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론적 관점과 갈등론적 관점에서 평생교육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논하시오.평생교육의 기능론적 관점과 갈등론적 관점에서 평생교육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살펴보기 이전에 기능론적 관점이 무엇인지, 갈등론적 관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평생교육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먼저 본 뒤, 논하기로 하겠다.기능주의는 인간을 인격체와 자유의지의 주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사회체제와 구조인 외부환경에 자극을 받아 행동하는 관찰 가능한 객체로 이해한 것으로 대표적인 학자로는 Conte, Spencer, Durkeim 등이 있다. Spencer의 '사회유기체설'을 살펴보면, 그것은 사회가 각 부분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여 전체를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기능론에서는 사회의 유지, 통합을 강조한다. 또한 기능론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계층상승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기능론이 바라보는 현대사회는 세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능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 사회, 전문가가 우대받는 전문가 사회, 교육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여 정보의 습득으로 인하여 평등에 이르게 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기능론이 지향하는 사회는 기회가 균등한 사회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의 노력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한 '개방 사회'를 일컫는 것이다. 교육내용은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내용으로서 이루어져있다. 업무에 필요한 지적 기술, 사회적 규범이 그 교육내용이다.기능주의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고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부분들이 전체 사회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하여 질서가 유지되고 자기가 맡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능주의 사회관은 교육과 생활, 학교와 사회집단 간의 관계를 순기능적 관계로 파악하고, 교육의 목적을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전문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인과 기능인 및 자유롭고 통합된 인격을 갖춘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교육은 사회성의 실현과 계층간의 평등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장치로서, 교육과정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객관화되고 과학적이며 직업적인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서의 지식과 기술을 중시해야 하며,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검사와 자격증을 강조하고 있다.갈등론은 Marx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갈등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갈등이 일어나는 현상이나 갈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를 체계적,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이론이다. 이는 인간이 사회를 창조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잠재력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는 존재로 인식하며 기능론적 관점과 대비되는 인간관을 형성한다. 갈등론은 현재의 자본주의체제가 인간의 인격을 수단적 가치로 전락시켰다거 비판하며 인간성 회복을 목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사회의 실체를 경쟁하고 투쟁하면서 상호대립하고 분열하는 것으로 파악하며 사회의 본질을 갈등과 대립으로 파악하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계급 간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 갈등론에서는 학교와 교육을 구분하며, 학교를 자본주의체제를 정당화, 합법화시키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로 파악하고,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하고 소외시키는 비인간화된 사회통제 기능을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Durkeim과 Marx는 각각의 사유를 통해 기능론과 갈등론을 만들어낸다. Durkeim은 철저히 망가졌던 각국들이 극심한 피해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서 '사회 유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를 사유하여 기능론의 토대를 마련하고, 반면 Marx는 계속되는 전쟁을 보고서 '사회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를 사유하여 갈등론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기능론적 관점에서 평생교육지식정보화 사회, 기술혁신과 직업구조의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 세계화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작용함으로써 현존 사회체제의 질서 유지와 통합을 위한 시민 양성의 기능을 담당한다. 즉, 기능론적 관점에서 평생교육은 사회공동체 의식과 책임의식, 윤리의식을 함양하여 체제의 안정과 유지,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이와같은 기능론적 관점은 평생교육의 기능에 대한 일부분을 설명하고 있지만, 사회적응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인해 평생교육을 통한 사회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갈등론적 관점과 평생교육갈등론은 갈등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갈등주의에서는 사회의 유지, 통합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갈등주의에서의 학교는 지배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구이며, 지배계급(기득권층)에 유리한 가치관을 세뇌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지배-피지배 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은폐하는 속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갈등론에서의 학교의 역할은 지배-종속의 생산관계를 적응시키고,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기능론에서는 교육 기회의 평등으로 인해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들었다.) 갈등론이 지향하는 사회는 사회 모든 구성원이 결과적으로 평등한 무계급 사회다.
외래간호사의 업무환경에 따른 스트레스와 대처양상목 차Ⅰ. 서론: 필요성과 목적 ------------------- 3Ⅱ. 이론적배경: 연구주제에 대한 이론적 고찰 ---- 41) 스트레스, 업무스트레스2) 업무환경Ⅲ. 연구방법 ------------------- 5A 연구대상B 연구절차C 측정도구(1) 업무 스트레스 측정도구(2) 스트레스 대처유형D 연구가설 및 분석방법Ⅳ. 기대되는 결과 ----------------------- 6Ⅴ. 연구일정 ----------------------- 6참고문헌 ---------------------- 7Ⅰ. 서론: 필요성과 목적외래 간호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료의 질적 향상,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전문 간호사의 활동, 비용절감을 위한 자조그룹의 발전 등이 요구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급증하는 내원 환자 수에 비례하여 간호사의 수가 의료법 시행령의 기준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내원 환자에게 바람직한 간호를 제공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며 이에 따른 외래 간호사의 역할갈등과 직무 불만족 등의 다양한 스트레스를 예상할 수 있다. 삼교대의 부담과 신체적인 피로가 비교적 적다는 이유 등으로 외래 근무를 선호하고 있는 현실인 반면에 외래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들의 부서이동의사나 이직의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 스트레스 정도는 상당하다. 외래 간호사의 경우 주로 원하는 스케쥴을 받을 수 없는 경우, 간호사 1인에 몇 명의 간호조무사(보조원)로 구성된 구조로 인해 동료간의 의견교환 및 원조가 부족한 경우, 관리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많은 경우, 그리고 행정, 관리 등 타 부서와의 접촉이 많은 경우, 업무에 비해 보수가 적은 경우 등등의 스트레스 상황들이 타 부서 간호사들과 다른 스트레스 양상이라 할 수 있다.임상에 있었을 때는 외래간호사 업무에 대해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상근직 계약직 간호사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여서, 어떠한 업무를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다. 막상 일을 하고 보니 임상간호사와는 또 다른 감정노동과 의사의 assistant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외래 업무, 간호사도 아닌 간호조무사도 아닌 일반 진료사무원도 간호사처럼 어쩌면 간호사 보다 더 오래된 경력을 가지고 간호사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외래업무환경, 그리고 계약직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 그에 따른 직무만족도 저하, 계약직에대한 정규직 만큼의 병원의 책임감 부여, 계약직 퇴사에 따른 잦은 업무이동 등의악순환이 반복되는 이런 외래 업무 환경속에서 외래 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외래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고 그에 따른 대처양상을 파악하여 보다 외래간호사들이 업무에 잘 적응하고 올바른 대처 방안을 연구해 반복되는 악순환을 막기위한 방안을 알아 보도록 한다.Ⅱ. 이론적배경: 연구주제에 대한 이론적 고찰본 연구의 목적은 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의 정도 그리고 대처유형에 대한 조사를 통해 효과적인 스트레스 중재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데 있다.1) 스트레스, 업무스트레스스트레스스트레스란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상태이며, 현존하는 평형 상태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것이다(Webster).스트레스는 인간이 사회속에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와 창조될 수 있다. 스트레스의 개념은 보통 부정적인 개념으로 다가오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자극원으로서 발전과 성장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개념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정도의 문제라 할 수 있다.인간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되며 그 결과는 스트레스의 위협 정도와 인간의 대처가 얼마나 조화롭게 작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인간은 위협에 대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어있고 스트레스의 완화를 위해 자신의 다양한 능력들을 발휘하고 만들어 가는 대처행동을 한다.대처반응은 스트레스원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이 행하는 노력이며, 불안이 제거되던 제거되지 않던,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관적, 생리적, 행동-운동적 영역의 증상표현을 조절하기 위한 적응 활동이다. 그리고, 대처행동의 유형은 개인과 환경의 평가를 통해 스트레스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관리 변화 할 것인가가 초점이 된다(조현숙,2001).인간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이 많을수록 더욱 현실적인 반응을 하기가 쉬우며 또한 인간이 감정을 적절히 발산할수록 적응능력은 강해진다.스트레스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대처능력이 주요 변수이며 이런 능력이 없거나 부적절한 사람의 경우는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우며 다양한 불 건강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질적인 삶과 건강증진을 위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스트레스 관리는 중요하게 다루어 져야 하며 더불어 다양한 연구도 계속되어야 한다.업무 스트레스업무 스트레스는 개인이 심리적 평형상태를 파괴할 정도로 영향을 주는 어떤 요인이나 복합적 요소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하거나 심리적, 신체적 조건들을 변화시키는 상태이며 개인의 능력과 환경요구간의 부적합을 말한다.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란 간호사라는 전문 직업인들에게 직업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개인적 스트레스이며,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인 장애를 받을 정도의 부담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스트레스 경험은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지에 관계없이 존재하며 다만 부서의 업무의 형태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 것이다. 외래는 대부분 비 의존적이고 사회활동이 가능한 환자들로 조기퇴원 환자, 가정요법 대상 환자나 만성질환자, 집단치료 및 재활간호 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의 환자들로 구성되고 의료기관과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외래 간호사의 역할은 내원환자의 질병 진단 및 치료와 관련된 상호의존적인 간호활동 이외에 가정, 직장 및 학교와 같은 사회 환경에서의 건강유지 증진을 위해 생활양식에 대한 지도 및 상담 등을 포함하는 건강교육과 같은 독자적 간호활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간호기능 및 내용을 망라한 것이어야 한다. 이제는 외래의 외형적인 확대뿐 아니라 의료의 질과 간호의 질을 향상시켜 전 국민의 건강증진을 목표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하며 외래 간호사의 자발적인 의식개혁과 업무형태의 체계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업무 개선 작업과 함께 스트레스의 정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관리를 통해 외래 간호사의 소진을 예방하고 긍정적인 발전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2) 외래간호업무외래 내원환자의 간호요구와 그에 부응하는 간호행위 및 관리행위 및 관리행위를 의미한다 (이지숙, 1999)Ⅲ. 연구방법본 연구는 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와 대처유형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고 병동간호사와 외래간호사간의 차이를 파악하기 위한 횡단적 조사연구이다.A 연구대상본 연구는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 대학병원 중 본 연구에 동의하는 3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하며, 외래 간호사 약 100명으로 한다.B 연구절차본 연구의 자료수집 기간은 2012년 5월 28일부터 11월31일까지로 계획하고 있으며 각 병원의 간호부에 전화로 연구의 목적에 대해 일차적으로 설명한 후 협조를 구하고 방문하여 연구 대상자에게 연구의 목적과 설문지 작성 방법에 대해 설명한 후 작성한다.C 측정도구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개발하였다.- 기존 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 측정도구와 스트레스 대처유형 측정도구를 참조하여 외래 간호사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수정, 보완한다.- 외래 경력 간호사와 간호학 교수님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측정도구의타당성(Validity)을 검사한다.- 위의 과정을 통하여 얻어진 문항을 최종 설문문항으로 선정한다.(1) 외래 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 측정도구임상간호사의 업무 스트레스 측정도구인 구미옥, 김매자(1984)가 개발한 도구 를 수정, 보완하여 9개 영역 총 45문항으로 구성한다.각 문항은 4점 척도로 ‘거의 느끼지 않는다.’(1점), ‘ 가끔 느낀다.’(2점), ‘자주 느낀다.’(3점), ‘심하게 느낀다.’(4점)이며 점수가 높을수록 스트레스 정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최근 외식업계에 영향을 미친 트렌드와 그에 따른 새로운 외식업체의 사례조사서론예전에 내가 어린 시절 외식이라고 하면, 고기, 스테이크, 돈까스 양식/ 중식/ 일식/ 한식 등 거창한 느낌의 외식식사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외식이라고 하면, 이 전의 외식의 개념은 물론 내식적 외식~ 외식적 내식 등에 이르기 까지 범위가 다양하고 그 종류와 시장도 많이 커졌다. 그렇다면 2012년, 최근 외식업계는 어떠한 영향을 미친 트렌드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어떤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본론우리나라의 외식 산업의 트렌드1. 건강, 기능성, 멀티중앙대학교 이레호두와 이촌동에 위치한 동빙고호두전문점으로서 호두가 많이 들어가 있고 팥이 달지 않다. 수제로 호두를 직접 만드는 것도 좋고,, 커피 카페도 같이 운영하여 수익을 보강.날씨가 더워지면서 팥빙수를 많이 찾고 있는데 동부 이촌동에 위치한 라는 팥빙수 전문점이 있다. 여기는 10평 남짓한 조금 한 공간이지만 긴 줄과 대기표로 팥빙수가 이렇게 줄서서 먹는 음식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 집의 인기비결을 살펴보면, 웰빙이다. 팥을 직접 삶아 만들어 팥이 달지 않고, 인절미도 보통 시중에서 맛보는 것 보다 더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별것 아닌 것같아 보이지만, 보통 카페나 제과점에서 달디단 팥과 과일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곳의 오리지널 팥핑수를 보면, 그 옛날의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집에서 만든 손맛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지 않아 이곳의 제일 인기상품은 오리지널 빙수라고 한다.- 건강과 well-being 강세- 소비연령대가 낮아지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소비의 주도적 역할 : 술보다는 식사형 외식형태가 강세2. IT 마케팅의 활성화최신 외식업계에 영향을 미친 트렌드를 살펴보면 또한 블로거와 SNS를 빼놓을 수 없다. 검색을 하면 모든 것이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스마트한 세상이 된 만큼 검색이 생활화가 되었고, 블로그 활동을 통하여 인기 블로거가 되면 그들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반면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부작용도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3.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국내 외식 프랜차이즈의 업종전환 트렌드 변화가 빠름- 우리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업종 : 웰빙(다이어트 푸드 전문점, 막걸리 프랜차이즈), 신소비계층 겨냥 (20-30대 여성고객, 카페 같은 분식점, 일본풍 서민 음식점, 기업형 커피 전문점)웰빙을 주창하며, 열기가 뜨거웠지만 각종 회사들은 건강기능식품 전문브랜드를 내놓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한국야구르트에서는 < Vfood > 라고 천연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건강한 기능식품을 내놓아 바쁜 현대인들을 타켓으로 불규칙한 식사와 인스턴트 음식으로부터 놓치기 쉬운 비타민, 미네랄 등을 약이 아닌 식품의 개념으로 보다 자연주의, 천연원료를 주장하며 판매하고 있다. 또한 Vfood에서 판매되고 있는 2주 슬림핏 다이어트프로그램의 인기는 월매출 10억, 올해 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의 다이어트로 유명한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는 검색만 해도 50개여가 넘을 만큼 소비자의 편리를 위해 7일분량, 분량을 나눠서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에는 이러한 다이어트 열풍에 힘입어 다이어트 식단을 집으로 배송해 주는 도시락회사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풀무원에서 운영하는 먹으면서 하는 바른다이어트 잇슬림 프로그램은 직장인, 집에서 주로 생활하는 여성, 8주 프로그램 등을 나누어 일주일/ 5일/ 4주/ 8주 등 원하는 패키지와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하루 1,100kcal 로 과학적으로 구성된 다이어트 식단이면서도 영양가 높은 식단을 만드는 번거로움 없이 편리하게 집으로 받아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 장-쟈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루소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반항아였다. 그는 자신이 살던 계몽사상 시대에 주장된 합리주의적 통념에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전을 했던 인물이다. 1600년대 이전에 북 이탈리아로부터 17세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아카데미를 지배하고 18세기에는 유럽대륙 전체에 걸쳐 추진된 합리성의 전통에 그는 참다운 단절을 가져왔다.루소의 사상은 세 가지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첫째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진보를 가져오게 한다는 생각을 공격한 모랄리스트, 둘째로 로만주의적 감수성을 제창하였으며 그것을 지배적인 합리주의에 대항시킨 아웃사이더, 셋째로 근대의 정치적 깃발 위에 민주주의 정치와 전체주의 정치라는 상호 대립하는 슬로건을 둘 다 처음으로 적어놓은 혁명적 사상가 등 세 가지 면이 그에게는 있었다.Ⅰ.루소는 1712년에 제네바에서 태어나 66세까지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출산시 죽고 루소는 아버지와 숙모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머니의 사랑 없이 자랐다는 점이 루소에게 준 심리적 영향은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는 항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괴로워했다고 한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직업이 시계공이었으며, 따라서 당시로서는 고도의 정밀기술자층에 속해 있었다.루소는 16세에 제네바 시를 떠나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 등 오랫동안 방랑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742년경 파리로 왔다. 이 곳에서 그는 디드로와 교류하는 등 약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루소는 파리생활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했는데, 자기자신은 그럼에도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프랑스 사회를 타락시킨 것은 오로지 기형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성격을 지닌 근대적 생활때문이라고 믿었다.Ⅱ.1749년 10월 어느 날 루소는 당시 검열제도를 위반하여 뱅센(Vincennes) 감옥에 수감중인 디드로를 방문차 가던 중, 디종(Dijon) 아카데미의 현상논문 공고를 보게된다. 당시 논문주제는 ?예술과 학하였는가??였다. 바로 이 현상논문 공고가 루소의 학문적 생활의 출발점이 된다. 루소는 이 공모에 응모하여 복음서와 비슷한 논문을 썼는데, 그는 도덕이나 인생의 모두를 부패시키는 것으로서 기예와 학술을 공격하였다. 루소는 여기서 입상을 하게된다.루소의 논문제목은 ?기예학술론?(원제 : ?기예와 학술의 도덕적 영향에 관한 논고?)이었는데, 이 논문은 1633년 갈릴레오에게 내린 종교재판소의 판결 이래로 과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논문이 루소가 스스로 밝혔듯이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루소의 이력에서 중대한 계기를 이루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그는 과학을 공격함과 동시에 문명과 문화사회, 즉 지예와 학술에 바탕을 둔 사회가 현재의 인간악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즉 루소는 악의 원인을 인간의 원죄 혹은 신에 있다고 보지 않고 그 대신 사회에 있다고 정해 놓음으로써 악의 문제를 세속화시켰다. 이것은 일종의 신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루소는 사회 개선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가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표명한 것이었다.이제 루소는 인간의 덕성을 강조하는 데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지식보다는 도덕을, 사치나 예술보다는 미덕을 강조하며, 지식과 예술이 자유로이 방임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즉 지식과 예술은 사회적 필요와 도덕적 생활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었다.루소의 이러한 사상적 특징은 동시대의 계몽사상가들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문화 혹은 문명은 인간 업적의 절정으로 파악한 반면 루소는 그것을 인간악의 근원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사상은 기예와 학술의 향상이 물질적 진보는 물론 도덕적 진보까지도 초래한다는 동시대인들의 합리주의적 기본 신념을 공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이들과 달리 루소가 제시한 것은 인간의 재생은 과학이나 기술의 향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재발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꾸준한 인간 정신의 진보가 아니라 정치 및 윤리의 근본적 혁신을 요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동시대의 계몽사상가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란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소는 소시민 출신으로서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그의 태도는 당연히 반항적이며 시비조의 태도가 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의 미천한 출신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계몽사상가들이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던 반해, 루소는 전 생애에 걸쳐 가난했고, 또 심한 가난 속에서 죽은 사람이었다. 이러한 루소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는 어느 정도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이 없다.의심할 바 없이 루소가 하층계급 출신이었다는 배경 때문에 역시 그는 소박한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의 처 테레즈(Therese)는 문맹이고 시계를 볼 줄 모르며 요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루소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였다. 따라서 그가 강조한 것은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흔히 정서의 부활이라고 불리는 감성의 대두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루소는 종교, 문학, 정치, 철학에 있어서 정서가 하는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는 새로운 감수성을 바탕으로 전 분야를 폭넓게 그리고 독창적으로 다룰 것을 제의하였다. 결과적으로 루소의 일의 대부분은 이른바 로만주의운동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합리주의에 대항하여 로만주의적 감수성을 추진시킨 아웃사이더로서의 루소의 본질적인 내용인 것이다.루소의 이러한 로만주의적 측면은 그의 소설 ?新 엘로이즈?(1761)와 ?에밀?(1762)에서 제시되고 있다. ?新 엘로이즈?에서 루소는 기혼인 소피 두드토(Sophie d'Houdetot)라는 여인을 사랑하는 자신의 절망적인 정열을 글로 敍情化시켰다. 다른 소설가들은 정열을 분석할 뿐이었는데, 루소는 그것을 독자의 가슴 속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며 떨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정열을 함께 공감하도록 하였다.다음 책인 ?에밀?은 좀더 기존 사회로 인해 타락함이 없이 선량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되어야 하는 가를 충고하려고 한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에밀은 바로 루소 자신이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원한 그 소년이었다. ?에밀?의 출발점은 인간이 자연적으로는 선하지만 사회로 인해 타락된다는 신념이었다. 그리하려 좋은 교육이란 ‘자연에 따른다’는 것이다.그렇지만 루소의 교육사상에는 시종 딜레마가 있었다. 그는 자연적 인간과 시민적 인간이 상반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인하기를 ‘인간을 만드는가, 시민을 만드는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양자를 동시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루소는 결국 시민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좋은 사회제도, 모든 좋은 교육은 인간의 ‘자연성을 탈피시키는’ 것이 되어야하며 ‘자아’를 공통의 통일체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인간과 시민을 융화시킬 수 있을까?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거슬림이 없이 그것에 조화시킴으로써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루소가 ?에밀?에서 밝힌 이상은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거의 자연적이라고 할 ‘고귀한 미개인’이었다. 이 고귀한 미개인이란 훌륭한 정서를 갖고 자신의 지능을 전면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문명이 일찍이 파괴해놓은 소박하고 완전한 생활을 달성한 그런 인간이었다. 고귀한 미개인의 생활은 사회화되고 있음과 동시에 자연적인 생활이라고 상상되고 있었던 것이다.그렇지만 무엇이 자연적인 생활인가? 이미 지나치게 문명화되어 있고 따라서 타락된 우리는 인간의 참다운 자연(본성)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루소가 시사한 바에 의하면 대답을 찾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대자연 그 자체, 즉 과학자의 대상인 자연이 아니라 로만주의적 고독한 자의 자연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루소는 인간의 내면 연구와 외적 자연의 데로 나아갔다.Ⅳ.루소가 취한 다음 단계에서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자연상태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며,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언급한 思考實驗을 통해 새로이 발견된 인간의 참다운 본성을 위한 올바른 사회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일단 그것이 되면 루소는 다음으로 고립상태로부터 인간을 꺼내어 그를 시민으로서 사회 속에 넣지 않으면 안되었다. 루소는 모든 이러한 시도를 ?사회계약론?(1762)에서 하고 있다.앞서 살펴본 ?기예학술론?, ?新 엘로이즈? 및 ?에밀?은 루소의 인간심리에 관한 견해를 나타낸 것이며, ?사회계약론?은 그러한 인간심리를 기반으로 인간을 위한 정치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사회계약론?은 하나의 중심문제 즉 사회의 기초가 과거나 현재거나 간에 또는 묵시적으로거나 명시적으로거나 간에 표명된 성원들의 동의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연상태-홉스는 투쟁상태, 로크는 평화상태, 루소는 고립상태-의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그의 동의 즉 사회계약에 의해서 인간을 사회 속에 놓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물론 루소가 사회계약이란 관념을 쓴 것 자체에는 하등의 새로운 것이 없었다. 홉스나 로크도 사회계약에 입각하여 그들의 정부론을 논하였다. 루소의 설명의 새로운 점은 일반계약을 맺은 인민이 사회의 전개과정 전체를 통해 시종 주권자로 존속하며 사실상 그들 자신의 통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에 있었다.그렇다면 과연 인민의 의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발견하는가? 루소의 입장은 재산이나 범죄 혹은 형벌에 관한 법이든 또는 그 밖의 것에 관한 법이든 간에, 사회의 법이 루터가 시사한 것처럼 신에 의해 부여된 것은 아니며, 홉스에 있어서와 같이 참주에 의해 자의적으로 과해진 것도 아니며, 혹은 로크에 있어서처럼 단순히 사람이 찾아내야하는 자연법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루소의 주장에 의하면 법은 단지 전체 주민의 합의에 의해서만 효력을 가질 수 있고, 또 효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법은 사회가
과목명: 한국 근세사 연구Ⅰ. 序 論흔히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을 사대교린이라고 한다. 중국에게는 사대외교로, 그리고 중국 이외의 나라에게는 교린체제를 유지했다. 한때 한국과 미국의 외교관계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현재의 한?미 외교를 미국의 대한 사대외교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중국과의 사대외교는 그 특징이 오늘날의 사대외교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사대외교로 오히려 조선이 더 많은 실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초기 명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요동 정벌론은 조선 초기 조선의 자주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여진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조선의 우위를 이용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조선의 실리외교를 봄으로써 오늘날의 한국의 국제관계를 어떤 식으로 맺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Ⅱ. 本 論ⅰ. 조선 초기 명과의 관계(1) 대명외교의 성격조선왕조의 대명관계는 사대외교를 통해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조선이 명과 전근대 동아시아적 국제질서의 일환으로서 전형적인 조공관계를 맺고 있음으로써 나타나는 외교형태였다. 사대외교는 어디까지나 민족보전을 위한 현실적 외교정책으로서 결코 자주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조선 초기의 대명 사대외교는 고려 말 친명파의 논리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조선 초기의 사대외교는 적어도 중기 이후 주자학이 풍미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사대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전근대의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유일한 강대국으로서 주변 국가들을 책봉체제에 편입시켜 중국적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변방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한편 주변 국가들은 책봉체제에 편입되어 중국에 조공함으로써 자국의 국가안보를 보장받고 무역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획득하며 선진문물을 도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미 중국에 의해 책봉체제로 규정된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조선은 불가피하게 현실적인 사대외교를 통해 실질적인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대명정책을 폈다고 할 수 있다.(2) 사신의 왕래조선왕조가 수립되고 나서도 명과의 조공관계는 그대로 지속되었으므로 양국 사이에는 여전히 빈번한 사신의 왕래가 이루어졌다. 특히 조선은 정치적 목적과 함께 경제적?문화적 이익을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사절을 파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태조 2년에 조선에 전달한 수조(手詔) 속에서 명 태조가 조선측이 말썽을 일으키며 명을 업신여기고 있다고 책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무렵 명에 갔던 남재가 귀국하여 3년 1공(貢) 하도록 하라는 명 태조의 의사를 전하여왔다. 조선의 1년 3사에 대하여 명은 3년 1사를 요구하는 이른바 「공기(貢期)」문제가 발생한 것이다.명 태조의 조선사신 입국금지는 여진유인과 더불어 퍼지고 있는 요동정벌에 관한 소문등 조선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보다 완전한 조선의 굴복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서, 결코 국교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1년간 단절되었던 양국관계는 태조 3년에 드디어 명 태조가 명사를 잇따라 조선에 보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었다.그러나 공기문제는 태조 6년에 표전사건(表箋事件)이 일어나자, 다시 한 차례의 파동을 겪게 되었다. 이 때도 명이 3년 1사를 요구하는 까닭이 마치 표전문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나, 사실은 조선의 요동정벌계획이 추진되고 있던 시점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조선과 명 사이의 공기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태조 7년 5월에 명태조가 죽고 손자 혜제가 즉위하였으며, 같은해 8월에 정종이 즉위하는 격변이 양국에서 동시에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정종 2년 8월에 처음으로 성절사를 파견하고 9월에 하정사가 파견되었으며, 이후 하정사와 성절사가 매년 파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종 2년부터 1년 3사로 다시 회복된 것을 알 수 있다.(3) 무역조선과 명 사이의 무역도 양국관계를 규정짓고 있는 기본적 질서인 조공(朝貢)관계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조공관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의 정치적 관계뿐 아니라 경제적?문화적 관계까지도 포괄하는 국제질서였기 때문이다. 원래 조공이란 중국의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은 주위의 민족이나 국가가 사신을 보내 일정한 공물을 바치면, 중국의 황제는 회사품(回賜品)을 내려주는 경제적 행위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위의 국가들은 조공관계의 수립을 통해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한 중국으로부터 필수물자를 획득하고 선진문물을 도입하는 데 힘쓰게 되었다. 중국의 대외관계가 모든 시대에 걸쳐 조공관계로만 일관되지는 않았으나 명대에 조선과의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조공관계가 성립되었다. 따라서 이 시대에 양국간의 무역도 조공관계를 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조공무역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공무역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근대적인 국제무역과는 물론 성격이 다르지만, 조공관계라고 하는 특수한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발생하는 물자의 교역이라는 점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공무역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조공무역이라는 일종의 공무역 이외에 사무역과 밀무역도 무역의 한 형태로서 존재하였다. 공인되지 않은 밀무역은 조선 후기에 비하여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자료도 남아있지 않아 이를 고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지만 사무역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대명사행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공관계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점은 공무역과 마찬가지다.ⅱ. 조선 초기 여진과의 관계(1) 대여진 정책조선 초기의 대여진 정책은 회유정책을 근본으로 삼았고 회유정책은 事大交隣의 원칙을 준용하였다. 북방 여진족의 대소 추장들과는 교린관계를 유지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여진사회가 통일되지 아니하고 나누어져 대소 추장들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었으므로, 조선에서는 이러한 대소 추장들을 지역별로, 종족별로 나누어 그들의 상하 지배관계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일일이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조선의 事大交隣 정책은 15세기 전반기 세종대에 완전히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朝貢을 근간으로 하는 상하관계인데, 세종은 조선에서 중국의 천자에게 조공하는 사대의 예를 북방의 여진족에 대하여 그대로 적용하려 하였다. 말하자면, 조선을 중심으로 이중적 상하관계를 수립하고, 그 외교적 주역을 조선이 담당하려 하였다. 이리하여 세종대에 중국, 일본, 만주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조선이 주도하였다.세종대에 사대교린정책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만주에 살던 여진족의 대소추장들을 초무(招撫)하여 조선에 복속시키려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였으나, 명의 영락제가 만주경략을 끝마치고 건주 3위를 설치한 다음부터는 여진족 추장들이 조공하고 복속한다고 하더라도 조선에서 국토개척을 이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진족 대소 추장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조공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반면, 조선에서는 여진적의 조공을 도리어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먼저, 세종대 이전에 정치적 의미가 강하였던 대여진 회유정책의 조공관계를 살펴보면, 태조대와 태종대 사이에도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 태종 2년(1402) 趙思義亂을 계기로 태조대의 대여진 동화정책은, 여진 정벌과 복속정책으로 바뀌었다.태종이후에 추진한 회유정책은 정치적으로 여진을 복속, 입조시켜 관직을 주고 조선의 세력아래 두려 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여진 추장들의 진상에 대한 回賜物을 지급하고 변경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민간교역을 통하여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政策이고 여진의 침략을 막으려는 미봉책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태조 대처럼 여진족을 동화시켜 국토를 확대하려는 정책은 아니었다.(2) 사신의 왕래조선 전기 여진족은 지역적으로 나누면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조선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것이 건주여진이었다. 여진은 명뿐만 아니라 조선에 대해서도 조공을 하였다. 지리적 관계로 건주 여진이 조선과 빈번히 교섭을 가졌고, 내지의 해서, 야인 여진도 끊임없이 조공하여 왔다.여진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명에 입조하여 위소를 설치 받았고, 명의 관직과 勅書를 받은 대소 추장들은 조선에도 입조하였다. 그러나 명은 원칙적으로 명에 복속한 여진족들과 조선 간의 교통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여진의 추장들은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조공을 하고 관직과 告身을 받았다.여진인들이 조공을 하는 근본 목적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화를 구하려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명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가능한 한 여진인들의 입조하는 인원수와 그 규모를 축소시키려고 노력하였다.조선에서는 입조한 여진의 대소 추장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告身을 주었다. 여말 선초에는 입조하는 여진의 추장에게 만호의 관직을 주었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와서 입조하는 여진의 대소 추장이 격증하자, 조선의 일반 무관직을 제수하여 정3품에서 종7품까지의 관직을 그 세력의 강약에 따라 각각 내려주었다. 여진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관직이 곧 그 사회의 신분을 나타냈다.즉, 조선이나 명에서 여진의 세력에 따라 관직을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관직이 단순한 虛職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여진 세력과 신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회사물여진의 조공은 회사물을 얻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할 만큼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여진이 조공하는 물건은 대개 수렵생활에서 얻어지는 모피가 주종을 이루었다. 여진이 모피를 바치면 조선이나 명에서는 면포와 ?幣를 회사하였다. 賞賜는 주로 의복류, 笠靴類, 品帶類였으며, 그 관등에 따라 생필품류의 면포를 내려주었다. 조선 초기에는 미곡과 염장을 내려주기도 하였으나, 세종대 이후에는 주로 布貨인 면포를 하사하였다.