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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의 내가되어 자서전 쓰기
    나는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나는 대한민국 약사이자 신약개발자이며 자원봉사자였다. 현재 나이는 78세, 30세에 결혼하여 두 딸을 낳고 쭉 서울에 거주하였으나 현재는 아내와 둘이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중이다. 이제부터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나는 전주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당시 할머니께서 말하시기를, “어깨가 떡 벌어진게 장군감이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한살 많은 형이 있어 어릴 적부터 많이 다투며 라이벌 의식도 느껴가며 자랐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랐으며 같이 여행도 다녔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느끼며 자라왔다.아주 어릴 적 꿈은 곤충학자였다. 산 밑에서 자라며 동식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잠자리, 개구리, 매미 등을 관찰하며 놀기를 좋아했고, 곤충학자 파브르에 대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가기도 했다. 나는 무언가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나와 같은 의견이어서 늘 나의 꿈을 북돋아주려고 애쓰셨다. “불경일사면 불장일지니라”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백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아버지의 충고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중심 기둥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든든한 조력자인 부모님의 도움으로 바둑,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우며 나의 특기를 발달시킬 수 있었고, 해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어릴 때의 나는 자신감이 넘쳐 실수를 많이 하곤 했다. 부모님과의 등산 중 먼저 내려가다가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집 근처 큰집에 먹을 것을 전해주러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고, 나는 “내가 혼자 갔다 올게” 라고 하고 큰집을 찾아가 벨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1층 경비실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 좀 경진이형(사촌)한테 전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혼자의 힘으로 일을 해결해보려는 성향이 강했다. 이러한 성격이 내 진로에도 큰 도움을 준 것 같다.고등학교 시절 매 학년이 시작할 때 마다 장래희망을 조사하곤 했다. 1학년 때 꿈은 과학자, 2학년 때 꿈은 약사, 3학년 때의 꿈은 신약개발자였다. 이때 만해도 막연한 꿈이었을 뿐 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하였다.때는 2012년 11월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시험인 대학수학능력평가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던 나였기에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는 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대학 원서를 쓰기위해 당시 담임 선생님과 고민한 끝에 지원했던 곳이 상지대학교 제약공학과이다. 나로서는 약에 관심이 많았고, 꿈과도 관련이 있는 학과였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시간은 빨랐다. 어느덧 1학년을 마치고 학과에 맞는 특기병인 약제병을 지원하여 군복무를 했다. 나에게는 군 시절 아주 무섭고 화를 자주 내는 당시 악마라고 불리던 선임이 있었다. 툭하면 화를 냈고 모든 일이 자기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짜증내고 폭언을 하는 그런 선임이었다. 그런 사람과 1년 가까이 군복무를 해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럴수록 ‘나는 나중에 저런 선임이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힘든 시간도 잠시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지내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윗사람의 기분에 맞추는 법 또한 익히 게 되었다. 그 뒤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나도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이 되었다. 내가 당했던 일들을 똑같이 하기 보다는 후임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려 노력하였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노력의 결과로 인정받는 선임이 될 수 있었고, 몇 몇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연락이 온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힘든 시기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 좌절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상황을 잘 극복하면 얻는 것이 많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다.2017년 7월 나에게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인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보고 느낀 작고 사소한 것들이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뉴욕 맨해튼에서 3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18일 총 3주간의 여행이었는데, 뉴욕에서의 3일은 혼자 둘러보는 여행이었기에 걱정도 되고 준비에 어려움도 많았다. 계산하는 법, 지하철 타는 법 같은 사소한 것 마저 달랐기에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는 사실에 너무 신났다. 그러나 신나는 마음도 잠시 도착 첫 날부터 사건이 발생했다. 타임스퀘어에서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아가던 중 웬 흑인 무리들이 다가와 CD를 손에 쥐어주고 싸인 까지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 화근이었는지 그들은 10달러를 요구했다. 상황을 벗어나 찾아보니 뉴욕에서 흔히 있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강매였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른 유사한 일들도 찾아보고 대처법도 생각해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날 일부러 몸을 부딪쳐 안경 값을 물어달라고 하는 수법의 사기꾼(?)을 만나 돈을 빼앗길 뻔 했으나 미리 알아본 덕에 유연하게 대처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뉴욕에서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모든 것에 호기심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많은 관경들을 눈에 담았다. 록펠러센터에 위치한 마카롱이 유명한 부숑 베이커리 집에서는 옆집 아주머니같은 푸근하신 뉴요커 아주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도 마셨다. 아쉬운 3일이 가고 친구가 있는 오스틴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날 격하게 반겨주었다. 친구가 일하는 한인식당에서 같이 일을 하며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쉬는 날엔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차타고 이 곳 저 곳 여행도 다니며 그들의 삶에 잠시 물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했다. 그저 겉모습만 볼 수 있는 여행이 아닌 진정한 미국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어 기뻤고, 더욱 넓은 꿈을 가질 수 있게 한 기회였으며, 삶에 지칠 때 내 원동력이 되어주는 좋은 추억거리이다. 상지대학교 4학년을 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나는 이대로 취업해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조금 더 공부하여 내 꿈에 가까운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여러 고민 끝에 PEET시험을 준비하고 2년여의 준비 끝에 합격하여 중앙대학교 약학과로 편입하게 된다. 약학대학의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약사국가고시에 합격해 당당하게 약사로 인정받았다. 이후 서울에 위치한 한국 유나이티드제약 연구보조로 취직해 많은 연구들을 진행하게 된다. 꽤 오랜 시간 보조를 맡다가 실력을 인정받아 독단적으로 연구를 진행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그 후 많은 연구들을 진행하던 중 뇌로 들어가고 나가는 아밀로이드 단백질 수송의 정상균형을 회복시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작용 기전을 발견하고 이를 약으로 개발하기 위해 살아온 인생의 절반가량인 15년 이상을 연구에 매진한다. 그 결과 부작용을 최대한 줄인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었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닌 더 뜻깊은 일을 하기 위해 내 재능을 쓰고 싶었고 그런 나를 응원해주는 내 아내와 딸들이 있어 나는 의료봉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쉬는 날이면 의료봉사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도왔고 몸은 힘들었으나 되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을 권하는 편이다. 남을 위해 일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 겉보기에는 봉사자가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나눌수록 기쁨은 커지는 것이기에 봉사자가 얻는 것 또한 많다고 생각한다.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퇴직하며 이대로 내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 하나로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도록 꿈을 전달하는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 한사람으로 인해 학생들이 변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큰 기쁨을 느꼈다. 어느 날은 강연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강연을 듣고 나온듯한 학생 무리들이 보였다. 내 강연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걔 말하는 거 되게 재밌지 않냐?” “맞아. 말 잘하긴 하더라.” 맞다. 학생들이 말하는 걔가 나였다. 강연하면서 생기는 이런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강연을 하면서 내 강연을 듣고 동기부여가 되어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연락해 오는 학생도 있었고, 나처럼 강연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강연자라는 직업을 나는 사랑한다.
    독후감/창작| 2018.08.09| 6페이지| 1,500원| 조회(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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