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와 바둑선수는 스포츠 선수로 볼 수 있는가?과거 약육강식시대에 따라 신체적인 힘으로 주도권을 다투던 ‘스포츠’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성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스포츠는 점점 더 넓은 의미로 통용되기 시작했다.바둑은 통상적으로 스포츠라고 지칭되는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는 바둑이 신체적인 능력이 강조된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특별한 신체조건이(여기서 신체란 통상적인 개념의 신체) 필요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둑에서도 스포츠의 특성을 찾을 수 있다.스포츠는 크게 규칙, 역할, 상호작용 및 관계의 특성을 가진다. 즉, 우리가 스포츠라고 규정짓는 것들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규칙, 역할을 지키며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이어나가 승패를 결정하는 선수 등이 무조건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규칙이 존재하고, 서로의 역할을 가진 기사들이 상호작용과 관계를 지속하며 경기를 진행하는 바둑은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하나가 되어 대국에 열중하는 팬들의 모습을 통해 스포츠의 기능 중 하나인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찾아볼 수도 있다.나아가 프로게이머는 지성적인 능력과 신체적인 능력이 모두 필요한 직업이다. 게임이라고 해서 쉽고 단순하게 비칠 수 있겠지만, 아주 세심한 조작과 순간의 판단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게이머 선수들이 정교하게 움직이고 캐릭터를 조작하는 것을 ‘피지컬’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이것은 게임 경기에도 신체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한다.지난 2018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의 순 시청자 수는 9960만 명으로, 웬만한 스포츠 경기들보다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통합하기도 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새로 형성한다. 또한, 프로게이머의 경우에는 게임이라는 분야의 인식을 바꾸면서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여 스포츠 순기능을 발현하였다.따라서 나는 바둑선수나 프로게이머 또한 스포츠 선수의 자격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침묵의 나선 이론'과 관련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A4 반 장 분량으로 작성하세요.“한국 학생들은 참 질문을 안 해.” 한 수업에서 혼자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나를 보며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한국 사람들은 틀리는 것을 무서워한다.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가는 수업의 흐름을 끊었다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 또한 하고 싶은 말을 삼킬 수밖에 없다. 소심하고 생각이 많은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침묵의 나선 이론은 이론이 아니라 일상이다. 나는 주로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경우, 이것이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인가부터 생각하게 된다. 한 번은 학생회에서 축제의 컨셉을 잡기 위해 회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때 나는 복고를 컨셉으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치하고 흔한 컨셉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회의는 마땅한 컨셉을 찾지 못해 길어졌고, 결국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복고가 다수의 지지를 받아 컨셉으로 확정되었다. 이날 나는 아이디어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그 후로도 이런 점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유튜브나 신문 기사를 볼 때 댓글을 보며 내가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소수에 드는 것과 다수에 드는 것 중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 다수를 선택하는 사람이 아닌 소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자전거를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영화>섬의 유일한 수신인에게 우편배달을 시작한 마리오는 자전거를 타고 바닷길을 지나와 시인 네루다와 처음 만나게 된다.<시>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영화>마이크에 대고 자신이 사는 섬의 아름다운 것들에 관해 얘기 해보라는 네루다의 말에 마리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베아트리체 루소’의 이름을 말한다.
쉽게 씌어진 시 및 영화 동주 감상문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아대학(大學)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선택 이유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윤동주의 시 중 를 선택해 영상으로 제작하는 수행평가를 하게 되었는데, 국어 선생님께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이는 내가 미디어학과에 진학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의 구절들은 나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인상 깊었던 구절처음 시를 봤을 때나, 영화로 다시 접하게 되었을 때나 나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구절은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이다. 그 이유는 이 구절이 이 시의 주제이자 윤동주의 삶을 압축한 문장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에서 나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힘겹게 살았을 윤동주의 모습이 연상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에서는 그런데도 시를 쓰고 싶어 하고, 이에 재능을 보이는 윤동주의 운명이 가혹한 것 같아 슬픈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윤동주는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16일에 사망한다. 만약 그가 조금 더 버텨 자유로운 세상에서 시를 쓸 수 있었거나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렇게까지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윤동주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신과 나라의 처지를 비관하며 이 시를 썼을지도 모르겠다.영화에서 들었던 시와 문자로 읽는 시의 느낌 차이시로만 접했던 윤동주는 스스로에 대해 성찰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굉장히 성숙하고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동주는 조금 달랐다. 늘 자신보다 잘난 몽규에게 치이면서도 일본 유학까지 함께했다. 이는 아마 동주가 몽규에게 열등감과 동경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몽규는 동주에게 ‘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이름 뒤로 숨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동주를 다시 판단해보았을 때, 그의 성찰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시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광복을 애타게 기다리던 윤동주가 떠오르던 과거와는 달리, 영화를 본 후에는 몽규에 비해 잘하는 것이 없고 시대에 소극적으로만 대처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쓴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시가 영화에서 나레이션될 때 동주는 조국으로 돌아가자는 몽규의 제안에 자신은 늦게 출발하겠다며 처음으로 반대를 한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몽규와는 달리 부끄러워 서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에서 어둠은 일제 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뿐 아니라 몽규에 대한 열등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어쩌면 이 시는 몽규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 성찰의 과정을 담은 시는 아니었을까?
1. 등장인물출처 - <미라빌레인 티스토리>양희와 필용이 주요 등장인물인 소설과 달리, 드라마는 무례하고 거만한 유명 연극 평론가 김형석이 추가로 등장한다. 또한 아 내와 아들이 존재하는 소설 속 필용과 달리, 드라마 속 필용은 미혼인 듯 하다. 이 때문에 나는 드라마 속 필용의 감정은 첫사 랑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순수한 감정으로 느껴졌지만 소설 속 필용의 감정은 일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느껴졌다.2. 저작권과 상표 노출 문제 소설 속 양희와 필용이 자주 갔던 햄버거집은 맥도날드이며, 필용이 좋아하는 퀸의 노래는 필용의 마음을 대변하는 도구로써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