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 : 국립부여 박물관 기획전시관주관 : 부여군, 국립부여 박물관전시 기간 : 2019.09.10 ~ 2019.11.24(오프라인)현재 온라인 VR전시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은 백제 사비시기의 왕릉원1호 무덤 東下塚동하총은 석실 내부에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과 연꽃구름무늬가 그려진 벽화고분이다.백제지역에서는 처음 발견된 벽화고분으로, 백제 최고 수준의 왕릉급 고분으로 평가된다.
바딱족에 관하여Ⅰ. 서 론 …………………………… 2Ⅱ. 본 론1. 바딱 족 개관 ……………………………… 3: 바딱 종족 사회의 기원과 다양성1) 종족의 기원2) 종족의 구분3) 언어2. 바딱 족 사회와 문화 ………………………1) 사회 모습(1) 친족 제도(2) 생계 활동2) 전통 문화3) 식인 풍습3. 신화와 종교 …………………………………1) 전통 신화2) 또바 호수 이야기3) 종교Ⅲ. 맺 음 말 ……………………………Ⅰ. 서 론인도네시아 종족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세계 최대 군도국가인 인도네시아는 풍요로운 자원, 다채로운 문화, 경제 성장, 민주화의 역사적 과정 등으로 인해 세계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는 나라이다. 특히, 한국에게 인도네시아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6대 수출 대상국이며, 많은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의 Jabotabek(Jakarta, Bogor, Tangerang, Bekasi) 지역에 진출해 있다. 2억 6천만 인구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시장, 공고화된 민주주의 체제 등을 갖춘 인도네시아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아세안 국가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만큼, 인도네시아로의 투자는 향후에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인도네시아로의 투자는 자카르타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그 외 지역에 대한 인식은 미약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모든 인도네시아인을 자바인 및 순다인으로 일반화하여 투자 전략을 세우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는 30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로, 같은 인도네시아인이더라도 종족마다 다른 문화, 관습 및 언어를 갖는다. 현지 진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인도네시아 종족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각 민족의 문화와 관습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즉, 한국 기업의 성공적인 현지 진출을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인구의 과반 수 이상을 차지하는 자바인과 순다인 이외의 다른 여러 민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와 조사가주하고 있다. 행정 통치때 대부분의 Pakpak 사람들은 Dairi Regency, North Sumatra에 정착했는데, 2003년 말에 Dairi Regency (수도 Sidikalang)와 Pakpak Bharat Regency (수도 Salak)로 구분되었다.빡빡족은 sulang silima라고 하는 사회 구조로 묶여있다. 이는 Sinina tertua (Perisang-isang, 자손 또는 이전 세대), Sinina penengah (Pertulan tengah, 자손 또는 중간 세대, Sinina terbungsu (Perekur-ekur, 막내 세대), Berru (여성을 가족에게 보내는 친족), Puang (다른 가족에 여성을 준 친족)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4) 바딱 시말룽운(Simalungun)시말룽운족은 약 50,000명으로 시말룽운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응집력이 강한 시말룽운 사람들의 특성은 네덜란드 식민주의에서 파생되었다. 1870년에 네덜란드는 델리 왕국의 메단을 중심으로 동 수마트라의 거주를 설립했다. 1904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는 'Simeloengoen en Karolanden'이라는 행정 단위를 구성하기 위해 'Simeloengoenlanden'의 7 개 왕국과 항복 계약을 체결했다.(5) 바딱 만다일링(Mandailing)만다일링족은 약 160,000명으로 만다일링, 울루, 빠까딴, 빠당 라와스의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만다일링 사람들은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여행자로도 알려져있다. 만다일링은 국가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인도네시아 정부는 나라의 주요 부족 중 하나로써 간주했다. 98 %가 무슬림이라고 보고되어 있으며 언어가 풍부하고, 소리가 부드러워 매끄러운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6) 바딱 앙콜라(Angkola)앙콜라라는 이름은 Angkola 강 또는 Batang Angkola에서 유래된 것이라 여겨진다. 앙콜라 종족은 앙콜라와 시삐록, 빠당 아버지의 성을 따르며 부모의 유산은 아들만이 물려받을 수 있다. 바딱 인들은 가계를 이어나가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남아를 여아보다 선호해왔다. 이는 한국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틍징과 유사하나 특이한 점은 바딱족의 막내아들이 유산을 물려받는 방식이다. 막내아들은 다른 형제들 보다 많은 유산을 물려받으며, 아버지의 후임자로서 집과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모의 집에서 그들을 모신다. 장남에게 유산상속의 수혜와, 부모양육의 의무가 주어지는 한국의 전통적 가족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결혼 제도바딱 인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성을 가진 배우자와의 혼인을 선호한다. 즉 외부집단과의 결혼을 선호하고, 그러한 혼인이 바딱 인들 내에서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를 근친적 결혼을 금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촌 지간에 결혼을 하거나 여성이 사별한 남편의 친척과 결혼하는 등, 근친적인 혼인 풍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일부다처제는 금기사항이 아니다. 국가재판소에서 바딱의 관습법은 일부다처제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다소 남성중심적 가족관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딱 인의 대다수가 일부일처제의 부부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종족 구성원 대부분이 기독교인 것과 연관이 깊다. 기독교의 교리는 차별을 부정하고 따라서 일부일처제의 혼인형태를 지지하기 때문이다.이 외에 바딱 족 관습법에서 찾을 수 있는 특이한 점은 과부가 된 여인은 남편의 가족 중 한 사람과 혼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인과, 남편의 가족들간의 합의를 통해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소정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더하여, 이혼에 있어 특징적은 면은 설령 그 사유가 아내의 과실이 아니고, 서로간의 합의이혼이라 할 지라도 남편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혼이 합법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위 특징들은 관습적 가족제도에 대한 내용을 다소 포함하고 현대 바딱 인들이 여전히 이러한 제도를 따르고 있으리라 판단할 수 없다. 모든 바딱족이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는 것 또한 틀린 명제이다. 그 반례로 까로렀기 때문에 내륙 지역에 직접 들어가 그들과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회고록에서 바딱 족의 식인 풍습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가 묘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죄인을 질식시켜 죽인 후 요리를 하고, 죄인의 친족을 모두 불러 모아 죄인의 골수 입자가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뼈를 빨아 먹는다. 그들은 인육을 다 먹은 후, 뼈를 모아 짐승이나 다른 생물이 없는 산 속의 동굴에 놓는다.” 하지만 두 번째 자료 Battas에서 그는 식인 풍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Thomas Raffles는 1820년대에 인간의 육체 소비에 관한 바딱 족의 의식 및 법률을 연구하면서 그 식인 풍습의 행위와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들이 나이 들어 일하지 못하는 부모의 인육을 먹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그는 덧붙여 “특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산 채로 먹는 경우도 있으며, 보통 인육을 라임, 소금, 쌀 등과 함께 날 것으로 먹거나 익혀 먹는다.”고 언급하였다.중국인 지리학자 ‘중운’의 보고서에 의해 바딱 족의 식인풍습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바딱 족이 포로 중 한명을 데려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한 후 산 채로 살을 칼로 베어내어 구워먹거나 날로 먹는 것을 묘사했다.이러한 바딱족의 식인풍습은 단순히 인육을 먹기위함이 아닌 바깥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위해 침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풍습이다. 바딱 족은 자기 부족 내에서의 식인 풍습을 고집해왔지만, 1890년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에 의해 통제 가능한 지역에 한하여 식인 풍습이 금지되었다. 바딱 족의 식인 풍습에 대한 소문은 20세기 초반까지도 남아있었지만, 이슬람의 영향으로 인해 식인 관습은 1816년 이후로 점차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3. 신화와 종교1) 전통 신화바딱 종족의 종교로는 이슬람교, 기독교, 가톨릭 등이 있다. 이 종교들이 전파되기 전에는 전통적인 바딱 신화가 있었다. 이는 고대 거석문화 및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바딱 종족은 전통적으로 이 세상이 데바으로 보고 있다.이 호수의 생성에 관한 전설이 있다. 조실부모한 또바(Toba)라는 청년은 농사일과 고기잡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다가 갑자기 아주 아름답게 생긴 금빛 물고기를 낚았는데 그가 만지니 공주로 변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공주에게 청혼했다. 그 청혼은 그 청년이 그녀가 물고기로부터 탄생했다는 비밀을 절대로 말하지 않은 조건으로 수락되었다. 일 년이 지난 후 사모시르(Samosir)라는 이름의 아들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아들은 크면서, 식탐이 대단하여 부모의 음식까지 먹어 치우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인 또바가 화가 나서 “물고기 자식”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사모시르는 울면서 어머니(공주)에게 물었다. 즉 청혼의 약속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인 사모시르에게 절대로 뒤를 보지 말고 산꼭대기로 가라고 이야기하고, 어머니는 물고기로 변하여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 눈물로 마을은 모두 잠기게 되었다. 남편은 시내에 갔다 돌아 오는 길에 물에 휩싸여 죽고, 아들이 있는 산꼭대기만 남게 되었다. 아들이 있었던 곳이 지금의 또바 호수 안에 있는 사모시르 섬이다. 또바 호수에 관한 순박한 전설이 남아 있는 것이다.또바 호수)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면, 그들의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는데 쉬울 것이다.3) 종교인도네시아는 헌법 29조에 의해 6개 종교(이슬람, 개신교, 로마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국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이 전체인구의 87.2%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다. 이슬람교 외에 다양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기독교 9.87%, 힌두교 1.69% 등으로 그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북부 수마트라 지역에 거주하는 바딱 족은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201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바딱 종족 인구의 약 63%가 기독교 신자이며, 무슬림 인구는 3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었다.
포퓰리즘의 진화와 해결방안서론포퓰리즘은 과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민주주의를 위한 짧은 안내서』에서는 포퓰리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포퓰리즘은 다수를 각성 시키고, 다수가 희망하는 단일한 공동선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성의 민주적 방식이 아닌 흥분의 정치이다.포퓰리즘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설명한 군중과 어뷰징(abusing)기사 등을 보며, 인터넷으로 인한 포퓰리즘의 진화를 살펴본다. 즉 인터넷 뉴스와 소셜미디어의 전파력이 개인의 단순한 믿음으로 빠르게 포퓰리즘이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살펴본다.해결방안에서는 포털과 언론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시민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며 마무리한다.본론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군중을 2가지로 나누었으며, 군중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한다. 군중은 ‘공허한 군중’과 ‘증오에 찬 군중’로 나눌 수 있다. 공허한 군중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박탈감에 의해 객관적으로 소외된 군중이다. 증오에 찬 군중은 진지함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통념으로부터 스스로를 주관적으로 소외시키는 군중이다. 즉 증오에 찬 군중은 뉴스를 사실로 믿을 때, 극도로 분노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등장해, ‘사회가 이들을 소외시켰다는 것이 사실이다!’고 정당화해주면, 이들의 증오는 오랜 기간동안 결속력을 갖게 된다. 나는 현재 포퓰리즘은 증오에 찬 군중들로 만들어진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분법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상대편에 있는 의견을 묵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현재 한국 정치는 과거에 비해 포퓰리즘 성향을 조금 더 강하게 띠고 있다. 이분법적인 단순 논리가 한국 정치를 잠식하면서 포퓰리즘의 폐해가 점차 노골화, 극단화 되고 있다. 즉 과거 천안함 사건부터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까지, 거의 모든 정책 현안이 진영 논리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3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보수 단체 회원들과 촛불 집회 참석자들이 바리게이트를 기준으로 절반씩 나뉘어 집회를 열었던 모습에서도 한국의 진영 논리가 포퓰리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즉, 증오에 찬 군중들은 편견에 찬 하나의 의견을 마치 다수의 의견인 양 표현하게 되고, 그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인터넷 뉴스나 소셜 미디어 정치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다시 말하면 인터넷의 어뷰징 기사가 성행하고 있는 점이다. 어뷰징 기사란 조회수를 목적으로, 제목이나 내용을 바꿔가며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행위이다. 어뷰징 등으로 인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의견들이 빠르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 의견이 전달되는 것이 아닌, 빅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생각과 일치한 한 의견만 지속적으로 전달되거나 혹은 언론이 극단적인 내용을 전달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이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원인은 우선적으로 포털 중심으로 인터넷 뉴스들이 유통되는 방식과 더불어 언론사들이 광고 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영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즉 인터넷에서 어뷰징 뉴스를 발행하게 되고, 소셜미디어에서 또 다시 관련 기사가 빠르게 전달된다. 또한 소셜미디어의 단순한 사용 형태가 포퓰리즘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사람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이나 믿음에 더 크게 영향을 받으며 가짜 뉴스를 신봉한다. 소셜미디어는 이와 같은 정치적 선동에 최적화되어 있다. 소셜미디어는 ①개인 맞춤형으로 전달되는 정보, ②짧고 간명한 내용, ③ ‘좋아요’ ‘리트윗’ ‘공유’ 등으로 손쉽게 전파할 수 있는 특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러면서 소설미디어에서 성행하는 가짜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사고가 많다고 혹은 이러한 사례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해결방안으로는 우선적으로 비판적인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뉴스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비판적인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더불어, 뉴스 및 기사를 개제하는 공간인 포털도 변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뉴스 이용자의 88.5%가 ‘포털 메인 페이지의 뉴스 제목’을 보고 인터넷뉴스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시민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 포털은 어뷰징 기사 및 copy 기사 등을 IT기술을 활용해 확인하고, 제거해야 한다. 현재 네이버는 콘텐츠 제휴를 맺은 언론사와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바꿨다. 어뷰징 기사 비중이 많은 매체에게 수익 배분 비율을 줄이고 있다. 그 예시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만 대응하는 기사, 비정상적으로 짧은 작성시간을 보이는 기사, SNS에 올라온 유명인의 발언만 옮긴 가십성 기사 등의 어뷰징을 알고리즘을 이용해 파악하고, 언론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시민들 역시 가짜뉴스를 판별 가이드를 숙지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시민의식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결론인터넷 기사는 빠르게 우리들에게 소식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신문보다 더 효율적이다. 또한 소셜미디어의 순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홍콩 국가보안법 이슈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외로 알려지는 등의 긍정적 부분도 존재한다. 즉 소셜미디어로 시민들의 자발적, 실질적 참여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웹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즉 웹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공간 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도 되었다. 우리는 웹 공간 속에서 질적 참여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이제부터 포퓰리즘으로 각 진영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닌, 공론장으로써 다양한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웹공간을 마련해야한다. 이는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만 가능하다. 여기서 주로 언론의 변화 방법에 대해 서술한 이유도,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앞으로 인터넷 공간이 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집단적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보험사의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경영학전공서론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보험사의 경영전략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의 사전적 의미는 변화, 변신으로 기존에 추구해 온 변화보다 한층 높은 강도의 근본적인 변화와 변혁을 의미한다.보험사의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을 보기 앞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의 다양한 정의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기존 인프라에 통합하여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혹은 ‘디지털적인 모든 것(All things Digital)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변화에 디지털 기반으로 기업의 전략, 조직, 프로세스, 비즈니스모델, 문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영전략’을 뜻하기도 한다. 즉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은 기업 경영 전반에서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이제 보험사들은 성장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보험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즉, 보험은 이런 상황에서 각광받을 수 있다. 일례로 코로나 19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고객의 대량 해지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았고,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의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물론 질병보험 지출 감소 등의 이유도 존재한다.즉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서 보험의 역할은 중요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의 디지털 변혁으로 소비자의 편의성을 증가시키고 보험사의 성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코로나 19와 새로운 경쟁자(네이버, 카카오)를 중심으로최근 코로나 19는 최근 수년간 주요 산업의 경쟁 방식과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즉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이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에도 실내 봉안당 등을 폐쇄하고, ‘온라인 성묘’ 등의 비대면 서비스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이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와 더불어, 코로나 19로 인해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스크 유형이 변하고 있으며, 사회 안전망으로서 보험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업계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즉 온라인 채널과 비대면 구매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있지만, 전통적인 대면 중심의 판매가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의 불편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복잡하고 어려운 보험 상품 특성상 보험설계사를 통해 영업활동이 이뤄졌으나, 현재 고객이 가입 내역을 분석해 필요한 보험을 검색하고 가입하는 ‘디지털 보험 매니저’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또한, 보험사들의 저금리 장기화 및 불황으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와중, 네이버와 카카오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즉 거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보험업 진출이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기존 보험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서둘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카카오는 2021년 상반기에 디지털 손해보험사 출범을 계획 중이다. 라이선스 취득을 선택했고, 상품 개발부터 판매, 보상까지 직접 보험업을 영위할 수 있다. 현재 카카오페이에서 간편보험(해외여행보험, 반려동물보험 등)을 주로 제공하여,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들이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쉬운 접근만으로는 기존 보험사들과 차별화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카카오는 디지털 손보사를 설립해 새로운 영역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다. 2030세대를 겨냥해 마이크로 보험을 제공해, 보험상품에 대한 경험과 관심이 작은 2030세대를 끌어들인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네이버는 자동차 보험 비교서비스 사업을 시도했으나, 고액 수수료 논란으로 사업 추진이 중단되었다. 이번에는 의무보험이 필요한 소상공인과 보험사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작한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보험 상품을 안내해 주는 것이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가맹점은 규모와 매출액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배상책임보험 등 의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의무보험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미가입시 2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지만, 실제 가입률은 9%(업계 추정)으로 미미하다. 이 보험사업에 현대해상, DB손보 등이 참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 보험사 예시코로나 19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이 빠르게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재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보험사를 캐롯손보와 미국 아플락(Aflac)사례로 확인해본다.캐롯손해보험캐롯손해보험은 고객에게 새로운 상품, 차별화된 서비스로 보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한화, SK텔레콤, 현대자동차, 알토스벤처스 등 대형 투자사들이 합작하여 설립한 국내 최초 디지털 손해보험사이다.캐롯손해보험은 IT기술력을 앞세워 국내 보험시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상품들을 보였다. 캐롯손해보험의 대표 상품은 ‘퍼마일 자동차보험’에 대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기존 고객들이 자동차 보험을 이용할 때, 운행 거리에 상관없이 연간 보험료를 선납해야 한다. 캐롯손해보험은 ICT기술을 활용해 탄만큼만 매월 후불로 내는(특약) 자동차 보험 상품을 선보였다. 기본료(주행거리에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부과하는 보험료) + Km당 보험료로 정산된다. 캐롯플러그(무선통신기기)를 제공해, 차량의 시거잭에 장착하고 자동으로 주행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또한, 본인에게 맞춰 보험료 납입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월정산형(특약)과 연납 후 정산(최초 가입시 1년 보험료를 한번에 납입)하는 방식 두가지가 존재한다. 그 결과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출시 100일만에 가입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서는 등의 인기를 끌었다.또한, ‘스마트 ON 보험’에서는 공인인증서 없이 PC에서 쉽게 가입이 가능하게 했다. 이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싫어하는 소비자에게 적합하다. 스마트ON 보험은 저렴한 가격(펫 산책 보험의 하고 싶지 않은 2030세대를 겨냥했다. 또한, 산책날만 어플리케이션 ON을 통해, 보험이 적용되게 했다.즉 캐롯손해보험은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자동차보험의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 트립(Trip) 정보에 기초한 보험료 자동 산출 시스템(특허) 등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접목했기 때문이다.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정기적 상품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때만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가능하게 했다. 이는 혁신적이고, 생활밀착형 상품을 제공하는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 형태라고 생각한다.캐롯손해보험은 전통적 보험사가 아닌,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보험사이다. 이에 따라 인지도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기존 보험사들도 고객 편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좋은 상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아플락아플락(Aflac)은 코로나 19사태 이후 전체 사용자 경험을 디지털화 하는 툴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고객이 디지털 채널로 간편하게 제품을 구매하도록 제품도 간소화하고 있다.아플락은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 2019년부터 ‘원 디지털 아플락(One Digital Aflac)’로 고객이 더 편리하게 보험 상품을 구매하고, 영업팀이 더 쉽게 상품을 판매하며, 직원들이 더 간편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또한, 중개인 혹은 대리인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했다. 즉 고객 중심적으로 운영 모델을 재편하고 비즈니스 서비스를 개선했다.하지만 코로나 19가 발생했고, 아플락은 전체 재택근무를 시행해야 했다. 일본 지사의 보고로 코로나 19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있었고, 가상 데스크톱을 빠르게 도입했으며, 원격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장비를 미리 구매했다. 보험 사업의 핵심은 ‘위험 관리’이다 코로나 19사태의 상황에서 디지털을 이용해 전통적 비즈니스 접근 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또한, 코로나 19에 맞춰 아플락은 ‘게스트 체크아웃’서비스를 구축했다. 이는 계정에 액세스할 때 필요한 구 시에는 은행 업무와 마찬가지로 증권번호,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용자는 상대적으로 수시로 로그인하는 은행서비스와 다르게, 보험 서비스는 자주 로그인하지 않는다. 즉 이러한 정보 입력을 상당한 불편 요소로 받아들인다.하지만 아플락의 게스트 체크아웃 서비스를 사용하면 증권번호를 알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정보만 확인해주면 보험 청구를 할 수 있다. 리치 길버트(아플락 최고 디지털 정보 책임자)에 따르면, “일부 산업군에서 흔한 기능이지만, 보험에서는 꽤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SMS 문자를 사용해 청구 상태를 알리는 셀프서비스 기능을 자동화했으며, 아플락 모바일 앱에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결론앞으로 대형보험사들의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의 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19와 디지털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업 생존전략으로써 디지털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최근 손해보험사들은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한 상품 출시에 이어 서비스 확장을 통해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AI질병예측 기능을 담은 암보험을 출시했다. KB손해보험은 KT 및 엔에스스마트와 업무협약을 통해 AI를 활용한 실손 보험금 간편 청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이를 통해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고객 대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인 고객 건강검진을 유도해 질병 위험도를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AI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정보제공이나 질병예측부터 보험 가입을 직접 심사하는 단계까지 진화했고,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에 속도가 붙고 있는 추세이다.이처럼 많은 금융업계에서 디지털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로 통일된 서비스가 아닌 회사의 여러 어플리케이션에서 서비스가 분포되어 있어 소비자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이는 고객 서비스를 향상시킨다는 인식 보다는, 단지 접속자수를 늘리기 위한 방식이라는 소비자들의 생각이 커질 수 있다. 그렇기에, 보험사는 고객 한다.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드러나는 독일인의 의식에 관하여 >한나는 왜 글을 배우지 않았던 것인가. -나치의 언어 정책과 관련하여1. 서론언어란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문자·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 관습적 체계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나’라는 인물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왜 한나는 자신이 감옥에 들어갈 때까지 언어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는 궁금증이 생겨, 이 소논문을 쓰게 되었다. ‘왜 언어를 배우지 않았을까? ‘라고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 연구자는 한나가 ‘언어’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두려워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이라면, 과연 어떤 것이 한나가 언어를 배우지 않은 이유일까? 이 논문은 이러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연구자는 한나가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던 이유를 ’나치의 언어 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나는 나치를 배우지 않기 위해, 나치와 떨어져있기 위해 ‘언어’를 알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한나는 나치시대를 직접적으로 깨닫고 싶지 않아서, ‘나치시대의 사람들’과 같아지지 않기 위해서 글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이 논문에서는 ‘한나’라는 인물에 대해, 독일인들이 나치에 대해 열광하고 학습하게 된, 나치시대의 언어정책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또한, 한나가 나치를 피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을 활용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2. 본론-1) ‘한나‘ 라는 인물에 관하여연구의 대상인 ‘한나’는 당차고, 똑똑하며, 자신의 말을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인물로 보인다. 또한 한나는 자신의 치부가 알려지기를 매우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책의 ‘한나’는 자신이 벌을 받더라도 ‘글을 모른다.'는 치부가 알려지지 않기를 원하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겼다. ‘왜 한나는 언어를 배우지 않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나라면 자신이 못한다는 것을 밝혀지지 않기 위해서 감옥에 갔지만, 언어를 배울 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왜 한나는 언어를 배울 수 있었는데, 왜 배우지 않았을까. 한나는 자신이 전 회사에서 승진하려면 시험을 봐야했지만,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가 밝혀질까 봐, 다른 곳으로 도피를 할 만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사람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하지만 연구자가 생각하는 한나라면 ‘글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워서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차고, 나치시대에서, 자신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한나가 ’글’이 두렵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가 늙어서 글을 배운 것처럼 젊었을 때, 글을 빨리 배울 수 있었지만, 왜 글을 못한다는 이유로 떠났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연구자는 한나는 의지만 있다면,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의 곁에 소년도 있었으며, 젊었고 강했다. 이 때의 한나는 사랑하는 소년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한나가 나치시대의 감독관으로 있었던 때를 살펴보자. 연구자는 그 때도 한나의 노력만이 있었다면, 한나는 글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한나의 곁에는 많은 소녀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들이 책을 읽어주는 대신, 한나는 그들에게서 글을 배웠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나는 글을 배우지 않았고, 그저 듣기만 했다.한나는 나치시대가 끝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소년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즉 한나는 나치시대가 끝나고서야 이제 ‘글을 배워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을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결국, 한나가 나치시대에 있어서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던 이유가, 나치시대에 지도자들이 독일어라는 언어를 가지고, 독일인을 지배했던 것들을 보면서 한나는 독일어를 배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인들이 나치에 열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한나는 그들과 동화되지 않기 위해 ‘글을 배우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닐까?-2) 나치시대의 언어정책에 관하여한나는, 나치시대에서 언어를 배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독일의 언어정책은 어떠했고, 독일의 나치시대에 있어서 언어정책은 독일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자.논문에 따르면 언어의 정치란 언어 자체가 정치 행위의 대상이 되는 정치이다. 언어의 정치는 무엇보다 바르고 적절한 언어사용을 명분으로 한 일종의 정치 투쟁이다. 즉 특정한 개념의 사용을 비판하거나, 특정 개념의 ‘올바른 의미와 사용법을 정의하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해석과 견해를 공공여론과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에 관철하려는 정치적 행위이다. 구체적으로 언어의 정치는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모아 담은 유리 상자와 같은 개념을 독점하여 특정한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특정한 기억과 기대를 말소하거나, 더 나아가 개념이라는 유리 상자 자체를 특정한 의미가 부각되게끔 신조어 등을 통해 리모델링하거나 아니면 이를 폐기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언어란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과 공공 담론에서 언어를 지배하는 사람, 즉 자신이 정의한 바대로 중요한 개념들이 의미를 결정하는 자가 실제 정치를 지배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있다.나치는 이러한 언어정책을 여러 매체와 학교교육, 정치집회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신문 기사 제목에는 ‘총체적‘ 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였고,’독일인’에 대한 강조가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나치는 ‘독일인‘과 ’유대인’을 명확히 구별하고 있었다.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던지는 질문들은 ‘ 당신은 독일인 부인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나치의 지배 헤게모니가 일상의 영역에 침투하고 있었다.나치의 언어정책은 독일인의 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클렘퍼러는 언어학자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통해 나치가 ‘군대의 보고’, ‘전격전’, ‘섬멸 전투’와 같이 새로운 합성어나 ‘유일무이한’, ‘역사상 최고의’ 승리 등과 같은 최상급 표현과 명사의 조합을 통하여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태도를 오염시키는 개념화 작업을 광범위하게 진행시키고 있었음을 간파하였다고 설명한다. 그가 강조한 나치의 언어는 ‘게르만화’ 된 토속어와 다른 한 편으로 외래어 및 미국식 표현의 최상급표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이상한 조합을 통해 듣는 사람의 분석적 사고와 성찰을 어렵게 만드는 언어의 사용법에 의해 독일인들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또한, 나치가 사용한 연어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나치가 선호했던 단어들은 ‘굳센’, ‘광적인’, ‘맹목적인’과 같은 것들이었으며, 부정적으로 사용했던 단어들은 ‘민주적인/민주주의’, ‘지성적인’, ‘객관적인’, ‘개인적인, 개인주위’였다. 나치가 자신과 관련된 것들을 호명하기 위해 독점적으로 시용했던 단어로서는 ‘지도자(교회에서 예수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금지됨), ‘선전’(적 진영이 행한 선전은 ‘헛소문’이라 명명함), ‘제국’, ‘당동지’, ‘당 회의’ 등이 있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주 사용했던 단어들로는 ‘민족Volk’, ‘인종’, ‘종種’, ‘피’, ‘공간’, ‘노동’, ‘성과’ 등이 있었다.나치시대의 언어를 독일인들이 후대에 평가하면서 ‘나치즘 속에서 언어가 한 역할’ 즉 ‘언어 자체가 나치의 공모자’인가 하는 것이 논점이었다. 문화비판가이자 문학가인 게오르게 슈타이너는 자신의 에세이 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독일어는 나치즘의 가공할만한 행적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와 같은 자들이 독일어를 말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무자비한 행위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강조점을 표현하기위해, 나치즘은 독일어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정확히 발견하였다. 호르스트 베쌀의 노래를 쓰는데 이용될 수 있는 언어는 스스로가 모국어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이러한 주장을 통해 슈타이너는 독일어가 나치의 희생물이거나 나치의 세계관과 범죄 행위를 위한 단순한 매체나 수단이 아니라, 나치의 공모자임을 강조하였다. 후대에서의 평가와, 나치의 언어정책들을 살펴보았을 때, 나치의 언어정책은 나치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한나가 나치를 피하기 위해,한나는 이러한 나치의 언어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어 언어를 배우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한나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일까. 그 곳이 나치정권이 만든 수용소라는 것들을 몰랐던 것일까. 연구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나는 그 곳이 나치의 수용소이고,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나는 그 곳에서 감독관으로써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을까. 왜 그 곳에서 책을 읽어주는 여자들을 더 좋은 수용소로 데려갔을 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