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세계사』는 시대마다 어쩔 수 없이,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에 대하여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하여 변화된 문화, 사회, 역사 등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전쟁이 시대마다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있기 때문에 『전쟁의 세계사』라는 제목이 알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 겉표지에는 갑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커다란 총을 들고 서있다. 이 둘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려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제목에 적합하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저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은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인간들 사이의 거시기생을 연구하려면 그 연구대상은 단연 군사조직이며, 특히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전사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다양한 변화라고 말하였다. 이에 근거하여서 『전쟁의 세계사』는 고대와 중세 초기의 전쟁과 사회 - 중국 우위의 시대(1000~1500년) - 유럽에서의 전쟁이라는 business(1000~1600년) - 유럽 전쟁기술의 진보(1600~1750년) - 유럽의 관료화된 폭력, 시련을 맞다(1700~1789년) - 프랑스의 정치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군사에 미친 영향(1789~1840년) - 전쟁의 초기 산업화(1840~1884년) - 군사·산업 간 상호작용의 강화(1884~1914년) - 20세기의 두 세계대전 - 1945년 이후, 군비경쟁과 명령경제의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2005년도에 출판되었지만 원본은 1982년도에 출판되었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1980년대까지의 내용으로 구성 되어있다.제1장 고대와 중세 초기의 전쟁과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고대와 중세 초기의 전쟁이 어떻게 치루어 졌는지, 어떤 무기로 전쟁을 했는지 설명되어있다. 고대와 중세 초기의 전쟁에서는 청동으로 된 무기와 갑옷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청동은 원료를 구하기 어렵고 값이 비싸서 약탈을 함으로써 공급을 받았고 구하기 어려운 희소물자를 약탈전쟁을 통해 얻어야 했다. 그들은 교역을 하였는데, 그 이유가 희소물자를 얻기 위해 멀리 원정을 간다는 것은 위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의 군대가 직면한 한계점은 전쟁과 교역을 통해 얻은 물자들을 수송하는 것과 보급하는 것이다. 이에 그들은 이륜수레를 발명함으로써 전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제2장 중국 우위의 시대, 1000~1500년에서는 유럽보다 수백 년이나 앞선 중국의 산업에 관련하여 다루고 있다. 제2장에서는 중국 우위시대에서 그 원천이 무엇이며 그 한계가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나머지 나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주로 설명한다. 중국의 생산양식은 급속하게 전개 되다가 마찬가지로 급속히 붕괴되었다. 사람들은 부를 쌓기 위해 혹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교환 가능성을 인간생활의 각 측면에 도입했다. 중국이 유럽보다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이유는 고로식 용광로와 끊임없이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정교한 풀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코크스가 제철에 사용되자 철강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고, 철강시장 또한 형성되었다. 철은 소금만큼이나 관료의 관심을 끄는 상품이었는데, 이는 쉽게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인구증가로 인해 빈곤은 사라지지 않았고, 일부는 부자가 되고 일부는 가난뱅이가 되어야 했다.이런 상황에서 중국사회의 최하층조차도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 시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물질적 행복을 향상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수도와의 교통통신이 끊기거나 철강제품에 대한 관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업계 전반이 대혼란에 빠지고, 세율이 오르거나 정부 매입 가격이 낮아질 경우에 산업생산은 좀 더 완만하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중단될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상공 기업들은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갑자기 쇠퇴하기도 쉬웠다. 중국은 갑자기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기술이 진보하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 더 0~1600에서는 라틴계 그리스도 교권으로 알려진 유럽사회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럽은 대체로 농업사회였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촌락에 살았고, 사람들의 사회적 역할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의 자질과 전통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었다. 위급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역방위의 일익을 담당해야 했다. 분명한 것은 기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마를 타고 어렸을 때부터 무기를 다루는 훈련을 받았다. 상인과 행상은 이방인이었으며 자기 신체와 재산을 스스로 보호해야 했는데, 호전적이고 폭력적으로 치닫던 사회에 살면서, 상인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충분한 수의 부하를 모아 무장시키든지, 아니면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안전한 통행의 대가로 재물의 일부를 바치든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따라서 유럽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인 기사계급과 상인들이 협상을 통해 간신히 불안정한 휴전상태를 이어갔다. 이처럼 유럽사회는 기사·농민 패턴의 형태를 취했다.제4장 유럽 전쟁기술의 진보, 1600~1750년에서는 소제목 그대로 유럽전쟁의 기술의 진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훈련이 전쟁에서 군대의 위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조직과 규율 면에서 뒤떨어진 다른 문명의 무장병력을 희생시켜서 비교적 쉽게 세력을 확장해갈 수 있는 길이 확보되자, 유럽의 전 세계의 제국주의는 지구상의 새로운 지역을 향해 급속하게 확대되게 하였다고 설명했다.제5장 유럽의 관료화된 폭력, 시련을 맞다, 1700~1789년에서는 유럽의 기존 정치·군사 패턴이 혹독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구의 급증이었다. 이에 따라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이 눈에 띄게 무너져갔고, 늘어나는 농촌인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한 중대한 문제였다. 동유럽에서는 인력이 풍부해짐에 따라 신병을 모집하기가 쉬워졌고, 군대의 규모가 커졌지만, 반면 서유럽에서는 전쟁의 격렬함이 7년전쟁 이래 점점 심해져방식으로 압력을 가했음을 반영한다고 하였다.제6장 프랑스의 정치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군사에 미친 영향, 1789~1840년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 두 가지 대격변의 군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고 있다. 18세기 말엽에 구체제의 패턴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요인은 인구증가였다고 5장에서 말하였다. 이에 프랑스와 영국은 인구압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서로 다른 방식을 취했는데, 프랑스는 무자한 남자들을 수출하여 유럽 곳곳에 제국을 세웠으며, 영국은 무장하거나 무장하지 않은 남자와 물자를 수출함으로써 시장을 바탕으로 국력을 기르는 시스템을 수립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육군과 해군에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군수품 수요의 향방을 결정했다.제7장 전쟁의 초기 산업화, 1840~1884년에서는 유럽 각 국가들이 ‘전쟁의 산업화’의 패턴을 보였음을 설명한다. 1840년대에 프로이센의 육군과 프랑스 및 영국의 해군은 구체제하 유럽 국가들의 정부에 착착 손발을 맞춰주던 무장의 패턴으로부터 이탈했다. ‘전쟁의 산업화’의 패턴으로 전환을 한 것이다. 전쟁의 산업화에 있어서 첫 번째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수송의 혁신이다. 증기선과 철도는 인간과 무기와 보급물자를 전대미문의 규모로 수송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와 더불어 수송비용이 낮아지고 통신이 빨라지자 유럽인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유럽 중심적이고 유럽이 경영하는 시상체계에 끌어들임으로써 전지구의 표면을 일체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제8장 군사·산업 간 상호작용의 강화, 1884~1914년에서 영국은 산업혁명이 점점 퍼져감에 따라 유럽 다른 국가들이 생산구모와 기술수준에서 영국을 급속히 따라잡았고, 해군장비만 보더라도, 첨단기술이 다른 나라 해군에 유출됨에 따라 영국의 우위는 위태로워졌다. 그 뿐만 아니라 영국의 농장주들은 경쟁이 불가능할 만큼 싼 가격이었다. 따라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외국 농업과의 경쟁에서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장벽이 없 그들의 안정을 위해 ‘해군 방위법’을 통과시켰고, 이 군산복합체는 유럽 여러 공업국가고 퍼져나갔다.제9장 20세기의 두 세계대전에서는 세계사 전쟁의 핵심인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다. 두 세계 대전은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로 구성된 시스템 속에서 세력균형 정치가 또다시 실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20세기의 군사적 격변 역시 인구증가와 농촌지역의 전통적 생활양식이 수용할 수 있는 인구 한계 사이의 충돌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 사회적 긴장에 새로운 배출구를 제공했으며, 또한 중부와 동부 유럽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에 희생됨으로써 농촌의 인구과잉 문제도 어느 정도 덜게 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더 많은 인명손실과 대규모 인구이동과 대대적인 민족의 이동이 이루어짐에 따라 인구 증가가 유럽 사회를 압박하지 않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그 경영에 국면을 맞았다. 전쟁이 예상 외로 오래 지속됨에 따라 모든 교전국은 자국의 전쟁 노력의 효율을 향상시키고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후방의 생산 활동을 재조직화해야 했다. 또 독일이 전시동원을 강화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관리경제’를 제일 먼저 시작했는데, 전쟁 이후 전쟁 노력을 담당하던 임시 행정부서의 관료기구는 해체되었고 그동안 민간인에 부과되던 법적 제약들은 사라졌다. 1923년까지는 혁명과 혁명에 대한 공포가 중유럽과 동유럽을 지배했다. 미국은 전쟁기간 동안 맛보았던 대량생산과 도시생활의 새로운 혜택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소련은 미국과 정반대로, 내전과 혁명으로 심각하게 곤궁해졌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새로운 위기가 닥쳤다. 1930년대 말 2차 대전이 발발했고,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관리 경제’는 세계의 모든 선진 공업국에서 통상적인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