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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한시사 기말보고서(고려시대 농민시 중심으로)
    [한국한시사 기말보고서]고려 말, 농촌 사회를 담다-김극기, 이규보, 윤여형의 농민시를 중심으로국어국문학과제출일: 2017.12.18.월1. 서론2. 본론(1) 김극기① 田家四時(2) 이규보① 代農夫吟 二首② 聞國令禁農餉淸酒白飯(3) 윤여형① 橡栗歌3. 결론1. 서론-왜 고려 말의 농촌인가?서양사의 시기구분에 해당하는 중세는 10~14세기로, 한국사에서 이 시기는 고려시대에 해당한다. 고려시대는 고대적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동아시아의 정치, 문화변동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대응하였는데, 그로 인해 고대나 조선과는 다른 시대적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후삼국 통일의 혈통이라는 ‘삼한 일통’의 가치관이 고려왕실을 지탱하였고, ‘개방성’을 바탕으로 중국 대륙에서의 변동을 잘 대응하였다. 특히 고려 왕조가 유지되었던 시기동안 중국은 격동의 시기였다. 당·송 교체기, 북방민족 요, 금의 발현, 중원을 장악하여 전 세계에 위력을 떨쳤던 몽골민족의 원(元) 건국, 이후 명의 등장까지. 이러한 주위 환경이 요동치는 시기인 918년에서 1392년, 대략 500년 동안 유지되었던 고려왕조는 매우 흥미로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특히 고려중기 이후는 고려 이전시기와 매우 다른 시기이며, 아주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무신정변이 발발하며 이전시기 동안 유지되었던 문벌귀족을 중심으로 한 고려전기 지배체제가 붕괴되었고, 무신정권은 몽골과의 항전과 원간섭기에 들어가면서 종식되었다. 흔히 고려후기는 고려 충렬왕 즉위부터 충정왕 시기인 원간섭기와, 공민왕에서 공양왕까지의 시기를 합쳐서 일컫는데, 원간섭기는 1273년~1352년인 대략 80년의 시간으로 이 시기동안 고려는 철저히 원에게 종속되었다. 왕들은 원(元)공주와 혼인하였고 태어난 왕자들은 원에서 교육받은 뒤 고려에 와서 왕으로 즉위하였다. 원은 고려 국왕을 통해 고려를 지배하였으며, 국왕을 폐위시키기도, 다시 복위시키기도 하였다. 원 간섭기 이후로 반원개혁과 반원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갈등, 홍건적의 난, 왜구의 침입 등 극심한 시대적 혼란에 올랐으나 벼슬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무신란 후 명종 때에 학행으로 천거되었다가 의주 방어사를 거쳐 한림원에 들어가고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얼마 뒤에 사망하였다. 또한 135권 또는 150권 가량 되는 분량인 《김거사집》을 남겼다. 그 문집은 지금 전해지지는 않지만 여러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 각처를 돌아보면서 지은 기행시가 많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200여 편 가량 수록되어 있으며, 《동문선》에 전하는 45편 가운데 농촌에서 지은 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삼한시귀감》에 많은 시가 뽑힌 시인이라는 데서 여말까지의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그중 는 농촌의 사계절을 다룬 작품으로 《동문선》에는 두 편이 수록되어있으며, 한편은 5언 고시, 또 하나는 5언 율시이다. 는 농민의 말로 농민의 생활을 나타내고 있는 농민시라고 할 수 있다. 김극기는 농민이 아니면서 스스로 농사를 지어야만 알고 느낄 수 있는 농민생활을 나타내는 시를 지었다. 그는 관념도 아니고 경치도 아닌 생활의 실상을 말해주어 민중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채 현실을 인식하는 지식인의 문학을 보여준다.① 田家四時 (전가사시) 농촌의 사계절鴻雁已肅肅 (홍안이숙숙) 어느 새 기러기는 펄펄 날고??仍?? (혜고잉추추) 쓰르라미는 이내 쓰르람 울어대고田夫知時節 (전부지시절) 농부는 시절을 알고 쑥대 베어?艾始報秋 (질애시보추) 비로소 가을 알리네四隣動寒杵 (사린동한저) 사방 이웃에 차가운 절구 소리通夕聲未休 (통석성미휴) 그 소리 저녁내 쉴 줄 모르누나晨興炊?粒 (신흥취숙립) 새벽에 일어나 입쌀로 밥 지으니溢甑氣浮浮 (일증기부부) 구수한 김이 넘치네紫栗落紅樹 (자율락홍수) 자줏빛 밤은 누른 잎 사이에서 떨어지고朱鱗鉤碧流 (주린구벽류) 붉은 비늘은 푸른 물에서 낚네白?酌杜酒 (백병작두주) 흰 병에 술을 따라邀客更相酬 (요객갱상수) 손을 맞아 서로서로 주고 받나니外貌雖陋促 (외모수루촉) 겉 모양 비록 추하고 초솔하나中情尙綢繆 (중정상주무) 마음속의 정은 은근하네酒?起相送 (주란기상,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다양한 형태의 시문이 문학의 이론과 창작, 공식적인 글과 자기표현의 글, 시대의 움직임과 내면의 정서를 모두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적 소재는 무척 다양하며, 이규보는 일상생활의 어느 국면을 관찰하여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예삿말로 나타낸 듯한 작품에도 깊은 고심과 예리한 관찰력이 나타나 있다. 이규보의 문학은 풍부한 소재를 통해 느낀 바를 절실하게 표현하는 한편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표현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기도 하였다. 그는 고구려 건국시조 을 짓기도 하고 현실의 모순을 파헤쳐 농민시를 이룩하였다.이규보는 젊은 시절 최씨 정권을 보다 새롭고 진취적인 세력으로 여겨 최씨 정권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러나 강화로 천도한 후 지도층이 사치와 안락에 빠지고 기존 고려의 토지제도였던 전시과체제(田柴科體制)의 분열과 관리들의 대토지소유로 유민(流民)이 많아지는 것을 목격하고, 노년(老年)에 정권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회의에 빠지기 시작한 그의 시선은 농민으로 옮겨 가서 수탈당하고 피해를 받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는 벼슬을 하는 입장에서 특권적 의식에 대해서 반발하며 지위 때문에 혼미해지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대몽항쟁이 전개되는 동안에 더욱 고난을 겪는 농민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다.① 代農夫吟 二首(대농부음 2수) 농부를 대신하여 읊다帶雨鋤禾伏畝中 (대우서화복무중) 비 맞으며 밭이랑에 엎드려 김매니形容醜黑豈人容 (형용추흑기인용) 모습 검고 추악하니 어찌 사람 모습이랴王孫公子休輕侮 (왕손공자휴경모) 왕손공자들아 나를 멸시 말라富貴豪奢出自? (부귀호사출자농) (그대들의) 부귀호사 농부로부터 나오나니新穀靑靑猶在畝 (신곡청청유재무) 햇곡식은 푸릇푸릇 아직도 이랑에 있는데縣胥官吏已徵租 (현서관리이징조) 현관서리(縣官胥吏) 벌써 조세를 거두네力耕富國關吾輩 (역경부국관오배) 힘써 농사지어 나라 부강하게 하는 것은 우리거늘何苦相侵剝及膚 (하고상침박급부) 어찌 이다지도 괴롭히며 살을 벗粒瑩如珠 (용립옥여주) 절구로 찧어낸 낱알은 구슬처럼 흰데或飼馬與狗 (혹사마여구) 말이나 개에게도 이걸 먹이네碧?湛若油 (벽료담약유) 기름처럼 맑은 청주를霑洽童僕? (점흡동복주) 종놈의 목구멍도 흡족히 적시는데是皆出於農 (시개출어농) 이 모두 농부에게서 나온 것非乃本所受 (비내본소수)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이假他手上勞 (가타수상노) 남들의 손힘을 빌어서는妄謂能自富 (망위능자부) 망녕되이 스스로 부자가 되었노라 하네力穡奉君子 (역색봉군자) 힘들여 농사지어 군자를 봉양하니是之謂田父 (시지위전부) 그들을 일컬어 농부라 하네赤身掩短褐 (적신엄단갈) 붉은 알몸 짧은 갈옷으로 가리고一日耕幾畝 (일일경기무) 하루에도 얼마나 땅을 갈았던가才及稻芽靑 (재급도아청) 벼 이삭 파릇파릇 돋아나면辛苦鋤?? (신고서랑유) 고생스럽게 호미로 김을 매지假饒得千鍾 (가요득천종) 풍년 들어 천 종의 곡식 거두어도徒爲官家守 (도위관가수) 한갓 관청 것밖에 되지 않는다오無何遭奪歸 (무하조탈귀) 어쩌지 못하고 모조리 빼앗겨一介非所有 (일개비소유)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다오乃反掘鳧? (내반굴부자) 어쩔 수 없이 땅을 파 풀뿌리를 캐 먹다가飢?不自救 (기부부자구) 굶주려 넘어진 채 구제할 길 없구나除却作勞時 (제각작노시) 노동할 때 아니라면何人餉汝厚 (하인향여후) 어느 누가 너를 배불리 먹일까所要賭其力 (소요도기력) 목적은 힘을 취하기 위해서이지非必愛爾口 (비필애이구) 네 입을 아껴서가 아니리粲粲白玉飯 (찬찬백옥반) 희디흰 고운 쌀밥이나澄澄綠波酒 (징징녹파주) 맑디맑은 청주는是汝力所生 (시여력소생) 모두가 너의 힘으로 생산한 것이니天亦不之咎 (천역부지구) 하늘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爲報勸農使 (위보권농사) 권농사에게 말하노니國令容或謬 (국령용혹류) 나라의 법령도 잘못될 수 있는 법可矣卿與相 (가의경여상) 공경재상 벼슬아치는酒食?腐朽 (주식염부후) 술과 밥이 썩어서 나갈테지만野人亦有之 (야인역유지) 농촌에 또한 사는 사람 있어每飮必醇酎 (매음필순주) 그들은 매양 막걸리를 마셔왔네游手尙如此 ( 방랑했고, 한때 전라남도 영광의 어느 절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제현 등과 교유한 사실을 토대로 당시의 사대부 사이에 알려졌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또 이제현이 시에서 묘사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는 초로의 나이에 ‘서풍이 몰아치는 밤’과 같은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 문득 ‘피다가 떨어져 버린 꽃잎’같은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남아 있는 시편을 통해서 보면, 그는 일찍이 관로에서 밀려나 오랜 동안 유랑생활을 하는 한편, 농사를 직접 짓기도 하며 피폐한 농민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동문선》에 그의 시 7수가 실려 있는데, 7언 율시 , 은 남쪽 지방을 유랑하면서 느낀 감회를, 그리고 7언 절구인 는 강원도 지방을 방랑하면서 느낀 소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나그네로 떠돌면서 느낀 고달픈 심정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7언 고시 는 권력자의 비리와 조세, 군역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권문세가의 가혹한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의 모습과 차마 죽을 수도 없어 도톨밤을 주워 먹으며 살아야 하는 고려 후기 농민들의 비참한 참상을 절실하고 핍진하게 그려내었다.① 橡栗歌 (상률가) 도톨밤의 노래橡栗橡栗栗非栗 (상률상률률비률) 도톨밤 도톨밤, 밤이라지만 밤은 아닌데誰以橡栗爲之名 (수이상률위지명) 누가 도톨밤이라 이름 지었나味苦於?色如炭 (미고어도색여탄) 맛은 씀바귀보다 쓰며, 색은 숯처럼 검으나療飢未必輸黃精 (요기미필수황정) 요기하는 덴 반드시 황정보다 지지 않는구나村家父老??糧 (촌가부로과후량) 촌집 늙은이 마른 밥 싸 가지고曉起?取雄鷄聲 (효기진취웅계성) 새벽 수탉 소리에 일어나 도톨밤 주우러 가네陟彼崔嵬一萬? (척피최외일만인) 저 높다란 만 길 벼랑에 올라?蘿日與猿?爭 (문라일여원유쟁) 칡덩굴 헤치며 매일 원숭이와 경쟁한다네崇朝?拾不盈筐 (숭조철습부영광) 아침 내내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兩股束縛飢腸鳴 (양고속박기장명) 두 다리는 동여놓은 듯하고 주린 창자 쪼르륵天寒들이
    인문/어학| 2019.09.24| 10페이지| 10,000원| 조회(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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