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이미 알고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이미 알고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어릴 적, 1년 중 내가 가장 기다렸던 날은 단연 ‘설날’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는 모습, 가족과 친척할 것 없이 많은 지인이 모여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 같은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설날을 기다렸던 진짜 이유는 ‘세뱃돈’이었다. 일주일 용돈 5000원으로 하루하루를 짜게 보냈던 나에게 설날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이 간절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내가 설날에 받는 세뱃돈에 대해 부모님은 일절 관여하지 않으셨기에 세뱃돈은 나 자신에게 영웅적인 역할이었다. 중학교에 들시작했으며, 어간 후에도 친구들과 놀다 보면 언제나 용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배’라는 작은 수고의 대가로 돈을 벌 수 있는 설날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지금도 가족들은 우스갯소리로 내 어릴 적 그림 일기장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설날이다. 행복하다.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지난 설날, 처음으로 친척 동생들에게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었다. 절을 받는 입장에서 이전의 나를 돌아보았다. 내 그림 일기장에 적혀있던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있는 날”이라는 문장은 얼핏 귀여워 보일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뜨끔할 내용이다. 세배를 처음 배울 때, 부모님이 가르쳐주고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절을 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귀엽다며 돈을 쥐어주셨다. 하지만 세뱃돈을 받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세배를 하면 돈을 받는다는 것을 학습하였고 반복된 행동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즉, 아주 이미 어렸을 때부터 설날을 전통적 가치보다 세배하면 돈을 받는다는 자본주의적인 시장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어린 친척 동생에게 절을 받고 돈을 주는 것이 망설여졌다. “내가 절을 받았다고 돈을 주는 것이 옳은가?”, “어릴 적 나와 같이 설날을 세배와 돈이 교환되는 시장이라고 여기진 않을까?”, “내가 주는 돈이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설날의 전통적·가족적 가치를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한 권의 책에서 찾고자 한다.내가 말했던 세뱃돈의 사례와 같이 샌델은 옳은 것들에 대해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킨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면 돈을 준다고 하는 행위는 아이들의 독서량을 늘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책을 읽고 느끼는 정신적 만족이나 기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은 독서 자체를 노동으로 인식하고 노동의 대가가 없다면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기부금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사례가 대학 재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대학의 품위와 공정성의 가치에는 해를 끼칠 수 있다. 이처럼 시장 가치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비시장적인 가치를 밀어내고 있다.더불어 시장의 논리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시장은 그 자체로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성매매를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할 때, 경제학자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가격이 얼마에 형성되어 있죠?”라는 것 뿐이다. 시장은 훌륭하거나 저급한 선택을 구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샌델은 우리 주변으로부터 무엇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 무엇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인지 ‘토론하기’를 주장한다.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정해야 하며, 그것은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수많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서 시장은 어떤 역할인가?, 어떤 재화가 비시장적인 가치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판단하는가? 시장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어디인가? 등의 주제와 딜레마를 통해 사회적인 합치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 샌델의 의도일 것이다.시장의 횡보는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들어와 있다. 인센티브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샌델은 인센티브의 효용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연과 비만의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매년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금연, 비만과 관련해 수천억원을 쏟고 있다. 하지만 집행하는 예산에 비해 효과는 미미하다. 우리나라와 반대로 미국은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직접 돈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미국 정부는 큰돈을 지출하는 의료정책에 비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이며, 효과도 직접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혜자 입장에서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 생각하여 정책을 처음 시행할 때에는 인기를 얻었지만, 점점 중도탈락자가 많아졌다. 한순간 성공하여 보상을 가져간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시 흡연하거나 비만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 정책에는 어떤 결함이 있었을까?. 샌델은 금전상의 동기가 더욱 바람직한 다른 동기를 밀어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인센티브의 효용과 관련해 이전에 봤던 TED 강연이 떠올랐다. 한 미래학자가 동기부여에 대한 실험결과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실험 참가자 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성과가 낮은 참가자에게는 낮은 보상을, 성과가 중간 정도인 참가자에게는 중간 정도의 보상을, 성과가 높은 참가자에게는 높은 보상을 지급하는 실험이었다. 일반적으로 보상이 크면 성과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경제학자를 포함한 주최 측을 포함하여 나의 상식을 뒤집어 놓았다. 실험 초기, 단순하고 기계적인 과제에서는 인센티브가 큰 효과를 발휘했지만, 창의적·감성적 능력을 요구하는 과제에 대해서 오히려 보상이 가장 큰 그룹의 성과가 좋지 않았다.그 미래학자는 인간은 단지 금전적 보상으로는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오히려 동기부여가 인간의 주도성, 목적성에 의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미래학자가 주장했던 이런 요인들이 샌델이 주장하는 비시장적인 가치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이 인센티브가 동기부여를 만들고, 큰 인센티브가 큰 성과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선 사례를 떠올려보면 동기부여는 인간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