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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박물관 방문 후기 (입지, 외내부, 후기)
    ○ 국립중앙박물관1. 입지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의 도심에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공간구조상 도심과 부도심의 주요 연결축에 위치하여 도심과 부도심간의 결절점 역할을 하는 지역이다. 버스 노선은 2개 밖에 없지만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 주요 녹지인 남산공원, 한강시민공원 및 동작동 국립묘지를 이어주는 녹지 연결축 상에 입지하여 녹지 체계의 연계를 도모할 수 있는 위치이다. 용산 가족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어 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 또한 함께 제공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철조망을 둘러친 미군부대가 있어 관람객에게 시각적 부조화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향후 미군부대 철수가 이루어지면 이 지역이 복합 박물관 지역(museum complex)으로 조성될 예정이기 때문에 나중에 개선될 것이다.2. 외부조형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큰 건축물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로움을 보이는 듯 하며, 단순한 직사각형의 일자형 건물은 전통적인 성곽의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인공호수는 대지가 저습지임을 감안한 것이라 한다. 중앙의 열린마당은 한옥의 마루와도 같은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상설전시의 동관과 기획전시 및 기타 시설을 가진 서관을 분리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좌우의 분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주요 모티브인 듯 한데 동관 내부의 상설 전시에서도 복도를 통한 좌우의 분리를 보여주고 있다.3. 내부동관의 상설전시실로 들어가면 으뜸홀이라 명명된 커다란 홀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바로 앞에는 거대한 계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관람객의 시선을 막아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앙의 넓은 복도로 1, 2 ,3층 좌우 전시실을 구분하고 있는 모습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천장을 유리로 구성하여 자연 채광을 이용하는 조명을 보이고탁 트인 시원함 느낌을 주는 반면 각 전시실 내부는 거의 대부분 인공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창이 있다고 해도 창문을 천으로 막아 놓아 되도록 자연 채광을 가리고 인공조명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또한 전시실 별로 조명의 위치 이동이 가능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벽의 마감재와 바닥재 역시 빛의 반사가 심각하게 생기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바닥재는 대리석과 목재로 되어 있어, 단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면 단조로웠을 박물관의 내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나 3층 중국실의 회화 전시에서 사용된 유리가 매우 심각한 반사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더욱 잘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전시장 자체의 어두운 조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은 맞은편의 조명으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1층에는 중앙 복도를 기준으로 좌측에 역사관, 우측에는 고고관이 배치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고고관을 관람한 뒤 역사관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따라 관람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하지만 각 실 별로 복도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있어 관람자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선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은, 각각의 전시실이 이어진 통로와 홀에서 들어오는 출입구의 위치가 멀어 동선에 혼란을 준다는 점이다.역사관을 돌아 나오면 다시 으뜸홀로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배치되어있어 2층으로 자연스럽게 동선을 유지하고 있다. 2층에는 우측에 기증관, 좌측에 미술관Ⅰ이 있다. 이 곳 또한 각 실별로 출입구를 두고 있어 개인별 선택 관람을 할 수 있지만 가운데의 복도 부분이 통층으로 되어 있어 기증관과 미술관Ⅰ 간의 자유로운 관람에는 불편한 면이 있다. 특이하게도 미술관Ⅰ의 불교회화실에는 2층과 3층이 통층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높이 10m에 육박하는 청곡사 괘불을 위한 것으로 박물관 건축에 전시물품에 대한 고려를 알 수 있는 모습이다. 3층에도 좌우로 미술관Ⅱ와 아시아관이 배치되어 관람객의 동선을 유지하고 있다.동다.이 외에도 각 전시실 사이에 식당, 문화상품점과 찻집 등이 위치해 있어 관람객의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또한 서관의 2, 3층에 극장 용이 있다. 이것은 박물관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양상을 반영하며 현재 마임과 전통 무용 공연이 진행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경기도 과천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회화, 공예, 디자인, 조각 등 미술작품을 현대미술 위주로 수집하여 보존, 전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국립현대미술관이다.1969년 10월에 현대미술관이 창설되고 덕수궁 석조전 건물을 점유하여 썼으나 석조전이 원래부터 미술관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아닌지라 전시체계. 관객서비스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과천 이전을 결정하고 착공한 것이 현재의 박물관 건물이다. 김태수와 김인석이 주도하는 일건건축에 의해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지어졌다. 1987년에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1. 입지구릉을 배경으로 산 중턱에 배치되어 있으며, 주변에 대규모 위락시설인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이 자리하고 있다.-서울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위치 → 지하철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나 여전히 도심에 비해 접근이 손쉽지는 않은 주변지역인 것은 사실.(건축 당시 서울 중심지에서 적당한 규모의 대지를 구하지 못하였음)-원경의 산 등 자연경관은 아름답고 대지가 상당히 넓음 → 오픈 스페이스형 건축 구현. 주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전원의 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진입부의 위락시설로 인해 크게 우회하여야 미술관에 접근할 수 있는 불편함/산만한 주변성 → 위락시설로 인해 그 지역으로의 유동인구유입은 많아질 수 있음.2. 외부조형완만한 구릉지대라는 장소성을 고려하여 이에 순응하는 기단식 배치방식을 채택하고 건물의 수직적 스케일을 최대한 억제하여 전체적으로 능선에 완만하고 넓게 퍼져있는 양상을 보인다. 주변 경관에 순응적인 이러한 건축방식과 더불어 전통 성곽 구조물에서 따왔다는 외관과 화강암이라는 재료의 사용을 통해 전통건축과의 연관을 시도하고 있으며, 항시 3층 전시관의 전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는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에서 볼 수 있는 반개방적 전시공간의 개념과 같은 수법의 공간처리이다.1) 동선: 건물에 들어오면 제일 처음 멀티비전이 전시되어 있는 나선형 공간을 만나게 되며 왼쪽의 원형 공간이나 오른쪽의 아케이드형 공간 중 한쪽을 택하면서 관람동선이 시작된다.몇 개의 기본 기하형태 공간을 병렬시킴으로써 관람 동선의 명확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결정론적 동선몰이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기본 기하형태 공간들 사이의 접속부에 몇 가지 건축적 장치만을 해두고 그 외 모든 동선 결정은 전적으로 관객 스스로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람객의 주관성을 최대한 존중한 상대적 동선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2) 채광: 천창과 측창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자연환경과 밀착된 전시효과를 의도하고 있다. (중앙 메이저스페이스의 천창과 측창, 기획전시실의 천창 등) 이러한 천창. 측창등을 통해 자연채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관객들의 편안한 관람환경을 유도하였으며 동시에 할로겐램프와 형광등을 통한 간접조명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채광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메꾸고 있다.3) 디스플레이: 램프코어부분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전시나 원형전시실의 독특한 건축구조 자체로 인한 디스플레이효과 외에는 특별히 개성적인 전시나 연출은 보이지 않는다. 주로 공간이 정해주고 있는 전시공간에 맞춰 작품을 일렬로 내걸고 조각작품은 적당히 복도 가운데에 배치하는 정도의 단순한 전시양상을 보이며,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을 채택해 작품들이 돋보이도록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⑵ 연구공간작품 반입.수장.연구와 관련된 공간들은 모두 지하에 있다. 작품반입실, 작품검사 및 수납소를 갖추어 작품의 반입에서부터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 노력의 흔적을 건축공간에서 읽을 수 있다. 수납소 바로 옆에 수장고를 두고 있으며 학예원실도 수장고에서 가까운 곳에 두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수장고는 모두 6실로 이루어져있으며 1648제곱미터의 면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미술 전문인력 양성, 작은 미술관·찾아가는 미술관 운영, 미술 종합 문화행사, 미술관 정보화 등 관객교육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전체 미술관 연면적 중 배분된 교육공간 자체는 한국 여타 미술관/박물관과 같이 많지 않으나, 일시적인 것이 아닌 꾸준하고 다양한 기획이 돋보이며 특히 2-3층 중간의 원형전시실에 위치한 ‘어린이 미술관’의 경우 어린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한편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진행하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과 더불어 어린이들의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친근함과 미술,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결론앞에서 박물관에 대한 각 공간별 기능과 그에 따른 상호관계를 밝혔고 이렇게 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세 곳의 박물관을 답사 후 이론에 맞추어 조사 및 설명하였다. 이론은 현실에 적용되면서 언제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듯 세 곳의 박물관 역시 이론과 차이를 보이며 박물관에서 제시하는 건축의 목적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과 이론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형된 이론이 생기고 박물관 건축도 마찬가지여서 여러 이론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적용을 보였다. 하지만 박물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이론에 맞게 고정된 위치에 어떤 것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각 공간의 연계성에 맞게 얼마나 박물관의 목적에 맞게, 연구에 효율적으로, 전시에 효율적으로, 관람에 효율적으로 공간이 구성되느냐가 박물관 건축에서 중요한 것이다. 즉 박물관의 목적이 수장 및 연구라면 그 공간의 연계성을 높여 일 처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고 교육 및 체험이라면 교육공간과 전시, 체험공간의 연계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어긋날 경우 박물관은 시작부터 고유의 기능을 하기 힘들어 진다. 왜냐하면 연계성이 박물관의 설립목적과 어긋날 경우 관람객은 그 목적을 알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즉 박물관 건축은 설립 목적에 따라, 전시 목적에 따라 지어져야 훌륭한 건.
    인문/어학| 2019.06.11| 5페이지| 1,500원| 조회(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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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을 통해 바라본 서울시의 도시계획 과제 보고서 평가C아쉬워요
    한강을 통해 본 서울의 도시계획목 차Chapter. 1 PrologueChapter. 2 한강의 근대화 이전의 기능1. 선사시대 거주지2. 군사적 요충지3. 교통의 요충지Chapter. 3 서울의 중심, 한강이 되다1. 광복과 6.25사변 이후 서울 인구의 급증2. 서울의 산업 성장을 뛰어넘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3. 서울시역의 확대로 인한 한강의 중요성 확대Chapter. 4 제 1차 한강종합개발1.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의 수립2. 강변도로 건설3. 여의도 개발4. 영동지구 개발5. 잠실 개발6. 강남개발의 결과Chapter. 5 제 2차 한강종합개발1. 개발의 배경과 추진경위2. 주요 내용Chapter. 6 미래의 한강1. 휴식과 관광의 공간2. 수로교통의 재조명Chapter. 7 맺음말Chapter. 1 Prologue서울의 발전을 말할 때 꼭 빼지 않고 말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강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두고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부터 600년이 흐른 한국의 수도, 서울의 발전에 있어서 한강은 그 역사를 서울과 같이 해 왔다. 이 한강을 두고 최근에는 ‘한강 르네상스’를 외치며 한강의 기능성과 경관성을 지금 보다 한 단계 올려서 과거 ‘한강의 기적’에 이은 보다 넓은 의미의 한강 발전과 서울의 발전을 이루어 내고자 한다.한강은 역사적으로 장애물로 인식되기도 혹은 교통수단의 한 방향으로 이해되었다. 과거 조선시대에 한강은 세금의 집결지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해방 이후부터는 서울의 남과 북을 이으려고 다리를 건설 하고, 6.25동란 때에 지었던 다리를 폭파시키기도 하였다. 6.25전쟁이 끝난 이후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내며 한강 역시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서울 인구의 과밀로 인해 서울의 시역을 확장함에 따라 한강은 서울의 경계를 구분짓는 지표에서 서울을 가로지르는 중심지가 된다. 또한 군사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세계 최빈국의 열악한 국내 경제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산업발전과 지역발전을 이루기 위해 제방을 쌓고 . 분단과 전쟁은 그나마 남아 있던 산업시설마저 철저히 파괴해 버려서 한국의 산업은 지역간·부문간 연계 뿐 아니라 역사적 연계마저도 잃어버렸다. 서울의 대표적 공장지대였던 용산과 영등포의 산업시설 중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미국 원조물자를 가공하는 제당·제면·제분의 속칭 ‘삼백산업’은 전후 한국경제 회복의 중심에 있었고, 이들 산업은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서울의 공장 수는 매년 급증하여 1953년 3월 296개소에서 1954년 879개소로, 198년엔 2075개소로 늘어났고 종업원 수도 1954년 3만여 명에서 1958년 78,683명으로 늘어났다.그러나 서울 산업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서울 인구가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존의 월남민에 한국전쟁 기간 중의 월남민이 추가되었다. 여기에 미국 잉여생산물의 도입에 따른 농가경제의 파탄, 산업의 서울 집중에 따른 고용기회의 편재, 교육·문화시설의 서울 집중 등으로 인한 이촌향도 인구가 가세하여 서울 인구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53년 휴전 직후 100만 명이던 서울 인구는 1960년 254만 명이 되었고 서울시민들에게 심각한 취업난과 생활난을 가져다주었다.제 1공화국기 한강변에는 많은 무허가 주택이나 불량주택들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강 치수에까지 눈을 돌릴 여지가 많지 않아 집중호우나 태풍이 몰아닥치면 어김없이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게 된다. 한강변은 수려한 경관에도 불구하고 상시적인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공간이었으며, 시민의 주거지로는 부적합한 채로 남아 있게 된다.2) 서울 유일의 여가공간서울 시민 대다수가 생활난과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변변한 여가 생활이나 여가공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정된 공원용지조차 무허가 판자촌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고, 정당성을 잃은 정권은 선거철만 되면 무허가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었다. 서울 시내의 숱한 공원용지가 그렇게 해서 사라져갔다. 시민들은 창경원이나 우이동 계곡과 한강변을 찾아 여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제 1가지로 급부상하면서 한강은 서울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게 되었다.3)한강이 서울도심의 미친 영향.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영향으로 서울은 소위 말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다. 강북은 행정의 중심 및 주도심이기는 하지만 지난 기간 동안의 정책적인 개발의 영향으로 강남과 강북은 소득원의 차이 도심환경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지리적으로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그 사이를 가로 지르는 한강은 서울이라는 수도 내에서도 강남과 강북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이 둘 사이에는 교육환경, 부동산 가격 등 많은 격차를 만들어냈다. 물론 한강이라는 존재 자체만의 자연발생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이 한강이 기준이 되어 도시계획을 할 때도 강남과 강북을 나누게 되었고 이러한 정책적인 결정이 결국에는 지금과 같은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차이가 정부와 서울시는 어떠한 정책을 그 동안 펼쳐 왔는지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Chapter. 4 제 1차 한강종합개발1. 한강개발 3개년계획의 수립한강변이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김현옥이 시장으로 재임하던 1967년부터였다. 1967년 3월 17일 한강개발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강변1로(한강대교~영등포간) 공사가 시작되어 9월 23일 개통되었다. 한강 제방인 동시에 자동차 전용 유료도로이기도 하였던 이도로는 예상치 못했던 부산물을 낳았다. 제방을 안으로 들여쌓은 결과 2만 4천평에 달하는 새로운 택지가 조성되었다. 택지를 분양함으로써 공사의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현실성을 갖게 되었고 한강 1로에서 9로까지 그리고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 120만평의 새로운 택지를 조성한다는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1966년 서울시장에 부임한 김현옥은 곧바로 세종로?명동지하도와 수없이 많은 보도?육교 그리고 시내에서 교외로 뻗어 가는 방사선도로들의 확장에 온 힘을 쏟았다. 이후 세종로?명동지하도 건설이 일단락된 1966년 가을 ‘한강 강변을 따라 제1한강교에서 김포공항에 이르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개설한다. 제공유수면 매립지구는 건설국 하수과가 각각 주관하였다.강변 제방도로 구축은 양택식 서울시장(1970~1974)에 제2한강교~천호대교에 이르는 남북 양안에 걸쳐 거의 마무리되는데, 처음에 제1로~제3로는 유료도로로 통행료를 징수했지만, 1974년부터 유료도로는 요금을 내는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용자의 불평 때문에 폐지되었고 이 제방도로는 구자춘 시정기(1974~1978)에도 계승되어 강동구 하일동과 경기도와의 시계까지 연장되게 된다.강변 제1로에서 제9로까지의 순서는 공사 추진 순서로 그 이름은 공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행주체가 각각 다르게 되자 착공?준공 시기도 당초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제5로~ 제 8로의 순서가 뒤바뀌어 혼동을 가져왔는데 이와 관련하여 1984년 봄부터 가을까지 서울시는 가로명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모두 240개에 달하는 시내 전 가로명을 정비한 뒤 그해 12월에 확정 발표하였다. 이때 한강 양안의 제방도로도 그 이름을 새로 정했는데 시 경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를 5개 구간으로 구분하여 북안은 강변1로~강변5로, 남안은 강남1로~강남5로로 정하였다. 그러나 한강 제방도로는 1980년대에 들어 으로 인해 길 이름도 모두 바뀌게 된다.강변 도로에 대한 평가1967년부터 시작된 강변 제방도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만약 이 제방도로가 건설되지 않았다면 그 후 크게 늘어난 자동차 교통에는 막대한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민들이게는 이 도로가 강변에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한강에의 접근성 친수성을 박탈해 버린 것이었다. 이와 같은 비판을 감안하여 1980년대 제 2차 한강개발에서는 여러 군대에 한강시민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려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한강이 시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왔다고 할 수 없다. 많은 시민은 강변을 따라 펼쳐진 콘크리트 암벽을 대할 때 친근감을 느끼기에 앞서 위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현옥 시장은 여의도 개발에 즈음하여 ‘한강개발은 민족의 예술’이라고 자찬한 바만평에 달하는 영동지구 구획정리 사업도 시작되었다. 1966년 9월 19일 서울시는 건설부에 영동 제 1지구와 제2지구에 대한 토지구획정리지구 지정을 요청하였고 건설부는 12월 28일에 이들 지역을 토지구획정리사업예정지로 결정하였다. 영동 제1지구는 동작동?반포동?잠원동?서초동?양재동?압구정동?논현동?역삼동?포이동?염곡동?우면동?도곡동 각 일부 500만평이었으며, 제 2지구는 청담동?신사동?논현동?삼성동?대치동?압구정동?역삼동?도곡동?서초동 각 일부에 해당하는 400만평의 광대한 지역이었다. 제 1지구는 1967년 12월 15일 건설부공고 제 154호로 시행명령이 내려졌고, 1968년 1월 18일에 실시인가가 났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다음 달 2일이었다. 제 2지구는 1970년 7월 27일 시행명령이 내려져 8월 13일에 2지구 개발사업과 영동교(영동대교)가설공사가 기공되었고 1971년 8월 24일에 실시인가가 나서 9월 10일 사업실시가 공고되었다.영동지구 개발은 5.16군사 쿠데타 직후부터 구상되고 있는 사업이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는 1970년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부산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구획 정리 사업을 통해 고속도로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고속도로와 도심을 잇는 도로도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경부고속도로는 당시로서는 민족의 대역사라 할 만한 엄청난 작업이었으며 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제 3한강교(한남대교) 공사가 진행되어 1969년 12월에 완공되었다.5. 잠실 개발1) 개발되기 이전의 잠실잠실섬은 오랜 세월에 걸친 모래의 퇴적으로 생긴 하중도였다. 조선 전기 세종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잠실섬 안에는 무성한 뽕나무 밭이 있었고 누에치기가 성행해서 서울 근교의 ‘동잠실’이라 불렸다.잠실섬의 남쪽 대안이 송파라는 이름의 모래벌이었다. 한성과 충청?경상도를 잇는 나루터였기에 강원?충청?경상도 각지에서 모여들고 흩어지는 물자 흐름의 중심지가 되었다. 따라서 송파상인?송파장시는 조선후기 오강상인이나 사대문 안 특권상
    공학/기술| 2019.06.11| 20페이지| 3,000원| 조회(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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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뉴타운, 국내외사례, 문제점, 개선방안
    국가 경쟁력이 높은 세계도시 런던목 차 1. 서론 1.1 연구 방법 및 목적 1.2 런던과 서울의 뉴타운 2. 런던의 도시계획 3 . 결과 및 고찰 4. 결론 5. 참고문헌영국의 수도 인구 775 만 699 명 면적 1578 ㎢ 영국의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지 2012 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국가 경쟁력이 높은 세계도시 런던1. 서론 1.1 연구 방법 및 목적런던 신도시 계획 서울 신도시 계획 - 제 1 기 1946 년 ~ 1950 년 - 제 2 기 1951 년 ~ 1964 년 - 제 3 기 1965 년 ~ 1971 년 목적 대도시의 과밀해소 쇠퇴지역의 개발촉진 원칙 기존 위성도시보다 자족성확보 균형 잡힌 커뮤니티 지향 - 시범 뉴타운 2002 년 10 월 23 일 - 2 차 뉴타운 2003 년 11 월 18 일 - 3 차 뉴타운 2005 년 12 월 16 일 2006 년 1 월 26 일 2007 년 4 월 30 일 목적 지역간 격차의 해소 , 난개발 방지 주택문제의 해결 , 교육환경의 격차 해소 일거리 창출과 경기부양 효과 원칙 도시관리원칙에 충실한 정비 사회통합형 개발 , 정비 기능복합형 개발 , 정비 친환경적 개발 , 정비 미래형 도시관리시스템 구축 뉴타운 사업 : 종래 민간주도의 개발이 도시기반시설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주택중심으로만 추진돼 난개발로 이어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새로운 ‘ 기성시가지재개발 방식 ’ 1. 서론 1.2 런던과 서울 뉴타운1. 서론 1.2 런던과 서울 뉴타운 : 도입 10 년만에 실패한 정책으로 전락한 서울 뉴타운의 문제점신도시 건설과 낙후주택 철거 동시 추진 2 . 런던의 도시계획2 . 런던의 도시계획Harlow 주구구성 Harlow (1947 년 ) – F.Gibberd 특징 : 런던 주변 (48km) 에 건설 전원도시의 이상을 이어받아 저밀개발 원칙 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반원형의 도시구조 철도역 연접 두개의 공업지구 배치 간선도로 : 주택지그룹 사이의 녹지를 통과 보조간선 : 각 주구의 중심을 연결 평가 : 낮은 인구수와 인구밀도 대규모 녹지확보로 인한 기반시설 비용가중 도시중심의 활력 부족 많은 수의 주차장과 차고 면적 필요 2 . 런던의 도시계획Cumbernauld 기본계획도 Hook 보 · 차도 분리체계 Cumbernauld (1955 년 ) 특징 : Hook New Town 의 영향을 받음 Glasgow 의 과잉인구를 흡수하기 위해 건설 Urbanity 확보를 위한 고밀도시구성으로 착상 특징 : 1961 년 발표 – 미실행 단일중심체제 채택 보차의 수직적 분리 주택지내 세가로망은 Loop 형으로 구성 2 . 런던의 도시계획Milton Keynes 신도시계획 Milton Keynes (1967 년 ) 특징 : 런던 도심으로 부터 약 72km 거리에 위치 훌륭한 조경과 오픈 스페이스의 전개에 중점 간선도로 , 보행자도로 , 도심부 , 공업지역 밀집 2 . 런던의 도시계획2 . 런던의 도시계획 : 향후 우리나라 뉴타운사업의 문제점을 개선 하는데 필요3 . 결과 및 고찰 대런던계획 : 쾌적한 주거 환경 조성 , 대도 시 과밀 문제 해결이라는 긍정적 효과와 공 동현상과 세수기반을 상실하는 부정적 결과 초래 우리나라 :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하는 반면 지역격차가 생김으로 농촌 · 산촌 · 어촌지대에서는 인구의 과소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남 이런 점으로 미루어 대도시에의 인구집중 때문에 일어나는 과밀 · 과소라는 불균형 발생 : 대런던계획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본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뉴타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인구 문제 해결 필요4. 결론 이번 연구는 영국의 대 런던 계획 을 통하여 우리나라 뉴타운 사업과 비교해봄을 목표 런던 대 계획이 장점과 동시에 단점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 수 있었음 런던 대 계획의 장점만 본받아 우리나라에 적용 필요 런던의 도시계획 중에서도 대 런던 계획이 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조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현재 런던의 도시계획에 대해서는 자세히 조사하지 못한 한계 향후 현재 런던의 도시계획과 서울의 도시계획도 비교 및 분석 필요김명곤 , “ 도시재정비촉진사업 실무해설 ”, 중앙일보조인스랜드 (2009) 김익진 외 옮김 “ 런던 ( 세계도시 문화여향 가이드 3)”, 컬처라인 (2001) 도시재생네트워크 저 “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 ”, 픽셀하우스 (2009) 서울특별시 주택본부 “hattp://housing.seoul.go.kr” 한국의 도시계획 “ 네이버 백과사전 ” 5. 참고문헌Thank you… Q A 국가 경쟁력이 높은 세계도시 런던{nameOfApplication=Show}
    공학/기술| 2019.06.11| 16페이지| 2,000원| 조회(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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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도시 발표자료, 추진배경, 국내외 사례, 역사, 정책, 현황, 도로, SWOT분석, 시사점
    자전거도시 - 암스테르담과 상주시 -자전거도시 추진배경 암스테르담 도시현황 , 역사 자전거도시 정책 자전거 이용현황 자전거 도로현황 상주시 SWOT 분석 시사점 목차추진배경도시 현황 네덜란드의 수도 주민 : 1,209,419(2006. 1. 1) 도시전체면적 : 896.96㎢ 지형적 요건 길이 좁고 운하가 많아 자동차의 통행이 어려움지형학적으로 산이 없고 평지가 많음 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자전거 도시 정책 도심에서 승용차 이용 제한 정책 자동차 운행속도 제한 - 도심 50km/h, 주택가 30km/h 교통사고 30% 감소효과 자전거 사고 사망자 연간 1~2 명에 불과 암스테르담자전거 도시 정책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조기 안전 교육 실시 도심에서 자전거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자가용 이용을 줄이는 정책 시행 높은주차료 , 주요도로 사용 금지 또는 단방향 운행 실시 암스테르담자전거 도시 정책 자전거 도로의 90% 가 자동차 , 보행자와 분리 학교와 직장 및 쇼핑 시설 등 다양한 곳으로 연결 교통 신호등을 자전거에 우선권 → 시속 20km 로 달릴 수 있다 . 암스테르담네덜란드정부의 자전거 활용 권장 이유 1. The cycle lanes 2. The size of the country 3. It is flat 4. Interesting mix of culture and nature 5. No language problems 암스테르담네덜란드정부의 자전거 활용 권장 이유 1. 자전거 도로 2. 나라의 크기 3. 평평한 지형 4. 자연과 문화의 흥미로운 조합 5. 언어 문제 없음 암스테르담자전거 이용 현황 자전거 보유 수 – 70 만대 매년 8 만여대가 도난 당하거나 2 만 5 천여대가 운하 속에 빠짐 교통분담률 : 자전거 (37%), 대중교통 (22%) 시내중심가 , 역주변에서 자전거 임대 하루에 약 € 9 ~ € 20 암스테르담자전거 도로 현황 네덜란드 전체 : 45,317km 암스테르담 : 500km ( 전체 도로의 25%) 종류 Rural bicycle route : 6500km 이상 Rondritten : 장거리 여행용 자전거 도로 Regional ( knooppunt ) netwerken 도로신호체계 자전거 우선 조작 가능 암스테르담LF-route ( landelijke fietsroutes ) = 장거리 자전거 도로 망 표지판 암스테르담Rondritten : 장거리 자전거 여행도로 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 시내 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 시내 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 중앙역 암스테르담암스테르담 중앙역 자전거 엘리베이터 - 지하철 이용시 편의 제공 암스테르담도시 현황 면적 : 1,254.82㎢ 서울특별시의 2 배 크기의 면적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중 여섯 번째로 넓은 지역이다 . 인구 : 11 만 892 명 행정구분 : 1 읍 17 면 6 동 상주 시지리적 여건 시 전체가 평평한 분지 지형으로 최고 경사도가 5 도를 넘지 않고 언덕과 고개가 없음 시내버스 노선이 없어 시내 이동에 자전거가 자연스럽게 주요교통수단으로 변모 목적지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20 분이내 ( 상주시 내 36.7% 의 지역까지 ) 상주 시자전거 도시 역사 1912 한일합방 이후 행정구역 새로 편성한 뒤 일본인이 자전거를 처음으로 상주에 공급 곡창지역 , 교통과 경제의 중심지인 상주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여 고가의 자전거 이용이 가능했음 현재까지 그 맥이 이어져 자전거 타기가 시민생활의 일부가 됨 상주 시자전거 도시 정책 95 년 '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 제정후 자전거 전용도로 추진 1996 년 12 월부터 1997 년 8 월까지 총사업비 4 억 6000 여만 원을 들여 자전거시범도로 개설 시작 상주 시자전거 도시 정책 버스터미널과 시청사 , 역 등에 양심자전거 158 대를 운영 (97. 9. 1 일 부터 ) 자전거 보유수 가구당 평균 2 대로 이용률 낮음 주차 공간이 없는 학교는 사유지에 유료 (100 원 ) 로 자전거 보관 ( 상주여상 , 성지여중 ) 상주 시자전거 도시 정책 2001 년 전국 최초로 자전거운전면허증을 발부 초 ·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안전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것 상주 시자전거 이용현황 매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72.5%( 통학과 통근이 66%), 자전거 수송 분담률 18.6% 상주 시상주 시자전거 도로 현황 전용 도로 조성 계획 현재 약 80km 인 자전거 전용 도로를 2007 년까지 126.7km 설치 시설 확충 계획 시내 58 곳 1 천대 분의 보관대 111 개소 , 3430 대 자전거 전용 경기장 ( 벨로드롬 ), 5km 의 산악자전거 코스 ( 만산동 ) 계획 상주 시상주 시상주 시상주 시상주 시다른 도시에 모범 생태도시로 발전 욕구 에너지 절약 자전거 도난 , 방치 자동차 · 유류회사 반발 자전거 인프라부족 환경 보호 국민건강증진 교통사고 , 교통혼잡비 감소 시민 만족도 증가 단거리 통행에 유리 자동차 이용자들의 반발 장거리 이동 시 불편 초기비용 과다지출 자전거 통행시 안전 불감증 SWOT해외 시민의 높은 선호도 정책결정자의 강한 의지 도시교통체계내의 틈새 존재 자전거의 이용시설 정비 선행 국내 전담부서의 부재 시장 의지에 따라 정책 흐름 변화 시사점http://holland.cyclingaroundtheworld. ln http://babelfish.altavista.com/babelfish/trurl_pagecontent?lp=nl_en trurl=http%3a%2f%2fwww.fietsplatform.nl%2fcijfers_en_feiten%2fdefault.asp http://blog.naver.com/paper113?Redirect=Log logNo=20004332293 세계의 환경도시 (4) : 자전거의왕국 , 네덜란드의 도시들 , 변병설 , 대한지방행정공제회 , 2003 집중연재 (3) : 네덜란드의 자전거이용 실태 , 박성득 , 대한지방행정공제회 , 1994 도시정보 : 네덜란드의 자전거 교통정책 , 김선희 , 대한지방행정공제회 , 1992 상주시청 웹페이지 : http://www.sangju.go.kr/ 상주시 도시녹화계획수립에 관한 조례 ( 안 ), 2007. 2. 농림건설국 상주 자전거 도시 일반현황 . hwp 출처 ???? 자전거 도시’ 경북 상주시 ( 경향신문 대전일보 보도 내용 ) , 2006. 10. 18 일자 기사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specialpage/index.asp?menu_code=04306 자전거 모범도시 상주 , http://www.geowalkers.net/bbs/skin/ggambo6210_board/print.php?id=05_dr no=21 암스테르담 자전거 도로 사진 , http://kr.dcinside4.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bicycle no=777 상주시 자전거 도로 관련 법률 , 시행령 , 시행규칙 . hwp http://en.wikipedia.org/wiki/Amsterdam 참고문헌{nameOfApplication=Show}
    공학/기술| 2019.06.11| 36페이지| 2,5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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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교 도서관에 대하여
    제목 : 대학도서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1. 서론대학도서관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는 오늘도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 비치된 신문이나 잡지 등을 읽기 위해, 혹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과제나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간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대학교의 도서관에 대해 알아보는 일은 자칫 진부해보일 수도 있고,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힘든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 가까운 대학도서관이 과연 우리에게, ‘현재의 대학도서관을 이용하는 대학생인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을 것이다.대학이라는 기관은 전통적으로 학술과 연구, 지식과 교양의 중심이 되어온 곳이다. 그러나 대학의 기업화, 청년 구직자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오늘날의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취업을 위해 더 나은 인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가장 큰 것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문과 연구를 위해 필수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대학도서관의 위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며, 앞서 언급한 현실에 대해서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도서관은 단순히 우리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할 수 있는 공부방이며 책을 대출해주는 곳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으로써 우리 학생들과 그 외 교수와 교직원의 각종 능력을 계발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면서 동시에 만남과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있는지 명확히 따져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에서는 제35조 업무 부분에서 대학도서관은 교수와 학생의 연구 및 교육활동과 교직원 등의 지식정보 함양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대학교육에 필요한 각종 정보자료의 수집?정리?보존 및 서비스 제공 2. 효율적 교육 과정의 수행을 위한 지원 3. 그 밖에 대학도서관으로서의 기능수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립대학설치령은 관장과·수서과·정리과·열람과를 두도록 하고 있으며, 그 밖에 봉사과·관리과 등을 두고 있다.(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 2004년 4월 5일 시행 . )제5장 대학도서관제34조(설치) 「고등교육법」제2조의 규정에 따른 대학 및 다른 법률의 규정에 따라 설립된 대학 교육 과정 이상의 교육기관에는 대학도서관을 설치하여야 한다.제35조(업무) 대학도서관은 교수와 학생의 연구 및 교육활동과 교직원 등의 지식정보 함양에 필요 한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1. 대학교육에 필요한 각종 정보자료의 수집?정리?보존 및 서비스 제공2. 효율적 교육 과정의 수행을 위한 지원3. 다른 도서관 및 관련 기관과의 상호협력과 서비스 제공4. 그 밖에 대학도서관으로서의 기능수행에 필요한 업무제36조(지도?감독) 대학도서관은「고등교육법」과「사립학교법」및 그 밖의 법률의 규정에 따른 해 당 대학의 지도?감독이나 교육기관의 감독청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2.1.2 대학도서관의 역사대학도서관의 출현은 고대, 중세시대의 환경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계승되어온 사원, 궁전 도서관 그리고 회교의 이슬람 도서관들은 고대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구실을 주로 담당하였다. 중세의 수도원 도서관은 신학 분야의 문헌을 복사, 수집하였고 세속적인하지만 르네상스기로 접어들면서 도서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럽 여러 도시에 무슬림 세계의 지혜의 전당을 본뜬 대학이 생겨났다. 교황 니콜라우스의 경쟁심을 자극해 도서관을 짓게 만든 주역은 다름 아닌 대학이었다. 대학 도서관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대학의 출현으로 유럽의 도서관 세계에는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2세기에 극적인 팽창을 보인 파리 소르본 대학 도서관은 그와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중략)사본의 급속한 증가가 소르본 대학 도서관이 양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변화했다는 증거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런 점에서 중세 대학 도서관은 시초적인 근대적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서관의 이용을 통하여 수많은 학생들의 교육으로 중세의 세계는 배운 사람들의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였다. 졸업생들의 대부분이 수도원에 남거나 신학에만 빠지지 않고, 의학, 철학 등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지식을 배워 나갔다. 대학의 출현과 대학도서관은 유럽의 르네상스를 용이하게 하고 학문의 밑받침이 되었다. 중세의 대학 도서관은 그 당시 흩어져 있던 학문과 지식을 수집, 보관하는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암흑기를 르네상스시대로 이끄는 학문적으로 큰 뒷받침을 해준 온상의 역할을 하였다.2.2 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에 대하여2.2.1 개관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의 역사는 1938년, 숙명여자 전문학교의 설립과 함께 발족한 부속도서실에서부터 시작된다. 1948년에 숙명여자대학으로 승격했으며 이 때 대학 도서관 체제가 확립된다. 1955년은 숙명여자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도서관도 함께 정식 도서관으로 승격된 의미 있는 해이며, 1984년 신축도서관을 준공하고 개가제 운영을 시작하게 된다. 1988년 도서관 업무 전산화를 추진하게 되고 1993년의 대출 및 편목시스템을 가동, 1994년 수서 및 검색시스템을 가동, 1995년 연속간행물 및 경영시스템을 가동하게 되는 등 몇 년에 걸쳐 도서관의 제반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전산화를 바탕으로 1997년에는 전자정보실을 열게 되고, 1999년 주제별 팀제를 운영하여 도서관 서비스에 전문화를 기하고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함으로써 정보시대가 요구하는 도서관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2000년에는 숙명여자대학교에 특성화된 세계여성문학관을 개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세계 각지의 여성문인들의 자료를 심층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에 통합형 전자도서관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서관 증축과 리노베이션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005년 1단계 리노베이션을 완료, 1층과 2층을 개관하였고 A층 벽, 그밖에 채광을 위한 창까지 모두 투명한 유리로 되어 개방적이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또한 푸른색의 바탕에 투명한 글씨로 도서관, 정보실의 이름이 쓰여 미관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서가의 색은 밝은 회색 혹은 흰색으로 밝은 느낌이며, 인문과학정보실의 서가는 흰색 바탕에 오렌지색으로 서가번호가 써있고 사회과학정보실의 서가는 파란색으로 서가번호가 써있는 등 단조로움에서도 탈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열람과 휴식을 위한 의자의 색은 모두 검은색으로 차분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징적인 점은 자투리 공간을 잘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창가에도 구석구석 열람 공간을 마련해 놓아서 도서관의 어디에 가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2.2.2 장서 및 자료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의 장서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일반도서가 531,901권으로 장서의 66.90%을 차지하며 연속간행물은 112,849권으로 14.19%을 차지하여 장서 구성의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학위논문은 73,109권으로 장서의 9.20%, 참고도서가 35,431권으로 장서의 4.46%, 고전도서는 11,005권으로 1.38%, 귀중도서는 9,897권 1.25%, 사무용도서가 551권으로 0.07%, 지정도서는 3,683권으로 0.46%, 끝으로 비도서는 16,645점이 있어 장서의 2.09%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총합계는 795,071권이다.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의 장서 중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세계여성문학관의 장서이다. 전 세계를 망라한 여성 문인들의 저서가 있으며 외국어 원서도 다양하게 구비해 놓았다. 또한 아동도서와 판타지 소설 등의 책도 많아 자료의 다양성을 보여준다.학생 수 대비 장서 수의 비율로 보면 우리 학교가 더 많은 장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숙명여대 도서관의 서가를 둘러보며 책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해봤을 때, 우리 학교의 도서관 장서 수의 많은 비중을 동양서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성균관도서관에 사서의 결원이 생긴다면 어떤 사람을 채용할 것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2급 이상의 정사서자격증을 소지하고, 영어에 능통하며 컴퓨터관련학과 복수전공 학위를 가진 사람을 우대한다는 것이었다. 즉, 문헌정보학과 출신으로 컴퓨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문헌정보학 외의 다른 학문의 지식기반에 대해서는 도서관에 입사해서 대학원에 입학한다든지 나름대로 더 공부해 주제배경을 갖추는 편이 좋다는 의견을 보이셨다. 대학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일반 도서관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이용자―학생, 교수―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주제전문사서의 채용에도 힘을 쓰고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직은 그런 면이 미흡했다.숙명여대는 토요휴무를 하기 때문에 토요일에는 2명의 사서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한다. 방문했을 당시 토요일이어서 Information Desk가 많이 비어 있는 모습이었고 남자 직원을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여대의 특성 때문인지 궁금해서 질문했더니 3분의 남자 선생님이 계신다고 하셨다. 꼭 여자만 뽑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교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생긴 게 아닌가 한다.대학교 도서관 사서가 되기를 원하는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은 전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폭넓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능하게 다룰 줄 알며 뛰어난 어학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자긍심과 서비스 정신, 전문성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던, 이용자의 다양한 욕구와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 융통성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는 측면은 사서에게도 유효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겠다.2.2.4 이용자의 특성과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학부생 등록이용자는 16,840명, 대출현황은 300,794권이다. 대학원생의 등록이용자는 6,049명, 대출현황은 71,364권이고 교수의 등록이용자는 757명, 대출현황은
    인문/어학| 2019.06.11| 2페이지| 1,500원| 조회(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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