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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힐 권리의 필요성
    잊힐 권리의 필요성잊힐 권리는 말 그대로 개인이 밝히기 껄끄러운 부분들을 사람들로 하여금 잊게 할 수 있는 권리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상에 자신이 오래전에 남겼던 혹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남이 올렸던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된 글, 사진, 동영상등의 기록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과거의 기록들로 인해 현재나 미래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잘나가던 연예인들이 옛날에 푸념 삼아 적었던 글이 네티즌에 의해 적발되어 많은 비난을 받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숨기고 싶은 과거의 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생전에 남겼던 기록들이 인터넷상에 남아 유령처럼 떠돌 수 있다는 생각은 죽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까지 매우 불쾌하게 만든다.이와 관련된 사례로는 ‘디지털 유산’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이슈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으로 인해 젊은 장병들이 숨지면서, 그들의 미니홈피와 이메일에 유족들이 접근을 요청하면서 비롯되었다. 결국 유족들의 요청은 사업자의 정보 통신망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거절되었고, 아직도 전사한 젊은 장병들이 생전에 남긴 기록들은 인터넷상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들에게 잊힐 권리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 혹은 권리의 하나로써 보장받아야 된다는 이유로 지지받고 있다.그렇지만 역시 잊힐 권리에 회의적인 입장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빅 데이터’와 관련이 깊다. 빅 데이터는 인터넷상에 산재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을 분석해서 가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하여, 이를 의사결정이나 미래예측 등에 사용하는 최신 기술이다. 이를 통해 인류는 더 나은 결정과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중한 사람들의 발자취, 즉 개인의 데이터들을 삭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해서 잊힐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들은 빅 데이터라는 기술에 의해 세상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러므로 그 정보들은 결코 정보주체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에는 “이를 삭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 및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하는 학술적 견해가 뒷받침한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잊힐 권리를 지지한다. 빅 데이터가 인류를 유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빅 데이터는 오히려 인간들을 구속하는 현대의 ‘디지털 판옵티콘’ 혹은 ‘빅 브라더’로 변질될 여지가 크다. 그 이유는 빅 데이터가 개개인의 정보들을 전부 저장하며 그 정보를 분석한 결과는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정보가 곧 권력이 된다는 의미이다. 저장된 수많은 정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그 방식이 개인들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시 말해, 빅 데이터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은 인간을 진보하게 할 수 있지만, 또한 해칠 수도 있다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8.04.28| 1페이지| 1,500원| 조회(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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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교와 시크교 평가A+최고예요
    인도의 이슬람교와 시크교- 종교 간의 충돌이 새로운 종교를 낳다.누군가가 인도의 종교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힌두교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도 힌두교는 인도의 국민 80% 이상이 믿으며, 인도의 사상적 뿌리를 이루고 있는 독보적 지위의 대표적인 종교라 할 수 있다. 인도인에게 힌두교는 삶의 방식이며 문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 이슬람교가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종교가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이슬람교라 하면 일반적으로 중동지역에서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이슬람교라고 하면 생소하지만 관심이 가는 주제이다. 그리고 인도의 민속종교인 힌두교와 외래종교인 이슬람교가 충돌하여 새로운 독자적인 종교‘시크교’가 탄생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고대 인도는 힌두교가 지배하는 사회로서 카스트 제도에 철저히 속박되었으며 종교는 소위 바라문 계급의 특권으로 전락되어 있었다. 인도는 사람들에게 각자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의무를 수행하도록 강요되는 사회였다. 카스트 제도는 피부색 또는 직업에 따라 크게 네 가지 계급으로 구분된다. 사제계급인 브라만, 군인계급인 크샤트리아, 상인계급인 바이샤, 천민계급인 수드라가 그것이다. 카스트 제도는 매우 엄격하여 다른 계급 간의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고, 힌두교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어 있어서 브라만을 제외한 계급의 사람들은 경전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즉, 계급 간의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구조였다. 이러한 계급은 고착화되어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만남은 무슬림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다. 이슬람교는 7~9세기에 걸쳐 중동,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휩쓸었다. 이러한 이슬람교의 정복자의 칼은 인도까지 닿았다. 8세기 초에 아랍 무슬림의 인도 침략이 시작된 것이다. 침략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의 파키스탄의 지역 부분까지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11세기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에서부터 16세기의 무굴 제국군들에 이르기까지 인도 북부의 펀자브 지방은 무슬림들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받았다. 결국 14세기에는 데칸 지방에 이슬람 왕국이 설립되었고, 16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강력한 무굴제국이 대부분의 인도를 지배했다. 이렇게 인도에 이슬람교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고 두 종교의 충돌이 벌어졌다.본래 엄격한 종교적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인도 사회에 이슬람교의 도래는 커다란 충돌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종교는 거의 상극이라고 할 만큼 서로 매우 상이한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힌두교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신을 섬기는 다신교이다. 이에 반면 이슬람교는‘알라’라는 유일신을 숭배한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엄격한 종교적 계급이 존재하고 이를 지켜야하는 의무가 있는 힌두교와 달리 이슬람교에서는 오로지‘알라’만이 절대자이며 그의 피조물인 모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의 차이뿐만 아니라‘알라’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교도라는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이슬람교의 등장은 인도에 엄청난 갈등과 혼란을 만들어냈다.이슬람교 군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으며, 재물을 약탈했고, 집은 물론 힌두교와 불교의 유적과 사원들까지 파괴했다. 또한 힌두교도에게 칼을 들이대며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고 금하는 한편, 힌두교도가 어머니라 부르며 숭상하는 동물인 소를 식용으로 삼았다.이러한 강압적인 이슬람의 포교방식은 효과적이었다. 그것은 1947년 인도에 무슬림이 모두 1억 명이 넘었다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힌두교도나 불교도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하층 계급층이 볼 때 이슬람교는 매우 매력적인 종교라는 점이다. 이슬람교는 평등주의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개종하게 되면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천한 직업을 떨치고 무슬림의 행정과 군대 내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이는 하층 계급층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 것이다.그리고 힌두교도들이 개종한 다른 이유는 이슬람교의 수피즘이 인도의 신비주의자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수피들이 사용하는 신비주의 방법은 많은 힌두교도들에게 익숙한 것이었고 이슬람의 셰이크와 삐르들은 힌두 성자들과 유사했다. 이러한 이유로 힌두교도들은 이슬람 신비가인 수피들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고, 수피의 경건한 귀감들이 수많은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잘 규정된 코란에 근거한 법은 인생과 구원에 대해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도 이슬람교 개종에 한 몫 했다. 이런 이유들이 모여 인도의 이슬람교 부흥을 이끌어 낸 것이다.이처럼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인도 내에서 충돌하는 가운데 두 종교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새로운 종교가 있으니 그것이‘시크교’다. 시크교는 이슬람 세력의 인도 도래 이후 이슬람과 힌두교의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시도로 15세기 후반에 등장한 종교이다. 이 종교를 처음 일으켜 세운 사람은 나나크인데, 그는 카비르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시크교의 창시자 나나크는 1469년 펀자브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소에 나무 밑에 앉아 명상에 잠기거나 인근 숲속에 사는 이슬람교나 힌두교 성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나나크는 베인 강으로 멱을 감으로 갔다가 그만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그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이라고 여겼지만 놀랍게도 실종된 지 삼 일 만에 그는 실종되었던 그 장소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나크가 말하길 삼 일 동안 자신은 절대자와 교감을 나누는 모종의 신비 체험을 했고, 세상 사람들에게 신성한 이름(남,nam)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절대자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오, 나나크. 그대는 남 속에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켰다. 이제 세상에 나가서 그대의 출생 목적이기도 한 일을 수행하라. 칼리 유가의 사람들은 끔찍한 삶을 살고 있으며 정신이 지극히 퇴보해 있다. 그들은 갖가지 신들에게 예배하며 성스러운 이름을 잊고, 죄악 속에 빠져있다. 가서 성스러운 이름에 대한 사랑에 헌신을 가르치며, 지상의 업보를 줄여 주거라.”비록 위의 이야기에서는 나나크가 신비체험의 온전한 결과로 종교를 창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의할 것은 나나크가 태어난 곳이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충돌이 많았던 펀자브 지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나크는 어려서부터 대립되는 두 종교의 성자들을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취합하다보면‘시크교’는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충돌에 대한 영향으로 만들어진 개혁종교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나나크는 진정한 종교는 내면성에 있고, 신을 만나는 심성의 분비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형식적인 의례를 부정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고행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라 보았기 때문에 카스트와 성적 차별도 부정하였다. 그러면서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들을 고루 비판하며 시크교는 교세를 넓혀갔다. 또한 시크교는 종교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그 결과 술, 마약, 담배를 금지하였고, 보통의 직업에 종사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은 시크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에고이즘(egoism)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본래 내면 안에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한다. 그런데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왜 신과 분리되어야만 하는가? 그것에 대해 시크교는 에고이즘에 빠져서 그렇다고 바라본다.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신과 분리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고 고통 받는다. 따라서 사람은 이러한 에고이즘을 극복할 때 평화를 얻게 된다. 이것이 신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기도 한 것이다.유일신을 믿는다는 점에서 시크교는 이슬람교와 유사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시크교는 이라는 독자적인 경전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만의 종교적 의식과 관례를 구축했다. 그 중 흥미로운 부분은 시크교도들은 다섯 개의 K를 걸친다는 점이다. 깎지 않은 머리(kes), 빗(kangha), 칼 또는 단검(kirpan), 손목 보호대(kara), 짧은 바지(kach)가 그것이다. 그리고 시크교는 윤회라는 힌두교 사상을 계승하고,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신과 합일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것은 세상은 단 한번만 살아갈 수 있고, 알라에 대한 믿음의 유무에 따라 사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이동한다는 이슬람교와 다르다. 또한 인도 전통종교인 힌두교와도 달랐다.
    인문/어학| 2018.04.28| 4페이지| 1,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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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타난 톨킨의 세계관과 오리엔탈리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타난톨킨의 세계관과 오리엔탈리즘Ⅰ.내용 요약영화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인 중간계를 배경으로 한다. 어둠의 왕 사우론은 동쪽에 위치한 모르도르의 땅에서 모든 종족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킨다. 그 전쟁으로 중간계는 혼란에 빠지고 사우론의 군대와 인간과 엘프의 동맹군이 맞붙는다. 그 결과로 사우론은 힘을 잃고 반지는 실종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절대반지는 호빗인 프로도의 손에 돌아가게 되고, 동시에 사우론의 영혼은 반지를 되찾기 위해 다시 전쟁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한편 중간계의 평화를 위해 여러 종족들은 회의를 거쳐 모르도르의 용암에 찾아가 그 곳에서 절대반지를 파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절대반지를 파괴시키기 위한 반지원정대가 구성되고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종족들의 동맹군과 모르도르의 오크군대, 코끼리군대 등이 맞붙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절대반지는 파괴되고 사우론은 소멸하며 중간계는 평화를 되찾는다.Ⅱ. 발췌 논평1. “모르도르의 땅 운명의 산의 용암에서, 어둠의 왕 사우론이 비밀리에 절대반지를 만들었다. 그는 이 반지 안에 자신의 잔악성과 악의와 모든 생물을 지배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우선 중간계의 지도상에서 모르도르는 동쪽에 위치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톨킨이 영국 태생임을 감안할 때, 영국 기준으로 모르도르는 지구상에서 터키와 페르시아 지역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모르도르는 척박한 환경을 가진 곳으로 그려지며, 그 곳에는 어둠의 왕이 있으며 그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서양인들이 동양에 가지고 있던 일종의 공포심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서양인들은 동양에 의해 공격을 받아온 역사가 존재한다. 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그리스인, 훈족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도망쳐온 게르만족,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함락된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이처럼 영화 속에서 모르도르 지역이 절대악이 도사리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은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 즉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2. 흉악한 외모를 가진 오크가 나무를 베고 철제 무기를 만들며 무장하는 장면, 끈적한 막을 찢으며 괴상한 방식으로 태어나는 오크의 모습- 모르도르의 군대는 오크가 대다수이다.(영화 속에서는 오크를 개량한 하이 오르크가 나타나지만 간편히 오크라고 하자) 그런데 이처럼 나타나는 오크의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모르도르의 지역이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의 왜곡된 공간이라고 한다면, 오크는 모르도르에 거주하는, 즉 동양인의 왜곡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그 근거를 들자면 오크의 외모적 특징에서 알 수 있다. 오크는 일단 서양인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작은 키와 넙데데한 얼굴형, 뾰족 튀어나온 광대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외모적 특징은 휴먼, 엘프 등의 종족에서 나타나는 서양인의 외모와 대비된다. 또한 머리스타일을 보면 오크는 대부분 변발이라든지 대머리를 하고 있다. 이를 비추어볼 때, 옛날에 북유럽을 침략하여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몽고군의 외모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흉악하게 생긴 오크와 같은 모르도르의 구성원들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Ⅲ. 서술 논평영화 ‘반지의 제왕’은 J.R.R. 톨킨의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톨킨은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 등 유럽 신화들을 혼합하고 재구성하여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톨킨의 세계관에서는 기존에 있던 신화적 요소들을 차용한 부분이 존재한다. 예컨대, ‘절대반지’는 북유럽 신화에서 나타나는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반지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그리고 엘프, 오크, 트롤 등 종족들도 또한 북유럽 신화와 켈트 신화에서 차용하여 톨킨이 재구성하여 만든 창조물이라 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비추어 봤을 때 앞서 발췌논평에서 논했던 오크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톨킨의 세계관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지역의 신화의 영역까지 확장된다. 매우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던 유럽 신화에서 오리엔탈리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크가 그렇도록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양(몽고족)의 군대에 맞서다 패배한 유럽의 군사들이 자신들의 패배를 합리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을 설이 유력하다. 자신들이 패배한 이유는 바로 적의 군대가 바로 괴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에서 오크가 늑대와 거대한 코끼리 부대를 이끄는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전쟁,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등, 서양이 동양과의 전쟁에서 받은 인상으로 형성된 이미지인 것이다. 이러한 동양에 대한 서양의 낯섦과 공포가 오크라는 왜곡된 동양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문/어학| 2018.04.28| 2페이지| 1,500원| 조회(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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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적 사고의 매력 -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과 『곰에서 왕으로』를 읽고 평가A+최고예요
    신화적 사고의 매력-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과『곰에서 왕으로』를 읽고수많은 신화 관련 도서 중에서 책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과 『곰에서 왕으로』, 이 두 권을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개인적으로 어떤 특정 장소의 신화 이야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신화학 그 자체를 알고 싶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두 책의 저자가 같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권의 책은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강의들을 기록한 것이었는데, ‘카이에 소바주’라는 이름의 시리즈 형식으로 나온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은 내용상 연속적으로 신화학에 대해 이해할 기회를 제공해줄 것으로 생각했다.그 생각은 옳았다. 카이에 소바주의 첫 번째 시리즈인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는 훌륭한 신화학 입문서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신화를 바라봐야 하는 시선을 분명히 제시해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의 형태라는 것이다. 철학이 탄생하기 전부터 신화는 존재해왔다. 신화는 문자가 발명되기 전부터 구전으로 이야기 형태로 전해져왔다. 그 최초의 인간들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는 결코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혜를 담은 것이다. 그 지혜는 이야기의 형태로 저장되어 신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가장 오래된 철학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신화에 대한 시각은 신화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최초의 인간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우리가 그들의 지혜로부터 배울 것은 무엇이 있을까? 등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적 탐구 작업은 역사학이나 철학이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역사학이나 철학은 드러난 것들을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맞추어 분석하는 것에 비해 신화학은 ‘신화적 사고’를 이용하여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신화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최초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지혜를 이야기로 저장할 적에 결코 허투루. 신화적 사고를 통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고하는 틀에서 벗어나 신화 속으로, 그러니까 최초의 인간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이 신화에 나타나는 논리가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화 논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오해는 신화의 속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고, 표면적 해석에만 그친 몰이해로 나타난 오해인 것이다. 신화를 파고들다 보면 신화 논리는 매우 견고하고 복잡한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아름다운 지혜들로 가득 차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곳에는 어떤 편협한 흑백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원활하게 정립하고자한 최초의 인간들의 따뜻함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신화적 사고의 매력을 밝히기 위해 세세하게 책의 내용들을 곱씹어 보도록 하겠다.우선 신화의 논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신화는 겉으로 볼 때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는 비약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신화가 ‘감각의 논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인다. 감각의 논리란 오감의 구체적인 감각을 소재로 전개하는 논리인데, 그러한 소재를 상징에 결합시킴으로써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신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나나와 돌과 관련된 인도네시아(포소족)의 신화를 들 수 있다. 태초에 인간은 신이 내려준 바나나를 먹으며 영원히 살았다고 하며 신화는 시작된다. 그런데 어느 날 바나나 대신에 돌이 내려오자 인간들은 돌을 거부하고 바나나를 요구했다. 그러자 신은 돌을 받았다면 인간의 수명은 돌처럼 단단하고 오래 지속되었을 텐데, 이를 거부하였으니 인간은 앞으로 바나나처럼 수명이 짧고 썩고 말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로 인간은 수명이 짧아지고 죽음이 생겼다고 한다. 이 신화를 표면적으로 보면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신화를 신화적 사고를 통해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 신화는 쥔 것은 제비 똥이었고 그 구혼자는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는 결말로 끝나지만 연석과 제비라는 소재는 더욱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그것은 ‘새집 뒤지기’라는 주제로 심화해서 다루어져야 한다. 제비집에 있다고 전해지는 연석은 순산의 기능, 눈병의 치유 등 긍정적 효과를 가진 상징이다. 그런데 이런 상징은 새집 뒤지기라는 주제에서 성적인 관련성을 갖기도 하다. 이는 새집을 뒤지는 민간풍습과 연관되는데 사춘기 무렵의 소년에게 성교육으로서 행해졌다고 한다. 새집을 뒤지는 행위(연석을 찾는 행위)로 느껴지는 감각이 다양한 성적인 체험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가구야 공주의 논의로 돌아와서 연관된다. 얻기 어려운 여자(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가씨)를 취한다는 의미와 관련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매우 남성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속하지만, 새집 뒤지기라는 주제와 연석이 연결되어 그렇게 복잡하고 견고한 신화 논리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은 놀랄 만 하다.연석은 이정도로 마치고 남은 제비라는 소재를 다루도록 하자. 제비라는 소재는 사실 콩과 매우 유사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콩이 가진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콩은 입춘에 관한 풍습과 관련이 있다. 콩을 던지며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콩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의 회로로서 기능한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소통의 회로를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는 매개체가 콩이기 때문에 콩은 ‘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콩은 또한 인디언 사고에서도 양의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콩은 남성의 고환 혹은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동시에 상징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중재하고 환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콩에서 나타나는 ‘양의성’과 ‘중재성’은 제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민간에서 나타나는 시나 민요에서 제비는 겨울을 가르며 모습을 나타내서 봄을 알리는 새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제비는 겨울과 봄, 건조와 습기, 어둠과 밝음을 중재하는 양의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의적 상징들은 신화시대의 인간들의 한 그 고리는 북미 대륙을 북상해 베링 해협을 건너서 동북아시아로 이어진다. 대륙 쪽에서는 아무르 강 유역 근처에서 약간 끊어지는 양상이 나타나지만, 그 대신 사할린 섬과 훗카이도를 통과해서 일본 열도로 들어가 또다시 중국의 남서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고리의 모양이다. 저자는 이 고리모양에 속하는 지역들이 어느 정도 물질적, 정신적 문화를 긴밀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토대는 ‘오리쿠치 시노부’의 고대 연구와 관련되어있다. 그는 일본의 문화 중 하나인 ‘다마’와 북서해안 인디언의 문화 간의 공통점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다마를 하는 행위는 일본에서 영혼의 힘을 증가시키는 제의라는 점이 그 인디언의 ‘꽃 제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겨울 시기에 춤을 추기 위해 무대를 마련하고 마을의 신사에 모인 사람들이 밤새 내내 ‘유다테’를 행한다. 새벽이 되면 커다란 가면을 쓴 귀신이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등장해 정화시키고 새해의 풍요를 기원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제의를 행한다. 이처럼 겨울을 영혼의 힘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일본열도와 북서해안 인디언들을 연결 지은 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의 주장은 여러 측면에서 신빙성을 더한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저자가 이 고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일본의 ‘조몬 문화’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신석기 문화라 말해도 무방한 것을 굳이 조몬 문화라고 기술한 것은 저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주요 독자층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비록 그렇더라도 저자의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직접적으로 기술되어있지는 않지만, 그 고리 모양의 지역들의 문화적 원류가 바로 일본이라는 논리를 은근슬쩍 열어두었다는 찝찝함이 남는다.『곰에서 왕으로』의 내용은 대부분 신화시대의 ‘대칭성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다. 그리고 대칭성의 사회에서 비대칭성 사회, 즉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야만의 탄생을 설명한다. 이는 신화적 사고를 확장시켜 사회학까지 포용하려는 일종의 시도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금은 야생염소의 발정기이며 막내아들에게 그 일에 동참하기를 요청한다. 그에게 털가죽을 입히고 그는 야생염소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는 사흘 동안 모든 암컷의 야생염소들과 성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아내는 이제 당신은 훌륭한 사냥꾼이라며 활과 화살을 돌려줬다. 왜 훌륭한 사냥꾼일까라는 물음에 아내는 “당신은 이제 야생염소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야생염소의 사체를 다룰 때 모든 경의를 표해야한다. 그리고 당신은 모든 암염소들과 관계를 가졌으므로 그들은 모두 당신의 아내이며 그들의 자식은 당신의 자식이다. 그러니 당신은 수컷 염소만 잡도록 하라.”고 했다. 그 후 다시 돌아간 막내아들은 야생염소의 사체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었다. 훌륭한 사냥꾼이 된 것이다.이 톰슨 인디언의 신화는 대칭성의 사회에서 매우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동물 간의 평등한 관계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과 야생염소는 말 그대로 가족관계와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인간과 염소간의 결혼으로서 설명되어지는 것이다. 비로소 젊은 사냥꾼이 야생염소에 대한 속 깊은 공감과 이해가 전제가 되었을 때, 그는 훌륭한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신화 이야기는 일종의 에콜로지(ecology) 과학이 반영되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막내아들에게 그의 아내는 암염소와 새끼염소는 죽이지 말고 숫염소만 잡으라는 규율을 제공한다. 이는 염소 무리의 번식을 생각해서 나온 일종의 배려일 것이다. 이처럼 인디언의 철학은 생태계에 대한 배려와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를 합리적인 형태로 결합시키는 노력을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인간과 동물의 대칭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일종의 증여관계이다. 앞서 나온 야생염소의 이야기에서는 그러기 때문에 ‘숫염소를 쏴서 고기와 털가죽은 얻는’ 변명에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고대의 영속적 결혼에서 일반적으로 다른 남자에게 누나나 여동생을 아내로 준 남자.
    인문/어학| 2018.04.28| 7페이지| 1,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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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어떤 휴머니스트' 에세이
    소설 ‘어떤 휴머니스트’에 나타난보편성에 의한 폭력만약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휴머니즘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모두가 인간에 대한 사랑, 배려, 존중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휴머니즘이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개념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도 휴머니즘을 인류의 보편적인 개념으로 규정짓는 것이 합당한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한 가지 가정을 세워보면 답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만약 비서구의 입장에서 서구의 개념인 휴머니즘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보편성을 가장한 폭력이다. 휴머니즘은 인류의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구의 사상과 제도에서만 적용되는 개념인 것이다. 비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보편성에서 배제시키는 폭력으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는 보편적으로 보이는 휴머니즘이 사실은 특정 집단의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휴머니즘이라는 보편성에 의한 폭력은 소설 ‘어떤 휴머니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 ‘어떤 휴머니스트’는 나치가 독일을 다스리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두 인간 유형이 등장한다. 한 유형은 ‘칼 뢰비’라고 하는 유태인으로, 그는 민주주의를 믿는 쾌활한 낙천주의자로 묘사된다. 그는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는 시기에 외부와 단절된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인간에 대한 신뢰, 즉 휴머니즘을 숭배하며 자기 위로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다른 유형은 ‘슐츠 부부’로 그들은 뢰비의 하인 부부로서 유태인인 뢰비를 나치로부터 숨겨주고 그의 공장을 대신 운영한다. 부부는 외부세계와 분리되어 자기 위로만을 하는 뢰비와 달리 공장의 생산력을 증가시켜 국가를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인다.이 소설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그 ‘어떤 휴머니스트’는 ‘칼 뢰비’이지만, 사실 휴머니스트는 ‘슐츠부부’인 것이다. 왜냐하면 뢰비의 휴머니즘은 서구의 사상과 제도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환상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뢰비는 내적인 믿음만 가질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외부세계와 단절된 삶은 살아간다. 반면에 ‘슐츠부부’의 휴머니즘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진정한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나치라는 소속 집단에서의 가치를 위해 힘쓰는 슐츠부부야 말로 이 소설에서 말하는 그 ‘어떤 휴머니스트’임이 분명하다.
    인문/어학| 2018.04.28| 1페이지| 1,000원| 조회(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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