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윤**레미제라블은 18세기 전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장발장의 일대기를 담아낸 소설이다. 장발장과팡틴, 그의 딸 코제트와 혁명가 마리우스, 더하여 자베르와 테나르디에 등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복잡하고도 섬세하게 우연과 필연을 도구로 삼아 쓰여 나가진다. 그 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 다수의 깊은 감정과 신념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집중하며 글을 읽었다.가장 처음 흥미로웠던 것은 장발장의 죄에 대한 벌의 무게였다. 장발장은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필사의 노력을 했으나 결과는 부정적이었고 결국 빵 하나를 훔치게 된다. 이를 이유로 장발장은 5년간의 복역을 선고받게 된다. 고되다는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정도의 옥살이를 하던 중 탈옥을 시도하여 총 19년간 복역을 하게 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빵 하나만큼의 절도에 그만큼의 벌이 합당한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보았다. 장발장은 살기위해 훔친 빵 하나 때문에 친가족과 본인의 청춘, 그리고 미래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장발장에게 사무치는 억울함을 안겨준 그 시대상에 대하여, 또 실제로 존재했을 과거의 법률체계에 대하여 깊은 혐오감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옳다고 여겼을 자베르의 신념을 느끼며 ‘옳은 것은 무엇인가’ 따위의 본질적 물음을 던졌다. 현재의 내가 바라보는 과거의 부당함이 현존하는 부당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닐까? 법률과 도덕의 한도 내에서의 신념은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가두는 법률과 도덕은 옳은 지,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있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그 무엇도 완벽할 수 없다. 과연 내가 가진 신념들은 옳은 것이며 ‘옳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아렸던 이유는 이 책에는 무한한 사랑과 희생이 너무나 처절하게, 또 상세하게 나와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으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 데에는 더 큰 사랑과 희생이 소설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제트를 향한 팡틴과 장발장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었다. 먼저, 코제트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한없이 나락까지 떨어질 수 있었던 팡틴의 무한한 희생이 숭고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팡틴은 망가져가는 와중에도, 자기 비난과 우울함에 미쳐갈 때에도 코제트를 향한 사랑은 자신의 마음 대부분의 것이었고 그러한 감정의 형태는 내가 가져보지 않은 것이었기에 조금은 무섭고도 아름다웠다. 다음은 글 중반부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코제트를 향한 장발장의 사랑이었다. 장발장은 마들렌이 된 이후부터 신이라 불릴 만큼 ‘선’이라는 신념을 지키고 행했기에 많은 이를 위하고 사랑하며 희생했지만 코제트를 향한 사랑과 희생은 느낌이 달라 보였다. 코제트를 향한 감정은 신념을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오는 감정인 듯하였고 코제트를 향한 희생만큼은 장발장 본인을 위한 것(코제트를 제외한 모든 대상에게 행한 희생은 오로지 장발장 본인의 신념을 위한 것처럼 보였다.)이 아닌 코제트 그 자체를 위한 희생인 듯 보였다. 마찬가지로 조건 없는 무한한 희생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숭고하고 충만한 기분이 들었고 알 수 없는 슬픔도 함께 느껴졌다. 사랑과 희생은 뗄 수 없고, 이는 슬픔 까지도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Q1: 장발장은 샹 마티외를 도와주러 갈 때, 혁명군이 있는 바리게이트로 갈 때, 총 두 번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한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내가 가진 어떤 신념을 들먹이며 힘든 길을 택해야 한다고 강요할 때 나는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Q2: 꼬마아이 가브로슈의 죽음은 비통할 만한 일이다. 죽음 앞에서의 그 아이의 초연한 태도가 그 슬픔을 극대화할 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생애와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가브로슈의 감정은 어떠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