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명화속 성이야기레포트국립중앙박물관인문학과 명화속 성이야기 레포트주제:기생1. 주제를 선정하게 된 이유:현재 우리에게 ‘기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좋은 시선에서의 의미는 안 나올 듯하다. ‘기생’에 대한 오늘날 관념은 남성의 노리개라는 정도다. 그러나 기생은 예전의 신분 사회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매우 독특한 지위를 가졌다. 여염집 아녀자들과 달리 남성들의 세계를 경험하고 남성과 함께 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정도의 지식을 소유한 여성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기생에 대한 실체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는 조선시대 풍속화로 유명한 신윤복의 작품을 가지고 그가 어떻게 당대 기생을 표현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신윤복의 청금상련을 중심으로 당대 사회 기생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2. 기생의 의미기생이란 ’춤,노래 또는 풍류로 주연석이나 유흥장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 민기(民妓), 약방기생, 상방 기생 등 예기(藝妓)의 총칭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는 기생이 지닌 기예와 웃음, 성(性) 등으로 남성들에게 기쁨을 주는 천민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3. 작품 내용과 비판할 점1) 작품 내용과 분석 : 신윤복-청금상련그림 2 신유복.청금상련먼저 작가 신윤복에 대해 살펴보자. 신윤복의 대표작 「청금상련」은 배경이 사대부가의 안 뜰이다. 복장을 보아 꽤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양반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양반들은 의복과 얼굴, 배경 등에서 양반임을 증명하고 있다.그러나 그림에서 양반의 몸짓은 그들이 주장하는 도리에 어긋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사방건은 팽개쳐놓고 기생을 무릎에 앉히고 희롱하고 있는 장면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 대담하고 파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윤복은 풍자가 아닌 오히려 양반들의 당연한 모습인양 이를 그려 넣고 있다.왼쪽의 남자는 기생을 무릎에 앉히고 희롱하고 있다. 남성은 여성의 손 그 위로 자신의 손을 올리고 있으며, 여성을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여성은 붉은 입술과 흰 피부로 표현돼 있으며 포개어지지 않은 손으로는 부끄러운 듯 볼을 만지고 있다. 그리고 표정은 남성이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며 부끄러운 듯 내숭을 떤다. 붉은색은 성적으로 흥분을 불러오는 색이다. 여인의 붉은 입술은 성적인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담벼락에 둘러싸인 곳 (은밀한 곳)에 남자의 벌려진 다리 속에 들어와 앉은 여성은 권위적인 남성의 자세에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수응 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생은 남성들에게 성적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라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 이는 신분적 차별(양반과 기생),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여성의(남성과 여성) 부당한 성 취급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머리 올림, 흰 피부, 가는 눈썹은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도 볼 수 있듯 당대 미인 기준임을 유추할 수 있다. 화려한 화장과 겉치레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이상적인 여성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성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그림 3 신윤복.쌍검대무 오른쪽 여자를 보면 한 여자는 담배를 물고 있으며,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기생은 성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주연석이나 유흥장에서 흥을 돋는 역할(예술적인 역할)도 담당했다. 그래서 기생이 되기 전 몇 년 동안 춤과 노래를 갈고 닦았다. 이 작품에서는 가야금을 연주하며 흥을 돋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술인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신윤복의 다른 작품 ‘쌍검대무를 보면 기생들이 화려한 옷들을 입고 화려한 춤으로 양반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주로 양반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에 기생들은 무도,무예 부문에서 능하고 뿐만 아니라 학식과 교양도 훌륭했다.2)작품에서 비판할 점사실 신윤복의 청금상련 작품은 작가는 기생을 풍자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유교적 가치관에 대립되는 양반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한 의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기생의 역할에 대해 파헤치는 것에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장점이 되었다.이 작품에서는 기생을 성적인 역할뿐 아니라 예술적인 역할도 표현한 작품에서 당대 기생의 역할을 잘 표현한 것 같아 선정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기생을 그린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기생의 성적인 매력을 표현하는 요소가 부각 되지 않은 것 같다. 큰 장신구를 차지도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지도 않았다. 아마 작가는 기생을 초점을 맞추어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닌 이런 상황을 표현하려 한 것 같아서 여성의 성적인 매력을 표현하는 요소가 부족한 것 같다.
중국예술감상Ⅰ. 서론주제 선정 이유Ⅱ. 본론1. 한국의 판소리1)정의2)개관3)구성요소4)특징 및 의의2. 중국의 경극1)정의2)형성3)내용형식4)연출5)소도구/의상6)배역3. 한국의 판소리와 중국 경극 공통점4. 한국의 판소리와 중국 경극 차이점Ⅲ. 결론Ⅰ. 서론1. 주제 선정 이유중국예술 감상이란 과목을 선택했던 이유는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나라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다.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기 위해 맨 처음으로 관심 있는 예술 분야로 접근하기로 했다. 강의를 수강하던 중 처음 배우는 지식들 가운데 익숙한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경극이었다. ‘베이징 오페라’라고도 불리는 경극을 말로만 들어봤었는데 과목을 수강하며 경극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경극 강의 내용을 듣던 중 한국의 판소리와 비슷하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수업시간에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 판소리와 경극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하고 싶었다. 한국에는 중국의 예술에 대해서는 아직 다뤄진 서적이 많이 없지만, 그 중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온 중국 경극이 있다. 그래서 중국예술감상 과제를 통해 경국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고, 한국의 판소리와 비교하여 중국에 대해 한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중국예술감상 과제 주제를 경극으로 정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중간고사 시험 당시 경극이 생겨난 배경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썼던 답을 지우고 망설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듣고 배우는 것이 앎이 아닌 설명하고 쓸 수 있을 때 까지가 앎의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경극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직접 조사해 봄으로써 진정한 앎의 단계에 도달하고 싶다.공부를 할 때 아는 것과 비교해서 공부하면 더 오래 기억되듯이 우리나라의 친숙한 판소리와 비교해 알아보고 싶다. 지금부터 한국의 판소리, 중국의 경극에 대해 알아보고, 두 종류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Ⅱ. 본론1. 한국의 판소리1)정의나 와 같이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의 연희에 중인과 양반층이 향유층으로 참여함에 따라 그 사설이나 연행 방식이 세련되면서 전 계층을 아우르는 전국적인 예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판소리 사설에는 이를 전승하고 향유했던 서민들의 생각과 꿈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양반들이 향유층에 참여하면서 양반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들이 가미되기도 하였다. 전승이 활발해지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동편제와 서편제의 유파별 특성이 확립되었고,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판소리계 소설과 사설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산조(散調)도 나타났다. 또한 중국이나 서양 극양식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창극(唱劇)이나 악기의 반주로 이루어지는 병창(竝唱)이 활발하게 공연되면서 판소리의 외연(外延)은 더욱 넓어질 수 있었다. 현재는 판소리를 중요무형 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전승하도록 제도화하였다. 본래 열두작품이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작품들은 탈락하고,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 적벽가(水宮歌)>의 다섯 작품만이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한 채 불리고 있다.3)구성요소판소리는 연창자인 소리광대와 북재비인 고수 및 청중으로 이루어져 있다.연창자판소리에서 주되는 인물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소리하는 연창자이다. 연창자는 여러 가지 형상적 표현수단을 이용하여 판소리대본을 청중에게 전달하여 그들의 사상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적으로 판소리를 독연 형태의 독특한 음악극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연창자의 형상적 표현수단에서 중요한 것은 ‘창(唱, 소리)’, ‘아니리’, ‘너름새’ 등이다.고수판소리구성에서 주되는 인물은 연창자와 함께 고수인데 고수는 북장단으로써 연창자를 인도하며 청중과 호흡을 맞춘다. 북 하나로 반주하는 고수는 북장단을 치면서 때로는 ‘얼씨구’, ‘좋다’, ‘으이’ 등의 말을 덧붙여 연창자의 흥취를 돋우며 청중의 인기를 끈다. 이때 고수와 청중간의 호흡을 맞추는 것을 짜임새라고 한다. 고수의 북장단은 판소리의 주요한 음악구성의 하나로서 판소리에 쓰인 장단에는 진양조, 중원형이나 타원형으로 청중이 마주하는 단출한 모습으로 이루어진다.그런데 연창자와 고수는 결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청중 또한 그 예술에의 참여를 위해 상대의 구획을 침범하지 않는다.4)특징 및 의의판소리는 가곡,범패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 성악의 한 갈래로 조선 후기 민속음악 중 광대들이 발전시킨 높은 예술성을 지닌 음악이다. 열린 공간에서 연희되는 공연 예술로서 연행자와 관객 사이에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점에서 우리 공연 예술이 지닌 개방적 성격이 확인된다. 판소리가 가진 즉흥과 신명은 살아 움직이는 연희로서 생명감을 나타내고 부조리와 모순, 비극과 한의 정서를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는 골계미는 판소리가 지닌 독특한 미학이다. 절제가 미덕인 양반 음악과는 달리 슬픔과 기쁨 등의 감정을 더욱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감정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가지며, 춘향·심청·흥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들이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점에서 판소리는 서민들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2. 중국의 경극1)정의중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고 가장 대표성을 띤 극의 종류이다. 경극의 전신은 휘조(徽調 : 안휘성에서 유행되던 곡조)인데 통칭 피황극(皮황劇)이라 부른다. 한때 평극(平劇)이라고도 불렀다가 후에 경극으로 고쳤는데 약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청조 건륭 시기에 휘조가 북경에 진입해 곤강(昆腔 : 하북 북경 일대에 유행했던 곡조)과 진강(섬서성 일대에 유행했던 곡조)의 극 내용, 음악곡조, 표현방법 등에서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발전한 것이다. 표현 면에서 춤과 노래가 동시에 진행되고 기교가 있으며 허의성(虛疑性)의 동작을 많이 사용하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중국에서는 경극을 희곡(戱曲)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관극하는 것을 청희(聽戱)라고 한다. 이것은 보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희곡은 극도로 양식화되어 있고 지키고 따라야 할 요소가 많다. 우선 창(唱, 노래), 과(科, 연기), 백(白, 대사)의 삼위의 명성이 높아지자 건륭 말년에는 사경휘(四競徽) 오경휘(五競徽) 등이 계속 나타나게 되었다. 그중 이름이 있는 것으로는 사희(四喜), 화춘(和春), 춘태(春台), 합삼경(合三競)인데 이것을 가리켜 사대휘반(四大徽班)이라고 한다. 이렇듯 휘반의 유행은 새로운 극 종류의 출현을 늦추는 계기가 되었다. 경극이 언제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하지만 기본적인 표준은 피(皮)와 황(황)의 합주 및 노래하고 읊는 음운이 북경화 되었다는데 일치를 보고 있다. 경극의 형성 및 그것의 예술성은 중국 희곡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경극은 희곡예술, 희곡 무대 예술의 우수한 성과의 집대성이라고 하겠다. 경극을 "동방가극"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경극과 가극은 노래, 춤, 음악, 미술, 문학 등이 일체된 특수극 형식이며 형식상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각각 서로 다른 문화 배경 속에서 경전적인 지위를 획득했다.해외에도 ‘베이징 오페라’로 알려져 그 독특한 예술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독일의 브레히트가 서사연극론(敍事演劇論)을 창안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3) 경극의 내용형식다른 많은 전통극과 마찬가지로 노래·대사·동작·액션 등으로 구성되는 형식연극으로, 노래가 중시되고 무용에 가까운 동작은 격렬하면서도 아름답다. 호궁과 징·북을 중심으로 한 반주의 선율과 리듬이 극의 기조를 이룬다.상연되는 각본은 모두 피황조에 의거한 구성·문체·시형이며, 현존하는 1,000여 종은 대부분이 작자미상이다. 대개는 사전(史傳) 소설과 전설에서 소재를 따거나 원곡과 전기(傳奇)를 개작한 것으로, 《수호전》 《삼국지연의》 등의 부분각색이 적지 않다. 대표작으로 《추강(秋江)》 《팔선과해(八仙過海)》 《손오공》 《타어살가(打魚殺家)》 《사진사(四進士)》 《우주봉(宇宙峰)》 《백사전(白蛇傳)》 《장상화(將相和)》 《양문여장(楊門女將)》 《삼차구(三口)》 《패왕별희(覇王別姬)》 《귀비취주(貴妃醉酒)》 《안탕산(雁蕩山)》 등이 있다.모두 1시간 내외의 짧은 연극으로 연출과 느린 템포의 만판, 빠른 템포의 쾌삼안, 박자가 없는 요판 등으로 구분된다. 염(念)은 대사를 말한다. 매우 까다로운 낭독 기법으로서 정면 인물은 일반적으로 운백(韻白 : 전통적 독법)으로 대사를 읽으며, 축은 경백(京白 : 북경 구두어)으로 대사를 읽는다. 작(作)은 동작과 기법을 가리킨다. 서양연극과는 달리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상징적 양식적 원리 아래 행해진다. 타(打)는 연출 가운데 무술동작을 가리키며, 중국의 전통 무술을 기초로 한 무술기교의 동작이다.5)경극의 소도구/의상경극에서는 특별히 무대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 탁자 한, 두 개만으로 모든 상황과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에는 민중의 이해력을 돕는다는 목적 아래 상당 양의 사실적인 무대장치와 소도구가 새롭게 개발되었다. 그러나 경극의 무대장치와 소도구는 원칙적으로 무대예술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실물과 소재, 무게, 크기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 가령 술잔이나 도장통이 실물보다 크게 만들어지는 것에 반해 성벽수레 가마등은 작게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일반적으로 소도구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최고의 연극적 효과를 거둔다. 말채찍으로 말에 탄 것을 상징하고 노 하나만으로 바다와 강을 건너가는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다. 무사의 등 뒤에 꽂힌 깃발은 수천, 수만의 군를 의미하고, 깃발에 불꽃의 그림을 그려 넣고 흔들면 실제로 불이 난 것을 의미하며 물 색깔의 깃발 몇 개만 있으면 용궁의 장면도 연출해낼 수 있다. 관중의 상상과 연상을 통하여 자연 환경과 생활의 세부적인 세트가 보충되는 셈이다.경극의 의상이나 분장도 상징적인 면에서 사용되기는 마찬가지다. 경극의 의상은 얼핏 보기에 시대적인 고증을 거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예술적 관점에서 고안된 것이다. 호화롭고 섬세한 의상은 실제로 궁중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양식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의상예술가의 작품일 뿐이다.6)경극의 배역경극의 배역은 남녀노소(男女老小), 준축정사(俊丑正분된다.
Ⅰ. 서론Ⅱ. 본론1. 기업가 정신 정의2. 기업가 정신, 열정3. 기업가 정신, 열정 사례3.1. 정주영 회장- 현대그룹 창업자3.2. 박태준 회장 ? 포항 제철 창립자3.3. 최종건 회장 ? SK(구 선경그룹)설립자Ⅲ. 결론내용 요약 및 생각Ⅰ. 서론오늘날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화한다. 따라서 기업들도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노력하고있다. 미국의 저명한 사이트 ‘앙트프르너닷컴(www.entrepreneur.com)’에 의하면, 오늘 3분마다 하나씩의 기업이 망하고 있으며, 모든 기업의 96%가 10년 이내에 무너지고 매년 26,000개의 신제품과 신규브랜드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라고 한다. 이 같은 기업환경 속에서 가속화되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매해 수많은 신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경쟁의 양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과 가속화하는 변화 속에서 창업가와 기업가는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생존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한 경쟁과 가속화하는 변화 속에서 기업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그 답을 기업가 정신의 열정에서 찾을 수 있다.열정은 불굴의 의지와 정열을 품고 목표에 도전함으로써 나타난다. 어떻게 해서든 2층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다리를 생각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올라가보고 싶다는 사람은 사다리를 떠올리지 못한다.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단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도 열정이라는 사포로 문질러야 광채를 낼 수 있다. 꼭 필요한 한 가지 자질만 남겨놓고 다른 자질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면, 열정을 남겨두어야 한다. 열정은 사업가들이 꼭 지녀야 할 요소다. 사업가들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열정은 추진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뜨거운 열정이 가슴 속에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사업가들은 불가능 을 가능 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1. 기업가 정신 정의기업가정신은 기존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함으로써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능력, 즉 혁신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을 경제학자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고 기업의 경우에는 제품, 공정, 시장, 재료, 조직 등을 혁신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Schumpeter 1942).2. 기업가 정신, 열정열정은 어떤 대상에 동기 부여된 사람이 그것에 집중하면서 적당히 흥분된 상태를 말한다. 열정은 사람들에게 목적을 갖게 하고, 배우게 하며, 삶을 지속하게 한다. 열정이 없으면 삶이 의미 없고, 무색무취(無色無臭)하며, 아무런 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Hawkins,2012:33). 열정은 동기(motivation)다(S. Hawkins, 2012:34-35). 열정은 뭔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또 목표를 향한 강력한 동기를 유발하는 열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적(constructive excuse)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게 한다(S. Hawkins, 2012:36). 어떤 대상에 열정을 갖게 되면, 신이 나고, 몸과 마음이 넉넉해져서 끊임없이 창의성이 살아난다.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내며, 다양한 문제 풀이를 가능케 한다. 열정의 기업가는 대부분 창조적으로 일을 처리해 완성해 가는 특징이 있다.열정을 가진 기업가는 일에 몰입하여 반드시 원하는 목표를 쟁취해내고야 마는 성질이 있다. 창의적 사업 계획과 목표설정은 항상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 의사결정 단계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해서 대안 설정과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 관행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로서는 창의적 사업 추진의 성과에 의문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열정적 기업가의 창의적 의사결정은 사업 수행, 정책 집행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에서 일을 추진해가기 위해서는 수시로 등장하는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처해야지금부터는 열정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에 집중하여 성공한 기업가들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3.1. 정주영 회장 ? 현대그룹 창업자목표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이에 상응한 노력만 쏟아부으면 그 누구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정주영 회장-정주영의 일에 대한 열정은 평생 동안 그와 함께 하였다. 20대 젊은 시절 첫 사업으로 정비소를 경영할 때로부터 그의 일에 대한 열정, 창업 정신은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시련극복, 성공의 길을 함께 해왔다. 정주영은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에,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로 완벽한 100%를 채우지, ‘안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도 끼워 넣지 않는” 사람이었다(김태형, 2010: 76). 그는 너무 나 벅찬 일이라고 판단해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해보기나 했어?”라고 묻곤 했다. (김태형,2010:76). 이런 긍정적 마인드는 열정의 기업가와 더불어 지도자들이 지니고 있는 가장 좋은 성품 중 하나다. 열정을 식힐 수 있는 부정적인 마인드를 없애고 희망과 성공을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3.1.1. 정주영 회장 일생1940년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서비스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던 이을학(李乙學)의 소개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그 뒤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였고, 1947년 5월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1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현대건설은 6·25전쟁 후 점차 늘어가는 건설수요를 감안하여 1964년 6월 시멘트공장을 준공하였고, 1970년 1월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독립하였다. 이후 해외건설시장 개척과 울산 조선소 건설,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 5월 사후에 만해상 평화상을 받았다.3.1.2. 정주영 회장의 열정을 보여주는 업가 정주영은 어려움, 좌절의 순간을 능동적, 창조적으로 극복해 내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이외에도 북한을 설득해 금강산 사업을 실시한 것, 서울 올림픽 유치의 주역이 된 것들도 정주영의 열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3.2. 박태준 회장 ? 포항 제철 창립자3.2.1. 박태준 회장 일생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간 뒤 1945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기계학과에 입학하였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6기)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1961년 5·16군사정변 후 박정희 군사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1963년 단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1964년 대한중석(지금의 대구텍) 사장을 지냈고, 1968년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을 창립하여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뒤 1991년까지 회장,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3.2.2. 박태준 회장의 열정이 드러나는 사례박태준은 꿈꾸는 사람인 동시에 그 꿈을 반드시 실행에 옮기는 실천가였다(데이비드, 1995:281). 그는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박태준의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한일은행에서 어렵게 신용 대출받은 자금조차도 바닥나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 KISA의 자금 지원마저 거부당하자 극도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마침 1969년 3월 세계은행의 보고서도 한국의 제철소 프로젝트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판정하였다. 또 정부까지 나서서 프랑스 파리까지 진출하여 자금 도입을 시도했지만 전혀 성과가 없던 상황이었다. 미국 KISA와 협상이 결렬된 뒤,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면서 그는 생각했다. ‘온 세상이 우리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있구나.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인가?’(K.K.Seo, 1997:199). 당시 그는 깊은 절망감에 쌓여 있었다.3.3. 최종건 회장 ? SK(구 선경그룹) 설립자3.3.1. 최종건 회장 일생SK그룹(구 선경그룹)창업주 담연 최종건 회장은 한국 현대사와 함께 했다. 일제강점기시대에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해방과 건국, 6·25전쟁, 4·19, 5·16을 모두 겪었다. 국가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몸소 겪으며 애국심을 길렀고, 세계 최빈국의 가난을 보면서 기업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창업과 기업경영을 경험하면서 사람과 기술과 신용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담연의 창업정신과 경영이념은 이러한 성장과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성숙되었다. 선경의 창업과 경영이 담연의 인생이었듯이, 그의 삶의 철학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그의 기업가정신으로 표출되었다(김한원 2009, 22).2)담연 최종건은 선경직물주식회사 수원공장 공무부 견습기사로 입사, 건장한 체격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제직조장에 발탁되었다. 8·15광복을 맞이하여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선경치안대를 조직하여 대장(隊長)으로 활약하는 한편, 선경직물주식회사 한국인 소주주들과 협의, 공장가동에 힘썼다. 6·25전쟁 중 폐허가 되다시피한 공장을 정부로부터 매수, 낡은 직기 4대를 조립, 선경직물주식회사를 재건하였다. 1953년 직기 4대로 출범한 이 회사는 불과 5년 만에 보유직기 1,000대의 대기업으로 발전하였다.SK그룹(구 선경그룹)이 오늘날 국내 유수 재벌기업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12월선경화섬주식회사(鮮京化纖株式會社)를 설립한 데 이어 1969년 9월에는 선경합섬주식회사(鮮京合纖株式會社)를 설립, 아세테이트원사공장과 폴리에스테르원사공장을 건설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섬유산업의 계열화를 위하여 석유산업으로 사업을 넓혀 1973년 5월선경유화주식회사(鮮京油化株式會社)를, 같은 해 7월에는 선경석유주식회사(鮮京石油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3.3.2. 최종건 회장의 열정을 보여주는 사례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의 잿더미 속 기계 설비를 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청년 최종건은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는 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