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점수확인저희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단절’ 이라고 생각합니다.저희 부모님께서는 늦은 나이에 저를 가지셨고 제가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학교를 등교할 시간이면 부모님께서는 출근을 하셨고, 퇴근하시는 시간에는 저는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레 가족들 간의 얼굴을 마주할 일이 적어지고 또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 또한 턱없이 부족해져갔습니다. 어쩌다 한번 부모님의 휴가 날에 여행을 가는 것이 유일한 소통의 기회였고 이 또한 익숙하지 않아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형제자매도 없이 외동으로 자란 저는 어린 나이 때부터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께 의지하고 문제를 상의해서 해결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또한 1년 전, 남들보다는 일찍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직장의 위치와 생활 패턴의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분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사 이후, 항상 업무에 치이고 시간에 쫓겨 본가를 방문 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또래 부모님들에 비해 나이가 조금 있으신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 집을 찾아 와주시는 것도 힘들어 하셨습니다. 이 생활이 지속되자 점차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이는 가족 간의 소통의 단절로 이어졌습니다.처음 분가를 했을 때 당시 저는 막연한 자유로움에 가족 간의 소통을 잠시 잊은 채 혼자만의 삶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어쩌다 여가 시간이 생겨도 본가를 찾아 방문하기보다 스스로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데 시간을 하례했고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것조차 귀찮게 여겼습니다. 한 달에 한번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여겼고 명절, 또는 큰 행사 때마다 가족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는 이 생활이 정상적이라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저의 이러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왜 연락을 하지 않느냐며, 서운하다고 마음 한켠이 허전한 느낌이라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외동아들 하나 둔 저희 부모님의 일상에서 저의 소식은 그저 단순한 ‘소식’의 의미보다는 일상 그 자체였던 것이었습니다. 소소하게 일어난 저의 일상 속 일들은 부모님께는 하나의 즐거움이었고 저의 소식들 하나하나가 부모님의 행복이었습니다.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저는 아무리 바쁜 날일지라도 일주일에 2번은 퇴근 후 시간을 내서 본가에 방문하거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드리기로 계획했습니다. 처음저희 가족은 어색함에 단순한 인사만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은 ‘친근함’이라는 큰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동아들이기 때문에 형제가 없어 항상 친근하게 대해준 저희 부모님은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떤 때에는 친구 같고 어떤 때에는 형제 같은 그런 모습의 부모님이 되어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