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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최초합격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 부분(1390자)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최초합격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 부분(1390자)
    학 업 계 획 서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2023학년도 전기 입학시험수험번호지원자과정 : 석 사전공 : 국어교육성명 : (인)? 아래 항목을 참조하여 자유롭게 기술하십시오(분량?형식 등 제한없음)1. 자기소개한 학생으로부터 국어 공부는 왜 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국어 문법을 가르치던 중이었고, 복잡한 개념에 퉁명스러워진 이과 학생으로부터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언제 대학생이 되어 과외 선생님이 될지 모르니 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만족스러운 답을 들은 적이 없었다던 학생은 제 답변에 만족해하며 그 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왔습니다. 저는 언제나 배움에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전문 분야와 상관이 없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쓰임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웜뱃의 대변이 정육면체라는 사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의 이목을 끌어오는 좋은 기폭제가 되어 주고, 제가 들려준 양자 물리학 이야기는 한 학생으로 하여금 꿈을 갖게 했습니다. 현대문학이 좋아 한국어문학부에 진학했지만, ‘한자의 해부’, ‘전통서사론’ 강의를 들으며 고전 문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자신만의 사업이 가지고 싶어 신청했던 경영학 복수전공은 저로 하여금 인적관리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학생들 또한 사회의 일원이기에, 경영학 수업을 통해 얻은 인적관리 역량은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해 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저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기에 학생들이 배우며 즐거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 일환으로 국어를 고른 것은, 국어만이 전할 수 있는 감정의 결과 서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나쁘다면 그것을 좋은 환경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명확하고 적확한 말로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할 때, 관계는 비로소 발전되고 배움도 즐거워집니다. ‘짜증난다’는 말이 다양한 감정의 표출을 막는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기반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짜증난다’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들을 가르쳐 주며 정확한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지도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습관적으로 하던 ‘짜증난다’는 말을 멈추었고, 부정적인 표현 대신 긍정적인 단어들로 감정 표현을 대체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의사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했고, 친구에게 부드러운 말을 건네며 웃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국어의 힘이며,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2023.06.27| 1페이지| 4,000원|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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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봉감별곡 독후감 / 레포트 (세부성적 만점 A+)
    채봉감별곡류(類)의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들과 끊임없이 담을 넘는 남자 주인공이다. 채봉감별곡에서는 등장하지 않으나 여자 주인공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위자의 등장도 잦다. 클리셰의 사용은 어색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토록 단순한 구조가 소설 속의 중심 장애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면 그 이유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위자는 왜 여자 주인공의 바깥 출입을 막는가? 남자 주인공은 왜 계속 담을 넘는가?이러한 구조의 배경에는 유교적 이념의 남성성을 수행할 수 없는 남성들이 존재한다. 영영전의 회산군, 운영전과 최생전의 안평대군, 여종의 하성부원군은 모두 남성으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왕위 계승권을 갖지 못하는 왕자는 정치적 권력에 강한 욕심을 보이거나 많은 권력을 가질 경우 극심한 견제의 대상이 된다. 부원군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많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통제당했다. 정치 참여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성의 미덕이라 교육받았던 입신양명이 불가능하니 이러한 권력욕은 당연히 자신의 통제범위 안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공간, 여자 주인공이 갇혀 지내는 집이다. 때문에 이들은 집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들에게 집은 그저 거주의 공간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 전부를 대변하는 공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따라서 집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장은 세계의 경계를 상징한다. 고전소설들에서 남자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담을 넘고, 깨진 담 사이로 들어오려 시도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소유한 궁궐-집-하나만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남성 주인공의 침입은 달가울 리 없다. 자신의 소유물(여자주인공)을 탐내는 남성 주인공의 행위는 세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자신을 향한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지어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의 고전 소설에서는 주로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소설의 제목에 전(傳)을 붙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전(傳)은 인물에 대한 공식적 차원의 평가, 역사 기록인 열전(列傳)이나 이에 개인적, 가문적 관점이 반영된 가전(家傳)을 포함해, 제목에 ‘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전 소설들은 소설을 현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현실적인 인물의 등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심리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유교에서 제시하는 남성성을 따르지 못한 남성들의 집에 대한 집착은 이해할만 하고, 나아가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담’이라는 존재는 남자 주인공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상징하기도 하므로 당시 작가들에게 있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과 끊임없이 담을 넘는 남자 주인공’의 구조는 구미가 당기는 서사였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잦은 등장이 당시의 생각으로서는 타당한 일이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채봉감별곡의 결말부에서 사건과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이 인위적이고 급작스럽다는 것이다. 이는 흔히 서사의 미흡함, 혹은 게으른 발전 양상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소설 전반을 좌우하는 갈등 구조가 한 번에 해결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부정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전개를 채봉감별곡이 남성 판타지적 소설으로서의 면모를 가진다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또 다른 해석을 내어 놓을 수 있다. 채봉감별곡에서 이보국이라는 권위자가 너무나 쉽게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남성 주인공의 고행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 고전 소설의 양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채봉감별곡을 비롯한 고전 소설은 주로 남성향을 띤다. 남성 수용자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가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가문 소설은 동양권에서, 특히 한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의 소설으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이나 사건·사고를 다루기보다는 가문 전체에 벌어지는, 가문의 종속을 위협하는 사건·사고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서양의 소설과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은 가장 유명한 영국 소설, 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문의 존속은 누구에게 중요한 것인가? 여성은 출가외인이다. 결혼을 하면 기존의 가문에서 벗어나 다른 집의 사람이 된다. 때문에 가문에 대한 강한 집착은 주로 남성에게서 드러난다. 가문은 그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져가야 하는, 본인을 규정하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학문을 가르칠 정도로 사랑했던 딸을 가문을 위해 희생시키려 했던 김 진사의 결정은 가문을 중요시 여겼던 당시의 관점에서 보아야 진실한 이해가 가능하다.둘째, 그렇기에 소설들은 여성의 지조와 절개에 집착한다. 안생에서 여종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위기에 처하자 수절하는 것, 여종에서의 여종이 안륜과 만날 수 없게 되자 또한 수절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한 번 모시기로 다짐한 지아비와 헤어지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결을 결심한다. 열녀비를 받기 위해 과부의 자결을 종용했던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서사는 과연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남성이 다른 이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가문의 존속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을 첩으로 맞아들여 가문의 확대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가문의 존속을 위협한다. 가문을 중시했던 가부장적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서사는 가부장제의 존속을 위한 하나의 음모에 가깝다. 현재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미의 기준이 어느 정도 일관적인 것처럼, 수절을 서슴지 않는 여성상의 끊임없는 노출은 가부장제에 해가 되지 않는 여성상을 사회에 일관적으로 제시하는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셋째,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은 여성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주생전에서 주생은 배도와 선화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배도는 선화에 대한 주생의 사랑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한다. 그가 자주 다니는 길에 묻어달라는 유언까지 남긴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심지어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인생에 도움조차 되지 않는다. 신분 상승을 포함한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다르다. 채봉감별곡은 사랑을 위해 신분까지 팔아야 했던 채봉이 다시 제 신분으로 복귀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본 자리로의 회귀라는 것이다. 운영전의 운영은 자결했고, 일타홍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권사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그녀는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따라 자결한다. 이러한 소설들의 초점은 여자 주인공에게 있지 않다. 여자 주인공들의 의미는 남자 주인공들의 과거 급제를 위한 도구나 절절한 사랑을 추억하는 수단으로서의 등장인물에 있다.따라서 채봉감별곡은 남성향적 소설이며, 나아가 대부분의 고전 소설들에도 남성 판타지가 가미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채봉감별곡의 서사적 구조에서 남성 판타지의 개입이 중요한 이유는, 남성향이라는 소설의 성격이 채봉감별곡의 미흡한 결말 서사의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소설이 남성향이기 때문에 남성주인공의 고행을 선호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독자가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표적 여성향 장르인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의 독자들이 여자 주인공의 고난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여주인공의 고행이 이어질 경우 작품 읽기를 그만두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빠른 사건 해결을 바란다. 다른 문학적 소설과는 달리 로맨스 판타지 소설에서 유달리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것이 애초부터 여성향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소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남성 주인공의 고행을 선호하지 않는 이러한 양상은 숙향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천상의 월궁선녀였던 숙향과 태을선군이었던 이선이 천상에서 지은 죄로 적강한 처지라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그 죄의 근원을 여성에게 두어 지상에서 겪게 되는 고난의 빈도와 정도에 차이를 주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상에서 두 주인공은 신분에서 여성 열세, 남성 우위의 구도에 놓이게 되며, 여자 주인공인 숙향이 도둑 누명을 쓰고 쫓겨나고, 불에 타 죽을 뻔 하며, 아사 위기해서 구해지거나, 물에 빠져 죽으려 하는 동안 남자 주인공 이선은 과거를 보러 간다. 그의 고난은 심지어 환상적이고 유희적인 여행이나 모험에 가까우며, 위기에서 언제나 구해지는 역할인 숙향과 달리 고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대의 인식에서 비롯된 남녀 차별적인 위상을 소설에 차용함으로써 비현실적인 서사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또한 얼마나 게으른가. 독자를 설득시키는 것은 소설의 의무이며 역할이다.
    독후감/창작| 2021.08.02| 4페이지| 1,000원| 조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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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록 독후감 / 레포트 (세부성적 만점 A+)
    임진록은 현실으로 시작해 허구로 끝난다.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전쟁과 이로부터 겪은 혼란, 실제 인물들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임진왜란은 패전의 역사다. 적세에 밀려 임금까지 도성을 버린 치욕의 역사다. 조선이 이러한 역사를 맞이한 것은 안일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위기를 인지하고서도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실수이며 국격을 훼손시키는 대처임에 분명하다. 사람들은 준거집단의 치부를 감추려 들기 마련이다. 그러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임진록은 이토록 치욕스러운 역사를 글 속에 그대로 담아냈는가?허구로 창작된 결말을 적어 낼 것이라면 처음부터 허구로 글을 적어 국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거나, 임진왜란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아예 다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 작가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과 참혹했던 당시 상황들을 그대로 적어 넣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책의 작가가 느꼈을 치욕과 고통의 크기가 상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준거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부를 눈 감아 주기에는 왜란으로 인해 겪었던 경험들이 너무나 잔혹했을 테고, 이러한 위기를 알면서도 대비하지 않은 국가에 대한 원망의 크기 또한 컸을 것이다. 임진록에서 준거집단의 치욕을 그대로 다루는 것에는 국가 내지 당시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이러한 심정을 생각해 보면, 임진록이 허구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 것 또한 이해가 가능하다. 나라가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보상을 해 줄만큼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으니, 소설으로라도 패배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얻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임진왜란의 주범인 수길(히데요시)을 대단한 인물로 설정하고 긍정적인 묘사를 길게 풀어놓았다는 것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임진록은 수길(히데요시)을 대단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나이 칠 세에 이미 장대한 기골과 과인한 지략을 갖췄다고 적는다. 태몽부터 범상치 않았던, 타고난 기인이라는 것이다. 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보편적인 서술 기법이다. 이러한 서술 기법에는 심지어 클리셰 또한 존재해서, 우리는 콧수염을 가진, 눈이 찢어지고 어딘가 약아 보이는 인물을 보면 흔히 정적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멀끔한 외모와 그럴듯한 사상을 가진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는 비교적 현대에 와서나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임진록은 수길을 이토록 긍정적으로 묘사하는가?이에 대한 해답은 수길에 대한 긍정적 묘사가 조선의 패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김성일이 묘사했듯-쥐와 같은 눈을 가진 왜소한 왜인에게 진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타고난 위인이었던 대단한 사람에게 졌다는 것이다. 약한 존재에게 지는 것보다 강한 존재에게 질 때 패배는 정당화하기 쉬워진다. 상대의 능력을 패배의 핑계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으나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이유는 그럴듯한 도피처가 된다. 이는 서사적 측면에서도 훌륭한 장치로 기능하는데, 더 어려운 상대와 싸워 이겼다는 결말이 주는 카타르시스의 양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크기 때문이다. 게임에 하드 모드가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 힘들게, 더 어렵게 게임에서 이겼을 때 우리는 더욱 흥분하며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수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여 맞붙기 어려운 인물으로 설정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어렵고 위험한 상대와 싸워 이겼다는 결말에서 정신적 보상을 얻으려고 했다는 것이다.소설을 통해 정신적 보상을 얻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소설 내내 나타나는 다양한 영웅들의 등장에서도 드러난다. 이순신, 곽재우를 지나 논개, 계월향, 그리고 김응서에 이르기까지 임진록은 꾸준히 민족적 영웅을 갈망하고 부각하며 숭앙한다. 이 영웅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활약상이 모두 극적이라는 것이다. 열두 척의 배로 열 배가 넘는 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의병 출신으로 정규군을 물리친 곽재우, 불리한 조건에서 적장을 해치운 논개와 계월향. 김응서는 심지어 칼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 왜장을 죽이는 도술까지 펼친다.임진록의 소설적 장치들은 카타르시스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말했다. 임진록에서 임진왜란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이며, 영웅들은 극적인 활약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중요한 적을 제거하며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마블과 DC의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임진록에서 카타르시스는 중요한 서사적 요소다. 그리고 소설로부터 얻게 되는 이러한 카타르시스가 바로 작가가 소설을 통해 유도해내고자 했던 정신적 보상이다. 따라서 작가는 임진록에 현실을 서술함으로써 국가의 탓으로 발생한 전쟁의 피해자인 민중에게 어떠한 정신적 보상도 해 주지 않는 국가에 대한 원망을 담았고, 임진록에 허구를 서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국가 대신 정신적 보상을 꾀했다. 임진록에 서술된 현실과 허구의 이야기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임진록을 비롯한, 임진왜란을 소재로 삼은 야담들에서 등장인물들의 자살을 꾸준히 미화하는 점은 아쉽다. 이들의 죽음은 온전한 본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행동에 가까운데, 학습과 경험을 통해 습득하여 개인에게 체화된 암묵지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요는 문찬성의 죽음과 진정한 충신의 도리에서, 그리고 정몽주의 충절에 대한 의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이야기는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비판한다. 더 빨리 죽지 않았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부정적으로 서술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의 삶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서술이 이 두 작품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독후감/창작| 2021.08.02| 3페이지| 1,000원| 조회(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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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운몽 독후감 / 레포트 (세부성적 만점 A+)
    구운몽을 숙종 대에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지은 것으로, 흔히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운몽의 이야기는 남성 주인공이 하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면 훌륭한 어머니를 가진 남성 주인공이 소설적 흥미를 위해 가미된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고 끝내 성공하여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바람직했을 텐데, 구운몽은 현실의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주인공들이 전부 불교에 귀의하는 결말을 맞는다. 양소유를 힘겹게 키우고 걱정했던 어머니의 존재는 어느 샌가 희미해진 지 오래이며, 결말 부분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그러나 구운몽에는 뛰어난 남자 주인공이 있다. 여덟 명의 선녀를 모두 거느릴 만큼 뛰어나고, 어딜 가나 글 솜씨에 대한 칭찬을 들으며, 과거에 쉽게 급제하고 지략 또한 뛰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남자 주인공이 있다. 따라서 구운몽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김만중이 이상적인 남성성을 가진 양소유에 자아를 의탁하여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적은 글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만큼 뛰어난 글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부수적으로 존재했던 것도 맞겠다. 다만 본질이 효도가 아니라 본인의 자기위로에 있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자기위로의 면모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운몽은 또한 남성향 소설이다. 남성 작가가 지었고, 명목상 어머니를 위한 소설이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어머니를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작가는 남자 주인공인 양소유에 자신을 이입하게 되는데, 이 양소유는 여러 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경홍이 자신은 매우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몸을 의탁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대의 위인들을 모두 읊었으나, 끝내 양소유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양소유는 그만한, 혹은 그보다 대단한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입하기 좋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조연들이 이야기 내내 등장인물들이 지은 글을 칭송하는 부분에서도 이와 같은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양소유가 지은 글뿐만 아니라 팔선녀가 지은 글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소설이라는 특징 상 작품 내에 나오는 대부분의 글은 작가인 김만중이 지은 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은 시를 두고 옛날 왕유와 이백이라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며 칭찬하는 대사를 적는 김만중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그 글들을 천상에서 내려온 글이네, 귀한 향기가 나는 글이네 하며 칭찬하는 것은 김만중이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칭찬처럼 여겨진다. 작가가 글을 쓰며 자화자찬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양소유에 이입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작가는 귀양 후 떨어진 자존심을 이렇게라도 회복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라이트노벨을 읽는 현재의 남성 독자층의 시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길고 긴 자기위로의 역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천상에서 죄를 짓고 인간 세상으로 적강하는 구조는 숙향전, 옥루몽 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구운몽은 그 초점이 주인공들의 고난이 아닌 양소유의 연애에 있다는 점에서도 구운몽이 지닌 자기위로적 성격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천상계로 돌아가 선관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사는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구운몽에서 주인공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무소유를 추구한다는 점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만중은 당시 유배중이었고, 권력에서 물러나며 소유했던 것들을 많이 빼앗겼을 테니, 소유욕에 대한 무상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운몽을 지은 것이 1687년이고, 김만중은 1688년에 다시 방환한 것으로 보아 구운몽을 지었을 당시의 유배는 형식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만중이 드러낸 소유욕에 대한 무상감은 그 자체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반대 세력에 대한 조롱으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반대 세력의 음해에 빠져 귀양을 왔으나, 너희가 빼앗아 간 권력과 물질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성진이 인생무상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았듯 지금의 나 또한 그러하노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구운몽을 읽으면, 구운몽의 본질적인 주제가 인생무상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낮아 보인다. 양소유의 부친은 신선이요, 팔선녀와 만나 희롱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니 양소유의 시작은 도가이고, 여성이 남성을 섬기고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면에서 양소유의 일생은 유교이다. 양소유가 불교를 언급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이루고 난 다음. 죽음을 거의 목전에 둔 말년인데, 끝에 와서야 겨우 언급되는 불교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사실상 인생무상을 다루는 마지막 부분은 소유에서 오는 쾌락을 다루는 기나긴 앞부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교과서에서 구운몽을 인생무상을 다룬 철학적 소설이라 강조하는 것은 소설을 경시하여 이렇다할만한 문학을 남겨놓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과서는 한국 문학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을 덮어놓고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 작품과 작가가 가지고 있는 논란이 무엇이든, 일단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지금에 와서도 교과서는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다 언급하며 허균의 사상과 홍길동전을 연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고은의 미투 이후로 수능특강에서 고은의 시를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지만, 박녹주에게 혈서를 보내고 살해협박을 일삼으며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던 김유정의 작품은 여전히 쉽게 교과서에 실린다.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다. 대로변에서 아내 김현경을 우산으로 폭행하고, 집에 와서 버리고 온 그 우산이 아까웠다는 김수영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긴 시간동안 김현경을 괴롭힌 가정폭력범이었으나, 교과서는 그를 모더니즘적 감각을 지닌 참여시인이라 칭송한다. 「김연실전」을 통해 김명순을 근대성에서 배제하고, 악성 루머를 퍼트리려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은 고등학생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그가 친일적 행보를 보였다는 것은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 줄쯤 나오는 성격 정리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김동인을 기념하며 매년 동인문학상을 시상한다. 과오는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21.08.02| 3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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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 호신술 독후감
    호신술은 1930년대에 지어진 송영의 작품으로, 부르주아와 노동자 사이의 충돌을 그렸다. 부르주아 계급, 그 중에서도 친일 반민족적 자본가를 희화화하며 이들을 풍자하고 있는데, 송영 자신이 1930년대 후반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품은 메타적으로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희곡은 호신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위기의식을 형상화하는데, 송영이 노동자 계급의 삶을 다룬 작품을 주로 만든 것으로 보아, 호신술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계급의 위기의식은 어쩌면 송영이 원하는 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모를 비롯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유의미하기를 바랐으리라는 것이다. 흥미로웠던 점은, 작품의 주제로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대립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희곡은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 매체와 달리 시간과 등장인물 수에 비교적 높은 제약을 받으므로 이를 무대장치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커져오는 떠드는 소리와 노랫소리를 통해 노동자들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알리고, 돌에 말린 종이를 통해 무대 바깥에 노동자들이 존재함을 알린다. 많은 수의 인원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노동자의 존재를 실속 있게 표현해 낸 것이다.을 읽으며 얻은 교훈을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서 상룡을 비롯한 부르주아 계급들은 호신술을 배워 자신들의 안위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춘보를 포함한 그들 모두 호신술이라는 대책으로부터 어떤 해결책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호신술은 그들을 다치게 한다. 호신술을 배우다 다쳐 병원에 가게 된 아내 경원이 그렇고, 하인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하인 춘보가 그러하다. 그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호신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 하기보다 호신술이라는 회피책을 선택하여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회피책 대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회피만이 능사가 아니며, 때로는 직접 마주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독후감/창작| 2020.12.18| 1페이지| 1,000원| 조회(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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