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즈니스 인문학저자 : 조승연이 책의 저자 조승연 작가는 언어 인문학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강사 겸 방송인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영어 단어의 어원을 알려주고 그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풀어나가는 그만의 방식은 책의 흥미를 한층 더 높여준다. 최근 기업들이 좋아하는 인재상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만, 학문을 배우는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전공 학과는 취업률이 저조하여 비인기 학과로 취급되는 현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에 대해서 독서를 하며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사실 인문학을 전공한 많은 사람들 조차 인문학이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고, 배운 인문학 지식을 사회생활 혹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모르는 게 대다수다.이 책의 제목은 비즈니스 인문학이다. 경제학은 비즈니스의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원리는 책상을 벗어나 비즈니스 현장으로 들어가면 한계에 부딪힌다. 광학 전문가가 최고의 사진 예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창시설 높은 점수를 받은 우등생이 우수한 회사원 혹은 비즈니스맨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경제학 전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의 속내를 잘 파악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어투, 제스처, 연출 등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인문학은 바로 이런 감(感)을 길러주기 위해 생긴 학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그럼 이 책의 여러 내용 중 인상 깊게 읽은 몇 가지 챕터 들의 내용을 공유해 많은 이 들이 인문학의 이로움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엘리트 의식을 심어 조직을 단단하게 결속시킨다”-중세 천주교 기사들의 프라이드-중세초기 유럽의 천주교 조직은 소멸위기에 처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군대가 해체되자 언어와 문화, 풍습이 전혀 다른 수많은 민족들이 로마 영토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여러 부족들이 한 영토에서 살다 보니 부족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로마제국의책을 주었다. 이 직책을 부여 받은 대가로 교황이 만든 기사도라는 문명인의 법도에 따라야 하며 기사도를 따르기로 맹세하면 신성 로마제국 이라는 가상 국가의 군인이 되어 교황과 황제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야만 했다.로마라는 망한 나라의 허울뿐인 타이틀을 주었을 뿐인데도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던 야만족 전사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게 하였고, 스스로를 전 유럽 역사를 지배해온 로마제국의 상류층이라고 믿게 해주었다. 천주교 기사들은 특권계급인 기사의 면모를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쳐 적진으로 정면돌진 하는 것으로 유명 했는데, 정면돌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prode는 현재 자부심을 뜻하는 영어단어 pride가 되었다.중세 기사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프라이드는 목숨보다도 더 강한 것이었다. 기사라는 계급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고 천주교를 이전보다 더 큰 세력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이처럼 본인은 남과는 차원이 다른 엘리트 조직에 속해 있다는 신념은 그에 알맞은 행동을 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게 만든다.우리나라도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던 시대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교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입고 다녔지만, 고교평준화가 대중화되면서 획일화 된 교복을 기피하고 사복을 입고 다니는 문화나, 아무나 입대할 수 없으며 자신들은 일반인 보다 뛰어난 훈련과 경험이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해병대의 조직문화 등이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조직력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만큼 엘리트 의식은 조직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충성심 그리고 조직의 발전을 위한 길임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창의력의 씨를 뿌리려면 마음의 밭부터 갈아라”-인문학의 부활로 유럽이 얻은 놀라운 파워-아무리 오랫동안 실전 경험을 쌓아도 창의성이 길러지기는커녕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서양 인문학에서는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의 경험은 헛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농부가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밭을 갈 듯 일필요로 하는가? 라는 물음부터 출발한다. 경제학적 접근은 사람들이 왜 호텔을 이용하려고 하는지 보다 당장 다음 휴가철에 몇 퍼센트로의 할인 정책을 펼치면 고객유치가 될 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고객을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 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회사는 결정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경우가 많다.창의성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 같아도 실은 평소에 여유를 가지고 읽은 책, 음악, 생각 등 개인의 경험의 상호작용 속에서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갈고 다듬어져 나온다. 즉 부지런히 기본 소양을 닦아두는 사람만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매너는 양방향으로 오가야 한다”-사우스웨스턴 항공의 fun 경영 방침-경제학은 상품 구매행위를 하나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하나의 수학공식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인문학에서는 상품 구매 행위 또한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상품의 품질이나 매장의 간판, 인테리어 등을 살펴 그곳이 내 계급이나 미적 기준에 맞는지 확인한 다음에 매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래는 사회생활의 일종이기 때문에 고객과 기업 사이의 서비스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기본 매너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즉, 매너는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서로 오가야 한다.1400년대 프랑스 부르고뉴라는 지역에 ‘필립 공’이라는 착하고 부자인 영주가 살았다. 그는 부자는 모름지기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도시마다 호텔시설을 짓고 가난한 자, 여행자, 고아들이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도록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식하고 가난했던 탓에 필립 공의 생각처럼 고상하게 살기는 쉽지 않았다. 진흙투성이 신발로 들어와 바닥을 더럽히고 손으로 음식을 먹으며 큰 소리로 트림을 하고 방귀를 끼거나 음식을 던지는 등 매너가 빵점 이었다.이런 행동들이 몹시 거슬렸던 필립 공은 ‘바닥에 침 뱉지 마시오’ ‘신발 털고 들어오시오’ 등의 표지판을 만들었고, 표지판이 꽂혀 있다고 해서 고정하다의 의미를 지닌 영를 만들어 두 번 다시 탑승시키지 않는 방침을 고수했다. 최근 기업과 기업간이나 고객과 셀러간의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많이 나오는데, 거래관계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갑과 을이 아닌 서로가 동등한 존재임을 깨닫고 매너를 지키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객과 친구가 되려고 하지 마라”-고객은 불편한 존재이다-우리가 고객을 부르는 여러 명칭 가운데 ‘돈 주고 물건만 가져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없다. 고객을 뜻하는 단어 Client는 원래 라틴어로 고개를 숙인다 라는 의미였다. 변호사처럼 돈 받고 일해주는 사람이 을이고 일을 맡기는 사람이 갑이던 시절에 제발 자기 사건을 맡아달라며 돈뭉치를 싸들고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을 뜻했다. 또한, 가장 흔히 사용하는 Customer는 원래 관세청을 뜻하는 단어 Custom에서 유래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재정은 귀족들의 사치로 국고가 텅텅 비게 되었다. 이를 채우기 위해 국가는 세금을 무계획적으로 징수 하였는데 당시 세금을 걷는 사람들을 Customer 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 시대 최고의 슈퍼 갑 중의 갑이었다.이처럼 세금을 걷는 customer들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시작한 시대부터 슈퍼 갑으로 떠올랐다. 이 단어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등을 지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 되었고 마침내 돈 내고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나 고객이라는 뜻으로 발전 되었다고 한다. 단어의 어원처럼 고객은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이어야 한다.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사업을 하기 위해 3F에 의존한다고 한다. 3F란 Friends, Family, Fools를 뜻한다. 즉 친구, 가족 주변의 멍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 고객이 되어 줄 거라는 기대로 시작한 음식점이나 술집, 카페 사장들의 실패담은 끝이 없다. 고객이란 단어가 원래 불편한 사람을 뜻하는 말인 것처럼, 돈을 내는 손님이 되고도 갑 행세하기 껄끄러운, 친구가 차린 음식점, 술집, 카페 등은 드나들기가 불편하장사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다른 민족이 침략을 하면 고기와 밥을 대접하여 배부르게 먹여주고 돌려보내는 문화가 생겼다. 여기에서 적군을 뜻하는 단어 host가 손님을 받다 라는 의미로 발전 되었다. 즉 우리가 접대해야 할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호전성을 누그러트려야 할 적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접대 골프를 몇 번 같이 쳤거나 고급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진정한 친분으로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접대는 적이 나를 공격하지 않도록 마음을 누그러트려 평화를 유지하는데 있는 것이지 절대로 친교를 다지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도 동업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강조 하였는데, 예로부터 주로 친구나 형제 등 가까운 사람끼리 동업을 하다 보면 철저한 거래 관계를 지키지 못하고 사업이 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객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가급적 가까운 사람과 냉정한 거래관계는 피하고 고객과 친구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성공 기준이 명확하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로마인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알려준 마일 스톤-성공이 오히려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원인은 간단하다. 바로 끝없는 욕심이다. 자신만의 성공기준이 없으면 계속 무리한 도약을 하게 되어 이미 이루어놓은 성공마저 잃고 인생을 비참하게 살게 된다.로마는 열심히 길을 뚫어 군대를 이동시켜 유럽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다. 길이 많아지면서 군대만 이동시키지 않고 수레에 나무와 건축자재들을 싣고 적진 한가운데로 이동해 집을 짓고 편안하게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로마인들은 거의 평생을 길에서 보내고 자연스럽게 인생을 길에 비유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가로지르는 끝없는 길을 가다 보니 자기가 어디쯤 왔는지 알아야 할 지표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1마일마다 하나씩 스톤을 세워 마일 스톤이라고 불렀다. 또한 인생에서도 마일 스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휴식, 운동, 취미 일수도 있는데T 1
제목 : 카르마경영 (일본 최고 CEO 이나모리 가즈오의 성공 철학)작가 : 이나모리가즈오I. 프롤로그II. 제 1 장 - 생각을 실현시켜라1.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법칙 “인생은 사람이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마음이 부르지 않은 것은 얻을 수 없다. 이미 실현된 것들은 전부 자신이 마음속으로 원한 것이며, 미리 생각하지 않은 것은 이뤄질 수 없다.2. 자나 깨나 강렬하게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히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라고 원해야 한다.3. 현실이 된 모습이 컬러로 보이는가?-> 바람을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4. 세세한 부분까지 컬로로 상상할 수 있으면 실현된다.-> 목표를 높게 잡고 끝까지 파고들다 보면, 성과를 얻는다.5. 세심한 계획과 준비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막연히 꿈을 그리기 보다는 아이디어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곧바로 메모하거나 주변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대담하고 낙관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의 일이며, 구상을 ‘구체적으로 계획해 나갈 때’에는 정반대로 비관론에 입각해서 모든 위험성을 상정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중하고 엄밀하게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6. 아프고 난 후에 깨달은 마음의 대원칙->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경영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젊은시절과 학창시절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이 좌절과 실패 역시 본인이 끌어 들인 것이라 생각했다. 즉 본인의 나약한 마음이 재앙을 부른 것.7. 운명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진리를 깨닫다.-> 우여곡절을 보내며 이나모리 가즈오는 운명은 자기 손으로 개척할 수 있으며 행복과 불행 역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진리를 깨달음8. 단념하지 않고 계속하면 성공할 수 있다.-> 현재의 능력으로 가부(可否)를 판단하지 말자. 그렇게 된다면 새로운 것이나 힘든 일은 언제까지나 이룰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자신의 가능성이지고 뜻을 기울이라. 의지만 있다면 점점 유의주의가 습관이 되고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알게 되며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집중력’이다.13. 넘칠 듯 한 꿈을 가지면 인생은 크게 발전한다.-> 꿈을 크게 가져라. 성취된 이후 모습이나 이르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고 눈앞에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내다 보면 곧 실현될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아이디어는 나온다.III. 제 2 장 - 원리원칙에 근간을 두고 생각하라1. 인생도 경영도 단순명료한 원리원칙이 좋다.-> 원리원칙에 맞게만 행동하라. 기본적인 규범, 예의, 도덕 등의 가장 근본의 원칙을 근간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그 인생이나 경영은 이미 옳은 방향을 가고 있다.2. 길을 잃었을 때 이정표가 되어주는 ‘삶의 철학’-> 원리원칙은 철학이다.사업의 원리원칙은 회사의 이익도 체면도 아니다. 바로 서비스와 제품을 이용하는 이용자들과 사회에 대한 공헌이다. 그들에게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를 주는 것이 기업 경영의 근간이자 원리원칙이어야 한다.3. 세상 풍조에 현혹되지 않고 원리원칙을 사수할 수 있는가?-> 원리원칙을 중시하다 보면,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결코 손해가 아니다. 일시적인 손해는 결국 장래의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과욕은 금물이다.4. 알기만 해서는 안 된다. 실행할 때 비로소 의미가 이다.-> 원리원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가장 강한 의지가 없다면, 강한 의지로서 관철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항상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자성자계하는 것도 삶의 원칙 중 일부’이다.5. 사고방식의 방향이 인생의 모든 방향을 결정한다.-> 인생의 방정식 : 인생(일)의 결과 = 사고방식*열의*능력특히 사고방식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고방식에는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냐 -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능력이 좋고 열의가 충만해도 사고방식이 마이너스면, 결과는 마이너스를 초래한다.6. 자신의 인생드라. 이기적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든 성공할 수 없으며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11. 복잡한 문제도 풀어내면 확실하게 보인다.-> 인정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냉정하게’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면 갈등의 원인은 실제로 지극히 단순한 것일 때가 많다. 어떻게? : 관점을 바꾸거나, 시점을 변화시켜 다시 생각해볼 것. ‘사물을 단순화 하여 본질을 고쳐보는 차원 높은 눈’을 가져라 : 사심, 이기심, 이해관계, 집착 등을 떠나 공명정대한 이타적인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얻는다.12. 국적문제, 국가 간 마찰도 단순하게 생각하라.13. 외국과의 교섭은 상식보다 합리로-> 외국 문화를 배워라. 내가 원리원칙에 따라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그들이 납득하면 전례나 기업의 규모 등에 관계없이 재빨리 의사결정을 해준다. 판단의 기준은 스스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인간으로서 올바른 일인가를 되새겨보라. 원리원칙은 국가나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은 인류 전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III. 제 3 장 - 마음을 수양하고 높이라.1. 사람들은 왜 ‘아름다운 마음’을 잃어버렸을까?-> 요즘사람들은 겸허함을 잃어버렸다. 겸허함이란 항상 공손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수훈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도 스스로를 제어하고 담담하고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이며 서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재능을 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첫 번째 의로,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두 번째 의로 여겨라2. 지도자는 재능보다 덕을 갖춰야한다.-> 뛰어난 재능과 지각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 재능에 함몰되지 않도록, 즉 자신의 힘을 오용하지 않도록 조절하여야 한다. 이것이 덕이자 인격이다.3. 항상 자신을 성찰하고 인격을 수양하라-> 올바른 삶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배운 당연한 덕목들이다. 지극히 당연한 도덕심, 간단한 규범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지켜나가면 된 것이다. 즉,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중히 생각하라.10. 정검을 빼면 성공하지만, 사검을 빼면 무덤을 판다-> 성공을 하거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바라는 것이나 열의가 밝고 깨끗해야 한다. 사심을 없애고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그 생각으로 정검을 뺀다면 성취할 수 있으며 인생은 풍요로워 질 것이다.11. 일하는 기쁨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기쁨-> 일의 기쁨은 고통 속에서 배어나오고, 일의 즐거움은 고통을 뛰어넘은 곳에 숨어있다. 즉, 일상생활 노동에 전념하는 것과 좌선으로 정신통일을 꾀하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일에 전념하는 것 자체가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도’다.12. 석가모니가 말한 ‘육바라밀’을 마음에 새기라->①보시 : 이타심, 배려심 => 인간은 마음을 높일 수 있다.②지계 :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악행을 경계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과욕, 탐욕, 의심, 질투, 원망)③정진 :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④인욕: 고난에 꺾이지 않고 참고 견딘다.⑤선정: 정신을 집중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한 곳에 모을 필요가 있다.⑥지혜: 다섯 가지 보시 지계 정진 인욕 선정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주의 ‘지혜’ 곧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13. 마음은 일상의 노력으로 수양이 된다.-> 육 바라밀 중에서 가장 실천하기 쉬운 것은 정진이다. 즉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깨달음은 일상의 노동 속에 있다. 먼저 자신의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그것을 향해 묵묵히 자신을 연마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누구에게도지지 않을 만큼 노력을 쏟으며 정성과 영혼을 깃들여 일에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있고, 동시에 마음을 수양하고 인격을 연마하여 인생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14. 노동의 의의와 근면에 대한 긍지를 되찾으라.-> 일을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여 보수를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아라.노동의 정신적 의미를 생각해라. 노동을 인간 형성을 위한 정진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타의 마음은 물론 우리 회사를 위한 마음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만, 내 가족이나 내 회사만 좋으면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5. 매일 밤 자문했던 신규사업 동기-> 이타라는 덕은 곤란을 이겨내고 성공을 불러오는 강한 원동력이다. 매일 밤 자문하여라. 전기통신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인가? 회사나 자신의 이익을 꾀하고자 하는 사심이 섞여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세상에 잘 보이고 싶은 과시적 행동은 아닌가? 그 동기는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순수한 것인가?6. 세상을 위해, 타인을 위해 일부러 손해를 본다.-> 비법은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했던 ‘사심 없는 동기’였다. 창업자였지만 DDI의 주식을 한 주도 가지지 않았다. 왜냐면 일체의 사심도 가져서는 안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기가 선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있다.7. 사업으로 얻은 이익은 사회를 위해 쓰라-> 교세라의 경영이념은 물심양면으로 모든 종업원의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류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공헌한다는 것이다. 즉 이타적 경영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어렵다. 돈을 마음으로 쓰고, ‘올바르게’ 쓰면 사회공헌은 저절로 이루어 질 것이다.8. 부국유덕을 국시로 삼자-> 상대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도 충분히 배려하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부국유덕이란 부가 아닌 덕을 통한 나라 세우기를 의미한다. 부나 부의 힘을 살려 덕으로써 타인이나 타국에 베푸는 나라가 되자는 것이며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덕으로써 타국에 ‘선’을 행하며 신뢰와 존경을 받자는 것이다.9. 배려와 이타의 미덕을 잊고 있지는 않는가?-> 배려나 이타의 마음을 잊어버린다면 남는 것은 자신의 욕망뿐이다. 법 앞에 윤리가 있다.10. 지금이야말로 도덕에 기초한 인격교육으로 돌아갈 때이다.-> 도덕규범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의 규칙을 소홀히 여겼다.11이다.
제목 : 생각의 좌표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작가 : 홍세화작가 설명 :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편한 비루함보다는 불편한 자유 쪽에 서려고 했던 작가.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많은 수가 아이돌, CEO, 또는 건물주라고 대답한다. 소방관이나 시인, 우주비행사, 간혹 대통령을 꿈꿨던 나의 어릴 적과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조차 돈과 기득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홍세화 작가의 ‘생각의 좌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유하는 인간으로 사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읽는 내내 대다수의 대한민국 학생들이 경험했을 것들과 거의 비슷했던 나의 학창시절을 반성하게 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피해 의식을 꼬집어 주었다.[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책의 서막은 인문학의 기피 현상에 대하여 비판하며 시작한다. 사람과 짐승과의 다른 가장 큰 점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렇게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사람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스스로의 생각과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을 뜨는 만큼 자아의 세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름지기 정답이 있는 학문뿐만 아니라 ‘인문과학’을 배워야 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등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오고 자랐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세상은 독서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내가 배워 온 교육은 시 한 구절을 읽더라도 내가 느낀 바가 아닌, 시인이 의도한 바를 잡아내야 했다. 문학을 읽고 느낀바 보다 문학 작가의 사회적 배경을 외우는 게 더 필요한 교육을 받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렇게 주입식 교육을 받아 온 나에게 ‘독서’의 가치, ‘인문과학’의 중요성을 제아무리 언급해도 와 닿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사형제도의 찬반 여부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교육이 아니라, 최초로 사형제도가 공식적으로 없어진 국가를 외우는 교육을 수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인문학이 중요하다 해도 우리 사회는 인문학의 종말로 향해 가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려면 인문학이 아닌 실용학문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인문학을 전공한다 하면 취업은 어디로 해야 하지? 하는 걱정부터 하게 된다. 인문학을 기피하는 것이 과연 학생들만의 잘못일까? 문과에서 상경계열의 입학정원은 100명을 초과하는데 역사나 법학, 행정학과는 입학 인원이 적어 통폐합 되어가고 있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스스로와 부단히 싸우며 성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데, 이것도 기득권자의 배부른 소리로만 들린다. 우물 안 개구리들은 우물에서 제일 높이 뛸 수 있어야 우물 밖을 구경이라도 해 볼 수 있으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인문학을 파는 행위는 도태된 개구리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작가는 이러한 인문학 기피 현상의 시작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논리를 끌어내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보다 힘과 권위로 누르거나 다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사회에 적합하게 길러졌다. 하늘이 왜 푸른색이냐는 아이의 질문에 부모는 나중에 고학년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니 수학 문제 한 장이나 영어 단어 한쪽이라도 외우라고 질책한다. 이런 가정과 사회에서는 토론문화의 설자리가 없다. 하물며 주입식 교육과 줄 세우기식 등급 상대평가의 대안으로 나온 대입 논술 또한 ‘묻는 걸 묻는 대로 써라’라는 정해진 정답을 정해진 양식대로 잘 풀어나가는가의 논리력만 볼 뿐이다.[비교와 차별]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개천에서는 용이 나곤 했다. 시대극 드라마만 보더라도 시골 마을에 ‘사법고시 패스’, ‘서울대 입학’ 등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개천에서 용 난 사람들은 개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고 하는 말이 여기에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부단한 경쟁 끝에 기득권 자리에 얻은 개천 출신의 사람들 이야기만이 아니다. 제도 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대한민국 99프로는 1프로를 동경하고, 자신과 동일시 여긴다. 이 가능성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에 불과하지만 대다수의 서민들이 로또복권에 명운을 걸듯 말이다. 작가는 이를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이라 표현하였다. 20:80의 양극화 사회에서도 80인 대다수는 언젠간 20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이 20인 양 행동하며,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며 위안하는 3등 인생들이라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 서민층의 조세에 대한 인식이 그저 국가에 의해 빼앗기는 것에 머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일 것이다.이러한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 80%의 다수만이라도, 서로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생물학적인 차이를 차별과 억압, 배제의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는 성찰하지 않는 가진 자, 비장애인, 남성, 이성애자, 내국인의 우월성을 확인시켜주는 소수자, 약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름 돋을 정도로 나는 교육을 통해서 아프리카 난민들의 사진을 보고 나는 행복하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고 나는 사지가 멀쩡하니 장애인들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을 학습해왔다. 소유물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에 집착하는 경향을 가지며,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성찰 이성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차이를 우와 열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차별하고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한다.소수자에겐 자기 성숙의 긴장이 살아있지만 다수자는 다수에 안주함으로써 자기 성숙의 긴장을 놓치기 쉽다. 따라서 비교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과의 장점을 주고받기 위한 경우로만 한정할 것이지, 나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의도에서의 비교는 멀리해야 할 것이다. 다수자일수록 자족하고 자기 성숙을 게을리 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게 아닌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된 오늘의 나, 오늘의 관계보다 더 성숙된 내일의 관계를 위한 비교에 머문다면, 그런 사회가 온다면 다수자와 소수자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종과 종교, 그리고 지역 간 분쟁이 그러하듯 모든 전쟁은 ‘다름’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평화로운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다름을 말 그대로 ‘다름’으로 받아들일 것이지 ‘틀림’, ‘열등’의 의미와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현재를 저당 잡힌 사회]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젊은 시기를 저당 잡힌다. 중학생 때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고등학생 때는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과 노력을 바친다. 그렇게 12년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지만 끊임없이 저당 잡힌 삶은 다시 시작된다. 더 나은 직장에 가기 위해, 취업 후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한다.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불안한 미래 때문에 모든 오늘을 저당 잡혀야 하는 사회, 미래의 불확실성이 오늘의 불성실성을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요하거나 합리화하도록 작용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나와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아름다운 삶을 꿈꿀 수 없다. 작가는 이를 콜럼버스의 달걀 모양이라 표현한다. 둥근 달걀을 테이블 위에 세워보라 했더니 달걀을 깨트려 세웠던 일화에 나온 달걀 말이다. 이를 우리의 모습에 비유하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달걀의 깨진 밑 부분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서 배타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정치는 그리고 올바른 사회는 인간 누구든 달걀 밑 부분을 깨고 종으로 세웠던 달걀을 자연스럽게 횡으로 눕히는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자라지 않는 시대, 타고난 밥 수저를 대대손손 물려주는 시대가 앞으로는 달라지길 바라본다.다니던 초등학교의 담벼락에 붙은 플래카드가 생각났다. 비평준화 고교 입학은 오히려 교육의 불평등화와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지역에서 제일 입결이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끊임없이 내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그렇게 졸업한 고등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높았다. 하다못해 대학 입학 후 맡은 과외 학생의 학부모께 무조건 OO 고등학교를 보내야 좋은 면학분위기 속에서 경쟁하여 소위 인서울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당시에는 야간자율학습이 ‘의무 자율학습’이었고, 8교시 수업 후엔 밤 10시까지 ‘의무 자율학습’을 했었다. 소위 야자가 끝나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학원버스였다. 나와 또 다른 경쟁의 학생들은 학원버스를 타고 12시가 넘어서까지 단과 수업을 보강하였다. 그때의 나에겐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일탈은 곧 대학 포기와 다름없었고 이는 인생 포기라고까지 생각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교육의 희생양들이 대한민국에는 엄청 많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육의 희생양은 나의 대에서 끊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