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사건을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범죄 원인 분석1. 유영철 사건이란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유영철이 연쇄적으로 20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명예교수였던 이씨(73)와 그의 아내 이씨를 둔기로 살인했다. 그해 10월 9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관리원 고 모 씨의 집에 칩입 해 고 모 씨의 아내 이씨(58), 어머니 강씨(81세)와 고씨의 아들(35) 등 일가족 3명을 둔기로 34회 강타해 살해했다.10월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최씨(70), 부인 유씨(69)를 둔기로 살해했다. 11월 1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집주인 김씨(87)와 파출부 배씨(53)를 둔기로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불을 질렀다.다음해 2004년 3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오피스텔에서 출장마사지 도우미 김씨(25)를 둔기로 살해했다.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씨(44)를 자신의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하였고, 시신은 월미도에 유기했다. 그리고 4월~7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오피스텔에서 출장마사지 도우미 여성 11명을 살해했다.2. 유영철 성장과정1) 유년기와 최초의 일탈행동까지의 시기집안 형편 때문에 유영철의 출생은 환영받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는 말없고 평범한 아이였으며, 주변인들은 그가 아버지에 대해 묻는 것을 싫어했다고 증언한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간질로 죽고 생모의 집에 들어가면서 성격이 밝아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그의 범죄가 시작되었는데, LP판을 아무 죄책감없이 훔치고, 동급생에 대한 폭력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때부터 여성에 대한 집착이 넘쳐났다. 고교 입시에 실패하고 K공고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주거침입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간다.2) 결혼과 감옥생활까지의 시기유영철은 소년원을 출소하고 스무 살이었던 1990년 전처 황모씨를 만났다. 하지만 유영철은 1990년대를 감옥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1991년 특수절도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고, 1993년 절도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고, 1995년에는 음반 비디오 등에 대한 법률 위반, 1998년에는 공문서 위조와 절도 등으로 복역했다. 그리고 2000년 3월 사창가에서 일하는 15세 윤락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긴급 구속되었고, 2002년 여름 전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아내 황씨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게 되고 이혼을 하게 된다.3) 연쇄살인자로서의 시기연쇄살인의 시작은 출소한 2003년 9월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고 있는 공덕동 집을 나온 시점부터이다. 이 시점부터 서울 신사동에서 명예교수 부부를 살해하였다. 이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과 서울지역 전화방, 출장마사지 여성 11명을 잇따라 살해하였다.3. 생물학적 분석뇌기능장애와 범죄와 관련된 연구의 결과를 보더라도 범죄자 중 상당수는 이러한 기능장애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다고 보고된다. 유영철에게 있었던 뇌 기능장애인 간질 또한 살인을 일으키는 간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간질환자의 경우, 아주 간혹 일시적으로 충동조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간질환자 중 일부는 나이가 들거나 증상이 심해질수록 점점 더 집요하고 난폭한 성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아주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일어난 범죄이기 때문에 간질의 정신질환을 이유로 유영철 사건을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 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요인도 연쇄살인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살 필 수 있다.4. 심리학적 분석(1) Freud : 그는 잠재적인 범죄성이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마음의 내면에서 자라나게 되며, 자신의 행동과 사고에 대해서 심리적인 통제를 완전하게 상실하는 상태인 정신이상이 살인범죄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특히 범죄자들은 이드가 강한 집단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자신의 욕구와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희생과 고통을 가하는 행동은 이드차원에서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영철 경우에도 자신의 욕구와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타인을 아무런 감정 없이 살인하고 심지어 은폐를 하기 위해서 토막까지 내거나 지문을 지우거나 하는 등 그의 이드가 강한 상태를 보여준다.(2) Adler :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이 이를 보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범죄를 선택하도록 만든다고 하였다. 상대방에 대한 열등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범죄나 반사회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영철은 언어 표현능력 및 추상적 사고능력은 뛰어나지만 집중력과 정신적 기민성은 낮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는 열등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보상적 환상’을 발달시킨 결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분석된다. 이처럼 유영철의 성장배경에서도 쉽게 살펴 볼 수 있는 것 같이 계모 슬하에서 성장, 보모 이혼, 아버지의 폭주와 주정, 빈곤한 경제, 간질로 인한 사망 등은 자신감의 결여된 상대로 성장하게 되고 사회적으로 부적응하기 때문에 박탈감이 크며 스트레스로 인해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은 결국 ‘남들처럼 잘 살고 싶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다’는 사회적 동기와 욕구가 크게 작용하게 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부정적인 범죄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유영철의 경우도 이와 같은 성장배경에서 단순히 부자들 즉 가진 자에 대한, 이혼에 대한 분풀이성 살인이 아닌 이러한 성장배경을 통해서 형성된 열등감의 극복하기 위해 발달시켜온 보상적 환상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일간 분쟁이 양국 관광산업에 미친 영향1. 배경- 2019년 7월 1일, 일본이 한국에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3종류 수출규제 선언- 7월 2일, 일본정당대표 토론회를 통해 아베 신조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를 언급하면서 수출규제가 경제보복조치라는 것을 사실상 인정- 이를 알게 된 한국 국민들은 분노하며 7월 3일, 일본 불매운동을 시작2. 경과- 일본불매운동 시작 후, 급격하게 일본 제품 판매량 급감, 항공편 취소- 그와중 일본은 북한의 전략무기로 변할 수 있는 수출품을 통제하겠다는 이유로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9월 18일, 한국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양국간 갈등 심화3. 한국 관광산업에 미친 영향 (단위 : 억원)생산유발액 : 339억원 감소주요 타격 부문 : 항공운송서비스부가가치유발액 : 54억원 감소주요 타격 부문 : 항공운송서비스취업유발 인원 : 272명 증가4. 일본 관광산업에 미친 영향 (단위 : 억원)생산유발액 : 3537억원 감소주요 타격 부문 : 숙박, 음식부가가치유발액 : 1784억원 감소주요 타격 부문 : 숙박, 소매취업유발 인원 : 2589명 감소출처 : 한국경제연구원5. 양국 정부 및 관광산업계 대응- 한국 : 항공업계는 9월 중순부터 후쿠오카, 오사카, 오키나와 항공기 좌석 축소, 그 외 소도시는 항공편을 대거 축소함.- 국내 여행과 동남아 여행이 증가하며 여행업계도 발맞춰 할인이벤트나 패키지 상품을 내놓으며 여행객 유치에 나섬.- 일본 : 8월, 돗토리현은 한국 관광객이 크게 줄자 관광업계에 최대 32억원의 자금을 저금리에 대출해주는 조치를 취함.
한국영화사 레포트담당 교수학과 ? 학년학번제출자2000.00.00.한국영화사 레포트1. 해방 이전 한국영화사2. 해방 이후 한국영화사3.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 나운규4. 자료 출처해방 이전 한국영화사한반도에 영화가 유입된 시기는 대략 1900년 전후였다. 그리고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는 대중들 사이에서 점차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조선 최초의 연쇄극 와 최초의 기록영화 및 이 상연, 상영되었다. 이 둘은 조선인이 제작, 각본, 감독, 출연한 작품으로서, 1966년 한국영화인협회에 의해 이들 작품이 처음으로 상영된 1919년 10월 27일이 ‘영화의 날’로 제정되었다.1920년대 들어 조선에서 극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최초의 극영화에 대한 주장은 여러 가지로 갈리지만, 대체로 1923년 윤백남 감독의 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극영화인 과 최초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극영화 역시 1920년대 초반에 등장하였다. 순수 조선인 제작영화 도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1924년, 순수 영화 제작사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창립 작품은 이며, 2회 작품 이다. 그 해 〈암광〉, 〈촌의 영웅〉도 발표했지만, 조선 영화 시장이 예상보다 협소했고 일본 배급 회사와 관계도 틀어져 수출 판로가 막히게 되자 4편의 영화만을 제작하고 해산했다.1920년대는 여러 제작사들이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윤백남프로덕션은 제1회 작품으로 을 발표했다. 이경손은 고려키네마를 설립하고, 윤백남의 동의를 얻어 를 완성하였다. 이구영과 이필우는 고려영화제작소를 설립하고 를 제작하였다. 반도키네마는 《조선일보》의 연재만화 를 영화화하였다. 조일제가 세운 계림영화협회에는 윤백남프로덕션 및 고려키네마의 일원들이 대거 영입되었다. 계림영화협회는 제1회 작품으로 을 제작하였다.1926년부터 1929년까지 조선에서는 약 20여 개의 영화사가 생겨났고, 약 40~50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실질적으로 무성영 , 이 그 시기 제작된 영화이다. 1935년 발성영화의 등장으로 무성영화의 시대가 마감했다.1930년대 후반은 발성영화가 정착되던 때다. 한국영화의 최초 발성영화는 이명구 감독의 이다. 이후 계몽성 작품인 나운규 감독의 , , 이규환 감독의 등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이 일원화되었고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조선영화는 보다 적극적으로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드러냈다. 1938년 서광계의 변절로 군국어용영화인 가 만들어졌다. 1940년 조선영화령이 공포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영화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친일적 요소는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조선영화에 스며들었다. , 등이 그 당시 대표적인 친일영화다. 하지만 , 등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족 계몽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해방 이후 한국영화사해방이후 조선인들의 영화인 조직이 생겨났다. 1945년 윤백남을 위원장으로 한 가 생겨났으며, 좌익계의 과 가 결성되었다. 또한 1946년 미군정청이 새로운 영화법령을 내리며 미국영화가 침투되었다. 영화배급과 흥행계통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와 같은 광복영화가 등장하며 , , 등의 광복영화 열풍이 불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며 광복영화의 열풍이 사그라들고 다양한 영화들이 등장하였다. , , 등이 대표적인 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영화인이 납북/월북되고, 기자재가 파괴되며, 기존 필름이 유실되는 크나큰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군 기관에서는 뉴스영화 및 기록영화가 제작되었고, 피난지에서 극 영화가 제작되었다.1955년 이규환 감독의 과 한형모 감독의 이 크게 성공하였다. 특히 은 현대극의 첫 성공작으로 윤리적인 문제를 다뤄 가장 논쟁이 된 한국영화로 손꼽히기도 하다. 이후 이병일 감독의 은 아시아 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5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며 한국영화는 여러 장르를 다뤄 영화사적으로 크게 성공한 시기이기도 하다. , , 와 같은 사극, , , 등의 멜로드라마, , 등의 희극영화문잡지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나 하길종의 죽음으로 1978년 해체된다. 영상시대의 첫 작품은 으로 이후 , ,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 외에 신상옥 감독의 , 정진우 감독의 , 정창화 감독의 , 박노식 감독의 , 김효천 감독의 , 이두용 감독의 등이 제작되었다.1980년대는 비판적 리얼리즘이 주를 이뤘다. 정신적 저항 수단으로 나왔지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지 못했으며 대상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이 부재했고, 사회 문제에 대한 집중이 부족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청춘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당대 사회에서 추구되는 낭만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성장을 전제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가 대표적인 예다. 또한 3S정책으로 인해 에로영화가 많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남성 중심에서의 여성의 욕망을 담아냈기 때문에 과장되고 왜곡된 판타지가 담긴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이 당시 만들어진 영화는 정진우 감독의 와 가 있다. 한국적인 토속미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내고자 한 영화이다. 이두용 감독의 과 등이 있다.1990년대 초반의 영화로는 김의석 감독의 가 있다. 우리나라 첫 기획영화로 1992년 한국 흥행장 1위를 거며쥐기도 했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는 관객수 103만명을 동원하며 크게 히트를 친 작품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내세운 영화로 당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담론과 민족주의가 절묘하게 맞물려 흥행에 성공한 거라는 시각도 존재한다.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감독, 나운규영화 이 개봉한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졌었다. 무능한 정부에 국민들은 분노를 느끼고 세월호 희생자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이러한 대중의 트라우마와, 유능한 리더를 갈망하는 사회적 욕망의 정점에 있는 영화 은 한국영화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하며 대 흥행에 성공하였다.영화 와 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였다. 유명 감독과 빵빵한 출연진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는 첫날 엄청난 관객 수를 기록했으나 첫날 그 지점에 였다.그는 영화인이 되기 전 독립군 단체와 연을 맺으며 독립운동을 했었다. 청회선터널폭파미수사건 용의자로 잡혀 1년 6개월 동안 수감되기도 했었다. 1923년 출감하고, 다음해 1924년,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설립되자 그 회사가 있던 부산으로 내려가 연구생이 되었다.조선키네마의 제2회 작품인 에서 단역으로 출연해 배우로 첫 데뷔를 한 나운규. 이후 윤백남 프로덕션의 제1회 작품인 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았다. 그 해 조선키네마의 에 출연해 명배우로 인정받았다.배우로 그 당시 톱에 됐음에도 나운규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1926년 10월 1일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나운규의 영화 이 단성사에서 개봉하였다. 그리고 당시 폭발적인 관객 반응과 더불어 한국영화사와 한국역사 그 자체에 길이 기록될 영화가 되었다. 줄거리실성한 영진에게 옛 친구 현구가 방문하고 현구는 영진의 여동생 영희와 사랑에 빠진다. 악덕 지주의 마름이자 친일파인 오기호는 마을 축제의 어수선한 틈을 타 영희를 겁탈하려 하고 이를 말리던 현구와 난투극을 벌인다. 지켜보던 영진은 갑자기 환상에 빠지고 환상 끝에 낫을 휘둘러 기호를 죽인다. 붉은 피를 본 영진은 충격으로 다시 맑은 정신이 돌아오지만, 살인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된다. 끌려가는 영진의 뒤로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이경손 감독의 시작 노트에서 을 착안했다고 하는데 은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시중에서 사영됐다고 한다. 은 당시 신파물이나 일본작품의 번안물이 넘쳐나던 당시에 사실주의에 기반해 사회현실의 문제를 영상화함으로써 한국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토지문제로 인해 농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 3.1운동으로 미치광이가 됐다는 주인공(영진)의 캐릭터 설정은 영화가 항일민족정신을 주제로 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남기 힘든 일제강점기 시대에 대한 비판과,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살해가 가능했다는 사건의그의 영화 철학은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의 흥행 이후, 나운규는 , 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며 조선영화계의 스타로 군림한다. 그야말로 흥행의 보증수표와 같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의 핵심인물이었던 나운규는 팀원들과의 불화로 인해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탈퇴한다.그런데 쓰무라라고 하는 일본감독, 사장의 처남이죠, 이 사람이 하루는 나더러 지금으로 치면 화대를 갖다 주라 그래요. 그래서 다른 심부름은 다 해도 이 심부름은 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화를 내요. 싸움이 생겼습니다. 그날 저녁에 운규하고 나하고 남산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맨들면서 이렇게 설움을 받을 것이 없지 않느냐. 나운규라는 간판만 가지고도 살 수 있다 말야. 나가자. 이게 조선키네마사 탈퇴한 동기입니다. -故이영일의 윤봉춘 녹취테이프 中1927년 나운규프로덕션을 만든 나운규. 창립작으로 내세운 는 큰 성공을 거둔다. 이후 윤봉춘 등과 함께 를 만들었고, 1929년에는 격조 높은 문예영화 을 제작했다. 은 문예적으로 가치 있고 평도 좋았다. 대구의 만경관에서 상영될 때에는 너무나 많은 관객이 들어 극장 2층이 붕괴되었고 진주에서는 무대에까지 들어찬 관객들로 배우들이 극장에 들어가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큰 수입을 보지 못했다. 와 , 연달아 두 작품이 많은 수익을 내지 못하자 더 이상의 영화 제작이 어려워진다.그 후 1928년에 개봉한 는 여러 검열 끝에 개봉한 영화였다. 반발심리 때문인지 몰라도 검열의 난관 끝에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관객들이 찾아 흥행한 영화다. 그 다음 나온 영화는 인데, 흥행하지 못하고 나운규프로덕션은 해산의 길을 걷는다.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후 나운규는 생활고를 겪는다. 일각에서는 그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라고 전해지는데, 아무튼 나운규는 이때부터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가장 불을 지핀 사건은 찬영회 사건이었다.찬영회는 1929년 신문사 학예부 영화 담당 기자들이 모여서 결성한 친목단체이다. 시사회 등에서 영화 평론을 통해 영화와 관객 었다.
보이콧,어디까지 알고 있니?2016-06-02담당 교수학과 ? 학년학번제출자1. 서론2. 본론1) 보이콧이란?(1) 보이콧의 정의(2) 보이콧의 유래(3) 보이콧의 사례① 노동자들의 보이콧② 소비자들의 보이콧③ 국가 간의 보이콧2) 보이콧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 갈등이론(1) 노동자들의 보이콧(2) 소비자들의 보이콧(3) 국가 간의 보이콧3. 결론그림 2 출처 - 참여연대 홈페이지1. 서론요즘 ‘옥시 보이콧’이 뜨거운 감자다. 옥시는 임산부와 태아에 치명적인 성분이 검출된 가습기 살균제의 실험 결과를 은폐한 채 판매했으며 그 결과 옥시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 70명이 사망하고 100명가량이 영구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는 SBS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은 옥시의 뻔뻔한 대응에 분노한 소비자들은 ‘옥시 보이콧’을 외쳤다. 이에 약국과 편의점, 대형마트도 앞장서 옥시 제품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보였다.물론 보이콧은 옥시에서 처음 시작된 게 아니다. 나름대로 역사가 깊으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또한 보이콧은 소비자가 주도하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에서도 이뤄지기도 한다.필자는 보이콧의 유래와 사례에 대해 보이콧에 대해 폭 넓게 이해하고 이를 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2. 본론1) 보이콧이란?(1) 정의보이콧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공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보이콧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불매운동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어떤 특정한 상품을 사지 아니하는 일. 보통 그 상품의 제조 국가나 제조업체에 대한 항의나 저항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행한다.”라는 뜻이다.(2) 유래‘보이콧’이라는 단어는 1800년대 영국 토지 소유자인 ‘찰스 보이콧’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소작농들은 찰스 보이콧이 소작료를 25%를 내려주기를 원했으나 찰스 보이콧은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찰스 보이콧이 체납소작인에게 소작농들을 퇴거하는 영장을 발부하려고 했고, 소작인들의 비폭력 저항행동-지금의 보이콧-을 실시하였다. 결국 찰스 보이콧은 봉사대와 군대의 지원으로 어렵게 수확을 했지만 보이콧은 체납소작인을 추방하려다가 전체소작인들에게 배척을 당하여 영지를 떠나게 되었다. 또한 찰스 보이콧은 이 사태를 통해 어마어마한 물적 피해를 입었다.이를 통해 ‘보이콧’이라는 단어는 비폭력 저항행동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3) 사례① 노동자들의 보이콧노조의 파업을 보이콧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가장 최근의 보이콧으로는 프랑스의 철도 운행 보이콧이 있다.“프랑스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철도 노동조합 파업으로 1일(현지시간) 철도 운행의 40∼60%가 취소됐다고 현지 일간지 르파리지앵이 보도했다.”-KBS 기사 일부 발췌그림 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② 소비자들의 보이콧첫 번째 사례는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물산장려운동’이다.“1923년 1월 9일 20여 개의 민족단체 대표 160여 명이 서울에 모여 발기준비대회를 가진 데 이어 2월 16일에 3000여 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여 발족시킨 모임이 이 운동의 중추적인 기구가 되었다. 이때의 기본 실행 요강을 살펴보면, 첫째 의복은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를, 여자는 검정물감을 들인 무명치마를 입는다. 둘째 설탕-소금-과일-음료를 제외한 나머지 음식물은 모두 우리 것을 사 쓴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상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을 한다. 이 세 가지가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기본정신이었다.” - 네이버 두산백과 일부 발췌둘째, 셋째 기본 실행 요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물산장려운동을 통해 외국 것은 최대한 배척하고 국산 물품을 사용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두 번째 사례론 일본 기업인 유키지루시 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유키지루시 유업은 매출액 1조엔 이상으로 일본의 유제품 시장에서의 대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유키지루시에서의 제품을 사용한 대규모의 소비자가 식중독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소비자는 분노했고, 이 분노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2002년 유키지루시 식품에서 수입산 소고기를 국내산 소고기로 둔갑해 판매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소비자들은 ‘질렸다, 유키지루시 브랜드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소리가 터져 나오게 되었다(파이낸셜 뉴스, 2002,1,29).”- 논문 일부 발췌, 출처는 맨 밑에결국 유키지루시는 소비자들의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통해 폐업을 선언하게 되었다. 유키지루시 유업 폐업 사건은 소비자들의 보이콧이 기업의 폐업에 이르기까지 한 이례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그림 4 美 카터 전 대통령, 출처 - 연합뉴스③ 국가 간의 보이콧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도 보이콧이 일어났다. 이른바 ‘모스크바올림픽불참가사건’이다.네이버 지식백과는 모스크바올림픽불참가사건을 “198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2회 올림픽 하계대회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고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한 미국, 일본, 중국 등 66 개국이 의도적으로 대표선수를 보내지 않고 참가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소개했다.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까지 소련에서 아프간에 있는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가할 것을 선언했다. 카터는 미국국민에게 이를 호소하고, 각 국가에도 이것에 지지하도록 하였다. 국가 간에 보이콧이 일어난 대표적 사례이다.4년 뒤 1984년 LA 올림픽에선 소련이 미국에 대한 복수로 보이콧을 실시했다. “ 소련의 타스 통신은 ‘올림픽 헌장에 대한 미국의 오만한 태도, 올림픽의 이상과 전통에 대한 조롱은 올림픽에 대한 파괴 행위’라고 규정하며 ‘소련 올림픽 위원회는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하다는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LA 올림픽에 대한 공식적인 보이콧을 선언했다.”-기사 일부 발췌, 출처는 맨 밑에소련이 올림픽을 보이콧하자 그 뒤를 따라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베트남, 몽골, 쿠바,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등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도 소련을 따라서 보이콧을 선언했다.이와 같은 사례는 보이콧이 국가 간의 차원에서도 시행되는 걸 시사한다.2) 보이콧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 - 갈등이론갈등이론의 정의는 이러하다. “사회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대립과 경쟁, 갈등과 변화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네이버 두산백과또한 갈등이론은 또한 대립하는 다른 집단을 통해 원래의 구조가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잘 짜이지 않은 체계에서의 갈등은 필연적임을 주장한다.(1) 노동자들의 보이콧보이콧의 유래인 찰스 보이콧 사건을 보면, 땅의 주인인 찰스 보이콧과 나머지 소작농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으로 볼 수 있다. 갈등이론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대립했으며, 서로간의 갈등을 통해 결국 변화를 이끌어냈다. 찰스 보이콧은 노동자들의 보이콧을 통해 결국 영지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이 외에도 노동조합의 파업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전부 노동자들의 보이콧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자와 대립하여 갈등과 변화의 관계에 있다. 프랑스의 철도 운행 보이콧 또한 이와 같다.(2) 소비자들의 보이콧앞서 서론에서 말했던 ‘옥시 보이콧’도 소비자들의 보이콧에 해당된다. 옥시는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옥시 제품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성분이 있다는 실험 결과를 은폐했다. 그 제품들을 그대로 판매해 그 제품을 산 소비자들은 상해를 입었으며 이를 사과, 보상하라는 뜻의 보이콧을 실시하였다.이익을 추구하고 변명을 일삼아 어떻게든 기업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려는 옥시와, 적극적인 사과와 보상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의견 충돌은 보이콧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대립하고 갈등과 변화의 관계에 놓여있기에 갈등이론으로 볼 수 있다.물산장려운동 또한 특정 기업을 보이콧한 건 아니지만 자국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외국 기업 제품들을 보이콧하였기에 갈등이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외국 기업들은 최대한 본인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자국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외국 기업과 대립하기 때문이다.유키지루시 유업 보이콧 사건 또한 갈등 이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유키지루시는 일본에서 막강한 매출을 올리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식중독에 걸린 소비자들을 통해 유키지루시는 잘못된 생산체계를 갖고 있음이 드러났고 소비자들의 보이콧으로 폐업에까지 이르게 된다. 잘 짜이지 않은 체계에선 갈등이 필연적이라는 갈등이론에 부합하는 사례이다.(3) 국가 간의 보이콧앞서 사례로 들었던 국가 간의 보이콧을 갈등이론으로 바라보자면, 미국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본인들의 의견과 대립되기 때문에 소련의 올림픽 출전 여부를 통해 갈등을 빚었다.갈등이론가들이 보기에 사회는 어떤 집단이 더 강력한가와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갈등과 긴장을 포함한다. 갈등이론이라고 해서 계급에 따른 갈등만이 갈등이론은 아니다. 1980년대의 미국과 소련은 올림픽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덕분에 다른 나라들까지 출전하지 않는 반쪽짜리 올림픽을 만들기까지에 이르렀다. 국가 간의 의견 차이가 갈등을 빚었고 결국 변화를 일으켰다.
스토리텔링전략 기말고사 과제 기획안 발표캔모아 살리기캔모아 살리기 프로젝트 명 총각네 캔모아시장현황 식지 않은 웰빙열풍시장현황 웰빙에 부합하는 과일 주스 시장 2017 외식 트렌드 “ 패스트 프리미엄 ” 간편하고 빠르지만 , 건강하고 알차게 !시장현황 캔모아 생과일 전문점 프랜차이즈 주 메뉴 – 생과일주스 , 눈꽃빙수 , 바람난떡볶이 주요 타겟층 – 20~30 대 여성 건강과 미용을 고려한 생과일 메뉴 多문제점 캔모아 중구난방하고 계절감 없는 메뉴 간편하지도 , 건강하지도 않음 적은 가맹점 수 , 낮은 화제성극복방안 캔모아 중구난방하고 계절감 없는 메뉴 주력 메뉴 빼고 정리 , 계절에 맞는 신메뉴 개발극복방안 캔모아 간편하지도 , 건강하지도 않음 테이크 아웃 서비스 ,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재료 사용극복방안 캔모아 적은 가맹점 수 , 낮은 화제성 수도권 중심 가맹점을 갖고 있는 타 브랜드와 연합주력 메뉴 빼고 정리 , 계절에 맞는 신메뉴 개발 테이크 아웃 서비스 ,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재료 사용 수도권 중심 가맹점을 갖고 있는 타 브랜드와 연합왜 ‘ 총각네 ’ 인가 ? 1. 계절에 맞는 신메뉴 개발 가능 ! - 매달 계절감있는 이달의 추천상품을 제공 !왜 ‘ 총각네 ’ 인가 ? 2. 신선한 재료 , 재료 자체가 레시피 ! - 신선한 과일을 갈기만 해도 주스 완성 , 간편하게 테이크아웃 가능 !왜 ‘ 총각네 ’ 인가 ? 3. 신선한 재료 , 건강에도 좋다 ! - 신선한 재료 만으로 ‘ 패스트 프리미엄 ’ 반열에 합류 가능왜 ‘ 총각네 ’ 인가 ? 4. 전국 50 여개의 가맹점 ! 대부분 수도권 중심 - 수도권에 밀집해있는 가맹점 , 캔모아와 콜라보 했을 때 매출도 up 화제성도 up콜라보 방법 총각네 과일 + 캔모아의 레시피 총각네 점포에 캔모아 코너 입점 자체 매장에서는 총각네와 콜라보한 메뉴를 주력 판매레시피 과일 , 야채 B to B B to C주 연령층 : 40 대 이상 중년 주부 가맹점 위치 : 수도권 , 주택가나 아파트 야채 , 과일 , 야채와 과일을 이용한 건강식품 판매 주 연령층 : 20~30 대 여성 가맹점 위치 : 지방 , 번화가 주스 , 빙수 , 빵 등 카페 타겟층을 40 대 이상 중년에서 20 대까지 확장 캔모아와의 콜라보 메뉴로 총각네가 선보이는 건강식품에 차별화를 부여 총각네의의 가맹점에 캔모아 입점 , 캔모아는 자체매장에 총각네의 과일과 콜라보 음식을 파는 PUP 카페로 유지20~30 대 젊은 여성 타겟층 확장 30 대 젊은 주부 40 대 이상 중년 주부구체적인 메뉴 설정 20~30 대 젊은 여성 40 대 이상 중년의 주부 생리통 완화 주스 해독주스 ( 다이어트 ) 뷰티 주스 성장주스 수능에 좋은 주스 고혈압에 좋은 주스 변비탈출주스 야근주스 환절기 면역력 주스 예시 ) 합집합 전체를 메뉴로 선정하되 , 주력메뉴는 교집합 부분그 외 구체적 판매 방안 총각네에서 직접 원하는 과일을 골라 주스나 빙수로 신청 가능 건강주스는 따로 메뉴를 만들어 판매 , 건강주스에 사용되는 과일만 따로 묶음으로 판매 ‘ 오늘의 과일 ’ 을 설정해 원 판매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홍보 방법 아파트 입구에 이벤트성 푸드트럭 설치 이벤트 : 월별 특별 프로모션 – 그 달의 제철과일을 만 원 이상 구매한 손님에게 캔모아 주스 1 잔 무료 제공{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