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답사 보고서-양평 두물머리를 다녀온 후-배경하천 답사를 위해 어디를 가면 좋을 지 고민하던 중 양평의 두물머리가 문득 생각이 났다. 평소에 수업을 들으며 생물의 서식지로서의 하천의 기능에 관심이 생겼었는데, 두 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의 특성상 색다른 서식지로서의 기능을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강이 만나는 것이 어떤 또 다른 영향을 생태계에 주는 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또한 거리도 가깝고 관광지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어서 친구와 함께 다녀오게 되었다.그리고 4월 27일 토요일에 두물머리로 가게 되었다. 이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는데 그 전날과 그 다음날에 비가 오고 날이 흐렸던 것을 생각하면 운이 참 좋았다. 양평 두물머리로 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서 가게 되었다. 먼저 잠실역으로 간 뒤 근처에서 2000-2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40분 가량 버스를 타고 가다 양수리 두물머리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두물머리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경치가 일품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두물머리의 여러 기능생태적 기능두물머리에 도착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에는 물론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겠지만, 육지에도 다양한 동물 그리고 다양한 식물들이 살고 있었다. 두물머리에서 가장 처음 보였던 것은 아래의 습지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용하지 않고 버려 놓은 땅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많은 생물이 서식하고 있었던 곳이었다.위에 보이는 여러 종류의 새 뿐만 아니라 개구리, 곤충들이 두물머리에 굉장히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렇듯 두물머리에 생태적으로 좋은 환경이 생겨난 것은 자연적인 부분이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나의 인상에 남은 것은 자연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생태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여러가지 노력이었다. 두물머리 곳곳에는 다음과 같은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흔적들이 있었다.이렇게 두물머리에는 생태를 위한 공간을 여러 목적으로 나누어서 관리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이러한 노력이 다른 지역과 다른 두물머리만의 좋은 생태적공간이 생기게 된 이유인 듯하다.친수적 기능수도권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두물머리는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실제로 이 날에는 가족단위로 또는 단체로 놀러 온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두물머리에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강과 맞닿아 있어 사진 찍기가 좋고, 드문드문 쉴 수 있는 카페들이 잘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였다. 이렇게 수변경관을 관리하여 사람들에게 휴식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두물머리는 친수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관광지로서의 두물머리의 모습]하지만 친수적인 기능을 너무 강화하면 생물의 서식지가 줄어드는 등 생태적으로 좋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두물머리의 모습은 친수적 기능이 생물에게 크게 방해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관광지로서 깨끗하게 두물머리를 이용하고 생물들은 저마다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생태와의 경계를 지키면서 두물머리를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리 및 느낀점이렇듯 두물머리는 생태적 기능과 친수적인 관광지로서의 기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시골에 가서야 볼 수 있을 법한 자연경관을 이렇게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최근에 아파트 단지 또는 도심공간 속에 자연의 느낌을 내는 공간을 많이 만들고 있다.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자연에 와있는 느낌을 주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이 점점 심신의 안정을 느낄 공간으로 자연적 공간을 원한다는 뜻인 것 같다.하지만 두물머리에 갔다 와보니 인위적으로 자연의 느낌을 내려 만든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가 있었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힐링의 장소로도 훌륭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이 더욱 잘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이러한 공간을 만들 때 사람의 입장만이 아니라 생물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고 그들의 서식지를 크게 해치지 않고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PD수첩 -4대강, 가짜뉴스 그리고 정치인- 보고서언론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공정성, 신뢰성 등등이 있겠지만 담고있는 내용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강의 시간에 본 MBC PD수첩에서 본 일부 언론들은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가짜뉴스를 남발하고 있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 데도 정보가 부족한 일반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과장하고 부풀려서, 또는 없는 일을 만들어서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었다. 거짓 정보를 뿌리는 집단은 언론 뿐 만이 아니었다. PD수첩에서는 정치인과 전문가가 잘못된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태에 대해서도 보여주었다. 이것이 굉장히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전문가의 말일수록 사람들이 더욱 신뢰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이런 거짓뉴스를 남발하는 것이며,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그러는 것일까?PD수첩에서는 먼저 공주부근에 있는 3개의 보의 현상황을 알려주었다. 그 전에 ‘보’란 하천의 중, 하류에 가로방향으로 설치하는 작고 낮은 일종의 댐이다. 이러한 보인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3개가 인근에 존재하고 있다. 이때 세종보는 완전해체, 공주보는 부분해체, 백제보는 일단 유지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 곳 중 공주보에 대해서 방송에서 다루었다. 먼저, 공주보를 만들면서 생긴 공도교에 대한 가짜뉴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공주보 부분해체에 관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도교는 공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으므로 공도교는 그대로 두고 보만 철거한다고 나와있다. 즉,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다리는 그대로 두고 물을 가두는 보만 철거를 해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주시엔 정부가 다리까지 철거하려고 한다는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었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은 다리를 철거한다는 사실을 이유로 보의 철거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의 출처를 찾아가보니 보의 해체와 연관되는 여러 이익과 관련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다.두번째 가짜뉴스는 농업용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공주보의 부분철거 후 농업용수가 부족해서 파 농사를 망쳤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 파 농사의 현장을 찾아가보니 실제로 파가 말라 있었지만 그 근처의 농장은 모두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또한 농장주의 얘기로는 말라버린 파를 지은 시기가 기사의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 뿐 만이 아니라 근처의 축사에서도 소가 먹을 물이 부족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지만 정작 수도를 틀어보니 물이 부족하다고 하기엔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용수의 부족에 대한 항의 또는 신고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농업용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보의 철거를 막기 위한 핑계 수단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여기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백제보를 살펴보았다. 백제보의 경우 처음에 보를 철거했을 때 부여군의 농민의 농업용수 부족으로 인한 피해가 커서 백제보를 다시 닫았다고 한다. 그리고 백제보에 대하여 정부와의 협의과정을 거쳐서 완전개방에 조건적 동의를 하였다고 한다. 조건적 동의란 농업용수의 부족으로 농민들에게 피해가 클 시 보를 다시 닫게 해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곳의 농민들은 보의 해체와 그로 인한 물이 흘러가서 하천생태계가 복구되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정당한 방법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들은 공주보 또한 자신들과 같은 방법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보의 철거전과 철거 후의 생물들의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보를 설치하였을 당시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났다고 한다. 물고기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을 건져내는 작업이 매우 버거울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녹조가 많이 발생하여 수질도 많이 나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보를 철거하고 난 이후, 물이 다시 흐름으로써 강의 주변의 모래의 질이 달라지고, 물떼새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생물들이 다시 강을 찾았다고 한다. 보를 해체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이렇게 물이 흘러가도록 놔둔 채로 많은 시간이 경과한다면 생태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이처럼 보의 철거는 하천의 환경기능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생물의 서식지 확보는 물론이고 하천의 주변의 악취가 사라지고 고운 모래가 많이 생겨나서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와 같은 기능을 맡을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면 분명 무조건적인 철거에 대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이럴 때 백제보의 농민들처럼 강을 살리는 것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협의를 이끌어낸 경우는 가장 올바른 해결책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주보의 경우처럼 해체와 얽힌 여러 이익들을 위해 가짜뉴스를 남발하고 주민들을 선동하는 등의 태도는 하천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사라져야 할 태도이다. 부디 공주시의 정치인들과 철거를 반대하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보다 하천을 우선시 해 주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달하길 바란다.
코리아 환타지 감상문지난 번 강의 시간에 안익태라는 인물에 대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코리아 환타지’라는 음악을 들어보게 되었다. 대략 25~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연주 되어지는 이 작품은 총 네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첫 번째 부분은 한국의 전통적인 선율이 주를 이루는 대체로 서정적인 멜로디로써, 고조선의 개국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민요가락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았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일제강점기를 표현하며 조국이 아파하는 암울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따라서 서정적인 가락에서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의 음악이 연주 되어진다. 세 번째 부분은 광복을 이루어 낸 우리나라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부분에서 1절부터 4절까지의 애국가가 합창으로 나오는데 이 부분을 들을 때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시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고 고통 받았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드디어 광복을 이루어내고 다같이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선율을 뒤로하고 또 다시 암울한 선율이 등장하는 네 번째 부분은 6.25 전쟁으로 분단되는 조국을 나타낸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만세소리와 함께 ‘코리아 환타지’는 막을 내리게 된다.안익태 선생은 일본 식민지 하의 우리의 조국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가치 있게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친일적인 노래를 만들었다고 친일파라고 거론되기도 하시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당시의 안익태 선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이 담긴 일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몇 가지 상황으로 안익태 선생을 친일파라고 하기엔 이 작품에 담긴 조국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크게 느껴진다. 이 곡을 들으면서 단순히 현대의 학생으로서 글로만 배우는 역사가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노래 한 곡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얻을 수 있었기에 더 많은 학생들이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그리고 안익태 선생에 대해, 그 분의 삶의 신념에 대해 더 고민해보았다. 자신의 삶을 고국을 위하는 일에 바친다는 것이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우리나라를 위해 바친다는 것이 참 위대한 일인 것 같다. 오랜만에 접해 본 ‘한국 환상곡’이라는 교향악 공연으로부터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우리나라 헌법 제 1조 2항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정말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을까.정치권력은 우리나라 정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이다. 정치에서 말하는 권력이란 일반적 의미의 권력과는 조금 다르다. 정치에서의 권력이란 자기 스스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과의 관계 즉, 국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은 정통성과 정당성이 수반된 권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력이 이 자체의 의미대로 잘 실현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정치인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은 모두 국민을 의사를 대표하는 정당성과 합법성을 지닌 대리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양 행동하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조정, 통제하는 등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파렴치한 행동들이 결코 영화 ‘내부자들’에서 비춰지는 것과 절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력의 핵심에 있는 이러한 사람들은 이 정치권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여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하며 겉으로는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척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국민들의 희생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세월호 사건을 들 수가 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빠르게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정확한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고 밝혀야 했지만, 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오히려 유족들의 요구에 대한 정치적 대립만을 조장할 뿐이었다. 만약 정치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면, 한국 정치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정치였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생각도 든다. 국민들 또한 정치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치인들의 행동은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그러한 행동을 못하게 하는 국민들의 힘 또한 필요하다.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58%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조금 넘는 사람들밖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치권력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오려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해방정국 당시의 한반도 정치의 상황을 짚어보고 싶다. 해방정국 기간이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후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정부의 제1공화국이 설립되기까지의 3년이란 기간이다. 이 기간은 현대 한국 정치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해방정국 기간 동안에는 독립운동 세력과 친일세력간의 치열한 정치투쟁이 전개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인물들과 단체들이 명멸하였다. 이 당시에는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지도자들이 있었고, 국민들은 그들을 믿었다. 당시의 정치는 국민들이 그들의 정치라고 여겼으며, 그렇게 해야 자주적 국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외세의 힘에 의해 자주적 국가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이 해방정국 기간의 국민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정치란 국민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 촛불시위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국민의 권력으로 올바르지 않았던 정치세력을 몰아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언제라도 국민의 힘을 통해 올바르지 못한 정치세력의 권력을 뺏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정치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군주론–마키아벨리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고전으로 유명한 책이기에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읽어본 적은 없는 책이었다. 이번 기회에 읽고 보니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주장을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읽혀졌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효과적인 자세를 여러 장으로 나누어서 알려주는 형식이다. 이 여러 장의 내용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장은 군주란 반드시 도덕적이고 관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민중들에게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받아야 성공한 군주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장만 두고서는 마키아벨리에 대해 반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 한 문장만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왜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시대적인 배경과 그의 근거들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에 고전으로써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이 책의 가장 전반부에서는 군주국의 종류와 그에 따른 통치 양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군주국은 세습 군주국과 신생 군주국으로 나뉜다. 세습 군주국은 선조들의 전례에 따라 다스리면 되기 때문에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신생 군주국의 경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신생 군주국 중에서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병합된 경우 즉, 복합 군주국일 경우 군주가 나라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거주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이전 군주의 혈통은 없애버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변혁들은 복합 군주국이 감당해야 되는 몫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전 군주의 혈통을 확실히 근절하고 종래의 법률이나 세제에는 변화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영토의 중요 거점이 될 만한 몇 군데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 인접한 약소국에게 지나치게 강한 군사력과 영향력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 다른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신생 군주국의 성립에서 국가가 무력과 능력에 의해하게 되면 나라를 얻는 것은 쉽지만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스스로의 무력과 능력에 의해 나라를 얻은 군주는 나라를 얻기 까지는 여러 가지 시련을 극복해야 하지만 일단 얻고 나면 상대적으로 전자에 비해 쉽게 나라를 유지하고 통치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존경받는 성공적인 지도자로 남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민형 군주국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시민형 군주국이란 민중의 호의와 귀족의 지지에 의해 군주가 탄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모든 군주는 백성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백성들을 지지 기반으로 해서 권력을 잡은 군주가 튼튼한 터전 위에서 자신의 권력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지지 기반을 쌓기 위하여 군주는 언제든 또 어떤 상황에 처하든 시민들이 국가와 군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 두어야 하며 그렇게 되었을 때 시민들은 항상 군주에게 충성을 바칠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한다.그 다음으로 전개되는 것은 군사력에 관한 부분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국가를 공격하는 어떤 침략자도 물리칠 수 있는 군대를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국가를 방어하기에 충분한 군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훌륭한 군대가 가장 중요한 군주국의 기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군대를 군주가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주는 자국군, 용병, 외국 원군,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혼합한 혼성군 등에서 군대를 택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용병과 외국 원군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먼저 용병의 경우 군주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으며, 보수 외에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 가며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화로울 때에는 기꺼이 군주의 병사로 봉사하지만, 정작 전쟁이 벌어지면 도망 가버린다 파견되는 군대다. 이러한 원군은 그 자체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군주에게는 거의 유해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패배하면 군주도 함께 몰락하는 것이고 승리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현명한 군주라면 항상 이런 군대를 쓰지 않고, 자신의 군대를 신뢰하며 외국에서 온 원군을 이용해 정복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의 군대로 패배하는 쪽을 택해야 하며, 외국 군대의 지원에 의한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고 평가한다.이제 후반부로 가게 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성품에 대하여 서술한다. 결국 핵심은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악인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군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미덕으로 보이는 것이 파멸을 초래할 수 도 있는 반면 악덕으로 보이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잔인하다는 평 대신 인자하다는 평을 듣기를 원하지만 자기 백성들을 단결시키고, 질서를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사례가 등장하게 되는데. 한니발은 잔인하고 공포스러워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스키피오의 경우는 너무 인자하여 부하들이 반역을 꾀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한니발은 현명한 군주였지만 스키피오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었다. 또한 저자는 군주가 짐승과 인간의 성품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쟁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법률에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인간에게, 후자는 짐승에게 어울리는 방법인데 첫 번째 방법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을 감당하는 데 충분치 않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선량하다면 이 주장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여 군주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들의 대한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중은 언제나 표면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또한 주장하고 있다.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정책에 대하여 주장을 펼친다. 새로 군주가 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백성을 무장시켜 자신의 세력으로 삼아야 하며, 다만 다른 나라를 점령한 군주는 점령지의 백성들을 무장 해제시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도시를 이간질시켜 세력을 약화시킨 뒤 점령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분열시키게 되면 외세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이것은 도시 자체를 멸망시키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새를 구축하는 정책에 대해 얘기하는 데, 요새 구축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며 해가 되기도 하고 득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요새를 믿는 것은 좋지만, 요새만 믿고 민심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다. 사실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요새는 백성들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며 만일 군주가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해도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무기를 잡고 일어난다면 그들을 지원할 외세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에 요새는 소용이 없어지게 된다. 또한 군주는 자기편이 아닌 자와 자기편인 자를 확실히 구분하는 정책을 펼칠 때 존경을 받는다. 중립적 노선을 택할 경우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결국에는 파멸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군주에게는 끝없는 고난과 선택의 기로가 찾아오는데 모든 것에 완벽한 해결책은 없으니 해가 최대한 적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군주의 정책 결정에 있어 또 중요한 부분은 군주의 측근을 선택하는 일이다. 능력 있는 신하들을 선택하고 그들로 하여금 충성을 다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자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변혁을 두려워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첨꾼은 피해야 한다. 이러한 아첨꾼을 피하기 위해 현명한 군주는 몇몇의 사람들에게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는 주고, 그것도 자기가 것이며, 훌륭한 조언에 의해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군주론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당시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나라를 잃은 이유는 그들의 능력 부족이라 탓하며, 이를 운명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당시 이탈리아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탈리아를 구원하고 해방시킬 강력한 군주가 필요함을 주장한다.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면서 자칫 잘못하면 ‘군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에 의해 묘사되는 군주는 영토의 평화와 유지를 최우선시하는, 영토를 군림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능력으로는 군사적 기반을 확보해 힘을 길러 영토를 유지,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개인적 능력으로는 시대를 앞서봐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사전에 예방해 자신이 군림하는 영역의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진정한 군주인 것이다. 군주는 이러한 궁극적 목적을 위해서는 잔인하고 사악한 모습도 필요하다 라는 것이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내린 마키아벨리의 결론인 것이다. 국가 및 시기별로 군주가 어떻게 각각의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이 책은 분명 당시의 군주들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군주의 모습은 지금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군주가 갖춰야 할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현재까지 이렇게 읽힐 수 있는 까닭은 이 책이 단지 한 나라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 던지는 교훈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이 주는 마지막 여운은 ‘운명에 맞서는 대담함’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운명의 신은 신중한 사람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더욱 이끌린다는 것은 분명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신중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중함 때문에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 같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개인들에게 대담함과 신중함 사이에서 신중함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