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이상은 들어보거나 혹은 그의 작품을 읽어봤을 것이다. 영국의 문학사를 장식하는 대시인이자 극작가인 그는 18세기 이후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4대 비극 중 하나인 에 대하여 서평을 해보자.본격적인 서평을 시작하기 전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알아보자 풀네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알고 있듯 극작가이며 시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읍장으로 중상층에 속하는 경제권을 갖었으며, 유년 시절을 부유하게 살았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대학진학을 하지 못했고 18살에 결혼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를 조사하면서 매우 의아했던 점이 그의 극작 활동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1580년대 후반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1592년에는 이미 그가 손에 꼽을 정도로 두드러지는 극작가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선배 극작가의 질투어린 비판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1590년대의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지배하에 있던 시대인데 문화면에서 많은 창조물이 요구됐던 시기였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그의 능력은 더욱 빛날 수 있었고. 그가 궁에 들어가 간부 단원이 되고난 후 1600년대에 그가 궁에서 쓴 는 그의 최고의 희극이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매우 유명한 4대 비극, , , , 가 씌었다. 네 개의 작품이 모두 다르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선하든 악이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비극적인 작품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분석을 해보자.은 북유럽 민화 '햄릿 왕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희곡이다. 작품의 배경은 13세기 초의 덴마크이다. 등장인물이자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햄릿은 죽은 선왕의 아들이지만 선왕이 죽고난 후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는 선왕의 부인인 거트루트와 결혼을 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렇게 극의 배경이 주어진후 햄릿은 엘시노어 성에서 선왕의 혼령을 봤다는 신하들의 말을 통해 선왕의 혼령을 목격한 곳으로 가서 직접 아버지의 혼령을 만나게 되고 그 혼령은 햄릿에게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귀에 독을 흘려 죽였다며 자신의 복수를 부탁한다. 햄릿은 유령의 말대로 복수 할 것을 다짐하고 기회를 얻기 위해 미친 척을 하지만 혼령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햄릿은 선왕을 매우 따르고 존경해왔다 그렇게 선왕을 그리워하던 주인공이라면 아무리 혼령의 말이라도 전적으로 믿을 법 하지만 혼령의 말을 전부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인공 햄릿의 성격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으 알 수 있었고 작가가 인간 내면의 불안한 세계를 솔직하게 잘 표현 한것 같아 놀라웠다.햄릿은 재상인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어에게 계속 사랑 고백을 해왔지만, 선왕의 혼령을 보고 난 뒤로 오필리어 한테 까지 천박한 것이라 욕하며 수녀원으로 가라고 소리치는 등 미친 척을 한다. 사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한테까지도 거짓으로 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매우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햄릿의 성격을 개연성 있게 만들어서 좋았다. 또한, 햄릿의 조심스럽고 눈치가 빠른 성격인 것을 보여주는 다른 장면이 있는데, 바로 현재 덴마크의 왕인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친구인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을 햄릿에게 보낸다. 하지만 바로 알아차리고 그들에게도 미친 척을 하는 장면이다. 명석하고 조심스러우며 눈치가 빠르다.이러한 햄릿의 성격으로 혼령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을 고안해 내는데, 때마침 수도의 비극 배우단들이 연극을 보여 주려고 들렸다. 햄릿은 그들을 이용해 혼령이 말한 것처럼 극을 꾸며 혼령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았다. 클로디어스를 시험하는 극이 시작되고 독살 장면이 시작되자 클로디어스는 갑자기 일어나 그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를 통해 햄릿은 혼령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연극으로 충격을 받은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영국으로 추방하면서 햄릿을 죽이라는 밀서를 함께 보낸다.이를 모르는 여왕, 거트루트는 이유를 알기 위해 아들인 햄릿을 자신의 방으로 부르고 어머니의 방으로 가던 햄릿은 자신의 방에서 기도 중인 클로디어스를 발견한다. 클로디어스를 죽이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등을 보이며 기도 중인 그였기에 바로 달려가 칼로 찌른다면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햄릿의 성격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바로, 죄인을 기도 중에 죽여 천국에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죽이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여기서 종교적인 문제가 같이 섞여 있는데 사실 아무 신도 믿지 않는 나에게는 매우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에게 기도를 드릴 때 만큼은 아무리 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어도 용서를 받는다는 이유로 햄릿이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길 꺼렸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적 문제를 사용한 것이 그 당시의 서양인들의 문화에서는 극중 주인공 성격의 개연성을 높여 좋았겠지만 나 같은 무종교인에게는 조금 아쉬웠다.그렇게 클로디어스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거트루트의 방으로 간 햄릿은 어머니의 방 커튼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엿듣는 왕인줄 알고 죽이지만 그는 재상, 폴로니어스였다.이 소식을 들은 오필리어는 미쳐 자살하게 되고 레어티스는 이 모든일이 햄릿 때문이라는 클로디어스의 속임에 넘어가게 된다. 이 와중에 햄릿은 포로가 되어 다시 덴마크로 돌아오게 된다. 클로디어스가 복수의 기회를 주겠다고 하며, 칼날에 독을 뿌린 후 검술대회를 개최할 것이니 이 칼로 햄릿을 죽이라 말한다. 여기서 클로디어스가 매우 악랄하다고 느껶는데 햄릿이 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독이든 성배 즉, 독이든 포도주까지 준비해놓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람을 죽일 계획을 세우지만 자신이 직접 죽이진 않는다 자신의 손이 더러워 질까봐? 그렇다면 선왕을 죽일때는 왜 자신이 직접 독을 흘러 넣은 것인가? 여러 의문이 들면서도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클로디어스의 성격을 매우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작가의 시대적 배경부터 파악해 보자.죄와 벌의 작가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같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얼굴로 알려져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는 러시아의 봉건적,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체제가 들어서는 과도기적 시대였다. 즉, 사회의 주도권자였던 귀족들 대신 도시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혁명을 일으킨 시대였다. 또한, 농노제의 강압적 정책과 자본주의적 착취, 이 둘의 모순 속에서 그와 그 당시의 젊은 사람들의 이러한 고민을 , , 등 여러 작품에 반영했다.이후의 작품들은 시대의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키고 동시에 인간회복의 근본문제를 제시하는 점에서 그의 작품의 특징을 알 수 있다.작가의 배경중 주목해야할 다른 점은 1849년 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다른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4년 동안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는 것이다. 그 4년 동안 인도주의자, 공상적 혁명가에서 슬라브적인 인종사상가로 변했고 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죄와 벌을 짧게 소개하자면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이성을 맹신하여 사상적 살인과 생계형 살인을 저지르는 가난한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동시에 이성과 마음속 감정의 분열을 아주 자세히 묘사한 소설이다.다시 자세히 소개하며 비평해 보자면, 1800년대 후반, 러시아의 봉건적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는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가난한 법대 중퇴생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야기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대도시에 있는 빈민가의 5층 하숙집 꼭대기에서 하숙비가 잔뜩 밀려있어 주인을 피해 다닐 정도로 매우 어렵게 살아가는 가난한 대학생이지만 일종의 지식인이다. 또한 지식인 이기에 당시 사회에 부조리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다.그의 어머니는 국가에서 주는 약간의 연금과 잡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의 살고 있었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은 어느 지주 집의 가정교사로 있었으나 집주인과의 연애아닌 연애로 안주인에게 내쫓겨 가정교사 자리 마저 잃게 되어 어려운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어려운 형편이다.이러한 형편 때문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졸업을 해서 돈을 벌어 가정을 도우려 했으나 학비는커녕 하숙비도 못 내는 현실이다.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비싼 대학 등록금과 높은 취업의 문턱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 둘다 놓치는 대학생, 취업 준비생들의 모습 같아 보였다. 여기서 이 문학은 1866년에 쓰여졌지만 19세기 20세기를 넘어 현 세기까지 넘나들며 고독한 현실을 아우르고 있다고 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힘든 현실 속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바꾸기는 더욱 힘든 러시아 사회의 과도기 속 어두운 하숙방에서 소심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의 처지와 강자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사회의 질서, 도덕을 짓밟아도 된다는 결론과, 불만을 품고 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조금의 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들린 전당포에서 주인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만나고, 그녀는 고리대금으로 타인의 어려움과 그들의 사정을 전혀 이해하거나 봐주지 않고 칼 같이 빌려준 돈의 이자까지 받아내는데 그런 그녀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생각한 결론과 가치관에서의 강자였다.그런 노파를 보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사회악인 강자 즉, 노파를 죽이는 것이 불합리를 없애는 것이 사회에 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다시금 놀라웠던 것은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이면 상황을 정당화 시켜버리는데 너무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 속에서 어떠한 사상에 사로잡힌다는 것도 그렇고 그 사상에 취해버렸을땐 더더욱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보면서 그렇다.살인을 결심한 라스콜리니코프는 계획을 세우고 머릿속으로는 여러 번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의 부조리함에도 방안에만 있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쉽게 살인을 저지르진 못한다.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우연한 기회로 만난 전당포 주인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여동생인 리자베따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알료나 이바노브나가 무방비 상태에 있어서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와 그녀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듣게 된다. 그 이야기와 소문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도끼를 들고 노파의 전당포로 찾아가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고, 전당포를 찾아간 라스콜리니코프는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빈틈을 보고 살인을 저지르고 그녀의 돈까지 훔치며, 목격자였던 백치 리자베타까지 죽이는 우발적인 2차 살인까지 하게 된다. 여기서 주인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는데 멈추지 않고 돈까지 훔치는 것을 보아 결코 사회의 공헌만이 살인 동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원초적인 살인의 동기를 미처 다 포장 못 한 사회적 동기 사이의 모습을 그 행동으로 묘사한 장면은 작가에 대한 감탄을 불러일으켰다.예상치 못한 살인까지 저지른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는 죄의식 때문에 유발되는 극도의 불안감 증세와 함께 그토록 견고하고 단단했던 그의 세계는 몽롱하게 녹여 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는 의도뿐만이 아니라 돈까지 훔침으로써 살인의 정당성 붕괴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부터 작가가 그려낸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 묘사는 끊임없는 실험과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관습에 벗어난 대단한 필력이었다.결국 그의 불안증세와 몽롱한 정신은 경찰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주목하게 하는데,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는 술집에서 만난 퇴직관리인 마르멜라토프의 딸인 소냐를 만나는데,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가족들을 위해 몸을 팔며 살아가는 여인이지만 순수한 영혼을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울하고 자기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사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소냐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였을까하느 생각에 휩싸였지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 인류의 고통 앞에 엎드렸다”라는 구절과 함께 엎드려서 그녀의 발에 키스한다.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땐 단순한 연민의 감정으로 행동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살인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에 대한 감동과 또한 사랑의 감정 등이 섞인 복잡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또한 소냐의 역할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새로운 감정을 선물한 것에 끝나지 않고 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데 바로 자백이다. 즉, 자신을 보러온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 까지 마다하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죄를 사회에 대한 공헌이 아닌 진정한 죄로써 인정하고 자백한다. 소냐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소냐는 그의 내부에 뭉쳐진 죄의식과 고통을 풀어주는, 일종의 정화작용기 같은 사람이엇을까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의 설득으로 자백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소냐 역시 라스콜리니코프를 책임지며 그에게 계속 사랑을 전하기 위해 시베리아의 유형 길까지 함께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