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기획서제목부제메인카피저자글 그림원고 매수A4 용지원고완성일분류여행에세이사진 및 일러스트 유무있음사진 및 일러스트 분량100장저자소개기획의도저는 이 책을 통해 21년간 30여개국 100여개가 넘는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겪었던 가장 아름다운 에피소드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에피소드들은 여행자라면 여행지에서 통과의례처럼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어 앞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간접적인 여행 팁을 제공하는 한편 절대 진부하지 않고 지금까지 출간된 여행책에서 볼 수 없는 새롭고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이 책에서 소개되는 도시들 대부분이 독자들에겐 생소한 도시들이며 잘 알고 있는 도시라고 해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되었습니다. 그리고 에피소드 곳곳에 인문학적 단상들이 맛깔나게 여행과 결부되어서 요즘 인문학에 열광하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책은 아름다운 여행지, 마음 따뜻해지는 에피소드, 인문학적 단상이 어우러져 요즘 독자들이 열광하는 세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져 있는 책이며 당장 여행을 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수 있어 여행책으로서 가장 충실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타겟 독자층1) 핵심 독자층(1타깃) : 20~50대 직장인 여성2) 확대 독자층(2타깃) :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특히, 독특한 여행을 찾는 사람들)요즘 20~30대 여성들은 여행에 열광하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아직은 여행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여행에 대한 색다른 것들을 갈급해합니다. 그들이 단순히 욜로세대라서라기보다 다른 어느 세대보다 자신들의 마음의 문제에 전착하고 그 해결책으로 여행을 1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물론 서점에는 다양한 종류의 여행책들이 즐비한 것도 사실입니다. 대개는 여행서, 여행기, 여행 에세이로 분류되는데 여행서와 여행기는 대부분 여행 정보에만 치중하고 여행 에세이는 여행지보다 느낌에 치중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제 책은 여행에 대한 정보와 느낌, 거기다 인문학적 단상까지 가지고 있어 충분히 그들에게 어필할 좋은 요소들이 많습니다.
새뮤엘 존슨 를 읽고이 책은 인간의 모든 불행의 요소를 인위적으로 제거한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아비시니아 왕국의 왕자, 라셀라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행복의 골짜기에서 행복의 모든 요소를 누리며 살고 있었지만 항상 불행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 골짜기에 들어온 시인이며 현자인, 이믈락와 여동생 네카야 공주, 공주의 시녀, 페쿠아를 데리고 행복의 골짜기를 탈출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 다양한 인간들의 삶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 경험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를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탐구해나가게 된다.라셀라스 왕자 일행이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서 만나는 삶들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늘 가지게 되는 의문을 해소해준다.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과 달리 항상 즐겁고 쾌활한 사람들, 깨닫음을 얻었다는 현자, 세상을 등지고 숲으로 들어간 은자, 학문적으로 고매한 경지에 이른 학자, 극도의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은 진정한 행복을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라셀라스 일행도 그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찾아다닌다.먼저 라셀라스 왕자 일행은 카이로에 도착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그래서 왕자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즐거운 시간을 한동안 보낸다. 그라나 점차 그 사람들과 쾌활하게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이 거짓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런 왕자에게 이믈락은 그 사람들도 혼자 남는 순간 두려움과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라고 말해준다. 왕자는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쉴새없이 즐거운 일만 있는 젊은이들과 어울려보기 다. 그러나 왕자는 아무 생각 없이 희희낙락거리는 그들과의 교제에 환멸을 느끼고 무절제한 행동은 잠시 우리에게 흥분과 자극을 줄 수 있으나 결국 인생을 단축시키거나 비참하게 만들다고 생각하고 그들과의 만남을 피한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위안은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거나 베풀 능력이 있다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던 중 왕자는 길을 걷다가 현자의 연설을 듣고 그에게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를 개인적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마침 그 현자의 효성 지극한 딸이 죽고 그는 슬픔에 고통받고 있었다. 왕자는 현자가 그토록 비통해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현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설파한 지혜로 고난에 맞서 이겨낼 힘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인가요?” 그러자 현자는 답한다. “진리와 이성이 무슨 소용인요? 내 딸이 되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만 깨우쳐주는 것 말고” 그렇게 왕자는 수사나 웅변의 공허함과 세련된 미사여구가 무용함하다고 확신한다.왕자 일행은 전원생활의 비참함도 경험하고 성공과 번창에 따르는 위험함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은자를 찾아간다. 그러나 은자는 자신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어떤 신념이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원한과 분노 때문이었데 얼마 전부터 수많은 의심과 혼란과 부질없는 상상에 사로잡힌 채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은둔 생활을 접기로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들은 은둔 생활의 비참함과 초라함을 알게 된다.왕자는 자신의 모임에 나가 은자를 만난 이야기를 했더니 그 모임에 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가 이렇게 말한다.“은자는 곧 다시 자신의 은둔처로 돌아갈 것이오. 왜냐하면 행복에 대한 소망은 너무나 깊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오랜 경험을 쌓아도 지워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오. 현재의 삶이 어떻든 간에 우리 인간은 늘 불행하다고 느끼기 마련이고, 또 그런 느낌을 밖으로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소. 하지만 시간이 흘러 현재의 이 삶을 멀리서 다시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상상력은 그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채색하기 마련인 것이오, 그러나 욕망이 우리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되는 때는 반드시 도래할 것이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의 불행은 오직 우리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밖에 없을 것이오”그의 이야기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더라도 누구도 그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그 삶에서 멀리 떨어지면 그 삶이 괜찮은 삶이었다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 이믈락이 왕자에게 행복의 결말에 대한 복선에서 이야기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행복과 불행은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는 확실한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은자가 은둔 생활을 접고 내려왔지만 언젠가는 그 운둔 생활이 행복했다고 여기고 그곳으로 돌아가듯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끊임없이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그러던 어느날 라셀라스 왕자와 네카야 공주는 서로 분담해서 행복을 찾는 여정을 하기로 한다. 왕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통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다. 그들이 각각의 여정을 끝내고 와서 그것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왕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공무를 잘 수행해도 선의의 피해자와 숨은 공로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행복은 평온한 가정생활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온 네카야 공주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물속에 던진 두 번째 돌멩이가 처음에 던지 돌맹이의 파문을 교란하고 지워버리는 것과 같이 이 욕망에서 저 욕망으로 옮겨다닌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결혼하는 것이 더 행복한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한지에 대한 토론을 이어간다. 그들은 자연은 자신의 선물을 좌우 양편에다 갈라 베풀어놓았다는 결론을 내리면 양자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말한다.어느날에는 왕자일행이 피라미드를 구경하러 가게 된다. 그곳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했던 페쿠아를 밖에 두고 왕자 일행이 피라미드 내부 구경을 마치고 온 사이 아랍인 도적들이 페쿠아와 그녀의 시녀들을 납치한다. 그 일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네카야 공주는 슬픔에 잠겨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이에 이믈락과 라셀라스 왕자는 페쿠아를 꼭 찾을테니 1년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페쿠아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는 사이 네카야 공주는 페쿠아를 피라미드 안에 같이 데려가지 않은 자신을 질책하며 점점 깊은 슬픔에 빠져든다. 그때 이믈락은 공주를 이렇게 위로 한다.“인과 관계의 그 모든 얽힘을 우리 인간이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아무리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부정한 행위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정당한 수단을 통해 목적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언젠가 미래에 주어질 보상을 기대하며 위안을 얻을 수 있지요.”.“우리 인간의 마음은 몸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뭔가를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경우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생명력의 원천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치유의 수단은 자연스럽게 찾아지는 법이지요. 한편 우리의 마음은 눈과 같기도 해서 대상과의 거리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즉 세월의 물결을 따라 흘러갈 때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항상 점점 크게 보이기 마련이지요. 부디 삶의 흐름을 정지시키지 마옵소서. 흐르지 못하고 고이면 그것은 진창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에 다시 몸을 맡기시옵소서. ”이믈락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인과 관계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므로 정당한 수단으로 목적을 추구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아무리 고난을 당했다고 해도 생명력의 원천이 파괴되지 않는 한 치유된다는 것을 네카야 공주에게 이야기하고 있다.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1년 후 페쿠아는 무사히 공주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는 이미 공주는 페쿠아의 잊은 슬픔에서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그때 이믈락은 오랫동안 혼자서 별을 관찰해온 천문학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는 이 천문학자의 고매한 지식에 감동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천문학자는 자신이 하늘의 구름과 별을 조정한다고 이믈락에게 고백한다. 이믈락은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언제나 일에만 열중해 있지 않고 외부적인 기분 전환거리가 필요한데 그 기분 전환거리가 없으면 자신의 생각에 몰두해서 자신의 실제 존재와 다르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이 천문학자는 네카야 공주와 페쿠아의 방문으로 다시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게 된다.그들의 마지막 여정은 안토니오 수도원이다. 왕자는 사람은 인생에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행복한데 수도승들은 변화없는 삶을 그것도 기쁨이 아니라 고행만이 늘 똑같이 이어지는 삶을 아무 불평 없이 사는 것을 보고 행복의 골짜기에서 불평을 했던 자신을 비난한다. 그러자 이믈락은 왕자에게 오히려 수도승들은 행복의 감옥에 살고 있는 아비시니아의 왕자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헌신은 내세의 다른 존재 상태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행위로 그들이 수고롭게 노동하는 것은 즐거운 행위이기 때문이다고 이믈락은 말한다.이것으로 그들의 행복의 찾는 여정을 마치고 모두 행복의 골짜기로 돌아간다.우리는 살면서 라셀라스 일행처럼 가장 행복한 삶을 찾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의 삶이 녹록치않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 책 속에서 라셀라스 일행은 우리를 대신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행복이란 어떠한 삶의 형태에서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한다.그러나 그들이 만난 다양한 삶의 형태 속에서 그들이 찾아 헤매는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보였던 삶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고통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라셀라스에게 가장 현명하게 보였던 현자는 딸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천문학 분야의 대가가 된 천문학자는 오랜 세월 혼자 연구에 몰두하다가 자신에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신 이상이 되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은 단지 욕망에만 휘둘려 살아가고 있었고 결혼도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이기적인 유전자얼마 전 유튜브에서 딴지일보 사장 김어준과 리처드 도킨슨이 인터뷰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었다. 톡톡 튀는 김어준과 그 만큼이나 유쾌한 리처드 도킨스의 대화는 아주 흥미로웠다. 인터뷰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 결국 도 그의 문제적 주장인 '이기적인 유전자'의 별책부록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이 책의 별책부록 같은 이란 책을 쓰면서 까지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https://youtu.be/LaerKQ9u1To사실 책 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자라 하기에는 문장이 상당히 유려했다. 그래서 실험과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논문보다는 읽기가 부드러웠지만 어떤 때는 유려한 문장 때문에 실험과 사실을 파악하는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상당히 읽기가 까다로운 책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읽기 힘든 책을 왜 읽어야 할까? 리처드 도킨슨은 그것을 1장에 미리 밝혀 놓았다."당신도 나처럼 개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대하게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쳐 보자. 우리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을 하려는 녀석인지 이해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적어도 유전자의 의도를 뒤집을 기회를, 다른 종이 결코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이 책을 내 나름 4가지 질문으로 분류해서 이 책에서 제시한 답을 하는 것으로 이 책을 정리하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첫째 , 왜 이기적 유전자 인가?다윈의 진화론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집단선택설과 개체선택설이다. 집단선택설은 공룡 집단이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멸종하고 바퀴벌레 집단이 살아남는 것처럼 집단 내에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개체들이 많은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주장이다. 그에 비해 개체선택설은 이타주의 집단내에 희생을 눈곱만치도 하지 않으려는 소수가 반드시 있고 그 이기적인 개체가 이타적인 개체보다 살아남아서 자손은 더 많이 낳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리처드 도킨슨은 기본적으로 개체 선택주의자이지만 이기적인 기본 선택 단위를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책 제목을 이기적인 유전자로 했음을 말하고 있다.둘째, 인간은 왜 이기적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인가??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에는 풍부한 화학 원류가 자외선이나 번개 등으로 인해 원시수프 형태를 형성해서 해양에 떠나기게 되었다. 원시수프가 좀 더 큰 분자가 되고 거대 유기물 분자는 점점 더 진해지는 수프 속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떠다니다가 우연히 주목할 만한 분자, 자기복제자라 불리는 것이 탄생하게 된다. 이 자기 복제자는 오랜 세월을 거쳐서 자기 복제를 하다가 화학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둘레에 단백질 벽을 만들어 스스로 방어할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는데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그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포함한 개체들이다.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 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경로로 바깥 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조정기로 바깥 세상을 조종하고 있다. 그 기계 중에 하나가 인간이다.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특징은 인공지능의 칩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유전자는 외부적 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생존기계에게 행동을 일일이 지시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생존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고 외부환경에 맞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코드를 심어놓은데 그 코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그래서 유전자 운반기계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코딩되어 있다는 것이다.셋째,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가?이기적인 유전자의 운반기계들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이타적인 행동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슨은 두 가지 이타적인 행동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혈연적 이타주의와 호혜적 이타주의이다.혈연적 이타주의는 부모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유전자를 1/2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죽음으로서 자신 속에 있는 유전자 1/2까지 모두 죽는다 하더라도 자식을 살리는 것이 유전자의 생존에 더 이득 되기 때문이다. 부모는 늙어서 어차피 자식보다 오래 살지 못할 것 이기 때문에 유전자는 부모라는 생존 기계를 버리고 자식이라는 생존 기계를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이기적인 유전자는 판단한다는 것이다.호혜적 이타주의는 상호 이득이 되기 때문에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을 긁어 줄게'라는 원리이다. 예를 들면 일벌은 평생 여왕벌과 알을 먹이고 돌보는 일만 하는 이타적인 개체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벌이 자신이 알을 낳아 기르는 것보다 여왕벌이 낳은 알을 기르는 것이 더 유리하다. 왜냐면 자신이 낳은 알은 자신의 유전자의 1/2만 가지고 있지만 여왕벌이 낳은 알은 자신과 형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의 3/4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