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 가키야 미우작-사실 난 이 나이 되도록 일본소설엔 관심이 없었다. 아니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다지 열성 애국자도 아니면서 단지 일본인이 쓴 글이라서 일부러 피했었는지도 모르고, 우리나라 정서와는 맞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또 오래전 어린 마음에 읽었던 어마무시한 베스트셀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이도 저도 아닌 내용에 당시로선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던 정서적 괴리감에 지루함을 넘어 지리함에 이르러 결국 읽기를 포기했었던 껄쩍찌근한 기억으로 일본인의 소설들이 다들 저 모양이구나싶어 꺼렸을 지도 모른다.이제 나이가 들어 시간이 남아 돌다보니 다시금 집앞 도서관에 들를 여유가 생겨 지인의 권유로 가키야 미우의 “노후자금이 없습니다”를 빌려 볼까하였으나 이 물건(?)이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다. 갈 때마다 늘! 항상!! 대출중...우리 집 앞 대도서관은 아주 작고 신생도서관이라 책은 많지 않으나 인구밀도는 높은 곳이라 그 물건(?)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에 조금 못미친다.그래서 어쩔수 없이 차선책을 찾던 그때! 느닷없이 내 눈을 확~ 사로잡던 제목!!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 마음을 정리하다..라?...어떻게? 누가? 내 마음속을 헤집어 정리해준다는 말인가...딱히 읽고 싶은 책도 없던 터에 냉큼 집어 들고 보니 작가가 가키야 미우.. 내가 읽고자 했던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의 가키야 미우였던 것이다!이런 우연이... 그인지 그녀인지가 나와 인연이 있다는 것일까?참! 가키야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를 단숨에 읽고 나니 작가가 궁금해져 조사를 좀 해보았다.가키야 미우는 그 녀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 중년여성으로... 예상밖의 그녀는 2005년 추리소설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급부상했단다. 근데 그녀가 쓴 글 내용이나 제목들이 상당히 파격적이다.“70세 사망법안”,“사후이혼”,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아.. 읽고 싶다. 특히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은 꼭 읽고 싶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여인인 모양이다. 아뭏튼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녀의 책은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 로 내용은 정말이지 공감이 가는 것들이 많았다.이 책은 총 4가지의 case로 이야기가 엮어져 있다. case라는 표현도 재미있다. 정리 전문가 도마리라는 여자가 집안을 정리해주면서 만나는 4가지 케이스의 남녀들.Case 1 사지 않곤 살 수 없는 여자Case 2 물건을 버릴 수 없는 남자Case 3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여자Case 4 하나의 방만 정리하는 여자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면 집안도 정리되지 않는다고 믿는 도마리 여사.그리고 그 사람들의 집안 정리를 핑계로 복잡하고 슬프고 아픈 마음을 정리해주는 마음 정리 전문가!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도마리여사!깔끔한 그녀만의 깔끔한 마음 정리 방법! 지금부터 알아보자.첫 번째 케이스! 첫 번째 문제의 의뢰인은 사지 않곤 살 수 없는 여자다.일단 그녀는 체계적인 정리전문가답게 꼼꼼한 체크리스트로 고객의 심리상태를 파악한다.O,X 로 답하시오.1. 옷을 제대로 개킨다.2.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방이 있다.3. 빵에 곰팡이가 자주 생긴다.4. 차를 바닥에 흘려도 닦지 않는다.5. 신문을 버리지 못한다.6. 예전 연하장을 버리지 못한다.7. 물건을 자주 찾는다.8. 충동구매를 한 뒤에 샀다는 자제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9. 다른 사람을 집에 부르지 못한다.10. 창문을 열 수 없다.3~4 개이상이면 당신도 도마리가 필요하다! 여러분도 방금 체크해 보셨는지? ㅎㅎ이렇게 체크 시트를 내민 뒤에 그녀는 망설임과 배려따윈 1도 없이 집안을 거침없이 헤집는다.첫 번째 문제의 그녀는 5년 동안 유부남 애인이 이혼하기를 기다리는 32살의 직장여성 하루카다. 무절제하게 쇼핑을 하고 쇼핑한 물건들을 쌓아두어 방을 더럽히고 있다. 왜? 그와의 미래를 위해, 마음이 외로울 때, 그의 사랑에 미치도록 목 마를때마다 그녀는 이것저것 쇼핑을 했었다. 그와 함께하며 또 함께 할 물건들을 사고 그녀의 외로움만큼의 물건들이 방안 여기저기에 쌓였다. 그와 함께할 핑크빛 미래의 추억이기에 그녀는 쉽사리 버릴 수도 없다. 왜? 어째서? 불시에 그리고 반드시 찾아올 그와의 만남에 대비해 사랑하는 그와의 추억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것도 아름답고 행복하게...그런 그녀를 도마리씨는 단 한 통의 전화로 마음을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살짝 아니 영원히 미루고 싶은 그와의 이별을 맘 속 깊숙히 숨겨둔 채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 그녀의 속내를 매몰차게 후벼판 것이다. 이미 그녀도 알고 있는 진실을 확 끄집어내 바로 그녀의 눈앞에 내동댕이쳐준다.널부러진 그녀의 마음과 그녀의 집안을 정리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깔끔하게 정리된 마음덕분에 인간관계도 집도 완벽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리전문가 도마리씨의 냉정한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으리라..정리전문가 도마리씨는 이미 그녀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마음속 쓰레기통을 단박에 확 뒤집어놓은 듯하다.두 번째 케이스는 물건을 버릴 수 없는 남자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신다. 연세가 드신 분일수록 예전 어렵게 살던 기억들로 인해서인지 일단 자기 손에 들어온 물건들은 쉽사리 버리질 못하시는 듯하다. 심지어 남들이 버린 물건도 집안 가득 쌓아두신다. 그 스트레스와 집안이 지저분해짐의 감당은 모두 엄마의 몫이다. ㅠㅠ 나도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머리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나 단지 순전히 정말이지 마음이 약해서 뭐든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나름의 명분으로 집안은 점점 구질구질해지고 있다. 아..나의 미니멀리즘이여...아뭏튼 이 두 번째 케이스의 문제적 남자역시 나로선 상당히 공감가는 류의 할아버지이신 것 같다.아내가 3년 전 암으로 떠났지만 아내의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했다.그리고 대개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살림은 여자들의 몫!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챙겨 받아오던 아버지가 이젠 딸에게 당연스레 의지하여 그의 딸 후미코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아버지의 식과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버지처럼 슬퍼할 여유는 없다. 최근 말썽인 그녀의 아들과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장생활..그리고 아버지.. 이 어려운 걸 그녀는 여태 혼자 말없이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 여겼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한계가 찾아온다. 그리하여 그녀는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도마리 여사에게 그녀의 아버지를 맡긴다.도마리씨가 제안한 짧은 발연기에 아버지는 다행히도 깊은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자립의 의지를 내보이셨고 또한 도마리씨는 이 상황의 짐들을 모두 도맡고 있는 그녀에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조언을 한다. 아버지에게 응석 부리기를,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그리고 문제들을 세트로 묶는 예상밖의 해결법도 제시한다. 아들 하루토와 그녀의 아버지를 함께 생활하게 함으로써 그녀에게는 무신경의 휴식 시간을 강제하였다. 희한하게도 문제의 두 분들은 같이 있음으로 상생의 효과를 만들어낸다.굴곡 없는 삶이 있을까?어려운 굴곡을 만났을 때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를 낸다면 그 아픔의 굴곡을 조금은 덜 힘들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말이다.세 번째 케이스의 문제 고객은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여자다.만약에 갑자기 쌀이 떨어진다면? 만약에 냉장고를 열었을 때 반찬거리가 하나도 없다면? 오래전 거금을 주고 산 밍크코트가 다시 유행한다면? 만약에 손자가 다쳤는데 마데카솔이 없다면? 만약에 갑자기 감기에 걸린다면?.... 면..면...면....이런 만약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에 지구가 멸망한다면?과 같이 살아 생전말이다.하지만 세 번째 케이스의 그녀는 이런 만약들로 인해 집안에 온갖 물건들을 쟁여놓고 사는 부자 할머니다. 부자라 이것 저것 사기도 쉽고 집이 넓어 쟁여놓기 또한 쉬우며 여간 쟁여놓아도 그다지 지저분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워낙에 넓은 집덕분에...문제는 이 모든 만약들을 위해 쟁여놓은 것들이 살림의 지혜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어쩜 부의 상징으로 느끼시는 건지도....“노후에 안심하려면 물건이 아니라 돈을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보관하는 것보다 옷을 사는 즐거움을 남겨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