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R를 읽고(존월리엄스 지음)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길든 짧든 삶이란 시간이 주어지고 그 삶 안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산다. 1981년에 태어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토너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생생한 상황 묘사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 묘사는 이 소설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준다. 그리고 그 생동감은 정말 역사 속 어디에선가 스토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교수를 하며 한 평생을 산 인물이며 자신의 운명에 반항적이기 보다는 순종적으로 임하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고뇌를 안고 한 평생을 산 사람이다. 가끔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상대를 배려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놓쳐버린 가엾은 인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토너는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받아 들였으며 자신에게 찾아본 두 번의 사랑 역시 당당하게 쟁취하였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 어찌 보면 불행한 삶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스토너는 작은 시골마을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그는 아버지와 같이 평생 아무런 희망과 변화 없는 농부로 살아갈 운명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점점 더 척박해지는 땅과 그로인한 수확량 감소로 고민하던 아버지가 주변의 권유로 스토너에게 농과 대학 진학을 제안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토너는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빈자리로 인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생길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스토너는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대학 수업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농과 대학 수업에 대한 열정이나 학구열은 없었다. 단지 농과대학 4년을 통해 아버지와의 농사에 좀 더 도움이 되고자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던 그에게 커다란 변화의 순간이 찾아온다. 교양 수업으로 들었던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강의에서 그는 자신 내면에 있던 지식을 향한 열정을 발견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에게 정해져 있는 운명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다음 학기부터 그는 농과대학이 아닌 영문학 수업을 수강하게 되고 그는 교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누구나 커다란 변화는 두렵다. 스토너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열정에 귀를 기울였고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예상치 못한 아들의 결정에 잠시 당황 했었지만 결국 그의 결정을 지지해준다. 자신들에게 닥칠 힘겨움을 알고 있지만 스토너를 위해 그 고난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스토너는 더욱 열심히 학업에 매진한다. 그리고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그 대학의 강사가 된다. 아직 교수는 아니지만 그의 삶은 한번 바뀐 그 운명의 스케줄대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데이비드와 핀치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셋은 주말마다 모여 술 한 잔 기울이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다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데이비드와 핀치는 군에 입대를 하지만 스토너는 입대를 하지 않고 대학에 남아 졸업을 하게 되고 결국 교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입대했던 데이비드는 전사하고 핀치는 대학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핀치는 대학의 요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게 되고 스토너가 죽을때까지 둘은 친한 친구사이로 서로를 지켜준다. 그리고 대학 총장의 축하연회에 참석했다가 그의 아내가 되는 이디스를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한 그는 핀치에게 소개를 부탁하고 어색하고 어설픈 둘의 사랑이 시작 된다. 그리고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이디스는 애초부터 스토너와는 맞이 않는 인연이었다. 스토너가 암으로 눈을 감기 얼마전까지 이디스는 스토너를 괴롭힌다. 그 괴롭힘은 가난한 스토너를 선택한 자신에게 향하는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으며 어떻게든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픈 마지막 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분노는 이디스와 스토너의 딸인 그레이스에게 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디스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그레이스가 태어나고 한참동안 그녀의 육아는 거의 스토너의 몫이었다. 이디스는 우울과 분노에 사로잡혀 거의 제정신이 아닌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나마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부녀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고 이는 그레이스의 일탈로 이어진다. 이디스의 이상행동에도 스토너는 그녀를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부부 아닌 부부로 살아간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란 정말 쉽지 않다. 역시 동화속의 행복한 결말은 동화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중요한 결정의 기로에서 스토너는 자신이 사랑한 여자와 결혼 하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그녀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 나가는 것에는 실패한다. 그가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이디스를 변화 시키려고 노력했다면 이디스와 스토너 부부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행복한 결말까지는 아니라도 좀 덜 불행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은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고 사랑에 대한 자세를 바꾸어 놓는다. 중년이 된 그에게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라져버렸고 그러한 그는 사랑의 열정이 식어버린 빈껍데기만 남은 사람이 된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수업을 듣던 강사인 캐서린이 그 주인공이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으나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망설인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불륜이라는 낙인이 찍힐 그들의 관계를 사랑으로 진척시킬 용기도 없었다. 다만 서로를 원했고 대화하고 싶어 했고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깊은 사랑의 늪에 빠진다. 스토너는 이디스와의 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과 열정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절정에 달한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파국으로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까지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배려했다.이별 후 스토너는 자신의 모든 열정이 사그라진 듯 삶의 의욕을 잃고 만다. 중년이 된 그에게 캐서린과의 사랑은 사회와 가정이 휘두르는 칼날을 막아주는 유일한 도피처였으며 그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그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를 지탱하던 그 사랑이 무너지자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이들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죄였지만 그들의 사랑은 숭고했고 강열 했으며 아름다웠다.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사랑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금세 헤어지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그러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현실에 맞서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결혼은 현실이다. 이들은 현실에 충실해야 하며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한다. 그럴 수 있는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스토너가 겪게 된 불행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맡겨진 소녀(클레어 키컨)를 읽고.한 여름 밤의 꿈.이 소설을 읽고 가장 먼저 떠 오른 단어이다.2023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가 어떠한 현실에 처해 있으며 우리의 경제 수준과 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TV나 인터넷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하지만 1981년을 살고 있는 주인공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행복함을 가진 가정에서 성장하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소녀에게 그 환경이 세상의 전부였던 것이다. 이런 소녀에게 다정하고 어느 정도 부유한 친척부부와 함께한 몇 달의 시간은 정말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했을 것이며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는 꿈이었을 것이다.소설은 주인공인 소녀가 친척집에 맡겨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친척집으로 향한다. 소녀가 친척집에 맡겨지는 것은 어머니의 다섯 번째 출산이 코앞에 다가 왔으며 많은 형제들을 모두 관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녀는 먼 친척집에 맡겨지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달콤한 경험을 한다.친척집은 소녀의 집과는 여러 가지가 달랐다. 원래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소녀의 부모는 네명의 아이를 챙겨야 했기에 항상 지쳐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소녀의 어머니는 다섯 번째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소녀의 부모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애정이 소녀에게 전해질정도로 다정하지 않았다. 그러한 것이 일상이었던 소녀는 친척집에서의 처음 잠을 자게 된 날 자면서 침대에 소변 실수를 한다. 하지만 친척부부는 소녀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그냥 방이 원래 축축하고 습하다며 소녀를 나무라기는커녕 그런 방에서 재워 미안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소녀는 처음 그러한 배려를 받았을 것이다. 그 일로 소녀는 이 친척부부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친척 아저씨는 소녀에게 매일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고 그 시간을 재면서 소녀와 함께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한 자상함과 관심이 처음이었기에 소녀는 그 시간을 너무도 소중해한다. 그러다 마을에 장례식이 있어 소녀와 친척부부는 그곳에 참석한다. 그 장례식에서 소녀는 친척집 부부에게 아들이 있었으며 불의의 사고로 죽었음을 알게 된다. 친척부부는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행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소녀를 맡게 되고 그 소녀에게서 위안과 행복을 얻었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것에도 비견할 수 없이 큰일이다. 삶의 행복을 통째로 앗아갈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슬픔의 구멍을 메우는 것은 다른 아이 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친척부부에게 소녀는 그러한 의미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그 소중함을 알았기에 소녀에게 좀 더 자상하게 대하였을 것이고 소녀에게 더욱 애정을 쏟았을 것이다. 장례식을 다녀온 후 소녀는 친척부부에게 제대로 대답하는 법을 배우고 책 읽는 법도 배우며 따뜻한 여름을 보내게 된다. 그 당시 사회는 단식 투쟁을 하다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혼란했으며 이러한 혼란이 TV를 통해 전해진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친척부부와의 시간이 그러한 사회적 상황과는 반대로 너무도 평온하다. 그 친척부부의 집은 마치 방어막에 둘러싸인 것처럼 모든 위협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듯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가정은 그러해야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안전하고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러한 따뜻함과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여 올바른 사회를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정을 친척부부는 이루었던 것이고 소녀의 원래 가정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지금 한 경험이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아마도 소녀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여름날 몇 달의 그 경험만으로도 말이다.결국 운명의 시간이 찾아온다. 소녀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아버지는 소녀의 어머니는 출산을 하였고 소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따뜻하고 행복한 친척집을 뒤로 하고 다시 가난하고 삭막한 가정으로 말이다. 소녀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친척부부에게 이야기한다. 이것이 소녀의 진심이었을까? 소녀는 정말로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것 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사회가 소녀에게 그러한 생각을 강요한 것일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사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것이다. 소녀는 우물에 물을 뜨러 간다. 그리고 우물에서 물을 뜨다가 자신과 같이 생긴 손이 자신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우물에 빠진다. 소녀가 우물에 빠진 것은 실수 일 수도 있으나 진짜 이유는 소녀가 집에 가기 싫어하는 무의식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에 젖은 소녀를 보고 친척부부는 걱정을 하며 며칠 더 집에 머물게 한다. 소녀는 그렇게 며칠 더 친척집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뗀다. 소녀의 원래 집으로 가는 길에 소녀는 아버지가 카드게임으로 붉은 암소를 잃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소녀는 자신이 지금 그런 아버지에게 가고 있는 중이며 제발 그런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보내지 말라는 것처럼 말이다. 잠시 후 소녀와 친척부부가 탄 자동차는 집에 도착하고 소녀는 집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간단한 대화가 오고간 후 친척부부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순간, 소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며 문을 열고 자동차를 타고 가는 친척부부에게 달려간다. 이를 본 친척부부 역시 차에서 내려 소녀를 맞이한다. 소녀는 친척아저씨의 품에 안겨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뒤 아저씨의 품에 안긴 소녀는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아빠”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난다. 소녀의 마지막 말인 아빠는 어쩌면 자신의 무뚝뚝한 자신의 아빠가 아닌 친척 아저씨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부모 관계는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만 꼭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더라도 혈연 그 이상의 친밀감을 쌓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타임머신(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를 읽고타임머신.시간을 여행하는 기계를 말한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 영화, 만화등에서 많이 다루었던 소재이다. 이 책에 흥미가 일어 읽게 되었던 것은 바로 지은이인 허버트 조지 웰스라는 작가가 존재하였던 시간 때문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존재 하였었고 그때 이 소설을 집필하였다. “과연 100년 전에 존재하였던 사람은 어떠한 모습의 미래를 상상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이야기는 시간여행자와 그의 친구들의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시간 여행자가 자신이 만든 발명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 발명품이 바로 타임머신이다. 3차원과 4차원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시간을 여행 할 수 있다는 자신의 가설을 주장하며 이 기계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여행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의 친구들은 코웃음을 칠 뿐 믿어주지 않는다. 사실 시간 여행자가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던 것은 사람이 여행 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닌 시험용 모델정도 되는 기계이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그 작은 타임머신을 작동 시켜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게 만든다. 친구들은 놀랐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러한 반응을 미리 예상한 듯 시간여행자는 며칠 뒤 사람이 탈 수 있는 완성된 타임머신을 보여주기로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시간 여행자는 약속시간이 지나 이상한 몰골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타임머신을 통해 먼 미래에 다녀왔다고 말하며 802701년의 미래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그는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나고 그의 친구들은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며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작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가 그린 82701년의 미래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했을 그 당시의 사회상에 의해 그는 미래의 인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먼 미래에는 자본가는 지상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을 해결하고 안락하게 살아가고 노동자는 땅 밑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살게 된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인류는 각자 그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지상에서의 인류인 엘로이족은 더 이상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이 사라지자 신체와 정신 모두 나약해진다. 풍족하고 안락한 환경 속에서 인류는 더 이상 고민하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된 인간은 거의 퇴보라고 할 정도로 단순해져버린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문명이 발달하며 생긴 그 어떠한 것도 소유하거나 이용하고 있지 않았으며 자연 그대로의 환경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지상에서 사는 엘로이족이 사는 환경은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반면 지하에서 사는 노동자들은 몰록족이라고 하는 인류이다. 이들은 과거 심각한 빈부격차로 인해 노동으로 내 몰렸고 그들을 지상이 아닌 지하에서 일을 하며 엘로이족을 위해 살아간다. 그들 역시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생존을 위한 기본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고 그들은 어둠에 갇혀 식량이 부족한 상태로 빛마저 잃고 살아가게 된다. 지상의 환경과는 비교도 안 될 가혹한 환경에 버려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진화를 거듭하였고 약한 엘로이족과는 반대로 강인한 신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빛을 잃어 버린 탓에 눈이 퇴화하였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을 한 채 살아간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미래는 완벽한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식량 사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지자 사냥하기 쉬운 지상의 엘로이족을 사냥하게 된다. 그래서 어두운 밤은 엘로이족들에게는 공포의 시간이며 엘로이족이 어둠을 무서워하게 된다. 오랜 시간을 통해 두 인류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진화 혹은 퇴보를 하였다고 해도 인류가 인류를 잡아먹는 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한 몰록족이 엘로이족을 인간이 가축을 사육하듯 지상에서 살게 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잡아먹는 것은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인류사에서 식인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류는 환경이 극악으로 치달을 경우에 한하여 식인을 행하였었다. 주로 전쟁이나 극심한 가난이 닥칠 경우 먹을 것이 없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식인을 하였었다. 즉, 인간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충족 될 때나 가능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저런 암울한 미래가 닥치게 되면 인류가 소설처럼 두 종족으로 나누어지지 않아도 인간은 식인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루지(개리마커스지음)를 읽고클루지? 제목이 너무 낯설다. 그래서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클루지는 과거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심리기제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람의 인생을 방해는 과거의 유물을 뜻하는 말이었다. 언뜻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그 뜻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설마 클루지 때문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내 감정과 결정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물음을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던지는 것이 왜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인간은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진화를 거듭해 지금의 단계에 도달하였으며 몸의 구석구석 진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진화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최적화 하지 못했으며 확증 편향이나 부적절한 자기 통제, 잘못된 기억의 저장등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대에서는 문제라고 인식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인간이 생존하는데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며 그 결과로 우리가 이렇게 생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클루지이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심리기제였지만 현재에는 인간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제한을 걸고 도전을 두려워하게 하였으며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는 클루지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이 책에서는 이러한 클루지들이 지금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과 의사를 결정하는 뇌의 진화가 아직도 원시시대의 수렵 생활을 하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현재 인간의 사망의 원인중 뱀이나 사자등의 동물에 의해 죽은 인간의 수보다 자동차에 의해 사망하는 인간의 수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인간은 자동차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자동차보다는 뱀이나 위협적인 동물들에게서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과거에 위협적인 동물들이 주는 두려움이 컸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금도 자동차 보다 그런 동물들에게서 더 큰 위혐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의 뇌가 아직도 과거의 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한다.그리고 인간의 사고 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선조체계와 숙고체계가 그것이다. 선조체계는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고 과정을 말하며 이는 거의 반사작용에 가까운 의사결정 체계이다. 반면 숙고체계는 선조체계와는 달리 인간이 좀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의사결정체계이다. 과거에는 이 두가지중 숙고체계보다는 선조체계를 이용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었다. 위험한 동물과 마주쳤을 경우 숙고체계에게 의사결정을 맡겼다가는 생존의 확률이 희박해질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생존하기 위해 선조체계를 통한 의사결정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조체계보다는 숙고체계를 통한 의사 결정이 과거에 형성된 클루지를 지워버리고 합리적인 선택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아직 원시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숙고체계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클루지가 자꾸 인간을 유혹한다. 아직도 선조체계의 강한 영향력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꾸 생각해야 한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식사 후 초코 케잌이 먹고 싶다거나 카지노에 빠져 많은 돈을 탕진하게 되는 것이나 모두 이 선조체계에서 발생시킨 클루지 때문이다. 이러한 클루지들이 나타날 때마다 우린 생각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인가?“ “혹시 클루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그리고 이책은 현재 이처럼 인간에게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클루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기의 몇가지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첫째는 교육이다.교육은 이 사회를 뿌리부터 싹 갈아엎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교육의 중요함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클루지 역시 이런 교육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 성장기의 학교 교육이 이러한 클루지의 영향을 인지하고 이에 따른 교육을 한다면 클루지에 지배 당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바꾼 사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은 그러하지 못하다 암기 위주의 역사 교육, 대입 위주의 교육, 상상력과 응용력을 차단해 버리는 교육. 이런 교육들은 과거의 유물인 클루지를 더욱 강화 할 뿐이다.
인스타브레인(안데르스 한센)을 읽고나는 진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가진 것들 중 가장 빠르게 진화 한 것은 뇌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인간은 치타처럼 빠른 속도를 내지도 못하고, 북극곰처럼 혹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따뜻한 털도 없으며, 새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사자처럼 강한 몸도 지니지 못했다.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인간이 자연에 던져지게 되면 생태피라미드의 중간정도를 차지한다면 선방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난 다른 동물보다 나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이 생태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 것은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게끔 진화한 뇌의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신체보다 뇌의 진화가 더 가속화 되어 이룬 산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인류가 나타나면서 지금까지 모든 시간중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게 되며 정착을 한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아직도 인간의 뇌는 수렵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동의 할 수 없는 주장이었으나 책을 읽다보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먼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보자. 배가 부른데도 자꾸만 무엇인가를 먹고 싶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먹으면 살이 찔 것이 분명한데도 다이어트에 열중인 사람조차도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음식을 먹고 많은 칼로리를 섭취한다. 그러다 심각한 비만상태에 놓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을 것이다. 이것 역시 인간의 뇌가 과거의 진화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렵 시절 우리 인간은 많은 식량을 구하기 힘들었었다. 지금 먹지 않으면 언제 먹을지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일단 먹어 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생존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 할 수 있었다.당황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에 피가 몰리는 그런 상황에 처해봤을 것이다. 심장이 빨리 뛴다는 것은 피를 그만큼 빠르게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며 이는 눈앞에 닥친 위기 상황에서 좀 더 빠르게 달아나거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도 뇌로 산소를 더 공급하여 좀 더 빠르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눈앞의 상대를 빠르게 가늠하여 달아날지 아니면 공격을 할지를 판단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함으로써 인간은 자연 속에서 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을 수 있었고 그때에 각인된 그 반응들이 현대에 들어서도 변함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위험에 노출된 인간에게 생식이나 생존을 위한 상황에 처했을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분비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여 행동을 유발 시킨다. 이것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 하였었다. 분명 과거에는 그러했었다. 하지만 뇌의 진화는 인간 문명의 발달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였다. 인간의 문명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 단기간에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뇌는 아직도 수렵 시절의 그 진화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도파민의 분비는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하기에 이른다. 도파민은 불확실한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에 더욱 분비가 활성화 되는데 이는 카지노나 도박 같은 것에서 더욱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없음에도 인간은 카지노나 도박에 빠져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파민은 휴대폰 사용에서도 작용한다. 휴대폰은 지금 인류가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물질이며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 사용에 중독되어 있다. 이 휴대폰 사용 역시 불확실한 결과를 가진 활동이며 이는 도파민의 분비를 활성화하여 좀 더 자주, 좀 더 오랫동안 휴대폰을 사용하는 행동을 유발시킨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 불안감, 우울증, 수면장애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발생시키고 있다. 실험을 통해 살펴본 결과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기억력과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으며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억력과 집중력은 저하되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고 있는 휴대폰 제조사의 의도를 파악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 외에도 SNS를 통한 휴대폰 사용시간 증가 유도 역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들 중 하나이다. SNS 광고는 사용자가 많이 하면 할수록 광고의 수익률이 올라간다. 따라서 사용시간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알고 그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보 같은 짓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중 우울증 역시 과거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뇌의 진화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주위 환경의 의해 위협을 받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생존 방법은 단 하나이다. 바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로써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생존에 더 유리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과거와는 다르다. 환경에 의해 생존을 위협 받을 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 그러한 상황과는 다른 환경에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실패나 실수를 통해 우울감이 나타나게 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 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뇌는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은 식욕도 떨어지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지는 것이고 성욕마저 감퇴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