인 평화주의적 이상을 강조하여, 우상숭배와 폭력을 반대하여, 군복무를 반대하고, 군사주의를 반 윤리적 행위라고 주장했다.하지만,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64-110년 비두니아와 49-64년에 대단히 많은 수의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말한다. 또, 64년에 일어난 로마 화재 때에도 많은 수가 로마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유다 지방에서 적은 수로 시작했는데, 전 세계로 확장되었고, 기독교는 사실상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성장에는 로마제국이 통일된 제국이기 때문이었다. 통일된 로마제국은 기독교의 복음전파에 있어서 국경을 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이동에 편리했고, 로마의 공공도로가 잘 닦여있었기에, 교통도 매우 좋았고 통일된 언어를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 성장에 유리했다. 또한, 순교자들의 삶을 보고, 불신자들이 감동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되었확장과 수적 성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범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한다.Ⅲ. 로마제국의 종교정책과 기독교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로마 사회는 종교다원사회였지만, 기독교는 불법의 종교로 치부되어, 많은 핍박을 받았다. 로마의 마지막 현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 당시 일어난 로마의 재난이 그리스도인들이 제국의 신을 분노케 한 결과로 보아 기독교를 탄압하였고, 세베루스 역시도 로마의 백성들은 태양이 지존의 신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는 종교혼합정책을 펼쳤으나, 기독교인들은 동참하지 않아 핍박을 하였다. 또, 데키우스 역시도 야만족의 침입, 경제적 위기, 사회적 불안이 옛날 신들을 저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보아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물리적 탄압, 구속, 체포, 처형, 재산몰수, 공민권박탈 등의 고난을 받았다.하지만, 이러한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에 대해 공적으로 증거하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교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순교자의 수에 대해 프렌드는 순교자의 수는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소르디는 탄압 때에 수백명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탄압의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스타크 역시도 이 의견에 동의하여, 실제로 박해한 경우는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고 뒷받침한다. 오리게네스도 순교는 가끔 있어 온 일로도 열거하기도 힘들다고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 필자는 뒷부분에서 비평을 할 것이다.Ⅳ.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 논쟁313년 콘스탄틴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이 되자, 신학적 논쟁들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 논쟁은 핵심은 “예수는 누구인가?”였다. 325년에 첫 번째로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사모사타 바울로부터 시작되어 안디옥의 루시안의 사상을 계승한 아리우스가 성자는 성부와 동일하지 않다고 유사하다는 Homoiousios를 주장하였다. 결론적게 되어, 성자와 성부는 하나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그 후에, 아폴리나리우스는 로고스 기독론의 영향으로 인간은 몸, 영혼, 이성으로 구분되는데, 그리스도는 영혼대신에 로고스가 그 자리에 있어, 죄가 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한 인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안디옥학파에 속하는 네스토리우스는 인성과 신성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리아를 Theotkos(Mother of God)가 아닌 Christokos(Mother of Chirst)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도 예수그리스도의 양성을 두 인격으로 해석했다. 이에 반해 시릴은 신인양성을 강조하며, Theotokos를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엔 시릴은 신성을 중심으로한 신인양성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에는 정치적인 성격이 개입이 되어 있었다. 시릴파는 네스토리우스가 오기전에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버리고, 후에 네스토리우스파는 시릴파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후에 로마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으나 이들은 시릴을 지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후에 유티커스는 단성론을 주장하며,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451년에 열린 칼케돈 회의에서는 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통교리를 확립하였다.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일하고 인간이 되심에 있어서 우리가 동일하다는 양성교리를 정통교리로 확정했다.후기이 책의 장점은 기존의 교회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로마 제국 하에서의 기독교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체로 쓰여 졌을 뿐만 아니라, 아주 생동감 글이 전개 되어, 스토리가 한 눈에 들어오게 하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고 저자는 공동체의 구성원 분석, 예배 장소, 핍박의 이유, 순교 등 여러 가지 주제를 깊이 연구하여 당대의 사회에 각 요소들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여 준다. 그리고 저자는 초기교회사를 통해 한국교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를 읽고필자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나서, ‘왜 죽음에 이르는 죄를 7가지로 정의하는 것이지?’ 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이해되어지고, 저자가 왜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의 순서로 책을 써 내려갔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먼저 7대죄를 우리가 왜 다시 기억하고 연구하는 것일까? 첫째, 영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인 삶은 죄로 가득 찬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 갈 때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없애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 되어 가는 삶이기에,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죄의 문제를 고민하고 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죄의 교리를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여러 덕에 대해 이해를 하고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다. 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을 때에 인간의 변화와 성숙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현 한국 사회는 ‘최순실 게이트’ 사태를 통해 인간의 전적 타락의 모습을 날마다 접하고 있다. 이는 목회자로서, 마땅히 회복해야 할 숙제이다. 의사가 암 환자를 담당하여 진료하는 데, 암세포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 이를 의사가 방관한다면, 그것은 의사로서의 직무유기이다. 의사는 이를 암환자에게 분명히 알려주어야 하고, 치료해주어야 마땅하다. 이와 동일하게 목회자는 죄에 대해 마땅히 가르쳐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게 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목회자 후보생인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먼저, 교만은 “잘못된 높임에 대한 욕구”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교만은 다른 일곱 대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남들보다 자신을 낫게 여겨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진다. 이를 통해 공동체를 조장하게 한다. 이러한 인간적인 교만이 지속되면 영적인 교만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교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공동체 속에서 훈련하며 공동의 질서와 규율을 지키는 훈련을 해야 하며, 늘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둘째, 시기의 죄이다. 시기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슬퍼하는 것”이다. 초점이 항상 상대방에게 맞춰져서 상대방이 더 불행하길 원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시기의 결과는 다툼과 분쟁, 수군거림, 미움으로 나타난다. 시기가 계속되면 입으로 표현되어 남을 험담하는 것으로 표출되기 쉽다. 이러한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한 지체임을 깨닫고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셋째 분노는 “복수하려는 주체할 수 없는 욕구”이다. 이는 선하게 사용하면 의분이 되지만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 자신을 삼키는 죄기 된다. 분노의 원인은 상처에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분노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분노의 치명적인 결과는 파괴성이다. 공동체를 파괴함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파괴하게 만들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은 용서이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께 용서 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타인을 용서해야 할 것이다.넷째 나태는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하지 않고, 관심이 없으며 무기력한 상태”이다. 이는 우울과 연결되어 병리적인 현상까지 이른다. 나태가 죄가 되는 이유는 ‘행하지 않음’에 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행하지 않음을 죄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태한 모습을 이기는 방법은 자신의 삶의 목적과 소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뚜렷한 삶의 목적을 갖게 되면 생활이 변화되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다섯째 탐욕은 “만족을 모르는 욕구”이다. 성경은 욕심이 죄를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탐욕이다. 이러한 탐욕은 우상숭배와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탐욕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족할 줄 아는 자세를 갖고 단순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가진 것을 나눠 줄 때 더 큰 기쁨이 있는 것을 느낀다면 탐욕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여섯째 탐식은 “욕망에 의해 분별없이 먹는 것”이다. 이는 방탕함과 이어져 정욕에 이른다. 탐식이 죄가 되는 이유는 음식에 집착하는 만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으로 깊이 나아가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탐식은 가장 악한 죄 라기 보다는 가장 범하기 쉬운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탐식을 이기는 방법은 육의 양식을 채우기보다 영이 양식을 채우는 기쁨을 누리고 훈련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주어진 음식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일곱째는 정욕은 “통제할 수 없는 과도한 성적 욕망”이다. 우리는 성과 정욕에 많이 노출되어 중독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욕은 육체적 쾌락과 정서적 짜릿함을 추구하고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다. 정욕은 육체에 속한 죄인 것 같지만 근원적으로는 마음과 정신에서 깃든 죄이다. 의지의 약함으로 인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욕을 극복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유혹이 있을 때에 환경이 들어가지 않고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결혼을 통해 정욕과 음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성화의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책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다. 나그네는 끝없는 죄와의 싸움을 거치는 것을 본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우리는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죄와의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는 바울은 음란(πορνε?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있어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소극적인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π?χεσθαι ?μ?? ?π? τ?? πορνε?α?)이다. 적극적인 방법은 하나님을 아는 것(ε?δ?ναι)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 이 죄에 대해 승리를 외치며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목회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은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매쓰를 든 의사의 긴장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통해, 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죄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죄의 경계를 끝까지 놓아서는 안된다. 이러한 경계를 놓아, ‘나는 죄에서 자유할 것이야.’라는 교만한 생각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된다. 목회자 역시도 이 죄에 대해 끝까지 경계하며, 기도하며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를 읽고서론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목숨 걸고 개혁했던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즉, 성경의 참된 해석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를 확대해서 해석하면, 종교개혁은 설교의 개혁이라고 생각된다.고신헌법에서 “설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방편이니 목사는 전심전력하여 진리의 말씀을 옮겨 분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설교자들에게서 생명력 있는 설교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자기의 목회철학에 근거하여, 설교하기 일쑤이다. 하나님의 뜻보다 목회자의 뜻이 더 드러나는 설교를 하고 사람들이 듣기 좋은 설교를 한다. 오늘날 교회의 타락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는데서 출발하였다고 확신한다.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한 지금 목회자의 설교의 개혁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렇다면, 설교의 개혁은 어디에서 부터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 시작은 바로 참된 성경 읽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참된 성경 읽기에서부터 바른 설교가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는『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라는 책을 통해 참된 성경 읽기의 방법을 제시한다.필자는 본론부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에 일곱가지 원리를 제시하고, 책을 통해 배운 점 및 소감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질문과 오독사례들을 소개하고 결론을 맺으려 한다.본론 1 (책 내용 요약)첫 번째, 성경은 천천히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하여, 독서법에 있어서도 속독을 선호하고, 빨리 많이 읽기를 권한다. 김규태는 ‘안구를 빨리 움직이면 두뇌의 기능이 향상되기 때문에, 속독을 하면 두뇌 개발에 좋다’고 주장하며, 그의 책에서 속독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서의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주제는 본문에서 성경의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생각이다. 주제를 찾기 위해서는 각 문장의 주어, 동사, 목적어를 유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또, 문장들을 잇는 접속사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저자의 논증, 사건의 흐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읽을 때, 본문에서 성경의 저자가 말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 성경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읽어야 한다.성경은 독자가 자신의 목적이나 상황에 맞추어 읽을 책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에 맞게 읽어야 할 책이다. 왜냐하면 성경 저자의 의도는 성경의 궁극적 저자이신 하나님 자신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자기 생각을 본문에 집어넣어 읽을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가 본문을 통해 전달하고자 의도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Q.T를 하지만 자기 목적에 맞추어 성경을 읽고 자기 생각과 느낌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한다. 분명 경건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Q.T이지만,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위험이 다분하다. 그리고 저자는 설교자들이 설교의 목적을 먼저 설정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본문을 수단화하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행동은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그렇다면, 어떻게 저자의 의도에 맞게 본문을 읽을 수 있을까? 첫째, 자기의 느낌과 직관에 의존한 읽기방식을 버려야 한다. 성경을 읽다가 가슴을 뛰게 하거나 마음에 와 닿은 경우 단순히 독자의 마음이 끌린 것인지 하나님이 그 구절을 통해 말씀 하시는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관심과 생각과 목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후에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주의 깊게 살피고,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지 질문해야 한다. 셋째, 본문의 중심적인 요소들에 주목해야 한다. 본문 안에서 이차적이거나 지엽적인 것을 가지를 치고 중심 요소들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 저자의 기록목적을 고려해야 한다엇을 위해 일하시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질문해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또,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님 우선적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둘째, 성경의 역사 본문을 읽을 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초점 맞추어 읽어야 한다. 성경은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구성된 장엄한 구속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타락한 자기 백성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 지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셋째, 구약성경을 읽을 때도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읽는 동시에 신약성경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하지만 구약 본문에서 무조건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것은 본문을 잘못 이해하고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고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함이다. 이를 바란다면, 우리의 성경을 읽기는 하나님 중심적 읽기가 되어야만 한다.네 번째, 성경은 문맥 안에서 읽어야 한다.오늘날 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문맥을 무시한 채 성경을 읽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성경은 모든 단어와 구절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일관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읽더라도 문맥을 무시하면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이단의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우리는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앞뒤의 인접문맥, 단락, 본문이 속한 장, 구약 또는 신약성경, 성경 전체 순으로 문맥을 살펴야 한다. 저자는 문맥이 성경해석의 왕이라고 까지 말하며 문맥이 중요한 이유를 3가지를 언급한다.먼저, 문맥은 의미를 결정한다. 둘째,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셋째,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맥 안에서 본문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본문의 한 부분이나 한 구절을 독립된 것으로 읽지 않고 앞뒤 부분과 함께 읽어야 한에,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을 읽어야 한다.그렇다면, 어떻게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을 읽을 수 있을까?첫째, 역사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우리는 성경 저자가 기록하지 않은 역사적 상황,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활동한 연대, 기록연대 등을 아는 것은 성경 본문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둘째, 문화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성경의 고대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간격과 차이를 인식하고 고대 세계 문화에 비추어 본문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지리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이를 파악 한다면, 본문에 나타난 인물들의 상황들을 잘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경제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이 네 가지 측면을 염두해두고 성경의 본래 청중이나 원독자들의 상황들을 고려하며, 본래 독자들에게 의미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후에 성경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솔직히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성경 주석, 성경 개관서, 성경 사전, 성경 지도와 같은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여섯 번째, 성경은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기독교 역사의 초, 중세 오랜 기간 동안 성경 본문의 문자 이면에서 영적인 의미나 신비적 의미를 찾아내는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이 널리 사용되었다. 알레고리의 어원적 의미는 “다른 것을 말함”이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은 본문의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다른 의미를 찾아내어, 성경을 자기가 좋을 대로 해석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에 대해 비판하고 지적했지만, 오늘날에도 설교강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성경본문의 문자의 이면에 있다고 믿는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해석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문자적 해석으로 돌아가야 한다.문자적 읽기는 성경 저자의 의도에 따라 문자적으로 읽어야 할 단어나 구절은 문자적으로 읽고, 비유적으로 읽어야 할 단어나 구절된다.일곱 번째,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은 자신의 뜻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어떤 부분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 다른 본문에서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하셨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의미가 불분명한 본문을 분명한 본문에 비추어 해석한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확립한 성경해석원리로서, 이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두 본문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한 본문을 다른 본문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성경 본문은 다른 본문들이 명확하게 가르치는 믿음의 원리나 진리와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 이는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을 전제로 한다. 셋째, 성경의 어느 본문이나 부분을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본문을 문맥 안에서 주의 깊게 읽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성경을 일관성을 가지고 쓰여졌기 때문에, 본문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마지막으로 성경해석의 주도권은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신 성령하나님께 달려있다. 성령의 주도로 성경읽기의 원리에 따라 성경을 주의 깊게 묵상할 때 우리는 말씀에 사로잡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본론 2 (배운 점 및 소감)이 책은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던 잘못된 성경 읽기 습관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 만 아니라 바르게 성경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특히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성경을 해석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줌으로서, 성경본문을 바르게 자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예시를 제시해 주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배웠던 점을 나의 경험과 결부시켜 몇 가지 서술하여 보려고 한다.이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 전반기 중에 하루 날을 정하여 구약성경을 통독했고, 하반기 중에 하루는 신약성경을 통독하였다. 그런데, 이를 약 8시간 정도의 시간에 성경을 읽는 것에만 치중했으니, ‘성경통독 mp3를 얼마나 빠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