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명:『루터의 재발견』독서보고서학 차:교수명:학 번:제출일:이 름: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종교개혁자다. 이는 정당한 평가다. 루터는 교회를 넘어 역사와 문화의 근대적 변곡점을 마련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개혁자이자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서 있다.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루터는 여전히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다. 그의 지명도는 세계적 관점에서 평가하느냐, 아니면 한국의 기독교 교세와 교파적 신학 맥락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루터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개혁자로 힘을 발한다. 예를 들어, 신학?철학?교육?복지?문학?언어학?역사?음악?미술?정치?법 등 이 모든 분야에서 루터는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의 신학은 한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극복되었고, 무덤에 들어간 시체인 양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역시 매우 기이하게도 죽었다는 시체는 계속 부활하여 무덤 밖으로 나오고 있다. 현대 신학자들이 교회와 사회의 불안을 논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하더라도 그 길들의 끝은 결국 막혀 있는데, 그 끝에는 항상 루터가 있다.한국에서 루터에 대한 무지 혹은 부정적 평가는 학문적 연구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쏠림 현상이 심각한 교파적 상황에서 기인한다. 기독교 출판사와 학자들의 놀이터인 학회조차 특정 성향의 신학적 편중은 심각한 수준이고, 이는 곧 신학적 편식으로 이어졌다. 루터는 편집되어 버렸고, 그 자리에 칼뱅(John Calvin, 1509-1564)이 등 떠밀려 왕 노릇한 지 오래다. 그 옆에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엉거주춤 서 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루터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다양한 소통과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2017년 현재 한국에 루터교회는 49개, 전체 성도는 최대치로 잡아도 덮어 두겠다는 정치적 합의가 숨겨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 이슬람 군대가 퇴각함에 따라 국제 정치 지형도가 급변하고 이슬람의 위협이 사라지자, 황제는 곧바로 개신교의 확산을 막기 위해 1529년 4월 19일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를 소집하게 된다.이 회의가 열리기 직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는 모든 루터파 제후들에게 경고장을 발송한다. 루터파를 떠나 모교회 품으로 돌아오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제국의회에서는 루터를 정죄한 ‘보름스 칙령’을 재천명하며 ‘로마 교회이 신앙만이 유일한 합법적 신앙’이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자 루터파 제후들은 거세게 저항하며 준비한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뒤를 이어 1525년부터 선제후였던 요한(Johann der Bestandige, 1468-1532)이 서명한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우리는 우리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우리의 창조주이며 구속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심판주가 되실 하나님 앞에서 아래와 같이 저항하며 선언한다.」위와 같은 서문 다음에 긴 내용이 계속되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황제가 루터파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더라도 개신교 신앙으로 끝까지 저항한다는 긴 신학적 답변이다. 간단히 말해, ‘아니다! 우리는 성서에 기초한 우리의 참된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다.황제의 결정에 불복하며 읽은 낭독문의 시작이 저항의 뜻을 가진 ‘프로테스트’(Protest)였기 때문에 이후에 황제 측 사람들은 루터파 영주들을 가리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혹은 ‘루터란’(Lutheran)이라고 칭하게 된다. 그러나 실은 비꼬는 조롱조의 말이다. 황제의 뜻에 ‘개기는 놈들’, ‘루터를 따르는 보잘것 없는 놈들’이라는 뜻이다.여기서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이 개신교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로마 교회의 신앙 체계와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 저항했던 명분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누구도 신앙을 강요할거나 머리에 물을 듬뿍 붓는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식겁할 일이다.개신교 지역에서는 유아세례의 시기가 좀 더 자유로워져셔 훨씬 뒤로 늦춰졌다. 유아 생존율도 당연히 가톨릭 지역보다 높아졌다.루터는 아버지 이름이 한스 루더 였지만 자신의 성을 후에 ‘루터’로 바꾼다. 루더(Luther)는 동물을 유인해서 죽이는 ‘사냥꾼’의 뜻을 가진 고대 독일어이지만, 루터는 ‘자유인’이라는 뜻의 헬라어 ‘ελευθερο?’(엘류테로스)에서 앞뒤 철자 ε, ο?를 빼고 가운데 것 λευθερ, 류터만 취한 것이다. 루터는 1512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고 신약성서를 통해 ‘복음의 자유’를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루터는 자기 성을 바꾸기 까지 자기 인생을 깊이 고민했던 사람이다. 루더에서 루터로 개명하면서 그는 입에 풀칠할 것을 쫓아 살며 양심을 속이고 이웃을 꼬드기며 살아야 했던 피곤한 사냥꾼의 삶이 아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로 살기를 희망하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루터의 아버지는 성공한 광산업자다. 원래 집안은 농부출신이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광산촌인 아이스레벤으로 이주하게 되고 열심히 살아 성공한 광산업자의 삶을 살다가 말년에는 만스펠트의 시의원까지 오르게 된다. 당시에는 사회보장제도 같은 것이 없었기에 노년에 이른 사람에게 자녀가 그 역할을 했다. 그래서 공부에 소질있는 둘째 아들 마르틴에게 큰 기대를 걸고 법률가로 만들 꿈을 가졌었다. 마르틴에게 공부를 엄격하게 시켜 라틴어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열다섯 차례나 회초리로 맞은 것을 회고한다. 그는 교육기관에서 왜 사랑으로 양육해야 하는지를 『대교리문답』에서 거듭 강조할 정도였다.그의 아내인 카타리나 폰 보라는 맥주제조뿐만 아니라 포도주 생산을 위해 포도원을 직접 경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과나무 재배는 확실하지 않다. 루터하우스 정문에서 바흐의 생가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마자 잘 보이는 곳 사과나무 아래 돌 비석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비석에 우리가 스피노자 그리스도와 같았다. 영광 중에 오실 심판의 그리스도. 한 손에는 자비와 용서의 백합꽃을, 다른 한 손에는 진노와 심판의 칼을 들고 계시는 그리스도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칼을 피하고 백합꽃을 얻을지 고민했다. 중세 교회는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답안지는 슬로건 형태로 요약되어 강단에서 퍼져나갔다. ‘무엇을 하든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거부하지 않는 한, 당신이 행한 만큼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십시오!’그런데 그렇게 칼을 피해 백합을 얻을 만큼 내가 완벽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질문에도 교회는 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전 중 하나인 ‘고해성사’다. 고해성사는 여섯 단계 곧 성찰, 통회, 정개, 고백, 사죄, 보속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선 참회자가 양심적으로 ‘성찰’을 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가슴 아파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하는 ‘정개’를 하고 나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사제 앞에 나아가 자기의 마음을 열어 죄를 낱낱이 ‘고백’한다. 그러면 사제는 ‘사죄’를 하고 ‘보속’을 정해 준다. 보속의 실천은 진실로 참회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 큰소리로 ‘마리아’를 외쳐야 될 때도 있고, 주기도나 사도신조(사도신경)를 지정된 만큼 외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큰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여겨진 경우에는 이보다 더 엄중한 보속을 해야만 했다. 중세 시대에는 이런 경우 특정한 목적의 헌금을 하도록 제안받기도 했다.그런데 만일 참회가 충분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부터가 루터가 문제 삼던 대목이다. 만일 모든 죄목을 빠짐없이 고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교회가 제시한 답은 ‘연옥’이었다. 연옥 교리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성서적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교리’일 뿐이다. 어찌보면 인간의 삶이란 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이런 루터의 진술은, 최후의 심판과 구원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성서의 기본적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오늘날 종교개혁 기념일은 10월 31일로 지킨다. 이렇게 지키는 이유는 그날이 바로 1517년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가 게시된 날이기 때문이다.지금 시대에 종교개혁 하면 ‘95개조 논제’를 떠올리지만 루터 당시만 해도 개혁의 상징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바로 모든 신자의 만인사제직에 입각한 양형 성찬이었다. 즉 평신도도 성찬 때 떡과 포도주 둘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평신도가 포도주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 논쟁은 이미 9세기경부터 시작되었고, 중세 교회는 일반 신자의 양형 성찬을 금지하여 절대로 깨서는 안 될 종교적 금기 사항으로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962년 시작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기존 이해를 깨뜨리고 가톨릭 평신도에게 잔도 함께 배찬하는 양형 성찬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때문에 한국 가톨릭 교회 현장에서도 역시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떡만 나누어 주는 일종 배찬이 대세다.16세기 개신교 진영에서는 이런 중세 교회의 이종 배찬 금지론을 부수고 모든 신자가 주의 말씀대로 떡과 포도주를 받도록 한 것을 종교개혁의 가장 혁명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1528년 독일 개신교령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내린 포고령을 보면, ‘개신교령에서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행위를 하도록 권장’하는데 특별한 날을 지정한 것이 아니라 ‘양형 성찬’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이는 구습에 대한 질문이며 새로운 교회론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직제를 중요시하는 로마 교회에 대한 저항이자, 성서에 바탕을 둔 실천적 삶이라 할 수 있다. 양형 성찬은 곧 새로운 교회 공동체인 개신교의 표지로 이해되었다.종교개혁 당시 기존 교회에슨 세 가지 장벽이 있었다. 우선 성직자와 평신하다.
과목명:구약읽기: 역사와 문헌학 차:교수명:학 번:제출일:이 름:이 책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모든 성경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24권의 책 묶음을 다룬다. 거의 1000년의 시간에 걸쳐 기록된 이 책들에는 다방면의 저자들이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여정과 인간적 경험을 두루 이해하고자 기울였던 다양한 노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고대의 책 묶음은 여느 문집이 그렇듯이 여러 저자가 여러 상황에서, 여러 위기와 문제-정치적, 역사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에 대응하기 위해 쓴 책들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 다양한 목소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세심하게, 또 심사숙고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구약성경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역사 내내 지속되어온 그 영향력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서구 문명의 밑기둥이 된 스물네 권의 책에 기록된 복잡하고 다양한 목소리 사이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은 성경 구절들의 원래 맥락과 의미에 관한 깊고 강력한 통찰을 가능케 한 현대의 성경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고, 구약성경 안에 구체화된 이스라엘의 문화와 사상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대 근동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탐색한다.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경험과 그들이 자신들의 신과 맺은 언약적 관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했던 구약성경 저자들의 열정과 치열한 노력을 살펴본다.제1장은 고대 근동이라는 맥락에서 구약성경을 개괄한다. 제2장부터 제15장까지는 창세기에서 열왕기하까지 구약성경의 서술적 연대기를 따라가는데, 이 이야기 순서가 성경의 구성 순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창세기의 많은 부분이 출애굽기나 신명기, 이사야의 일부분들보다 한참 후에 쓰였다는 데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한다. 구약성경의 많은 책들은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자료가 병합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부터 열왕기하까지를 살필 때 최종 편집자가 정해놓은 서술적 연대기를 따라가는 동시에, 최종 버전의 성바벨론 민족, 히타이트 민족, 페니키아 민족, 후르리 민족, 가나안 민족-가운데 유일하게 국가가 멸망한 후에 다시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신 개념은 자연을 초월하는 신이었다.창세기 1~11장은 고대 근동의 신화를 많이 빌려오고 있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 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쉬’라는 바벨론 서사시의 주제와 내용이 똑같다. 창세기 2~3장의 에덴동산 이야기는 최초의 한 쌍의 사람이 등장하는 길가메쉬 서사시와 흡사하다. 창세기 6~9장의 노아홍수 이야기는 아트라 하시스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 지우수드라 신화와 흡사하다.구약성경에 관한 사람들의 흔한 오해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약성경이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아주 다른 상황에서, 매우 다양한 문제와 자극-정치적, 역사적,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에 대응하고자 기록하고 편집한 문집 또는 선집이다. 또한 구약성경에는 여러 종류와 장르의 글들이 들어 있다. 서술하는 글, 법률 문서, 제사와 의식에 관한 글, 예언자의 메시지, 시, 금언, 찬송가 등 엄청나게 다양한 장르가 있다. 둘째 오해는 구약성경의 내용이 성인들에 관한 경건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현실적인 사람들에 관한 심리적이고 현실적인 글이다. 이 사람들의 행동이 꼭 본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이들의 삶이 우리에게 언제나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셋째 오해는 구약성경이 어린이들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구약성경이 다루는 주제들은 매우 어른스럽다. 반역과 근친상간과 강간에 관한 일화들이 있다. 구약성경은 삶이 연민과 기쁨으로 채워져 있는 동시에 고통과 투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용감하게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구약성경이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성인 독자들조차도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구조 및 형식의 복잡성, 그리고 수준 높은 주제와 은유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넷째 오해는 구약성경은 신학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구약성경은 신학 교과서가 아니다. 구약성경의 많은 선지서’는 모세의 죽음부터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의 멸망에 이른다. ‘후기 선지서’는 시와 계시적인 글로 이루어진 세 명의 대선지자들-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열 두명의 소선지자들이 있다. 구약성경의 셋째 부분이자 마지막 부분은 케투빔(Ketuvim)은 단순히 (성)문서라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여러 종류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사 소설, 시, 시편과 예배에 관한 글, 잠언을 비롯해 존재에 관한 근본 문제를 규명하려는 책이 있다.제2장부터 제15장까지는 창세기에서 열왕기하까지 구약성경의 서술적 연대기를 따라간다. 우리는 최종 편집자가 정해놓은 서술적 연대기를 따라가는 동시에, 최종 버전의 성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절들의 출처를 탐색하고 그 구절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구약성경의 저자들이 고대 근동 지방의 문화적?종교적 유산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확인하고, 그렇게 차용한 것을 새로운 비신화적 신의 개념으로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보겠다. 창세기의 저자들이 고대 근동 지방의 자료를 채택한 것과 관련하여 광범위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쓴 학자는 나훔 사르나(Nahum Sarna, 1923~2005)이다. 창세기 1~2장 연구에는 “에누마 엘리쉬(그때 위에)”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그 이름으로 알려진 바벨론의 서사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서사시는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기 이전, 두 종류의 물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서 시작한다. 에누마 엘리쉬는 가장 중요한 신년 축제 기간에 전국에서 낭독되었던 바벨론의 위대한 서사시였다. 나훔 사르나는 이 서사시의 네 가지 중요한 역할을 지적한다. 첫째는 여러 세대에 걸쳐 신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신의 계보 역할이다. 둘째는 우주 현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우주론의 역할이다. 셋째는 사회정치적인 역할로, 이 서사시에서 창조된 우주의 모습은 바벨론 사회의 구조적 형태와 일치하고 그것을 정당화시켰다. 넷째는 종교적 역할이다. 사르나 등 학자 열매를 따서 먹는 운명적인 순간에 여자와 남자가 그 나무 앞에 함께 서 있었음을 뜻한다.창세기 4장에는 첫 살인 이야기인 가인과 아벨이 나온다. 이 간결한 이야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잇다. 첫째, 우리는 왜 가인이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하는지 물을 수 있다. 누구를 마주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걸까? 둘째, 가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든 일곱 배의 벌을 받으리라고 약속한다. 야훼의 말은 가인을 죽이는 자‘들’을 암시하고, 그들 모두가 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오직 한 번 죽임 당할 수 있다. 셋째, 야훼의 앞을 떠난 후 가인과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는다.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이런 궁금한 서술상 공백들은 구약성경의 중요한 구성적 특징, 즉 그전까지 각각으로 존재하던 자료들을 하나로 병합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구약성경의 출처와 기록물 가설에 대한 근현대의 비평연구가 있다. 오경에 대한 신과 모세의 저자권이라는 전통적 개념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18세기 중엽 장 아스트뤼크는 구약성경의 일부 구절은 신의 이름으로 야훼를 사용하고 어떤 구절은 엘로힘을 사용하는 것에 처음 주목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성경을 구분했는데, 이것이 이후 J 문서와 E 문서로 알려졌다(J는 야훼 사용자, E는 엘로힘 사용자의 약어).J 문서는 창세기 2장 4절 하반절에서 창조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문서의 주요 특징은 J 문서는 고유명사인 야훼를 사용하며, 생생하고 구체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다. J 문서는 야훼를 의인화하여 서술한다. 예를 들면 J문서의 야훼는 노아의 뒤로 방주 문을 닫고(창 7:16), 홍수 후에 노아가 드리는 제사의 향기를 맡고(창 8:21), 아브라함과 흥정하고(창 18:22~32), 모세를 만나 그를 죽이려 한다(출 4:24). E 문서는 이스라엘 신을 가리킬 때 엘로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E 문서는 이스라엘 신을 덜 의인화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E 문서에는 직접 얼굴을 맞대는 계시가 없반면, 구약성경 맨 앞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들은 창조주의 뜻과 반항하는 인간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다(카우프만). 최초의 남자와 여자 이야기, 가인 이야기, 홍수 세대 이야기, 바벨탑을 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신은 거듭 거부당한다. 이에 야훼가 한 작은 집단에게 은혜를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준비된다. 구약성경 역사 이야기의 두 번째 무대는 창 12장에서 야훼가 데라의 아들 아브람에게 조상의 땅을 떠나 자신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제16장부터 제19장까지는 정경의 순서가 아니라 역사적 순서에 따라 선지서들을 검토한다.문학적 선지서는 두 가지 원칙을 동시에 고려하여 배열된 것으로 보인다. 규모와 연대이다. 첫 세 개의 선지서는 규모가 방대하고 연대순으로 나타난다. 이사야는 8세기 앗수르 위기 시대의 유대 선지자이고, 예레미야는 7~6세기 바벨론 위기 시기의 유대 선지자, 에스겔은 바벨론 위기와 유배 동안의 유대 선지자이다. 규모가 큰 책인 이 세 권에 이어 소선지서로 알려진 12권의 책이 뒤따라온다. 소선지서들의 순서는 대체로 연대순이다.첫 문학적 선지자인 아모스는 앗수르의 위협이 분명해지기 전인 기원전 750년경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 중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설파했다.선지자의 글은 다양한 형식을 사용한다. 그중 흔한 형식 하나는 여러 민족에 반대하는 예언이다. 그러한 예언은 아모스에도 있지만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대선지서에도 나타난다.고전적 선지자들의 글은 당시의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불공정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특징이 있다.북왕국 태생의 선지자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기원전 747년까지 통치) 시대에 예언하고 이름이 같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시대까지 활동한 것으로 기록된다. 호세아의 역사적 배경은 앗수르의 위협이다. 기원전 8세기 앗수르는 고대 근동 지방의 작은 국가들을 정복하고 있었고, 이스라엘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처지에 있었다. 예루살렘 출신인 역사상의 선지자 이사야는 아모스, 호세아와 동시기이다.
과목명:아리우스이단논쟁 과정전공:교수명:학번:제출일:이름:바실리우스는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니케아공의회 결정사항을 옹호하고 발전시킨다.이하에서는 아리우스라는 인물과, 그에 반박하는 주요 인물이자 정통파인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살펴보고, 논쟁 과정 속에서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판명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아리우스(Arius)아리우스는 250년경 리비아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하여 활동한 기독교 사제로서 루키안의 제자였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바우칼리스(Baucalis)교구를 관장하던 장로였으며 설교가로 유명했다. 또한 그는 당시 알렉산드리아 기독교계의 저명한 성경주석학자였으며 합리적인 논리학에 기초하여 새로운 주석 방법을 창안했다.318년 알렉산더 감독은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아리우스 일파들을 정죄하고 아리우스를 추방했다. 그 후 그의 복권을 요구하는 주장도 없지 않았으나 328년부터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 된 아타나시우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리우스는 334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지지자였던 동방교회 감독들은 입장을 바꿔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아리우스에 따르면, 하나님만이 시초와 기원이 없으며, 아들은 시작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출생된 것이 아니라는 것, 즉 비출생성을 하나님의 필수적인 특징으로 본 것과 하나님은 본질상 교통할 수 없다고 본 것이 아리우스 견해의 핵심이다.아타나시우스(Athanasius)아리우스파와 평생 싸우고, 니케아 신조를 지킨 알렉산드리아 주교(재임 328~373)이다. 젊어서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알렉산드로스의 비서가 되고, 니케아 공의회(325년)에 참가한다. 328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으로 후임에 선출되어 46년간에 걸쳐서 그 지위를 지켰다.아리우스에 대한 최초의 반대자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였다. 그는 아들은 시작을 가질 수 없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만물이 아들로 말미암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자의 진정한 신성을 강조한 동시에, 아들은 시간 속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아버지가 낳았다는 영원 출생설의 교리를 주장했다.아리우스와의 논쟁이 한창일 때, 알렉산더 감독은 아타나시우스를 집사로 안수했다. 그 후 부감독이 된 아타나시우스는 325년에 개최된 니케아공의회에 알렉산더와 함께 참석하여 알렉산더파가 아리우스파와의 논쟁에서 승리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328년 알렉산더의 후임으로 30세에 알렉산드리아교회의 감독이 되었다.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와 논쟁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해 다섯 차례에 걸쳐 도합 15년 10개월의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366년에 감독직에 재취임하여 373년 죽을 때까지 그 직책을 수행했다. 그의 저서로는 , , , 등이 있다.아리우스 논쟁1. 니케아공의회아리우스 논쟁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320년 이전으로 추정한다. 알렉산더 감독이 320년 혹은 321년 이집트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리우스가 알렉산더 감독을 사벨리우스주의자라고 공격한 것이 양자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불씨였다.아리우스의 주장은, 성자가 참으로 아들이라고 한다면, 시작을 가졌음에 틀림이 없으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알렉산더의 동일본질론이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을 모호하게 한다고 보았다.알렉산더는 처음에는 아리우스를 회유적인 태도로 취하여 아리우스의 주장을 공정하게 듣기 위하여 문제가 되는 성경구절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이를 거부하고 지지세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이에 대응하여, 알렉산더는 이집트와 리비아 감독들의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아리우스 일파를 정죄하고 아리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루키안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지지를 호소했으며 유세비우스의 후원을 얻게 되었다.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이 사건에 개입하여 양측의 화해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콘스탄티누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25년 니케아에서 감독들의 총회를 소집하게 되었다. 이것은 최초의 세계적인 교회회의였으며 300여명의 감독들과 수행원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의 쟁점은 그리스도가 창조되었는가 아니면 출생된 것인가, 그리스도의 본질은 성부의 본질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참석한 감독들은 세 파로 나뉘었다.첫째, 아리우스파로 이들은 성자는 비존재로부터 창조되었으며, 성자와 성부의 본질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둘째, 동일본질파로 이들은 성자는 성부의 본질로부터 출생되었으며,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동일하다고 단언했다. 셋째, 중도파로 이들은 회중의 다수를 이루고 있었으며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지도자였다. 그들은 아리우스주의보다 오히려 사벨리우스주의를 더 두려워한 나머지 아리우스의 종속론을 정죄하기를 주저했다.상당한 논란이 진행되었으나 결말이 나지 않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 문제에 개입하여 성자의 신성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동일 본질을 의미하는 호모우시오스란 말을 신조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따라서 니케아의회는 정통주의의 시금석이 되며 전 교회의 권위가 되는 신조를 채택했다.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시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또한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다. 태어난 것이지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며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그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 아들이 계시지 않았던 때도 있다고 말하는 자들, 출생 이전에 아들이 계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이나 아들은 무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을… 가톨릭 교회는 저주한다.니케아 신조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통적인 신앙을 제시한 신조와 비정통적인 견해를 정죄한 문구가 그것이다. 앞의 것은 알렉산더파의 교리가 정통임을 확인하는 것이며 뒤의 것은 아리우스파의 견해가 이단임을 명시한 것이다. 이 신조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분리시키는 아리우스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통일성과 아들의 신성을 강조했다. 반면, 삼위 하나님의 구별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아리우스파에 대한 동일 본질파의 승리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지지와 아타나시우스의 활약으로 성취되었다. 아리우스를 정죄하고야 말겠다는 아타나시우스의 굳은 결의와 감동적인 웅변이 아리우스파와 중도파를 압도한 것이다.2. 콘스탄티노플공의회니케아공의회의 결정은 아리우스 논쟁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격렬한 충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니케아의 승리는 만장일치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예상외의 결과였다. 그것은 참석한 감독들의 자발적이고 신중한 의사가 아니라 소수의 보다 분명한 기독교 사상의 논리에 의해 강요한 혁명이었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극단적 아리우스주의와 반아리우스주의의 중간노선을 취했다. 따라서 니케아의회는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했지만, 아리우스 논쟁은 그 후 50년 동안 더 이어졌다.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죽자, 그의 세 아들이 로마제국을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콘스탄티우스는 동방을, 두 동생 콘스탄스와 콘스탄티누스 2세는 서방과 북아프리카지역을 각각 통치했다. 콘스탄티우스는 아리우스주의를 옹호하고 유세비우스를 적극 후원하여 동방 교회에서는 아리우스파가 득세했다. 반면, 서방 교회에서는 두 동생이 니케아 신조파를 옹호하여 니케아파가 득세했다. 그러나 두 동생이 사망한 후, 콘스탄티우스가 동서 로마제국의 단독 황제가 되면서 아리우스파는 관권에 힘입어 더욱 득세하게 되었다.한편 4세기 중엽 니케아 신조에 대한 반대파들은 여러 그룹으로 분열되었다. 아노모이파(상이본질), 호모이우시오스파(유사본질), 호모에안파(동류본질)이다. 동방 교회는 유사 아리우스파가 우세했던 반면, 서방교회는 니케아 신조에 충성했다. 서방은 주로 터툴리안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타나시우스의 견해와 조화되는 신학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결국 니케아의회 이후 50년간 계속된 논쟁이 끝나고, 니케아파가 승리하게 되었다. 요인은 세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첫째, 아리우스파 안에서 일어난 분열이다. 아리우스파와 유사 아리우스파의 싸움이다. 이 둘은 일치하지 않은 점이 많았다. 진정한 아리우스파인 아노모이파가 다수파인 유사 아리우스파를 공격하게 되었다. 이에 유사 아리우스파가 니케아 신조파와 연합하게 되었다. 유사 아리우스파는 아버지와 아들이 다른 본질도, 같은 본질도 아닌 유사본질이라는 입장으로 중도파였으며 동일본질에 가까운 면이 있었던 것이다.
제 목:『가족의 발견』전 공:저 자: 최광현학 번:제출일:이 름:인간에겐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드러나지 않은 모습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칼 융은 “그동안 자기가 살아온 삶과 전혀 다른 어두운 충동은 사실 놀랄 만한 일이 아닌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인간은 심리적으로 균형을 원한다.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흘러 균형을 잃을 때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불안의 해소를 위해 정반대의 행동으로 심리적 균형을 맞추려 한다. 권태는 안정된 가정의 가족들이 만나게 되는 전혀 예측하지 못 한 복병이다. 일탈 욕구는 중년기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권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는 ‘축제’이다. 축제는 억압된 그림자를 풀어 놓을 수 있는 일탈의 장이자, 삶의 채널을 돌릴 수 있는 기제이다.뉴욕대학의 임상의 존 사르노 박사는 30년간 몸 곳곳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검사하면서 통증의 진정한 원인이 ‘억압된 분노’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에 따르면 “분노는 불안, 우울증, 위통, 여드름, 알레르기 같은 증상을 유발한다.”고 한다.회복은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감정의 정체를 알아채는 데에서 시작된다. 분노와 좌절, 원망이 쌓여 갈 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분노를 인식하지 못한다. 억눌린 분노를 깨닫게 되면 비로소 치료가 시작된다. 적어도 내 삶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누구나 가슴에 아픔을 간직하고 산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시간은 결코 마음속의 미안함을 치유할 수 없다. 독일의 가족치료사 버트 헬링어는 큰 이유 없이 갈등상태에 놓여 있는 부부의 경우, 종종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지나간 사랑에 대한 죄책감이 부부 사이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의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과거의 상처를 속죄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무의식적인 속죄의 시도는 자기의 삶을 파괴하며 소중한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 수 있다.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원인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인과관계가 복잡한 가족 문제에서는 더 자주 그렇다. 보통 가족 문제는 한 가지에 기인하지 않는다. 서로 모순된 여러 원인들이 꼬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을 찾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때가 있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가족의 전통과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가족의 역기능, 주고받음의 불균형, 가족 내 착취와 왜곡, 학대, 방임, 중독, 폭력 등은 현재의 것인 양 보이지만, 이러한 관계 패턴은 이미 수세대에 걸쳐 반복된 악순환이다.우리의 기성세대에서 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유발하여 가족을 힘들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돈만 벌어 오는 가장’, 둘째, ‘중독’, 셋째, ‘무기력’이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가족이 받는 고통과 상처의 원인과 결과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의 성격, 기질 때문에 혹은 가족들이 너무 예민하거나 불만이 많아서 그렇다는 식으로 고통의 모습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 가족들은 물론 그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돈만 벌어 오는 가장’, ‘중독’, ‘무기력’을 가진 아버지들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면, 문제의 근원지는 언제나 원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가족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았던 상처와 분노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성장하여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근 것이다. 그것은 무관심, 차별 대우, 폭력과 폭언, 알코올, 외도, 성학대 등 여러 형태로 일어날 수 있으며, 가족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반면, 따뜻한 공감의 말 한마디는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가족들을 자기 안에서 비추어 보고 그들의 의도와 느낌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게 되면, 그동안 유지해 온 자기만의 시각과 입장에 변화가 온다. 나의 선입관을 통해 상대를 바라보지 않고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열린 마음으로 보게 된다. 공감을 통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오해를 하는 일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가족 안에는 관계체계, 의사소통체계, 문화체계, 경제체계, 정서체계 등 다양한 체계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정서체계는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체계이다. 우리의 정서체계가 사람에 따라 다르듯 가족의 정서체계도 가족마다 다르다. 위협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정도, 안정감을 느끼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한 가족의 정서는 마치 한쪽 끝을 건드리면 전체가 흔들리는 모빌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결혼을 한 부부에게 ‘얼마나 안정된 직장을 가졌는가, 부모가 집을 사 주었는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과 분리를 제대로 하였는가’이다. 많은 가족치료사들이 “배우자보다 부모를 우선시하는 태도는 결혼을 파멸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부모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서, ‘자립’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자녀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자녀의 독립과 분리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것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우리는 투사를 받았을 때 감정적으로 휘말리게 된다. 투사는 기본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동반한다. 이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거나 설명하려고 애를 쓰다 자칫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면, 상대방은 투사의 방아쇠를 당기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의 투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양측 모두 투사의 희생물이 되는 것이다.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 “아! 그래요?”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던진 투사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기술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감정은 전염성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교류된다. 특히나 가족 안에서 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른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족은 여기에 반응하게 된다. 보웬은 “가족은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 하나의 감정 덩어리”라고 말한다. 가족 내 감정에는 개인의 감정과 가족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 있다. 가족 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감정을 복제해 자기 안에 수용해서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살아갈 수도 있다. 가족의 감정은 가족 안에서 이처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가족이라는 감정의 피뢰침이 적당하게 그 기능을 수행하고 가족이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생각 사이에 경계를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사들은 가족을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 가족이 유기체라는 말은, 구성원이 따로 독립된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자연 생태계는 끝없이 연결된 그물망과도 같다. 그 안에 있는 하나의 생명체는 다른 많은 생명체와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일정한 균형을 유지한다.얽힘은 가족 안에서 상처가 발생했을 때 생기는 것으로,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이다. 얽힘은 가족 안에서 발생한 상처에 대해 그와 아무 상관 없는 가족 구성원이 그 같은 감정과 태도를 갖게 될 때 일어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증, 죄책감, 정신장애, 자살에 대한 욕구 등이 얽힘으로 변화할 수 있다.다른 사람의 신체 증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 경험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 역시 동일시를 통해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게 바로 ‘외상 동일시’이다.부부간에 잘못된 소통의 문제는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회복 될 수 있다. 남녀 간 소통의 문제에는 심리학의 ‘관점 바꾸기’ 기법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에게 공감 받지 못한 아이는 괴로움과 상처를 받는다. 부모와 자녀 간 대화의 단절은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게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그것은 곧 자녀에게 정신적 단절과 함께 인간관계에서의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심한 경우 아들은 감정의 발달이 거의 멈출 수 있다. 대개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치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가족이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때,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하고 한 번 더 참고 살기로 마음먹게 된다. 공감의 한마디, 공감의 눈빛, 공감 어린 시선이 가득한 얼굴 표정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비틀어진 의사소통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가족은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가족이 아프게 한 것을 말하라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런데 감사할 일도 많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가족의 행복을 여는 열쇠이다. 이 열쇠는 우리 손에 있다. 감사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많다.일상 속에서 가족들이 서로에게서 느끼는 정서적 만족감 가운데 ‘사랑의 공명 반응’이 있다. 사랑의 표현은 월급봉투를 가져다주거나 쓰레기를 버려 주거나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랑을 말로, 행동으로 적극 표현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능력이 정서적 소통이다.
과목명: 가족공부세미나『관계의 심리학』 독서보고서전 공:교수명:학 번:제출일:이 름:관계의 심리학에서 관계에 관한 문제를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심층심리학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론적 관점이다.심층심리학적 관점에서 관계의 문제를 바라보는 핵심은 ‘콤플렉스’이다. 심층심리학은 한 개인이 부부 갈등을 겪거나 직장생활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늘 긴장과 갈등상태에 놓일 때, 때로 자주 우울과 불안에 시달린다면 이것을 내면에 있는 무의식적 콤플렉스로 인한 문제로 보고, 그것을 찾아내어 해소하는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는다.콤플렉스는 마음의 응어리를 의미한다. 무언가 그 사람에게 응어리가 있는 것이다. 그 응어리가 건드려지면 이상하게도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가족 갈등이나 대인관계 문제에서 가장 대표적인 콤플렉스로 두 가지가 있는데, ‘어머니 콤플렉스’와 ‘아버지 콤플렉스’이다.먼저 어머니 콤플렉스는 모성 결핍 또는 모성 과다에서 발생하는 콤플렉스이다. 어머니 콤플렉스는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적용된다. 여성이 어머니 콤플렉스를 갖고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애정결핍과 무관심을 자녀에게 그대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자녀에게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와의 관계 패턴을 재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그 욕구를 거스르는 것은 어렵다.두 번째는 아버지 콤플렉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존경했거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경멸과 원망이 가득 차 있다면 이것은 현재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남성이 아버지 콤플렉스를 갖고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자기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무관심과 냉정함, 폭력, 중독성 행동, 경제적 무능함 등을 그대로 반복할 가능성이 있관계 등 관계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 심층심리학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심층심리학은 관계의 문제를 무의식의 문제인 콤플렉스로 본다면, 체계론적 관점은 소통과 관계의 문제로 본다.가족 문제를 비롯한 대인관계 문제는 소통과 연결된다. 소통과 관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이 바로 체계이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이론에서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가족 테라피’이다. 가족 테라피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관계 테라피’이다.가족을 하나의 시스템, 체계로 본다는 것은 가족을 볼 때 부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전체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심층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면 개인의 무의식과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겠지만, 체계론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면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싼 가정 환경, 그리고 그 안의 상호작용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는 것이다.가족체계를 이해하는 개념 중 항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항상성이란 가족 안에서 일정한 무게 중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심력이다. 일종의 추와 같다.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넘어가면 가족 안에서는 언제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원심력이 작용한다. 그래서 가족항상성은 가족원심력이라고도 하는데, 가족의 문제와 증상이 계속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항상성의 개념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다.트라우마는 상처이다. 그런데 소화되지 않는 상처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잊으려 해도, 해결하려 노력해도, 용서하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외상, 즉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두 가지 애착 유형이 만들어진다. 안정애착과 불안정 애착이다. 보웬은 개인의 성격과 기질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상호관계에서 만들어진 친밀감, 애착 유형이 대인관계의 기본적 틀을 만든다고 말했다.보웬은 자아분화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 사람의 대인관계, 가족관계의 모든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분화’라는 개념 자체는 얼마나 분리가 되었는가를 설나 있는 경우, 힘들겠지만 가족들로부터 나를 지키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로 가족이기에 당연히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이들로부터 정서적으로 거리를 얼마나 둘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두 번째,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에 이끌려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적절한 이성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건강한 자아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보웬의 자아분화를 조금 더 설명하면, 우리에게는 관계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하나는 연합성이다. 그 사람과 연합하고 싶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별성이다. 그 사람과 가까이 붙는게 너무 싫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계를 두고 싶어 한다.자녀가 부모에게서 서서히 벗어나며 자기 목소리와 생각을 가진 한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독립성과 자율성이다. 이 때 주위의 정서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융통성 있으면서 일관성 있는 자아를 ‘진아’라고 하는데, 자아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은 진아를 형성하지 못한다.프로이트는 사랑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내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의 특징은 집착, 소유욕, 질투, 협박 등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특징들 중 제일 심각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경멸하는 태도이다. 세계적인 부부상담사인 존 가트만은 부부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 상대방을 경멸하는 태도라고 했다. 그래서 가트만은 부부가 상대방을 경멸하는 태도를 통해 앞으로 10년 후 이혼할지, 안 할지를 측정해보았는데, 그 적중률이 90퍼센트가 넘었다고 한다. 경멸하는 태도 또한 자아분화가 낮은 부부들의 전형적인 소통 방식이다.자아분화가 낮은 사람들은 갈등이 발생하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삼각관계’를 사용한다. 삼각관계는 갈등과 긴장이 발생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 갈등과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며 화해의 메신저, 즉 중재자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대표적인 형태가 부모 사이에 있는 자녀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부부 관계가 불완전할 때 스트레스 요인이 생기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삼각관계가 형성된다.인본주의 심리학의 핵심 주제는 ‘성장’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핵심은 증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어려움을 갖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성장하면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문제와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티어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자존감이다. 사티어는 관계의 문제로부터 벗어나서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으려면 자존감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보웬의 자아분화가 자존감과 유사한 의미이다.우리가 연애할 때나 대인관계를 맺을 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사랑의 결핍을 가진 사람들은 자존감이 손상되어 있다. 진짜 소통이 되려면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고 거기에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사티어에게 자존감과 더불어 중요한 핵심 개념은 의사소통이었다. 자존감과 소통이 연결되고, 그를 통해서 관계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자존감이 성장하면 자존감 회복의 정도에 따라서 관계체계도 변한다. 사티어는 자존감이라는 개인의 변화가 관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사티어 이론의 핵심을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자존감, 의사소통, 그리고 관계규칙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의사소통이 건강하고, 의사소통이 건강하면 관계 규칙이 기능적이고 건강하다. 자존감이 낮다는 건 내 안에 이른바 ‘면박꾼’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사티어는 낮은 자존감이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온다고 보았다. 사티어가 자존감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 문제는 가족 관계,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야기한다.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것이 의사소통이고 의사소통에서 변화를 끌어 낼 수 있다. 자존감이 성장하면 의사소통에 변화가 오고 관계 안에서 의사소통이 더 기능적으로 변한다. 관계규 수 있다. 반면 닫힌 체계는 구성원들이 서로 경직 된 채 연결되어 있거나 아예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안으로나 밖으로 정보가 유통되지도 않는다. 사티어의 관계심리학에서 자존감, 의사소통, 관계 규칙이 가장 중요하고 이 세 가지는 분리된 듯 보여도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작동되고 있다.인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바로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희생양’이란 말은 구약성서에서 처음 등장한다. 구약에서는 어린양을 통해서 이스라엘인의 죄를 대신하게 했던 희생 제의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가족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집단 안에도 있다. 집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투사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서 그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희생양의 역할을 맡게 된 자녀의 특징은 다른 형제들이나 자매에 비해서 감수성이 높고 아주 예민하며 겁이 많다는 것이다. 예민하다보니 가족의 분위기가 험해질 때 다른 자녀들에 비해 고통을 더 크게 느끼게 되고 가족이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다보니 가족희생양 역할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족 안에서 대부분의 경우 자녀들이 가족희생양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반드시 자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조부모가 될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비교적 약하고 기능이 떨어지는 누군가가 그 역할을 떠맡을 수 있다.가족 희생양의 유형으로는 부모 역할을 하는 자녀, 어머니나 아버지의 친구 역할을 하는 경우, 가족상담사 역할,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투사하여 부모의 우상이 된 경우 등등이 있다. 완벽주의적인 자녀, 성자의 역할이나 악당의 역할, 귀염둥이 역할이나 광대 역할, 문제가가 있다. 가족희생양 내면의 메커니즘은 죄책감이다. 사실 가족 희생양은 가족들에게 거부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갖고 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희생양 역할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기력에 빠지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