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환경 중간 리포트도서제목 : 북극곰은 걷고싶다저자 : 남종영 출판사 : 한겨레출판과 목 명인간과 환경강의시간담당교수학과학번이름제 출 일2016.04.17(일)목차Ⅰ. 본 도서의 목차 소개Ⅱ. 내용요약Ⅲ. 출판사 리뷰Ⅳ. 느낀점Ⅰ. 본 도서의 목차 소개1장 북극곰은 얼음 위를 걷고 싶다 -캐나다 허드슨 만2장 카리부는 언제 오는가 -알래스카 아크틱빌리지3장 에스키모는 온난화 협조자인가 -알래스카 배로4장 검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고래들 -알래스카 카크토비크5장 침몰하는 미래의 실낙원 -남태평양 투발루6장 기후난민이 사는 법 -뉴질랜드 오클랜드7장 펭귄은 묻고 있다 -남극 킹조지 섬8장 명태는 돌아오지 않는다 -강원 고성Ⅱ. 내용 요약이 책은 걷고 싶지만 북극의 걸을 공간이 점점 사라져가는 북극곰에 대한 이야기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가던 주거지를 잃어가는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앞으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동물과의 공존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스토리이다.『북극곰은 걷고 싶다』는 부제에서 잘 표현해주듯이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온난화여행’이다. 둠 투어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온난화가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가는 곳마다 훼손되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온난화를 실감하고, 대처 방법을 연구하며, 나아가서는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에 참여할 것으로 믿는다.이 책의 여행은 처음 캐나다의 매니토바 주의 허드슨 만의 북극해 처칠 마을에서 시작한다. 세계에서 야생의 북극곰을 볼 수 있는 두 곳 중에 하나, 인구는 1,000여명으로 북극 문명과 인디언 문명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북극곰의 수도라고 할 정도로 백곰의 고향이다.이제 북극곰이 살고 있는 얼음이 자꾸 줄어 북극해로 유럽을 갈 수 있다니, 이는 스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는 시간과 경비를 북서항로는 거의 반으로 줄인다고 한다.피어리가 최초로 얼음을 넘어 북극점에 도달하고 우에무라 나오미가 단독으로 북극점에 섰다는 극점은 지구 북쪽의 꼭짓점으로 얼음바다이다.바다가 얼면 북극곰은 바다얼음 위를 걸어 사냥을 나가고 얼음이 녹아 균열이 되면 헤엄쳐 나간다. 북극곰은 한 번에 100킬로미터도 수영할 수 있지만 얼음 사이가 멀면 익사하기도 한다. 북극곰은 얼음 위에서 물범이나 바다사자를 사냥을 해 바다얼음이 없다면 살 수가 없다. 폴라베어 인 인터내셔널은 현재의 온난화 속도라면 2050년께 허드슨 만의 북극곰은 멸종 할 것이라 한다.이렇게 바다얼음은 북극곰의 생존의 터전이지만 선박에게는 위험이다. 지구온난화는 얼음이 사라짐을 뜻해 북극곰에게는 비극이고 인간에게 행복이라 하겠지만, 이 책에서 북극곰과 처칠 주민들은 운명공동체며 북극곰이 없으면 처칠 경제는 붕괴하고 만다고 한다.또 순록을 기다리는 아크틱 빌리지는 북위 68도, 북극권 이북 알래스카 브룩스 산맥이남 툰드라 한 복판에 있는 고립무원의 지대다. 인디언의 한파인 그위친 족이 유목생활을 하다 100년 전에 정주한 마을이다. 지금도 그위친 족은 여전히 생활의 어려움과 순록과의 생활로 북극야생보호구역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겨울이면 얼어붙는 혹독한 혹한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미국이 1876년 헐값으로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1968년 석유가 발견되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북극선에서도 177km 더 간 현대판 유배지 아크틱빌리지, 인구 147명의 북극의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다음은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고장 배로. 북위 71도 16분, 한 여름에도 빙산 조각이 밀려오는 북극해에 면해 있는 해안도시, 500년 전 유물이 나올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이누피아트 마을이다.이들은 바다로 먹고 살아 고래와 물범, 바다사자 등 해양포유류로 한해살이를 한다. 1850년에 메사추세츠에서 온 고래잡이들이 자리 잡아 도시가 형성되고 원주민과 결혼해 이누피아트로 동화되어 피가 섞인 사람이 대부분으로 지금도 물범 가죽으로 만든 우미아크를 타고 유빙을 피해가며 고래를 잡는다.2007년 12월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으로 환경 재앙을 상기시키는 이곳에도 1989년의 해양 최악의 원유 유출은 끔찍하다. 액슨발데즈 호 기름유출로 해양포유류는 사라지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바닷가 흙을 파면 얼룩의 기름이 나온다니 얼마나 위협적인가.카크토비크는 북위 70도의 알래스카 브룩스 산맥을 등지고 보퍼트 해를 바라보는 섬에 있는 인구 200명이 채 안 되는 에스키모의 마을이다. 두 번째 북극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캐나다 국경이 가까이 있고 북으로는 북극야생보호구역에 맞닿아있다.북극곰은 고래를 잡는 시기에 해 뜨기 전 일찍 어슬렁거리며 찾아온다. 이제 석유의 혜택으로 고래사냥은 생계목적이라기보다 이들의 정체성을 확인 시키는 축제가 되어버렸다. 자연 속에 사는 이들에게 기후온난화는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Ⅲ. 출판사 리뷰유엔 산하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가 2007년 스페인 발렌시아 총회에서 확정하여 발표한 기후 변화에 관한 제4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지표면 온도는 지난 100년간(1906년부터 2005년까지) 약 0.74도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100년 사이에 1.7도나 높아졌다. 해수면 상승은 온난화와 일치하여 일어났으며, 지구의 해수면은 1961년 이후 연평균 1.8밀리미터가 상승했고, 1993년 이후에는 이보다 두 배가 많은 연평균 3.1밀리미터가 상승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지구의 위기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기에 대한 우리의 체감도는 결코 크지 않다. 하지만 이미 일부 지역에선 지구온난화로 인해 섬이 없어지고,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곰과 카리부, 고래 등의 먹이가 사라지면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인간과 자연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이 책은 지구온난화로 바뀌고 있는 북극과 남극, 적도 등의 현장을 여행하고 취재한 환경에세이다. 저자 남종영은 북극권 알래스카(아크틱빌리지, 배로, 카크토비크), 캐나다의 허드슨만, 남태평양 투발루,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극 킹조지 섬, 강원 고성 8곳의 여행을 바탕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고통 받는 주민들의 생활, 문화, 생생한 현장, 과학자들의 보고서 등 깊이 있는 글과 그래픽 지도, 다양한 사진 70컷 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둠 투어’(Doom Tour: 지구온난화로 사라지거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릴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 방식) 가이드(위치, 역사, 교통, 숙박, 투어, 인터넷정보 등의 간단한 팁)도 실었다.자본에 맞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알래스카 아크틱빌리지에 미국 정부와 문명이 가져다준 물질적 수혜를 포기하고 부족의 전통과 문화를 선택한 그위친족의 전사, 사라 제임스가 있다면, 알래스카 배로에는 노스슬로프의 석유를 개발하는 데 찬성하는 주류 에스키모 사회와 달리,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조지 에드워드슨이 있다. 둘은 그위친 인디언과 에스키모 사회에서 각각 석유자본과 투쟁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살아온 자기의 땅에서 석유라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 그곳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또한 환경단체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환경협약으로, 염화불화탄소 생산을 규제해 오존층 파괴를 막은 몬트리올 의정서와 함께 남극조약을 꼽는다. 1959년에 미국, 영국, 소련, 일본 등 12개국은 남극을 그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닌 지구 공동의 땅으로 선언했다. 남극에서는 그 어떤 개발도 유예됐다. 그래서 아직 남극은 파괴되지 않았다. 남극 반도의 몇몇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남극 대륙의 대부분에서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남극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기말보고서과 목 명격동하는 한국 현대사강의시간목 678담당교수학과학번이름제 출 일2016.12.15목차1. 대구의 사건1) 원인과 배경2) 경과3) 의의와 영향4) 관련 신문기사2. 방문기관 소개 및 소감1) 대구근대역사관2) 방문 소감1. 대구의 사건대구의 현대사 사건으로 대구 10월 사건을 선택했다.10월 사건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운동으로 ‘대구 10ㆍ1사건’, ‘대구 10월 항쟁’, ‘10월 항쟁’ 등으로도 불린다. 미군정의 식량 정책 실패에 항의하던 대구 시민들의 시위에 대해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가 무장 항쟁으로 발전했고, 미군정이 계엄령을 선포하며 무력으로 개입하면서 1946년 말까지 남한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대에는 조선공산당의 지령과 선동으로 일어났다고 그 의미를 왜곡하여 ‘대구폭동’이라고 불렀으나 2000년대 이후 희생자들의 유족과 지역 언론, 학계의 문제제기가 잇따르면서 2007년부터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0년 3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에서 이 사건을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친일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자 불만을 가진 민간인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유족들에 대한 사과와 위령사업을 지원하도록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대구10월사건’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1) 원인과 배경1945년 해방 이후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자의 철수, 남북 분단으로 인한 생산 체계의 단절, 해외귀환자나 월남민 등으로 인한 인구의 급증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자살과 범죄와 같은 사회적 불안정성이 커졌으며, 노동자ㆍ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생활은 일제 강점기보다도 더욱 궁핍한 상태에 놓였다.특히 해방과 더불어 노동자ㆍ농민 내부에서는 기존의 식민지 경제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으며, 일부에서는 인민위원회나 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일본인이나 대일협력자들의 재산을 몰수해 분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1945년 9월 25일 ‘패전국 일인 재산의 동결 및 이전 제한의 건’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10월 5일 ‘미곡의 자유 시장에 관한 일반 고시 제1호’를 발표하여 식량대책위원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미곡의 자유 판매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가뜩이나 인구 증가로 수요가 늘어난 상태에서 일본으로의 밀수출이 늘고 투기꾼의 사재기가 벌어지면서 풍작임에도 쌀값이 폭등하는 문제가 나타나 심각한 식량 문제가 발생했다.그러자 미군정은 1945년 12월 19일 일반고시를 발표해 미곡의 소매가격을 통제했고, 1946년 1월 25일에는 식량난의 해결을 위해 농촌의 쌀을 강제로 징수하는 미곡 수집령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수집 가격이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했고, 경찰력을 동원해 가택을 수색하고 처벌하는 식의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농민들은 미군정의 미곡 수집령에 크게 반발하였다.게다가 미군정은 일제 강점기에 일했던 한국인 관리 대부분을 등용했으며, 일제에 경찰로 근무했던 사람도 대부분 그대로 임용되었다. 당시 농민들은 일제 강점기에 자신들을 억압하는 데 앞장섰던 경찰관들에 대해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들이 일제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쌀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공출해가는 것을 겪으면서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민심은 매우 흉흉해졌다.특히 대구ㆍ경북 지역에서는 해방 이후 30만 명의 귀환동포가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하면서 쌀 수요가 늘고 모리배들의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쌀값이 일제 강점기보다 무려 10배 이상 높아진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6년 5월 콜레라가 유행하여 경상북도에서만 4천명이 사망하자 미군정은 전염을 막는다며 차량은 물론 사람도 시 경계를 넘지 못하게 교통을 차단하였다. 하지만 이 조치로 대구 시민들은 농작물과 생필품의 공급이 끊겨 쌀 부족으로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기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9월부터 대구 시민들은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대구 지역의 노동자들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벌인 9월 총파업에 맞추어 파업에 돌입했다.2) 경과대구 10월 사건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미군의 군정에 항의하던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총격을 가한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10월 1일 오전에 파업을 벌이고 있던 500여 명의 노동자들은 대구역과 대구공회당 인근에서 1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를 벌였고, 부녀자와 어린이 등을 중심으로 한 시민 1천여 명은 대구부청 앞에서 식량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경찰이 시위 군중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경찰의 총격으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10월 2일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대구경찰서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흥분한 군중들은 대구경찰서를 에워싸고 돌을 던지며 경찰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고, 경찰들이 다시 군중에 총격을 가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분노한 군중들은 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빼앗아 무장한 뒤 시내 곳곳의 경찰관 주재소를 점거했다. 그리고 쌀 사재기를 저지른 부잣집이나 친일파의 집을 털어 식량과 생필품을 빼앗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0월 2일의 시위 과정에서 적어도 18명의 시민이 경찰의 총격으로 죽었으며, 경찰관 4명도 시민들에게 목숨을 잃었다.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미군정은 2일 오후에 대구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장갑차 4대를 앞세우고 시내로 진입하여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체포에 나섰다. 미군의 무력 개입으로 대구의 시위는 10월 3일 무렵에는 어느 정도 진압되었지만, 미군정에 항의하는 시위는 주변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10월 2일 밤에 칠곡ㆍ고령ㆍ군위ㆍ영천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10월 3일에는 성주ㆍ김천ㆍ선산ㆍ의성ㆍ예천ㆍ영일ㆍ경주 등지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4일에는 영주ㆍ영덕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등 10월 6일 무렵에는 경상북도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12월 중순까지는 남한의 대부분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당시 시위대는 미군정의 경제 정책에 반발하여 식량 문제 해결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였지만, 친일파 청산과 행정과 치안에 민중이 참여하는 인민위원회 설치 등의 요구를 내세우기도 하였다.하지만 미군정의 미곡 수집령에 대한 반발과 경찰에 대한 반감 등을 배경으로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 시위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행동으로 조직되지 못해 군(郡) 단위 차원의 산발적인 봉기 이상의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시위가 확산되자 미군정은 시위 진압에 경찰력, 남조선국방경비대 등의 행정조직만이 아니라 민족청년단ㆍ서북청년회ㆍ백의사 등의 극우단체도 동원했다. 이들 극우단체들은 시위 주동자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에게 재산 피해를 입히거나 테러를 가하기도 해서 이 사건은 좌우의 이념갈등이 더욱 첨예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3) 의의와 영향대구10월사건 당시 경상북도에서만 전체 인구의 25% 정도인 77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남한 전체에서는 23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미군정은 이 사건으로 사망 20명, 중상 50명, 행방불명 3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대구를 포함한 경상북도에서만 13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5,000여 명이 폭동 혐의로 검거되었다고 알려져 실제 사상자의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이 사건은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처럼 여겨지며 그 실체가 감추어져 왔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자의 규모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승만 정권의 사면 약속을 믿고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을 당하는 일을 겪기도 하였다.대구10월사건 이후 미군정은 농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토지개혁 정책을 서둘러 추진하였다. 1946년 2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의 소유농지를 신한공사로 귀속시켰던 미군정은 1947년 12월 농지개혁법안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상정하였다. 그러나 우익의원들이 출석거부로 법안이 심의되지 못하자 농지개혁은 뒤로 미루고, 신한공사로 귀속시켰던 일본인 소유지의 매각에 착수했다.그리고 미군정은 대구 10월사건 이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고, 이는 정치 영역에서 좌파 정치세력이 크게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1947년 3월에는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도 철회하였고, 이는 반공을 앞세운 극우 단독정부 세력이 정치의 중심으로 더욱 확고히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4) 관련 신문기사① 기사 1‘여순-대구반란사건’은 잘못된 명칭, 김계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동아일보, 1993.12.01② 기사2제주 4.3사건-대구 10월 폭동 ‘항쟁’인가 ‘폭동’인가, 한승동 기자, 한겨레신문, 1994.03.22③ 기사346년 대구사건 식량난, 친일경찰 반발 대규모봉기, 한겨레신문, 1994.03.252. 방문기관 소개 및 소감1) 대구근대역사관그림 1, 대구근대역사관 방문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 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 한국산업은행 대구 지점으로 이용되었다. 2003년 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원형이 잘 남아있다.대구광역시가 2008년 대구도시공사로부터 기증받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꾸며 2011년 1월 문을 열었다.역사관은 규모(연면적 1971㎡)이며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체험학습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역사관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대구의 생활, 풍습, 교육, 문화 등을 모형과 전시물, 영상 등으로 실감나게 전해준다.
REPORT자신이 경험 가능한 가정의 가정생활문화 작성과목명가정생활문화교수님제출일학과학번이름목차1. 주제2. 선택이유1)제례문화2)특별한 생일3. 생활문화의 기술1) 절차①제례문화②특별한 생일2) 참석범위①제례문화②특별한 생일4. 거시적의미1)제례문화2)특별한 생일5. 미시적의미1)제례문화2)특별한 생일6. 문제점 및 대안7. 느낀점1. 주제우리나라에서 과거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는 명절의 제례문화와 내가 겪은 특별한 생일에 대해서 주제를 정하였다.2. 선택이유1)제례문화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 제례(祭禮)란 기제사 및 명절에 지내는 차례의 의식 절차를 말한다. 제사를 모시는 여러 예법으로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이다. 조상숭배 의례의 하나이며 조상숭배는 조상에 대한 일련의 종교적 신념과 행위를 말한다. 제례는 조상숭배의 일종으로, 의례적 행위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제례는 제사라고도 하는데 거의 모든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다. 유교문화를 따르고 있는 사회라면 다른 종교, 가치, 사상, 풍습, 규모에 상관없이 조상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모시고 있다. 어릴 적부터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제례문화로 선택하였다.2)특별한 생일초경을 하였을 때 가정에서 축하의 의미로 케이크과 장미꽃을 선물 받은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축복을 받으면서 월경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알게 되었고 2차 성징으로 통해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점에 대해서 개방적이고 올바른 성에 대해 알게 되었기에 선택하게 되었다.3. 생활문화의 기술1) 우리 집의 절차①제례문화설 차례를 지낼 때는 큰 제사와 뒤편에 작은 제사상(집에서는 ‘성주제사’라고 말함)을 함께 차린다. 큰 상차림은 보통 가정에서 하는 상차림과 동일하고 지역이 대구라서 상어고기(돔베기)가 들어가는 점이 특징이다. 탕국도 상어고기가 들어가고 상어구이도 준비해서 생선구이와 함께 올린다. 항상 빼먹지 않고 올리는 것 중 하나가 ‘고구마전’, ‘떡갈비’, ‘쥐포전’이다. ‘쥐포전’의 경우 대구 지역이라도 안 올리는 가정이 많은 것 같다. 작은 상차림의 경우에는 북어포, 간단한 전 음식 몇 가지와 사과를 올려서 준비한다.아버지와 작은삼촌, 남동생이 차례를 지내고 어머니와 나는 뒤편에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는다. 과거에는 여자가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서 참여하지 않고 준비만 했지만 몇 년 전부터 함께 절을 올리고 있다. 큰 상에서 작은 상으로 차례대로 절을 올린 후 지방을 태우고 촛대와 향로의 불을 끈다. 제사에 사용된 제구와 제기는 깨끗이 닦아 보관을 한다.추석의 경우에 벌초는 일주일 전에 아버지의 고향인 봉화에 가서 벌초를 하고 하룻밤 머문 후 돌아온다.추석차례에는 작은 상을 차리지 않고 큰 상차림만 준비하여 차례를 지낸다. 설, 추석 그리고 기제사의 절차는 동일하고 추석에만 벌초를 가고 개인적으로 성묘는 가지 않는다. 명절에는 포항 큰 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집으로 와서 차례를 한 번 더 지내고 있다. 차례를 지낸 후 친할머니 댁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외갓집으로 가서 하룻밤 머문 후 돌아온다.②특별한 생일초경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1년 중 10월 20일은 초경의 날로 6년 전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정해졌다. 공식적인 날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여자가 되기 위한 가장 큰 부분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처음 초경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된 뒤 어머니가 간단하게 케이크와 작은 선물, 장미꽃을 준비해서 케이크 촛불을 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절차는 크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축하를 해주는 의미가 뜻 깊고 과거 한국사회에서는 없었다. 근래에 와서는 이렇게 축하해주는 자리가 눈에 띄게 많아 진 것을 볼 수 있다.2) 참석범위① 제례문화포항 큰 집 제사는 아버지와 남동생, 삼촌이 참석하여 큰 집 식구들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 상당히 많은 인원 수 가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가정에서 차례를 지낼 때는 과거에는 할머니와 삼촌이 방문하였지만 5~6년 전 부터 식구들끼리 함께 지내고 있다.② 특별한 생일식구들만 참석해서 단란하게 보낸다.4. 거시적의미(사회적)1) 제례문화제례문화는 유교와 민간신앙을 계승하고 조상에 대한 존경와 애도의 표시를 하며 사회적으로 오랜 세월 전통을 유지하고 이어가고 있다. 다음세대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고유의 분위기와 전통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문화라 생각한다.2) 특별한 생일초경을 축하해주는 의미가 과거 사상으로는 축하해주는 행사로 칭해지지 않았지만 현대에는 초경의 날이라고 임의적으로 기념일도 정해지는 등 다양한 곳에서 축하를 해주는 추세에 있다. 이는 여성인권이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는 뜻으로 간주할 수 도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은밀한 이야기로만 여겨지던 초경 및 성장기 생리현상을 공론화하고 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높임으로써 초경 현상을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도록 교육하며, 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건전하고 올바른 성 가치관을 심어주고, 여성 건강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5. 미시적의미(가정, 개인적)1) 제례문화제사는 보통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데 어릴 적부터 제례를 준비, 상차림, 지방쓰기, 정리하는 과정을 직접 해보고 익히면서 제사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조상을 섬기는 마음과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제례를 통해 가깝고 먼 친척들을 만나며 예절에 대해 익힐 수 있고 친인척 간의 친목을 쌓을 수 있다.2) 특별한 생일보통 가정에서 성교육이 힘들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성교육의 어려움을 덜 수 있으며 아버지는 딸에게 더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부녀간의 성교육은 꺼림칙 하다며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통해서 자녀들은 성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고 ‘나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 고 결과적으로는 가정이 화목해질 수 있다.
인간과 환경 기말 리포트2016년도 전반기 신문보도 환경문제 현황 파악 및 대책보고서 작성과 목 명인간과 환경강의시간담당교수학과학번이름제 출 일목 차Ⅰ. 미세먼지 관련신문기사1) 신문기사①2) 신문기사②3) 신문기사③Ⅱ. 미세먼지 현황1) 미세먼지의 정의2) 미세먼지 발생 주 원인3) 미세먼지 현황Ⅲ. 대책보고서 작성Ⅳ. 느낀점참고문헌Ⅰ. 미세먼지 관련신문기사1) 신문기사 ①윤성규 환경부장관 “미세먼지 대책 기대 미흡 인정… 세부계획서 성과낼 것‘미세먼지 특별대책’ 발표이후… 윤성규 환경부장관 인터뷰“6·3대책으로 기본 방향 잡아 국내발생 미세먼지 14% 감축 2026년까지 파리 수준 개선”“관계 부처 주체적으로 동참 에너지 가격 조정 등 공론화 고등어 주범 논란 비화 유감”“국민 기대를 충족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알맹이가 빠진 대책이라는 얘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미세먼지 특별대책의 성과를 담보하기 위한 예산조달과 추진체계 수립 과정에서 타 부처와 범정부적인 협력을 해나갈 것입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세먼지 특별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범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지난 ‘6·3 미세먼지 대책’ 이후 후속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윤 장관은 “이번 대책으로 국내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원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의 14%를 감축할 수 있고, 추가 대책을 통해 2026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고등어 주범 논란’과 관련, “본래 취지가 잘못된 논란으로 비화해 유감스럽다”고 해명했다.―범정부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미세먼지 대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예산조달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이번 대책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의 기본방향과 이에 필요한 정책 과제를 밝힌 기본계획이고, 앞으로 세부 이행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조만간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과 합동으로 ‘미세먼지 특별대책 이행추진 TF’를 구성해 세부 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2014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당시 제기됐던 미세먼지의 단기적인 개선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단기적인 개선은 중국식 극약 처방 대책을 시행해야 가능하지만 이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큽니다. 이번 정부 대책은 기존 어느 대책보다 미세먼지 저감의 실효성이 대폭 강화된 대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책으로 국내 미세먼지 주요 발생원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의 14%를 감축할 수 있습니다. 2026년까지는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를 파리 등 선진국 주요 도시 수준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부처 간 갈등이 심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대책 수립 과정에서 불거진 ‘부처 간 갈등’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기재부와 산업부, 국토부 등 관계부처들이 이전까지의 소극적이고 방관자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로 대책수립에 동참했습니다. 덕분에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이 공론화됐고, 모든 경유 버스의 압축천연가스(CNG) 버스화, 노후 화력발전소의 친환경적 대체와 같은 차별화된 대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미세먼지 대책의 성과를 담보하기 위해 예산조달과 추진체계 수립 과정도 관계 부처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이번 대책의 핵심은 경유차에 대한 관리 강화라고 할 수 있는데 경유차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갑자기 선회하면 국민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을 텐데요.“이번 대책의 핵심이 ‘경유차 환경 관리 강화’인 것은 맞습니다. 정부는 2005년 이후 경유차에 각종 혜택을 주며 소비자의 선호도를 높이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사실 지난해 폭스바겐 배기가스 장치 조작 사건이 발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경유차 오염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클린 디젤’의 신화가 깨진 지금 여러 나라가 경유차 규제책을 앞다퉈 입안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미세먼지나 오존 등의 대기오염에 큰 영향을 주는 경유차에 대한 환경관리를 강화해야 대기질 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요리 시 미세먼지 발생 정도를 조사해 결과를 공개한 본래 취지가 고등어 주범 논란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비화해 유감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최소 15분 이상 자연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 직화구이 음식점 규제 여부에 대해서도 규제보다는 저감 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데 집중하겠습니다.”2)신문기사 ②강동구, 미세먼지 대응 10가지 행동 수칙 발표강동구(구청장 이해식)가 오는 12일 오전 10시 20분 천호공원에서 쿨시티강동네트워크(위원장 백명순)와 함께 생활주변 먼지를 줄이기 위한 “미세먼지 대응 강동구민 10대 행동 수칙”을 발표했다. 10대 행동수칙은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 이용 ▲자가용 이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 ▲운전 중 급출발, 급제동, 공회전 삼가 ▲공사장 및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먼지 줄이기 ▲공터에 식물재배 등 도시농업 참여 ▲먼지 고농도 시 실외활동 자제 및 마스크 착용 생활화 등이다.AD이 날 발표식과 함께 청소년들이 미세먼지 등 환경에 관한 문제를 풀어보는 ‘도전! 환경 그린벨’도 실시한다. 미세먼지 대응 체험부스를 운영하여 먼지의 피해와 예방을 홍보하는 자리도 갖는다. 이 밖에도 기후변화 대응과 지구평균기온 2℃ 상승 제한을 위해 태양광 자동차 만들기, 자가발전자전거 체험, 펠트가습기 만들기 등 환경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홍보체험관을 운영한다. 이해식 구청장은 “국가와 각 지자체에서 자동차, 건설기계, 사업장, 발전소 등 미세먼지 배출원에 대한 다양한 저감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구민 여러분께서도 10대 행동수칙을 통해 생활주변의 미세먼지를 줄이기에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3)신문기사 ③미세먼지 허용치, WHO 기준보다 2배 높아우리나라 미세먼지 허용치가 선진국보다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보 발령 시점도 늦어 미세먼지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2일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국국 97개 시·군에 총 506개가 설치돼 있다. 이 가운데 미세먼지 측정망은 350개소, 초미세먼지 측정망은 33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된 탓에 전국 지자체 229개 중 42%에만 측정망이 설치돼 있다.미세먼지 허용기준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문제다. 환경부가 지난 3일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대책’ 어디에도 미세먼지 허용 기준에 대한 논의는 없다. 미세먼지 기준을 강화하지 않은 채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해지면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방안만 논의하고 있다. 현재 검토 중인 안(고농도 미세먼지 24시간 지속)을 지난해 실제 미세먼지 발생현황과 비교해보면 차량부제가 적용되는 날은 없었다. 정부는 자칫 미세먼지 고농도 발생일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아직 기준 강화는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법제연구원 현준원 연구위원은 “현행 법령상 환경기준의 초과로 인한 구속적인 법률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환경기준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미세먼지 관련 기준을 국제사회 권고치에 맞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Ⅱ. 미세먼지 현황1) 미세먼지의 정의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물질로 대기 중에 오랫동안 떠다니거나 흩날려 내려오는 직경 10㎛ 이하의 입자상 물질을 말한다.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가 연소될 때 또는 제조업ㆍ자동차 매연 등의 배출가스에서 나오며, 기관지를 거쳐 폐에 흡착되어 각종 폐질환을 유발하는 대기오염물질이다.한편 먼지는 입자의 크기에 따라 총먼지, 지름이 10㎛ 이하인 미세먼지(PM 10), 지름이 2.5㎛ 이하(PM 2.5)인 초미세먼지로 나뉜다. 미세먼지는 질산염(NO3-), 암모늄(NH4+), 황산염(SO42-) 등의 이온 성분과 탄소화합물(carbon compounds), 금속(elements) 화합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 중 디젤에서 배출되는 BC(black carbon)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장기간 미세먼지에 노출될 경우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6~50), 나쁨(51~100), 매우 나쁨(101~) 등으로 나뉜다.2) 미세먼지 발생 주 원인가속화되고 있는 중국의 산업화로 인한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오염물질의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한ㆍ중ㆍ일의 환경과학원이 2000년대 이후부터 10년간 함께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오염물질의 30~50%가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잠정결론 내려졌다. 중국은 석탄 의존도가 70%가량(중국통계연보, 2011)으로, 특히 석탄연료 사용이 증가하는 겨울철에 스모그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것이 서풍 또는 북서풍 계열의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오염물질과 함께 혼합ㆍ축적되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스모그는 연기(smoke)와 안개(fog)의 합성어로, 안개와 미세먼지ㆍ황산화물ㆍ질소산화물 등의 대기오염물질이 혼합되어 안개가 낀 것처럼 대기가 뿌옇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3)미세먼지 현황그림 1. 서울 고농도 미세먼지(PM10)발생일수 추이(12~15년)최근 20년간 우리나라 대기 중 미세먼지의 연편균 농도는 1990년대 중후반 60㎍/㎥ 이상의 농도에서 2005년 수도권 총량제 도입 등 대기개선노력으로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여 그 농도가 50㎍/㎥ 이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전환되었고 여전히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이후 중국의 영향, 기상여건 악화 등으로 서울지역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일수(PM10 일 평균 농도가 100㎍/㎥일 이상의 날)는 2012년 5일에서 2014년 19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Ⅲ. 대책보고서환경부에서는 미세먼지 종합대책(2014), 2차 수도권 대기질 개선 특별대책(2015~2024), 제2차 대기 환경개선 종합계획(2016~2025)를 마련하고 세부 이행 대책을 추진하여 연간 환경기준 달성률을 미세먼지의 경우 2014년 61%에서 2025년 90%로 대폭 높일 계획이다. 세부적인 대책으로는, 지난 획이다.
REPORT한국의 역사와 문화 과제물 서평도서명 : 역사와 책임과 목 명한국의 역사와 문화강의시간담당교수학과학번이름제 출 일현대사는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펼쳐지는 역사이기 때문에 더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다.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과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 관심 깊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한홍구 교수의 역사와 책임이라는 도서를 선택하였다.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역사 그 자체를 배운다는 의미와 역사를 통하여 배운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역사 배우는 과정 속에서 지혜를 찾고 현재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선택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선택을 지양하며, 역사의 올바른 지향점을 찾아가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역사와 책임’ 서적을 읽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떤 곳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헬조선’, ‘수저론’ 등 이 단어들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흙수저’ 라는 신조어는 ‘수저계급론’이라는 시사상식사전에도 등재 되어있었다.과연, 이 신조어들이 생기게 된 원인들은 어디에 있었을까?나는 이 책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친일파 처단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로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고 몇 년 후 1950년 6.25 한국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 후에도 몇 차례의 개헌과 부정선거가 있었고 그에 따른 민중들은 대모를 하고 집단시위를 통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외쳐왔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나 싶을 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또 몇 십 년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진다. 이후 가까스로 대한민국은 가장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되어 평온해질 쯤 1996년 IMF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세계화에 따른 신자유주의 물결이 한국에도 들어오며 이런 신조어들이 생겨나게 된 원인과 근거들이 속속히 생겨난다.- 세월호, 역사 그리고 책임저자는 세월호 사건이 우리 역사에 1980년 광주 못지않은 충격을 안겨줄 것이라 진단했다. ‘광주’는 국가가 총칼로 국민을 직접 죽게 했다면, ‘세월호’는 국가가 죽어가는 국민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를 구조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박근혜대통령에게 세월호사건의 진상규명과 살려달라며 외치는 유가족들을 외면한 채 시정연설에 참석했고 연설이 끝난 후에도 유가족들을 외면하는 장면은 유튜브에서나 관련 기사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세월호 사건이 있기 아홉 달 전에는 태안 앞바다에서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던 고등학생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숨지는 비극도 있었다. 그리고 그 후 경주에서 리조트 체육관이 붕괴하여 대학생 10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저자는 이것들이 사전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라는 사고가 또다시 터지니 참담하고 황망하기 짝이 없다 진단한다.세월호의 악마 이준석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에’라고 한 듯, 이승만은 북한의 공격으로 함락 위기에 빠진 수도 서울에서 제일 먼저 달아났고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치며 서울 시민들에게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 서울에’ 라고,,,,,, 그 후 서울로 돌아온 이승만은 남아있던 시민들을 북한의 부역자로 몰아가면서 이들을 처단하였다. 참담하기 그지없던 사건이었다.이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사건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어있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보도연맹 사건이다. 보도연맹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예비검속·즉결 처분을 단행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10월 좌익 전향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조직으로서, 좌익세력에 대한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했다. 49년 말까지 이 조직에 가입된 수는 무려 30만 명에 달했으며, 서울의 보도연맹 가입 인원수는 19,800여 명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 보도연맹원에 대한 무차별 검속·즉결 처분을 단행했다. 50년 7월 21일 경북 문경군 호계면 별암리의 경우 주평 앞산에서 2백여 명, 영순면 포내 마을 뒷산에서 3백여 명이 집단으로 학살당했다. 이와 같은 일은 평택 이남의 전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한국전쟁 중 벌어진 최초의 집단적인 민간인 학살이었다. 이는 또한 북한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일어났던 좌익세력에 의한 보복 학살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간첩의 역사, 조작의 역사이 책에는 간첩 조작 사건과 내란 음모 사건 그리고 정당 해산 심판까지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다. 1951년부터 1996년까지 직파 간첩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데 언론에 보도되고 잡혀 들어가는 간첩 수는 여전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도 “너 간첩이지!”라며 장난삼아 일상적으로 행했던 말들도 사실 이러한 조작된 사건들이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책을 다 읽은 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간첩이 없다면 간첩을 만들어라,,, 너무나도 자극적인 말이지만 밝혀진 국정원 보고서, 기록문과 많은 간증들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한 명의 간첩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자들의 팀플레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아주 치밀한 조직적인 사회라는 것을 실감했고, 간첩조작과 부정선거를 치러가며 정상을 원했고,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던 그들이 현재에 와서 미화되어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저자는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이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 값은 누가 책임진다는 말인가. 책으로만 보아도 이 어이없는 사건들이 모두 대한민국,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또한, 1년 전의 나는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사건이 종북 활동 등 여러 가지 정황 상 해산이 맞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국가 여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고, 급하게 결정된 것 등 애매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제로 통과하기 어렵다는 헌법재판소에서 해산을 결정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정희 후보를 중심으로 종북세력이며 세간에서 이정희 후보가 애국가를 제창할 때 경례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시점에서 모든 것이 밝혀졌다. 비선 실세를 통해 헌법재판소는 민낯을 드러내게 되었고 우리는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