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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의이해 레포트 -리게티
    Ⅰ. 서론Ⅱ. 리게티의 생애Ⅲ. 리게티의 주요작품과 저의 평1. 아르티큘라티온2. 레퀴엠3. 분위기4. 모험5. 악마의 계단Ⅳ. 결론Ⅰ. 서론초등학교시절 약 2년간 피아노학원을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리면 귀를 귀울이곤 하였습니다. 자연히 피아노 연주를 소재로 한 영화인 도 좋아하여 2번 보기도 하였습니다. 고등학생때까지는 심심할때나 치고 싶을 때 집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아하는 작곡가로는 쇼팽이 있는데 리게티의 음악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음악을 작곡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과 어쩌다 이 분은 이토록 대부분의 곡들을 음산한 분위기가 나게 만들었을까는 의문이 들었습니다.저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던 작곡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Ⅱ.에서는 리게티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고, Ⅲ. 에서 리게티의 주요작품과 그에 대한 저의 평을 서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Ⅳ. 에서는 이번의 기회로 알게 된점과 느낌점에 대해서 전개해 보겠습니다.Ⅱ. 리게티의 생애작곡가 리게티는 1923년 5월 28일, 당시 루마니아 영토이던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소도시 디최센트마르톤에서 은행업자 산도르 리게티와 안과의사 일로나 소모쥐의 2남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인구 5천명의 소도시 디최센트마르톤에서의 음악적 경험은 축음기에서 내는 몇몇 관현악곡 외에 별다른 곡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들은 음악이라고는 행사에 있을 때 쓰는 곡과 마을 곳곳에서 들리던 통속화된 집시 음악이 대부분 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경험한 루마니아 민속음악에 대한 기억들은 이후 그의 음악에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리게티가 서너 살 때일 때 이웃마을에서 온 남사당패의 무속 의식을 보았는데, 이 때 들은 음악이 아주 흥미로웠다고 합니다. 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악사들 주위에 염소가죽 망토를 입고 뿔과 부리가 달린 악마 가면을 쓴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집시나 남사당패가 내는 특이한 자연배음의 소리, 조율되지 않은 듯한 낯선 소리는 이후 리게티의 호른 작품들에서 평균율을 벗어나는 자연배음의 소리로 시도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클로지로 이사 온 후 어디선가 들린 곡하는 루마니아 여인의 구슬픈 소리 역시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 때 들은 4도로 하행하는 선율구조의 루마니아 전통 만가 ‘보체트’는 80년대 이후 리게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라멘토’ 선율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소도시 디최센트마르톤에서 트란실바니아의 중심지였던 클루지로 이주해 온 이후 리게티의 음악적 경험은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오페라와 음악회들의 실제 연주를 보고 듣거나, 새로 구입한 라디오를 통해 부다페스트와 부카레스트에서 송출되는 교항악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일곱 살때 처음으로 접한 오페라는 못소르그스키의 였습니다. 음악보다는 시각적인 아우라에 압도당했다고 하는데, 화려한 무대와 의상, 청중의 분위기, 심지어 사촌 누이와 함께 나눠먹던 사탕까지 기억해낼 정도로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니 얼마나 그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주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여덟, 아홉 살때부터 라디오로 듣기 시작한 교향약 연주는 그의 음악적 경험을 발전시킨 중요한 매체였습니다. 음악적 중심지인 부다페스트에서 연주되는 당대 최고 수준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클루지에서는 듣기 어려운 새로운 레퍼토리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였습니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부다페스트 음악아카데미에서 작곡을 전공하였고, 산도르 베레쉬, 페렌츠 파르카스 등을 사사하였습니다. 이 당시 부다페스트 음악 아카데미는 라이프치히, 빈 음대에 필적하는 유럽 최고 수준의 음악학교 중 하나였는데, 전통적인 수업 방식과 풍부한 실내악 전통, 철저한 장인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던 곳이였습니다. 리스트의 숨결이 살아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또, 1949년에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민속음악연구소에서 10주간 트란실바니아 지역 민요를 연구하였습니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는 부다페스트 음악아카데미에서 화성법, 대위법, 분석 등을 강의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1956년, 헝가리 10월 혁명 실패 후 12월 서방으로 탈출하여 빈에 도착하였습니다. 1957년 2월에는 아이메르트의 주선으로 마침내 쾰른 서독일 방송국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초청된 리게티는, 처음 6주 간 슈톡하우젠의 집에 머물며서 서유럽 아방가르드 작곡가들과 교분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리게티가 얼마나 새로운 작곡 경향의 정보에 목말라하고 또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 당시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의 말을 알아듣지 모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더하여 탈진된 몸 상태에서도 슈톡하우젠과 쉬지 않고 토론과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하는데 제 현재 정신상태로는 그런 열정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리게티의 음악적 지평을 더 넓히는데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서방 작곡가들의 작품과 문제의식을 집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다름슈타트 하기현대음악제였습니다. 이곳에서 리게티는 서방으로 온 지 몇 달 만에 많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고, 그들과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1957년 리게티 외에도 마우리치오 카겔, 백남준, 윤이상 들의 비유럽 작곡가들이 다름슈타트에 등장한 해이기도 합니다. 다름슈타트 하기현대음악제는 1946년 볼프강 슈타이네케의 주도로 전후 나치즘과 전쟁으로 공동화된 현대 예술의 창조적 에너지를 부흥시키며 일종의 ‘음악적 바우하우스’를 만들고자 시자되어, 오늘날까지도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1960년 쾰른 세계음악제에서 초연으로 서방에서 작곡가로 인정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1961년에는 도나우에슁엔 음악제에서 의 대성공으로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히게 되는데, 음악제 위촉작의 하나였던 베리오의 곡이 완성되지 못하는 바람에 그 대타로 연주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최선을 다하니 하늘이 이런 기회를 내려 주신 듯 싶습니다. 초연 당시 앙코르로 다시 한번 곡이 연주될 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작품의 엄청난 성공 때문에 오히려 첫 성공작인 이 잊혀질 정도였습니다. 이 두 작품은 리게티가 서방에서 습득한 새로운 작곡 기법을 토대로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확립한 첫 결실이였습니다. 그러면서 1961년부터 10년간 스톡홀름 음악대학 초빙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마드리드, 빌트호벤 가우데아무스 재단, 에센 폴크방 음대, 이바스킬라(핀란드)등에서 작곡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1967년에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취득했고, 출판사를 쇼트로 이전하였고, 헬싱키 대학 명예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969년부터 2년간 독일 학술 교류처 베를린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초청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1972년에는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에서 약 6개월 간 상주 작곡가였습니다. 1973년부터 1989년까지 함부르크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3년에 탱글우드 버크셔 음악센터에서 작곡 강좌를 하였습니다. 1978년, 오페라 를 스톡홀름에서 초연하였고 1982년 4년 간의 공백을 깨고 무사히 를 초연하였습니다. 1983년에 슈투트가르트에서 60세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1988년 베를린 축제에서 65세 기념 리게티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함부르크 대학 명예박사가 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서 70세 기념 리게티-쿠르탁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보스톤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명예박사로 임명되었습니다. 1996년부터 4년간 소니 ‘죄르지 리게티 에디션’에서 여덟 개의 음반을 출시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서 개정판 초연을 하였습니다.1998년에 함부르크에서 75세 기념 리게티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2001년에는 과 를 초연하였습니다. 2001년부터 3년간은 텔덱 ‘리게티 프로젝트’에서 다섯 개의 음반을 출시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80세 기념 음악제를 개최하였습니다. 2006년 빈에서 6월 12일 82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습니다.Ⅲ. 리게티의 주요작품과 저의 평리게티는 1958년 전자음악《아르티큘라티온》을 작곡하였습니다. 1961년에 《음악의 미래:작품모음》, 1962년에 톤 크러스터의 수법을 구사한 오르간곡 《불루미나》와 《교향시》, 1965년에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와 2중창 및 관현악을 위한 《레퀴엠》 등을 작곡하여 당대의 작곡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밖에도 《분위기》, 《모험》, 《새로운 모험》그리고 여성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세계와 구름》, 관현악을 위한 《샌프란시스코의 다성음악》이 있습니다.1. 먼저 전자음악인 아르티큘라티온을 들어보았습니다. 전자음악이라 해도 여느 관현악곡과 같은 선율이 흘러 퍼질거라는 생각도 잠시 동굴에서 떨어지는 듯한 물방울소리나 얕은 개울속 에서나 들릴법한 소리, 외계생명체와 교신하는 듯한 소리들이 들려 매우 인상 깊었고, 이 한곡을 들음으로써 이 작곡가가 어떤 사람이겠구나 하는 감이 왔습니다.
    예체능| 2019.09.12| 7페이지| 2,000원| 조회(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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