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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기독교강요 (제2권 8장), (제3권 19,20장), (4권 20장) 독후감 평가C아쉬워요
    -기독교 강요 제2권 8장 기독교 강요 제3권 19,20장 기독교 강요 4권 20장 독후감- 정독여부: A 과거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십계명을 도덕의 법칙으로 자신들의 의를 나타냄으로 지키려 노력하였다. 그들 가운데 진정 메시야를 알지 못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십계명의 원의미를 왜곡한 체 율법적인 행위에 초점을 두어 자신들의 의를 나타냈다. 그들 자신의 율법적 행위가 의가 되며 그것이 곳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율법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있다고 기독교 강요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의와 정직을 기뻐하시고 악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인간으로써 기본적 요소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언약이다. 이것들을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이것들을 지키고 살아야할 방침, 도덕적인 지침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요약한 계명으로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다. 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고 5-10계명은 이웃 사랑의 실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은 계명을 통해 세상을 향해서 덕을 실천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원하셨다. 하지만 세상은 온갖 죄악으로 물들어가고 있고, 사건 사고가 빗발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의 외적 행위를 보고 비판하며 손가락질한다. 이 모습을 볼 때 교회가 크리스천 개개인이 하나님의 명령인 계명, 윤리와 도덕을 기억하지 못한 체 물질주의, 세속화, 성장에 빠져 윤리와 도덕을 버린 결과임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지금이라도 나 자신이 목회자로 성장해 감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기독교의 바른 복음과 윤리와 도덕적인 계명을 철저히 가르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정독여부: A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을 비추어 본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는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기껏해야 저주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과연 불행한 영혼으로서는 어떻게 그 행위에 마음을 쏟을 수 있겠는가? 율법의 가혹한 요구나 혹은 율법의 준엄함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부르시는 부름을 듣게 되면, 그 부름에 기쁨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된다. 그 속에서 참된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게 된다. 19장 챕터 4번에서 말하고 있는 ‘순종은 율법의 강요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 부분이 많이 와 닿았다. 율법의 멍에 아래에 있다면 자유함이 없다. 그러는 가운데에는 하나님 앞에 자발적인 순종이 나올 수 없다. 율법을 바라보면 행위 하나하나가 전부 저주를 받을 것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행위가 전부 다 나쁜 것이 아니고 다만 불완전할 뿐이므로 그 행위 속에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여 자신을 속일 수 도 없다. 율법은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은 모두 정죄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해도, 그 행위가 불완전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바로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즉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말씀에 따라서 사는 것을 말한다. 그속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 헛된 것들을 쫓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영광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의 부귀와 권세와 명예 쾌락 등을 쫓아가는 삶이다. 그러한 삶은 영원한 삶이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약속 천국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치와 탐욕을 버리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으로 성령으로 행하며 참된 자유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다. 세상 사람들은 가치는 지식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다른 것들에 있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성도의 가치, 믿음과 성화, 그리고 구원받은 자로서의 이웃사랑이 실현되어야 한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 속에 말씀을 바르게 믿고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정독여부: A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따라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다. 믿음과 기도는 마음의 영혼의 호흡이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이 홉은인 믿음과 기도가 없이 산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서서히 메말라 간다. 영혼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바른 믿음과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우리가 친구를 사귈 때 서로의 대화를 통해서 상대를 알아가고 깊은 관계가 유지되듯이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허락해 주신다. 성경 말씀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하나님과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굳건한 믿음 가운데 대화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이다.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회라는 신앙의 기도를 통해 달려왔음을 본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들과는 다른 지금 이 시대를 볼 때 지금의 목회자를 볼 때 과연 올바른 기도생활을 하고 있느냐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말씀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해버리고 본문중심의 설교가 아닌, 문자위주의 잘못된 설교, 설교자가 자의적 해석을 하는 것은 잘못된 설교이다. 칼빈은 “말씀을 기초로 한 믿음은 올바른 기도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행위 위주의 기도로 기도를 몇 시간 했다. 중점을 두고 새벽기도회를 신앙생활을 기준을 삼는 것들은 율법적인 신앙이 다고 본다. 이러한 기도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도의 행위보다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성경 말씀을 통한 참된 기도가 나와야 한다. (기도가 주는 여섯 가지 유익) 1.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그를 사랑하며 섬기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열렬한 소원으로 우리 마음이 항상 불타오르게 해 준다. 2.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 부끄러운 욕망이나 바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3. 기도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은택들을 진정한 감사와 찬송으로 받게 해 준다. 4. 우리가 구한 것들을 받아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깨닫게 되고 나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더욱더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5.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그 축복들을 더욱더 큰 기쁨으로 환영하게 된다. 6. 우리의 연약한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을 통해서 확증하게 해 준다 또 챕터 7에서 말하고 있는 ‘합당한 기도에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다’ 하나님 보다 높아져있는 것들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지금 이 나라와 세계민족에 수많은 재앙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징계를 바라보며 모세와 다니엘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함이 필요하다. 그럴 때 다시 회복의 역사를 이뤄주실 줄 믿는다. 그러할 때 챕터 8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정독여부: B 칼빈은 6가지 주제로 설명하고 있다. 국가 통치와 영적 통치의 연관성, 또 한 국가 통치의 필요성과 하나님의 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정부와 집권자들의 임무, 공법 및 재판 정차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관련됨 불의한 통치자들이라도 공경하며 복족하여야 한다. 끝으로 헌법상의 관리들은 왕들의 폴적을 막아야 한다. 국가의 통치를 돌아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왕을 달라고 요청하여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셨지만 결국에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죄악 가운데 빠지게 된다. 결국 진정한 국가의 통치와 모든 것을 다스리심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종들 중에서 노골적인 복수 자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에게 명령을 주셔서 악한 정부를 처벌하고 정당한 자세로 억눌려 있는 그의 백성들의 비차함한 재난에서 구해내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바로왕의 교만을 꺾으셨다. 사람이 통치하고 다스리려 할 때 오만을 깨뜨리셨다. 하나님께서 정하사 왕들에게 심어 높으신 그 위엄을 절대로 침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늘로부터 무력을 부여받아서 더 높은 권세로 그 낮은 권세를 진합하였다. 모든 왕들의 욕망도 왕들의 명령도 와들의 건위 모든 것이 복족하고 굴복해야 한다.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이 우선되어야 하며 어떠한 상황가운데 통치자들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명령하면 그것들은 거역해야 한다. 하나님의 고유한 최고의 권세 앞에서는 그들의 위엄이 낮아져도 아무런 해가 없다. 겸손을 가장하는 것이 아닌 거짓된 겸손의 모습으로 치장하고서 단순한 백성을 속이면서 어떠한 명령이든 왕들이 부과한 것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떠벌리는 것이다. 사무엘하 8장에 보면 다윗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정의와 공의 하나님의 통치의 기본적인 방법이다. 삶의 여러 유혹 속에 힘 있는 사람들이 권력으로 군림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 주님의 십자가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 하나님이 주인 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고 개개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됨을 믿고 의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다스리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독후감/창작| 2021.10.27| 5페이지| 4,000원| 조회(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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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지서에서의 하나님 체험
    (선지서에서의 하나님 체험)1. 선지서의 기본바탕을 이루고 있는 언약적 관점1) 창조물과의 언약창세기 1,2,3장에 창조가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창조의 대략에 초점을 맞추고, 두 번째 창조는 인간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창조에 강조를 두는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존재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어 나가신다.2) 아브라함과의 언약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다.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이다. 자손에 대한 약속은 출애굽기1:7에서 성취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심으로 바로와, 이스라엘과 열방에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계시를 주신다.3)시내산 언약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킴으로서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출19장에서 시내산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 소유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 주어진 것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율법이다.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약법이고, 언약법의 핵심은 십계명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대표적으로 출32장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구체화 되었다.4) 언약의 파기이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인간편에서 파기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깨어진 언약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우상과죄로부터 돌아설 것을 촉구하신다.5) 선지서의 메시지그러므로 선지서의 메시지는 죄-심판-회복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선지서에는 경고와 고발이 시 형식으로 많이 나타난다. 심판에 대한 선포가 있고, 약속이 나오는데, 약속은 징계와 회복의 약속으로 구분된다.2. 선지서 나타난 언약적 관점(죄, 심판, 구원)1)죄와 심판죄와 심판에 대한 선언은 언약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진단하시고 심판 하실 때에는 신명기의 법에 근거하시기 때문이다. 신명기에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이 있다. 특별히 신28장에는 언약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축복과 저주가 들어간다.선지서에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은 두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심판은 하나님의 징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의 징계가 경고되고, 선포되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심판으로 자기 백성을 교정시키시고, 변화시키는 용광로로 사용해 나가신다.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우상 숭배를 포함한 어떤 가증한 일을 행한다 해도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면, 성전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으로 믿었다. 동시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풍요와 번영을 기대하였지만, 언약법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우지 않으면 성전에서의 예배드림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을 여호와께서 거두신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으며 “바벨론 포로”라고 하는 징계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구원을 향한 회복을 목적으로 삼고 나가신다.2)회개와 회복창세기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선택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율법들이 기록 되어져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긴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언약을 파기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깨어진 언약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우상과 죄로부터 돌아설 것을 촉구 하셨다. 왜냐하면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정리 되어한다.
    인문/어학| 2021.10.27| 2페이지| 2,500원| 조회(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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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한목자 요약 서평 (케네스E. 베일리)
    -선한목자 요약&서평-저자: 케네스E.베일리1장) 시편 23편에 나타난 선한 목자선한 목자는 “나를 인도하신다.” 그는 “나를 몰고 가지” 않으신다. 이것이 뚜렷한 차이점이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 떼를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옳은 길로 이끈다. 시편의 언어는 의인법을 사용한다. 시편 기자를 따르는 선한심과 인자하심은 마치 사람처럼 시편 기자의 뒤를 좇고 있다.2장) 선한 목자와 예레이먀 23:1-8목자들과 양 떼에 대한 예레미야의 고찰은 5개의 카메오로 이루어져 있다.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렘 23:1) 예레미야는 악한 목자들을 향해 “멸망시키고 흩어놓는 자들” 이라고 직설적으로 책망하고 있다.예레미야는 독자들에게 “북쪽 땅”으로부터 되돌아오게 하신 주님을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그들을 “북쪽 땅으로부터”데려오신 주님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3장) 선한 목자와 에스겔 34장여태까지는 에스겔의 “선한 목자” 버전이 의심의 여지없이 잘 받아들여졌다. 그 메시지는 왕과 고관들 그리고 “들짐승들”에 대한 비난이다. 에스겔은 인간적 견지에서 이스라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재확인한다. 하나님은 언젠가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직접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시리라는 것을 예언자를 통해 알리시며 선포하신다.4장) 선한 목자와 스가랴 10:2-12하나님은 “유다의 족속”으로 인정된 “그의 양 떼”를 돌보신다. ㄸㆍ라서 하나님의 행동으 ㄴ동기가 명확하다. 또한 양 떼로부터 “전쟁용 활”이 등장하고 양은 “전쟁의 용사”로 변형된다. 더 나아가 그들의 승리는 단순히 원수를 무찌르는 것을 넘어 “진흙 거리에서”원수를 짓밟아 욕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다.5장) 누가복음 15:1-10에 나타난 예수 선한 목자와 선한 여인복음서에 나타난 선한 목자의 특징을 파악한 다음 그 실제적 쓰임새를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예수는 누가복바리새인 중에서 이 특별한 그룹을 제외한 다른 단어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예수는 시편 23편에 진술된 선한 목자에 관한 고전적인 비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며, 이 위대한 이야기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버전을 제공한다.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수는 자신이 위반하고 있다고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있는 정결예법에 관하여 논의하기를 거부한다. 만일 예수가 회개/구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제시하기 원했다면, 그가 선택한 “큰 그림”이란 무어이었을까? 큰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분투하는 운동선수의 그림인가, 아니면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올라가는 산악인의 그림인가? 과연 어떤 그림이었을까? 예수가 입을 열어 다윗으로부터 출발한 시편 23편의 선한 목자에 관한 옛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놓자 청중은 충격에 휩싸인다.6장) 마가복음 6:7-52에 나타난 선한 목자마가복음 6장에서 저자는 선한 목자 전통을 사용하는 사건들을 기록하여, 풍성한 과거를 상기시키고, 새로운 현재를 창조하며, 성찬적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현재 일하시는 선한 목자로 묘사하지만, 이것은 은유적인 표현이다.다윗은 양이 아니며, 그는 실제로 언덕에서 풀을 뜯지도 않았다. 선한 목자와 잃어버린 양 떼에 대한 세 예언서의 설명은 모두 미래에 이루어질 이야기다. 마가복음 6장에서 악한 목자는 갖은 조종에 취약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고 변덕스럽고 흉악스러우며,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마가복음 6:14-20에서 저자는, 요한인 죽임을 당하고 헤롯이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쓰는 미래로 이동함으로써 시간적 점프를 한다. 선한 목자 예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도록 부름 받았다.예수는 잃어버린 양 떼를 지휘하면서 그들의 선한 목자로 등극한다. 베드로는 예수의 의도된 극적 행동들을 가장 잘 이해했으며 나아가 그 개념들을 마가에게 전달했다. 후에 마가는 두려움에 떠는 로마 교회 양들이 떨어져나가 길을 잃는다.마태의 비유는 잃어버린 양을 추적하여 양 떼에게로 되돌리기 위해 분투하는 목자의 모습을 증거한다.선한 목자는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 18장은 누가복음의 js한 목자 및 선한 여인과 조화를 이룬다. 마태복음 18장에 담긴 선한 목자로서 예수의 정체성은 직접적이라기보다 간접적이다.8장) 요한복음 10:1-18에 나타난 강도와 이리 떼에 둘러싸인 선한 목자요한복음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신학적. 역사적 환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초대 교부들은 이 복음서를 “영적인 복음서”라고 불렀다. 요한복음의 이 목자의 노래는 예수로부터 유래되었고 요한에 의해 풍성하게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종종 예수의 가르침은 이에 대한 요한의 해석과 함께 잘 융화된 것 같다.선한 목자는 반드시 문지기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출입을 시도하는 자가 낯선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목자에게는 현재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양 우리로 들어가 양 떼를 몰아 거리로 이끌고 나와야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목자는 거리에 서서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낸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들이 목자의 음성을 안다.” “목자는 부른다”. “양은 따라간다”. 목자는 이끌고 앞서 나아간다.선한 목자 전통에서 비용 요소는, 이 전통이 전개될수록 이야기를 강화시키는 중요 요인임이 분명하다. 이 오래된 전통은 약속된 신성한 목자가 출현할 때, 그가 악을 처리하며 흩어지고 잃어버린 양 떼를 회복하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선한 목자가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바로 그 마음 안에 거하시는 선한 목자의 마음속으로 이끌림을 받게 된다.양을 데려오는 목자의 행동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양의 행동과 나란히 위치한다. 다시 한 번 본문은 어떻게 이 두 개의 분리된 실체가 동시에 행동을 취하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목자의 행동과7-18은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하다. 그뿐 아니라 이 두 구절은 기독교와 유대교 간의 접촉점을 이루는 중추를 이루며 더 나아가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대화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요한복음 10:17-18은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이슬람과의 접촉접에서도 중추적인 요소로 작용한다.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양 떼를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목자가 치러야 할 희생의 대가를 크게 증대시키고 있다.1. 선한 목자는 예수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가 선한 목자로 등장한다.2. 잃어버린 양/양 떼, 요한복음에서 양 떼는 절도와 강도로 인해 처하며 “삯꾼”에게 버림받고 이리의 공격 대상이 된다.3. 대적들, 요한복음 19장에서 대적은 곧 “원수들”과 “절도” “강도들”과 “이리들”이다.4. 선한 주인, 요한복음에서는 생략된다.5. 성육신, 요한복음 10장에서 성육신의 주제는 절정에 다다른다. 요한복음 10장은 성육신과 속죄를 주장한다.6. 대가의 지불, 요한복음에서 치러야할 대가는 이리와 사투를 벌이는 목자의 생명 바로 그것이다.7. 회개, 요한복음에서도 구원은 논의되며 그로 인한 회개가 함축되어 있다.8. 선한 양과 나쁜 양, 다른 곳의선한 목자 설명처럼, 이곳에서는 나쁜 양에 대한 언급이 없다.9. 축제, 요한복음은 누가복음 15장의 목자와 여인의 이야기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기쁨의 축제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10. 이야기의 결말, 선한 목자 전통은 그 이야기의 결망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다. 흩어진 양 떼가 집으로 돌아오고 잃어버린 자가 발견되며, 망명자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이 이야기를 보다 넓은 스크린에 풍성하게 담아낸다. 요한복음의 양 떼는 매일 주인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 그들은 꼴을 찾아 들어오고 나가며 자유를 만끽한다. 양 떼는 목자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죽음에서 부활할 만큰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기적인 삯꾼은 도망가고 이리는 사로잡힌다.9장) 선한 목자와 베드로전서 5:1-4베드로전서는 베드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베드로전서 2:13-17에는 “모든 인간의 제도”에 복종함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 대상에는 지방 총독들과 황제가 포함된다.목자와 양에 대한 언급은 베드로전서 2:25에서 출발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으니나.”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의 수난의 목격자였으며, 영광에 참여한 자라고 말한다. 즉 베드로는 예수가 당한 거절의 고통을 보았고, 예수가 그 거절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목격했던 것이다.목자는 반드시 양 떼를 인도해야 하는데 이때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자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양 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을 때, 이 일은 기쁜 소명이 된다.목자들은 자신의 양 떼를 열심을 다해 열정적으로 인도해야 한다. 베드로는 범사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양 떼의 목자들이 자신과 같은 열정으로 목양하는 일에 매진하길 원했다. 복음을 위한 열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보상은 사소한 문제였다.베드로전서 5:1-4까지 천 년에 걸쳐 이어져온, 선한 목자에 대한 오랜 전통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베드로전서 본문과 연관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1. 선한 목자와 그의 정체성, 베드로전서 본문의 상당 부분은 양 떼를 돌보는 “장로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베드로는 임무를 공유하는 틀 안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동료장로”다2. 잃어버린 양/잃어버린 양 떼, 잃어버린 양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을 한 부적절한 목자들이 다루어진다.3. 대적들, 대적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교회를 핍박하는 그리스도의 원수들, 머저 베드로전서 5:1-4에는 원수들의 이름이 없다. 아마도 상황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억지로 목양하는 악한 목자들, 그들은 하늘의 목자장의 모습을 따르지 않는다.4. 선한 목자와 선한 주인, 선한 목자는 이상적 모
    독후감/창작| 2021.10.27| 6페이지| 3,000원| 조회(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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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에게 하고픈 말 요약서평 저자류호준
    -교회에게 하고픈 말 요약&서평-저자: 류호준1부 교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성경은 우리가 지나가야 할 시대를 거칠고 사납고 무섭고 두려운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고 단정 짓지 마십시오. 오히려 교묘하게 우리의 영혼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이는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문화는 자연스레 자기중심적 종교를 생산합니다. 오직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시대정신은 종교와 신앙의 성격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이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 신앙은 자연스레 자기 연민 주의에 빠집니다. 한국 교회는 목사들부터 진실 말하기에 올인해야 합니다. 헛된 말, 빈말, 허풍 떠는 말, 과시적인 말, 믿을 수 없는 말, 신뢰할 수 없는 말을 멈추어야 합니다.예수님은 사람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궁극적인 불출성과 어리석음이라고 웅변적으로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과거를 보지 마십시오. 교회는 결코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역사와 전통은 참된 교회의 본질과 임무를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2부 성경은 지금도 교회를 말한다성경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그들의 영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만이 각종 분쟁과 다툼과 싸움으로 일그러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한국 교회가 온전한 회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서글픈 현상은, 성경에 무지한 교인들과 성경을 가벼이 여기는 교인들이 교회 안에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와 무시, 성경적 원리보단 전통적 습관과 관행을 우선하는 악습을 과감히 끊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감상주의적 복음주의자들로 변해 가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십계명’ 은 더 이상 매력을 주지 못하는듯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삶이 균현 있고 질서 있으며, 조화롭게 운행되기를 원합니다. 수많은 위험과 유혹의 순간들로부터 보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유혹의 세상,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세상, 생명이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세상, 그곳은 적대적 세계이기도 합니다.한국 교회는 교회와 교단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헛된 명예와 어두운 돈에 대한 욕심과 개인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교단의 회복을 위해서 일할 일꾼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마음가짐부터 바꾸어 세속적인 가치관에 협업하는 현행 제도를 개혁하고, 사회적으로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우리는 다시금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마음에 새로이 새기고 주어진 삶을 살아 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에 따르면, 교회가 진정으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일에 전심해야 하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구원을 절실하게 간구해야 하고, 셋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뤄지는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설예전을 회복해야 하고, 넷째, 교회 공동체가 올바로 운영되어야 합니다.3부 우리 교회는 안녕한가예로부터 종교와 비즈니스는 요상하게 얽혀 왔습니다. 사람 속에 내재한 종교심을 조작해 돈벌이하는 작태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어느 종교에서도 발견됩니다.전체 교회 가운데 80퍼센트에 육박하는 교회가 미자립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쪽에는 우월감이, 다른 한쪽에는 열등감이 지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당수 목회자들의 마음은 마른 땅처럼 굳어지며 자존감을 잃고 있습니다. 누가 교인들을 소비자로 만들었을까요? 첫째, 시대사조를 들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 시장 경제론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돈이 이끌어 가는 시대, 경쟁을 촉구하는 세상, 성공지형적 시대입니다. 둘째,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이 세대의 정신들을 분별하지 못한 채 오히려따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무거운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 평신도 그리스도인들 역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왜 소비자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구미에 맞는 것을 찾아 코를 땅에 박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가축으로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착하십시오.목회자에게 맡겨진 임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설교하는 일일 것입니다. 설교자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하고, 공부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야 하며, 무엇보다 규칙적으로 정교하게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순간적 느낌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마음에 와닿은 대로 이야기하는 즉흥적 설교일 수는 있어도 설교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설교가 가벼워지는 이유는 설교자가 설교 자체로부터 이완되었기 때문입니다. 못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존중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일차적으로 설교자입니다. 아마 하나님 말씀사역자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 언변이나 재능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유감없이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성경책에 대한 맹목적 태도를 지닌 성경주의자가 아니라, 성경만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서경만이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밝은 빛을 비춰 주고, 성경만이 우리의 진정한 삶의 원동력이며,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믿는 종교 개혁적 신앙의 태도가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회자는 강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회중석을 존중해야 합니다.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이뤄 드리기 위해 첫 번째, ‘영성 형성’에 관심이 있는 신학도가 되어야‘영성’이라 함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특별히 두 가지 특성을 가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복종하는 삶입니다. 사역자들 가운데 신명에 복종하는 일에 관심 없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둘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항복하고 의존하는 기도의 삶입니다. 두 번째, ‘지성 형성’에 헌신하는 신학 공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성’ 이라 함은 많은 양의 신학 정보 축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 지성이란 하나님에 대해, 사람에 대해, 피조 세계에 대해 일관된 인식 체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일관된 이해를 성경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둘째로, 지성 형성에는 인간에 대한 통전적 이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사는 피조 세계에 대한 인식을 함양하는 것이 지성 형성의 한 부분입니다. 또한 목회 사역을 즐기며 비판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충격을 흡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4부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되십시오하나님의 고통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고통과 애통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은 그저 한 기독교 창시자의 출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고통과 통애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떤 종교적 이상주의자가 맞이한 비참한 죽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은 사랑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사랑은 고통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이라면,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음을 경험하셨기에, 버림받은 자들을 다시 하나님에게로 이끌어 오십니다.사도바울은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길을 뒤돌아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해 기술합니다. 그는 다가오는 자신의 종말을 모른 체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여 자신의 마지막 시간들을 재고품 목록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가졌습니다. 그동안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며, 그동안에 그가 사용했무엇이며, 이제 남아 있는 것들이 무엇이며, 남은 것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마지막을 깨끗하게 정히라 것인가 하는 성찰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볼수록 시수와 잘못, 단견과 편협, 옹종함과 편견이 얼마나 많은지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마땅히 선한 싸움을 싸워야 했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언제나 좋지 못한 싸움에 매달린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수와 잘못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신실히 대우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죽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심한 구토를 수반하고 정신을 잃는 등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지금 한국 교회를 돌아볼 때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공교회성’에 관한 거십니다. 공적이라 함은 물론 사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일차적 뜻이 있겠지만, 긍정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의 보편적 교회를 구성하고 형성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교회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의 사적 소유물이 아닙니다. 비록 특정한 사람이 개척해서 설립했다 하더라고, 교회는 결코 그 사람의 전유물이나 소유물이 아닙니다.또한 이웃 교회들은 언제나 상업적 경쟁자일 뿐입니다. 서로 간에 힘과 세를 과시합니다. 때로 지역 교회들의 앞 다툰 공격적 전도 행위는 호객 행위로 비춰지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무한 경쟁 시대라 불리는 요즘이지만, 교회들마저 서로 간 출혈 경쟁에 돌입한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입니다. 지상의 교회들이 자기 교회에만 시선을 집중한다면 그건 이기주의적 형태일 뿐 아니라 교회의 공교회성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우리는 도시 교회든 농어촌 교회든, 육지 교회든 섬 교회든, 대형교회든 소형 교회든, 수도권 교회든 지방 교회든, 한국 교회든 일본 교회든, 백인 교회든 흑인 교회든,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자녀 된 교회임합니다.
    독후감/창작| 2021.10.27| 5페이지| 3,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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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소그룹 성경공부 교재 만들기 (누가복음4.1.13)
    주제우리 삶에 고난or시험이 올 때에 우리의 선택은?본문누가복음4:1-13학습목표예수님의 받으신 고난과 시험이 오늘날 내가 받는 고난과의 연관성을 깨닫는다.학습질문당신의 고난과 시험 속에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겨내신 부분이 당신에게 본이 되었는가?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 그러한 시험을 이기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다가올 고난과 시험을 이겨나갈 수 있는 본을 보여주신다.현 시대의 크리스천의 경건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은 바로 ‘분주함’ 이다. 좀 더 잔다고 해서 무슨 해가 될까?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주님과의 경건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고 해서 나의 영적생활에 악영향을 줄까? 혹은 나는 생활 속에서 영적인 묵상을 하는가? 아니면 내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이와 같이 우리 삶속에 불쑥 찾아오는 고난과 시험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실패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고 그것을 이겨내셨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본이 되고 소망이 된다.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는 내가 약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큰 위로가 된다.오늘 성경 본문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고난과 시험을 이겨내셨는가를 나눠보고그에 따른 우리 또한 고난과 시험이 올 때 어떻게 그것들을 이겨나갈 것인지 적용해보고 결단해보기 원한다. 예수님은 승리하셨다!※ 다같이 누가복음 4장 1-13절을 읽어 봅시다.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1) 4: 1-4: 예수께서 자신의 힘이 아닌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마귀를 물리치셨다. 시험을 물리치는 것은 대부분의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대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말씀을 의지해야 된다.2) 4: 5-8: 예수님이 마귀에게 경배하지 않으셨다.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우리 속에 하나님 외 다른 것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살아갈 때 우리는 고난과 시험 속에서 자유할 수 있다.3) 4: 9-13: 마귀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십자가의 길 보다는 권력의 길을 택하도록 시험했다. 예수께서는 성경을 왜곡시키려는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셨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1.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고 시험에서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주고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2. 마귀는 우리가 가장 연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시험에 연약한 부분 그로 인하여 겪은 고난은 무엇인가요?3. 고난과 시험의 영역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4. 시험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되는 성경 구절들을 무엇이 있었나요?
    인문/어학| 2021.10.27| 3페이지| 2,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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