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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미안을 읽고 - 건투를 비네
    중?고등학생 때 필독도서로 접했던 데미안은 막연히 지루하고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서 읽다가 접었는지 다 읽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프락사스, 알을 깨는 고통, 자아, 데미안의 죽음 등등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추측컨대 끝까지는 읽었으나 너무 어려워서 그 의미를 잘 이해 못했던 것도 같다.소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소설이다. 무릇 성장소설 이라함은 본디, 청소년의 짓궂음과 엉뚱?발랄함으로 점철되다가 마지막에 정신 차려 그나마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가볍고 경쾌한 쏠쏠한 재미가 있어야 하거늘 작가 헤르만 헤세가 신학을 전공한 우울증 환자였던 관계로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의 소년기는 아쉽게도 그 과정이 다소 우울하고 종교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재미를 찾는 과정이 다소 피곤 할 뿐이다. 작가의 지적 유희로 그 ‘재미’라는 것을 이리저리 숨겨 놓았음으로 부디 그것을 찾아내면서 지성의 자의식을 회복해 보길...그러다 운이 좋으면 나처럼 “전에 자네는 음악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적이 있지”처럼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어떤 무의식에 대한 해답을 듣기도 하고, “나는 그런 형태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닌 매력이나 거기에 숨겨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어려운 말에 완전히 몰두했다” 와 같은 데미안이 왜 이렇게 어렵게 쓰여 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변명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파이팅!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소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이로 학교에 입학하면서 크로머라는 자신과는 정반대 차원의 ‘다른 세계‘에 사는 상급생 불량배를 만나면서 비로서 찐 사회를 경험한다. 이때 죄책감, 도둑질, 거짓말, 허세 등의 인생에서의 어두운 면들을 배우며 삶의 쓴맛 혹은 참맛을 배우게 된다. 어쩌다 센척하며 지어낸 이야기로 인해 자가당착에 빠지면서 크로머가 쳐놓은 덧에 걸려 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싱클레어의 교우 관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청소년들 사이에 집단 따돌림, 왕따 문화가 심각한 요즈음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내가 집중하여 보게 된 대목은 다름 아닌 바로 이 부분이다. 꽤 오래전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이 부분의 심리묘사나 상황의 전개가 어찌나 섬세하고 탁월하게 표현되었는지 덕분에 이것을 통해 잊고 지내던 나의 지난 간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내 아이의 유년인 그의 지금을 상상해 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전학생 데미안의 도움으로 크로머에게 해방 되지만 이것이 우연일까? 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본다. 어차피 크로머의 굴레는 언젠가 벗어나게 되어 있는 성장통 같은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계기가 데미안이었을 뿐이다. 우리들의 유년은 누구나 그렇게 우연한 어떤 계기, 혹은 우연히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만나면서 성장해나간다. 단지 누군가는 유년의 혼란한 시기를 오래, 격렬하게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살짝 앓고 지나가기도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싱클레어는 전형적인 그냥 보통의 청소년인 것이다. 그의 고백처럼 그는 남들 다 정해 놓은 꿈 하나를 정하지 못했으며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단지 청소년시기에 가질 법한 의당 그런 막연한 두려움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랬던 싱클레어는 성장하면서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완성시켜 나아간다.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이번에 데미안을 읽으며 하나의 계획이 생겼다. 나는 절대 ‘소설 데미안’을 청소년인 나의 아이에게 디밀지 않을 것이다. 그가 부모가 되고 청소년을 기르는 내 나이쯤 제 아이를 바라보며,’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지금의 나와 같은 고민하고 있을 즈음 이 책을 넌지시 건 낼 것이다. 너도 이랬다고 그러니 이 책을 빌어 너의 아이를 이해해보라고...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레 깨닫게 되겠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이다. 데미안의 부재 동안 등장하는 피스토리우스 역시 다른 모습의 자아이며, 이 둘은 동시에 싱클레어의 성장을 이끄는 나침판같은 존재이기도 하다.“이봐 나하고 얘기 할 땐 마음에도 없는 얘기는 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 여기서 잠깐, 나에게도 누군가 그 혼란한 시간에 이런 말을 해줬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됐었을까? 상상해 본다.- 라고 싱클레어를 심쿵하게 하며 등장했던 데미안은 싱클레어 입장에선 완전 엄친아다. 그...엄마들의 이상향에만 존재한다는... 아들의 입장에서는 엄마 친구의 아들녀석이요, 엄마입장에서는 친구의 아들래미, 여기서 직접적인 친구의 아들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친구의 아는 사람 이렇게 범위를 확대해가며 종래는 실체가 묘연해지는 그 어떤... 그야말로 전형적인 데미안스러운 아이, 이 아이가 막스 데미안인 것이다.선생님의 자녀들이 대개가 모범생일 것 같지만 선생님의 자녀답지 않게 특이하게 망나니인 경우가 왕왕 있다.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가 그런 경우다. 목사님의 아들, 언듯 보면 껄렁껄렁한 이 괴짜는 신통하게도 “그 꿈을 살리는 거야!” 라고 부추기며 독자를 설레게도 하고 “자네만한 나이 때 나의 사랑의 꿈을 무리하게 억눌러서 손해를 보았어.”라고 말해주며 지난날의 회후를 내비치며 누군가의 사랑을 응원해 주기도 하며, 때로는 “자기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는 충고, 자기도 아직 지킬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충고를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는 없었다. 나는 말할 수가 없었다” 라며 넌지시 타인에게 충고하는 Tip을 알려 주기도 한다.소설 데미안은 여러 등장인물과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리하면 딱 두 가지 테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하나는 너무나도 유명한 자아에 관한 이야기 또 하나는 사랑이다. 청소년기인 만큼 남?녀간의 사랑을 기대 했을지 모르나 싱클레어가 들려주는 사랑은 성적 충동을 뛰어넘는 동경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서 이 두 가지 접점을 아우르는 인물이 데미안이다. 첫사랑인 베아트리체와 염모의 대상인 연상의 여인 에바부인 모두 데미안과 관계가 있다. 베아트리체를 모델로 그린 그림은 완성하고 보니 데미안의 모습이었으며 에바부인은 데미안의 어머니이다. 에바부인을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데미안과의 키스로 귀결 짓는 모습은 사랑의 대상 역시 종래는 데미안이었음을 말해준다. 데미안은 죽었지만 그의 죽음을 경험한 싱클레어의 모습이 데미안처럼 변해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싱클레어 그는 비로소 진정한 자아인 동시에 사랑을 경험한 성숙한 데미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이글의 서두에 이 소설이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라고만 소개했지만 사실은 이 소설은 헤세 자신의 절절한 신앙고백서이기도 하다. 이걸 애초부터 눈치 챘음에도-이미 싱클레어가 10살 때 데미안과 나눈 카인과 아벨에 대한 담론은 웬만한 성인 신학자들의 그것보다도 더 깊이가 있었다.-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이유는 신앙고백서라고 고백하는 순간, 신앙이라는 고루하고 진부한 틀에 갇혀 내 글도 진부해지고 말 것이라는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쯤해서 묻고 싶다. 나의 글이 지루했는가? 아마도 이 물음은 헤르만헤세를 대신 하는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헤세는 그 자신조차도 자신의 글이 ‘어려운 말에 완전히 몰두한 결과’라고 고백했으므로. 그러나 그의 소설에는 지루함을 뛰어넘는 그만의 재치와 반짝임이 있다. 독자는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지루한 듯 끊임없이 나열된 문장들의 행렬 속에서 암호처럼 숨겨진 반짝이는 진주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숨겨진 의미를 깨닫는 순간 지금까지 지루하기 짝이 없던 문장들이 예사 문장들이 아님을 알아 볼 것이며 읽던 곳에서 되돌려 다시 처음부터 꼼꼼하게 정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1.09.30| 4페이지| 3,000원| 조회(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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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돌을 던지는 자 스토너를 읽고
    돌을 던지는 자 스토너를 읽고
    “ 이것은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이야기이다.” 라는 톰행크스의 서평이 인상적이어서 고르게 된 책.나는 서평을 공들여 보는 편이다. 서평을 보면 이것이 책을 띄우기 위한 사탕발림인지 책을 읽고 얻은 진정한 감동인지 알 수 있다. 타임지나 가디언 등 유명언론의 서평은 애초에 믿고 거른다. 단지 띄워 주기식 공허한 광고문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행크스의 저 한 줄은 이 책과 더불어 톰행크스의 시크함을 동시에 눈치 채게 하고 그의 책장을 훔쳐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켰다.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기에 이다지 시크한거야 이 사람…주인공 윌리엄 스토너, 작가 존 윌리엄스. 작가 존 윌리엄스의 직업도 교수. 소설 속 주인공도 교수. 왠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어느정도 투영 된 듯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짐작이지만 투석자라는 뜻의 스토너(Stoner)는 그 네이밍으로 미루어 작가가 자신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돌을 던지듯 파문을 일으키는 주인공을 염두에 두고 써내려 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게 한다.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음직한 물음. ‘ 나는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나?’5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데 소설 속 주인공 스토너는 우리들의 모습과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너와 나의 모습. 아직 나이가 들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우리의 모습들… 누군들 자신의 인생이 소설이 아닌 자가 있겠는가? 나의 가족 여섯 명 중 두 명이 술만 마시면 늘 내게 이야기 한다. 자신들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10권은 나온다고. 내가 보기에 그들의 인생이 그다지 스펙타클한 어떤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 나도 물론 12권은 나온다.그는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그것은 그만이 안다. 남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본인의 현실을 비관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인생이 불행했다고 감히 짐작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삶을 그로, 혹은 그녀로 살아본 당사자만이 생의 끝에서 자신의 행•불행을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다시 돌아와줬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램을 져버리고 영문과에 진학해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 박사과정 중 두 명의 인생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예리한 말솜씨를 가진, 건방지지만 똑똑한 매스터스이고, 다른 하나가 처세에 능한 고든피치이다. 이 세 친구는 함께 진로를 고민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시류에 휩쓸린 두 친구와는 달리 군에 입대를 하지 않고 학교에 남기로 결정한 선택으로 세계대전을 겪지만 그것이 스토너의 삶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전쟁의 와중에도 그는 학업을 이어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이 소설에는 비교적 초반에 신랄한 셀프 스포가 등장하는데 금요일 저녁 작은 술집에서의 세 문학청년들의 대화 장면 중 매스터스가 친구들을 표현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내가 작가의 필력에 매료 된 부분이기도 하다.핀치에 관해 : … 나도 때로는 상냥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자네에 대해서는 무능력하다고 말하겠어.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다지 똑똑한 편이 아니잖아? 뭐, 그게 모든걸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 하지만 자네도 세상에 나가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머리는 있지. 딱 그만큼만. 자네는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 졌고, 자네도 그걸 알고 있어 비록 개 자식처럼 굴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렇게 굴 수 있을 만큼 막돼먹지는 않았거든. 딱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자네가 가장 정직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네가 영웅적인 수준으로 부정직한 것도 아냐(세상에서 영웅이 되려면 부정직해야 해 일단은). 일할 능력은 있으나 게을러서 세상이 원하는 만큼 근면하게 일하지는 못하지. 하지만 자신의 중요성을 세상에 각인시킬 수 있을 만큼 게으르지도 않아. 게다가 운도 없고…. 특별한 기세를 내뿜지도 않고, 항상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어. 세상에 나가면 항상 성공의 언저리에 서기는 하겠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파멸할 걸세.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된 사람이지(성공의 언저리에라도 가봤으니까)…스토너에 관해: 소박한 땅의 아들? 자네 세상에서 살아 갈수 없거든. 게다가 그 사실을 잠자코 숨기지도 않을 테고. 이건 불치병일세. 그러니 무책임한 짓을 해도 안전한 속, 내가 아무런 해도 끼칠수 없는 곳(죽음)에 날 가뒤두어야해.모두에 관해: 우린 모두 가엾은 톰 (쎄익스피어의 희곡 에서 글로스터 백작의 아들 에드가가 변장한 인물)이고 차갑게 식었어. …매스너의 명쾌한 해석처럼 어쨌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실패자인 것이다. 이것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젊은 날, 삶의 중요한 순간에 그것을 의논 할 스승이 있었던 것이 스토너의 인생 중 몇 안 되는 부러운 점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건 데 내 인생의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그것을 의논하고 싶었던 단 한 명의 스승이 나에겐 없었다. 그들이 내 선택에 관심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관계에 있어서 믿음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나의 선택을 놓고 누군가에게 면담을 신청 했더라면? 그런 스승이 현실에 존재하기는 할까? 고백 하건 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스승은 아니였던 것 같다.세계 대전의 와중에 입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스토너는 지도교수를 찾아가는데 그의 지도교수 조언이 전쟁과 더불어 50년 후의 코로나 사태와 묘하게 일치한다.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 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속에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 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 뿐이야. 나나 자네 같은 사람들이 진흙탕 속에서 뽑아낸 그런 인간들 말일세 …세계적인 팬데믹 시기에 있는 우리들은 이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을 잃게 될까? 아직 끝나지 않은 혼란 속에서 벌써부터 짐승같은 성질들은 세계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데 말이다.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너의 결혼에도 부인과의 첫 만남은 나름 핑크 빛 이었다. 그들의만남에서는 누군가의 연애담에서 들어 봄 직한 ‘하얀 목덜미’도 ‘가느다란 손가락’도 등장한다. 결혼은 무료했지만 시작은 나름 순조로웠던 것이다. 그들에게도 한때다. 상황이 그렇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갔어야 옳았다. 쇼윈도우 부부로 살 것이 아니라.이디스의 잘못만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딸과의 관계에서도 시원치 않다. 그는 마치 이디스가 방해를 해서 딸과의 관계도 소원해 졌다고 믿고 싶은 모양이지만 딸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소원해 진 계기는 다름아닌 그의 불륜이 시작된 시점이다. 스토너의 직업은 교수다. 그는 자기 연민에 빠져 무료하고 불행 한듯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의 조건은 그리 나쁜 편이 절대 아니다. 정년 보장되는 번듯한 직업에 외동아들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조금의 유산 (세상에… 요새 세상에도 유산으로 빗을 물려주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그의 부모는 양호한 편이다.), 친정이 부유하고 생활력 강한 부인 덕에 낡긴 했지만 저택도 장만하고 …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그를 향한 동정 일색에서 처음엔 나도 설득될 뻔했다. 그러나 스토너를 향한 조금은 편파적으로 쓰인 작가의 어조에 동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누구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결혼 이후 이상한 이디스의 행동들은 우울증 증세를 의심케한다. 이때 스토너가 본인의 커리어나 단지 본인 자신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부인에게 조금의 관심을 보였더라면 그들의 결혼생활은 좀더 나아지지 않았을까?그의 인생에도 누구나의 인생과 다름없이 빌런이 등장한다. 젊은 빌런은 그의 뺀질이 대학원 제자 찰스, 나이든 빌런은 그의 교수 인생에 틈틈히 테클을 거는 로맥스 학과장이다. 이 두 빌런은 몸에 장애가 있다는 둘만의 은밀한 공통점으로 서로 더 단단히 유대하여 스토너를 괴롭힌다. 빌런도 친구도 아닌 어정쩡한 채로 차라리 빌런만 못한 존재로 남는 매스터스, 그의 존재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이렇게 우리는 빌런과 친구와 매스터스 같은 친구와 빌런사이의 어떤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빌런들 사이의 어떤 은밀한 유대감이 더해져 인생의 긴장감을 만들어 간다. 그들과의 갈등에서 때로는 좌절을 때로는 조그만 승리를 맛보며 엎치락뒤치락 살아간다. 스토너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 이야기를 작가는 필요이상으로 길고 지루하게 정당화 시키려는 노력의 흔적을 보인다. 마치 긴 변명이라도 하는 듯이. 특히, 후에 캐서린은 어느 대학의 교수로 제직하며 책을 집필하며 미혼으로 잘 먹고 잘살았다네 하는 부분에서는 너무나 현실성 없는 작가의 판타지에 피식 실소가 나오기까지하다.오히려 후반부에 후다닥 마무리되는 듯한 딸 그레이스의 인생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부부의 불화는 온전히 그들의 자녀에게 상처로 남는다. 그레이스는 집의 냉랭한 분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탈출하고자 보낸 하룻밤이 어이없게도 사랑하지도 않는 관계에서 아이를 갖게 되는 결과를 맞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남편은 전쟁에 나가 전사하고 스물 다섯에 미망인이 되어 이후에는 아이도 돌볼 수 없는 상태의 알코올중독자가 된다.노교수의 알량한 신념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에고(Ego)는 어이없게도 주변사람들에게 점점 더 부풀려져 너무나도 큰 카르마로 돌아온다. 그것은 그의 부모에게도 그의 부인도 그의 딸도 이유도 모른 채 아기 때부터 할머니 집에 맡겨진 손자에게까지 고스란히 불행으로 대물림 된다.50년 전의 상황이지만 현실과의 높은 싱크로율로 많이 놀라운 반면, 나이 마흔에 스스로 노교수로 자진해서 늙어 버린 듯한 스토너의 모습은 어쩐지 50년의 갭(Gap)을 실감케 한다. 50년 전에는 65세가 죽음을 맞이하기에 어색한 나이가 아니 였나 싶게 그의 너무 빨리 사그러든 청춘이 적잖이 당황스럽기 까지 하다.소설 속 그의 죽음은 평화로웠지만 체념에 가까웠다. 그는 자기 연민에 빠져 인생을 지루하게 견뎌내기만 했다. 무엇 하나 능동적으로 해결했던 적이 없다. 늘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것이 숙명인냥. 그것이 스스로에게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걸 알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스토너의 인생을 통해서 본 것은 지식인의 얄팍한 이중성이다. 아닌척 지적인척 감추어온 추악한 욕망. 내로남불. 내게는 신념이요 남이 하면 아집인 .
    독후감/창작| 2020.05.07| 5페이지| 3,0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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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동장을 브레멘의 악대처럼 읽기
    동물농장 이론서가 아닌 짧은 동화였어. 슬픈 잔혹 동화먼저 고전을 읽는 방법 중에 자기와 맞는 출판사의 책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젠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다시 읽으려고 했는데 선택한 출판사의 도서가 너무 지루해서 읽다가 덮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나에게 맞는 책을 찾지 못했다면 ‘동물농장’도 즐겁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글이라도 출판사마다 편집방식도 다르고 번역도 다르다.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번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번역과 편집 방식에 따라 같은 책이 매우 지루 할 수도 있고, 매우 재미있을 수도 있다.또 하나 나만의 고전을 읽는 팁이 있다면 지루할 것 같은 책 혹은 페이지 수가 많은 책은 E-Book으로 읽는다. 종이 책의 경우 그 두께에 질려서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E-Book의 경우 이런 부담이 없어서 읽기에 편하다. 이것은 나의 경우이고 두꺼운 책의 페이지가 줄어드는 맛에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이것은 개인의 기호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읽은 ‘동물농장은 출판사 미디어 팟의 E-Book이다.작가 조지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영국의 인도행정부에서 일하게 되어 1살 때 부터는 영국에서 살게된다.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이튼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 졸업을 하고 경찰이 되어 미얀마와 인도에서 5년간의 경찰생활을 한다. 그 후 경찰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에서 극빈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후 영국에서 민방위대 부사관과 BBC 편집장으로 일하며 사회주의자가 된다. 그 자체가 사회주의자이면서 그 사회를 풍자하는 동물농장을 집필하여 누구보다 신랄하게 그 사회를 풍자 비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물 농장은 오늘날에도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가 집필했을 당시가 100년 전인데도 그의 사회를 향한 통찰력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이 지금까지 매우 높게 평가 되고 있다.나의 상상 속 ‘동물농장’ 하면 일단 대~~단한 이론서 같았다. 왠지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도의 무거운 책으로 오인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번에 깨달았다. 물론 서론은 무겁다 이 부분은 가볍게 패쓰! -서론은 봐도 좋고 안 봐도 좋다. 나중에 다 읽은 후에 읽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 처음부터 어려운 서론을 읽다가 미리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처음에 동물들의 묘사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닭’과 별반 다르지 않게 흥미롭다. 그 동물들의 묘사가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는 하다. 그러나 생각만큼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돼지들을 정치인 누군가로 인간을 기득권층으로 많은 동물들을 일반인 우리들의 모습으로 영국을 한국으로 고쳐보면 놀랍게도 현실에 딱딱들어 맞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마도 동물농장이 고전으로 대우받는 이유가 이런 이유인가보다.줄거리를 쓰기 전에 먼저 등장인물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다.여기에는 세 마리의 기억해야 할 돼지들이 나온다. 첫 번째는 일인자 나폴레온. 그는 말은 어눌하나 힘이 세다. 동물들의 지도자로 군림하며 동물농장을 지배한다. 한 때 나폴레온과 일인자자리를 놓고 경합하던 스노우볼, 그는 똑똑하고 용감한 달변가였다. 그러나 비운의 돼지가 된다. 스퀄리는 나폴레온이 스노우볼을 내치고 들인 2인자 였다. 그는 교활했고 화려한 언변으로 이리저리 동물들을 선동하는데 능했으며 온갖 거짓말과 술수로 스노우볼을 반역자로까지 만들어버린다. 어눌한 나폴레온의 대변인으로 그의 행동대장 역할을 톡톡하게 해낸다.늙은 말 복서, 이 캐릭터는 가장 보통의 민중으로 묘사되며 책임감 강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복종을 잘한다. 나폴레온의 개들이 덤벼들었을 때 세 마리의 개를 무찌를 만큼 힘도 있다. 그러나 빗나간 충직함으로 비참한 최후를 맡는 미련한 말이다. 복서가 남자 민중을 대표한다면 클로버는 여자 민중을 대표한다. 메이저의 죽음부터 동물농장의 모든 역사를 지켜본 그녀는 나폴레온의 부조리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서지는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암말이다.동물 농장에 나오는 인간은 메너 농장의 주인이었던 존슨 영감 그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보고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변호사 윔퍼, 농장에 봉기가 일어난 후 최초로 만남을 갖는 인물로 동물들이 인간을 흉내 내게 되는 도화선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레더릭, 메너농장의 이웃농장 주인인 그는 위조지페로 농장의 목재를 빼돌리는 사기꾼이다.돼지 메이저는 아무생각 없이 살아가던 동물 농장에 ’평등과 학대‘라는 화두를 남기고 죽는다. 그동안 메이저 동물원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은 메이저의 유언을 근거로 존슨씨가 술먹고 잠든 어느날 급기야 존슨씨를 쫒아내고 두 마리의 수퇘지 나폴레온과 스노우볼을 필두로 ’메너 농장‘에서 ’동물농장‘으로 농장이름을 바꾸고 그들만의 동물농장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봉기는 늘 지도자가 방심했을 때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오는 법이다. 이 순간을 위해서 돼지들은 그동안 남몰래 존슨씨의 자녀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책으로 글을 익혀왔던 것이다.새로운 지도자 나폴레온에게는 새로운 개때들이 붙어 그를 호위하고 ’ 네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구호로 동물농장을 유지한다. 동물들은 서로를 ’동무‘로 부르며 인간들처럼 살지 말 것을 약속한 7가지 계명을 정한다. 이 칠계명에는 두발로 걷는 것은 모두 적이고 네발로 걷는 것은 날아다녀도 친구이고 인간들처럼 옷을 입어서도 침대에서 자도 안 돼며 술을 마셔도 안돼고 다른 동물을 죽여서도 안돼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닭들, 노새들, 말들, 오리때들 등등의 동물들은 힘을 합져 자기들만의 동물농장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들의 자립에 기뻐한다. 소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우유를 뺏기지 않아도 되는 것에 기뻐하고 닭들은 자기들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어서 기뻐한다. 노동량은 같지만 자존감은 높아져서 상대적 만족감은 그들을 더욱 열심히 일하게 한다. 평등하고 학대당하지 않는 세상! 그것은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평화롭게 유지된다. 그러나 젓소들의 우유가 사라지고 수확한 사과가 모자란 것을 눈치 챈 몇몇의 동물들의 항의에 돼지들은 자신들은 우유도 사과도 좋아하지 않으나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을 위해 그것을 먹는다는 괴변을 늘어놓는다. 그사이 인간들에게 한 번의 습격을 당하지만 스노우볼의 활약으로 결과는 승리로 끝난다. “전쟁은 전쟁이오. 오직 선량한 인간만이 죽는 법이오.”라는 늙은 말 복서의 독백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 지도층의 그들만의 전쟁에서 희생되는 것은 늘 선량하고 죄없는 민중들 뿐이다.어디에나 그런 군상이 있듯이 암말 몰리는 그 와중에 인간들에게 아양을 떨며 각설탕을 얻어먹으러 한번 씩 마실을 나다닌다. 두 사회를 왔다 갔다 하던 몰리는 결국 인간 세상의 각설탕과 리본을 따라 나서고 이후로는 동물농장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에게 투쟁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한나라에 두 왕은 허용될 수 없기에 권력싸움에서 패한 스노우볼은 동물농장에서 추방된다. 스노우볼이 동물농장에서 추방되는 과정은 매우 스팩타클하다. 스토우볼은 농장의 미래를 위해 전기를 만드는 ‘풍차’를 만들 것을 제안했고 나폴레온은 그 의견에 반대하였고 동물들은 환호했다. 달변가인 스노우볼은 동물들을 선동했고 처음에 그것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개때에 의해 공격을 당한 스노우볼은 동물농장에서 쫏겨난다. 스노우볼의 행방불명이 되고 그 개들이 나폴레온의 개들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스노우볼의 업적인 풍차의 계획도 나폴레온에게 넘어간다. 능력이 있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있는 자가 있으면 남의능력을 이용하여 기회를 만드는 자가 있다. 나폴레온의 권모술수는 인간의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었다.동물농장의 등장인물중 인상적인 동물은 늙은 말인 복서이다. 그는 성실하고 묵묵히 일을 한다. 농장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그는 자기가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말하며 일을 한다. 어쩌면 제일 보통의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한 캐릭터가 복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그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누구의 강요가 아닌 그의 선택이라는 점이 더욱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늘 우리들의 비참한 생활이 나의 게으름으로 비롯됐다고 강요 받으면서 산다. 그 생활은 우리가 부지런을 떨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희망고문을 안고산다. 사실 더 게으름을 피워도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생활인대도 말이다.애초 인간처럼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겠다던 나폴레온은 칠계명을 어기며 침대에서 잠을 잘 뿐만 아니라 적이라던 인간 변호사와도 만남을 갖는다. 몇몇의 동물들은 반발했지만 늘 그랬듯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사건을 덮는다. 신기하게도 또 그것이 통한다. 반대했던 풍차의 건설도 슬쩍 말을 바꾼 후 풍차 건설을 위해 동물들을 압박한다. 어찌어찌 풍차는 세워지고 그것은 오롯이 나폴레옹의 투쟁의 결과로 상징된다.동물들은 여전히 노예처럼 일했다 ‘미래를 위해’라는 희망고문을 안고 열심히 그러나 생활은 존슨씨가 있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 애초의 ‘평등을 위하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동물농장 만세!」를 공허하게 외치며 혁명노래인 〈영국의 동물들〉을 부르는 것으로 혁명을 어렴풋이 기억될 뿐이다. 그 사이 네폴레온의 횡포는 점점 심해졌지만 교활한 스퀠리는 “ 존슨씨가 있었던 시절로 되돌아가길 원하나요?” 라는 물음으로 반발하는 동물들의 입을 막는다.어느 날 혁명의 상징인 풍차가 무너지고 나폴레온은 그것이 스노우볼의 소행이라고 덮어씌워 스노우볼을 모두의 역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풍차의 붕괴로 인간세상에서는 동물농장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나고 이것을 막기위해 나폴레온은 사실이 아닌 뉴스를 퍼트리고 세상은 온통 이이쪽 진영 저쪽 진영에서 퍼트리는 가짜뉴스로 판을 친다.
    독후감/창작| 2019.12.02| 4페이지| 3,000원| 조회(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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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소설 쓰기의 모든것 1을 읽고
    소설 쓰기의 모든것 1을 읽고
    소설쓰기의 모든 것- 1을 읽고이 책은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나 같은 혹은 여러분 같은 사람들에게 소설을 쓰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현재 소설 작가인 그는 원래 변호사였는데 소설을 쓰고 소설쓰기가 재능이 있는 자만이 쓰는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잡았다. 딱히 재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는 나의 자아를 달래기 위해...다섯 권의 책 중 첫 번째 시리즈인 이 책에는 소설을 시작하는 플롯 작성에서부터 설명되어 진다. 사실 플롯이라는 말자체자 글쓰기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일단 거창하고 예사롭지 않은 영어니까. 이건 단순하고 심플한 나만의 기우일수도 있다.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는 플롯이라는 단어가 익숙 할 수도 쉬울 수도 있으니까...그러나 참아 보자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찬찬히 국어 선생님처럼 소설쓰기의 방법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의 어조는 느긋하고 친절하다. 이것이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동기로는 충분해 보인다. 때로는 불친절하고 바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언가를 가르치는 교양서적 중에도 예의 없고 혼내가며 가르치는 글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나름 신선하고 마음에 들었다. 그의 어조로 인해 든 마음은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게 도와 주었고 이것은 조금은 지루한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알아? 정말 이대로 따라 하다가 소설을 쓸 날이 올지? 이렇게 희망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다.이렇게 호기롭게 책을 잡았지만 처음 몇페이지 ‘사실은 말이야 이건 비밀인데, 소설은 꼭 재능있는 사람들만이 쓸수 있는건 아니야. 훈련을 통해서 너도 나처럼 쓸수 있어’ 여기까지는 매우 신선했다. 그러나 전문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단어들이 주는 지루함과 피로감은 더 이상 애초의 호기심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였다. 작가는 나노 수준으로 소설쓰기의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분석하기 시작하며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떨어뜨리게 한다. 애초 초반에 참아보기로 한 마음은 이런 지루함과 피로감이 되풀이되면서 종래에는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책을 손에서 놓게 된다. 본인은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의무감으로 정말 의 무 감 에 의해 억지로 끝까지 읽었지만 정말 힘이 들었다. 혹자는 이런 세세하고 자세한 소개가 좋을 수도 있다. 다만 나에게는 아닌 것이다. 이 지루함의 실체가 작가의 글 쓰는 스타일 때문인지 번역자가 한글로 번역하면서 작가만의 뉘앙스를 재대로 살리지 못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설사 번역자의 실수라고 친다고 하더라도 내용에 있어서 컴팩트하지 않고 늘어지는 느낌은 이 좋은 내용을 빛바래게 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단지 글의 어투만이 지루함을 부추겼다기 보다는 예를 들은 책들도 한몫을 한다. - 작가가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그가 예로 들은 작품들이 너무 오래된 작품이거나 한국과 미국의 정서적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서는 유명하나 한국에서는 아닌것인지 (이것은 본인의 경우 한적된 것인지는 몰라도) 예로든 책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재미가 반감 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본인은 소설쓰기의 2권은 포기할지도 모르겠다고 일찌감치 예상해본다. 오히려 이 다섯권을 한권으로 압축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용을 풀어내는 스타일이 나의 탬포와 맞지 않기는 하지만 그가 가르쳐 주는 소설쓰기의 방법은 꽤 유용하기는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좀더 쉽게 접근하는 소설 쓰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면 작가의 법정추리소설도 읽으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쓰기의 모든 것의 1편’으로 나는 더 이상 그의 작품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그가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다고 피력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역시 소설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구나를 느끼며 소심해지는 마음은 조금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작가가 소설쓰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전해지나 그의 글을 읽으며 나도 그와 비슷한 만큼의 다른 안타까움이 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좀 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짧고 임팩트있게 설명했다면 어땠을까...지루함으로 인해 이 좋은 내용을 지나치고 못 보게 될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하다.그러나 누군가 이 지루함을 참아낼 수 있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말로 당신을 소설가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작가는 그 방법론에 있어서 작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려고 최선의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가상함으로 나는 1권을 다 읽었지만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나에게 힘든 책을 누군가에게 권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므로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선 듯 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는데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일단 대여로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우선 사놓고 한번 쭉 읽고 필요 할때마다 꺼내서 읽는거다.책에 줄을 쳐도 좋을 것이고 연습문제에 답을 달아도 좋을 것이다. 포스트잇을 붙여 자주 보는 챕터를 표시해 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가 가르쳐 주는 소설 쓰는 법은 정말로 자세하고 친절하나 너무 많은 인포로 인해 한번 주욱 읽어 보고 넘기기에는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 순간 나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나는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 때 까지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읽고 읽고 또 읽을 것이다. 한 가지는 결정이 나겠지. 이 책에 질려 더 이상 소설 쓰기에 미련이 안남던지 책을 읽으면서 터득되는 아이디어로 소설을 시작할 수 있을지. 이 지루함을 이겨 낸다면 아마도 소설을 쓸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소설을 써보지 않은 예비 작가로서 아마도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소설을 쓰는 훈련의 입문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쓰는 과정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만큼이나 인내를 요하는 작업일 테니까...
    독후감/창작| 2019.11.04| 3페이지| 3,000원| 조회(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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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개념 육아서 에밀을 읽는 법
    신 개념 육아서 에밀을 읽는 법늘 필독도서에 명단이 올라있던 에밀, 골치 아픈 철학책이나 이론서쯤 되겠지... 하며 외면해 왔는데 문득 이제 안 읽으면 죽기 전 읽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집어 들었는데 나의 짐작과는 매우 다른, 색다른 육아서(?)였다. 임신을 하고 여러 육아서를 탐독했지만 아직 태중인 아이를 교육하라는 내용에서 태어나자 마자 책을 읽어 줘야 한다는 등의 섣부른 충고들을 보고 당황해서 탐독을 중지 했더랬다. 우리나라는 모든 육아서적이 교육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 같아서 갑갑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책을 원했던 것인데 모두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경악스러웠다. 그때 찾지 못했던 건강한 육아서를 이제 이 에밀에서 발견했다.책은 1부 유년기/2부 아동기/3부 소년기/ 4부 청년기/5부 성년기로 이루어 져있는데 1부와 2부는 아동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유익한 부분이었다.1부 유년기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다섯 살까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설명한 부분이다. 옛날 유모가 있던 시절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나이의 아이들의 성장 발달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그때 키워줘야 하는 아이의 타고난 좋은 기질과 그것을 방해하는 교육방법등에 대해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조로 찬찬히 설명해 나간다. 1장에서는 아기의 신체의 감각훈련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이야기 한다. 나의 육아 철학과 맞는 부분도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실수를 나또한 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에서는 진작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니 교육철학 책으로 분류되던데... 이러한 분류 자체가 이 책을 어렵게 느끼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니다. 물론 장자크 루소는 저명한 교육 철학자이지만 책 자체는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가끔 ‘방종이 없는 잘 규율된 자유 ’등의 약간은 어려운 문장들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말 투 라기보다는 번역에서 오는 어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2부 유년기에서는 다섯 살부터 열 두살까지의 성장과정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는데, 관점이 방대하여 내 아이의 육아뿐 아니라 나의 유년시절까지도 반추하게 했다. 우리가 무심코 당하고 행해왔던 여러 가지 행동들의 맹점들을 신랄하게 집어내며 그것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가 지적했던 많은 사항들 중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들의 특징을 보면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본능이 파괴되면서 벌어지는 괴리감으로 그것들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의 아이들과 시골의 아이들을 예로 들며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준다. 에밀은 작가 장자크 루소가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 놓은 10살 소년이다. 일단 이 아이는 좋은 예의 표본으로 다른 나쁜 예들과 비교할 때 예로 들어 설명되며 루소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교육을 받는 인물이다. 2장 유년기의 내용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소극적 교육’ 이었다.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시기까지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을 주입해 오는가? 나는 또 얼마나 그 시절 엄마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으며 교육되어져 왔던가? 지금까지의 교육의 상식들을 뒤엎는 많은 발언들을 200년도 전에 루소는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교육은 지금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선행 학습을 많이 하는 요즈음 교육의 행태를 보며 나는 적잖이 불만이 많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선행학습이 효과가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학습 면에서 뿐만 아니라 시기보다 선행되어 이루어지는 어떤 교육도 좋을 것이 없다고 그는 이야기 한다. 에밀을 읽으며 더불어 얻게 된 이득은 각각의 장에 있는 연령대의 아이들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2장의 유년기의 아이를 키우는 나는 종종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다. 그때 그냥 내 아이만의 고집으로 이해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지나쳤었는데 에밀을 통해 나는 아이의 행동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그것이 아이만의 표현 방법인 것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장에서 그는 음악에 대해, 미각에 대해, 촉각에 대해 아이의 발달 상황과 맞추어 어떻게 교육하지 말아야 하는지의 방법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 하고 있다. 교육 철학서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의 교육법?은 어떻게 보면 정말로 이상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서 보다는 스스로 느끼며 커나가는 존재이므로 이것의 자연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루소는 강조한다. 기타의 다른 교육서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이것에서부터 발생한다. 다른 교육서들을 보며 너무 나도 가르칠것들이 많아서 미리 포기했던 기억이 있던 나에게는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이장에서는 유아기의 정신과 판단력을 연마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3장 열 두살에서 열 다섯살까지의 소년기에 대해서 그는 ‘어디를 가나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자기 능력 안에 있음을 아는 나이이며 원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할수 있는 시기’라고 이야기 한다. 이 장에서는 자신의 실수로부터 제자와 함께 배우게 된 솔직한 후기부터 교육철학과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 생물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어려운 학문들은 열두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히게 된다. 루소는 에밀에서 내내 지식이 아닌 지혜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3장에서는 손과 발의 사용방법과 재능의 활용 방법등을 이야기하며 직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겨우 열다섯의 아이에게 직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너무 이르지 않을까? 만인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직업에 대해서 왜 어려서부터 알아야 하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왜 빨리 발견해야 하는지 그것이 후에 직업을 택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에밀을 읽고 있으면 언제가 장난처럼 지어진 영화제목 ‘ 내남자의 설명서’가 생각난다. 마치 아이의 설명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장의 연령대의 아이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4장에서는 사랑할 줄 아는 존재로 만드는 일, 그것을 위해 감정에 의해 이성을 완성시키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 한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나는데 한번은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유아기 두번째는 생활을 위해 남자 여자로 태어나는 청년기로 나뉜다고 한다. 루소는 이장에서 사춘기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자존감에 대해서도 다룬다. 종교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함께 성, 순결과 관능에 대해서도 그 나이 대의 청년들의 몸가짐에 대해서도 서술한다.5장 성년에서는 에밀이 남자의 표본이라면 여자의 표본으로 소비가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설명 되지 않았던 여자들의 성장과정과 특징들이 컴팩트하게 설명되어지며 소피와 에밀의 결혼 스토리가 미니 소설처럼 이어져서 소피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책을 읽고 지은이 장자크 루소의 배경을 찾아보았다. 루소는 1712년 프랑스 태생의 한 시계공의 아들로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사망하였고 그는 아버지의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사소한 싸움으로 아버지가 제네바를 떠나게 되어 목사에게 위탁되었다가 숙모의 집에 유숙하면서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후에 한 여인과 결혼을 하여 아이들 다섯이나 갖지만 모두 고아원에 보낸다. 자신의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고 아이에 대한 교육 철학 책을 집필했다? 쉽사리 이해가 되지는 않는 대목이다. 이 책이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아비의 죄책감과 후회로 쓰여 졌는지 자신이 받아 보지 못했고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상을 적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매우 유익하고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서가 꼭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할 필요는 없다. 김연아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친 코치가 김연아 보다 스케이트를 잘 타지 않아도 좋다.
    독후감/창작| 2019.11.03| 3페이지| 3,000원| 조회(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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