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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서평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다’(p. 105)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은 바로 이러하다. 그러나 샌델은 이에 대해 첨예하게 비판하며 제임스 애덤스의 “이 장면이야 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확실한 사례다. 사람들 스스로가 쌓은 자원으로 마련된 수단,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대중 지성. 이 예가 우리 국민 생활의 모든 부문에 그대로 실현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는 현실이 되리라.”(p.351)라는 말로 그의 입장의 정리한다. 샌델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성공이 반드시 재능과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여 일정한 겸손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어쩌면 샌델의 주장은 우리를 공적 삶으로 이끄는 최선의 방법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편으론, 너무나도 이상적인 내용만을 다룬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치 국내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작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철학하는 힘을 심어준다고 할 수 있으나, 나처럼 명확한 정답만을 요구하는 무지한 이들에겐 답답함만 몰려오는 Side Effect를 야기할 수 있다.이 다분히 ‘이상적’인 그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능력주의의 세계로 우리를 더 매몰해버리며 현실에 대한 회의감만 느끼게 한다.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능력주의적 보상에만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에 이타심이라는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리고 이는 남들과 ‘비교’하며 ‘내로남불’하는 본성에, 사회적 ‘계층화’라는 어쩔 수 없음(It’s What it is)에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사례는 정유라 사건이다. 그녀는 이화여대에 입학했을 당시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중략)… 돈도 실력이야. (후략)…”이라고 게재하였다. 본래의 능력주의는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의미 변질된 현재의 능력주의는 계층의 양극화를 그의 후세들에겐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다행히 이때까지는 우익이라는 기득권을 유지를 지향하는 이들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평등’을 지향하는 좌익 정권마저 조국 前 법무부 장관의 자녀인 조민의 대학 입시 비리 사건이 터지며, 능력주의의 퇴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2019년 미국의 입시 스캔들(p. 27)과 다르지 않으며,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 사회는 능력주의에 찌들어 공동선을 추구하기에는 개개인의 도덕적 노력인 부질 없다는 것을 뜻한다.아마도 이 책을 읽은 우리 대다수는 이타심을 발휘하여 공동선을 위해 노력하려고 하기 보다는, ‘아, 역시 능력이 전부구나. 나도 능력 있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유라와 조민 사건을 본 한국인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기득권층의 대학 입시 비리를 척결하라.”라고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정유라였다면’ 또는 ‘내가 조민이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다고 확신한다. 부정의한 삶을 살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삶보다 그들의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비교’에 따른 생각.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또는 인위적으로 생겨버린 사회적 계층화에서 정유라와 조민을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독자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그 계층에 대해선 ‘나만의 노력’을 통해 쟁취하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잖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내로남불’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자신보다 더 높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부정한 능력 때문에, 내가 위치해 있는 곳은 정의로운 능력 때문에?
    독후감/창작| 2021.07.21| 2페이지| 2,500원| 조회(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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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for everybod> 비평문
    페미니즘의 완성을 위하여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한남’, ‘메갈’, ‘워마드’ 등의 단어를 접하게 되면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혐오하기에 무조건 좋지 않은 거야.”, “이런 꼴페미년들.”, “쿵쾅이가 떴다!”라는 포털 사이트의 댓글들이 만연하여 내게 페미니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 혐오성 색깔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김치녀’, ‘된장녀’, ‘니 애미’와 같은 여성 혐오적 어구들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진 여성들이 ‘미러링’이라는 도구를 통해 남성 혐오적인 말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 아니 이러한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할 때가 왔다. 청주교육대학교 입시 면접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하여 미러링 페미니즘이 본색을 띠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공부했다. 사실 공부랄 것도 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몇 군데 뒤져본 것이 전부였다.이전에 다니던 대학교에서 前 여성가족부 장관인 정현백 교수의 를 접하고, 페미니즘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다시 한번 읽고자 청주 자취방으로 가져왔으나,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이번 ‘현대사회와 윤리’ 강의를 통해 어쩔 수 없이라도 관련 책을 꺼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럼으로써 읽게 된 벨 훅스의 . 이 책은 내게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페미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그것이 가진 한계점을 보완해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까지 제공해주었다.페미니즘 운동은 여타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방면으로 파가 나뉘며 진행되었다.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라난다.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각기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이 페미니즘 운동이 각자가 자라온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창기부터 개혁파와 혁명파로 양극화 양상이 보였다. 개혁파는 일터에서의 젠더 평등을 더 중시하며, 혁명파는 기존 체계 그 자체를 뒤엎고 재편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자는 다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성과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여성에게 직장에서의 노동과 가정에서의 노동이라는 이중고를 안겨주었다. 직장에서 젠더 평등이 이루어져봤자, 가부장제 하에서 가정생활은, 옛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역할 뿐이다. 여성이 진정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이룩하려면 혁명적인 페미니즘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그러나 이러한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이 겪고 있는 사회적 차별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성과만을 가지고, 많은 실패를 안고 왔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내분’이다. 대한제국의 국채보상운동이나 대한민국의 두 정당의 통합을 꾀하여 만들어진 한 정당의 실패와 같이, 내분으로 인해 페미니즘 운동이 지금껏 제대로 이행되지 못해왔다. 내분의 주역들은 누구일까? 우리나라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이 책을 쓴 벨 훅스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최소한, 특권 계급에 있는 백인 여성들과 피지배계급인 노동자 계층의 흑인 여성들이 그 첫 번째이다.특권 계급의 백인 여성들, 비단 백인 여성들뿐만 아니라 특권계층에 있는 흑인 여성도 대부분 자신이 특권을 가지고 있기에 앞서 얘기한 젠더 평등에 집중한다. 즉, 자신의 사회적 계층이 특권층에 있다면 가정 내에서는 기존 가부장제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통 개혁적 페미니스트들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계층이동이 성공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게다가 벨 훅스는 이들을 ‘기회주의자’라고 평할 만큼, 이들은 페미니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 대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임신 중단권 측면에서도 그들은 충분한 의료적 혜택을 누려서 현 상황에 순응하는 반면, 함께 성과를 이루어낸 흑인 노동자 계층의 여성들은 대부분 빈곤층으로서, 자신들의 임신 선택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이 특권 계층 백인 여성들은 일터에서의 젠더 평등을 이룩하며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에 따라 경제력도 성장하고 고학위를 취득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학이라는 만남의 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그들만이 페미니스즘 운동의 주역인 양 행동한다. 대학에서 교육 받는 사람들 역시, 대다수가 백인들이다. 그러나 운동을 함께 했던 흑인 여성들은 노동자 계층으로 여기서도 역시 학위 없는 신분으로서 강단에도 설 수 없을뿐더러,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기회조차 매우 적다. 물론 경제력을 갖춘 특권 계층 백인 여성들이 참여경제 전략을 사용하여 혁명적인 페미니스즘 운동을 돕지만, 그 수가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그들은 일터의 개혁적 페미니즘을 주창함과 동시에 성차별주의-가부장제 사회라는 늪에 다시 빠지고 만다.그들은 페미니즘적 사고 회로를 가동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또다시 지배자든 피지배자든 ‘지배의 윤리학’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이 윤리학에서 벗어나기 힘든 모습을 보인다. 기득권 백인 여성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흑인 여성들조차도 가정에서는 권위적인 부모로서 아동에게 폭력의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남자 아이를 훗날에 어머니를 무력으로 지배할 가능성을 농후화하는데 일조한다. 결국 ‘지배’라는 틀을 가진 쳇바퀴가 무한정 돌게 되는 것이다. 또한 레즈비언 부부 간에도 가학피학적 섹스를 하며, 심지어는 폭력까지 행사하는 지배?피지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페미니즘의 최종 목표와는 정반대되는 경우들로, 페미니즘의 완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벨 훅스는 페미니즘 운동의 이러한 불완전한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자그마한 성과들을 제시하며 페미니즘이 앞으로는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실성을 내비치고 있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자매애’를 잃고 성소수자 및 남성들과도 제대로 된 연대를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연대는커녕 남성성?여성성으로 양분되는 젠더 차별적인 요소들을 종식시키고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사회를 이상향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란 나무는 초창기 묘목부터 남성을 무조건적으로 혐오하는 가지들을 뻗었고, 지금도 뻗어나가는 중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벨 훅스의 견해 역시 페미니즘 나무의 한 줄기 뻗어 나온 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녀 역시 책에서 자신을 어떠한 폭력도 거부하는 ‘소수의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했다. 그녀와 다른 생각을 가진 페미니스즘 운동가들이 많다고 반추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가지들이 어울어져 잎과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시점인 것 같다.여성들만의 인권 신장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나 역시 벨 훅스의 가지를 지탱하고 싶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그녀의 페미니즘에 제시하는 해결책은 改名이다. 사실 가부장제 사회의 모든 지배?피지배 관계를 종식시키며, 모든 이의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란 쉽지 않은 목표다. 그러나 이를 조금이나마 더 완화하려면, 페미니즘의 개명은 필수적라고 본다. ‘Feminism’. 대게 남성들, 그리고 일부 여성들이 이 운동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단어 자체가 ‘여성화’, ‘여성주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Femine의 반의어인 Masculine을 생각해보자. 이 단어 역시 Masculinism으로 변화한다면, ‘남성화’, ‘남성주의’의 의미를 띈다.
    독후감/창작| 2020.03.20| 3페이지| 1,000원| 조회(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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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총기문화> 독후감, 레포트
    미국의 총기문화 를 읽고 철학하기미국의 탄생은 총과 함께였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랄까. 인간과 고철이라는 원소 조합의 차이, 생김새의 차이, 생명 유무의 차이 등. 겉모습은 다르나, 어머니의 뱃속부터 함께 자라 함께 태어난 것이다. 그만큼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태양이 질 줄 몰랐던 당시의 영국인들은 경제?종교적 이유 등을 내세우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생존권 보호를 위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리고 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이것이 미국의 시작이었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힘썼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적이 되었다. 제국주의 영국에 대항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인들은 또다시 총구를 앞으로 내밀었다. Patriot, 그들은 애국자로서 총으로써 미국을 지켰다. 민병대를 조직하고, 영국군에 대항했다. 그리고 독립을 쟁취했다.1861년 그들은 南?北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또 한 번 그들의 역사가 시작됐다. 서로가 화해하고, 군인들은 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벽에 걸었다. 책에 따르면 2억 7,000만 정이 넘는 총기가 미국 민간인들에게 있다. 1인당 1정씩 소유한 셈이다. 총은 미국인의 일상이다, 마치 한국인의 일상이 술(酒)인 것처럼 말이다. 일상이 된 미국인들의 총은 공격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보호의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정헌법에서도 미국인들의 무장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자기방어를 위한 미국인들의 권리가 타인을 위협하고 있다.버즈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콜럼바인 고등학교 참사 등은 미국인들의 총기 소지에 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에 대한 현재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에 대해 찬성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고작 40%다. 절대 다수가 총기 규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꼴이다. 다수결에 의한 자국민들의 선택은 이러하다. 그런데 他人인 우리가 미국의 이러한 총기문화에 대해서 간섭할 수 있을까?이에 대해 “철학”해보자. 이 시대에서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문화 상대주의’다. 말 그대로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서 ‘절대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수 있지.” 기본적인 골자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미국의 역사 서술이나 그들이 현대 국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건데, 상당히 애국적이다. 나쁘게 말하면 자문화 중심적이다. 모든 것을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다.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민중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미국 사회, 더 나아가 많은 사회에서 역사나 시선을 만드는 것은 지배 계층이다. 미국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인한 총기 범죄를 제외했을 때, 정치적으로 총구는 누구를 향해 겨누어졌는지 생각해본다. 케네디 대통령 형제, 마틴 루터 킹. 그리고 현재 언제든지 암살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그들은 모두 인류의 평화를 위해 힘썼거나, 힘쓰려 한 인물들이다.이번에는 이들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지 알아보자. 바로 미국의 보수세력들과 군산복합체 등이다. 이들이 무기를 생산하고 무기를 판매한다. 케네디 대통령 형제만 해도, 월남 전쟁에 대해서 반대했었다. 군산복합체는 이들을 암살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오바마 역시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오바마는 거슬리는 존재이며,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아 버리는 방해物일뿐이다.그러나 그들은 크나큰 착각을 하여 오류를 범해버렸다. 케네디가 암살됐지만, 음모론을 믿는 미국인들은 전체 인구의 70%를 초과한다. 그만큼 민중들의 마음은 지배세력들을 향해 있지 않다. 마틴 루터 킹도 역사적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오바마는 그를 정신적 지주로 삼는 이들도 매우 많은 현실이다.군산복합체를 포함한 이들은 눈앞의 물질적 이익만을 좇았을 뿐 미래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역사를 보지 못했고,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인물 하나를 암살했으나, 민중들의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유관순 열사, 박종철 열사, 김주열 열사 등.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나의 동지에게 우를 범한다는 것은 민중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그들은 민중들이 반기를 들도록 만들어버렸다.이러한 그들이 만든 미국의 총기 ‘필수’ 문화에 대하여 나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개혁해야 할 것이다. 총이라는 무서운 무기가 있어야만 안전하다는 생각은 큰 오류다. 우리나라가 보여준다. 민간인이 총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안전하다. ‘무기vs무기’라는 힘의 균형적인 시선으로 안전을 꾀하는 것은, 국방력에 더 큰 국방력을 이용하여 평화를 얻으려는 소모적인 비용만을 초래하며,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매한 생각일 뿐이다.과제 일부 중,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거나 깨닫게 된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 등을 반드시 개진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지만, 나와 크게 다른 점은 찾지 못해 적기가 애매하다. 그러나 한 가지 적어보자면, 이 책은
    독후감/창작| 2020.03.20| 2페이지| 1,0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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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미션> 레포트
    영화 을 보고종교가 아름다운 것인지 악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끔 하는 영화였다. 가브리엘 목사는 과라니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교했다. 글도 무엇도 모르지만, 자신들끼리 자신들의 문화로써 잘 살고 있던 과라니족에게 서구의 ‘우등한’ 문화를 전파한다. 과라니족은 비폭력이 무엇인지, 폭력에 대한 폭력이 무엇인지 배운다. 그리고 노예상으로 ‘활약’하던 멘도자는 선교 활동을 하면서 속죄한다.서구의 우등한 문화를 열등한 과라니족의 문화에 이식시켜 과라니족을 천국으로 이끌어주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은 지옥었다. 포루투갈에 의한 학살만이 과라니족을 덮쳐왔고, 이후 과라니족의 터전은 산산조각이 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들만의 문화로 죽음에 대응하고 다가가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우등하다’는 이유로 과라니족의 문화를 해쳤고, 실재로 존재하는지 알기 어려운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며 결국에 과라니족은 자신의 부족이 위험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물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말하는 “적을 사랑하라”라는 것에 따라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올바른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함무라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전쟁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침공당한 상황에서의 정당방위적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무고한 희생은 발생시켜선 안 된다. 그러나 과라니족은, 그들의 가족이 죽고, 그들의 친척이 죽고, 그들의 이웃이 죽고, 그들의 부족이 죽는 상황에 이르렀다. 콜버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나의 도덕성이 3단계에 머물러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부족한 도덕성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러한 생각을 유지하고자 한다.한편 내가 만약 하나님일지라도 나는 멘도자를 용서할 수 없다. 동생을 죽였다. 그리고 그는 노예상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은 채, 많은 사람들을 수단으로써 대하며 그들에게 아픔을 주었다. 그리고 속죄를 위하여 선교 활동을 했다. 그런다고 해서 그에 의해서 죽은 이들과 상처받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치유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종교가 사람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을 제공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면벌부를 얻는 것이 가당한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을 감정과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침해했다. 실수도 아닌 사적(私的) 고의로 인해 저지른 범죄를 비교적 쉽게 용서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극단적으로 멘도자 역시 종교를 ‘남용’한 것이라 하고 싶다.
    독후감/창작| 2020.03.20| 1페이지| 1,000원| 조회(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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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자와 유키치 레포트
    후쿠자와 유키치와 文明開化論1. 들어가는 말2. 본론1) 후쿠자와 유키치의 생애2) 후쿠자와 유키치의 文明開化論3) 후쿠자와 유키치의 脫亞論3. 맺는 말4. 참고문헌1. 들어가는 말올해는 기미년 독립운동이 시작된 지, 100주년이 되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때, 독립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도 들쑥날쑥했다. 구한말 외척세력과의 권력 다툼, 외세에 의한 몰락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큰 흐름을 잡고 있다. 갑신년에 일어난 정변은 우리 역사 최초로 왕조를 부정하며, 국민의 권리와 조선의 독립을 명시하였다. 이 정변의 주도자로 대표되는 김옥균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김옥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다.유키치는 서양의 학문, 특히 蘭學에 관심을 가지며 문명개화론을 외쳤다. 이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대로 갑신정변으로 이어졌고 조선조의 변혁을 예고했다. 이렇게 우리 역사에서 빼버리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린 문명개화론의 시발점, 유키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 3국이 모두 자주독립을 얻고자 했으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자 脫亞의 입장에까지 서버린 그의 이론과,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이 무엇이 있을지 살펴볼 것이다.그러나 이 글을 읽으며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개인(私)’을 위하는 사고방식이 진보적이며 이 시대를 있게 한 사상일지라도 결코, 그의 제국주의적 면모로써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사실까지 옹호하는 것은 아님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유키치의 태도는 비판받아 지당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 오해가 없길 바란다.2. 본론1) 후쿠자와 유키치의 생애1835년, 그는 나카쓰 번의 하급 무사인 후쿠자와 하쿠스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무사’라는 지위가 가지는 통념과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나, 그의 아버지는 오사카에서 쿠라야시키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쌀 상인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무사 계급이 대부분 그러하듯 하쿠스케 역시 학문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에 관한 책을 읽고, 유교 사상에 근거하여 자녀들을 교육하려 했으며 집안 자체는 유교적인 색채를 뚜렷이 가지고 있었다.3살의 유키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오사카라는 도시에서 시골 나카쓰 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유키치는 시골 생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다. 도시에 비해 상당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시골에서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그리고 처지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며, 제기하더라도 결코 바뀌기 힘든 곳이었다. 이러한 시골에 유키치가 적응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유교적 가풍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일평생 유교라는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바윗덩어리에 깔린 생을 보냈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그러다 1854년, 그는 서양 포술을 배우겠다며 나가사키로 갔고 和蘭語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는 蘭學者 오가타 고안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蘭學을 연구했다. 주로 서구의 자연과학과 의학을 공부했는데, 이것들은 그에게 큰 호기심을 주었고 洋學에 대한 硏究慾을 심화시켰다.1958년에는 에도로 이동하였고 이곳에서 세계정세가 英語로 통한다는 것을 통감하였으며, 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여 洋學에 더욱 매진하였는데, 그는 理學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도 배웠다. 특히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법률?정치?풍속?사회 등의 문화였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조지 워싱턴의 ‘가문’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컸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가문의 모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으나, 미국은 전혀 다른 사회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몽’의 필요성을 느꼈다.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학문의 권유 과 문명론의 개략 을 펴냈다. 그는 이 책들에서 문명을 개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서양 문명을 수용하는 데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일본적 특수성을 밝히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면서 그는 ‘脫亞論’을 주창하며 서양으로 가는 다른 동아시아 세계와는 다른 일본의 길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선조의 갑신정변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2) 후쿠자와 유키치의 文明開化論이제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차례다. 그의 문명개화론은 앞서 살펴봤듯이 蘭學 연구와 歐美에서의 洋學 경험으로써 시작되었다. 문명개화론은 문명을 개화해서 미국과 같은 근대국가로 환골탈태를 주장했다. 근대국가로의 환골탈태라 함은, 국가를 우선하기보다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패러다임을 기조로 하는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는 학문의 권유 에서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아래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라며 미국독립선언 의 “All men are created equal”를 인용하여 천부인권을 주장했다. 당시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라는 가문이, 그리고 메이지라는 덴노가 모든 힘과 지위를 쥐고 있었다. 일본의 백성들은 지배집단에게 복종하여, 그 집단이 준 ‘보살핌’을 받는 것을 ‘감사’하였다. 그러나 유키치는 이에 대해서 비판하며, 국민이 있기에 권위가 있고, 권위들에 의한 보살핌은 감사할 것이 아니라 ‘당위성’을 가진 것이었다.그는 또한 유교에 대해서 상당한 부정론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교라는 것이 문벌 제도를 양산했고, 지배층의 지배를 합리화했다. 심지어 그는 복옹자전 에서 “나에게 있어 문벌제도는 아버지의 원수이다”라고 할 정도로 유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가 유교를 전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교의 ‘주공공자의 가르침’과, ‘부패의 여독’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개념으로 보았으나, 餘澤을 찾기 보다는 餘毒을 회피하는 길을 택했을 뿐이었다. 그는 서양을 설명할 때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유교적인 예를 많이 들었을 정도로, 유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리고 유교의 좋은 점을 존중했다.한편 놀랍게도 그에게 있어 문명개화론의 목적은 일본 국민들의 개화하여 근대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목적은 ‘일본의 독립’이었다. 그는 中津留別之書 에서 “一身이 독립하여 一家가 독립하고, 일가가 독립하여 一國이 독립하며, 일국이 독립하면 天下도 독립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문명개화는 자국 독립의 수단일 뿐이었다. 또한, 그는 일본 자국 뿐만 아니라 주변 인접국인 淸과 조선의 문명개화에도 관심 가졌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개화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주자학의 사회적 意義가 일본과는 상이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필요한 것을 자신에 맞는 이론을 만들어 이용해 왔으나, 청이나 조선은 주자학을 자세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른 학문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배울 때 청과 조선의 사고 배경은 주자학에 기초하였다. 이는 학문을 도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사회 관념에 맹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혁을 꾀하기란 쉽지 않은 양태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쉬운 예로 갑신년의 정변이 三日天下로 끝나버린 것을 들 수 있다.3) 후쿠자와 유키치의 脫亞論이러한 청과 조선을 보며, 유키치는 청과 조선에는 개화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청과 일본은 半開상태였으나, 일본이 청보다는 더 開化에 가까웠고, 조선은 半開와 未開 사이로 본 것이다. 실패해버린 갑신정변에 대해, 유키치 자신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지원하는 등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변을 청이라는 종주국과 조선이라는 속국 사이에 벌어진 독립문제 또는 주권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치부하였다. 이 두 나라를 버렸고, 따라서 개혁 의지가 있는 일본만이라도 문명개화를 통해 독립을 달성코자 했다. 그는 “나는 진심으로 아시아 동방의 惡友를 謝絶하는 바이다.”라고 했다.그리고 脫亞를 주창했다. 그가 말한 脫亞란, 중화세계제국 질서로부터의 이탈인 동시에, 이른바 서양근대의 세계질서(엄밀히 말하자면 웨스트파리아체제일 것이다)에의 참가와 표리를 이룬다.그의 주요한 어구를 인용해보자면,…(전략)…오늘날의 신세계는 외국과의 교제가 가장 번잡한 시대로서 나라의 존망도 외국과의 경쟁에 달리 있는 절박한 시기인데, 周나라 때처럼 오로지 안을 굳건히 하고 밖을 소홀히 하는 치국평천하의 주장으로 이 다양한 세계에서 어찌 견뎌낼 수 있으리오…(후략)…( 德育如何 , 274쪽)라고 하며 그의 脫亞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문명개화를 이룩하기 위해 방해가 된다면, 청과의 전면전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냈다. 이러한 그의 생각과 주장은 많은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현재 일본의 1만 円 속에서도 그를 볼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의 최강국 중 하나로 군림했고,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승전국의 반열에도 설 수 있었다. 막대한 경제적?군사적 성장도 거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청과 조선조의 발전하지 못함은 그들 스스로가 자청한 것일 수도 있다. 인권을 유린할 가능성이 농후한 봉건제도를 깨부수고 민권을 향상시킨 유키치의 일본에서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4. 맺는 말이렇게 일본을 드높인 유키치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떠받들며, 국가론적인 생각을 하는 인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메이지 정부의 국가주의적, 군국주의적 행보에 일관되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말은 즉,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 ‘私立’을 중시하며 정부와는 대립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일본 역사에서 민권과 국가의 존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유키치는 일본에서 상당히 지지를 받고 있다.
    인문/어학| 2020.03.20| 5페이지| 2,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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