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소비하면 더 많이 행복해질까?- 행복과 소비의 관계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의 마지막인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고”라고 대답할 것이다. 결국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양한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데, 소비를 할 때도 예외가 아니다. 소비가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소비 그 자체가 행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소비하는 그 순간만큼은 사람들을 충분히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많이 소비하면 더 많이 행복해질까?텐츠 종합연구소에서 1995년~2007년에 걸쳐 97개 나라 및 지역을 대상으로 1인당 GDP와 주관적 행복의 상관관계를 조사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1만 달러까지는 GDP가 증가할수록 행복지수도 커지는 비례관계가 나타나지만, 1만 달러를 돌파하면 그 관계가 불규칙해지다가 마침내 그 연관성이 사라진다"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곧 1인당 GDP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민의 행복지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가난은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최저생계비라는 측면에서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연구결과에서도 보았듯이 돈은 일정 정도의 액수를 넘어서면 결코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평소 용돈이 부족해서 하루빨리 취직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나에게 부모님께서는 매번 “돈 많이 버는 직장인보다 돈 없는 학생 때가 더 행복하고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번 돈으로 눈치 보지 않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산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돈이 행복을 결정짓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셨고, 작은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아직은 온전히 그 말을 이해할 순 없지만, 지나고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에 행복했던 기억은 갖고 싶었던 무언가를 사서 기뻐했던 것보다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밖에 남아있지 않다.이처럼 소비 능력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과, 소비할 때의 행복감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과도한 소비능력은 불행을 담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유하지 않았지만 화목했던 가정에 뜻하지 않게 많은 돈이 생기게 되면 더 행복할까? 현실은 행복해지는 경우가 예외적이고, 불화에 휩싸이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보험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한다거나, 재산 문제로 가족끼리 싸우는 등 각자 서로의 탐욕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를 뉴스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언제나 돈에 대한 결핍감을 안고 사는 우리는 더 큰 부유함이 더 큰 행복을 담보할 거라 확신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과도한 부유함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요즘 10대 20대에서는 소비의 관한 개념이 점차 바뀌고 있다. ‘시발 비용’, ‘탕진 잼’ 등 오늘날 소비문화가 점차 바뀜에 따라 그와 관련된 다양한 신조어들이 탄생하였고, 현재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그중 ‘시발 비용’ 이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돈을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평소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텐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에는 홧김에 택시를 타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신한은행의 ‘2019 보통 사람 금융 보고서’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8~9명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홧김 비용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이 현대인들이 홧김에 쓰는 소비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단어들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소소한 액수를 써서 나 자신을 위로한다’라는 공통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어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되어있다. 적은 액수를 통해서라도 위안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현실에 직면해있다. 따라서 소액의 돈을 씀으로써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다시 힘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소비를 더 가중시키고 있다. 런던대 펀햅 교수는 인간은 불안할 때, 우울할 때,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하여 소비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뇌는 슬픔, 상실 공허감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고 이것이 더욱더 소비 욕구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허한 마음을 소비로 채움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확률에 기초한 분석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자신의 동물적 감각 내지 직관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와 같은 케인즈의 입장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매우 역설적이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현대인들의 충동적인 소비를 증가시키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더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금액으로도 스트레스를 풀며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현대인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자살면허, 장기의 상품화…비인간적인 미래사회의 모습을 담은‘인생은 아름다워’디스토피아(Dystopia)란 유토피아(Utopia)와 대비되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어두운 미래상을 일컫는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감시가 더욱 심해지는 사회, 기계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이 실추된 사회의 모습들이 모두 디스토피아적 세계이다. 이 에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 자살을 면허로 만들어 버리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가상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등의 비인간적인 디스토피아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 작품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일까?“기저귀를 찬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다 그는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남들에게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이었다. 기저귀를 차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게 나았다. 그는 자살 면허를 떠올렸다. 이를테면 자살 면허는 최후의 노후 대책인 셈이었다.”이 작품에서는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살 면허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살 면허란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만이 자살을 할 수 있고 면허가 없음에도 자살을 했을 경우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굳이 면허라는 제도를 만들어 자살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일까?“저는 자살 면허를 딴 뒤로는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없습니다. 네, 장롱면허입니다. 죽고 싶을 때마다 자살 면허증을 꺼냅니다. 열 번의 낙방 끝에 딴 면허증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대견해집니다. 자살, 그까짓 것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느긋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자살 면허 따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살하지 마세요.”자살 면허 학원 원장의 이야기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자살이란 곧 개인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 한 뒤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그 자살은 합당한 자살이다. 하지만 많은 수의 자살은 우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성적이 나쁘다’, ‘가난하다’, ‘실연을 당했다’ 등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자살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일부러 자살 면허라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는 기간을 통해 개인 스스로에게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학원 원장의 말처럼 자살 면허를 손에 넣게 되면 스스로가 대견해 보이고 그때부터 세상은 점차 다르게 보여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살이 만연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품 속의 미래 사회에서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으로 자살 면허를 제시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살 면허를 따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살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아니고 대부분 스펙이 목적인 청년들이었다. 결국 자살하는 계층은 변함이 없고 자살률 또한 낮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