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에 숨겨진 작가들의 마음바로크 미술부터 표현주의 미술까지의 작가들 중 내가 선정한 작가는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이다. 작품을 선정하기 전 젠틸레스키는 여성 화가라는 이유 때문에 굉장히 흥미 있는 인물이었고, 작품을 알아보는 중에 ‘수산나와 장로들’이라는 작품과 수업시간에도 나왔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라는 작품 둘 중 고민하게 되었다. ‘수산나와 장로들’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도 흥미롭고, 또한 이 작품 이후로 젠틸레스키의 작품의 방향성이 뚜렷해진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로 선정하게 되었다.젠틸레스키는 400여년 전 소수 남성 화가만 활동하던 시기의 여성화가이다. 지금 시대에서 이름을 붙인다면 ‘페미니즘’화가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기의 여성 화가로서 명암대비법을 개척한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그 당시에는 당연하게도 여성들이 미술을 공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최초로 권위있는 미술기관의 회원이 됐고, 당시 여성 화가에게는 초상화나 꽃 정물화가 적합한 주제로 여겨졌지만, 여성화가로는 최초로 역사화나 종교화를 그린 인물이라고 한다. 젠틸레스키가 이런 시대에 이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가정환경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10대때부터 두 명의 남자형제의 어깨 넘어로 배운 미술이 그 형제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에 의해 미술 수업을 받게 된다. 그 후로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며 앞서 말한 화가로서의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처럼 젠틸레스키는 당대 성공한 화가였지만, 여성으로서는 굉장히 불행한 삶을 살았는데, 표현하자면 ‘성폭력 생존자’, ‘싱글맘’, 그리고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1611년, 젠틸레스키의 아버지 오라치오는 로마에서 아고스티노 타시라는 화가와 공동 작업을 하게 된다. 오라치오는 타시를 딸의 개인 교사로 고용해 그림을 가르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젠틸레스키는 스승인 타시로부터 강간을 당하게 된다. 첫 성폭행 이후에도 젠틸레스키는 타시와의 성적인 관계를 이거가게 되는데, 이는 성폭행으로 시작됐지만 결혼이라는 합법적 관계로 전환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시는 결혼을 거부하고, 오라치오는 타시를 강간상습법으로 고발하게 된다. 이후 재판은 7개월 동안 진행 되었는데, 당시 고소 죄목은 ‘처녀성 강탈’, 즉 타시의 강압적 성폭행이 아니라 젠틸레시키의 처녀성을 빼앗았느냐가 쟁점이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젠틸레스키는 수치스러운 부인과 검사를 받았고,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고문까지 당했다. 이것은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만약 그 사람이 모진 고문 와중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라는 당시의 보편적 관점 때문이었다. 재판 결과, 타시는 고작 1년형을 선고 받았고, 실제로는 형을 살지도 않았다고 한다.분명 젠틸레스키는 이 사건을 통해 문란한 여자라는 사회적 비판과 더불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증명 해야 했던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늘 선정한 그림의 주제인 유디트라는 영웅을 전 생애에 걸쳐서 즐겨 그렸는데, 이 주제를 다룬 작품을 일곱 점이나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유디트와 홀레페르네스를 당시 종교화에서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유디트는 이스라엘 역사 속 여성 위인인데,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군대가 유대 지역을 포위하고, 함락시킬 위기에 처하자 하녀와 단 둘이 적진에 침투해 적장을 죽이고 도시를 구해낸 인물이다. 젠틸리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역시나 남성화가들과 차이점을 보인다. 비교해보자면 남성 화가들은 유디트를 매혹적인 여성 혹은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므파탈로 표현한다. 루벤스의 유디트는 관능적인 자세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파올로 베노레세라는 이탈리아 화가 역시 유디트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앞선 남성화가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강인하고, 한치의 후회도 없는 모습으로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특히 젠틸레스키와 카라바조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비교해보자면, 젠틸레스키는 카라바조의 세부적인 사실주의와 극적인 명암 대비 화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림에서 두 화가는 모두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사용하고, 핏줄기를 통해 폭령성을 강조하고 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악당의 머리를 자르는 데 필요한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반면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힘센 팔뚝도 없는 여린 모습이고, 자신의 살인 행위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그려졌다. 또한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보이는 유디트의 하녀는 능동적인 역할을 전혀 하지 않는 나이든 여인이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하녀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벨 때 몸으로 제압하면서 동료 역할을 하고 있다.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타시’의 얼굴을 넣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즉 이 그림 속 유디트는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힘있는 여성’이 ‘나쁜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여인이 침략자를 낙폭하게 공격하는 그림을 통해 불공정한 사회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카타르시스로도 해석 할 수 있다.젠틸레스키의 삶에 대한 좀 더 이어가자면, 재판 이후에 한 달 뒤 급하게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결혼 직후 상대는 피렌체 출신의 피에란토니오 스티아테시라는 화가였다. 결혼 직후 부부는 피렌체는 부부로 옮겨간다. 이 곳에서 젠틸레스키는 카사 부오나로 티의 궁정 화가가 되고, 당대 최고의 명문가인 메디치 가문 및 영국 찰스 1세의 후원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걷게 된다.. 젠틸레스키는 여성으로 처음으로 피렌체 디세뇨 아카데미아의 회원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 또한 젠틸레스키는 당대의 유력 인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다. 당시 피렌체에서 보호를 받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와도 교유하던 사이였다. 젠틸레스키는 당당한 예술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림도 여럿 그렸다. 젠틸레스키는 피렌체 시절 화가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만, 금전 문제로 남편과 헤어지게 됩니다. ‘싱글맘’이 된 젠틸레스키는 1621년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 이후에도 젠틸레스키는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눈부신 명성을 쌓는다. 로마에서 베니치아로, 나폴리에서 런던으로 자신의 그림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옮겨 다니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데, 1650년 젠틸레스키가 자신의 멘토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그녀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는다. 1652년 혹은 1653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에선 1656년 나폴리를 덮친 페스트에 걸려 죽었다는 추정도 있다. 젠틸레스키가 숨진 이후 그녀의 명성과 작품들은 점차 잊혀졌지만, 20세기 초 페미니즘 여성운동이 전개되며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다. 젠틸레스키가 활동하던 시절로부터 수 백년이 지났지만 여성들은 진지한 예술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성 미술가들의 노력으로 점차 여성들이 만든 작품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어가긴 했지만, 미술계에서 여성들의 자리를 찾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젠틸레스키와 같은 선구적 여성들의 성취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젠틸레스키의 작품 속 여성들은 21세기에 봐도 여성에 대한 ‘스트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흔히 여성들은 감정적이고, 소극적이고, 연약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덧씌워지지만, 젠틸레스키는 용감하고, 반항적이며, 강인한 성격을 모습을 그려냈다.젠틸레스키의 생애 가장 큰 사건은 내가 선택한 작품과 결부되어 있고, 한눈에 봐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 같다. 젠틸레스키가 생전에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존재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던 그녀가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고매하신 분이시여, 제가 무엇을 여자가 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겠나이다.”라고 답한 것도 인상적이다. 현재 성차별 문제로 시끄러운 이 사회에서 젠틸레스키의 이러한 행보는 당연히 흥미를 끌 수 밖에 없었다. 나 또한 예술을 하려는 사람으로서, 또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여전히 이 사회에서 이 나라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차별 받고 부당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얼마 전, 나라 전체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미투운동 또한 특히 내가 하려고 하는 ‘연기’쪽에서 떠들썩 했으니, 그 때 소문으로만 듣던 현실들을 눈 앞에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의 외침 덕분에 앞으로 내가 가는 길이 예전보다는 깨끗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나 또한 이 일을 계속 해 나가며 이 행보에 동참하고 싶다. 이러한 사건들도 문제지만, 작품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 영화만 봐도 너무 남성 위주의 영화가 많고, 여성들은 항상 소비되는 이미지로, 남성들의 판타지적인 요소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영화를 하는 것이 내 오래된 꿈이고, 꼭 이룰 꿈이지만, 이 바닥에 들어간다면 이러한 상황들을 오래 걸리더라도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램이다. 젠틸레스키가 나보다 더한 시대에서 꿋꿋하게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예술가로서 인정 받고 활동 했던 것처럼 나 또한 예술가로 인정 받고, 또 난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그리고 예술은 하는데 있어서 성별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역사에 한 줄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위키피디아_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석사논문_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작품의 페미니즘 연구 : 를 중심으로노트폴리오 매거진_ 꽃으로 때릴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공연예술과 영상예술- 희곡 ‘Closer’와 영화 ‘Closer' 비교 분석공연예술학과 201518044 정혜민목차1. 연극 ‘CLOSER'1)연극 클로저 소개2)연극의 구성 및 줄거리3)캐릭터 및 내용 분석2. 영화 ‘CLOSER'1)영화 클로저 소개2)영화 감독 마이크 니콜스3. 희곡과 영화 비교 분석1)오프닝의 추가2)불연속 편집의 사용3)시공간적 제약의 자유4)장면의 삭제5)플래시백과 슬로우모션6)결말의 변화4. 연기 분석연극 ‘CLOSER’연극 클로저 소개클로저의 희곡 작가인 패트릭 마버는 1964년 9월 19일 생으로 영국의 윔블던에서 태어나 자랐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고, 코미디언, 극작가, 감독, 배우, 각본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였다.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인 클로저는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1997년 영국 국립극단에서 성공적으로 초연, 1999년에는 마버가 직접 감독에 나서 브로드웨이 공연을 올렸다. 당시 뉴욕 브로드웨이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후, 전 세계 100여개 도시, 30개 언어로 번역되며 널리 사랑을 받았다. 또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영국과 미국의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 또한 안았다.년도수상내역1997BAFTA 최우수 코미디상1998로렌스 올리비에 최우수 창작연극상1999런던 비평가협회 최우수 창작 연극상1999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연극상1999브로드웨이 토니상연극의 구성 및 줄거리연극은 총 2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6장까지 1부, 7장부터 12장까지 2부이다. 장이 끝날 때 마다 시간의 경과가 있다. 무려 4년에 걸친 이야기를 시간의 경과와 함께 사건들의 단면만 보여준다. 연극적으로 특이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연극 자료를 찾아보면, 최소한의 세트를 쓰고 있고 장면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압축된 느낌을 준다. 보통은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클로저는 전반적으로 두 명의 만남과 끝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와 다르게 연극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점. 댄이 안나에게 인사를 하러 가고, 래리는 앨리스를 만난다. 둘은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래리는 자신의 안나의 남자친구라는 것을 밝힌다. 그 사이에, 댄은 안나에게 같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갈 것을 이야기하며 매달리고, 안나는 거절한다. 댄이 떠나고, 래리와 안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나눈다.6장(1년 뒤, 6월의 자정, 각자의 집) : 댄은 앨리스에게, 안나는 래리에게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며 언쟁을 벌인다.[2부]7장(3개월 후, 9월, 스트립 클럽) : 앨리스는 댄을 떠나 제인이라는 이름으로 스트립 클럽에서 활동한다. 래리는 우연히 그곳에서 앨리스를 만나게 되는데, 앨리스에게 진짜 이름을 말하라고 강요한다. 동시에 자신의 집으로 올 것을 권유하며, 앨리스에게 성적 욕구를 솔직히 표현한다.8장(한 달 후, 10월 오후) : 안나는 댄과의 저녁 약속으로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안나는 래리에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길인데, 현재 댄과의 대화와 래리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과정을 교차적으로 무대에서 보여준다. (댄이 퇴장하면 래리가 등장하고, 래리가 퇴장하면, 댄이 등장하는 식.) 래리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대신 잠자리를 요구하고, 안나는 그 요구를 들어준다. 댄은 그것을 눈치 채고 안나와 다투게 된다.9장(한 달 후, 11월 오후) : 한편 앨리스는 래리와 자고있었습니다. 그의 생일에, 그녀는 그를 박물관으로 불러 모으고 거기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안나를 세웠다. Larry와 Anna는 Anna가 Alice를 발견하고 Larry가 우연한 관계를 가짐에 따라 단어를 교환합니다. 래리는 그들의 이혼이 마무리 될 것인지 안나에게 묻는다. 그는 앨리스가 나오면 떠난다. 두 여성은 서로의 적개심을 드러내는 격렬한 교류를 공유합니다. Anna는 Alice가 "원시적"이라고 부르는 Alice의 설명을 호출합니다. 어린 앨리스는 래리의 정서적 인 상태에 대한 애처로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댄은 아직도 그의 잠에서 "버스터 (Buster어느 샌가 그 사람과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앨리스를 만나는 모습에서만 봐도 어리숙하고 순수한 모습이 있다면, 안나에게 이끌림을 느껴 거침없이 저돌적으로 대시하는 모습은 앨리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안나는 어쩌면 앨리스와 상반되는 인물이다. 사회적으로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예측 불가한 상황을 싫어하며, 댄을 여러번 거절하지만 결국 그의 유혹에 넘어간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극, 불안함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래리의 직업은 피부과 의사인데,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는 래리의 성격과도 연관된다. 사랑에 있어 진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외치며, 육체적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클로저는 남녀 관계 뿐 아니라 서로의 상대를 빼앗긴 남성들, 여성들끼리 기이한 소통을 다루고 있다. 패트릭 마버가 “남성들 간의 관계는 신실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근본적인 허세 부리기 위에 기초해 있다.”라고 말했듯, 마치 경쟁하듯 서로의 상대를 뺏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댄의 나약함은 여성들에게 섬세함으로 래리의 단순함은 남자다움이라는 매력으로 어필 될 수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댄의 나약함을 결국 여성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래리의 단순한음 자신의 권력과 남성성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잔혹성으로 치닫는다.앨리스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지만,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앨리스는 댄과 안나의 첫만남에서 둘의 사이를 눈치 채지만, 안나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묻는 대신, 자신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연인의 배신에 상처 입고 눈물 흘리는 그 순간을. 그 후, 대사를 단서로 보면 둘은 사진 일로 만나며 댄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시간이 흐른 후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앨리스는 어쩔 수 없는 박탈감을 느낀다. 앨리스의 상처보다 안나의 예술의 재료로 아름답게 왜곡되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앨리스는 2004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 최우수 남자 배우클라이브 오언2004국가 검토위원회Ensemble 최우수 연기주드로, 클라이브 오언, 나탈리 포트만 및 줄리아 로버츠2005라스베가스 영화 평론가 협 최우수 남자 배우상클라이브 오언2005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클라이브 오언2005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나탈리 포트만2005BAFTA어워즈 남우조연상클라이브 오언영화 감독 마이크 니콜스마이크 니콜스는 50여년간 활동한 미국 TV, 영화, 연극계의 거장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안겨 준 , 더스틴 호프만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을 연출한 헐리우드의 명감독 중의 하나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와 존 트라볼타, 엠마 톰슨 주연의 로 국내에서도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이어 수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고, 은 이후 많은 영화들이 오마주를 표할 정도로 후배 연출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연출자로서도 확고한 위치에 서있으며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로 인정받았다.는 네 남녀가 얽히고 설키면서, 서로를 유혹하고, 속이고, 배신하고, 집착하고, 떠나가는, ‘관계’와 ‘승부’에 대한 영화다. 관계를 맺는 데 ‘진실’만큼 중요한 것이 ‘거짓’이고,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너무 가까이 가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니콜스 영화의 특징 자체가 복잡한 애정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 복잡한 애정관계에 집찬하는 이유로 ‘관계의 코미디’의 대가인 안톤 체홉의 영향과 더불어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이유를 들며, 어머니의 불륜에 대한 상처로 유혹에 약하고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하는 영화 속 남자들에게 본인을 투영하는 이유 또한 꼽았다.) 그렇기에 클로저의 내용만 보더라도 마이크 니콜스가 의 연출을 맡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또한 니콜스의 작품은 보통 연극을 영화화하거나 소설을 영화화한다. 그렇기에 니콜스의 영화에 ‘연극적’이라거나 ‘문학적’이라는 평이 따라 붙는프닝의 추가많은 사람들이 클로저의 오프닝을 좋아한다. 감정 몰입을 도와주는 이미 알려진 유명한 음악과 함께 댄과 앨리스의 운명적 만남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에선 댄과 앨리스가 사람들 사이로 걸어오는 장면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각 인물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줄 때마다 샷의 크기는 줄어든다. 풀 샷에서 시작되어 바스트 샷까지 올라온다. 동시에 두 인물의 감정을 묘사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인물의 표정을 길게 보여준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편집이다. 희곡에서는 병원에서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희곡의 대사를 바탕으로 앞 장면을 추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불연속 편집의 사용연극에서 장면사이에 암전이 있는 만큼, 영화에서는 댄과 앨리스의 첫 만남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종결됐기 때문에 페이드 아웃이나 페이드 인 사용됐을 법도 한데(보통의 영화에서는 사용하기도 하고.) 바로 컷과 컷이 연결되는 불연속 편집을 사용했다. 댄과 앨리스의 대화가 마치는 컷에서 바로 댄과 안나의 첫 만남 컷으로 진행된다. 또한 댄과 앨리스는 이미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되어있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중간의 과정, 사건 등을 생략하고 인물과 인물의 새로운 만남을 시작점으로 잡는데, 시간의 경과를 명확하게 들어내지 않고 컷과 컷으로 연결시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장치로 상황이 급격히 달라질 때마다 상황을 쫓아가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기존의 희곡에도 존재하던 압축된 전개와 더불어 불연속 편집을 사용해 지루함을 덜어준다.시공간적 제약의 자유여기서는 희곡을 영화로 바꿨을 때 가장 크게 나타나는 매체적 특징이 바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 생기는 것이다. 한 장소에서 이어진 긴 대화가 장소가 변화되면서 일어나며,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화의 매체적 특징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 또한 무대에서는 분할된 공간과 조명을 이용한 장면들을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 주게 된다.장소의 이동몇가지 예시를 준다.
인문학의 이해‘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과 ‘포스트휴먼’에 대한 비판적 입장- 인간의 경계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단어가 왠지 생소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예술 쪽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사조 앞에 붙여지는 ‘포스트’는 ‘after', 'beyond'의 의미를 가지며, 시기상 앞에 오며 보통 이전 시대의 것에 반(反)하면서 시작된다. 또한 이전 시대의 것을 비판하고, 극복하면서 일정 부분 계승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반발로 시작되었듯, 포스트휴머니즘도 근대휴머니즘에 대한 극복의 의지로 시작되었다.포스트휴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근대휴머니즘과 근대철학에 대해 살펴 볼 수밖에 없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근대 휴머니즘의 어떠한 부분을 극복하려고 했을까? 여기엔 명확한 답이 있다. 바로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이다. 휴머니즘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주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인문주의(人文主義)이고,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사상적, 정신적 태도 및 세계관이다. 휴머니즘의 등장배경 또한 이전의 시대의 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왔는데 중세시대 가톨릭 중심의 권위와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중세시대의 사상을 극복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인데,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은 근대철학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근대 휴머니즘에 영향을 준 수많은 철학가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베이컨과 데카르트를 들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매력적인 말로 유명한 베이컨은 ‘아는 것' 즉, 지식(과학,기술 등)의 가치를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것, 인류 전체의 보편적 효용에 두었다. 또한 무한한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끝없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아틀란티스를 꿈꿨던 베이컨의 사상은 현재 실현 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고, 인류는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말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이렇게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는 더 이상 의심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명제는 근원적인 확실성을 신에게서 찾은 중세 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사유, 인간의 자의식에서 철학의 토대를 찾은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은 이성과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인간은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자신과 사물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존재를 규정하는 자율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이처럼 데카르트와 베이컨의 사상과 그 이후의 계몽주의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높이 세웠으며, 자연을 세속화시킴으로써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근대 세계는 이러한 철학적 사상에 바탕을 둔 근대휴머니즘이 설정한 방향을 받아들여 민주주의 체계를 확립했고,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구축한 것이다. 그 결과 과학과 기술의 진보, 물질적 풍요의 증가, 생활 환경의 개선 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평등과 자유의 제공 등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자원개발과 산업화는 지구 환경의 오염과 황폐화로 이어졌으며, 환경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 인간의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자원과 풍요의 독점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탄생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폭력이 양산되었다따라서 현대철학에서는 데카르트와 베이컨으로 대표되는 근대성의 문화, 다른 말로 하면 근대에 들어와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이해된 휴머니즘을 극복하려는 경향이 등장하게 된다. 이를 반(反)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한다.포스트휴머니즘은 아직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조로 새로운 조류들과 의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료들을 살펴보면 포스트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을 동일시 한 입장으로 쓴 자료들도 꽤 있다. 최근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포스트휴머니즘을 개념을 구분하는 비교적 명확한 갈래가 있는데 현대 포스트휴머니즘 철학가인 프란체스카 페란도의 정의이다. 페란도는 포스트 휴머니즘을 안티휴머니즘, 즉 반휴머니즘, 트랜스 휴머니즘, 문화적 포스트휴머니즘, AI, 철학적 포스트 휴머니즘, 인간이 멸종한 뒤의 포스트 휴먼의 미래에 대하여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갈래 또한 완전히 구분되는 갈래이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이고 많이 논의되는 반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반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이 포스트휴머니즘 안에 있는 개념이니만큼 공통적인 부분이 바로 근대 휴머니즘에 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근대 휴머니즘은 인간을 지구의 존재 중 가장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의 주인으로써, 자연을 활용하여 인간에게 효율적으로 이득을 얻어 왔다. 근대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 자연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자연을 인간의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근대 휴머니즘은 만물을 인간과 비인간으로 구분하며 종의 분류, 경계를 만들게 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이러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려고 한다. 자연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변형, 재구성하여 창조해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인 우리 자신도 과학적 탐구, 기술적 조작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이러한 공통점 안에서 조금 더 구분 지어 보자면 반휴머니즘이 앞선 시대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사상에 대한 제시에 가깝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완전 가능성의 연장선으로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과학 기술의 진보의 성과를 적용하여 개량하고 발전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상이 바로 ‘포스트휴먼’이다. 어떻게 보면 반휴머니즘이 비판하는 휴머니즘의 사상 중 계몽주의의 한 부분을 잇고 있는 사상이 바로 트랜스휴머니즘이기 때문에 반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은 상반된 색깔을 가지고 있다.인간의 특권적 존재이고,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휴머니즘 사상이 지구의 치명적 위기를 도래하게 만들었다. 이에 반하여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를 반성하며, 더불어 살 것을 주장하는 반(反)휴머니즘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로 인간과 비인간으로 나누는 근대의 휴머니즘이 옳은 것인가? 에 대하여 비판하며 만물은 애초에 평등했다는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이는 인간의 주체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을 낳았으며, 인간도 자연이라는 인식론적 전환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앞서 말한 인간과 비인간을 경계를 허무는 토대가 된다.이후, 21세기 들어서면서 나노,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봇 등 첨단기술이 기하학적으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움직임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것의 한 갈래로 트랜스휴머니즘을 들 수 있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 지향하는 것은 다양한 과학과 기술이 철학과 결합하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인 ‘막스 모어’는 트랜스휴머니즘을 ‘포스트 휴먼’으로 인도하는 철학이라고 말하며, 트랜스휴머니즘이 이성과 과학을 존중하고 진보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첨단기술은 기존의 기술들을 변형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냈다.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또 뛰어넘어 종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다른 종과 융합하여 인간의 신체와 마음도 변형하고 재창조 하여 새롭게 창조된 인간 ‘포스트휴먼’을 제시하는 것이다. 발전된 과학 기술 앞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정의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포스트 휴먼은 ‘인간종’ 이라는 생물학적 명칭만 가질 뿐, 지금까지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다.그렇다면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포스트휴머니즘에서 주장하는 포스트휴먼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기술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문제 해결을 넘어서 인간을 설계하고, 변형하는 것까지 간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진보된 기술의 힘을 빌려 나 스스로를 설계 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 올 수도 있고, 머지않아 우리는 이것을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의 예시로 기술에 의존해 나의 유전적 특성, 생물학적 특질, 심리적 성향, 외형 등을 선택 할 수 있다고 가정 할 때 나는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을까? 나를 선택함에 있어서 평가의 척도는 누가 제공 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들어낼까, 아니면 밖에서 주어지는 것일까? 벌써부터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겨나게 된다. 개인적인 견해로 결국 본인이 선택하는 우수하다는 특질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현재 흘러가는 조류에 가치를 맡길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면 어느 정도 사람들이 획일화 되는 모습을 보여 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또 다른 기계, 로봇들의 출현이 아닐까. 인간을 쉽게 부품처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선택의 기준도 사회적으로 가치가 높을 것을 택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자신을 선택하는 자유는 자신을 대상화하는 위험을 야기하게 되는데,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물화하고, 본래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이러한 태도가 타인에게 향하게 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부모에 의해 계획되고 설계된 자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자식의 삶은 온전히 자식의 것일까? 우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태어난 자식을 교육하는 것과 생물학적 특성을 선별 및 설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해도 인격적으로는 평형관계에 있어야 하는데, 부모가 자식의 삶을 설계 했다면 인격적으로 평형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부모가 자식의 삶에 대한 공동소유를 주장할 수도 있다.
에비타 감상문에비타가 사람 이름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소하게 느껴져서 찾아보니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2번째 부인이며 아르헨티나 국민에게는 국모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을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부르는 애칭이 에비타 라고 한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에비타 포스터를 봤을 때 정치적인 견해가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못 하고 뜨거운 사랑이야기인가, 치정극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께서 처음 마돈나가 이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에바 페론을 지지하는 아르헨티나 세력들에게 반발을 샀다고 말씀하셨는데 포스터만 봐도 마돈나의 그 섹스 심벌적인 이미지와 에너지 때문에 왜 반발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진행 될수록 마돈나의 연기와 노래에 푹 빠져들게 되면서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마돈나가 이 역할에 엄청 욕심을 내고 먼저 감독에게 연락 할 정도라고 하셨는데, 그 만큼 얼마나 이 캐릭터를 위해 노력하고 분석했는지 보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보통 한 인물의 전기적 내용을 다룬 영화를 보면 그 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체 게바라’를 등장 시켜 냉소적인 시각으로 에비타를 바라본다. 에비타에 대한 후세의 평가에 대한 논쟁이 보통 성녀인가, 악녀인가에 관한 타이틀로 가는데, 이 뮤지컬은 악녀라는 것에 중점을 두는 내용인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체 게바라’라는 인물을 썼을까. 에비타가 아르헨티나에서는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그녀가 펼쳤던 정치적 정책에 있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고,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힘쓰고, 여성 평등을 위해 노력했던 구체적으로 여성참정권을 주장하고 관철 시킨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다. 배우 출신인 그녀는 훌륭한 말솜씨와 뛰어난 외모로 사교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그녀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국모로 추앙받아 마땅하다 여겨질지 모르나, 좋은 목적으로 시작한 정책들이 결국 나중에는 전체주의 체제 안에 독재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또 그러한 지나친 복지 정책들의 부작용, 흔히 지금 말하는 재정이 감당 할 수 있는 분배나 사회성장보다 분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포퓰리즘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해설자로서, 사회자로서 ‘체 게바라’를 등장시킨 것은 에비타에 대한 웨버의 관점이 냉소에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둘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접점이 없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의학도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혁명의 길로 뛰어든 진정한 투사이다. 혁명처럼 비제도권의 방식이 아닌 정책의 변화와 같은 제도권의 방식을 쓴 에비타와 비교 될 수 밖에 없고, 무엇보다 삶의 태도에 있어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와 하나가 된 체 게바라와 달리 에비타는 인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는데 돈을 쓰며 꽤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체’라는 인물이 그녀의 모순과 위선을 꼬집어 내는 것이 더 큰 극적 효과를 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조국 아르헨티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단순한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는 치부 할 수 없다. 그래서 극 중에서도 에비타의 정치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그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진심 어린 마음을 부각하고, 그녀의 육체적 매력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처지도 이해해준다. 그러나 분명히 악녀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음악을 통해서도 확실히 보여주는데, 이 뮤지컬 영화 자체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날 위해 울지마오, 아르헨티나여 라는 곡은 자신을 낮추고 인민을 높이는 장중하고 호소력 있는 노래인데 체가 그녀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부르는 ‘오 멋진쇼!’ 편곡하여 쓰인다. 그 장중한 곡이 살짝은 발랄하게 편곡 되면서 비아냥대는 느낌까지 주는데 에비타가 대중에게 진심을 담아서 호소하던 노래를 극 초반 체에게 노래하게 하고 ‘쇼 하고 있네’라며 비아냥 거리는 느낌을 준 것이다.
그리스 감상문뮤지컬 그리스는 1971년 처음 나왔지만, 뮤지컬 그리스를 바탕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저번 시간에 본 그리스 영화는 뮤지컬이 만들어진지 7년 뒤에 나온 영화로 당시의 스타였던 존 트라볼타와 여주인공으로 올리비아 뉴턴 존이 함께했다. 처음에 그리스라고 해서 당연히 유럽에 있는 한 나라를 뜻하는 줄 알았고,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대체 그리스와 무슨 연관이 있는걸까 의문점이 생겼다. 알아보니 그리스는 머리에 바르는 기름인 포마드 기름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더 넓은 의미로 살펴보면 당시 60년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가죽재킷과 패션에 머리에 바르는 기름인 포마드, 즉 그리스를 바르고 뒷주머니에 빗을 꽂고 다니는 당시 젊은이들의 그 문화 자체를 가리켜 그리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뜻을 알고 나니, 이만큼 잘 어울리는 제목이 있을까 싶다.앞서 말한 그리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미국 청소년들의 모습이 잘 담겨있고 또 그 시기에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다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간 점이 인상 깊었다. 청소년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고 그렇다보니 영화, 음악, 소설 등에서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는 곧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또 잘 소비되는 소재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도 불량서클끼리의 대립, 진로에 대한 고민, 졸업무도회, 첫 키스와 첫 경험, 임신 등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자칫 잘못 하면 이야기의 흐름이 무겁고 지겨워질 수 있을 때 경쾌한 노래와 춤이 곁들어지면서 젊은이들의 풋풋한 느낌을 잘 살려 이어나갔던 것 같다. 또한 당시에 유행했던 로큰롤 음악을 이용해 미국 청소년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정말 나라를 막론하고 10대 시절에 가지는 반항심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래서 그리스가 연령과 또 시간에 상관없이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10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해도 현재와는 다르며, 심지어 우리나라는 영화 속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당시의 경험을 떠올릴 사람들도 더 이상은 없는데도,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10대를 겪었기 때문이다. 10대를 이야기하고,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10대들의 공통된 감정과 고민을 보여주면서 10대들에게는 공감을 그를 지나온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지컬 그리스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장기 공연 13위를 기록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에 대한 향수일수도, 꼭 그 시대를 살지 않았을지라도 그 분위기를 좋아해서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최근 복고열풍이 불어 다시 한 번 과거에 대한 향수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텔레비전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로 탄력을 받았고, 이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복고 스타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때 그 시절의 향수를 가지고 있고,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그 때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우리나라도 미국 못지않게 그 시대를 안을 수 있는 특징과 패션, 그리고 음악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를 인상 깊게 또 재밌게 보다보니 우리도 이런 부분을 잘 살려서 우리나라만의 뮤지컬이나 뮤지컬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