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패를 엮는 단 한 줄의 매력평소 전통문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할머니께서 도시에 사시고, 부모님께서 서울 출신이시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 도전하기로 하고, 다큐멘터리 중에서 볼 작품을 고르는 데 사물놀이나 도자기, 창덕궁 등은 한 번씩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사당패와 바우덕이는 두 가지 다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들어 고르게 되었다. 이후에는 더욱 흥미로웠다. 단 한 가닥의 줄을 타며 묘기를 부리는 것이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첫 장면에서는 바우덕이의 어린 시절에 대해 요약적으로 소개한다. 부모를 잃은 아이를 어느 날 한 무리가 사람들이 거두어 키우기로 했다. 이들에게 춤, 노래 등을 전수 받은 아이는 예술적 기질을 지닌 여인으로 성장해 방방곡곡을 떠돌며 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대단한 인물이 된 바우덕이에게 존경심이 들었다.영상을 보다 보니 바우덕이가 속한 남사당패에 대해 궁금증이 들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신라 때부터 시작된 이 집단은 조선 시대에 초기에는 사당패로써 술자리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였으나 말기에 남자들만으로 구성된 사당패가 생겨나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쳤지만, 사회적으로는 매우 천대받았다고 한다. 당시 사회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백정보다도 멸시를 받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들은 공연이 없는 겨울, 청룡사 근처에 움막을 짓고 생활했는데 사찰이 신분을 보장해 주었지만,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직접 손을 대서 하는 것은 천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동물을 잡고 손질하는 백정이 심각한 사회차별을 받았다는데 바우덕이가 옥관자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정보다 못한 처지였다는 게 좀 의아했다. 그리고 19세기 말, 서양에서 들어온 서커스 등 때문에 인기를 빼앗기고, 계승이 위태로워져 남자로 이루어진 사당패를 모아 몸으로 하는 체기(몸 전체를 쓰는 경기)를 했다고 한다.이후 영상에서는 남사당패의 역할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서 낯선 것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남사당패에는 풍물단을 이끄는 상쇠, 버나(곰방대나 앵두나무 막대로 사발이나 대립 따위를 돌리며 묘기를 부림), 살판(땅에서 재주를 부림) 덧뵈기(탈을 쓰고 만담과 재담을 하며 춤을 춤), 덜미(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으로, 인형의 뒷덜미, 목덜미를 잡고 하는 인형놀이), 어름(외줄 위에서 기예와 재담을 펼치는 남사당놀이) 등이 있다. 오늘날 다른 종류의 공연과 달리 역할에서 순우리말이 쓰였다는 점에서 외래어가 없어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라는 것이 잘 드러난다.영상을 본격적으로 시청하기 전에는, 표지를 보고 줄타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풍물놀이, 재주넘기, 인형극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발 담그고 물구경 하는 격’이었다. 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살판' 이라는 역할이다. 버나, 덜미 같은 역할과는 다르게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만 묘기를 부리니 정확성을 요구하고, 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 판’ 이라는 말 때문에 동작을 볼 때마다 긴장감이 느껴졌다. '살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재물이 많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거듭되어 살림이 좋아지는 판국, 기를 펴고 살아 나갈 수 있는 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로 '살판 만났다', '살판 치다'라는 표현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남사당패의 살판이라는 단어가 더 발전되어 일반 사람들도 사용하는 표현이 된 것 같다.영상으로 공연의 일부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큰 공연장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묘기를 보면 더 실감나고 몰입이 잘 될 것 같다. 그리고 관심이 생겨 조사해 보니 이 공연은 안성맞춤랜드에서 매주 토요일 정기공연을 한다고 한다. 보통 삼 개월에 한 번 씩은 친구들과 만나 보드게임을 하는데, 우리끼리 외출을 한다고 해도, 내가 사는 은평구에서 번화가인 연신내에서 노는 게 전부인데, 보통 집에서는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으로도 대여섯 곳 밖에 안 되는 거리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안성까지 가려면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표를 끊고 안성에 도착하면 마을버스로 어느 정도 이동하다가 랜드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목적지까지는 세 시간 삼십 분 정도니까 친구들끼리 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통해 방문 관람하면 좋겠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교에서는 잠시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야외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그런데, 주변 학교들을 둘러보면 대부분 놀이공원이나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 문화를 폭넓게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공연을 관람한다면, 유익하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게다가, 수학여행이나 ‘수학하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교육이나 학문을 배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수학여행에 위와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공연장 이름처럼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겠다.2부는 경복궁 중건 때 부역자들의 노고를 달래기 위해 많은 놀이패들과 예술가들을 불렀고, 그 활약이 대단했다는 점을 밝힌다. 그 중 바우덕이는 선소리(서서 부르는 소리) 에 매우 뛰어났는데, 흥선대원군에게 옥관자를 받기도 했다. (옥관자는 당상관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하사된 옥으로 만든 고리이다). 이런 그녀가 속해있던 사당패의 유래는 절에서 기거하는 여인인 사당과 거사가 짝을 이뤄 다니던 집단에서 시작되었다.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유일한 떠돌이 집단이었던 사당패의 꼭두쇠였다. 물론 공연 안에는 풍물단 단장인 상쇠가 있어서 전체 음악을 지휘하지만, 이 공연은 풍물놀이가 전부도 아니고, 다른 볼거리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전체를 이끄는 단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꼭두쇠'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던 시절,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남사당패에서 꼭두쇠를 했다는 것에서 ‘바우덕이가 정말 훌륭한 기예를 갖췄었구나.’라고 생각했다.다큐멘터리에서는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보니 바우덕이 개인에 대한 내용 보다 공연 구성과 남사당패의 역사 및 생활에 대한 부분을 주로 다룬 것 같다. 그래서 바우덕이의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우덕이를 단독으로 다루는 영상들을 추가로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실명이 김암덕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떻게 ‘바우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고 ‘바우덕이’ 라는 이름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흉년 때 바위 위에 버려진 것이 남사당패에게 발견되어 바위 위에서 낳았다는 뜻으로 ‘바우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조직은 엄격하였고 모자란 인원은 가난한 농가의 아이나 고아, 가출아 등으로 충당하였다.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왔으며, 가족도 집도 없이 전국을 유랑하였다.또, 바우덕이가 맡았던 역할 ‘어름사니’에 대한 영상도 찾아보았다.유일한 국내 여성 어름사니가 나온 것이었는데 줄 위를 타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하체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 같으면 올라가기도 힘들 것 같은데, 그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며 기예와 재담을 펼치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자신의 재주도 연마하면서 한 공연집단까지 이끈 바우덕이. 우두머리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걱정도 많아서 자기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역할을 다 수행했다는 점이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여성 최초 명창 진채선감상문 목차 A 인물 소개 영상 줄거리 느낀 점 여성 최초 명창 진채선 2진채선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활동한 여성 명창으로 , 판소리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최초의 여성 창자이다 .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에 입문해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신재효 아래 에서 여러 가르침과 훈련을 받았고 , 소리는 신재효의 집에 소리선생으로 있었던 김세종 ( 金世宗 ) 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 1867 년에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 참여해 소리했으며 , 이 공연을 계기로 6 년간 운현궁에 머물며 대령기생 ( 待令妓生 ) 의 역할을 했다 . 여성이었으나 남성 창자 못지않게 성량이 대단했다고 한다 . 〈 춘향가 〉 와 〈 심청가 〉 가 장기였으며 , 특히 〈 춘향가 〉 중 ' 기생점고 대목 ' 을 잘 불렀다 . 출처 : 한국전통연희사전 여성 최초 명창 진채선 3영상 속 주요 인물 소개 신재효 소리꾼들을 키워 내고 후원하는 학당을 운영했던 이론가로 , 진채선의 스승 진채선 신재효의 제자로 조선 최초 여성 명창이며 , 실력을 인정 받아 운현궁에 입성해 대령 기생 역할을 맡음 흥선대원군 진채선을 발탁해 운현궁에서 큰 역할을 맡기고 소리꾼의 명성을 이어가게 함 프레젠테이션 제목 4F 다큐멘터리 줄거리 어렸을 때부터 소리를 좋아한 진채선은 어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 남성들만 배울 수 있었던 시대에 소리를 배우려고 소리꾼들을 키워내는 신재효를 찾아간다 . 그리고 같은 자격으로 배우며 성장한다 . 조선시대에 여성이 소리를 배우는 것은 최초였지만 실력이 뛰어나 궁의 공연에서도 활약했고 , 흥선대원군의 눈에 들어 운현궁에 들어간다 . 프레젠테이션 제목 5느낀 점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이 된 진채선과 주변인물들은 감동과 아쉬움을 안겨 주었다 . 그녀에게 용기와 끈기가 없었다면 소리공부를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 신재효처럼 믿어주는 스승이 없었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 흥선대원군은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상대방 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해 옆에 두려는 부분이 아쉽다 . 하지만 각 인물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며 시청해 흥미로웠다 . 국악에 관심이 없고 역사도 잘 모르지만 이번 영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 인내심이 약한 내가 그녀의 끈기를 본받으며 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 여성 최초 명창 진채선 6감사합니다. 제 2 회 청소년 문화유산 콘텐츠 – 다큐 부문 지원자 박혜빈{nameOfApplication=Show}
끈기를 북돋게 하는 소리평소 국악과 판소리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이 영상을 보고 감상할 것이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보다 보니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판소리와 국악이 가진 특유의 리듬감이 눈길을 끌었다. 장구 치는 소리와 소리꾼의 음성이 함께 울려서 웅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영상을 보고 느낀 점은 요즘 음악의 분위기와 달라서 특이했다는 것이다. 고음보다는 저음이 많아서 약간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가사에 귀를 기울이면 뜻이 많고 재밌기도 하다. 현재는 유튜브와 노래 듣는 앱만 들어가도 경쾌한 음악이 대다수지만 가끔은 이런 노래를 들으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또 계속 들으면 지금의 트로트와 닮은 것 같기도 해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그리고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단어들도 알게 되었다. 먼저, ‘창극’이라는 단어를 접했는데 처음에는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이름에서 비참하다, 비극적이다 등의 표현이 떠올라 슬픈 분위기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찾아보니, 판소리나 형식을 빌려 만든 가극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한다는 뜻이니까 오늘날의 뮤지컬과 비슷하다. 또 ‘광대’라는 말도 등장했는데 두 가지가 생각났다. 얼굴의 광대와 피에로이다. 뜻을 확인했더니 두 번째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옛날의 직업적 연예인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했기 때문이다.앞부분은 진채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데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꿈에 대해 얘기하며 시작된다. 열세 살부터 소리를 좋아해서 어머니를 통해 가끔 배우기도 한 것 같다. 진채선과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노래도 즐겨 듣고, 음 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는 일 학년 때 음악을 배우지 않지만 ‘예술체육’이라는 교육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때 ‘닥치고 장구치고’를 신청했는데 수업 시간에 이 영상에 나오는 것과 같은 소리를 배웠기 때문에 약간의 친근함도 느낄 수 있었다. 악기를 연주해 보고 소리를 배우다 보니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은 없어진 채, 지금은 이것들을 배우는 목요일이 가장 기대될 정도이다.신재효를 찾아가, 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장면에서는 남성들만 배울 수 있다며 거절당하는 찰나, 실력을 선보이라는 말을 듣는다. 오디션 기회가 온 것인데 놓치지 않고, 곧바로 받아들인다. 신재효에게 찾아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텐데 그 행동으로 인하여 소리에 대한 마음을 더욱 잘 전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강렬한 의지가 전해졌는지 허락을 받고 남성들과 같은 자격으로 배우게 된다. 신재효가 조선시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남녀 차별을 하지 않으며 소리를 가르쳐 준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 남자만 소리를 배울 수 있는 상황에서 완벽한 실력을 갖고 있지 않은 여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눈치가 보일 것 같은데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후원을 하여 진채선에게 소리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왜 그랬을까? 내가 신재효였다면 새로운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에게 최초로 소리를 가르쳐줬을 때 부담도 있고, 완벽한 실력이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여자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배우지 못 하고, 직업도 마음대로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전부터 이어오던 남녀 차별이 지금의 생활에도 영향이 있어 남자와 여자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다.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정보도 있다. 소리를 배우고 내기 위해서는 ‘산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왜지?’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하지만 이유를 알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사에 대한 이해가 쉽고 그곳에 맞는 소리를 내기도 수월해진다고 한다. 판소리를 잘 하려면 힘이 많이 든다는 사실도 이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신재효가 진채선에게 한 말 때문이다. “네가 원할 때마다 짐승의 소리나 자연의 소리를 같이 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사람이 짐승소리를 낸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목소리와 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득음 과정에서는 피를 토하기도 하고 머리도 아플 것 같아 건강상 문제가 걱정된다. 이렇게 엄격한 선생님으로서의 모습도 있지만 흥선대원군에게 진채선을 보내는 신재효는 자신의 딸을 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그리고 소리를 가르칠 때의 추억이 아른거리며 자나 깨나 생각날 것 같다. 또 진채선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 같다.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자신 만큼이나 힘써주던 사람이 신재효였는데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한편, 흥선대원군은 남장을 하고, 궁에 들어와 공연한 그녀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리지 않고 이해해 준 모습이 멋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진채선에게 “예전 꿈은 잊고 여기서 잘 지내.”라고 하는 부분이다. 정말 그녀를 위한다면 길을 열어 도와주는 게 낫지 않을까? 자신만을 위해 노래하도록 첩으로 삼았다는 것은 씁쓸하다. 진채선의 꿈을 응원해 주면 좋았을 텐데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운현궁으로 들였기 때문이다. 좋은 곳에서 지내고, 아무나 침입하지 못 하는 곳에 정식으로 들어갔다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이라는 생각과 스승 신재효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꿈을 응원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말을 바꿔보자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하는 그녀를 응원하며 한 달이라는 기간을 주어 집으로 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정든 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며 자신의 꿈도 이루고 성장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러면 소리를 배우며 여러 곳을 다니고, 추억도 많이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행복할 것은 당연하다.
독후감 제목: 상대방을 향하는 말화살「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를 읽고이 년 전, 유튜브를 시청하는데 알고리즘에 「세월호 몇 주년」이라며 당시 학생들이 남겨 놓은 영상이 떴다. 하나를 보니 관심이 생겨 여러 개를 더 찾아보았다. 시청을 계속할수록 남일 같지 않아서 눈물을 여러 차례 흘렸다. 언니, 오빠들은 영상으로만 봐도 매우 밝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기억나는 말이 하나 있다. “너는 수학여행 오지 마. 내 꼴되기 싫으면”이었다. 이유는 자신도 두려웠을 상황에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였다면 나 이제 죽는 거냐며 자신을 걱정할텐데, 죽음을 앞두고도 가족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죽음을 확신하는 것 같아서 더 슬프기도 했다. 앞으로는 이들을 본받아 나 보다 가족을 더 먼저 생각하는 첫째가 되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후 두 번째 만남이 책인 만큼 처음에는 두꺼워서 부담이 됐지만 그림 형식이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만화에 대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달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슬픈 장면도 등장하고, 청소년이 읽는 책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자해, 자살 같은 자극적인 장면도 자세하게 나온다는 점이 새로웠기 때문이다.고등학생 딸을 둔 선원 아빠는 어느 날 세월호에 탑승해 침몰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승객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서둘러 구조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서 속이 타들어 갔다. 결국 배는 모두 가라앉고 선장의 말을 듣지 않은 채 탈출한 학생만 목숨을 건졌다. 이후 아빠는 여러 인터뷰에 임하는데 열심히 구하려던 본심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모든 학생을 구하지 못 했다는 비난을 받고 억울함에 극단적인 시도까지 한다.나도 한 아버지의 딸로서 이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물론 우리 아빠는 다른 직업을 갖고 계시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봐야 하는 입장이다. 마치 한 학급의 반장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점검하는 것은 상대방이 제출한 결과만 보고 완벽한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어느 부분이 부족하다고 했을 때, 상대가 자신의 과정을 설명하며 괜찮다고 하면 다시 논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 이처럼 어떤 직업이든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고, 아빠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죄책감과 분노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장면에서 가엾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이 감정적으로 격앙된 모습을 보이더라도 ‘저 사람 왜 저래?’ 하면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저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나보다’ 라며 공감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뿐만 아니라, 자상했던 아빠가 갑자기 퉁명스럽게 대하더라도 ‘아빠께 어떤 일이 있었나 보다’하며 이해하고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내게도 아빠가 손목을 그어 구급차에 실려 간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용에서는 딸에게도 인터뷰 제의가 들어오는데 아빠가 경험한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거부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나라면 아빠의 자살 시도를 알리고 비난을 멈춰달라며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몇 년 전 우리 동네 근처 한 초등학교에서는 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육 학년인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고, 심한 욕설과 비난 끝에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학교에 있는 시설물에서 시신이 발견 되었다는데 너무 슬프고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하지만 구글에 검색해 보아도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오빠가 같은 학년이라서 구체적인 원인을 들을 수 있었다. 워낙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보니 안타깝고 무섭기도 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열세 살 밖에 되지 않는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 다수의 말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그때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또 그 학생의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실까? 유가족도 아닌 나까지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만약 나였다면 해당 학생에게 다가가서 힘이 되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네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쁜 생각하지 말고 지내면 좋겠어”라고 말을 건네고 싶다. 큰 힘이 되지는 못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보니 책가방 속에서 여러 장의 유서가 발견 되었다고 한다. 한 장도 아니고 여러 장이라니 배로 마음이 쓰리다. 한 장 한 장 써 가는 날의 아픔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짐작이 된다.아빠의 자살시도와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공통점은 말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고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기사나 유튜브 댓글 창에 필터링 작업을 강화에서 불쾌한 내용을 적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벌금과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둘째는 다 같이 어울리는 행사를 자주 열고 서로 관심을 기울이며 단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다.한편, 딸이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해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아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마가 애써서 차렸는데 조금이라도 먹어야지. 세월호에서 죽은 친구들은 수능을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라며 말이다. 아빠의 입장에서는 사건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운 감정이 떠올라 괴로울텐데 죽은 학생들의 못다 이룬 꿈과 바람을 생각했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다시 책의 한 장면으로 돌아오자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아빠를 보고 자신도 많이 놀랐을텐데 동생을 생각하며 많은 피를 혼자 치우는 상황이 몹시 안쓰러웠다.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자신보다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철이 빨리 든 것 같았다. 만약 나였다면 나중에야 일일구에 신고도 하고 치우려고 하겠지만 한 동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할 것 같다.가장 가슴 깊이 꽂히는 대사도 있었다. 바로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다. 항상 슬퍼하고 죄책감을 가지던 아빠가 처음으로 웃음을 보인 장면이었다.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슬펐을 텐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미소를 보이게 되었을까? 일단 시작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인터뷰에 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해를 하는 순간 엄마는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엄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아빠는 끌려 나갔다. 그 후 아빠는 배를 타고 바다 위로 뛰어 내렸다. 다행히 구조가 되어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많은 자해 흔적이 보였고 의사는 조심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많은 일을 겪은 가족은 모처럼 나들이를 가는데 아빠가 미소를 보인 것이다. 내가 딸이었다면 뿌듯하고 행복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힘들어하던 아빠가 웃었다는 것은 전 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생했던 아빠가 앞으로는 웃기만 하고, 다른 사람 시선은 생각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남은 시간들은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말을 스스로에게 많이 해 주면 좋겠다.
정신병적 증세를 통해 보여진 멋진 광기‘어셔 가의 몰락’은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선 중에 수록돼 있는 한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인 ‘황금풍뎅이’와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만큼 유명해서 오랜 시간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세 가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그렇다. 심지어는 청소년기에 읽었던 세계명작 중에서도 이 세 작품은 꼭 빠지지 않았다.다시 본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품은 작품으로 먼저 대하기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내용을 읽고 작가에 대해 알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어떤 알고리즘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기록된 것으로나마 알게 되자, 작품들에 드러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 불안정한 인물의 심리 등의 배경이 더욱 선명해지는 듯 했다. 작품에 대한 개연성을 작가의 생애와 맞아떨어지게 대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부재와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며 겪었을 모멸감이 두드러진다. 이십 대에도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 했다. 궁핍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꿈이 있었으나 아내의 죽음까지 겪었으니 치명적인 고통 속에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그러나 앞 세대를 살아간 많은 작가들의 삶 속에서 고통은 꿈을 퇴색시키기보다 조금 더 짙은 색으로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그의 고통도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즈음 그가 시인으로 활약했다는 부분에서 괴로움이 운문의 결과물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되어서이다.개인적으로 ‘어셔 가의 몰락’은 배경이 인물을 잡아먹은 인상을 준다. 어셔 가의 남매는 서로를 공격하고 그들 사이에 교감이란 우울함 뿐이었다. 게다가 혈육을 생매장하는 오빠와 관에서 뛰쳐나온 여동생의 모습은 당연히 공포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에게 추리소설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느낀 ‘어셔 가의 몰락’은 인물들의 행동을 압도하는 힘이 배경에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마치 ‘폭풍의 언덕’에서 등장할 법한 저택의 위치, 침울한 분위기와 비극의 원인이 저택과 주변에 있다는 듯한 묘사(예를 들면, 건물 밖의 곰팡이, 부서진 석조물의 균열, 실내에서 볼 수 있는 바닥과 벽의 음산한 주단 등), 지극히 다양하게 쓰인 부정적 표현들, 이 모든 것이 독자를 설득하는 장치처럼 여겨졌으니까 말이다. 마치 옛날 어르신들이 집이든 무덤이든 ‘어느 어느 곳은 터가 안 좋다. 그래서 악재가 겹친다.’라고 말씀하시던 것들이 떠오르기도 했다.또한 남매 중 우울증 환자인 서술자의 친구 로데릭 어셔는 우울증의 해소를 위해 악기를 자주 연주했는데 들으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들어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비롯되었다거나 독일 민속무용에서 전신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유래에 대한 추측이 제법 여러 가지인 왈츠, 그 중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마리아 폰 베버의 ‘마지막 왈츠’는 여전히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초반에는 제법 잔잔해서 불안감보다는 안정적으로 다가왔고, 중반에는 템포의 변화로 지루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어딘가 음산한 작품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도록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었다.내게 ‘공포’와 ‘어셔 가의 몰락’은 매우 닮은 쌍둥이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다 주었다. 형식이 닮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독자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세계의 거울에서는그들을 닮은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배경에 있어서는 비슷한 느낌을 준 것에 대해 그들이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배경이 큰 역할을 했을지라도 그들은 다른 입으로 독자의 깊은 감성의 눈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어셔 가의 몰락이 묘사 면에 있어서는 공포보다 훨씬 뛰어났고 소설의 묘사에 있어서 어셔 가의 몰락에서 만큼은 한 우물을 팠다고 말하고 싶다. 어셔 가의 몰락에서는 공포보다 대화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에서 대화가 많아지면 그만큼 노출되는 폭이 벌어져 나가고 그것이 곧 소설자체의 균형을 깨뜨려 형태의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묘사가 소설에 있어서 갈등 다음으로 중요한 것임을 이 소설로서 실감했던 것 같다. 성악가의 목소리에 울림 다음으로 퍼짐이 있듯 울림이라는 물결 안의 퍼짐이 이미 존재함과 같이 어셔 가의 몰락은 그러한 묘사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