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듀이 사회심리학INDEX William James( 윌리엄 제임스 ) - 생애 - 이론 John Dewey( 존 듀이 ) - 생애 - 이론 참고문헌이름 : 윌리엄 제임스 출생 : 1842 년 1 월 11 일 , 미국 뉴욕 주 뉴욕 사망 날짜 / 장소 : 1910 년 8 월 26 일 , 미국 뉴햄프셔 주 초코루아 학력 : 하버드 의학대학원 (1864 년 –1869 년 ) Harvard John A. Paulson School of Engineering and Applied Sciences 영향 : 찰스 샌더스 퍼스최초 거주지 : 뉴욕 애스터 하우스 . ( 뉴욕 헤럴드의 사무실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호텔 ) 마지막 거주지 : 뉴 햄프셔 초코루아 자택 ( 산장 ) 묘지 : 매사추세츠 캠브리지 가족묘 약혼 : 1878 년 5 월 10 일 결혼 : 1878 년 : 7 월 10 일 윌리엄 제임스가족관계 : 헨리 제임스 시니어 ( 부 )(7 남 3 녀중 넷째 )( 올버니 출생 ) 메리 로버트슨 월시 ( 모 ) 윌리엄 제임스 ( 조부모 ) ( 담배 , 소금제조업 등으로 300 만달러 재산 형성 ) ( 뉴욕주 3 대 부자로 평가된다 .) 배우자 : 앨리스 기븐스 (1878~1910) 자식 : 5 남매 ( 헨리 , 가르 , 윌킨슨 , 로버트슨 , 앨리스 ) 윌리엄 제임스윌리엄 제임스의 일생 1842 1861 1864윌리엄 제임스의 일생 1865 1867 1873윌리엄 제임스의 일생 1878 1889 1910윌리엄 제임스 이론 기능주의 심리학 의식을 작은 알갱이들로 쪼갤 수 있는 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지속적인 흐름으로 봄 의식의 구조보다는 그것의 목적과 기능에 중점을 둠 제임스는 사람들의 관심이 의식의 구조 = 의식의 기능으로 옮기는 것에 큰 이바지함윌리엄 제임스 이론 구조주의 심리학 의식의 가장 작은 부분 들에 대해 알아내어 전체적인 의식의 구조를 알아내려는 심리학 분파 제임스는 이러한 구조주의 시각에 반발하여 기능주의 심리학을 발전시킴이름 : 존 듀이 출생 : 1859 년 10 월 20 일 , 미국 버몬트주 버링톤에서 출생 사망 : 1952 년 6 월 1 일 뉴욕에서 사망 학력 : 1894 미시간 대학 철학교수 미네소타 대학 철학교수 1899 미국심리학회의 회장 당선 1915 미국대학교수협의회 제 1 대회장 당선 1930 컬럼비아대학 명예교수최초 거주지 : 버몬트주 버링톤에서 셋째로 태어남 가족관계 : 아치볼드 스프레이그 듀이 ( 부 ) 루사이너 아르터미지어 리치 듀이 ( 모 ) 배우자 : 알리이스 칩부만 형제 : 4 남 첫째와 둘째는 어린나이에 사망 찰스 미나 ( 동생 ) 존 듀이존 듀이의 일생 1880존 듀이의 일생 1882 1886존 듀이의 일생 1899 1915존 듀이 직업 교육학자 전국 교육협회 명예회장 교수 철학자 심리학자존 듀이 이론 도구주의 도구주의란 지식은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도구일 때만 가치가 있으며 이처럼 지식을 그 자체로 추구하지 않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견해를 말한다 .존 듀이 이론 실용주의 실용주의는 모든 가치를 유용성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가치를 바람직한 가치로 여긴다 .참고 문헌 양선이 . 2007. 윌리엄 제임스의 감정이론과 지향성의 문제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안광복 (2017). 처음읽는서양철학사 . 서울 : 어크로스 . 연세대학교 교육철학연구회 (2000). 위대한 교육 사상가들 Ⅳ . 서울 : 교육과학사 . 함승애 (2017). 대인관계심리학 . 파주 : 양서원 . 김성숙 , 이귀학 ( 역 ) (2008). 민주주의와 교육 철학의 개조 . 서울 : 동서문화사 . Noel Sheehy. 2009. 50 인의 심리학 거장들 . 학지사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성장과 발달학자들의 생애와 이론(프로이드, 에릭슨, 피아제, 보울비)제1장 프로이드1.프로이드의 생애2.프로이드의 이론제2장 에릭슨1.에릭슨의 생애2.에릭슨의 이론제3장 피아제1.피아제의 생애2.피아제의 이론제4장 보울비1.보울비의 생애2.보울비의 이론참고문헌제 1장 : 지그문트 프로이트출생 - 사망1856.05.06. ~ 1939.09.23.1. 생애프로이드는 1856년에 현재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인 모라비아의 프라이버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명석함을 인정하여 프로이드에게만 기름남포를 사주고 가족들은 촛불로 지낼 만큼 그의 학업을 격려해 주었다. 프로이드는 대학에 가서 의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26세부터 35세경 까지 신경학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잠시 코카인에 흥미를 느껴 조사차 샤르코의 실험실에 갔다. 그때 샤르코는 히스테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프로이드는 샤르코의 최면술에서 힌트를 얻어, 나중에 자유상상법을 통해서 히스테리 환자의 억압된 감정과 생각을 의식으로 떠올리도록 하는 방안을 창안했다. 그 결과, 프로이드는 환자의 내부 갈등의 원인은 성적 욕망의 억압임을 감지하고서, 브로이어와 함께 를 출판하였다. 그 후 그는 연구를 거듭하여 을 포함한 많은 저작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독특한 유아 성욕에 관한 이론으로 인하여 격렬한 비판을받으면서학문적으로나사회적으로고립되어있었다.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젊은 학자들이 있어 이들과 토론회를 가졌었는데, 이 토론회에는 아들러와 융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의견을 달리하는 바 있어, 나중에는 프로이드를 떠나 그들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로이드 자신은 죽 을 때까지 그의 이론을 계속 발전시켰다.2. 프로이드의 발달단계 이론 5단계1. 구강기출생후 1세까지이다. 유아는 구강(입, 혀, 입술 등)을 통해서 젖을 빨아 먹는 데에서 성적 욕구를 충족하며 자신에게 만족과 쾌감을 주는 인물이나 대상에게 애착을 가지게 된다. 프로이드는 각 단계마다 유아가 추구하는 만족을 충분히 얻을 수스라고 칭했으며 여아는 남근선망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아의 경우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한 동기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프로이드 역시 고민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고착하게 되면 과시적이고 거만하고 공격적인 성격특성이 형성된다.4. 잠복기6세에서 11세 사이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결과정에서 아동은 성적인 것을 싫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 시기에 아동은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동성의 또래집단을 형성한다. 인지적 발달이 활발한 이 시기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을 중심으로 에너지가 투여된다.5. 생식기사춘기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성적 에너지는 다시 분출되어 이전 시기에 억압되었던 충동이 무의식에서 의식 세계로 뚫고 나온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이 시기는 이성 애착 시기이다. 잠복기의 성적 거부상태에서 이성애적 행위의 추구로 이행하는 것은 이성교제에 대해 도덕적 장벽이 높은 사회에서는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프로이드의 이론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지나치게 강조했으며, 인간을 성욕과 과거 경험의 지배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았으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문화적 보편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억압된 욕망들이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투사되어 나타난다는 점은 인정받고 있다.제 2장 : 에릭 에릭슨출생 - 사망1902. 6. 15. ~ 1994. 5. 12.1. 생애에릭슨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에릭슨은 출생 전부터 부모가 헤어져 있던 상태였으며, 덴마크 출신인 어머니가 독일에 와서 에릭슨을 낳았다. 에릭슨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사망했고, 젊은 유대 여성이었던 어머니 혼자 에릭슨을 키우다가 에릭슨이 3세 때 유대인 소아과 의사와 재혼하였다. 에릭슨은 어릴 적부터 뛰어난 학생이었고, 고대역사와 미술을 좋아하였다. 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바로 하지 않고 유럽여행을 했는데, 여행 중 1927년에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에릭슨에게 아동분석가가 될 것을 제안하였고, 에릭다루는 방식에 일관성이 없게 되면 아기는 불신감을 가지게 된다.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생의 후기에 맺게 되는 모든 사회관계에서의 성공적인 적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에릭슨이 신뢰감만을 강조하고 불신감의 효용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인간의 참된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신감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성격발달을 위해서는 불신감보다 기본적 신뢰감을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2. 자율성 대 의혹(유아기, 2-3세)약 1년 이후부터 3세까지를 말하는데, 여러 개의 상반되는 충동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을 하고자 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고자 한다. 즉 자율성을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유아는 근육발달로 인하여 대소변의 통제가 가능하게 되며, 자기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부터 자기 주위를 혼자서 열심히 탐색하게 되고, 음식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먹으려고 한다. 이러한 자율성은 그들의 언어에서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 등의 말을 자주 반복하여 사용하며, 특히 (안 해 !)라는 말을 씀으로써 자기주장을 표현한다. 이와 같이, 유아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려고 하게 되면, 사회는 부모를 통하여, 유아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아가 사회의 기대나 압력을 알게 된다. 만일 이때 용변훈련에서 실수를 한다든지, 걷기, 뛰기 같은 신체적 통제나 자조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사회적 기대에 적합한 행동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수치심과 회의감을 갖게 된다.3. 주도성 대 죄책감(유치기, 3-6세)프로이드의 남근기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성인의 활동에 열정을 보이고 성인의 일에서 자기의 능력을 평가해 보려는 시기이다. 그의 행동은 목표 지향적이 되고 경쟁적으로 되는데, 이때 어린이의 행동에는 상상적인 측면도 포함된다. 이시할 때 발달되기 쉽다.5. 정체감 대 정체감 혼미(청소년기, 11-18세)급격한 신체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적 압력과 요구에 부딪치게 되므로 이시기의 청소년은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지 몰라서 당황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전 단계까지는 회의 없이 받아들였던 자기존재에 대해 새로운 경험과 탐색이 시작된다. 청소년기의 중심과제를 자아 정체감의 확립이라고 했다. 자아정체감이란 자기 동일성에 대한 자각인 동시에, 자기의 위치, 능력, 역할 및 책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이 시기의 청년들은 자기 자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그 해답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기 때문엔 고민하고 방황한다. 방황이 길어질 때 정체감의 혼미가 온다. 자아 정체감 획득을 위해 동료 집단에서 동일시 대상을 찾거나 혹은 존경하는 위인이나 영웅에게서 동일시의 대상을 찾으려 애쓴다. 그리고 자신을 시험해 보기 위해 여러 클럽에 가입해 보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 보기도 한다.6. 친밀성 대 고립감(청년기, 18-30)청소년기에는 주로 관심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었으나, 성인초기에 이르게 되면 직업을 선택해야 하고 배우자를 찾아야 하므로, 이 시기의 사람들은 배우자인 상대방 속에서 공유적 정체감을 찾으려 든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친밀성을 이루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에릭슨에 의하면, 청년기에 긍정적인 정체감을 확립한 사람만이 진정한 친밀성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정체감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친밀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고립하여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된다. 적성과 충실이 알맞게 어우러진 곳에서 성인기 초기 가치인 사랑이 자라난다.7. 생산성 대 침체감(장년기, 30-65)두 사람간의 친밀성이 확립되고 나면, 그들의 관심은 두 사람만의 관계를 넘어서 그 밖의 사람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가정적으로는 자녀를 낳아 키우고 교육하게 되며, 사회적으로는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데에가졌는데, 10세 때 백색종 참새 관찰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고, 연체동물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여 15세 때에는 이미 유럽 동물학자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뇌샤텔대학교에서 동물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18년에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 생물학 지식과 인식론에 대한 흥미가 결합되어 심리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취리히로 가서 융과 블로일러의 지도 아래 공부한 다음, 1919년에 파리의 소르본대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하였다. 파리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해력 검사를 고안하여 실시했으며, 학생들이 범하는 실수의 유형에 관심을 가져 아이들의 추론과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1921년에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에 스위스로 돌아가 제네바의 루소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1926년부터 1927년까지는 뇌샤텔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29년에는 제네바대학교의 아동심리학 교수가 되어 죽을 때까지 이 대학에서 연구를 하였다. 1955년 그는 제네바에 유전 인식론 국제연구소를 세우고 소장이 되었다.2. 피아제의 인지발달 4단계1. 감각운동기이시기는 출생해서 약 2세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의 영아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사용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기 위해 운동능력을 사용하고자 애쓴다. 그 결과 반사활동에서부터 제법 잘 조직된 활동을 할 수 있기까지 간단한 지각능력이나 운동능력이 이 시기에 발달한다. 이 시기의 주요 발달과업으로서는 주변의 여러 대상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빛과 소리 자극에 반응하기, 흥미 있는 일을 계속하기, 조작을 통한 물체의 속성 알기, 대상 영속성의 개념 획득하기 등을 들 수 있다.2. 전조작기이 시기는 2-7세까지의 연령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피아제는 이를 전개념기와 직관적 사고기의 두 소단계로 다시 구분하고 있다. 전개념기는 2-4세까지로 보고 있으며, 직관적 사고기는 4-7세까지로 보고 있다. 2-4세에 해당하는 전개념기의 유아는 개념발달을 위해서 다양한 )
듀이, 제임스 생애와 철학-사회 심리학-제1장 듀이1.듀이의 생애 관계----------------------------------------4P2.듀이의 교육사상1)듀이의 교육사상을 지탱하는 그의 철학적 주장 또는 원리----------9P2)듀이의 교육에 대한 개념----------------------------------10P3)듀이가 현대 교육에 주는 의미------------------------------11P제2장 제임스1.윌리엄 제임스의 생애-------------------------------------12P2.초기생애와 교육-----------------------------------------13P3.심리학에 대한 관심---------------------------------------13P4.제임스의 의무주의----------------------------------------14P5.영향 및 비판.-------------------------------------------15P참고문헌-------------------------------------------------16PⅠ.듀이1.듀이의 생애 개관듀이(John Dewey, 1859∼1952)는 20세기에 있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약 50년간에 걸쳐 위대한 교사였으며, 학자인 동시에 또한 생산적인 저술가였다. 그의 중심적인 분야로는 철학, 교육학, 심리학 이외에도 정치, 법률, 역사, 종교,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세계의 새로운 사상적 개조자였다.철학자로서의 그는 실용성을 표방한 기능주의와 실천을 수반하는 실행가능성과 구체적인 활동과 연결되는 행동주의를 옹호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론과 실제를 결합하고 학문적인 활동 이외에도 실제 생활을 통해 사회개조를 위한 정치문제, 노동문제, 국제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조직체에 직접 참가하였다. 그는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중엽에 걸쳐 약 한 세기를 살면서 사상적으로 실천적으로 미국사회 500불의 돈을 숙모로부터 차용하여 1882년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대학원 생활을 통해 철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학문적인 자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듀이는 새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것이 그의 철학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가진다고 생각했다.듀이는 1884년 3월 11일 형이상학적 클럽 회합에서 ‘새심리학’(New Psychology)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듀이는 약 2년간에 걸친 존스 하프킨스 대학원의 연구생활을 통해서 그의 지적 발전에 많은 진전을 보았다. 미시건 대학(University of Michigan)의 모리스(George S. Morris)교수는 형이상학 클럽에서 듀이가 발표한 논문을 통해 그의 학문적인 자질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듀이로 하여금 1882~83학년도 2학기에 자기대학 학부학생들에게 주 2회의 철학사 과목을 강의해주도록 지명하였다.수강생 수는 불과 7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의 대학교단 생활을 첫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듀이에게 있어서는 매우 의미 있고 명예로운 것이었다. 또한 이것이 듀이와 모리스 교수 사이의 친밀한 인간관게를 형성하는데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듀이는 그의 자녀 6명 중 한 아이의 이름을 모리스 교수의 이름을 따라 모리스라고 명명했다.듀이는 존스 하프킨스 대학원에서 그의 박사학위를 2년 안에 빨리 끝내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경제적인 뒷받침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철학교수 자리에 대한 열망과 교수직에 빨리 정착하려는 욕망에서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출판된 일이 없고 발견되지도 않았다.듀이는 1882년 23세로 대학원 교육을 시작하여 서둘러 25세가 되는 1884년에 존스 하프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학생 신분을 마감하게 된다.듀이는 1884년 9월 미시건 대학에 철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30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직을 은퇴할 때까지 무려 46년간이란 거의 반세기에 걸쳐 대학교단을 떠나지 않았다. 교수와 연구뿐만이 아니고 국내·외적으로 많은 여행을 하면서 학술강 그러나 그 후 광범하게 교육학 관련 강의를 개설했다.듀이는 교육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했다. 는 듀이가 그의 시카고 대학의 실험학교에서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행한 세 강의가 이 책의 첫 부분을 이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듀이 실험학교가 너무 급진적이 되어 혹시나 교육의 원리를 저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듀이는 이 책을 통해 이와 같은 의구심을 해소하고 아동에게 적합한 새로운 교육을 위해 교육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 것이다.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 때는 비판적인 경계의 소리도 있었으나, 교육적인 지도자, 교사, 대중이 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10년간에 7판이 나오게 되었다.듀이는 미시건 대학에서 약 10년간의 교수생활을 통해서 학문적으로는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못했다. 1900년까지 듀이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고 급한 연락이 필요할 때는 이웃집 약방의 신세를 졌다고 한다. 장남 프레데릭이 자전거를 사주기를 원했을 대, 그 청을 들어주기 위해서 전 가족이 참으로 긴 시간과 힘든 토론을 거쳐 결정하기까지에는 전 가족을 불안에 빠뜨리게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듀이는 대가족을 거느린 가장이었다. 6명의 자녀 중 사망한 2자녀 대신에 3명의 양자를 두었다. 이들 대식구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용이하지 않았다.그러나 시카고 대학 교수시절,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그는 대접을 받았다. 총장은 듀이에게 4분기 학기제의 분기에 해당하는 3개월 특별휴가를 허락하고 안하면 3기분에 해당하는 9개월간 계속해서 대학을 떠날 수 있는 휴가제를 약속하였다.경제적으로 듀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1902년 파커가 사망하자 듀이는 사범대학의 학장으로서 보직수당 2,500불과 월급 5,000불을 합하여 7,500불의 보수를 받게 되었다. 그것에다가 부인이 1903년 병합된 듀이와 파커학교의 교장이 됨으로 2,500불의 보수를 받게 되었다. 듀이 가족의 수입은 10,00불로 올라갔다. 듀이 내외는 대가족이 살기에 알맞철학적 주장 또는 원리1) 경험듀이는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경험’에 가치를 둔다. 듀이가 사상적으로 터하고 있는 프래그 마티즘과 관련하여 생각해본다.특징으로서는 내용보다는 방법(문제해결)에 강조를 둔다. 방법적으로 회의하고, 탐구하고, 실험하고, 시험하고 가설을 세운다. 철학은 직접적 해결이 아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으로 도구주의란 이름을 붙인다. 즉, 듀이의 철학은 도구주의이고 이는 과학적 방법이다. 결과보다도 과정, 동적인 성격, 선천적이기보다는 후천적이고 가설적이고 생성적이며 실증적이다. 따라서 어떤 관념의 진리여부는 실제 이용성, 작용가능성을 강조한다.경험은 의식상태 보다는 행동, 기능, 습관, 적응을 의미한다. 즉, 유기체와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듀이는 경험과 자연의 상호작용에서 있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자연을 강조하고 있다. 잘 이용된 경험은 자연에서 인간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2) 계속일원화듀이는 ‘이원론’을 배격하고 ‘계속일원화’의 원리를 주장한다.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반대계기의 계속성을 강조했는데, 예컨대 무한과 유한, 신성과 인성, 영혼과 육체,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 이론과 실천, 여가와 노동 사이의 연속성을 인정하고 대립되는 양대 계기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즉, 이원론의 배격은 조화의 원리, 균형의 원리를 수반한다. 관념과 실제적 결과 사이에 연속성을 인정하고 양극화를 피한다.이러한 계속일원화의 원리를 통해 조화와 균형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정의의 실현이나 갈등하는 가치에 있어서 그 해결책은 계속일원화를 통한 조화의 덕과 균형의 원리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물론 균형이나 조화의 문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실천적으로는 결코 용이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단순한 사회적인 제도나 정치적인 형태로서만이 아닌 삶에 대한 태도나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요청되고 이를 위한 교육이 필요해진다.3) 변화듀이의 철학에서는 ‘변화’의 개념이 가치관 형성이나 진리관에서 으로 효율만을 쫓아가고 있다. 학교는 아동과 학생들이 경쟁하는 장소이고 선별되는 장소이다.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학교경험이 기쁨과 즐거움의 추억으로 남을 것인지 우리들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인간성을 존중하여 인간주의 교육시대로 만들고 인간성을 심화한 개성존중과 자기 가치관을 지향하게 하는데 듀이철학에서 시사 받은 바가 크다. 민주사회에서는 정치적 귀족제도만 타파할 뿐 아니라 자식과 사상의 귀족제도도 타파되어야 한다는 것이 듀이의 소신이다.학교와 학원은 만원인데 아동과 학생과 인간이 상실된 현대 한국 교육에 듀이의 아동중심 인간존중 교육과 민주주의 교육사상은 교육의 인간화,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된다.Ⅱ.윌리엄 제임스1. 윌리엄 제임스의 생애제임스는 매우 유복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유명한 소설가인 헨리 제임스(Henry James, Jr.)의 형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의 할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 덕택으로 윌리엄의 아버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Sr.)는 평생토록 특별한 생업에 종사하지 않은 채 학구적이고 종교적으로 충실한 생활을 하며 자녀들에게 독특한 교육방식을 적용하였다.제임스의 아버지는 신비주의자인 스웨덴보리의 영향을 깊이 받은 문필가이기도 하였는데, 자녀들이 독단에 빠지지 않고 충분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집안에서도 토론을 즐겨하였고, 통상적인 교육 제도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소질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받도록 배려하였다. 헨리 제임스가 교분을 맺은 사람들 가운데는 홈스(Oliver Wendell Holmes, Sr.)나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같은 인사들이 있었는데, 윌리엄은 자기 아버지나 부친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많은 지적 성장을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제임스는 주로 집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공식적인 기관에서의 교육은 오히려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1855년부터 1860년까지 제임스는 외국의 문물을읽었다.
간호윤리학과 전문직언터쳐블 1%의 우정몇 년 전 우연히 보고 내가 남을 돌보는 사람이 돼야지! 라는 생각하게 해준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 영화를 본지 몇 년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 했으므로 다시금 영화를 보게 됐다.먼저 이 영화에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명은 상위 1%의 백만장자 필립과 하위 1%의 흑인 드리스이다. 필립은 백만장자답게 클래식을 들으며 미술품을 감상하는 상류층의 삶을 살아간다. 반면 드리스는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흑인으로 가족들이 빈민가에서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하지만 필립은 경추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되어 보호자 없이는 일어나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다. 3곳에서 거절 사인을 받으면 보조금이 나오는 드리스는 그런 필립의 집에 우연히 면접을 보게 됐고, 대충하고 탈락 사인을 받으려하는 드리스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필립이 드리스를 채용함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황스러운 제안이지만, 자신의 로망과 같은 욕실이 딸려있는 개인 방을 보게 된 드리스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필립의 목욕, 마사지, 식사 등 일상생활을 전반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한다. 이 둘은 처음부터 너무 다른 성격과 삶의 양식에 계속해서 부딪히게 되지만, 그 과정 가운데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드리스의 행동과 범죄자라는 편견으로 그를 꺼려하고 멀리하지만 필립은 그를 인간으로, 때로는 친구로 대접을한다. 그런 필립의 모습에 드리스도 사지가 마비된 필립을 거리낌 없이 일반인과 같이 대한다.여기서 드리스가 필립을 장애인으로 대하기보다는 장난도 치고, 그가 우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드리스는 환자를 유쾌하게 만들고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오히려 건강을 증진 시키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존재론적 특성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환자의 경험에 대한 공감,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도덕적 이상 또한 갖추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과연 드리스처럼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또는 단순히 환자로 생각하지 않고 케어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배움이 부족한 드리스는 나보다 더욱 덕 윤리를 지닌 사람이었고, 그 윤리를 행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영화내용 중 필립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편지로만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필립을 위해 드리스가 그녀와 통화를 하게해주거나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결과적으로 드리스의 행동 덕분에 필립은 더욱 깊이 그녀를 알 수 있었고,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드리스는 그 과정에서 필립의 자율성과 존중을 무시하였으며 개인이 스스로 선택을 할 기회를 주지 않기도 했다. 그로인해 필립은 상처를 받기도 하였으며, 우울을 앓게 되기도 했다. 물론 드리스가 전문적으로 배운 간호인은 아니지만 간호를 한다는 건 환자를 건강과 환경을 가장 우선 시 해야 하는 부분인데 드리스는 이 과정을 간과했다. 나는 앞으로 간호사가 되어 환자를 대할 때 환자 본인과 보호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하여 환자의 입장에서 간호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언터쳐블 1%의 우정을 보면서 크게 느끼게 된 또 한 가지는 바로 친구사이와 같은 환자와 간호인의 관계였다. 드리스는 필립이 남들과 다른 장애가 있다거나 상류층 사회에서의 격식이나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랩을 들려준다거나,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등 조금은 독특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경험과 추억들을 쌓으면서 더 좋은 친구사이가 된다. 이런 둘의 관계를 보고 나는 나 스스로가 그런 한계를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 또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대상이고 다양한 사고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또한 영화에서 필립은 다른 자격증이나 경험이 많은, 소위 스펙이 높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드리스를 채용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드리스의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둔 후 전문적인 간호인이 왔음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태가 악화 됐다. 이 부분을 보고 나는 어쩌면 의료인이기에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착각하고 있는 것들이 환자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든 건 아닌 건가라는 생각 했다. 영화 속 다른 사람들은 필립에게 간호를 제공할 때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간호를 제공해야하는 대상. 환자로 간주하고 간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리스는 필립을 편견 없이 하나의 인격적인 사람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부분이 미숙한 간호지만 필립으로 하여금 드리스의 매력을 갖게 하는 부분이었다. 환자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해준다기보다는 그들을 도와 그들이 자신의 삶을 더 높은 수준으로 살 수 있도록 협력해 주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그들을 그저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보고 소통하고 교제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서로를 통해 서로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간호사와 환자간의 라포 형성이 더욱 원활하게 될 것이다. 더 가까이, 더 세밀하게 할 수 있도록 다짐하고 임해야 겠다.영화의 절정부분에 나오는 장면중 하나가 있다. 새벽에 필립이 발작을 하며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부분이다. 이때 드리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물수건으로 닦아주거나 바람을 쐬고 싶다는 필립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새벽 산책을 시켜주고, 통증 경감을 위해 담배를 주기도 한다. 또한 진지하기만 한 필립에게 끊임없이 유쾌한 에너지를 전파한다. 유머를 던지고, 모든 상황을 즐기는 드리스의 태도는 필립조차 유쾌하게 만들어 버린다.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상황에 맞게 간호를 제공하고 유머로 상황을 반전시킨다는 점이 필립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호 제공자가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대상자에게까지 그 에너지는 당연히 전파된다. 힘든 사람 옆에 이런 에너지의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필립과 같이 끝나지 않는 질병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병조차 잊게 될 것 같다. 힘이 날 것 같고, 일상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빛을 전파 해주는 간호 제공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