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인간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없이는 살기 힘들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간은 사회와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다.이를 잘 나타내주는 실험이 있다. 실험의 내용은 간단하다. 먼저 피실험자들을 독방에 가둔 후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일절 차단하는 것이었다. 음식은 제공되었지만,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곤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종이와 펜이 전부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실험을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가 5일이 채 되지 않아 실험을 포기했다.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먹고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험 포기 선언을 한 이유는 아마 정신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비슷한 예로 헤브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시행했던 감각박탈실험이 있다. 앞서 소개했던 실험과 마찬가지로 피실험자 한명 한명을 방에 가두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이때 자극은 피실험자로 하여금 화가 나게 하거나, 웃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것과 같은 자극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사람도, 물건도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들 또한 실험을 진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했다. 무자극의 상태를 장시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위 두 실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과 단절하여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유년기엔 가정에서, 청소년기엔 학교에서, 성인이 되었을 때는 직장에서, 그리고 중년과 노년이 되어서도 상호작용은 계속된다.그렇다면 왜 상호작용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일까?첫째, 감정을 배운다. 인간은 누구나 싸우면서 분노와 억울함이란 감정을, 친구를 사귀며 우정이란 감정을, 연애를 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운다. 이 외에도 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있다. 이 모든 감정들을 혼자 힘으로 얻을 수는 없다.둘째,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금연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연시 여겼던 사실들이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습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28년간 무인도에 갇혀있었지만 살아서 돌아온 로빈슨크루소와 집에서 나오지 않고 생활하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혼자서 오랜 시간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로빈슨크루소의 경우 무인도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성이 확립된 상태였다. 추울 때는 불을 피워야 하고, 잠을 잘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년간 생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태어나자마자 산속에 버려져 동물들과 살아온 인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사회성도 거의 확립되어있지 않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상태이다. 겉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일반적인 인간들과 조금 많이 다르다. 사회로 복귀해 다시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자기 자신의 의지로 집 밖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TV, 컴퓨터, 휴대폰 등의 전자기기를 통해 가상현실에서 익명의 누군가와 소통한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은둔형 외톨이들에게는 유일한 소통수단일 것이다.셋째,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써 얻게 된다.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행복이 궁극적인 이유이자 목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돈, 사랑, 명예 등이 그 예이다. 이것들은 사람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고, 설령 가지고 있다 한들 가치가 없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즉, 행복을 찾는 것이 자신을 찾는 것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자신의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는 시기는 각자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기에, 어떤 사람은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 찾기도 한다. 언제가 되었든 나는 자아 정체성을 찾은 그 순간부터 인생의 2막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자아 정체성을 찾기 이전에는 아마 꿈도 없고,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깨달음으로써 열정을 가지고 인생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