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왜 분단이 되었는가올해 2020년은 1945년 한반도가 남과 북 두 구역으로 분리가 되어 진지 75년이 되는 해이다. 75년전이였던 1945년 8월까지 한반도는 일본 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지도 상에 표기 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이후 일본 제국의 제 2차 세계대전 패배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각각 남과 북을 나누어 버린 것이 현재 남북분단의 시초가 되었다. 중국 내륙 쪽에서 들어온 소련군에게 항복한 북쪽 측과 바다를 통해 건너온 미군에게 항복한 남쪽 측이 서로 나뉘어지게 되면서 그 중간에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었고 그 당시 미국이 계획하던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있어 미국에게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한반도 단독 점령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소련의 전쟁 개입이 종전에 있어 주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입장에서는 한반도는 중요 지역으로서 그 가치가 큰 지역이었다. 미국은 소련이 받아들일만한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하는 한편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연합군 공동 점령 및 분할 점령안을 소련에게 제시하였다. 소련은 추후 있을 패전국인 일본의 처분에 있어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미국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 들임으로써 남과 북은 현재까지 분할 되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분단이 될 당시 한반도의 상황은 현재까지 남과 북으로 오랜 기간 분단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38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경계를 세웠을 때 그 순간의 임시적인 경계일 뿐 그 선이 지금까지도 이어 질것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열린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의 통일 임시 정부 수립과 신탁통치에 대해 결정이 내려졌지만 국내에서는 통일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내용은 제외되고 신탁통치에 관한 내용만이 보도 되면서 한반도 내 세력들을 남과 북으로 나뉘는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은 신탁통치에 대해 찬성입장을 고수하며 1946년 2월에 사실상의 북쪽만의 정부를 만들었고 남측은 이에 대응하여 같은 달에 남한만의 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기반으로 하여 남북한의 각기 다른 정부를 세우게 된다는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유엔에서는 이 문제를 11월에 남북한 동시 선거를 하기로 확정하였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두고서도 남과 북은 충돌하였는데 김일성을 주축으로 하는 북한에서 남북한 동시 선거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 시기에 남한은 남한만의 공식 정부 수립과 통일 정부 수립에 관하여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이었는데 대표적으로 이승만과 김구가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실시하여서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공식 정부를 남한만이라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던 이승만과 그를 따르는 우익인사들과 남북한이 서로 다른 독립 정부를 세우게 된다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민족간의 비극과 이질감을 우려하여 통일 정부 수립을 희망하던 김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지만 결국 소련과 소련이 한반도 내 뒤를 봐주고 있던 김일성과 그 무리들의 반대로 인하여 결정 되었었던 동시 선거날에는 남한 한쪽만이 참여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통일 정부를 희망하던 김구는 남한 정치계에서 손을 떼었고 이승만이 남한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1948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같은 해 9월 9일에 북한에도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식적인 남과 북의 분단이 시작 되게 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는 독일의 통일, 소련의 해체 등 호재가 많이 일어남으로써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리나 싶었지만 차차 수그러들었고 최근에는 연평해전 및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끊임없는 핵미사일 실험 등으로 남북관계는 여전히 적신호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 이후 2000년과 2007년,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또 다시 한반도 내에 평화의 기류가 돌았었지만 북한의 도발을 멈출 줄을 모르고 있고 또 양국의 이견도 완전히 좁혀지지는 않아 완전한 통일로의 길을 아직까지도 닫혀 있는 실정이다. 남과 북의 분단의 시작 된 이후로 지금까지 분단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현재까지도 한반도 내 남과 북 두개의 정부가 존재하고 국민들 모두가 서로 분단되었음을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통일에 대한 의지와 교육을 멈추지 않고 지속 한다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상처가 자연적으로 아무는 듯이 훗날 진정으로 통일은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북한인권 vs 남북교류협력남한과 북한은 오랫동안 한반도라는 영토에서 대립해오고 있다. 하나의 영토 내에 두개의 각각 다른 정부와 국가가 자리잡고 있고 각기 다른 국가에 속한 국민들의 한민족이라는 정체성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하나의 국가의 하나의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한과 북한 국민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 나라 국민 모두 다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1년에 한번씩 행해지는 인권지수평가에 있어서 가장 최하위 기록을 매년 갈아치울 정도로 인권에 있어서 아주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총 세가지로 나누어진 계급사회 내에서 핵심계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계층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보기 힘들며 특히 가장 아랫단계에 있는 적대계층은 과거 노예제 시대의 노예를 방불케 한다. 그들은 하루 15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안전 사고에도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 또한 계층에 따른 인권 착취에 더해서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착취 또한 만행 되고 있으며 북한은 말그대로 세계 최악의 인권을 가진 나라이자 더 나아가 인권이 없는 나라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대한민국은 헌법에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라고 규정하고 북한을 반국가단체 및 미승인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UN을 비롯한 세계 많은 국가들이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4조 평화통일 지향 항목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 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안에는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이 전제 된다. 비록 대한민국은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이 곧 북한주민들을 사람으로서 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기에 대한민국 헌법에는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있다. 2005년에 처음 발의 된 북한인권법은 제정 당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같은 외국의 경우 북한인권법과 비슷한 법률을 대한민국에서 처음 발의 된 2005년보다도 먼저 제정하고 있었다. 이처럼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고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인권과 관련한 법 제정과 단체 설립 및 다양한 북한주민 적응 프로그램 설립 등으로 탈북민 인권 증진에 힘쓰고 있는 한편 남북교류협력에도 오래전부터 힘써오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과정에 있어서 북한주민의 인권 문제는 해결해야 할 필수 요건으로 보고있으며 이것은 북한인권과 남북교류협력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석된다. 어느 한 쪽이 해결 된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두 문제는 반드시 서로 상호보완 해가며 동시에 해결 되어야할 문제로 보는 것이 맞다.
동유럽이 남긴 발자취제 1차 세계 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총 두차례의 세계 전쟁은 말그대로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 그 영향력을 끼쳤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받는 일정 부분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유럽은 단연 세계 대전의 가장 중심지였으며 동유럽 국가들은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마다 그 국가의 명을 달리하였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동유럽 국가들은 민족국가의 모습을 보였고 서유럽과 유럽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속에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교류하며 나날이 성장하였다. 하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은 이전의 1차 세계 대전과는 다르게 동유럽과 서유럽을 구분 짓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와 그 외 많은 동유럽 국가들은 제 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게 되고 또한 기존의 민족국가의 모습을 버리고 소련을 따라 사회주의국가로 탈바꿈 하게 된다. 이들은 약 50여년간 사회주의국가의 노선을 따랐는데 국제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사회주의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였고 그와 더불어 소련의 붕괴로 결국은 1989년을 기점으로 사회주의의 붕괴를 알리고 체제 전환을 맞이 하였다.동유럽 내에서 사회주의의 붕괴가 시작되고 체제 전환이 시작 될 때의 동유럽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다. 물론 체제 전환의 충격으로 어느 정도의 불황은 예측 가능하였지만 하이퍼 인플레이션, 실업문제, 재정적자 등으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기 침체가 체제 전환을 하는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 전환을 가로 막는 듯 했다. 그러나 결국 사회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일은 없었고 체제 전환을 시도한 모든 국가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였지만 국민들의 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체제 전환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현재는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선진국 반열에 들고 있다.현재는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국가는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동유럽의 국가들은 유럽 대륙에서 사회주의의 잔존물을 청산하고 서유럽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는 여전히 사회주의노선을 걷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 중 사회주의 색채가 가장 강한 나라는 단연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줄곧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고집하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국제사회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전히 체제 전환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소련의 붕괴 이후 동유럽의 상황과 지금의 북한상황이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 체제에서 야기되는 많은 문제점과 불안을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언젠가 사회주의 체제는 종말을 맞이 하게 될 것이며 북한은 지금 그 과도기에 불과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유럽이 체제 전환의 성공으로 인해 선진국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회주의의 탈피는 그 반동 효과가 매우 크다. 동유럽이 남긴 발자취를 북한이 인지하고 따라 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나은 북한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의 전유물 – 삐라 일본어로 전단지를 의미하는 비라(ビラ)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삐라는 주로 남북한간의 심리전을 위해서 사용하는 전단지를 의미한다. 보통 삐라라고 한다면 북한이 남한측에 살포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지는 전단지라고 알고있지만 남한측에서 북측으로도 보내는 남한과 북한 두곳에서 모두 이용하고 있다. 삐라는 과거 남한과 북한이 서로 전쟁 중일 때부터 현재 휴전상태일때까지 그 빈도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전술로 행해지고 있다. 과거 삐라의 내용은 주로 전쟁 당시 상대방에게 어떤 곳을 폭격을 가하게 될지를 미리 통보하는 안내문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미리 폭격 지역을 통보함으로써 민간인의 살생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상대방이 미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 표현의 일환으로 삐라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항복을 회유하거나 신변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 또한 과거의 삐라에는 필수 요소였지만 현재는 이미 남한과 북한과의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졌고 삐라로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교육수준 높은 인재를 회유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대방의 정치 체제에 대한 비방과 자신들의 정치체제에 대해 우월함을 선전하는 삐라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전쟁 직후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히 앞서나가는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는 북한이 남한측에 삐라를 살포하면 실제로 월북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나름대로의 심리전의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과 남한의 상황은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나게 되었고 심지어 북한의 삐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단순 조롱거리 취급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북한도 그것을 알고 또 삐라를 살포하는 것 또한 돈이 일정 부분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삐라를 살포하는 것을 계속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더 나은 방법이 없어서 아직까지도 삐라를 북한측은 살포를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삐라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남한측에서의 삐라를 살포하는 것의 의미는 북한 내 평양 일부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인터넷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고전적인 전단지 살포를 통해 북한의 현실과 부조리를 알리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 내 주민들이 삐라와 관계없이 남한 드라마를 보고 노래를 듣는 것을 보면 삐라가 정말로 북한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전략적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남한과 북한 양쪽 다 삐라가 가져다 주는 이득이 이제는 소멸되었음에도 과거의 전유물인 삐라를 불필요하게 살포하고 있다. 과거의 전유물인 삐라는 과부터 현재까지 행해지는 단순 행위일 뿐 현재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무엇이 지능을 깨우는가지구 상에 똑같은 사람 하나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지능을 갖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높은 지능을 또 어떤 사람은 낮은 지능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보통의 경우에는 자신의 지능이 유전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지능에 있어서 유전의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지만 환경결정론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니스벳은 지능에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유전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사회와 경험, 문화권 등 환경적인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니스벳은 책을 통해서 지능은 유전보다는 환경따라 좌우되는 점이 더 크다는 재차 강조한다. 니스벳은 사회경제적 지위(SES)를 분석하여 실험대상자들의 지능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는데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지능 차이가 유전에 따른 지능 차이가 무의미해질정도로 크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또한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한 쌍둥이의 지능 관계를 분석하거나 동일한 유전 요인을 가지고 태어나 다른 환경으로 입양된 입양아들을 예를 들며 환경이 지능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유전을 압도한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니스벳은 분명 환경적인 요인이 유전보다 지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주장 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직관적으로 보기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지능을 결정 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백인이 흑인보다 지능이 높은 이유와 유대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지능이 높은 이유를 유전적 요인에 기인하여 생각하기 쉽다고 예를 들며 니스벳은 이러한 차이들 또한 환경적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 유전 차이가 아닌 흑인과 백인의 문화 차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그들의 지능에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얘기한다. 또한 유대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지능이 높은 것은 성취를 중요시하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그들의 교육 풍조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니스벳은 자녀의 지능을 깨우려면 지속적인 지적 호기심 자극과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말라고 서술한다. 앞서 유전적인 요인보다 환경적이 요인이 지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 니스벳은 부모가 그러한 환경 요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녀의 지능에 부모가 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원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지능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니스벳의 실험과 주장들이 나를 설득시키기 충분하였고 특히 부모가 자녀의 지능에 미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에서 깊은 공감을 느끼며 지능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의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