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 Angry Men” 감상문예과 2학년 2학기를 시작하면서 ‘생명과 윤리’ 과목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과제는 “12 Angry Men”이라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12 Angry Men”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는 영화의 내용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12명의 화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라면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것이 생명, 윤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매우 궁금했습니다. 저는 “12 Angry Men”을 유튜브에 검색해보았고 그 결과 흑백 영화가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색이 있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흑백영화인 것을 보고 너무 오래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보게 된 영화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하지만 96분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것 같습니다. 장소의 이동 없이 처음에 법정에서 시작해 배심원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액션영화들처럼 매우 흥미진진했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이 영화는 재판이 끝나고 12명의 배심원들이 회의실로 이동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재판하는 과정은 영화에 직접 연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건 때문에 재판이 일어났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12명의 배심원들이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 농담 등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후, 회의를 시작하게 되는데 처음의 투표수는 11대 1로 피고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홀로 피고가 무죄라고 투표했던 8번 배심원은 피고가 무죄인지 유죄인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11명이 유죄라고 투표를 한 이상 이야기를 해보지도 않고 자신마저 유죄라고 투표를 해서 피고, 소년을 죽이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다며, 우리가 한 사람의 생사를 5분만에 결정할 수 없으니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일단 놀랐습니다. 뭐 영화가 진행되려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지만 영화의 재미, 이런 것을 떠나서 5분만에 생사를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그러게, 배심원들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5분도 안되는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까, 그들이 법적인 지식이 풍부한 것도,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닌데 겨우 며칠 재판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피고의 죄를 확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8번 배심원을 제외한 다른 배심원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재판을 지켜본 결과 당연히 피고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확실하다고 모두 단정짓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이것에 대해 더 얘기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피고가 무죄라기보다는 ‘유죄가 아닐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내세웠습니다. 모두가 유죄라고 말하고 유죄가 아니라고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말할 때,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8번 배심원의 모습은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소년이 불쌍해서 유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재판 때 들었던 증인들의 증언, 피고의 주장, 증거물, 경찰의 주장 등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유죄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우는 모습이 정말 논리적으로 보였습니다. 우선 영화의 결말을 보면 12명 모두 피고가 무죄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영화를 끝까지 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진짜 위에서도 얘기한 부분인 제일 처음에 8번 배심원이 5분만에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정말 중요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과연 누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를 사형시킬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판결을 내리는 것이 배심원이 되었든, 판사가 되었든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럴 자격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영화와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1명이라도 무죄를 투표하고 나머지 11명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전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설령 1명이 무죄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들 나머지 11명이 모두 유죄라고 주장을 하고 무죄라고 주장하는 자신을 무시해버리고 만다면 바로 자신의 주장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소년은 사형을 당하고 말았겠죠.요새는 과학, 정보통신 등이 워낙 발달했으니 소년이 진짜 아버지를 죽인 범인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진범이 아니라면 사형을 시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진범일 경우, 사형을 시키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의 저는 사형 제도에 매우 찬성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거나 다른 사람을 죽였다거나 요즘 사회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이런 사건들의 범죄자들을 향해 일부 사람들은 사형을 시켜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저 역시 그 주장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뭔가 얼얼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영화는 소년이 유죄가 아닐 확률이 높고 그래서 무죄로 판결이 났기 때문에 사형을 시키는 것이 매우 부당했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제가 했던 말이 성폭행이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크게 벌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어떻게 그들의 죄의 무게를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어떤 벌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확실한 대안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사형이 범죄자들을 벌하는 데 적절한 방법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영화에서 나온 상황처럼 한 소년은 어릴 적부터 거의 매일 아버지한테 맞으면서 자라왔고 어느 날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상황과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것에 희열을 느껴 살인을 저지른 상황이 있다면 둘 다 모두 사형을 시켜야 할까요? 그럼 그 둘은 똑같은 크기의 죄를 지은 것인가요? 이런 저런 상황을 다 따져보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적절한 벌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형을 내린다는 것은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그 다음으로 또 많이 생각해본 부분은 ‘만약 내가 저 배심원들 중 한 명이라면 어떤 배심원과 가장 비슷할까’였습니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에는 저는 7번 배심원과 제일 비슷할 것 같습니다. 7번 배심원은 회의를 시작할 때부터 자신은 저녁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가야하니 그 전에는 끝내야 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소년이 유죄라고 주장을 하다가 회의 중반 쯤에 무죄 의견이 점점 우세해지자 그냥 대세에 따라 무죄로 의견을 바꾸고 맙니다. 그는 유죄와 무죄 판결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사적인 일을 위해 빨리 회의를 끝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랑 7번 배심원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관련 있는 일이 아니면 별로 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흥미 있는 부분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였습니다. 저도 무슨 결정을 내릴 때에 있어서 저와 관련이 없는 일이면 그냥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은 남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는 좋지 못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도 나왔듯이 7번 배심원이 별다른 근거 없이 그저 결론을 빨리 내기 위해 의견을 바꾸는 것에 대해 11번 배심원이 못마땅하게 생각을 하였고 그 부분에 대해 화를 냅니다. 11번 배심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배심원들도 그렇게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배심원 일이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배심원으로 선정된 만큼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했어야합니다. 이것은 7번 배심원과 다른 배심원들의 생각 차이였겠죠. 아무튼 어떤 일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득이나 실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자신과 연관된 일이면 책임감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영화 감상문을 쓰면서 찾아보니 “12 Angry Men”라는 영화가 ‘죽기 전에 봐야할 영화 100선’에 꼽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기회를 얻은 것은 물론이고 생명윤리를 포함에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까지 얻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Wit 영화감상문생명과 윤리 수업의 두 번째 과제로 영화 Wit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것이 주어졌다. Wit 영화는 비비안 베어링 교수가 난소암 4기 판정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까지를 내용으로 하는 영화이다.영화의 첫 장면은 비비안 교수가 암 선고를 받는 장면이다. 이때 비비안 교수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매우 담담해 보였고 모르는 용어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래서 조금 신기하면서 이상했다. 보통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을 느낄텐데 그렇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평생 교수로서, 학자로서 학문에 집중을 하고 빈틈없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비비안의 태도가 의사의 태도보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다가왔지만 이내 내 생각은 바뀌었다. 비비안 교수에게 암을 선고했던 의사는 비비안 교수를 오직 연구대상자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환자 한 명으로서 그 환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헤아리고 존중해주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난소암 4기라는 판정을 거침없이 내리기는 물론이며 연구를 위해 최고 농도인 8사이클을 유지해야한다고 당부하기도 한다. 어찌어찌한 근거로 난소암 4기라는 판정을 내렸으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떠한 치료를 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충분히 환자를 고려해서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위해 잘 협조해야 한다는 것만 강조하는 것이 정말 화가 났다. 비비안 교수의 성격이 원래 감성적이지 않고 이성적이며 침착하기에 별로 겉으로 티를 안낸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환자였다면 이러한 의사의 태도에 매우 분노했을 것 같고 심지어 병원을 바꾸기도 했을 것 같다. ‘난소암 4기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왜 굳이 내가 그들의 연구를 도와야하며,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기본적인 슬픔의 표현, 위로조차 해주지 않는데 내가 왜 굳이 이 의사에게 치료를 맡겨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평소에도 우리는 의사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보기위해 환자들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다거나 공감해주지 않고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줘야지’ 라고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다시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 같다. 위로와 공감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일단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충격적일테니 이 병은 어떤 병이며 어떤 치료를 진행할 것인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영화 속 의사들의 만행은 난소암 판정 과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레지던트 제이슨은 검사를 하기 위해 비비안 교수가 다리를 벌려 눕게 해놓고서는 린넨을 대충 덮어주고 나가기도 하고 검사 중에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여자로서 엄청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였다. 진짜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모습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검사를 할 때도, 사전에 무슨 검사를 왜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환자에게 명령을 하기도 했다. ‘정말 의학 공부만 해서 의사가 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가 예과 1학년 때부터 많은 교양 과목을 듣고 2학년 2학기인 지금 생명과 윤리, 커뮤니케이션 등의 과목을 듣는지 이해가 되었다. 의사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세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 4차 혁명이 일어나고 인공지능 왓슨과 같이 AI가 발달하면서 의사의 자리도 점점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가 인간성마저 잃게 된다면 환자들이 굳이 우리 의사들에게 와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전혀 없다고 생각을 한다. 뭐 일자리 때문에 환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의사로서 이러한 자세는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의사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진리, 사랑, 생명을 추구하는 우리 학교에 지원을 하였고 우리학교에서 나를 뽑아준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6년 과정을 정말 열심히 해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비비안 교수의 의사가 유일하게 존중되었던 부분은 간호사와의 이야기를 통해 DNR을 결정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간호사가 DNR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베어링 교수가 천천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는 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짜 저 의사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고 영화 감독은 왜 의사들만 이렇게 이상한 이미지로 만들어 놓은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비비안 교수가 DNR에 싸인을 했는 지도 몰랐고 자신의 연구를 위해 코드 블루를 띠우며 바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옆에서 간호사가 DNR이라고 수십번을 외치고 몸을 던져서 막고 나서야 의사는 DNA 환자였다는 것을 알았고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비비안 교수가 자신의 의사를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정한 것마저 존중 받지 못 할 뻔했다. 일단 환자에 대한 충분한 인지가 부족한 의사의 모습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간호사가 수십번 외치고 몸을 던져 막아야 의사가 심폐소생술을 중단한다는 것도 매우 실망스러웠다. 영화를 보면 간호사와 의사의 갈등이 또 나온다. 바로 항암제를 투여하는 부분인데 의사는 환자에게 최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하자고 한다. 하지만 간호사는 환자를 위해 양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간호사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최고용량을 투여한다. 물론 약을 처방하는 것이 의사의 권한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저 정도의 간호사의 조언은 충분히 듣고 고려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을 한다. 왜 이렇게 간호사에게 비협조적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내가 의사가 된다면 간호사의 이야기도 잘 들어 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간호사가 의사만큼 공부를 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동기인 18학번 간호대 친구들을 보면 우리 못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도 간호사가 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노력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간호사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마지막 장면은 비비안 교수가 자신의 스승인 여교수를 만나 그녀의 품에 안겨 인간적인 말들을 듣고 따뜻한 시를 듣고 이내 죽는 것으로 끝난다. 여교수에게 안겨 있을 때, 이때까지 비비안 교수가 마주했던 상황과 반대로 너무 편해보였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치유된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여교수뿐 만이 아니라 의사들도 그녀처럼 비비안 교수의 말을 들어주고 치유의 말을 해줬더라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달라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의 말과 눈 맞춤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가는 기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아픈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였다. 나는 항상 아픈 사람들을 보면 너무 안쓰러웠고 아파서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런 영화를 보고, 다양한 뉴스기사나 아픈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얼른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교양, 옴니버스 수업까지 열심히 들어서 진짜 훌륭하고 멋진 존경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의사는 모든 활동이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을 한다. 환자를 마주하게 되는 임상 의사라면 정말 피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때까지 느낀 것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의사는 환자를 진단할 때,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설명을 해주어야 하며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혹여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거나 DNR 등의 결정을 내렸을 때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2 angry men 영화에 비해서 의사의 역할,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여서 매우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