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영화 「봄날은 간다」 분석 -< 차례 >1. 머리말2. 허진호, 그의 멜로드라마└2-1. 허진호└2-2. 허진호 작품의 특징, 절제3. 「봄날은 간다」 속 사용된 영화 기법└3-1. 영상 기법└3-2. 음향 기법4.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5. 맺는 말6. 참조문헌1. 머리말상우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이 생명 다 바쳐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바쳐 여자를 믿었던 순수한 남성, ‘상우’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을 쓸 수도 없는 사랑 때문에 점차 현실에 물들며 조금은 마모된 여성, ‘은수’의 시작과 그 끝을 담은 영화, 「봄날은 간다」는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다.감독 허진호는 한석규, 심은하 출연의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로 1998년, 데뷔작임에도 특유의 분위기로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주며 대한민국 멜로 영화계의 신예로 등장했다. 이후, 다시금 본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잔잔한 멜로 영화로 노선을 정해 「봄날은 간다」로 2001년, 청룡영화상(최우수 작품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특히, 본 작품에서는 간결하고 절제된 기법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평범한 스토리 속 섬세함을 돋보이게 한다. 이를 통해 어딘가에나 있을 법한 연애가, 또 세련되지 못한 이별이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하고 아련한 모습으로 담아지는 것이다.본 글 2에서는 감독 허진호에 대한 약력과 함께 기존의 한국 멜로드라마와 약간은 억제된 그만의 ‘멜로드라마’를 짧게 다루도록 하겠다. 3에서는 「봄날은 간다」 속 사용된 기법을 통해 각각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서 분석하도록 하겠다. 4에서는 주요 인물인 상우와 은수, 영화에서 상우와 함께 병치되어 나오는 ‘할머니’에 대해서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라는 소제목을 통해 그들의 사랑과 그 사랑의 죽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며 마치도록 하겠다.2. 허진호, 그의 멜로드라마2-1. 허진호허진호(1963~)는 1989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를 졸업 후, 1992년 영화 아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무색무취와도 같은 새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절제된 멜로드라마 스타일을 보여주는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허진호인데,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해 「봄날은 간다」, 「행복」 등 허진호의 멜로드라마 여로는 ‘사랑-이별-인물의 성장’이라는 주제를 항상 가지고 있으며, 신파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되려 관객의 감정을 특유의 감성으로 담담하게 두드릴 수 있었다.허진호 작품의 특징 중 눈여겨 볼만한 것은 바로 ‘절제’이다. 운명성이 강조되는 한국식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허진호 작품 속 연인들의 사랑에는 운명성이 없으며, 이렇다 할 갈등도, 굴곡져 있지 않고 완만한 이야기 구조는 우리와의 일상과 닮아있다. 또한,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및 여타 허진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죽음’(부재)은 멜로드라마적 소재로, 이를 이용해 관객에게 비극의 정서를 끌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허진호는 이를 담담하게, 오히려 지나가는 장면으로 보일 만큼 무게를 두지 않았다. 그 대신, 롱 테이크와 롱 샷을 구사하고, 멜로드라마에서 주로 쓰이는 클로즈업을 억제하는 등 독창적인 시도를 통해 극중 인물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영화가 끝나고도 관객이 능동적으로 곱씹을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지점을 선사하는 것이다.3. 「봄날은 간다」 속 사용된 영화 기법「봄날은 간다」가 대단한 찬사를 받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영화 기법과 화면 구성을 통한 감성의 유발이 있을 것이다. 본 글에서는 영화의 화면에서 드러나는 영상 기법과 음향 기법을 통해 각각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서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3-1. 영상 기법영화 「봄날은 간다」는 인물이 중심이 돼서 화면에 가득히 채워지는 클로즈 업의 사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2-2에서 언급했듯이 쇼트는 대체로 롱 쇼트, 미디움 쇼트만을, 긴 호흡으로 장면을 이어나가는 롱 테이크가 주로 사용된다.(1) 익스트림 롱 쇼트「봄날은 간다」는 장소와 인물의 직업 특성상 자주 쓰여 더 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허진호 감독만의 롱 테이크 기법을 구사하여 주변을 더욱 사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영화에서는 두 인물이 일하는 동안은 자연의 소리를 담아야 하기에 그 전경을 담는 것과 함께 여유로움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롱 테이크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영화의 흐름이 끊기는 일 없이 관객 역시 대나무 숲의 청취淸趣를 느끼며 영화의 분위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봄날은 간다」에서 가장 롱 테이크 기법이 잘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오는 상우를 기다리는 은수, 그런 은수와 만나자 허리가 꺾일 듯이 안아주는 상우, 그들이 꼿꼿이 고정된 카메라 바깥으로 퇴장하기까지 장장 2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여타, 멜로드라마에서 클로즈 업 쇼트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반해, 「봄날은 간다」에서는 미디엄 쇼트와 롱 테이크 기법으로도 연인끼리의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를 관객의 마음에 착실히 녹여내었다는 점에서 다른 멜로드라마 작품과 차별성을 지닌다 할 수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이를 다루는 「봄날은 간다」에서도 롱 테이크 기법을 통해 상우와 은수의 이별을 담아내고 있다. 이별 장면에서는 독특하게 아웃 포커싱이 활용 되었다. 망원 렌즈로 배경의 초점을 흐리게 하면서 한 프레임에 있어도 상우는 점차 또렷하게, 은수는 뒷걸음질 칠수록 표정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인파 속으로 사라지며 흐릿해져 간다. 이 장면 역시, 클로즈 업 쇼트가 아닌 미디엄 쇼트로 처리가 된다. 클로즈 업 쇼트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바로 알아챌 수 없게, 이들의 이별을 마주하는 우리는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점차 복잡 미묘하게 변해가는 상우의 감정과 심정을 길게, 또 찬찬히 읽어내 가는 것이 이별 장면의 하나의 묘미라 할 수 있다.3-2. 음향 기법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꽤나 큰 것을 알 수 있다.한 현장감뿐만 아니라, 결말 장면에서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상우를 따라잡으려는 은수의 신발 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은수의 다급한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3) 배경음악「봄날은 간다」의 메인 테마곡은 ‘One Fine Spring Day’이다. 이는 영화의 영제와도 동일한데, 이 OST를 들어보면 피아노와 클래식 기타와 함께 아코디언까지 쓰여 다양한 악기가 쓰이며 음악을 변주한다. 햇살과도 같이 찬란한 사랑이었지만, 해가 지면 어둠으로 사라지는 듯한 쓸쓸한 분위기를 음악을 통해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그리고 극 중에서는 자연물의 소리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의 인물 중 노부부와 할머니, 상우가 부르는 노래도 삽입되어 있다.“백발이 오지나 마라고 가시성을 쌓았더니 고 몹쓸 백발이 앞을 질러 왔소.서산에 지는 해가 지고 싶어 지나.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이야 가고 싶어 가나.”노부부의 「정선아라리」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상우가 부르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해선 안 될 사람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 아아 안녕.”할머니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위의 노래 세 곡은 전부 ‘떠나는 사람’에 대한 노래다. 위의 가사들처럼 힘이나 의지, 또는 사랑으로는 도무지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은 떠나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노래들은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와 맞게 자연의 전경과 어우러지거나, 인물의 격한 감정을, 아름답지만 허망한 봄날의 느낌을 관객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노래 가사의 내용을 통해 상우와 은수의 결말을 지레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또한, 강가에서 은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노래의 제목은 이다. 은수와의 이별 후, 방 정리를 하던 상우는 그때의 노래를 있게 된 것이다.은수에게 상우는 이혼 후 적적한 외로움을 달랠 수단이라기에 꽤나 깊은 마음을 가지고 대했음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라면 같은 사랑’을 원했던 은수는 상우와는 사랑의 궤도를 달리 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은 이 둘이 시작부터 어긋난 사랑을 하고 있던 것을 점차 알아가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물을 끓이면 최소 5분 안에는 완성되는 라면. 봄의 직전 겨울에 김장을 시작해 맛이 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김치.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김치는 부담이 되고, 라면은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을. 김치 같은 사랑을 원했던 남자와 라면 같은 사랑을 원했던 여자.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과 김치는 꽤 괜찮은 조합인데.영화에서 상우는 어쩐지 아마추어와 같은, 은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순수해서 상대를 절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감정을 밀어 붙일 수밖에 없는 상우의 사랑은 은수에게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온다. 결국에 다른 남성과 술을 마시고 들어와, 상우에게 매달리고 응석을 부리며 종국에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상우에 대한 사랑과 불가능한 영원한 사랑 사이의 고뇌이며,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는 은수에게 있어서는 고통이다.소화기 사용법을 알려주어도 상투적인 질문으로 돌아오는, 운전을 가르쳐 주면서도 속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은수에게 있어서 상우는 재미가 없다. 소화기 사용법은 몰라도 분위기 전환법은 아는, 드라이브를 가도 복잡한 마음에 더 속도를 올려달라고 부탁하면 군말 없이 속도를 올려주는 음악평론가를 택하게 된다. 결국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을 불신하는 은수는 상우와 이별을 결심하고, 상우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냐 물으며,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며 착잡하게 말한 후 떠난다. 그 후, 은수의 집을 몰래 찾아가기도 하고, 차에 차키로 스크래치를 내놓기도 하는 등 실패한 사랑에서 기인한 열병의 증상은 상우에게 치졸함과 지독함을 선사한다.은수와의 이별 후, 상우는 또 수색역으로 간 할머니를 찾으러 간다.
20세기를 반추하는 법- 『삼대』의 인물 분석을 중심으로 -< 차례 >1. 서론 ; 염상섭과 리얼리즘2. 본론 ; 당대 사회의 파편└2-1. 삼대의 조 씨 가문└2-2. ‘주의자’와 무리3. 결론 ; 현재에서 과거를 되새김질하다4. 참조문헌1. 서론 ; 염상섭과 리얼리즘『삼대』는 염상섭(1897~1963)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삼대』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부인 ‘조 의관’, 부친인 ‘조상훈’, 조씨 가문의 손자 ‘조덕기’로 내려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다른 시대를 타고 태어난 세 세대의 갈등과 그로 말미암아 교체되는 세대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식민지 시대 조선,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태를 여러 인물, 그리고 사건으로 엮은 작품이다. 특히, 근대 사회로의 전개 중 당시 사회 구조가 지닌 모순과 더불어 조선에서 몰락하는 한 가문을 치밀한 수법으로 그려냈다며 탁월한 평을 받기도 한다.염상섭은 한국 소설가 중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라고 불릴 정도로 당대의 시대상을 세밀한 묘사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리얼리즘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작품이 바로 『삼대』이다. 작품을 들여다보기 전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독일의 사회주의 철학자 엥겔스는 리얼리즘을 “세부의 진실성 외에도 전형적 상황에서 전형적 인물을 진실하게 재현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러니 리얼리즘이란 당시 상황을 면밀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만이 아닌,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꿰뚫는, 그러기 위해서 전형적인 상황과 인물로 사회를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리얼리즘이란 절망적인 현실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을 투영하여 나온 현실에 대한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삼대』는 문학계에서 리얼리즘의 각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이다. 근대 사회의 자본주의의 유입이 염상섭이 관찰한 당대 사회상이었을 것이다. 작품 안에서 해답을 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때의 서울을 현실감 있게 재현한 것은 한국 소설계에서 찾을 수 있는 리얼리즘의 큰 의의라 생각된다.염상섭이 관찰하고 녹여낸 『삼대』의 배경은 전형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식민지를 살아가는 시민들. 하지만, 그 속의 인물상은 개성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적이라기 보다는 전형적이고도 개성적이라 할 수 있다. 유교적 전형성을 드러내는 조 의관, 방황하는 개화기의 전형성인 조상훈, 식민지 시대의 우유부단한 지식인 조덕기. 그러니, 『삼대』의 특징 중 하나는 전형적 배경 속에 살아 움직이는 개성적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따라서, 본론에서는 각 전형성을 토대로 인물을 분석해 보도록 할 것이며, 결론에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조덕기를 화자로 배치함으로써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 주제의식을 유추해 보도록 하며 마치겠다.2. 본론 ; 당대 사회의 파편『삼대』는 압도적인 분량을 입증하듯이 작품 안에서는 여러 계층의 인물이 등장한다. 또한, 그에 맞게 인물은 각자의 삶의 양태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당대 열광적인 이념이었던 사회주의부터 구한말 복고주의, 소시민, 술집 여급까지 모든 인물이 뒤섞여 비춰주는 나약한 현실과 그 속에 문드러진 병폐, 『삼대』에는 이념을 대표하는 인물부터 퇴폐와 쇠퇴의 속성을 가진 인물이 현실적으로 나온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당대의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으며, 청년들의 내적 괴로움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삼대』는 화자 조덕기를 앞세워 조 씨 가문, 작품 내에서 ‘주의자’라고 불리는 사회주의자를 중심으로 하며 전개된다. 두 집단은 모두 화자 조덕기와 연결 지을 수 있는데 전자는 세대 간의 갈등을 나타내고, 후자는 이념적 갈등을 나타내기도 하며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조 씨 가문과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인물은 ‘두 친구’, 조덕기와 김병화다. 처음에는 작품에서 섞일 것 같지 않고 평행 된 선처럼 따로 흘러가는 듯하더니, 여러 인물의 등장으로 서로 엮어가며 점차 치밀하게 전개되어 간다. 그러다 조 의관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부상한 의문으로 소설 구성의 긴장감을 이끌어간다.또한, 『삼대』에서 집요하게 나타나는 제재는 ‘돈’이다. 이러한 제재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돈에 의해 타락하고 속물 되게 된 인간이 아닌 돈 때문에 고뇌하며 이러한 돈의 위력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인물을 통찰하게끔 한다. 근대 사회 속,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영향을 끼친 『삼대』의 조선에서 주요 인물의 행동 양상은 어땠는지 본론으로 들어가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2-1. 삼대의 조 씨 가문『삼대』의 사건 전개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조 씨 가문이 아닐 리 없다. 『삼대』를 읽으며 주목해야 하는 점도 ‘조 씨 가문이 어떠한 경위와 경로에 의해 문란해져 가고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가.‘라 생각한다.삼대 중 첫 세대인 조 의관은 남아선호사상을 보여주며 가문과 돈에 집착하는 등 굉장히 탐욕적인 인물이며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미 저 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양반’이라는 권위를 내려놓지 못해 족보까지 사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자수성가하여 가문을 일으켜 재산을 불려 나간 인물답게 돈의 가치에 대해 일관적으로 덕기에게 이른다.“공부가 중하냐? 집안이 중하냐? ....... 그 열쇠 하나에 네 평생의 운명이 달렸고 이 집안 가운이 달렸다. 너는 그 열쇠를 붙들고 사당을 지켜야 한다. 네게 맡기고 가는 것은 사당과 여쇠 그 두 가지 뿐이다. .......”여기서 ‘열쇠’와 ‘사당’은 각각 돈과 가문을 상징한다. 몸이 쇠약해져 가는 와중에도 가장 믿었던 손자 조덕기에게 다른 말이 아닌 돈을 지키라고 하는 인물이다. 자기 아들을 건너뛰어 손자에게 모든 걸 맡기는 모습은 직접 목도한 개화기 세대에게 갖는 불신을 보여주기도 한다.두 번째 세대인 조상훈은 과도기적 인간이다. 사천 원 돈을 주고 양반 가문을 산 아버지를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며 봉건 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오는 외나무다리의 중턱에 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등 자기 부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인물이다. 조상훈이 아버지를 봉건적 인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본인이 물 건너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며 기독교 목사로 사회를 변혁하려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축첩 생활을 하는 등 정욕과 돈에 멀어 타락해 간다. 기독교인이면서 문란한 생활을 일삼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미 자신 아버지의 신임을 잃은 지 오래며 자신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들 조덕기와도 갈등하며 주변 인물들과 척지는 인물이다. 결국에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유서를 위조하기까지 하며 최악의 말로를 보여준다.조 의관이 변해가는 시대와는 반대로 고정해 있는 인물이고 조덕기가 신세대로서 사회 변화에 대해 자각을 하는 인물이라면 조상훈은 그 경로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는 인지하고 있지만 나라가 위태로이 유지되는 판국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지향점을 잃어버린 젊은 개혁가의 모습을 하는 것이다. 시대의 격동 속에서 나름대로 미래의 길을 모색했지만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 그대로였다.삼대의 마지막 세대인 조덕기는 조 씨 가문과 사회주의자들과 가장 긴밀하게 엮인 인물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조덕기는 굉장히 중립적인 위치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조부, 부친과 갈등하지만, 그들을 연민하기도 하며, 사회주의 이념을 하는 인물과 친구지만 그와 동행하지는 않는다. 작품의 끝자락에서도 부유한 모습 그대로의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돈이란 무엇일까, ‘돈 없는 덕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갈등한다.신세대를 상징하는 조덕기는 어쩌면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사회는 유례없는 식민지 시대와 개화의 상황 국면 하였다. 혼란하고 따라갈 선례조차 없이 방황하는 모습을 조덕기는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지 않아서, 유교적이고 전근대적인 엄격성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조덕기는 비판적 사고를 끊임없이 행하는 인물이다. 또한, 집과 병화네 하숙집, 바커스 등 여러 곳을 들르며 그가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조덕기가 격변하는 시대의 꼬랑지라도 잡기 위해 전력투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2-2. ‘주의자’와 무리소설을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집단은 바로 김병화를 주축으로 하는 사회주의자들이다.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많이 없지만, 경애와 필순과 같이 외부에서 그들을 조력하는 인물 역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조덕기가 집안 내에서 겪는 일을 제외하면 모두 사회주의자와 관계해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조덕기에게 김병화는 오래 지낸 벗이며 홍경애는 죄책감의 대상, 필순은 가여움에서 애정으로. 이렇듯 그는 외부에서 여러 인물과 관계를 맺는다. 그중에서도 김병화와 홍경애를 중심으로 가문 내외의 사건을 착실하게 엮어간다. 조덕기는 이들을 도우며 법과로 진학하려고 한다. 타락한 자본주의를 떨쳐내고, 적극적 사회주의에 뛰어들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방도를 찾아낸 것이었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박노해, 본명은 박기평,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노동자들을 대변하려 했던 노동운동가이며 동시에 사진작가다. 필명에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듯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이다. 1957년생인 그는 상업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일찍이 노동과 밀접한 삶을 살았다. 84년에 출간한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군사 독재 아래 시기였기에 금서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어 노동자 계급의 답답한 심정을 세상에 드러내기도 했다. 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및 군부독재로 인해 수감 생활을 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의 단단한 사상은 꺾을 수 없었다. 석방 이후에도 사회 운동을 하기도 했고 흑백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결핍의 이미지로 사진전을 열기도 하는 등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지구 공동체에 대한 의문을 수십 차례 제기하기도 한다.『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에세이다. 책은 시인이 직접 포착한 단순함과 단단함, 단아함의 결집체와 더불어 시인의 짤막한 글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기도하는 여인, 평화의 깃발과도 같은 하얀 빨래, 학교에 가기 위해 싸늘하고 가파른 고원 지대를 가야 해도 알파카 옷을 입은 채 손을 마주 잡으며 활짝 웃는 아이들, 호수 위 아리땁게 피어있는 꽃밭 등 12개 나라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일상 속 한 장면을 흑백으로 만나볼 수 있다. 흑백 필름 사진이기에 그들의 정갈한 삶이 더욱더 돋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책에서는 그들의 이미지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단순’하지만 직시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법, 그 속에서 ‘단단한’ 심지와도 같이 느껴지는 그들에 대한 시인의 애정 어린 시선, 마지막으로, ‘단아’하게 펼쳐진 그들의 삶이다.박노해 시인이 포착한 삶들의 공통점은 고통과 고난, 결핍을 품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가난과 결핍으로 인한 고통스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 굴하지 않고 흑백 너머로 색채가 느껴질 정도로 온화하게, 그리고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로 살아간다.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단순함만으로 풍요를 창조해 나간다. 책을 여는 서시에는 ‘가난이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고난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독이 나를 단아하게 만들었다.’라는 연이 있다. 시인이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발견한 모든 것은 자신의 단순함, 단단함, 단순함과 맞닿아있다. 시인 역시 고통 속에 삶을 이어갔지만, 그것들이 시인을 꺾게 하여 주저앉게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인은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였다.책을 이루는 것은 흑백 사진과 짧은 글이다. 그런데도 독자는 한 사람이 찍고 엮어놓은 타국인의 일상을 보고 자신의 삶을 교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지 하염없이 고찰한다. 흘러넘칠 정도로 많아 부족함 걱정 없이 넉넉한 것은 진정한 풍요라 할 수 있을까? 시인이 담아놓은 사진의 모든 이들은 단순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단단한 몸짓과 단아한 표정을 잃지 않는다.물질의 풍족함과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의 풍요를 누리고 있을까? 물질은 일시적이나마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매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장담을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탐하려 하는 사람은 결국에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소유에서 오는 행복은 일시적임을 인지해야 한다.그들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의 삶에는 물질의 풍요 대신 마음의 풍요가 꿰차고 있다. 빨래하며 담소를 나누는 여인들, 오늘도 향신료를 정갈히 정리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 단순하고 조용히, 느긋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도 행복은 찾을 수 있다. 그러한 행복은 마음을 풍요롭게 하며 여유를 순간마다 새겨놓는다. 어떨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그에 반해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똑같은 21세기임에도 어떤 곳은 이미 빨리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 더 빨리 지나가지 못해 안달이고, 더 가진 사람들이 더,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다.언제부터 모두가 빠르게 살려고 한 지는 알 수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는 사회에 도태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사회를 막연하게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사회를 변혁시키며 이득이 되는 점을 무수히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아래의 사람을 황망하고 삭막하게 만들게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속도감에 맞추려 ‘나’를 누르고 없애다 보니 점차 무력해진다. 그렇게 속력은 여유를 없애고 무력은 상실을 낳는다. 반복되는 일을 하지만 행복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현대인들. 일상 속의 비일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최명익 작가론 ; 식민지 지식인을 반영하려 한 작가< 차례 >1. 서론2. 본론 ; 작가 생애 및 문학 세계└2-1. 작가 생애└2-2. 무기력하고 고립된 주인공└2-3.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반영하는 공간3. 결론 ; 모더니즘을 대표했던 작가4. 참조문헌1. 서론작가 최명익은 한국 근대문학사의 지식인 소설의 대표적 작가이다. 동시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과 견줄 정도의 심리소설을 집필하였으며, 그의 작품의 주인공 대부분은 무기력하고 음울한 지식인이 대거 등장한다. 그의 문학 활동의 주 무대였던 1930년대는 식민지로 인한 병리적인 분위기가 시대를 강타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 최명익은 오히려 절망감과 소외감을 여과 없이 작품에 드러냈으며 도리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을 앞세웠다. 그가 문학적 성과를 얻었던 이유도 내면화된 부정적인 의식을 뛰어난 묘사로 보여주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적은 양의 작품으로도 모더니즘과 자의식 경향은 주요한 위치에 설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도 이상과 모더니즘의 한 주축으로 평가받는 작가지만 서로 다른 느낌의 작품을 발표한다. 최명익의 작품에 좀 더 흥미가 갔고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그에 대한 작가론을 작성하기로 결심했다.2. 본론 ; 작가 생애 및 문학 세계최명익은 식민지 상황에는 무기력한 지식인의 내면 묘사에 철저했던 반면, 해방 후에는 현실 반영과 개혁 의지를 작품에 담아냈다. 그마저도 평생을 북한에서 작품 활동하였기에 작품 연구 및 작가에 관한 연구가 미진하다. 그러니 본 글에서는 식민지 상황 아래의 품, 「비 오는 길」, 「무성격자」, 「심문」, 「장삼이사」를 위주로 최명익과 주요 등장 요소를 통한 작가만의 문학 세계를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2-1. 작가 생애최명익은 1903년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최명익에, 그의 부모는 그를 억지로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책을 읽도록 권유하였다. 어릴 때부터 문학적 식견을 높였으며, 이러한 최명익의특히 유학 도중 다양한 미술 전람회를 접하게 되는데 이 역시 그의 관찰력과 필력, 절제력을 길러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최명익이 문단에 처음 등단하게 된 것은 19336년『조광』에 발표된 「비 오는 길」을 통해서이다. 이를 시작으로 「무성격자」, 「심문」, 「장삼이사」 등 여러 작품을 집필하게 되며 서서히 당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한다.문학사에서 주목받는 작품은 대체로 193-40년, 이맘때에 발표한 것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평양의 주요 작가로 활동하면서 여러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평양에 남아 ‘평양예술문화협회’를 조직하는 등 북한에서도 문학 단체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잔재, 지식인의 한계, 자연주의 경향 등 지속적인 비판을 받으며, 결국 숙청으로 인해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다.2-2. 무기력하고 고립된 주인공최명익의 소설 속 인물들의 공통점은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항상 소설의 화자는 지식인이며, 현실을 살아가지만 나름의 이상이 있다. 그런데도 결국은 본인의 현실에 대한 개혁의 의지가 없으며 타협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 중 하나라는 것이다. 광복 이전의 최명익의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에만 집중해 내면세계에만 집중하였다. 특히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방황하는 지식인을 사용하여 점차 고립되어 가는 그들의 내면세계에 빠져들어 가게 끔 하였다. 「비 오는 길」의 ‘병일’, 「무성격자」의 ‘정일’, 「심문」의 ‘명일’, 「장삼이사」의 화자 ‘나’가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병일’은 독서와 사색이 취미이며, ‘정일’ 역시 서점에 가끔 들리며, 독서라는 ‘습관’ 자체를 잃지 못하며 사회에 무관심한 인물 중 하나이다. ‘명일’ 역시 중학 학교의 도화 선생이었다. 「장삼이사」의 화자 ‘나’는 지식인이라기 보다는 내면적으로 고립하는 방관자에 가깝기도 하다.최명익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름만큼이나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생활력을 상실하였다. 현실 생활의 안주와는 점차 멀어져 가고 도피적 공장으로 가는 길을 지나 다시 빈민굴로 돌아오는 길, 그러고 다시 공장으로 가는 길. 끊임없이 오고 가기를 반복해야 하는 길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자신의 무기력한 자의식과도 같다. 의미 없는 하루를 반복하던 ‘병일’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사진관 주인 이칠성을 만난다.“아니 누구같이라니? 자 긴상 내말 들어보소. 자 다른 말 할 것 있소. 셋집이나 아니구 작으마하게나마 자기 집에다 장사면 장사를 벌리구 앉아서 먹구 남는 것을 착착 모아 가는 살림이 세상에 상재미란 말이요.”이 인물은 ‘병일’과의 유일한 인간관계라고 해도 무방한데, 사진관이 잘 되어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소망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병일’은 사색을 즐기지 못하는 이칠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행복을 말하는 그에게도 ‘글쎄요.’라고 일관하며 철저하게 이칠성의 삶의 방식과 유리하려 한다. ‘병일’은 그러한 이칠성의 삶을 속물적이라며 혐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꿈꾸는 그의 삶과 같이 독서를 멀리하며 욕망을 가지기도 한다.그러나 이칠성이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다시금 독서와 사색을 하는 원래의 생활로 회귀한다. 속물적인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경멸하지만, 그것을 뚫고 나아가지는 못하고 다시금 비사회적이고 인간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러한 인물의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감에서 생겨나는 소외의식은 최명익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요소이다.「무성격자」는 제목 그 자체가 주인공을 의미한다. 자신이 서 있는 세계 위, 작중 주인공은 계속해서 방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아버지와 애인 문주의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가는데도 ‘정일’은 어떠한 행동도, 어떠한 감정도 가질 수가 없다. 주인공의 지속적인 세계에 대한 외면은 자신의 이상 사회와 현실 사회의 괴리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주인공은 근대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한 세상에 취해야 할 자세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만성적인 우울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아버지와 애인의 죽음이라는 비참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삶의 의지를 느끼게 하는 선생이라는 직업을 그만둔 후에는 팔리지 않는 그림을 몇 폭 그렸을 뿐인 화가라는 무직업자였다.「심문」은 주인공 ‘명일’만이 아닌 여러 갈래의 지식인이 등장한다. 사회주의자 현혁, 과거 문학소녀였던 여옥, 화가인 ‘명일’. 이전 작품과 달리 「심문」에서는 화려한 술집의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그 현란한 사회 안에 가라앉아 있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나’의 행동, 끝없이 타락해 버린 현혁,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대답받고자 하는 여옥. 「심문」에서는 각 인물 간의 충실한 심리 묘사가 두드러진다. 타락한 지식인들의 정신적 파멸이 초래한 상황을 심리 묘사를 통해 잘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현혁은 사회주의자에서 아편 중독자 신세가 된다. 자포자기의 인생에서 자신의 음습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인간조차 팔아넘길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그런데 나만은 자포자기를 하였습니다. 비록 신병이 있고 빈곤하더라도, 시작을 않았으면 그만일 아편을 자포자기로 시작했지요. 그래서 지금은 아주 건질 수 없는 말기 중독자가 되고 말았죠./ 말하자면 아무런 시대나 환경이라도, 사람을 타락시킬 힘은 없다고 봅니다. 그 반대로 타락하는 사람은 어떤 시대나 환경에서든지 저 스스로 타락하고야 말, 성격적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환경을 저주하거나 주제 넘게 시대를 원망할 이유도 용기도 없습니다. 오직 내 약한, 자포자기하게 된 내 성격을 저주하는 것 뿐입니다. (p.39-40)이 셋은 모두가 과거에 매여있다. 죽은 처, 과거의 애인, 사회주의를 하던 자신. 현재의 인물을 매이게 하는 과거는 현실을 황폐하게 만든다. 이렇듯 최명익은 인물의 지식인의 자아 탐구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어떻게 될지, 그 말로를 가장 비참하게 보여준다.「장삼이사」의 주인공은 화자이자 ‘나’이다. 열차를 타고 가며 ‘나’는 여러 세속인을 마주한다. 주위에 벌어지는 사건에는 동요하지 않고 말과 행동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중년 신사의 구두코에 그만 젊은이의 가래침이 한 경멸감을 느끼기도 한다.이런 여인의 말에 나는 웬 까닭인지 껄걸 웃어 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하였다.이 작품에서는 내면 의식이 아닌 타인의 행동에 더 집중한다. 현실 인식 방법도 모욕당한 여인은 자살할 것이라는 등 점차 현실을 뛰어넘게 된다. 그러나 작위적인 미소를 띠는 여인을 보며 비집어 나오는 웃음을 꾹 누르기도 한다. 「장삼이사」는 방관적 시선을 통해 ‘나’가 본 타락하고 혐오가 남발하는 당시의 시대를 엿볼 수 있다.이렇듯 최명익의 작품 기법은 자의식의 섬세한 묘사가 중심이 된다. 그러면서 주인공 혹은 그들 집단의 본질적인 속성은 무엇인지 독자가 바로 알아채게끔 한다. 그러면서도 지식인으로 설정된 주인공의 소극적인 면모는 다 자본주의, 근대 사회 등 외부에 있는 것들이 원인이 되게끔 한다. 최명익은 당대 외부에 팽배했던 지식인의 불안함과 무력함을 철저한 심리 묘사와 모더니즘을 통해 꿰뚫어 볼 수 있게 하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은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2-3.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공간최명익의 작품에서는 한 공간 안에서 전개되는 작품이 많다. 특히 최명익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밀실의 공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주, 그리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바로 기차이다. 이 기차는 공간 자체가 그리 넓지 않아 주인공이 그 인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사하여 보여줄 수도 있다. 또한, 근대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기차는 매우 빠르게 달리는 이동 수단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지식인은 그 속도를 놓치게 될 정도로, 결국 사회에 덩그러니 고립될 정도로.하나의 작은 공간인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달린다. 시속 오십 몇 킬로로 달려 창밖의 모든 것이 어중이떠중이나 폐물처럼 보인다. 특히, 「심문」에서 주인공 ‘명일’의 심리가 더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명일’은 아내와의 사별 이후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하얼빈으로 가는 도중의 기차에서는 ‘명일’은 그저 혼자이다. 혼자이기에 자신만의 상념에 점차 다.
폭력과 방관과 우상의 몰락- ‘우상의 눈물’에서 드러나는 악과 악의 대립 -< 차례 >Ⅰ. 서론 ; 학교와 피해자Ⅱ. 본론 ; 우상의 몰락과 새 우상의 등장1) 학생과 학생- 기표 유대, 형우2) 학생과 교사- 기표 선생Ⅲ. 결론 ; 악과 악의 대립Ⅳ. 참고문헌Ⅰ. 서론 ; 학교와 피해자‘우상의 눈물’은 1980년 봄 『세계의 문학』에 발표된 전상국의 단편소설이다. 1940년 태생인 작가는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본 현실인 분단 소설을 주로 썼다. 하지만, ‘학교’라는 장소가 가진 폐쇄성에 주목하며 소설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자주 드러내었다. 리포트에서 다룰 작품인 ‘우상의 눈물’도 학교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소설 속 이야기로 형상화하였다. 등장인물 중 가장 ‘악’이 극에 달한 기표는 원시적인 폭력을 동원하며 교육의 순수성을 파괴하고 권력의 중심이 되어 폭력을 가감없이 사용한다. 하지만, 작가는 교육의 문제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그 문제에서 오는 인간의 악한 속성을 드러내며 독자가 생각해야 할 바를 시사하고 있다.소설 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수동적인 학생들의 모습이다. 심지어 서술자이자 기표에게 당한 피해자, 유대조차 자신이 당한 피해마저 입을 다문 채로 일관한다. 기표는 반에서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거슬리는 것이 눈에 보이면 그 즉시 ‘린치’를 가하는 폭군이다. 학생들의 수동적인 면모는 잘 서술이 되어있다. 기표가 두려웠고 교실 내에서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소설이었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폭력과 방관은 서로 얽혀가며 굴러간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보도가 된 사건도 많지만, 학교의 폐쇄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오히려 소설이기에 대항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고, 현실에서의 청소년들은 그 누구도 대들어봤자 잃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그러니 작품 『우상의 눈물』을 기표와 대립하였던 인물을 행적대로 분석하고,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기표의 군림이 어떻게 해서 무너졌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학교라는 사회적 장소는 엇나가는 학생을 위해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지에 관한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Ⅱ. 본론 ; 우상의 몰락과 새 우상의 등장소설은 서술자 유대의 눈에서 바라본 군림자 기표의 폭력과 그로 인해 학급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소설이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문제가 일어난다. 그 중심에는 기표가 서 있고, 재학 중인 학생들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패거리인 ‘재수파’ 역시 기표를 주축으로 흘러간다. 1년을 유급한 기표는 학생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되었다.학급의 반장인 형우와 담임은 독주하는 기표를 끌어내리려는 계획을 차츰 세우게 된다. 결국, 폭군의 뒷모습엔 불우한 가정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기표는 학생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닌 점차 ‘불쌍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형우와 선생은 폭력으로 일관하던 기표에게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각인 시켜 지능적으로 올가미를 덧씌웠다. 그러한 취급을 견디지 못한 기표는 무섭다는 편지만을 남기고 도망치고 만다.학생들에게 권위와 경위, 극한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악의 존재였던 기표는 어느 순간 학생들의 동정을 받으며 소위 최하위권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학생들에게 기표가 악의 존재였다면, 기표의 눈에는 형우와 담임 선생님이 악의 존재였을 것이다. 작품은 이를 통해 원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 조직적이고 비가시적인 폭력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학급의 최강자였던 기표도 치밀하고 계획된 폭력에 손 쓸 도리없이 몰락했다.학생들이 기표의 원시적 폭력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입을 닫는 것으로 폭력에 가담했다면, 형우와 선생이 가한 폭력은 학생들이 폭력인지 식별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선생과 형우가 ‘기표를 위해서’라며 위선의 틀을 씌웠기에 제재조차 가하지 못했을 것이다.1) 학생과 학생- 기표 유대, 형우유대와 형우의 공통점은 기표와 재수파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대는 폭력에 대해 입을 다묾으로써 선생들이 현재 발생한 폭력에 대해 모르는 것으로 나온다. 오히려 유대는 기표에게 공포보다는, 끌림, 경외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형우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범인에 대해 모른 척했지만, 공식적으로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사건의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유대의 폭력도 이후 담임선생님이 알고 이를 떠보았음이 밝혀지지만, 형우의 사건은 이후에 본인이 학급의 우상이 되는 신호탄이 된다.만약, 형우가 학생 주임에게 경위를 설명했다면, 기표를 제외한 재수파가 부끄러움을 느껴 형우에게 사과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여전히 모두가 기표에게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유대와 형우 둘 다 겪은 일에 대해 말은 안 했지만, 각각이 가진 의도에서 차이가 있다.유대는 학급에서 벌어진 일을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집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떠보았던 담임에게 적대감을 가진다. 그렇기에 첩자라는 단어가 사용되며 소설 속에서도 자신은 선생의 첩자가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형우는 목적이 있었다. 자신이 우상이 되기 위한 첫 발걸음. 학급 반장을 하면서 학급에서의 위치를 넓혀나가기 위해 담임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표에게 위선의 탈을 쓴 폭력을 가하기로 한다.형우는 결국 기표의 가정사까지 낱낱이 학생들에게 공개해 버린다. 단상 위에 서서 기표를 내려다보며. 이것이 기표가 공포를 느끼며 도망치게 된 계기 중 하나이다. 소설 속 기표의 행태는 악한 인물에 가깝다. 하지만, 기표의 행적보다도 더 고스란히 서술된 형우의 행적은 오히려 기표보다 더 부정적으로 느껴지며, 기표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악인으로 등장한다.2) 학생과 교사- 기표 선생기표에게는 형우말고도 자신의 몰락에 가담한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기표의 담임선생님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고등학교이며, 일반적으로 여느 학교든 학생들에게 교육의 의무를 지니는 것뿐만 아니라 삐뚤어지면 바른 곳으로 인도를 시켜주는 기관이다. 따라서, 담임은 최기표와 재수파에게도 그들을 올바르게 자라도록 교육할 의무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중 선생님들은 재수파 집단에게 ‘우상’이라는 이미지를 강제적으로 씌우면서 그들에게 심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또한, 학생들의 사이에서는 그들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는다.선생의 목적은 단지 교사로서의 위상이었던 것이다. 형우를 학급 회장의 자리에 앉히고 기표가 몰락하는 과정은 자신의 가치와 교사로서의 능력을 뽐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미 기표는 공포의 대상으로 고착화해 놓은 뒤이며, 위선을 이용하여 한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모금 운동과 영화 제작까지 나온 것이다. 교무실에서 어머니를 내쫓듯 밀어버린 것도, 학급의 미담이 영화 제작을 통해 널리 이야기가 퍼지고, 자신의 이름이 더욱 높아질 기회를 기표의 가출로 인해 놓쳐버린 것이다.작품에서는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한 순수한 악마만이 신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신은 마음속으로 괴로운 거야. 그렇기 때문에 신은 결코 악마를 영원히 추방하지 않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그것을 이용할 뿐이야.’ 이것은 선생의 행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이다. 여지껏 해왔던 모든 일은 다 자신의 위엄을 위한 일이던 것이었다.Ⅲ. 결론 ; 악과 악의 대립기표는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편지를 남기고 도망치듯 집을 나가게 된다. 결국, 학급의 두려움이자 우상의 대상이었던 기표는 없다. 대신 학생들의 선망 대상이자 새로운 우상의 자리는 형우가 된다. 형우와 담임의 계획에 의해 그전까지는 온갖 비행을 저지르던 재수파 일당이 완전히 위축되었고 기표를 제외한 전체는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형우와 담임은 재수파가 어떠한 행패도 부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경외심, 두려움을 느끼던 학생들은 더는 공포의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