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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사 A+ 중간시험 답안
    송사 중간과제박**#1. 天仙子(천선자)天仙子는 돈황(敦煌)석굴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돈황석굴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돈황사(敦煌詞)라고 묶여 불리우기도 한다. 돈황사는 대부분이 민간의 작품이며, 문인들의 것은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소수의 문학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돈황사 작품은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그 중, ‘天仙子’는 다른 규정사들과는 달리 문인의 손을 거쳐 문아(文雅)한 느낌이 드는 사이기에, 돈황사로서는 꽤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天仙子라는 사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해당 사를 공부하기 전, 天仙子 사조에 대해 의문점이 들었다. 조사를 해보니, 天仙子는 간질(癎疾)을 안정시키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을 가진 한방 약재와 동일한 한자어를 쓰고 있었다. 이 약재는 독성이 강해 사용에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약이기도 하지만 독이기도 한 天仙子는 그 성질이 서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돈황사곡조인 ‘天仙子’ 역시 마찬가지다. 天仙子는 아름다운 봄의 정취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원망의 사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모순이 ‘天仙子’라는 사조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짐작을 조심스레 해 본다.앞서 언급했듯, 天仙子는 제비 소리가 들리는 3월 중순, 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으레 봄이라 하면 따뜻함과 행복감으로 가득찬 계절이다. 봄에는 색색의 꽃들이 만개하고, 살랑이는 봄바람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실제로 해당 사에서 묘사된 ‘煙?柳條(자욱한 안개에 잠긴 버드나무 가지)’에서 등장하는 봄의 전령 버드나무의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봄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金線亂(금실로 어지럽다)’라는 표현은, 아름다운 봄의 풍광과는 대비되는 여인의 혼란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이렇듯 봄의 경치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경(景)에 대한 비유는 여인의 마음 속 원한의 정(情)을 심화시킨다. 봄이라는 계절이 의미하는 사랑과 사랑하는.감히 그 누가 이 여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짧은 구절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답답하고 한스러운 심정이 절로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로 미루어 볼 때, 당대 사회상에서 여성은 매우 수동적인 존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중국 여인들은 사랑에 대한 욕구를 갈망했지만, 당대 중국 남성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天仙子에서 여인이 사랑하는 임을 붙잡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은 여인의 원망의 정서를 한층 더 가중시킨다. 이는 우리 독자로 하여금 여인의 감정에 이입하고 공감하게 만든다.지금까지 돈황사곡조 天仙子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황사를 공부하며 알아보니, 돈황 석굴 유물 출토 과정에서 많은 사들이 프랑스 등 타국으로 유출되어 실제로 남아 있는 돈황사(돈황곡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 돈황사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제일이라고 하는 책이 서울대학교 한당(閒堂) 차주환 박사의 ‘돈황사 문학논고’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해당 책을 통해 돈황사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고 싶다.#2. 浣溪沙(완계사)浣溪沙의 작자 손광헌(孫光憲)은 오대 말기~북송 초기의 학자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장서를 모았고, 그것이 수천 권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시사에 능했고, 풍격이 청수했다. 대표작으로는 오대의 사회 풍속과 문인들의 일화를 모은 북몽쇄언(北夢言), 역사서 속통력(續通曆)이 있다.그리고 그의 사 작품 浣溪沙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당오대규정사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손광헌의 완계사가 유독 기억에 남아 사실 浣溪沙 자체는 당대 교방(敎坊)의 곡명이었으나 후에 사패(詞牌)로 쓰였다. 그렇기에 같은 당오대 문인이었던 장필(?泌), 북송의 장선(?先), 주방언(周邦彦), 남송의 신기질(辛?疾), 오문영(?文英) 또한 浣溪沙 작품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浣溪沙가 있는데, 정약용의 浣溪沙‘春景’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정약용이 1806년 강진 유배지에서 사패에 맞춰 쓴 것으로, 浣溪沙가나). 봉황은 부부의 금실을 상징한다. 하지만 봉황 자수가 무색하게도, 여인은 쓸쓸하고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즉, 임의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과 발위에 수놓아진 금빛 봉황 자수는 서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대비감은 여인의 쓸쓸한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이후 이어지는 落花微雨恨相兼(지는 꽃과 가랑비가 서로 겸하고 있다)는 표현은 여인의 쓸쓸함과 원망의 정서를 더욱 가중시킨다. 보통 낙화(落花)라는 표현은 이별, 봄의 끝, 청춘의 소멸 등을 간접적으로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인지 가랑비가 오는 가운데 꽃이 지는 형상은 마치 우울한 여인의 마음과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낙화라는 표현 자체도 우울한데 거기에다 가랑비까지 오고 있으니, 여인의 침울한 정서가 절로 실감이 나는 듯하다.그리고 여인은 밖에서 돌아와 잠에 든 임을 향해 묻는다. 何處去來狂太甚,空推宿酒睡無厭(어느 곳을 갔다 왔는가? 평상시 모습과는 너무 다르구나. 공연히 묵은 술을 밀어두고 실컷 원없이 잠만 자는 구나). 이미 잠에 든 임은 대답할 수 없음에도, 여인의 임을 향한 의심과 원망은 더욱 커진다. 사랑하는 임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와 정담 나누기를 뒤로 하고 잠만 자니, 독자인 나 역시 괜히 야속한 기분이 들면서, 여인의 마음에 만번 공감이 되는 기분이다.마지막 구절, 爭?人不別猜嫌?(어찌 나로 하여금 따로 의심하지 않게 하겠는가?)를 살펴보자. 결국 이 모든 상황은 여인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임을 질투하고 의심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특히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본인의 정서를 정당화함으로써 질투의 정서가 돋보이고 있다.결론적으로, 孫光憲의 浣溪沙도 앞서 소개한 작자 미상의 天仙子와 마찬가지로 당대 여인들이 매우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타 당오대규정사들도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孫光憲이 사인들 중에서도 유독 청수한 사풍을 가지고 있기에 눈길이 좀 더 많이 가는 것 같다. 특히 이번에 소개한 浣溪沙는 여느 작품들보다 문인사 특유의 문아한 느낌이 보다, 李煜은 개봉에 끌려와 생일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虞美人'이란 사를 지었다가 이에 분노한 송 태종에게 사사당했다.물론, 위 내용은 정사이며, 李煜의 죽음과 관련한 야사도 전해내려오고 있다. 야사에 따르면, 당시 李煜은 소혜황후라는 본부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동생인 주여영과 눈이 맞아 부인이 병사한 후 재혼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소혜황후를‘대주후(大周后)’, 주여영을‘소주후(小周后)’라고 일컫는다. 아무튼 송 태종이 소주후 주여영을 마음에 들어했고, 자주 궁에 불러 겁탈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李煜은 분노했고, 그 때문에 송 태종이 그를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李煜의 두 번째 부인인 주여영 또한 李煜을 따라 곧 생을 마감한다.결론적으로 虞美人은 절명사(絶命詞)로서 李煜이 송 태종에 의해 사사당하기 직전에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첫 구절부터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春花秋月何時了?往事知多少!(봄꽃과 가을달 언젠가 끝나겠지? 옛 일은 얼마나 아는지!). 李煜이 망국의 포로로서 과거를 회상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李煜이 황제였을 때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정 보기를 소홀히 하였다고 한다. 망국의 포로가 된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에는 슬픔과 분개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과 후회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을 엿볼 수 있었다.이어서 두 번째 구절이다. 小樓昨夜又東風,故國不堪回首月明中!(작은 누각에 어젯밤 또 동풍이 불었다. 고국은 달 밝은 중에도 차마 돌아볼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봄바람이 불고, 꽃이 활짝 피고 있지만, 고국인 남당은 영원히 사라졌음을 깨닫고 망국의 슬픔을 극대화한다.雕欄玉?應猶在,只是朱?改(붉은 난간 옥섬돌은 여전하겠지만 다만 미인 얼굴이 바뀌었다). 세 번째 구절은 무상한 인생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李煜의 소감이 반영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는 자연은 영원할 테지만, 인간의 삶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부각하고 있다.마서의 자질은 부족했지만, 詞人으로서는 일류였던 李煜. 그가 일국의 군주가 아닌,‘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사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이름을 날렸을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망국의 군주라는 타이틀에 그의 사들이 가리워지는 것이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4. 菩薩蠻(보살만)당 선종은 민간에서 유행하는 곡자사를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菩薩蠻 가사를 각별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에 한림학사 令狐?는 은밀히 ?庭筠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하여 새로 菩薩蠻을 전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사로 인해 ?庭筠은‘화간파의 시조’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詩의 문학성보다는 詞의 문학성으로 명성으로 얻게 되었고, 직접 사조를 창작했던 당대의‘트렌드세터’였다.?庭筠 사의 특징은 문사가 아름답고, 특히 남녀 간 애정 묘사가 유독 깊이감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庭筠 이전의 초기 사들은 통속적인 사가 대부분이었던 반면, 만당에 이르러 ?庭筠을 기점으로 귀족적이고 염정적인 사가 많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 사조의 역사에 있어 낭만적 성향과 유미주의 풍조의 완약사(婉約詞)의 풍격이 자리매김하게 되는 유인을 제공하게 된다.그 중에서도 菩薩蠻은 그의 대표 사작으로 꼽힌다. 菩薩蠻의 어떤 특징이 대표사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유인을 제공했을까? 일단 ?庭筠 菩薩蠻의 1수를 살펴보도록 하자.小山重疊金明滅,?雲欲度香?雪(병풍 속의 첩첩이 겹쳐진 작은 산은 햇빛이 명멸하고, 여인의 구름모양의 귀밑 머리가 향그럽고 눈같은 흰 뺨을 스친다).병풍에 그려진 작은 산과 태양빛이 비쳐 들어오는 풍경, 그리고 여인의 아름다운 용모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아침이 되어 창문 틈으로 새어온 따뜻한 햇살이 아직은 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감싸는 듯한 고도의 감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된다.이후 이어지는 懶起?蛾眉,弄?梳洗遲(게을리 일어나 나방모양의 눈썹을 그리는데, 화장하고 몸치장하는 것이 더디다) 부분은, 여인이 느리게 일어나 더딘 속도로 단장하는 모습을 묘사
    인문/어학| 2022.01.13| 10페이지| 5,0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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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문과 A+레포트 왕국유(인물론)
    王國維 人物論박**1. 생애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스승으로 유명한 왕국유(王國維·1877∼1927)는 청조 말기의 대학자로, 저장성 하이닝시 출신이다. 1892년 7월, 그는 세시(歲試)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하이닝 주 전역에서 유명해진다. 1894년 청일전쟁 당시, 변법유신 운동이 일어나고 서양의 학문이 물밀 듯 유입되는 과정에서 왕국유는 자연스레 서양 학문을 접하게 된다.그리고 1898년 2월, 그는 구직을 위해 상하이로 떠나게 되고, 친구의 주선으로 시무보관(時務報館)에 취직한다. 이때 개혁 사상 대변지 <시무보(時務報)>의 서기와 교정원을 맡았는데, 당시 시무보는 진보적 저널리스트인 왕캉녠(汪康年)이 주필을 맡고 있던 유명 시사 잡지였다.같은 해 3월, 왕국유는 동문학사에서 평생의 후원자인 뤄전위(羅振玉)를 만나게 된다. 그는 왕캉녠의 동의를 받아 매일 서양의 학문을 수학했고, 놀라운만한 성취를 보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그는 훗날 인문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논리학·미학·윤리학 세 분야에 걸쳐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을 중국에 소개한 신학문 연구가로도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되었으며, 신문학운동에 이론적 초석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30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중국 시가에 대한 평론에 보다 집중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인간사화(人間詞話)』와 희곡을 연구한 『송원희곡고(宋元戱曲考)』 등을 발간한다.정리하자면, 왕국유는 문학 방면에서 중국 전통 문학론과 서구의 문학론을 정립하여 새로운 문학관을 확립하였고, 역사학 방면에서는 중국 고대사를 접목해 수많은 고고학적 업적을 달성하였다. 또한 그가 남긴 60여 종의 저서는 중국의 철학, 미학,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갑골학, 금석학 분야에서 모두 고전으로 남아있다. 당시 그와 함께했던 량치차오(梁啓超), 루쉰(魯迅) 등은 그를 중국 근대가 낳은 천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족 출신이면서도 변발을 고집하며 청조의 부활을 꿈꾸다 북벌군이 수도 점령에 나서자 명의 몰락을 비관하며 이화원 곤명호에 투신자살하였다.2. 업적 및 로 보는 그의 사상그가 서양의 학문을 접하게 된 초기에는 인문학 분야인 철학과 문학을 연구했는데, 이는 독일의 유심주의 철학과 자산계급 문예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03년부터 퉁저우·쑤저우 등지의 사범학교에서 철학·심리학·논리학을 강의했다.1907년부터는 학부 도서국의 편집을 맡고, 중국 희곡사와 사곡의 연구에 종사했으며, 소설과 희곡의 문학적인 지위를 중시하고 희곡사를 연구하는 풍조를 열어 당시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11년, 청이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된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이후 상하이로 돌아와 하퉁에 설립된 창성밍즈대학교(倉聖明智大學校)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3년부터는 중국 고대역사자료, 옛 기물, 고문자학, 음운학의 고증에 종사했으며, 특히 갑골문·금문과 한(漢)·진(晉) 시대 간독의 고증 및 해석 등 중국사학 연구에 힘을 쏟았다.그는 고대사 연구 외에도 서북의 역사지리와 몽골의 사료에 대한 정리와 고증 작업을 했다. 그의 저서로는〈정안문집(靜安文集)〉·〈인간사화(人間詞話)〉·〈송원희곡사(宋元戱曲史)〉·〈곡록(曲錄)〉·〈관당집림(觀堂集林)〉등 62종의 작품이 있는데, 〈해녕왕정안선생유서(海寧王靜安先生遺書)〉에 그 42종이 실려 있다.그 중, 그의 대표작인 에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古今之成大事業,大學問者, 必經過三種之境界:'昨夜西風凋碧樹. 獨上高樓, 望盡天涯路. 此第一境也.어젯밤 서풍에 푸른 나무가 시들었네.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하늘 끝까지 이어진 길을 바라보네.'衣帶漸寬終不悔, 爲伊消得人憔悴'. 此第二境也.몸이 말라 옷과 허리가 점점 커져도 후회가 없고, 그로 인하여 사람이 초췌해지네.'衆裏尋他千百度, ?然回首, 那人却在, 燈火爛珊處. 此第三境也군중 안에서 그를 수백, 수천 번 찾다, 홀연히 돌아보니 그 사람이 서 있네, 등불이 희미한 곳에.고금을 통틀어 큰 사업이나 큰 학문을 이루는 사람은 반드시 세 가지 경지를 거쳤다.첫번째 경지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성취를 위해 전략을 세우는 경지이며, 두번째 경지는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설치면서도 목표에 매진하는 경지, 세번째 경지는 노력을 통해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지이다.왕국유의 세가지 경지를 표현하는 문구는 전부 사(詞)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송사에서 쓰인 직접적인 의미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첫째 경지를 표현한 문구는 안수(晏殊)의 의 일부분이다. 본 의미는 가을에 나뭇잎도 다 떨어진 날에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서 산과 물과 끝간데 없이 이어진 길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뭇잎이 다 떨어졌으니 길은 잘 보였을 것이다. 왕국유는 여기서 학문이나 사업의 첫번째 경지를 높은 곳에 올라서 나뭇잎과 같이 가리는 것들을 다 치운 상태에서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를 다 살펴보고,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을 첫번째 단계로 생각한 것으로 이해된다. 추구하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나 방향이 어떤지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라는 것이다.둘째 경지를 표현한 문구는 북송 유영(柳永)의 에 나오는 문구이다. 유영은 사랑에 관한 사를 많이 읊었으며, 이 사의 의미도 작가의 ‘그’에 대한 애닲고 깊은 사랑과 그 고통 그리고 후회없음을 읊은 내용이다. 왕국유는 여기서 ‘그’를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학문이나 사업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로 바꿔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셋째 경지를 표한한 문구는 남송 신기질(辛棄疾)의 에 나오는 문구이다. 원래의 의미는 구정 전날 밤에 절에가서 님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헤메다가 어느 순간 뒤에서 오는 느낌이 이상하여 뒤를 돌아보니 님이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곳에 서있더라는 내용이다. 왕국유는 이를 세번째 단계, 즉 마지막 단계로 승화시켰다. 즉, 정신을 집중하여 계속하여 추구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게되면 자연히 어느 순간 깨닫게 되고, 발견하게 되고, 발명하게 된다는 것이다.3. 왕국유의 만년, 그리고 나의 평론왕국유는 황제의 신임을 얻을 정도로 청 왕조에 대한 충심이 대단히 강했던 인물로 보인다. 한족이면서도 청의 유신(遺臣)을 자처해 평소 장포와 변발 등 청조 복장을 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1923년 음력 3월 1일, 그는 양종시(楊鍾羲), 징팡창(景方昶), 원쑤(溫肅)와 함께 남서방 행주로 임명되었으나 곧이은 청조의 멸망으로 실직하게 된다.그리고 1924년, 서북지역 군벌이 북경을 점령하고 푸이 황제를 쫓아낸 사건이 발생한다. 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왕국유는 잠시 곤궁한 생활을 하였으나 후쓰의 추천으로 1925년부터 량치차오·자오위안런·천인췌와 함께 칭화대학 국학연구원의 지도교수로 초빙되었다.
    인문/어학| 2022.01.13| 3페이지| 5,0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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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문과 A+ 진시황의 생애와 업적
    영화로 이해하는 중국 문화와 역사 중간시험 답안지박**진시황(秦始皇)이 실시한 정책과 그 의의(意義)진시황제는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건국했다. 그는 통일 제국 건설을 목표로, 여러 주변국들을 정복한 후 하나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러한 통일 정책의 목적은 다시 제국이 분열하지 못하도록 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었다. 진시황이 실시한 정책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 중앙집권화를 위한 군현제의 실시이다. 秦 이전 시대에는 봉건 제도를 통해 천자가 다스리는 중앙 지역 이외에는 세습 형태의 제후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본디 이 제후들은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했는데, 시황제의 군현제 실시 이후엔 그 독립성을 잃고 황제가 임명한 관리들이 지방을 통치하였다. 황제의 권한이 지방까지 미쳐서 중앙의 지방 지배력을 강화해 중앙 권력의 집중을 가져온 것이었다. 따라서 봉건제의 폐지과 함께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었다. 다만 진시황의 천하통일 직후, 일부 유학자들은 군현제를 반대하고 봉건제를 다시금 주장했다. 옛 제도에 따라 제후를 분봉하지 않으면 나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 이로 인해 진시황의 통치 사상에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되었다. 진시황은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고자 법가 사상을 표방하고, 제자백가의 책을 모두 불태우는 분서(焚書)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유생들을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는 갱유(坑儒)를 단행하였다.두 번째, 경제시스템의 통일이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여러 나라들이 공존했기 때문에 제도와 문화가 각 나라마다 달랐다. 진시황제는 천하통일 후 경제시스템을 통일해 해당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우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했다. 이를 통해 전국의 산업과 경제의 가시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었으며, 국가 간 서로 다른 경제시스템으로 인한 시간 및 비용의 낭비를 효과적으로 감축할 수 있었다.시황제는 또한 넓은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도로망을 새로 정비하였다. 이 도로를 통해서 전국으로의 물자 이동이 수월해졌고, 이 과정에서 차륜폭 또한 함께 통일되었다. 이러한 도로망의 정비는 발전 경제 측면에 있어 필수적인 사업이었다. 다만, 도로망 정비 과정에서 자국의 농민들을 대거 동원했기 때문에, 후일 민심의 악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대규모 토목사업 역시 경제시스템의 일환이었는데, 시황제는 해당 사업을 지시하여 국력의 강화를 꾀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국거라는 관개수로를 건설하였는데, 이 정국거로 인해 관중지방에 2억 2천만 평의 농경지가 새로 생겨나 4천만 섬의 곡식이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였다고 한다. 이 광활한 농경지는 후일 통일전쟁 기간 진나라가 수십만의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중국 최초의 외부 방어기제 ‘만리장성’ 또한 이 때 축조되었다. 만리장성의 축조는 북방의 침략으로부터 제국을 방어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통일 제국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세 번째, 문화의 통일이다. 진시황은 문자와 학술사상의 통일을 주도해 제국의 경제와 문화를 통일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의사소통에 있어 각국의 언어가 다른 것에서 비롯되는 혼란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秦 이전시기, 전국시대의 7웅은 각 나라마다 글자의 형태가 달랐다. 이에 시황제는 통일 후 소전(小篆)이란 글자의 형태를 진의 문자로 채택하고, 나머지 문자들을 폐지시켰다. 그 폐지된 문자들을 육국문자(六國文字)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육국문자는 분서의 단행 때 대부분 소멸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시황제는 단순히 영토의 통일을 넘어 진정한 의미로서의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네 번째로, 타국 이민자에 대한 개방 정책이다. 타국 출신 신하들의 충성심에 대한 의심이 번져갔고, 시황제는 마침내 이들을 모두 추방한다는 축객령을 내렸다. 당시 한나라 출신이었던 이사는 축객령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諫逐客書’를 작성해 시황제에게 올렸다.?이사는 간축객서에서 역사적으로 성공한 왕들이 모두 외국 출신의 인재를 적극 영입해 활용했다고 언급하였다. 유능한 인재를 쫓아내는 것은 외국 오랑캐의 힘을 키워 훗날 진을 위협하는 위험 분자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에 시황제는 이사의 간언을 받아들인다. 출신 국가를 막론하고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정책이라는 인식이 시황제의 마음에 뿌리내리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시황제는 즉위 이후 육국 백성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진나라의 노동 자원으로 적극적인 활용하는 등, 무분별한 살육을 지양하였다.이처럼, 중국이 최초의 통일을 이루고 문자와 경제시스템을 통일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법가 사상 덕분이었다. 비록 분서갱유 등 그 형벌의 수위가 가혹해 민심이 돌아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한비자와 이사, 상앙 등 세 명의 법가 인물이 없었다면 시황제를 통한 첫 번째 중국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영화 영웅(英雄)에서 주인공 무명(無名)은 왜 진시황이 아닌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는가또, 장예모(張藝謨)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 무엇인가영화 에서, 잔검은 중원 지역의 혼란을 잠재우고 통일 국가를 세우고 평화를 가져올 사람은 진왕 뿐이라고 무명을 설득했다. 무명이 진왕을 충분히 암살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 역시 잔검의 생각에 동의한 것을 암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무명은 당대의 진정한 영웅은 진왕 영정임을 인정하며 생을 마감하였고,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영화 의 전개는 이러하다. 전국시대의 종말 직전,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진왕 영정은 자객들로부터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변의 보호를 위해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의 100보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자신을 위협하는 세 명의 자객을 죽인 자에게 자신의 10보 앞까지 다가갈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큰 상을 하사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리고 어느 날, 무명이라는 자가 나타나 자신이 자객 세 명을 처단한 증거를 제시하며 진왕에게의 접근에 성공한다. 하지만 진왕은 무명의 거짓말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고. 무명이 자신을 죽이러 온 또다른 ‘네 번째 자객’임을 눈치채기에 이른다.?모든 사실이 간파당한 후, 무명은 진왕에게 자신이 멸망한 조나라 출신이며 암살 목적으로 왔음을 시인한다. 무명은 10보 앞에서 암살할 수 있는 '십보일살'이라는 검술이 있었지만, 진왕 암살을 주저한다. 이에 진왕은 이유를 묻고, 무명은 궁궐로 오기 전 잔검이 진왕을 살리기를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잔검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을 목격했고,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진왕 뿐이라고 무명을 설득했던 것이었다. 진왕은 자신의 검을 무명에게 주며 자신을 죽여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무명은 진왕 암살에 실패하고, 나머지 자객들도 암살 실패를 깨닫고 자결하게 된다.진왕은 잔검에 이어 자신을 이해해주는 무명을 살리고자 하나, 진에는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한 법이 있었다. 이때문에 신하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명은 화살비 속에 생을 마감했고, 진왕은 진정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게 된다. 무명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으나, 결국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진왕 영정임을 인정하고 담담히 최후를 맞는다. 진왕은 무명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성대히 치러주었고, 조나라 출신 자객 무명은 명분있는 죽음으로 통일국가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진왕 역시 무명과 잔검을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하였으며, 무명의 죽음 이후 천하통일을 이룩하게 된다.
    학교| 2022.01.13| 4페이지| 4,000원| 조회(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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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문과 중간시험 A+ (태국 미얀마 군사쿠데타)
    중간시험(期中考試) 대체보고서박**? 태국(泰國)과 미얀마(?甸)의 군사쿠데타(?事政?)의 각 차이점을 비교·논술하시오.역사적으로 정부가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권리를 추락시킬 때에는 민심의 악화와 더불어 쿠데타 발발의 개연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우리 한국 역시도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군부세력이 권력을 잡아온 모습을 흔히 보아왔다. 20세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이렇게 군사쿠데타가 발생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의미는 일시적으로 퇴색된다. 외국의 사례로는 태국과 미얀마의 사례가 있다. 태국은 노란 셔츠와 붉은 셔츠의 대립으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대립에서, 미얀마는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더불어 다민족 국가로서 국민성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양한 요인의 갈등이 발생하여 쿠데타가 발발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현대의 군사쿠데타를 대표하는 태국과 미얀마의 사례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첫 번째는 2014년에 발발한 태국의 군사쿠데타이다. 국제사회에는 이 쿠데타가 反탁신파인 노란 셔츠와 親탁신파 붉은 셔츠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발발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로 이전에 발발한 2006년의 쿠데타는 전 총리 ‘탁신’을 축출하는 쿠데타였는데, 탁신은 태국의 경제위기 이후 등장해 국왕에 버금가는 지지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권력을 형성한 인물이다. 다만 그의 통치는 군부 독재 정권들이 으레 그러하듯 권위주의, 독재정치, 인권탄압, 그리고 포퓰리즘 논란이 뒤따랐고, 결국 이러한 독단적인 국가 운영에 반대한 지식인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여기서부터 노란 셔츠와 붉은 셔츠의 대립이 시작된다. 붉은 셔츠의 親탁신파의 일부는 태국 내 공화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입헌군주제의 폐지 및 공화정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 국민에게 있어 국왕은 절대적인 존재다. 지난 2016년 서거한 푸미폰 국왕은 한때 국민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지역 주민들의 생활 개선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했으며, 왕권 또한 강력했다. 하지만 푸미폰 국왕의 서거 이후 현재까지 두 진영 간의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태국 왕실의 정치적 영향력은 다소 약화된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그리고 이들 대립의 원인에는 입헌군주제라는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붉은 셔츠의 공화주의자들은 입헌군주제가 사실상 국왕을 비롯한 전통 지배계급의 통치 정당화 수단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의 권력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여전히 국왕과 그를 둘러싼 소수의 지배계급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에는 다양한 정치적 의제들이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결국 노란 셔츠를 비롯한 反탁신파 세력들은 권력을 확실히 하기 위한 방법으로 쿠데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정치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노란 셔츠와 붉은 셔츠는 지속적으로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태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기존 세력인 국왕 및 지배세력과 신흥 세력인 민족주의 세력 간 치열한 투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과 갈등이 마무리된 자리에 새로운 국가의 권력 구조가 확립되고 정체성이 재정립 된 만큼, 태국 또한 현재 직면한 갈등을 현명하게 잘 대처해 나감으로써 국제 사회의 안정화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두 번째는 2021년에 발발한 미얀마의 군사쿠데타이다. 1948년 독립 이후 미얀마 역사는 줄곧 군부 집권의 역사를 이어왔다. 군의 통수권이 대통령이 아닌, 군 총사령관에게 있는 新헌법 하에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은 현재 미얀마의 군사정부 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리고 2021년, 그를 주축으로 한 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면서, 아웅 산 수 치가 이룩한 절반의 민주주의마저 저버리고 만다. 미얀마의 봄을 10년 만에 다시 군부 정권에 빼앗기게 된 것이다.2021년의 미얀마 쿠데타와 관련하여, 그들이 제시한 공식적인 사유는 2020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부정 선거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부정 선거를 주장하면서도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는데, 이 때문에 이번 쿠데타는 불완전한 민주주의의 반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불어,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쿠데타의 원인이 군부의 권력 약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20년 총선에서 군부는 선출 의석수의 7%만을 획득하였고, 전체 의석수는 30%로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2010년 선거 당시 군부의 전체 의석수 86%와 비교하였을 때 결국 이번 쿠데타는 군부의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보다 설득력이 있다.결국 미얀마 대통령 윈 민, 아웅산 수 치, 한 타 민 등, 일부 주요 선거구 의원 및 당 지도부가 군부에 의해 구금되었다. 또한 군부는 여러 지방 의회에 진입하고 통제했으며,미얀마 국영TV 역시 통제돼 방송 송출이 중단되었다. 군부는 미야와디 TV에서 앞으로 1년 동안 자신들이 미얀마의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11개월이 지난 지금도 군부의 미얀마 군림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얀마의 제1부통령 민 쉐는 주요 3권을 참모총장 민 아웅 흘라잉에게 이양하는 문서에 서명했으며, 새로이 선거를 실시해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2월 2일, 민 아웅 흘라잉은 최고 집행 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위원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미얀마는 과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도약할 수 있을까?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를 온전히 이룩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미얀마는 식민 지배 해방 이후 외부의 침략에 대한 우려는 감소했지만 내부 반군과의 갈등은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이렇게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까닭은 미얀마가 다민족 국가인 것도 한 몫하는데, 현재 미얀마의 민족구 성 비율을 살펴보면 버마족이 70%, 나머지는 135개 종족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영국은 식민 지배 시기에 로힝야족과 같은 소수민족을 주축으로 하여 버마족을 지배하고자 했고, 바로 이런 부분들이 미얀마에게 있어 후일의 내부 분열의 씨앗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또, 식민 지배에 대한 굴욕과 더불어 이슬람교 신자인 로힝야족은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버마족들에게 있어 적으로 간주되었다.여기서 이들의 종교인 ‘불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교리와 영향으로 인해, 미얀마에서는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을 회피하거나 초월하려는 문화도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수동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 이러한 불교의 영향은 미얀마의 독립 이후 경제 정책에도 반영되었는데, 특히 1961년에는 불교가 헌법상 국교로 공식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62년 3월 2일, 불교도인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는 버마의 사회주의화를 위해 불법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이념을 정립시켰고, 불교 경제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불교를 군부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그렇다면 2014년 태국 군사쿠데타, 2021년 미얀마의 군사쿠데타를 본격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우선 공통점 2가지를 살펴보자.첫째, 군부 출신이 아니며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성장한 문민정부를 상대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태국에서는 군부가 당시 총리였던 잉락을 해임시켰고,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구금시킨 것이다. 특히 최근 ‘문민 지우기’에 나선 미얀마 군부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과학| 2022.01.13| 4페이지| 5,000원| 조회(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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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학원론 A+ 레포트 Amore Pacific 유통전략 five force분석
    Amore Pacific 유통전략화장품 산업 시장 분석을 중심으로박**1. Five-Forces 분석1) 신규 진입자의 위협 : 누구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Amore Pacific은 K-뷰티의 위상 강화와 중국 등 아시아 관광객들의 꾸준한 유입으로 국내 화장품 산업을 선도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디지털 유통 혁신은 화장품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온라인 유통채널이 성장함에 따라 비용이 많이 드는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입점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화장품을 팔고, 중국 Tmall을 통해 수출까지 온라인으로 해결하면서 화장품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따라서 후발주자가 이 시장에 진출해도 우위를 극복하는데 드는 비용이 적다고 할 수 있고, 시장 진입을 위해 투입하는 초기 투자비가 불필요해짐에 따라 제품차별화로 인한 진입장벽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Amore Pacific의 콜라겐 브릿지 테크놀로지TM처럼 독점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경쟁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독점기술의 연구개발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볼 때 화장품 시장 진입 위험은 굉장히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후발주자인 ‘TheFaceShop’,‘TONYMORY’,‘LG생활건강’등 많은 기업들이 진입하고 있다.2) 대체재의 위협 : 화장품의 대체재기존 화장품자연주의 화장품ㆍ화학적 성분ㆍ피부 건강 악화 초래ㆍ미관적 요소를 위해 색소 사용ㆍ일부 미백기능성 제품에서 수은 검출ㆍ자연유래 성분ㆍ부작용이 적음ㆍ천연제품에 대한 선호도 증가ㆍ경제적 부담 감소최근 방송 매체 등을 통해 화장품 원료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졌고, 소비자들은 화장품을 살 때 제조사와 성분을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화장품 산업 또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재 화장품 산업은 화학적 성분을 배제하고 자연적인 성분을 사용하는 등,‘친환경 화장품’,‘이너뷰티제품’등의 명칭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기능성 화장품, 자연주의 화장품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을 겨냥해 확실한 콘셉트와 진정성을 담고 창업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아빠가 만드는 화장품’의‘봄비’, 아로마테라피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아로마티카’등이 있다. 이 두 브랜드는 경우, 브랜드 파워는 약했지만 천연성분과 사용후기가 입소문을 타고 퍼진 것이 성공의 요인이 되었다. 또한 JW중외제약의 경우, 가려움증과 염증을 동시에 억제해 먹는 형태의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를 개발하여 환자(소비자)의 편의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제약회사의 CARE제품 또한 화장품의 강력한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대체재의 등장은 자연주의, 기능성을 추구하는 요즘의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시장도 적극 반응하고 있다. Amore Pacific 관계자는 과거엔 향료를 필수원료로 사용했지만, 천연원료를 사용한 제품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일부 제품에서 향료를 제외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성분 자극도를 최소화하기위해 불필요한 성분을 제외하는 방침을 취할 것이라 밝혔다.3) 공급자 위협 - 공급자와의 상호관계화장품 산업에 있어,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원료의 해외 의존도가 크다. 따라서 화장품의 국내 원료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위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화장품?의약품 산업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83%에서 54%까지 감소시켰다. 이는 국내자원을 활용한 연구개발 성공의 증거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화장품 국내 원료 개발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수입을 대체해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안정적 원료확보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또한, 화장품 원료는 공급자가 많으며 희소성이 낮은 편이라 공급자에 의한 위협이 그리 높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Amore Pacific의 이너뷰티 솔루션 브랜드‘바이탈뷰티’의 행보가 돋보인다. 올해 상반기, Amore Pacific은 현대인의 체지방 감소와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메타그린 골드’를 선보였다. 이는 자사의 오설록 농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녹차를 원료를 토대로 독자적인 기술과 결합하여 세 가지 녹차 성분을 배합한 카테플러스™를 함유한 제품으로, 지방, 당, 나트륨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현대인의 식습관과 콜레스테롤, 체지방 관리가 어려운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또한‘메타그린’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오설록의 프리미엄 녹찻잎에서 새로운 유용 성분 추출에 성공해, 국내 건강기능식품으로써는 최초로 농림축산식품부 녹색기술제품(GTP-19-01505) 인증을 취득했다.아직까지 효능이 밝혀지지 않은 여러 자생식물을 토대로 다양한 화장품 소재를 개발할 계획이며, 국내 자생식물 활용도를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판매 유통망을 보다 확대하여 K-뷰티를 선도하는 Amore Pacific의 향후의 행보에 관심이 주목된다.4) 고객 위협 - 고객의 트렌드화장품 성분 분석 어플‘화해’는 성분에 대한 소비자들의 알 권리가 중요해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요즘 민감성 피부를 가진 직장인, 아토피를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스마트폰엔 거의 대부분 이 어플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연령 범위가 높아지고, 성별에 상관없이 화장품을 생활의 필수품으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이러한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에 핵심이 있다. Amore Pacific의 소비자 연령층은 다양한 편이지만, 화장품 산업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10-20대 여성들의 수요가 많다. 이들은 브랜드 이동이 쉬운 세대이기 때문에 Amore Pacific이 화장품 산업 내 독자적인 위치를 선점하지 못할 경우 경쟁기업에게 소비자들을 뺏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Amore Pacific의 경우, 화장품 산업이 85%라는 것을 감안할 때 화장품 산업부문에의 집중적인 개발투자가 고객 위협을 감소시켜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Amore Pacific은 제품 개발에 있어 소비자의 의견을 묻고 그들이 제안한 제품을 개발 및 출시하는 등, 소비자 반영의 정도를 늘리는 프로슈머 정책또한 추진중에 있다. 메디컬케어제품의 맥락에서, 자회사인 바이탈뷰티는 이너뷰티 등의 사업을 개시하여 타사와 차별화 된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결론적으로 Amore Pacific의 경우 고객의 위협은 중간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5) 경쟁 위협최근 경쟁기업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Amore Pacific을 위협하는 경쟁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경쟁기업 중 LG생활건강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 뷰티, 생활용품, 음료 등 3개 사업을 바탕으로 외부 환경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고 있다. 또한 Amore Pacific과는 달리,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화장품 시장 매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다각화한 포트폴리오를 방어막으로 삼아 화장품 부문의 부진을 딛고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LG생활건강의 성공요인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미리 예측하고 생활용품인 손세정제와 바디워시 제품 생산에 주력하면서 제품차별화 수준을 제고해 경쟁 위협을 감소시킨 것에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보유 자원의 영향력이 약화되기도 하고, 심할 경우 엄청난 금액의 손실을 감수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선발주자가 과거와 같은 자원의 우위를 누리지 못하고, 후발주자가 추월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만, 최근 Amore Pacific 이 중국 최대 면세 유통 기업 CDFG와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체결함에 따라, 향후 중국 면세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글로벌 면세 사업의 성장할지 주목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위한 마케팅과 데이터 자산 공유 활성화를 통한 긴밀한 협업 체계 구축 및 유통판매망의 확장 등의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관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록 올해 상반기는 LG생활건강에 우위를 빼앗겼지만, Amore Pacific은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들을 소유하고 있고, 판매 유통망도 탄탄하기 때문에 코로나19 여파가 회복된 이후가 기대되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경영/경제| 2022.01.13| 5페이지| 3,000원| 조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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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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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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