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만, 우리의 고민과 걱정도 함께 자란다.키워드: BRCA 유전자 돌연변이, 유전자 검사, 유방 난소 제거수술, 유전자정보 보호, 인간 유전자 특허현대사회와 과학기술 수업시간에 In the family 라는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8년 미국에서 발표된 작품으로,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조애나에 의해 제작되었다. BRCA 유전자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면 암세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암세포를 막아주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암은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돌연변이가 생길 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약 80-90%,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약 60%에 달한다고 한다. 더불어 이 유전자 돌연변이는 가족 내에서 대물림 될 가능성이 아주 크기에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조애나는 BRCA 유전자 돌연변이 양성 판정자이다. 그녀의 여성 가족들은 대대로 이 돌연변이를 물려받아 난소암과 유방암 투병을 하게 되었고, 조애나 또한 예외 없이 엄마로부터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물려받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굉장히 높은데, 불행히도 현재까지는 유방과 난소의 절제수술만이 이들의 발병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줄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아래 조애나는 현재는 암환자가 아니지만 앞으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미리 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는 대신 정기 검사를 통해 암 발생 여부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녀는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조애나는 유전자 검사를 1/5밖에 받지 않는 흑인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마사’,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물려받았을까봐, 더불어 자식에게 돌연변이를 물려줬을까봐 걱정하던 ‘올가’, 세 딸 중 첫째를 제외한 두 자매가 엄마로부터 유전자 돌연변이를 물려받아 슬픔에 빠진 ‘졸리헹키 세자매’ 등 많은 BRCA 유전자 돌연변이 소유자 혹은, 그들의 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조애나가 ‘린다’를 만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녀와의 만남이 조애나가 최종적으로 내린 선택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린다는 BRCA 유전자 돌연변이 소유자로, 절제수술을 받지 않고 암 검사만 계속해서 해오다가 결국 암에 걸리게 된 사람이다. 즉, 암은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정기 검사를 해도, 암 발병의 위험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린다는 조애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제거 수술을 받고 싶다는 후회의 말을 남겼고, 그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조애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검사를 받으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린다의 발병과 죽음이 정기 검사를 해도 BRCA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암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그녀는 수술을 받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후에도 제거 수술을 한 것을 당당하게 여기고, 수술 후 건강하다는 것에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그녀는 제거 수술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나는 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 가족이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면, 나는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 이다. 영상에 등장한 마사의 언니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싶지 않다면서 유전자 검사를 거부한다. 하지만 나는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전자 검사를 하던, 하지 않던 내가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으면 내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이미 가족 중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는 마냥 긍정적인 쪽으로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또한 검사를 하지 않고 외면하고 살다보면 아무 대비를 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지만, 검사를 해서 내가 돌연변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죽지 않기 위해 수술이나, 정기검진을 받는 노력을 함으로써 암에 대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다음 질문은 ‘내가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면 절제수술을 할 것인가’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하겠지만, 지금 생각했을 때 나는 절제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방과 난소는 여성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방이 없다면 여성으로써의 자존감이 하락할 것이며, 이성과 교제할 때, 옷을 입을 때 등과 같이 평소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들에 대해 스스로 굉장한 자격지심을 느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시선도 심각하게 의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난소가 없다면 아이까지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수술을 해서 건강한 몸을 얻는다고 할지라고 그 후의 삶이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 할 것이지만, 그 후에는 열심히 검진을 받고 관리를 하면서 최대한 암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또 다른 질문은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면 아이를 낳아야 할까?’ 이다. 다큐에서는 조애나의 엄마와 더불어 자식에게 돌연변이를 물려주는 것을 미안해하는 부모와, 물려줄까봐 두려워하는 부모들이 나온다. 나는 이를 보고 BRCA 유전자 돌연변이 소유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걱정과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지, 암에 걸리지는 않을지, 절제수술을 해야 하는지 등의 것들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다는 것은 이러한 고통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 밖에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은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잘못하면 나의 자식까지 나와 같은 고통을 겪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써 유전자 돌연변이가 대물림 되는 것을 나의 선에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이러한 질문들에 더불어 유전자 정보를 보호하는 대책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애나가 유전자 검사를 할 때 보험에 불이익이 있을까 염려하여 보험회사에 검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듯이, 앞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 점차 보편화 된다면 사회 내에서 각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차별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보험뿐만 아니라, 직장, 진학 등에서도 이러한 차별이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08년에 미국에서 유전자 정보 차별 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처럼 전 세계 국가들이 이와 같은 대책을 세워, 첨단 의학과 생명과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유전자 정보로 인해 차별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문화산책 박치기 감상문1.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 관계를 정리하시오.영화 ‘박치기’ 에서는 1968년 당시 일본 교토에 사는 재일동포 자이니치와 일본인들의 갈등관계가 드러난다. 첫 번째 갈등 상황은 히가시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조선학교 여학생들을 희롱하면서 발생한다. 히가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일본 남학생들은 지나가던 조선학교 여학생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시비를 걸던 남학생 중 한명은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인 경자를 희롱하면서 저고리에 검은 액체를 뿌렸다. 나는 이 때 조선학교 여학생들을 괴롭히는 히가시 고등학교 일본인 남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재일동포들을 자신들보다 현저히 낮은 존재로 평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굉장한 불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며, 조선학교 여학생들의 치욕스러운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히가시 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후, 한 친구의 부름으로 조선고교의 많은 학생들이 히가시 고등학교 학생들을 찾아온다. 경자의 오빠인 안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고교 학생들은 경자의 치욕을 되갚아주기 위해 히가시 고등학교 일본인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 과정에서 아무 관련이 없는 남자주인공 코우스케도 폭력을 당했다. 결국 이 싸움은 조선고교 학생들이 히가시 고등학교 학생들이 타고 있는 버스를 옆으로 넘어트려버리면서 일단락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재일교포들과 일본인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사이의 갈등의 골이 굉장히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버스를 사이에 둔 두 학교 사이의 싸움이 있은 후 이번에는 히가시 고등학교의 일본인 남학생들이 이전의 치욕의 복수를 위해, 조선고교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안성의 패거리가 놀고 있는 볼링장을 찾아온다. 이곳에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잔인한 싸움이 벌어진다. 조선고교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은 무기를 들고 격렬하게 서로에게 폭력을 가했으며, 안성은 박치기를 해서 히가시 고등학교 학생들을 때려눕혔다. 이 장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들 간의 관계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조선고교와 히가시 고등학교 사이에서 이러한 두 번의 큰 싸움이 벌어진 후, 히가시 고등학교의 제안으로 마냥 달갑지 만은 않은 친선축구경기가 벌어진다. 하지만 두 집단 사이의 관계 개선을 위해 열린 이 축구대회에서마저도 갈등이 생긴다. 축구를 하던 일본인 학생 한 명이 경기 도중 조선고교 아이를 때렸고, 이를 기점으로 안성이 일본인 학생을 박치기해버리면서 두 학교사이에서 다시 한 번 싸움이 일어났다. 이렇게 화합을 위해 어렵게 열린 축구경기 마저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결국에 싸움으로 끝나는 모습을 보니 이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일본인들이 저렇게 나오는데 나 같아도 화합을 하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싸움 이후에도 일본인 학생들이 안성의 패거리를 찾아와 무기로 조선고교 학생들을 때리고 학생들 위에 오줌을 싸고, 시멘트 까지 부어버리는 아주 치욕적인 사건도 발생한다. 나는 그저 조선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조선고교 학생들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한 이 장면은 아무리 조선고교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에게 복수를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일본인에게 당하게 된다는 그 당시의 재일동포들의 현실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듯 했다.영화의 마지막까지 두 학교 학생들의 갈등은 해소되지 못한다. 안성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히가시 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안성의 교복 상의를 대신 입고 있던 재일동포 친구 재덕이가 폭력을 당해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에 의해 유일하게 재일동포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대우를 받던 남자주인공 코우스케도 재덕의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에 의해 문전박대를 당하게 되고, 재덕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중점으로 한 싸움이 다시 한 번 조선고교 학생들과 히가시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이 싸움은 비기면서 끝이 나게 된다. 결국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갈등상황은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핏줄을 가진 재일동포들을 철저하게 하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재일동포들은 그동안 일본에게 조국을 뺏기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뿐만 아니라, 일본에 사는 동안 그들에게 당해온 차별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재일동포들을 하등하게 생각하고, 재일동포들은 일본인들에게 당해오면서 받은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두 집단이 쉽게 화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신들의 의식은 고치지 않았으면서 단순히 친선 축구로 화합을 제안하는 히가시 고등학교 측의 태도 또한 불쾌하게 느껴졌다. 자신들이 먼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일본인들의 의식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2. 영화는 시대 배경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이 영화는 1968년도 일본 도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 된 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된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일본에 살던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어떠한 차별을 받아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우선 일본인들과 재일동포들은 거주지부터 나눠져 있었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북남으로 나눠져 있는 거주지의 모습에서부터 재일동포들은 일본인들과 철저히 분리된 대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술에 취한 남자주인공 코우스케를 집에 데려다준 재일교포 친구들과 코우스케 엄마와의 만남에서도 일본인들의 재일교포를 향한 차별적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코우스케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함께 노는 친구들이 조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그들을 떨떠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또한 조선학교 친구들이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자, 왜 배를 타고 가냐고 비행기는 없냐고 묻는다. 이 장면을 통해 이 당시 남한을 비롯한 북한은 일본에 비해 낙후한 상황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더불어 조선학교 아이들이 자신의 아들을 조선식 이름인 ‘강개’ 라고 부르는 것은 달갑지 않게 여기는 표정을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재일동포를 향한 일본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일본에 의해 차별 받던 재일동포들의 처지는 재덕의 장례식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인들의 무차별한 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재덕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 장례식에는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재일교포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남자 주인공 코우스케가 참석한다. 하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어른들은 코우스케를 탐탁치않게 생각하고 그를 쫒아낸다. 이 장면에서 어른들은 코우스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 야생초 이런 것 먹어본 적 있냐? 종이 한 장 주더니 모내기 할 때 다 실어 가버렸다. 고향이 텅 빌 정도로 끌려왔다. 일본 애들은 아냐? 이코마 터널 누가 팠는지? 누가 국회의사당 세웠는지?…… ”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타지인 일본 땅에서 엄청난 노동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국이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이후에 조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며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차별받고 핍박 받으며 증오의 대상인 일본에 살고 있다. 또한 그들의 2세, 3세, 후손들 까지 일본인들에 의해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 조선고교 학생 ‘재덕’이 일본학생들에 의해 죽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러한 재일교포들의 현실을 이 영화를 통해 실감하며 굉장한 분노를 느꼈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노동을 견뎌내다가 여전히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에 살게 된 사람들이고 그들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순전히 일본인들의 잘못으로 인해 이러한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계속해서 이들에게 고통을 가하고 차별을 했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왜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하려고 했던 것인가? 나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재일 교포들이 굉장히 안쓰럽게 느껴졌다.이 영화 속에서는 재일 교포들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의 문화적인 면모들도 엿볼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밴드 OX가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 코우스케도 이들의 버섯머리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고, 자신도 밴드를 구성하기를 원한다. 이처럼 이 당시에는 밴드음악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코우스케에게 기타를 알려준 명문대 출신인 사카자키가 자유를 갈망하며 외국에 다녀왔다가 히피가 되어서 돌아온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이 당시 일본에 히피 문화가 유입되었다고 한다. 희귀동물 ‘레오폰’도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안성의 여자 친구가 레오폰을 보러가자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일본에서는 실제로 암컷 사자와 수컷 표범을 결합시킨 레오폰이라는 희귀 동물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 영화가 당시 일본의 사회상 또한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 ‘믿음’을 통한 후지누마 사토루의 성장서론‘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다. 나는 이 중 사람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믿음이란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점차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이 마냥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여기지지는 않고 있다. 개개인 사이의 신뢰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풍토가 생겨났으며, 사람들 사이의 신뢰 관계를 이용한 각종 범죄 등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더 이상 타인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경쟁사회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성공을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해야 했고, 남보다 못한 자신의 모습에 절망함으로써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이처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믿음을 쉽게 가지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나는 TV 애니메이션 나만이 없는 거리의 주인공인 후지누마 사토루가 믿음을 통해 성장하였음을 주장하며 이를 통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한다.나만이 없는 거리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장르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주로 사건의 해결과 추리과정에 중점을 두고 스토리가 진행된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극의 초반부에서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 외톨이 같이 지내던 주인공 후지누마 사토루가 어떠한 요인 때문에 극 후반에 가서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히어로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 했는지에 대해 주목해보았다. 그 결과 후지누마 사토루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나는 이처럼 사토루가 성장하는데 영향을 줬던 믿음을 총 3가지의 종류 전과 동일하게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사토루는 다시 원래의 시공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긍정적으로 해결 된다면 사토루는 그때의 시공간에서부터 다시 살아가게 된다.그러던 어느 날, 후지누마 사토루의 엄마는 후지누마 사토루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인 히나즈키 카요가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아동 유괴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다. 이로 인해, 후지누마 사토루의 엄마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진범에 의해 집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하게 된다. 배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지누마 사토루는 엄마의 죽음을 발견하게 되고, 마침 집에 방문했던 이웃주민에 의해 엄마의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에게 뒤 쫒기는 신세가 된다. 경찰의 추격으로부터 도망을 다니던 후지누마 사토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로 리바이벌 하게 되고, 그는 자신이 이 시기로 리바이벌 하게 된 것을 말미암아, 엄마의 죽음과 이 당시에 일어났던 큰 사건인 같은 반 친구 히나즈키 카요의 죽음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래서 후지누마 사토루는 결과적으로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리바이벌로 돌아간 과거 속에서 엄마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카요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3. 믿음이 결여된 삶을 산 초등학교 5학년의 후지누마 사토루(1) 과거의 후지누마 사토루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탓에 매사에 용기가 부족했으며,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꿈을 이룰 리가 없다고 생각해 모두에게 자신의 꿈을 숨겼다. 그는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의 원래 성격으로는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로인해 그는 남 앞에서 착하고, 상냥한 모습을 가진 사람인 것 마냥 연기를 했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으며, 남을 연기로 대하는 만큼 자신도 남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2) 과거의 후지누마 사토루는 남을 믿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못하는 성격 탓에 친구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직원들과도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리바이벌이라는 능력을 갖게 된 후지누마 사토루는 리바이벌을 통해 사건을 해결 할 때에도 여전히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해, 혼자서만 사건을 해결하려다가 수도 없이 다치기도 했다. 더불어 과거에 자신을 믿어주지 못한 엄마와는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죽게 되면서 사토루는 이웃주민들과 경찰에 의해 용의자로 내몰리게 되었고, 과거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또 한 번 일어나자 그는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5.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후지누마 사토루후지누마 사토루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의 살인 용의자로 몰려 패닉에 빠진 후지누마 사토루는 1988년 2월 15일로 리바이벌 하게 되었다. 즉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시절로 리바이벌 하게 된 것이다. 리바이벌은 어떠한 사건을 해결해야 할 때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후지누마 사토루는 자신이 이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 친구 히나즈키 카요가 관련된 아동 유괴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 사건이 자신의 엄마의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사토루는 어쩌면 이 리바이벌이 죽은 엄마를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스스로 ‘나는 미래를 바꿀거야!’ 와 같은 다짐을 되뇌이며 자기 자신을 믿어보고자 하였다. 즉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내서 카요와 엄마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6. 여전히 남을 믿지 못한 후지누마 사토루후지누마 사토루는 아쉽게도 여전히 남을 믿지 못했다. 후지누마 사토루는 엄마와 카요를 구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전과 달리 자신을 믿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을 믿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온 후지누마 사토루는 여전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조 하는 마음은 아이리를 위한거야. 누군가가 자기를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대로 반영된 것이야.’ 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즉 아이리는 후지누마 사토루를 믿고 싶어서 그를 믿는 것이며, 결국에는 후지누마 사토루도 자신을 믿어줬으면 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후지누마 사토루는 아이리의 진심을 믿게 되었으며, 아이리의 자신을 향한 믿음을 통해 자신도 아이리를 믿게 되었듯이, 자신도 남에게 믿음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남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9.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진 후지누마 사토루후지누마 사토루는 타인으로 부터의 신뢰를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시 회복했다. 현재로 돌아온 후지누마 사토루는 현재에서라도 아동 유괴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엄마의 전 직장동료이자 사회부 기자인 사와다씨를 찾아가게 된다. 그는 후지누마 사토루의 엄마인 후지누마 사치코씨가 엄마를 죽일 만한 아들을 키웠을 리가 없다며 후지누마 사토루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어줬다. 사와다씨 뿐만 아니라 아이리도 사토루에게 ‘좀 더 자신을 믿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해’ 라는 말을 해줬다. 사토루를 향한 이 두 사람의 믿음을 통해, 이전의 사건 해결 실패로 인해 약해진 사토루 자신에 대한 믿음은 다시 한 번 견고해졌으며, 이를 계기로 한 번 더 리바이벌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10. 자기 자신을 믿는 후지누마 사토루다시 한 번 리바이벌을 통해 과거로 돌아온 후지누마 사토루는 더 강해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오늘부터의 행동으로 미래를 바꾼다!”, “미래는 확실히 변하고 있어. 분명히 잘 될거야!”, “두 번 다시 같은 아픔은 겪고 싶지 않아. 누구도 혼자 있게 두지 않겠어. 나라면 구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을 스스로 되뇌이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졌다. 후지누마 사토루는 이러한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그는 카요가 납치당하는 것을 막기 정의의 편이 되고 싶어.’, ‘나를 믿고 말해줬으니까 나도 너를 믿고 싶어.’ 와 같은 신뢰의 말을 전했으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토루를 도와서 카요가 가정 학대와 납치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후지누마 사토루의 엄마도 자신의 아들을 믿고 도움을 줬다. 그의 엄마는 과거에는 아동 유괴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입장이었다기보다는 사건을 축소시키는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과거에는 그녀의 아들인 사토루가 카요와 그리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가 카요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요가 유괴 살인을 당하게 되었고, 그 사건이후로 큰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해 하는 자신의 아들을 지켜봐야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계속해서 그 사건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직장 동료인 사와다씨에게 부탁해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기사가 더 이상 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즉 언론을 탄압해 이 사건이 계속해서 화제가 되는 것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리바이벌을 통해 새롭게 진행된 과거 속에서의 엄마의 모습은 전과 다르다. 사토루는 과거와 달리, 카요를 가정 학대와 유괴 살인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 엄마를 믿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사토루의 엄마는 혼자 은신처에서 생활하는 카요에게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고, 집에 카요를 데리고 와 따뜻하게 보살펴 주기도 했으며, 카요의 집에 찾아가서 가정 폭력을 당할 위험에 처해있던 카요를 구해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카요의 엄마에게 맞아 자신이 다치는 수고를 감수해가면서까지 카요가 사토루의 바람대로 엄마의 곁을 떠나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담임선생님인 야시로도 후지누마 사토루를 믿고 도움을 줬다. 그는 과거에는 카요가 부모님으로부터 학대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요의 엄마가 아동상담소와의 만남을 몇 번 거절하자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은 후지누마 사토루에 의해 변화하게 되었다. 리이다.
‘파인딩 포레스터’ 영화 감상 비평문미국의 유명 영화감독 구스 반 산트의 작품 파인딩 포레스터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자말과 포레스터이다. 이 둘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자말은 미국의 슬럼가에서 가난하게 자라온 흑인 남학생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간 것에 대해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자말은 그 상처를 외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서를 선택했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독서로 인해 그는 뛰어난 글쓰기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사립학교에 스카우트 되었다. 포레스터는 과거에 쓴 단 한권의 책으로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현재에는 홀로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과거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징집되었던 포레스터의 동생은 전쟁에 대한 후유증을 떨치지 못해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동생의 죽음으로 포레스터의 가족은 붕괴 되었고,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의 해체라는 가슴 아픈 현실은 포레스터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게 만들었다.이와 같이 공통적으로 가족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말과 포레스터는 처음에는 전혀 친분이 없던 사이였지만 자말이 포레스터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가 가방을 놓고 온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는 관계가 된다. 포레스터는 글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말에게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자말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포레스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우정을 싹 틔웠고, 궁극적으로 두 사람은 우정을 넘어 서로 교감을 나누는 ‘대체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는 자말과 포레스터 두 사람의 관계의 발전에 주목하고 있다.나는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의 발전 과정을, 자말이 포레스터의 집을 드나드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연출에 주목해보았다. 자말과 포레스터가 전혀 친분이 없는 상태였을 때, 자말은 잠겨 있는 창문을 따고 포레스터의 집안으로 무단 침입한다. 이 때 카메라는 자말이 따고 들어오는 창문을 주목한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은 자말이 포레스터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이 아닌 창문을 따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둘 사이에 전혀 친분이 없음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꽉 닫힌 포레스터의 마음에 자말이 먼저 허락을 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왔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 다음에 자말과 포레스터가 다시 대면하게 된 순간, 자말은 포레스터의 집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문 위에 나있는 작은 우편구멍을 사이에 두고 포레스터와 대화를 나눈다. 이때 카메라의 시선은 문을 향하고 있다. 여전히 자말은 포레스터의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위치이지만, 이렇게 문에 나있는 구멍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포레스터가 자말을 전보다 편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한층 더 둘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였을 때에는 포레스터가 자신의 집 문을 직접 열어주고, 자말이 그 문을 통해 포레스터의 집 안으로 들어선다. 이때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인물들의 모습과 함께 문을 풀샷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제는 자말이 문을 통해 포레스터의 집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포레스터에게 친밀한 존재가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후 이 둘이 같이 밥도 먹고, 여자 친구 이야기도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로 거듭났을 때에는, 자말이 아예 직접 열쇠로 문을 열고 포레스터의 집안으로 들어온다. 이 때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자말이 문을 열고 들어온 열쇠만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해서 잡아주고 있다. 이는 포레스터만의 공간인 집에 대한 자말의 완전한 소속, 즉 깊어진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