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님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그는 의대를 졸업하였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오랜 끌림에 따라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가난한 자들을 찾아 신에게 버림받은 땅이라 불리는 아프리카로 찾아간다. 그는 남수단의 톤즈를 선택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갔다. 그 스스로 삶을 만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만들어 주었다.그곳은 생각한 것보다 가난과 내전으로 더 참혹했고 사람들은 병마에 시달리며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의사가 되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버려졌던 한센병 환자들을 보듬어주고 하루에 300명을 진료하였다. 그리고 수일을 걸어온 환자들을 그는 단 한 번도 돌려보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새벽에 찾아온 환자들까지 빠짐없이 진료하였다. 그는 그렇게 기적을 행했다. 이태석 신부님은 톤즈에 학교를 세웠다. 요번에 그는 기꺼이 선생이 되었다. 그는 아이들의 손에 총이 아닌 그들의 손에 악기와 펜을 쥐어주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브라스 밴드를 조직하여 아이들에게 악기와 음악을 알려주었다. 나중에는 훌륭한 밴드가 되어서 정부 행사에 초청까지 받게 되었다.2008년 이태석 신부님은 휴가차 한국을 찾았다가 말기 암 환자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는 낙담하였다. 삶을 마감한다고 낙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톤즈에 가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에 낙담하였다. 결국 그는 톤즈에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4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는다. 아플 때조차도 눈물을 잊어버린 수단사람들은 이태석 신부님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자 큰 슬픔에 빠졌고 눈물을 흘렸다.처음에 나는 그를 보면서 평범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편안함을 과감히 포기하고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태석 신부님은 남수단의 톤즈를 선택했을까? 이 질문의 대답은 다큐멘터리에 나온다. 그가 톤즈에 간 이유는 바로 한센병에 걸려도, 있는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지내는, 언제나 가족끼리 뭉치는 그러한 순수하고 성실한 남수단의 사람들에게서 마치 그리스도와 같은 엄청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 대답을 듣고 그 동안에 나의 모습을 되돌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남수단의 톤즈에 사는 사람들 보다 훨씬 가진 것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바란다. 또한 남수단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희망적인 모습도 나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야말로 가질 것들을 다 가진 여유로운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지금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감사히 여겨야겠다. 또한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나눌 것이 많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태석 신부님과 톤즈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톤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진심어린 위로와 자신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려하는 태도였다. 이태석 신부님은 톤즈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로 도움과 웃음을 주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가신 신부님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느끼실 수 있었다. 톤즈 사람들은 평생 이태석 신부님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