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작용양자1900년, 막스플랑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책이 전개된다. 열역학이 완성되어 갈 무렵이었고, 물리학의 완성이 보일 때였다. 하지만 플랑크는 원자론을 반대하였고, 고전 열역학과 통계물리학사이에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킨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해서도 깊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플랑크는 흑체복사에 대해 연구를 하였고 마침내, 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에 능통했던 그는 복사법칙을 이용하여 각 진동자의 엔트로피를 내부 에너지와 진동자의 진동수로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고, ‘플랑크상수’를 남긴 복사공식을 유도하였다.1905년, 하지만 플랑크의 개념은 고전적인 계를 서술하다가 완전히 비고전적인 개념을 갑자기 도입하여 계산을 마무리하였다고 다들 생각했었다. 이것을 개념으로 증명해낸게 아인슈타인이다. 사실 그가 살던 당시에 그는 눈에띄는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일을 구했고, 그가 낸 논문들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훗날 플랑크의 허점을 보완할 이론과, 물리학의 한 획을 그을 법칙들을 많이 만들어냈다.1913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를 바탕으로, 양자역학의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뉴질랜드의 물리학자 러더퍼드는 ‘원자의 질량 대부분이 중심부에 있는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고, 월씬 가벼운 전자들이 태양계의 행성처럼 그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러더퍼드 태양계모형은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 단점을 보어가 작용양자의 영향을 받을것이라는 결론을 주장하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후에 찰스 피커링의 수소스펙트럼과 더불어 양자수(궤도 전자의 특성을 규정짓는 정수)를 도입하면서 원자모형을 확립시키게 되었다.1923년, 양자수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면서, 아인슈타인의 광양자가설을 증명하는 이론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한 예로, 드브로이는 아인슈타인의 내용이 모든 물질입자에 적용하여 일반화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자가 원자 내부에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면 전자의 파동이 현악기의 끈처럼 궤도를 따라 정상파의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발견을 아주 높이 평가했었지만, 결과적으론 학계에서 받아주지 않았기에 드브로이의 원자파동이론은 미완제로 결론이 났다.1925년, 맥주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하이젠베르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크라메르스와 공동연구를 하면서 ‘원자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려면 고전이론을 포기하고 새로운 양자역학을 도입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였고, 전자가 궤도를 변경할 때 방출되는 스펙트럼선의 진동수로 대치하는것을 목적으로 연구하였으며 대각행렬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보른과 요르단과 함께 행렬역학에 대해 정립하게된다. 그당시 볼프강 파울리는 이상제만효과의 허점을 파악하게 되고, 어린 나이에 전자들이 배타원리에 의해 각 궤도에 최대 2개의 전자만 허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많은 학자들이 왜 하필 2개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전자의 자전때문이란 것을 발견하였다.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장교출신으로 나이가 꽤 있는 상태에서 물리논문을 보기 시작했다. 드브로이의 이론을 바탕으로 보어와 좀머펠트의 양자수를 깔끔하게 유도하였고, 파동방정식의 존재이유를 설명했다. 1926년에, 새로운 파동역학과 관련된 6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구속된 전자의 파동을 현실적인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슈뢰딩거는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이 수학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했다.2부-양자적 해석1926년, 슈뢰딩거의 파동묶음은 미시적 규모에선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었기에,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행렬곱셈을 알아낸 막스보른이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지지하면서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아인슈타인이 파동을 광양자가 특정 경로를 따라갈 확률을 결정하는 것을 ‘유령장’으로 표현하길 제안했다고 한다. 이때가 물리학계는 양자수준에서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열띤 토론을 겪은 시기이다.1927년, 슈뢰딩거와 같이 연구를 했던 보른은 파동역학을 전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그해에 완강한 반대론자가 되었다. 완전한 수학적 이론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행렬역학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물리학계는 파동역학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행렬역학에 시각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하이젠베르크는 감마선 광자가 전자와 충돌했을때의 진행방향과 운동량을 관찰하여 ‘파동함수의 붕괴’라는 논문을 제출하였다.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한 실험에서는 전자가 파동처럼, 다른 실험에선 입자처럼 행동하는것을 보고 양자세계를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하는지 깊은 고뇌에 차있었다. 그러다가 파동과 입자는 상보적인 관계라는 것을 기반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상보성 원리-양자적 입자들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가지고 있고, 두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진 않지만 계를 설명하려면 두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하지만 보어와의 논쟁에서 크게 대립했다. 보어는 광학기기의 관찰값에 의해 불확정성을 파동의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하이젠베르크는 광학기기로 관찰하는 것 자체가 결과에 대한 선을 긋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둘은 크게 싸웠지만 파울리가 극적으로 화해시켰고 파동에 대한 논문은 물리학자들 사이에 빠르게 수용되면서 훗날 코펜하겐 해석으로 불리게되었다.3부-양자논쟁1930년,우주에 입각하여 전자와 에너지의 개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디랙이 의문을 제시했고, 이에대해 아인슈타인이 실험을 설계했다. 상자 내부에 시계를 놓고 구멍을 열고 닫는 셔터와 연결한 후에, 광자하나가 상자를 빠져나갈 만한 시간이 지나면 셔터를 닫아버린다. 이렇게 하여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식을 이용광자의 에너지로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1932년 채드윅은 중성자는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된 것이 아닌 새로운 존재라는 것을 주장, 코크로프트는 최초의 인공핵반응 실험을 성공, 많은 물리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지만, 1933년에 히틀러가 공직과 대학교에서 유대인을 내보내겠다는 결정을 하였고, 많은 과학자들이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ERP역설 탄생시켰다. ERP역설이란, 두 개의 양자적 입자가 상호작용을 교한한 후 서로 멀어질 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관측자는 두 값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수 없다는 것이다.4부-양자장1929년,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가 양자장이론을 개발하지만 완벽한 해를 구할수 없어서 근사적인 방법으로 접근, 그러나 이 값들 또한 무한대로 나오면서 고민에 빠져버렸다.1954년, 대칭변환이 등장하였다. 이것은 시공간의 병진,회전,거울변환에 대한 개념으로 다양한 변환들은 연속적인 결과를 체계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설들이 힘을 얻었다. 맥스웰의 방정식의 경우에선, 전기장과 자기장의 관계에 의해 대칭이 되고, 전하가 보존되는 것을 증명했다. 정지한 전하는 자기장, 움직이는 전하는 전기장과 자기장 둘 다 만들어 내는 것이다.광역 대칭이란 지구의 위도와 경도와 같이 위치가 달라져도 적용하는 방법은 달라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게이지 대칭이란, 위상변화와 파동이 알맞게 반응해야 대칭이 유지되는 것이다.예컨대 한 입자의 운동량(속도)과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다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거나, 고양이는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입자는 여기 있으면서 동시에 저기 있다는 등의 양자 세계 얘기 자체는 이제 옛말이 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만약 네가 보지 않을 때는 파동이 존재하다가 볼 때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관찰자가 진리라고 여기고 싶어하는 취향에 따라 진리가 달라진다”(에르빈 슈뢰딩거), 곧 관찰자의 시선이 관찰 대상의 존재 방식을 바꿔버린다는 얘기는 더 말이 안되는거 같기 때문이다. 양자적 실체들이 국소적인 인과성도 없고 모든 게 서로 얽히고 겹쳐져 분리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관찰자의 관찰 행위에 따라 실재가 바뀐다(관찰되기 전까지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다)는 양자론에 대해 아인슈타인조차 터무니없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하지만 최근 밝혀지기 시작한 양자 세계는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의 세계와는 분명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