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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의 역사 요약
    201830354 정재원예전에는 일본이 김 양식 방법이라던지 종자 개량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김을 사용한 음식이 많기도 하고 김이 주 종목이어서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김 종주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근거를 보면 김에 대한 역사는 우리나라가 훨씬 빠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4-7세기) 때부터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7)때부터 먹었다고 한다. 또한 오후사쓰요이 박사가 저술한 ‘바다 채소’라는 책에서는 일본이 18세기 초중반부터 김을 음식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양식을 한 기록 같은 경우에는 일본은 1660년대부터 남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630년대에 양식법이 창안되어 우리나라는 약 350년이 넘는 김 양식 역사를 가지고 있다.김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됐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김의 시초는 고려 충렬왕 때 편찬한 삼국유사에서 나타난다. 우리 민족은 김을 신라시대부터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명나라 때 적힌 ‘본초강목’에도 신라인들이 허리에 새끼줄을 묶어 바다에 깊게 들어가 김을 채취했다고 서술한다. 또한 ‘경상도지리지’에서 조선 왕조 초기에 하동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적혀져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광양에서 400여년 전에 채취했었다는 기록이 있다.김이라고 불리게 된 역사도 깊다. 김은 바다바위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옷을 입은 것과 같다고 해서 처음에는 ‘해의’라고 불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삼국유사에도 신라시대 때 해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정확히 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때는 여러 사료들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1424년에 만들어진 경상도지리지에 등장하기도 하고 1454년에 만들어진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김이 해안 지방의 특산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김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그 전에 김이라고 불리게 된 여러 설의 당사자는 바로 김여익이라는 분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당시 병자호란에서 의병을 일으켰지만 조정이 항복해 태인도에 숨어 살았다. 18년(1640년) 태인도에 들어가 최초로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이용해 김을 양식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김여익은 섬진강 하구에 위치한 배알도를 산책하다가 나무 가지에 이름 모를 해조가 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해의였고 그 이후 김여익은 해의를 키우기만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해의를 건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짚을 엮어서 만든 김발 위에다가 해의를 골고루 펴서 건조시킨 후 떼어내는 건조방법을 개발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태인도 사람들도 이를 양식하고 제품을 하동 장시에 팔았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이 해의를 김으로 부르게 된 사연이 두가지가 있다.먼저 첫번째는 김여익은 그 당시에 김 양식을 성공했을 때도 음식에 이름을 짓지 않았다. 이후 이 음식은 인조왕의 수라상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인조는 음식을 먹어본 뒤에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신하가 음식은 아직 이름이 없지만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이라고 말했는데 인조는 신하의 말을 들은 이후 이 음식을 이제 김이라고 부르라고 말했다고 한다.두번째 설은 김여익이 해의 양식을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과 거래를 하면서 김씨 집안에서 만든 음식이라고 말할 때 김씨 집안에서 만든 음식이라고 말했고 김여익의 양식법 덕에 공급되었으니 해의를 김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에 광양 김은 왕실에 마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아졌다. 김여익의 김양식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 김시식지는 광양에 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등록되어 있다. 이런 김여익에 대한 기록은 무덤 앞에 있는 비석에 적혀 있다고 하지만 현재 그 비석의 행방을 알 수 없고 사본만 남아 김시식지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 양식을 했다는 아기섬 모습은 현재 광양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김여익의 활약이 광양에서 김 양식을 한 이후에 김양식은 점점 증가하고 20세기에는 광양김의 명성이 전국으로 퍼져 광양 김양식장 사찰단까지 조직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광양김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해태조합이 결성되었고 제조된 김의 많은 양이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여기서 해태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표기된 김의 일본 이름이다. 김을 제조하는 과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데 1800년대에는 대나무 발을 엮어서 한쪽에는 바닥에 고정하고 다른 한쪽은 물에 뜨도록 하는 ‘떼발’ 양식법이 있었고 1920년부터는 ‘떼발’ 대신 ‘뜬발’로 개량해 김이 일정한 기간동안 햇빛을 받도록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했다.[참고자료][생활 속 역사 이야기] ⑭김밥의 유래, , 2010.07.08, Hyperlink "https://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361073" https://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361073수산미디어, Hyperlink "https://www.nifs.go.kr/webpage/kr_nn/popup/susanm17.jsp" 수산미디어 (nifs.go.kr), Hyperlink "https://www.nifs.go.kr/webpage/kr_nn/popup/susanm17.jsp" https://www.nifs.go.kr/webpage/kr_nn/popup/susanm17.jsp아세아식품, ‘신라시대 김’, Hyperlink "http://foodasia.co.kr/contact.php?num=1_2" http://foodasia.co.kr/contact.php?num=1_2호남 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문화재청, 2011, 178광양김시식지 설명 자료유튜브, ‘우리가 먹는 김은 왜 김이라고 불리는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3K4fg5r4PKg
    농/수산학| 2021.12.22| 3페이지| 2,5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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