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이 시청각 자료는 세계화가 나타나면서 아시아 곳곳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영향을 몇 군데 나라의 사례를 들어 말해 주고 있다.첫 번째 사례로 필리핀 마닐라의 한 타이어 공장 노동자의 경우, 공장이 문을 닫고 중고품을 팔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었다. IMF 때에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면서 화폐가치가 감소하여 이자 갚기가 힘든 상황을 겪으며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타이어가 비싸기 때문에 공장을 돌리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고 그렇게 되면서 받기로 했던 돈도 못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강대국은 저임금 국가에 공장을 건설하고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해 세계화를 좋아하는 반면 약소국은 노동 환경이 변하면서 근로조건이 악화 되기 때문에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두 번째 사례 역시 필리핀의 사례인데, 한 어부는 외국산 생선 때문에 자국의 어류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깔라띠깐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1차원적으로 어부생활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필리핀 권력층의 부패로 어민들을 힘들게 하였으며 세계화는 필리핀 국민의 5%를 위한 것이라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확대시킨다고 하였다.한국도 마찬가지로 기아자동차에서 IMF때 자금난에 시달리며 부도의 위기에 처했었다. 10000여 명이 구조조정 되고 결국은 현대자동차와 합병하며 세계화 특징 중 하나인 M&A현상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시애틀에서 현재의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잇따르자 인도에서 세계사회 포럼이 열렸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략하면서부터 제국주의 적인 면모를 보이고 세계화가 진행되었으며 일방적으로 미국이 주도하여 부정적인 효과가 생겼다며 부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면서,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기 위해 세계화가 시작되었지만 이런 사례들을 보기만해도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확대되어있고, 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어서 앞으로도 각 나라마다 세계화의 격차 또한 벌어질 것이며 긍정적인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미국의 자본주의가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여 제국주의 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고, 그런 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또 변질되어 사회주의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그렇다고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은 잘살기만 하는가?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미국도 또한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기 마련이고, 이라크전에 참전한 군인들도 보상받지 못한 피해자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중 지극히 일부분의 장면을 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빈부격차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세계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란다면 강대국이 약소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도와주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미국에게 불만이 표출되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정책의 내용은 무상원조, 기술 전수, 교육 제공 등 과 관련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이해 1차 보고서4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한국에서 난민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은 5월 말 기준 7737명이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배다.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 증가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총 난민 신청자는 1만8000명에 달할 것 같다며 예상 누적 신청자도 3년 뒤인 2021년 12만7000여명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난민인정 신청이 급증한 이유는 이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체류 연장 통로로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민 신청은 불법 체류나 추방을 앞둔 경우와 상관없이 외국인이면 가능한데, 신청하는 순간 6개월 가량 체류 연장이 가능하며 이의제기와 소송을 하면 최대 수년까지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난민 신청 후 6개월 뒤에는 한국 내에서 구직 활동도 할 수 있다.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한 마호메드(23)씨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풀타임으로 일하기 어렵고, 인건비가 너무 적다”며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한 국가인데다 제주도에 무사증제도가 있다는 사실이 예멘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며 단시간에 제주로 예멘인들이 발길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출처: 중앙일보] "난민신청자 3년 뒤 12만명 예상” 2018.07.06 기사中예멘은 냉전체제 시절에 공산주의 정권의 남예멘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북예멘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1990년 5월 예멘은 합의하에 통일을 하였지만 서로의 차이점과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여 권력 배분을 놓고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남예멘은 예멘민주공화국으로 연방 탈퇴를 시도하여 내전이 일어났고 북예멘이 무력으로 승리하여 재통일하였습니다. 이는 냉전 분단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무력으로 자유주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지금까지도 예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그리고 올해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오는 것에 의견이 분분한데,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고 있고 신청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나 다른 국가들이나 난민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난민들의 인권, 이질적인 문화, 종교에 대해 폄하할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평등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모든 전쟁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를 남기듯이 내전 또한 한 나라 안에서 마주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상처가 깊고 타격이 큽니다. 시간이 흘러 진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반복되는 내전으로 인해 예멘 사람들은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21세기에 맞는 세계 시민의 성숙한 의식과 태도를 갖추어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게 관련 법제도의 정비와 난민협약을 비롯해 인권전문협약들을 실천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인권 존중 의식이 고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난민 문제는 예멘사람들만이 고군분투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이 심각해질 문제도 아니며 국제 사회가 함께 찾아내야 할 과제로 인식해야합니다.
삼국유사를 읽고 가장 내 이목을 끄는 감통 한 편과 효선 한 편을 뽑아 보았다.첫 번째로, 감통 제 7에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라는 이야기가 있다.김현이라는 자가 돌아다니다가 한 처녀를 보고 쫓아 처녀의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남들에게 해악을 끼치던 세 명의 오빠가 호랑이로 변해 있었고 처녀는 자기가 벌을 대신 받을 수 있다면 마땅히 할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처녀가 사람을 해쳐 국왕이 그녀를 잡게 하면 김현이 그녀를 잡아 넘겨 관직을 얻게 하는 방식이었다. 김현은 어찌 배필의 죽음을 팔아 관직을 얻겠냐고 하였지만, 처녀는 자신을 희생해 얻는 슬픔보다 다수가 얻는 행복이 크다면 행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라의 기쁨을 얻고, 조상에게 복이 되며, 도와준 김현에게 관직을 주니 얻는 이로움이 더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만약에 나를 처녀에게 대입해보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처녀보다 두려움도 많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오늘 날 같이 범죄의 강도가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 나를 다짜고짜 해치려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현같이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인 줄 알고 데리고 왔다가 악덕한 호랑이지만 동시에 나의 오빠인 호랑이를 죽이려 들면 어떻게 말릴 것인가? 이런 두려움이 앞장서서 나는 이런 생각을 몇 번씩 하다가 결국엔 도움을 청하지 못할 것 같다.두 번째로, 효선 제 9에 ‘진정사가 효와 선을 다 이루다’라는 이야기가 있다.진정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었다. 그가 군대에 가 있을 때 의상법사가 그를 눈여겨보고는 제자로 삼고 싶어 하였지만 진정은 어머니가 혼자 계시기 때문에 효를 다하고 가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효를 다하고 가면 늦어질 것을 염려하여 이에 반대하셨다.진정은 눈물을 삼키며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여 세 번 사양하였으나 어머니도 세 번 권하셨다.그렇게 거처한지 3년이 지나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고 진정이 의상에게 알리자 의상이 추동에 가서 막사를 짓고 사람들을 모아‘화엄대전’을 강의 하고 나자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나는 이미 하늘에서 환생하였다.”라고 하셨다.여기 나오는 의상법사는 당나라 유학을 떠나 신라 화엄종의 시조가 되어 신라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또한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사회통합에 이바지 하였던 스님이다. 신라시대의 불교라 했을 때 원효대사와 같이 떠오르는 큰 업적을 기린 스님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스님 아래에서 제자가 된 진정은 많은 지혜를 얻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면서 진정법사를 만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물론 혼자 남겨진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해 애통함이 크고, 집에 남아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도 있었겠지만 그대로 인해 신라가 발전할 수 있었으니 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꿈에 어머니가 나와 환생하셨다고 할 만큼 기쁨을 알리셨으니 그대가 효를 다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어머니와 함께 하여 효를 다 한 것으로 생각되니 후회하지 않아도 되며 애통해 할 필요가 없다.”라고 위로를 해주었을 것 같다. 이러한 따뜻한 한마디로 그는 마음의 짐을 한 스푼 덜어내고,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계심을 생각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후감제 3장 전란과 우국의 충정에서 ‘악양루에 올라’ 라는 시를 읽고 시의 원래 해석과 나의 경험에 빗대어 해석한 것으로 하여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예전에 동정호를 들었더니/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구려/ 오와 초는 동남으로 탁 터져 있고/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둥실 떠 있다친척도 벗들도 소식 한 자 없고/ 늙고 병든 몸엔 외로운 배 한 척뿐/ 고향 산 북녘엔 아직 전마 득실거려/ 난간에 기대니 눈물 콧물 다 흐른다시인은 자신이 좁쌀 같은 미미한 존재이지만 개인의 고독과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시인이 자신의 모습을 비참하다고 느끼면서도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조금 이나마 자신의 힘듦을 스스로 위로하고 모르는 척 하고 싶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친구나 친척의 연락을 받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이제는 자신의 힘듦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이 ‘외로운 배 한 척’이라는 표현을 통해 배(培)가 된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어릴 때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지냈던 것이 떠올랐다. 내 경험을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시를 고쳐 써보려고 한다.예전에 김천에 살았더니/ 금요일에야 대구에 올랐구려/ 부모님은 대구에서 일하시고/ 나의 낮은 포도밭에 둥실 떠 있다부모님은 바빠 일주일동안 연락이 없으시고/ 아이의 곁엔 아빠가 사준 곰 인형 뿐/ 대구에 가고 싶은 마음 득실거려/ 매일 밤 투정부려 눈물 콧물 다 흐른다나는 이 시의 마지막 행이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와 김천에 살면서 할머니 힘드시게 매일 밤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떼쓰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죄송한 일이지만, 내가 울 때면 할머니가 내일 엄마 보러 가는 날이라고 나를 달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셨다. 하지만 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서럽게 울었었다.금요일에 대구로 올라오는 이유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기 때문에 올라오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사는 것이 익숙해 질 쯤에도 항상 금요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 날 시골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태세를 보아 시골에서 살았던 것도 값진 경험이 되었다. 더운 여름날에 유치원을 마치면 할머니 포도밭 앞에 있는 또랑에서 매미 소리와 함께 발 담그며 놀고 물고기도 잡으며 지냈다. 또 할머니가 메뚜기를 잡는 날에는 튀겨서 먹는 것을 보고 징그럽지만 고소해서 따라 먹기도 했다. 가을이 다가오면 앞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느라 매운 냄새가 진동했고, 노을이 지면 고추의 빛깔과 같은 색이라는 것을 아는 듯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겨울이 다가올 쯤에는 할머니가 메주를 만드셨는데, 삼촌이 대학을 가 있어 쓰지 않는 방에 메주를 걸어 놓았다. 그 꼬릿한 냄새가 싫었던 나는 그 방을 지나갈 때마다 숨을 참곤 했다. 눈이 발 복숭아뼈 까지 쌓이는 날에는 할머니가 넘어지지 않게 발자국 낸 곳으로 만 걸으라고 했지만 내 마음대로 걷다가 발이 푹 빠지곤 했었다.
과목명국제사회의 이해이 름시청각자료 제목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는가?학과 학년식품가공학과 1학년학 번전체 내용 및 줄거리『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는가? 』에서는 석유전쟁으로 알려진 이라크 전쟁을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를 중심으로 미국이 얼마나 석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향후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 변화와 세계 전략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입장과 다른 국가들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1979년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으로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후세인은 이란이 이라크의 안보를 불안하게 한다는 이유로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켰고, 이란혁명이 다른 나라로 번져 가는 게 두려웠던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와 최첨단 무기를 지원해주었다. 이라크의 승리로 끝은 났지만 전쟁의 결과로 경제가 피폐해지자 OPEC 석유수출국기구에 석유 값을 올려 재정 확보를 목표로 하였으나 미국의 동맹 지원국 쿠웨이트의 반대로 실패하였다.결국 이라크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0년에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이 시작되었다.이후 이라크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대통령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현장조사를 하겠다는 UN조사단의 무기사찰을 거부하고 군비확장을 계속 해왔다. 미국은 그로 인해 이라크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고 9.11테러사건 이후 북한, 이란을 포함해 세 나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2002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UN연설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폐기를 요구하였고 미국은 UN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라크를 침공했다.이라크군이 남부 움 카스르 항구 및 나시리야 지역에서 강력히 저항했지만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장악하였다. 사실상 미국이 움 카스르 항구를 차지하게 되면 전략적인 요충지가 완성된다. 냉전체제가 해제되고 단일 패권으로 미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핵 물류를 보존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전 세계가 미국의 이기주의를 본 후 반전, 반미로 돌아 섰으며 영국에서조차 반전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렇게 전 세계적인 반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경제 생존을 위해서 손실이나 위험을 충분히 감안해가며 안정적인 석유공급원을 차지하기 위함이다.미국은 에너지 소비형 경제이다. 국가 유가에 따라 경제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석유 보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석유를 반 이상 수입 하고도 부족할 만큼 과소비를 하여 현실성이 떨어진다.부시 대통령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안에너지를 찾거나 전쟁을 통해 해외석유를 차지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석유 사용을 중단할 수 없다 하였고 군사적인 해결을 선택했다.그렇다면 왜 이라크의 석유인가? 이라크의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이며 석유 1배럴이 1달러도 되지 않고 투자비와 유지비가 싸기 때문이다.후세인은 같은 반미 의견을 펼치고 있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에 석유를 달러가 아닌 유로로 거래하자하였고 그로 인해 달러가치가 하락하게 되었다.후세인 대통령은 석유수출 중단선언을 하고 석유를 무기로 미국에 맞서겠다하였다. 미국 에너지장관은 이러한 선언이 미국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하였는데 즉 석유가 미국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또한 전쟁에 반대하였고 이런 미국의 탐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소감 또는 의견-----이라크 전쟁에 미국과 영국을 비롯하여 동원된 병력은 총 30만 명이며, 이 가운데 12만 5000여 명이 직접 작전에 참가하였다. 인명피해는 미군 117명, 영국군 30명이 전사하고 40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또 민간인 1253명 이상이 죽고 부상자도 5100여 명에 달한다. 그 밖에 1만 3800여 명의 이라크군이 미군의 포로로 잡히고 최소한 2320명의 이라크군이 전사하였다. 또한 유니세프에 따르면 4명 중 1명이 기근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전쟁 중 가장 참혹하고 인류 역사 최대의 비극이라고 일컬어진다. 아직까지도 이라크사람들은 혼란과 고통 속에 살고 있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까지 많은 피해를 감수해가며 미국은 전쟁으로 석유를 얻어 내야만 했을까?이에 대한 두 가지 입장과 이라크의 당시 정치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대표적인 현실주의자 한스 모겐소에 따라 현실주의적 입장으로 본다면, 힘을 국제정치상의 목표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이익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국력 극대화와 생존을 위해 군비경쟁을 벌이는 등 이라크 전쟁을 한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냉전 체제가 사라진 이후 미국은 군사적 지위 면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지만 경제적 지위 측면에서는 그만큼의 우위를 누리진 못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와 이라크의 민주주의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UN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감수해가면서 이라크를 공격하였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30여 개국의 나라가 전쟁을 지지하였다. 미국은 손실보다도 승전국이 되어 이익을 얻는 것을 효용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