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한 후경제학과정민건2019103231그 동안 도민으로 살면서 4.3사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4.3사건은 제주도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 정도? 만 알고 있었을 뿐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실은 4.3평화공원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체험학습을 왔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뛰어다니면서 놀았던 기억 뿐 이다. 평소에 제주도에 4.3사건과 관련된 유적지가 남아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다랑쉬굴 정도) 이러닝 강의를 들으며 훨씬 더 많은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노선을 확인했지만 거리도 멀뿐더러 가는 버스가 많이 없어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을 절약하고 싶어서 부모님 차를 빌려 혼자 후딱 갔다 오기로 결정했다.날씨가 유독 추운 날에 방문했던 터라 차를 주차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놀 랬던 점이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이 꽤 많았 다. 단체로 온 사람들도 있었고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전시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역사의 동굴 이였다. 역사의 동 굴에 들어갔을 때 초등학교 시절 현장학습 때 이곳을 봤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동굴의 음산한 분위기로 인해 겁을 먹어서 친구와 손잡고 구경했던 곳 이었다. 동굴 주변에 도자기나 그릇 등 동굴 안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보였다. 전시물을 보고 바로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유일하게 친척 혹은 가족들 중에서 4.3 관련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셨던 분이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가 선흘 출신 이였는데 이 곳도 4.3 사건의 희생지 중 한 곳 이였다. 나이가 어렸던 할머니가 당시 군인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밥솥을 들고 가족들과 동굴로 도망치셨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나이에 맘껏 놀지도 못하고 어둡고 침침한 동굴 안에서 생활해야하셨던 할머니의 말을 듣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위로를 해드려야 맞는 건지 몰랐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시되어 있었던 동굴이 거의 실제랑 똑같이 구연했기 때문에 외할머니가 했던 말씀들을 상기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평화의 섬 제주. 내가 사는 곳은 이렇게 불린다. 이러한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100년도 안 지났는데 평화의 섬이라고 불리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다. 왜 하필 제주도였던 것일까. 식민지와 민족 분단이라는 역사를 겪고도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다. 세월이 흘러서 나와 같이 4.3 사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생겨나고,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음에도 모든 것을 잊기에는 가족과 고향의 부재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상처를 치료하고 도민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평화의 섬’ 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잊지 말기’ 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옳고 그름을 확실히 따져 이런 역사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제주의 역사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라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도민들은 물론이고 국민들 모두가 이 사건에 대해 알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작은 섬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학살에 대해 알려주었으면 한다. 일본과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의 문화가 서구권으로 퍼지면서 3차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한류, BTS 도 물론 공공외교론적인 측면에서 좋다. 문화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사람들을 행복해주게 만들기 때문. 이러한 문화 뿐만 아니라 역사도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유럽에서 일어난 나치의 유대인 학살처럼 전 세계인이 4.3사건에 대해 숙지하고 공권력의 의한 대학살에 대한 경각심을 깨닫게 해줬으면 좋겠다. 제노사이드는 어디서든 일어나지 말아야 할 반인륜적 행위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