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 오거스타에서 태어나(넘기기)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에서 자란 재스퍼 존스는 다섯 살에(넘기기) 이미 자신의 장래희망이 미술가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는 1948년에 뉴욕에 도착해 2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참전 후 미국에 돌아와 팝아트의 거장인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함께 쇼윈도 디스플레이 일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재스퍼 존스는 1958년에 뉴욕의 유망한 화랑인 리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이 개인전에서 근대 미술관이 그의 작품 몇 점을 구입하는 등 행운이 따랐습니다. 1970년대부터 그의 작품들은 계속 높은 가격에 팔렸으며, 그는 살아 있는 미국 미술가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에 작품을 판매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Like a quirk of fate, his life was deprived. I think this story describe restart life with pure love. And I think it is a masterpiece that reflected French situation of the time and social awareness about ex-con. Also I think this work was created for the passion that stands for affection for the weak and try to build an ideal society. The ending was quite sad but it isn’t just sad. The novel say, ‘treat with love.’
외딴방을 읽고작가인 ‘나’는 동급생이었던 친구 하계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과거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나’와 사촌은 직업훈련을 받은 후 훈련과정을 마치고 ‘동남전기주식회사’라는 곳에 취직한다. 가난한 시골 출신의 사람들의 대부분과 같이 그녀는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가난과 좌절을 마주한다. 야간 대학을 다니던 큰 오빠가 두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미로와도 같이 복잡한 구로 공단의 근처인 가리봉동에 단칸방을 얻는다. 그곳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외딴방이다. ‘외딴방’은 소외된 도시노동자의 삶을 상징하며, ‘나’에게는 작가의 꿈을 가지고 글을 쓰는 공간이다. 그에게 외딴방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없이 외따롭게 기억되는 곳이고, 특별한 의미이다.‘희재언니’ 역시 주인공에게 각별한 의미이자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책의 끝에서 희재언니가 있던 방문을 잠갔던 그는 자신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며 질책하고 우울해져간다. 공장을 그만두고 동거하던 남자에게 낙태를 강요받아 절망하던 과거의 희재언니는 죽었지만 작가에게 그녀는 현재의 아픔으로 남는다.픽션인지 수기인지, 심지어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작가조차도 결정하지 못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뇌가 서려있는 작품이었다. ‘외딴방’은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바람과 느낌들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억압받고 소외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이루어낸 노조설립이라는 그 결과가 오늘날의 자신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외딴방에서 멀어지고 있는 그가 보였다. 외딴방에서 해방된 작가는 이제 어떤 방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을까.
논어를 읽고 - 다르지 않음.어느 필독 도서에서든지 볼 수 있는 논어. 논어가 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인 ‘공자’의 말씀들을 엮은 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논어를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구절 한 구절이 무슨 말일까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도 그의 깊은 뜻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논어를 알아도 제대로 이해하며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를 모두 이해하였다면 그 사람은 지금쯤 공자와 같은 삶을 살아 제 2의 공자라 불리고 있지 않을까?논어에서 공자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자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공자가 대답을 하지 못해 난처해지거나 공자의 생각이 도에 어긋난 적은 한 번도 없어보였다. 날카로운 제자들의 질문에도 자신의 소신껏 대답하면 그것이 곧 도이자 정답이 되어버리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또한 그는 음악의 이론에도 능해서, 노나라의 악장에게도 최고의 음악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노나라 최고의 솜씨를 가진 대사에게 공자의 가르침은 의식 중 음악 연주에 실패하였지만 오히려 다른 때보다 밝고 기쁜 마음을 준다. 누군가를 신경 쓰는 조금의 사심도 없이, 연주자와 연주자, 마음과 손과 악기 그리고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 되어 진동하는 화합의 때에 비로소 순수한 음파가 사람들의 귀를 울릴 수 있다고 말하는 공자의 모습에 큰 감동을 느꼈다. 그는 노나라의 대사보다는 솜씨가 덜하지만 진심으로 음악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더불어 그는 제자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 공자가 자꾸 자공의 앞에서 자공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린 자천의 인물됨을 칭찬하자 자공은 공자에게 자신의 됨됨이를 묻는다. 그런 자공에게 그는 호련이라는 대답을 해주며, ‘호련은 큰 그릇이지만 그릇은 그릇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리다고 해서 깔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덕을 가지지 못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그 사람의 장래는 알만할 것이라 한다. 자공은 공자의 가르침에 큰 상처와 교훈을 얻고 돌아갔는데 아마 그를 보고 있었던 공자는 울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공자의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강해보였기 때문이다. 제자 염백우가 한센병에 걸렸을 때도 공자는 직접 찾아가서 평상시처럼 그를 대했다. 피부가 썩어가는 상황에서 염백우가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고 혼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예전과 달리 자신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었을 때 공자의 방문은 그에게 어떤 것보다도 더 큰 힘이 되었다.공자는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도가 너무나 크고 어려웠던 탓에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이 그 도의 정도를 낮추어 세상에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 어떠하냐는 질문을 공자에게 수없이 던졌다. 하지만 그 때 그는 그것은 매우 영리한 생각이지만 군자라면 목전의 이익을 위하여 세상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한 사람들에게 도란 수행하는 것이지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춘향전을 읽고 - 아쉬움과 안타까움일찍이 기생을 그만두고 성가라는 양반과 더불어 살았으나 사십이 되도록 슬하에 일접혈육이 없던 월매는 성참판과 함께 교룡산에서 제단을 차리고 엎드려 빌었다. 산신의 응답으로 월매는 선녀의 태몽을 꾸고 옥녀를 낳았는데, 그가 춘향이다. 춘향의 효행은 비할 곳이 없고, 인자함은 기린처럼 빼어났으며 시서음률에 능통했다.한편, 삼청동에 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었으니 대대로 명문가문이었으며 충신의 후예였다. 이에 임금이 지방 원님으로 임용하여 남원으로 가게 되었고, 이 사또의 자제인 몽룡 도령은 풍채는 당나라 시인인 두목이요, 도량은 넓고 푸른 바다같고, 지혜는 활달하였으며 문장은 이태백, 필법은 왕희지같다 하였다.화창한 봄날, 남원부사의 아들 몽룡은 방자를 데리고 경치 구경 차 광한루에 올라 시를 읊고 있었고, 춘향은 향단이를 데리고 광한루 앞의 시냇가에서 그네를 뛰고 있었다. 춘향을 본 이 도령은 춘향에게 한눈에 반하여 방자를 시켜 춘향을 불러오게 한다. 여러 번의 대화 끝에 춘향이 못이기는 척 몽룡에게 가고, 두 사람은 만나 사랑을 한다.그런데 이 도령의 부친의 전출로 춘향과 몽룡은 이별을 하게 된다. 이 도령은 춘향에게 후일을 약속하고 떠나고, 춘향은 이 도령만을 기다리며 지낸다.곧 새로 부임한 변학도는 절색으로 소문이 난 춘향을 불러 수청을 강요한다. 춘향이 수청을 거부하자 변학도는 벌을 내리지만 춘향은 죽기를 결심하고 거절의 의지를 드러낸다. 춘향은 옥에 갇히고, 몽룡만을 생각한다. 이 때 몽룡은 주야로 시경과 서경 등 온갖 서적을 숙독하여 과거에 으뜸으로 급제하고 전라도 어사가 된다. 몽룡은 한걸음에 달려가 어사 출두하여 변학도를 벌하고 춘향을 구해낸다. 그 후 임금께 가서 보고하고, 임금은 춘향을 정렬부인에 명한다. 춘향과 몽룡은 부친보다 더 총명한 삼남 삼녀를 두고 백년동락하며 행복하게 산다.이처럼 춘향전은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중심으로 춘향이 변사또에 대항하여 절개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기생의 딸인 춘향과 완벽한 양반 집안 출신인 몽룡의 사랑은 대중들의 신분상승의 소망과 신분제 철폐의 염원을 담은 소설 혹은 계급간의 갈등을 나타낸 소설, 또는 신분이라는 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대립을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자신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춘향의 당당한 태도가 대단하다고 느꼈고, 이러한 태도가 엄청난 몽룡의 배경들도 주목받지 않게 만들어 버렸을 때 춘향이 정말 멋있었다. 하지만 춘향은 천하절색의 미모였고, 비록 어머니는 기생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그녀의 환경 또한 무시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그녀가 예쁘지 않고 부모 중 누구도 양반이 아닌 상황에서 몽룡이 그녀의 심성에 반하게 되는 이야기였다면, 그 당시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대중들에게 훨씬 더 많이 사랑받는 소설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