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변함에 따라 우리의 식생활 또한 변화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사회체제의 민주화보다 식사내용의 평준화가 앞서 일어났다. 그만큼 식사에 대해 관심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의 가정 식사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1. 고대의 식생활고대 때에는 식품확보를 위해 이동하며 생활하였다. 식품 확보하기 위해 짐승을 사냥하거나 채집, 수렵 등의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 당시에는 석기 등을 이용한 조리도구가 발달하여 조리도구와 불을 사용하여 조리 하여 음식을 섭취하였다.초기 원예 농업 당시 다양한 식품을 확보하였다. 또 사회 형성이 미흡하여 계급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식품을 골고루 나누어 먹는 관계가 형성 되어 영양 불량이 없었다. 하지만 후기 전문 농업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량 농업으로 식품이 자본의 원천이 되었다. 이 때부터 사회 형성이 시작되어 계급 사회가 형성 되었다. 계급 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계급에 ㄸㆍ라 식품 분배에 차별화를 두었고 국가 간의 식량 분배 차이가 컸다. 이로 인하여 비만과 기아의 문제 공존하게 되었다.영양총 열량(%)신석기인한국인권장량단백질331612탄수화물466558지방211930P/S 비율1.411.11Cholesterol(mg)520300300Fiver(mg)100~15017.330~60Sodium(mg)6905311,00~3,300Ca(mg)1500~200098800~1500Ascorbic acid(mg)440-60(출처:한국식품영양재단)이 표는 후기 신석기인과 현대한국인의 영양 섭취실태와 권장량을 비교 분석한 표이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석기인들은 식이섬유를 한국인에 비해 8배 정도 더 많이 섭취하였다. 칼슘 섭취량도 1500~2000mg으로 한국인이 권장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의 비율을 나타내는 P/S 비율도 신석기인이 높다는 걸 나타내고 있다.여기서 신석기인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지만 수렵생활로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했던 것을 감안하여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김숙희 한국식품영양재단 이사장은 “연구 결과 신석기인은 한국이나 미국인에 비해 고단백, 저지방 식생활을 영유해 오히려 최근 유행하는 웰빙에 가깝다”고 밝혔다.고대 후기 전문농업시대 때에는 계급 사회가 형성 되었던 때라 계급이 높은 사람들만 고단백, 저지방 식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해본다.2. 중세의 식생활중세 시대 때에는 식생활의 이중 구조가 나타난다. 식탁에 뚜렷한 계급이 형성 되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식생활이 이중 구조로 나뉘게 되었다. 계급 간의 식품의 양, 종류나 질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지배 계급(왕, 영주)의 경우 흰 빵, 목덜미 살코기, 수조육류, 단음식, 풍부한 과일, 알코올 음료 등 30~40가지의 종류가 있었으며 생존을 위해 먹는 정도를 벗어났다. 그에 비해 피지배 계급의 경우에는 보리빵, 죽, 소금에 절인 돼지 배살(베이컨), 차로써 10가지 정도의 종류를 지녔다. 피지배 계급은 생존을 위해 허기를 메우는 정도로만 음식을 섭취하였다.3. 조선 시대 식생활의 구조조선 시대 때에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뚜렷한 신분 사회로 변화하였다. 세종지리에 보면 조선조 총인구 약 670만 중 양반은 4만 명에 불과한 신분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조선 시대 때에는 신분에 따른 구분이 지어져 있었고 그에 따른 역할이 달랐다. 신분은 ‘사농공상’으로, ‘사’는 선비나 사대부가의 문관, ‘농’은 농사 가업으로 하는 지주계급, ‘공’은 공인으로 장인에 해당하고, ‘상’은 상업을 하는 행상이다.계급을 설명한 이유는 계급 구조에 따라 식탁의 상차림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차림은 3첩, 5첩, 7첩, 9첩, 12첩 반상이 있다. 여기서 반상은 전통 한국식 상차림을 의미한다. 반상은 외상으로 손님 접대용이 아니고 웃어른에게 올리는 진지상이 있다.3첩 반상 5첩 반상7첩 반상 9첩 반상12첩 반상그 외 궁중에서 장만하던 왕과 왕비의 평상시 밥상, 즉 궁중음식 수라상은 배치도가 따로 있을만큼 매우 중요하였다. 왕과 왕비들도 식생활을 중요시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궁중음식 수라상 배치도4. 근대화와 현대 식생활1) 20C 초반의 식사와 식품20C 초반에 왕실인 궁중에서는 그 당시 구하기 힘든 희소한 종류의 식품이나 식사 내용에 가치를 부여하여 커피, 설탕, 소고기, 계란 등의 음식을 소중히 여기었다. 이 당시 특정 식품이나 식사를 섭취한다는 것은 상류사회에 속한다는 의식구조를 형성 해주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식사형태의 분리를 만들어내었다. 그 당시 식품 선물은 특별한 대접의 의미를 지녔다. 식품 선물은 오렌지나 바나나와 같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 생산되지 않는 것이나 전복, 영광굴비, 송이버섯 등의 지역의 특산물로 많이 하였다.2) 1960년대 이후 산업사회미국 주도의 한국 경제로 국민총생산이 100배 이상 증가하는 등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1960년대에만 해도 82달러 수준이었던 우리나라는 1997년 10,700달러로 수직 상승하였다. 국민 총생산에 따라 영양상태도 변화하였다. 1970년대에는 국민총생산이 낮아 열량이 부족하였으나 국민총생산이 1,000 달러 이상 되었을 때 열량이 충족되었다. 2,000달러 이상일 때에는 육류와 낙농품을 섭취하게 되었으며 식탁의 서구화가 이루어졌다. 4,000달러 이상일 때에는 건강유지 식품을 선호하여 육류보다는 어패류 섭취가 잦았다. 또, 건강 유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야채, 곡류, 김치의 영양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으며 이 당시에는 마늘, 생강, 파가 암 예방에 좋고 순환계질환을 낮춰주어 인기있는 음식이었다.3) WTO 가입WTO 가입 후 우리 나라는 시장 개방이 되었다. 시장이 개방된 후에 식품 시장의 세계화가 시작 되었다. 자몽 오렌지, 미국식 Breakfast, 오렌지 주스 등 수입품들이 일반화 되었다. 또 식사 내용에 따른 사회계급이 서서히 약화되었다. 한국 사회는 식사내용의 평준화가 사회체제의 민주화 보다 앞서 일어났다.4) 식생활의 세계화(특히 미국화)이 당시 우리나라는 빈번한 해외 여행으로 인해 외국식 문화의 유입 및 전파되었고 섭취 식품의 다양화 되었으며, 주식으로서 밥의 의존도가 감소하였다. 또한 육류 및 지방성 식품의 섭취량과 가공식품의 섭취량이 증가하였다.5. 현대 대한민국의 식사 형태현대 대한민국은 바쁜 사회생활로 인해 끼니를 거르거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여 끼니의 개념이 희박해졌다. 또한, 가족 간의 식사가 줄어들어 식사를 통한 유대감이 약해졌고, 가족 간 식성 차이를 보인다.현대인의 바쁜 식습관으로 간편식품의 개발요구가 증가되는 추세이며, 배고픔을 못 참고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식사를 요구하고, 편리를 추구하는 외식 형태를 띄고 있다.자료: 김미강, 대학생의 식행동이 식이 섭취실태 및 건강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1위 자료는 대한민국 성인 남녀 대학생의 식사간의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규칙적인 식사 생활을 지니고 있는 대학생보다 그렇지 않은 대학생의 비율이 훨 높았다. 2019년인 지금은 이 자료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비규칙적인 식생활을 띄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