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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목 차Ⅰ. 16세기 종교개혁1. 16세기 종교개혁에 영향을 준 배경2. 마르틴 루터와 95개조 반박문3. 칼뱅의 종교개혁4.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 비교5. 장 칼뱅, 종교개혁가? 학살가?Ⅱ. 프랑스 종교전쟁1. 가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의 이해2. 영화‘여왕마고’와 위그노 전쟁3. 낭트칙령의 역사적 의미Ⅲ. 30년 종교전쟁1. 30년 전쟁의 전개2. 베스트 팔렌 조약3. 인물 탐구①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② 구스타브 아돌프Ⅳ. 종교개혁의 역사적 평가Ⅰ. 16세기 종교개혁1. 16세기 종교개혁에 영향을 준 배경16세기 유럽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종교개혁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종교개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도덕적 배경이다. 당시 14세기 이후 가톨릭교회에서는 비리가 엄청나게 자행되었고,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 교회를 증축하면서 교회의 비리는 절정에 다다랐다. 그 뿐만 아니라 라이프치히 출신의 수도인 테첼이 교회의 수락 하에 일정한 금액을 주고 면죄부를 구입하면서 지금까지 지은 죄와 함께 미래의 죄까지 사면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며 공공연히 면죄부를 판매하였다. 또한, 신령한 축복을 돈 받고 파는 장사, 성직매매가 성행하였고 심지어 신부들은 그것을 합리화 시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은 일부 주교들이 교회개혁을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정식으로 건의하기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도덕적 기강의 해이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두 번째는 사회적 배경이다.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를 통해 지적인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스콜라 철학이 퇴조하였고, 합리적 정신과 과학 및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학문열은 성서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연구의 기반을 이루었고, 이것은 종교 개혁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였다.세 번째는 경제적 배경이다. 종교개혁 이전 유럽의 경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우선 유럽은 십자군 전쟁 때 8차례에 걸친 군사원조를 하였으 선행으로는 도저히 구원의 대열에 끼일 수 없음’이었다. 이는 오로지 예수의 속죄양 되심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구원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루터는“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는 가르침을 자기의 중심 사상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고, 1517년 비텐베르크 성 부속교회 문에다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하며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용기 있는 행동에 이르렀다.사실 이는 루터가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도전을 하거나 종교를 새롭게 개혁하고자 하는 의도가 조금도 없이 단지 당시의 관례에 따라 종교적 이견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교황과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건 사람이 없는 입장에서 루터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선 엄청난 도전이었음이 분명했다. 그의 95개조 반박문은 때마침 발달한 인쇄술 덕분에 이를 독일 지방의 전역으로 뿌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502년 루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3개의 팜플렛을 발표하였고, 결국 그는 파문을 당하고 발트부르크 성에 은신하며 라틴어로 쓰인 반박문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이후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되고 그리하여 1522년에는 기사전쟁, 1524년~1525년에는 남부 독일의 뮌쩌를 중심으로 대농민 전쟁 등 루터를 지지하는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무렵 칼 5세는 북부 이탈리아의 영토를 두고 프랑스와 다투었고, 발칸 방면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침입하여 빈을 공격하여 국내 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 때문에 루터의 교리는 지금의 독일 북,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Ⅰ. 16세기 종교개혁3. 칼뱅의 종교개혁루터의 종교개혁 시작 시기인 1519년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리’가 철저한 성격주의에 입각하여 가톨릭교회의 성사중심의 신앙을 비판하는 종교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혁에 반대하는 가톨릭 세력과 싸우다 사망하였고, 그에 이어 프랑스 그는‘의인설’을 펼쳤다.‘의인설’이란 인간은 본래 착하게 태어나 스스로 교회와 성직자의 도움 없이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에 대한 신앙과 신의 은총으로 인간은 구제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칼뱅의 종교관은 달랐다. 그는‘예정설’을 펼쳐내며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신자는 자기의 구원을 확신하고 근면하게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것만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두 번째는 사회국가관이다. 루터의 사회 국가관은 지상의 왕국은 불평등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지주이면 누군가는 농노여야 하며, 어떤 사람은 왕이면 나머지는 신하가 되어야 한다는 흑백논리를 펼쳤다. 이와 다르게 칼뱅은 제노바에서 시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종교와 정치가 하나의 행정 체제로 융합하는 신정적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칼뱅은 시민에게 엄격한 금욕생활과 윤리적 생활을 강요하였다.Ⅰ. 16세기 종교개혁5. 장 칼뱅, 종교혁명가? 학살가?칼뱅은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칼뱅의 업적과 생애에 대해 책을 찾아보던 중 그의 잔인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번 장에서는 그가 과연 종교개혁가라고 칭송받을만한 인물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장 칼뱅, 그에 대해선 아직도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업적과 생애를 이야기할 때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들과 그가 처한 위험들을 언급할 뿐 그의 이면은 설명하지 않는다. 제목처럼 장 칼뱅은 사실 매우 잔인한 성격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장 칼뱅은 제네바에서 5년 동안 60여명을 사형시켰고, 자신의 예정설을 반대 하거나,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자신과 성경해석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 투옥시켰고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였다. 교수형 13명, 참수10명, 화형당한 사람은 35명이나 되고 칼뱅이 불과 1만 3천명에 불과한 제네바시를 4년 동안 통치하며 그 자신은 물론 그가 장악한 종교국을 통해 종교개혁을 빙자지만 기본적으로 가톨릭에 비해 허례허식을 멀리하였고 성경과 금욕하는 생활에 충실하였다. 또 중세 가톨릭은 종교적 권위를 넘어 세상의 경제와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세속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프로테스탄트는 율법과 복음을 통하여 세상통치와 영적인 것을 구분 지었다.영혼을 지옥으로 운반하는 마차에서망치를 든 마귀가 사람의영혼을 큰 통에 쑤셔 넣고 길을 재촉한다.수레는 교황을, 바퀴는 수도사를 비유하여 교황 체제에 대한 신교의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Ⅱ.프랑스 종교전쟁2. 영화‘여왕마고’와 위그노 전쟁일단 영화 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는 영화의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프랑스는 루터와 캘빈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이후 캘빈파의 신교를 믿는 위그노들이 전통적인 가톨릭 세력에 도전하였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신교와 구교간의 종교대립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는 이러한 종교대립과 종교전쟁이 일어난 시기를 배경으로 당시 프랑스 왕실의 암투를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1572년‘성 바르톨로뮤 데이’의 기간 동안에 빚어진 위그노 학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마고(마그르트)는 200년간 프랑스를 지배해 온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세대이며 앙리 2세와 카트린의 막내딸이다. 발루아 왕조의 남아있는 형제 중 왕위를 이을 후계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마고의 어머니 카트린과 오빠인 샤를 9세는 발루아 가문에 프랑스의 왕통을 이을 수 있는 왕족의 첫 번째 왕자, 앙리 드 나바르와 마고의 정략결혼을 진행시킨다. 앞서 말했듯 당시 프랑스는 구교와 신교 간의 내전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발루아 가는 구교이고, 앙리 드 나바르의 루브봉 분가는 신교였다. 이러한 두 종교 간 결혼은 형식적 평화의 시대 도래를 위한 그 정략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이때 카트린은 왕에 대한 위그노인 콜리니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그것을 염려한 나머지 가톨릭교도인 기즈가(家)가 계획한 콜리니의 암살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하자 암살 음모가 탄로 날 것을 두려워 한 카트린은 마고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은 신교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약 3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을 종식시킨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로써 앙리 4세는 프랑스 내의 갈등을 극복하였고, 약화된 왕권 확립을 위해 온 힘을 쏟아 프랑스의 전성기인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그러나 루이 14세는 절대 왕정을 수립하고자 하였고, 이에 대한 교황의 지지를 얻고자 하여 낭트칙령을 폐지하였다. 그 때문에 개신교 목사들이 추방되고, 개신교도의 학교가 폐쇄되었으며 사원이 파괴되는 등 개신교도들의 신앙은 다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상당수의 위그노들은 영국과 네덜란드 등을 비롯해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였고, 수학자나 과학자들 역시 낭트 칙령 폐지를 이유로 프랑스 아카데미를 떠났다. 정부는 국경까지 폐쇄하며 위그노들의 망명을 막았지만, 이미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국외로 탈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1787년 종교에 대한 관용이 선포되고, 2년 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거치면서 위그노들은 차츰 시민적 권리를 되찾았다.Ⅲ. 30년 종교전쟁1. 30년 종교전쟁의 전개30년 전쟁은 17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최대이자 최후의 종교전쟁이다. 이 전쟁은 보헤미아 신교도들의 반란을 보헤미아 출신의 신성로마 황제가 무력 진압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가톨릭과 신교도 사이의 대립으로 시작됐지만 황제의 권위에 대항한 제후들의 반란으로 전쟁이 전 독일로 확산되면서 유럽의 열강이 개입하게 되었다. 1618년에 프라하 사건으로 발발하게 되어 1648년까지 여러 전투들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발생하였고, 그것들을 30년 전쟁이라고 한 번에 부르고 있다. 30년 전쟁은 보헤미아팔츠 전쟁, 덴마크 전쟁, 스웨덴 전쟁, 프랑스스웨덴 전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반의 두 전쟁은 지역적인 종교전쟁이었다면 후반의 두 전쟁은 정치적인 영토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언급한대로 정치적 야심을 갖은 유럽의 열강이 참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0년 전쟁은 유였다.
    사회과학| 2020.11.22| 12페이지| 2,500원| 조회(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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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란 무엇인가
    목 차Ⅰ. 정의론1. ‘정의란 무엇인가’···················································3Ⅱ. 미뉴네트호 사건의 정당성1. 공리주의 ····························································42. 자유주의 ····························································53. 목적론주의 ·························································5Ⅲ. 참고문헌·····························································6ⅳ. 참고사진·····························································6Ⅰ. 정의론1. ‘정의란 무엇인가’하버드대학에서 정치와 철학을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즉 이 책은 여러 가지의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제시하여, 정의를 이해하는 다양한 가치와 기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우선, 저자는 정의론을 세 가지 요소로 나누었다. 그 세 가지 요소는“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추구이다.”행복의 극대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이론은 18세기 등장한 벤담의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란“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옳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이다.”라는 것이다. 즉 벤담이 주장하는 정의는‘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원칙이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쾌락과 고통을 계량화한다는 점과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 무시된다는 점에서 난점이 발생한다.자유 존중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론은 칸트의 자유론이 있다. 칸트가 말하는 자유로운 행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결과에 있지 아니하고, 그 동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의무동기만이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칸트의 이론에도 난점은 있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난점은 바로 자유의 이름으로 또 다른 자유를 억압한다는 역설과, 이러한 완벽한 법칙 속에 행동하는 일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마지막으로 미덕추구를 대표하는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이다.목적론적 정의론이란 텔로스(telos, 목적)에 의해 정의를 본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목적론적 근거 아래 정의는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노예제나 여성의 정치참여 금지와 같이 불합리한 대우를 옹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점이 발생한다.저자는 칸트나 롤스의 의무론적 정의론의 한계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로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서로를 보완한 공동체주의적 정의론으로 주장했다.공동체주의적 정의론이란‘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정의를 논할 때 연대 의무나 소속 의무를 빼놓고는 정의를 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미국의 한 정치인이 테러범인 형의 은신처를 말하지 않는 것은 이런 소속 의무 때문이고 이는 비난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Ⅱ. 미뉴네트호 사건의 정당성1. 공리주의공리주의의 핵심 사상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도덕의 최고 원칙이라는 것이다. 또한 벤담에 따르면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는 옳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미뉴네트호에는 선장을 포함한 4명의 선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폭풍을 만나 표류를 시작하게 되었고, 표류를 시작한 지 20일째가 되던 날‘파커’를 죽여 피와 인육을 먹은 나머지 3명의 선원들의 목숨은 구하게 되었다.한 명의 목숨을 희생시킨 대신 나머지 세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파커’를 죽인 문제를 단순히‘다수의 행복 실현’이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하기엔 복잡하다.우선 이 사건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살펴보아야 할 논점 두 가지가 있다.1.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만큼 위기상황이었는가?2. 왜 나머지 선원들이 아닌 소년‘파커’의 희생이 필요했는가?3.‘파커’의 희생보다 ‘파커’의 희생으로 얻은 이익이 더 큰가?그들이‘파커’를 죽인 날은 표류를 시작한 지 20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표류를 시작하고 3일 동안은 순무 2개로 4명의 선원들이 버텼고, 4일 째 되는 날에는 바다거북을 생포해 잡아먹었다. 그리고 8일부터 20일까지 약 12일 간은 음식 없이 버텼다. 즉 물과 음식 없이 12일을 보냈다는 것은 아사 직전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무인도에 갇힌 것도 아니고, 남대서양 한 가운데서 구명보트에만 의존한 체 있기에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상황은 목숨마저 위태로운 응급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 왜‘파커’였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행복’은 무시 받아도 되는가? 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소년선원인‘파커’는 고아로 자라왔다. 그렇기 때문에‘더들리’나 ‘스티븐슨’과 같이 부양할 가족들도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파커’는 이미 타는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셔 병을 얻었고, 어차피 그 병으로 죽을 목숨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파커’는 굳이 선원들이 아니어도 죽을 목숨이었고, 그의 희생으로 나머지 세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리주의에 의해 이 행동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Ⅱ. 미뉴네트호 사건의 정당성2. 자유주의칸트의 자유주의는 의무동기만이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의 유명한 말 중에는“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언제나 보편적 입법에 임한 행동을 하라는 것과 같다.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었어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식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또한 당시 영국의 법에도‘생존을 위해서라도 식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 2020.11.22| 5페이지| 2,500원| 조회(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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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의 이해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의 형성 과정을‘노동력’상품을 중심으로 설명하라.중세 봉건제도에 의한 생산방식은 산업과 상업의 발달로 생산력이 크게 향상됨에 따라 점차 붕괴 되었다. 즉 피지배계급에 대한 가시적인 지배가 사라졌으며, 그 지배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들도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농노들을 봉건적 예속에서 해체시킴으로써 개인에게 형식적인 자유를 주게 되었지만,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가 일어나게 함으로써‘자유로운 노동자(free of, free from)’를 만들었다. 생계수단이 없던 직접생산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생산수단을 소유한자에게‘판매’하게 된 것이다. 즉 과거의 봉건적 소유가 무너지고 근대적 소유가 등장함으로써 노동과 대가의 새로운 결합이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가 대가vf 를 받고 판매하는 것은‘노동’이 아니라‘노동력’이라는 사실이다. ‘노동력’이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이를 구매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권리를 갖게 된다. 따라서 자본가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자신이 노동력을 구매한 가치보다 사용한 가치를 크게 하려고 할 것이다.2.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와 노동자가 현대사회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부상하는 변화를 각각 정리하라.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한다. 자유로운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계약이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는 불평등한 관계임이 분명하다. 자본이 없는 노동자들은 생계수단으로써 일이 필수지만,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대체 할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한 가치보다 사용한 가치를 크게 하여 자신의 이윤을 창출하려고 한다. 즉 노동자들의 일의 강도를 높여 더욱 효율적으로 부를 창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착취’를 볼 수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봉건제 사회에서 영주와 농노는 신분적 예속을 바탕으로 가시적인 착취가 이뤄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인 노동계약을 통한‘은폐된’착취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착취는 노동과 그 대가가 오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하는‘정상적인’형태지‘예외적인’형태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이면이 자본가와 노동자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부상하게 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3. 프랑스혁명에서 국가권력이 수행한 역할을 서술하고 긍정적, 부정적 함의를 함께 평가하라. 이러한 논의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국가권력과 시민권력 사이의 대립 관계에 대해 설명하여라.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을 전파했던 프랑스혁명에서 가장 강력한 주체의 역할을 했던 것은 국가권력이었다. 삼부회는‘국민의회’를 선포하였으며. 이후 신분적 예속의 상징인 봉건제를 폐지하였다. 또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통해 모든 인간이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선언했다. 17세기 후반에 들어서 국민의회는 입헌군주제를 규정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고 이후 보통 선거에 의한 국민 공회 소집 또한 결의하였다. 그리고 곧 국민공회는 공화정을 선포하였고, 루이 16의 처형까지 이르렀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등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 혁명이 전파될까봐 두려워 할 만큼 범국민적인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프랑스혁명은‘인민주권’과‘보편인권’이라는 원칙을 확산시킨 가장 대표적인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성하면서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을 보편화시켰던 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 또한 이념적으로는 충분히 긍정적인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던 사실은 이념과 달랐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입법의회가 소집되고 재정된 새로운 헌법 아래에 부여된 참정권은‘세금 납부’에 따른‘일부’시민에게만 부여되었다. 이는 재산소유에 따른 정치적 권리 제한으로, 실질적인 평등을 부여하지 못했다. 둘째, 프랑스 혁명의 시민권 이념은 자본 소유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혁명에 참여했던 대다수는 무산자 대중들이었지만 실제로 혁명은 신흥 부르주아들의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정작 무산자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였다. 셋째,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는‘처형’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는 근대적 시민사회를 형성하고자 하였던 국가권력이‘살인’을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 테러와의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처형’외에도 사회적 연합체를 해체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프랑스혁명이‘시민사회’를 형성함과 동시에 시민사회의 결사체들을 해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프랑스혁명은 이념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받을만한 운동이었으나, 실제 전개된 사실이 이념과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평가를 넘어서 오늘날에도 프랑스혁명에서의 국가와 시민사이 갈등의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그 한계에 대해서 다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혁명부터 지속되고 있는 이러한 갈등양상을 현대사회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는‘집회’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전통적 자유권 중 하나인 집회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한다. 그 권리를 지키는 것이 곧 사회의 이념을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다양한 규제로 집회를 규제하려고 하고, 심지어 매년 경찰에 투입되는 예산을 늘려가는 실정이다. 즉 국가는 국민들에게 형식적으로는 이념과 생각의 자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권리를 부여하지만 많은 법적 규제를 통해 그것을 억압하려한다.4. 미국사회에서 소비주의가 가능할 수 있었던 조건을 법인기업에서 일어난 혁신을 중심으로 서술하라.
    학교| 2020.11.22| 3페이지| 2,0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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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병권 <살아아겠다> 서평
    현대문화론 서평과제_“살아가겠다”“철학이란 무엇일까”도대체 철학자는 누구일까? 저자는 철학자를 자신의 삶으로 철학을 입증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가령 앎이 삶과 분리되어 있을 때, 그 앎은 그저‘정보’가 되고, 공부는 그 정보의‘저장’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철학은 그 자체로 앎의 대상이 아니라 행함의 지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오게네스는“만물은 만물 안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그곳에서 연대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만물은 각자 만물을 품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평등하고, 인간끼리도 그렇다. 또한 만물이 만물 안에 있다는 것은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태일 유서에서 우리에게 동일한 존재가 되어주기를 요청하는 것도 이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철학과 정치의 수렴을 이야기하였다. 자신의 삶을 잘 가꾸고, 그 속에서 타인에 대한 돌봄을 깨닫는 것. 다시 말해 삶의 연대와 이를 위한 투쟁이‘철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살아가겠다”라는 제목은 대한문 농성촌의 한 의자에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해 누군가가 적어놓은 구절이라고 한다. 제목만 보아도 삶에 대한 결연한 태도가 느껴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인식의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실천의 차원까지 더해 철학자가 되어 삶을 살아가기를 제안하며, 그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우선 철학이란 내가 살아가는 현실, 그 속의 나를 대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우리 삶의 등대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기존에 내가 읽어왔던 책들은 철학을 비단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신념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힐링 열풍과 함께 많은 책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작가들 특유의 글 솜씨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독자들인 우리는 그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뿐이다. 책을 덮으면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고, 나는 또 다시 그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비단 개인의 태도로만 보지 않는다. 도처에 깔린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그 현실 속에서 우리의 태도, 필요하다면 투쟁할 줄도 알아야 하는 용기에 대해서 제안하는 것이다. 즉 여태동안은 삶을 주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살았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삶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계속해서 반체제적으로, 비자본주의적으로, 혹은 우리가 살고 싶은 삶으로 구성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3부부터는 전태일과 쌍용자동차 고동민 등 체제에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헤아릴 수 없는 이름, 전태일’, 이것은 저자가 한 강연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노동자가 노동자에 머물 것을 거부할 때 노동해방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억압받는 권력에 투쟁으로 대항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는 지켜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능력이 없을 때가 아니라 의지가 꺾일 때 노예가 되고,‘진짜’바보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2살의 청년노동자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면서 투쟁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전태일 사상』은 노동운동의 정신으로 계승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각자의 전태일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전태일의 유서에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최근 대한민국에는 백남기 농민사건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까지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냉전 반공주의는 한국사회의 틀 내에서 이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제약했고, 이 외의 이념을 수반하는 다른 조직과 정책에는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과도한 공권력 사용으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해 특정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였다. 나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학생 중 한명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해서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10월 3일 백남기 농민 시위부터 시작해 12월 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까지 광화문에서 열리는 대부분 시위에 계속 참석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간 것이었지만, 그곳은 내게 정말 살아있는 배움의 장소로 기억된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부터, 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세월호 가족위원회, 전교조, 각종 문화 및 종교연대 등 다양한 집단들이 있다. 그리고 다들 각자의 의견과 요구안을 걸고 목소리를 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금속노조가 전태일 정신에 관련된 판넬을 만들어 그것을 목에 걸고, 삼보일배를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또 다른 전태일이 있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없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투쟁이 유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박함과 진실함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 시위에서도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지기 마련”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이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한 달이 넘는 시위 끝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은 가결되었고, 언론매체들도 이제야 정부가 세월호에 대해서 숨기고자 했던 것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나도 이번에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투쟁’으로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단지‘부스러기’로만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현장의 언어’를 직접 경험하고 그 감응을 그대로 느껴본 사람으로서 투쟁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힘없는 우리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억압받는 현실에서 우리는 투쟁을 통해 권력을 가진 자들과 대등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이번과 같은 200만의 기적과 변화를 계속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고, 투쟁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20.11.22| 2페이지| 2,500원| 조회(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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